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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80년대 왕건묘 대문


영릉문물의 3대 특색


이름:朴民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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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무선생님의 신라 진한(秦韓) 관련 글  


이홈페이지 추천싸이트  " 12세기 초강대국 고려 "에서 김용무선생님의 신라 진한(秦韓) 관련 글을
소개 합니다.

진시황제의 후손인 신라는 그 시작이 진(秦)나라로부터 말해야 옳습니다.

진나라의 진(秦)나라가 망하고 난후,

신라의 시작 [6(촌)국(國) : 하남성 개봉(開封)동쪽;고려때 송나라가 있었던 곳]

*북사 94권 고려(高麗) 전(傳) 본문 3224쪽 기록

"신라자기선본진한종야 지재고려(=고구려) 동남거 한시낙랑지

(신라(新羅)자(自)기(其)선(先)본(本)진한(辰韓)종(種)야(也)지(地)재(在)고려(高麗)(=고구려)동
남(東南)거(居) 한(漢)시(時)낙랑(樂浪)지(地),

신라는 그 선조의 근본이 진한의 종자이다.고구려의 동남쪽에 살았다. 한나라 때 낙랑군 땅 "

이렇게 옛 사서에 신라 국민이 어디 출신이라고 똑똑히 써 있다.그리고 식민사학에서는 고구려 동
남 경주라 했는데 진한의 땅이 엄연히 낙랑군이었다고 써있다.기존사학에서 낙랑은 평양 근처 아
닌가? 그러므로 식민사학 허구가 들어남.낙랑이 경주가 되든지 신라가 평양에 있던지 해야 하니까?!

" 진한역왈 진한상전언(진한(辰韓)역(亦)왈(曰)진한(秦韓)상(相)전언(傳言) ,

위 낙랑땅을 역시 진한(辰韓)이라하며 진한(辰韓) 역시 진한(秦韓)이며 서로 말이 전달되고 같았다. "

" 진세망인피역래적마한할기동계거지

(진(秦)세(世)망(亡)인(人)피(避)역(役)래(來)적(適)마한(馬韓)할(割)기(基)동계(東界)거(居)지(地))

진나라 세상이 망하자 피해 도망가 일하기 좋은 마한의 동쪽 경계로 가서 살았다. "

" 이진인고명지왈진한기언어명물유사

(이(以)진(秦)인(人)고(故)명(名)지(之)왈(曰)진(秦)한(韓)기(其)언어(言語)명물(名物)유사(類似))

그래서 진(秦)나라 사람이라는 이유가 됐다. 진한(秦韓)사람들의 언어는 명물이고 (마한사람들과)
유사(=비슷)하다. "

*약간은 틀리게 적은 양서(梁書))54권 열전(열전)88 동이(동이)391쪽을 비교합니다.

" 신라자기선본 진한종야 진한역왈 진한상거만리 전언진세망

(신라(新羅)자(自)기(其)선(先)본(本) 진한(辰韓)종(種)야(也) 진한(辰韓)역(亦)왈(曰) 진한(秦韓)
상(相)거(去)만리(萬里) 전언(傳言)진(秦)세(世)망(亡))

신라는 선조가 본시 진한이라 했다. 진한(辰韓)은 역시 진한(秦韓)이며진한(辰韓)에서 진한(秦韓)
은 1만리 떨어져 있고 전하는 말이 진나라 세상이 망하자, "

진한(辰韓)은 진한(秦韓)에서 1만리 떨어져 있다는 말에서 진(秦)나라 수도가 서안의 옆도시 함
양이므로 함양에서 동(東)으로 1만리는 경주이고 서(西)로 1만리면 천산 부근인데, 동으로 기존사
학에서 말하는 경주로 볼 것인가?!

아니고 서쪽인 천산 부근으로 보아야 하는가?!

왜냐면 신라시조 혁거세의 별칭을 생각 해 보라.

거서간(居西干)이 뜻하는 바를......서쪽에 살았던 임금아닌가?!귀걸이, 코걸이 식으로 그런 이름
도 무시한 쪽이 정당한지,그런 이름까지 고증으로 삼는 쪽이 정당한지?!  아무튼 1%의 근거라도
있으면 뿌리채 캐어내는 것이 사학가의 임무인 데에 충실했던 독일인 발굴가 하인리히 슐리이만
이 일리아드 오딧세를 가지고 터키에서 트로이 목마를 발굴해낸 것을 상기하자!!

그리고 천산에서 온 진한(辰韓)은 진한족이 세운 진한(秦韓=진나라)이 멸망하자 낙양[=낙랑] 동
쪽 땅으로 도망 갔다가 그 곳에서 나라를 세운 것이 고구려에 복속되는 통제와 간섭, 도움을 받다
가 나중에 그 설움(?)을 갚는 지?

삼국통일함이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습니다.

참고 : 마한의 위치:산서성,섬서성,하북성.[낙양이 중심]이 이하의 양서(梁書) 기록은 북사와 동일
하여 생략합니다.

위의 글을 읽고 난 후 생각 해 보면,

진한사람, 진(秦)나라의 중심귀족을 형성하고 있던 신라가 마한사람, 한(漢)나라와 같은 계열의  
고구려와 싸워 이긴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진(秦)을 멸망시킨 한(漢)나라--->그 복수가 되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이는 꼬리에 꼬리를 무
는 싸움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며,또한 이 끝이 당나라 계열의 왕건이라,같은 종친의 나라라고 서로
혈통 따지던 당과 신라,그래서 신라의 경순왕은 왕건에게 순순히 항복합니다.

이와 같이 역사의 국적만 갈릴 뿐,지나와 우리는 대륙에서 한데 뒤섞여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 중국인명국위방 궁위호적위구행주

중국인(中國人)명(名)국(國)위(爲)방(邦) 궁(弓)위(爲)호(弧)적(賊)위(僞)구(寇)행(行)주(酒)

(중국)나라 가운데 산 사람이라는 사람과 이름과 나라가 되었고,나무활로 활을 쓰는 도적질이나
하면서, 길다니면서 술 마시는 짓 했다.

나라 가운데 사람이라는 중국인 시조가 되었음을,우리는 신라가 그러했는지는 꿈에도 생각 못 한다.

" 위행상상호 개위도불여

위(爲)행(行)상(觴)상(相)호(乎) 개(皆)위(爲)도(徒)불여(不與)

길다니며 술마시는 모두가 하는 짓이 (마한과) 같지는 않았다."

" 마한동우 진한왕상용

마한(馬韓)동(同)우(又) 진한(辰韓)왕(王)상용(常用)

진한왕은 마한사람을 매사에 따라했다. "

" 마한인작지세세상정진한부득자립왕

(마한(馬韓)인(人)작(作)지(之)세세(世世)상전(相典)진한(辰韓)부득(不得)자립(自立)왕(王)

마한사람이 지은 세세상전에 진한사람들은 자립을 위해 부득이 왕을 세웠다 한다. "

" 명기유이지인고야 항위 마한소제

명(明)기(其)유(流)이(移)지(之)인(人)고(故)야(也) 항(恒)위(爲) 마한(馬韓)소(所)제(制))

확실히 (진한(辰韓)사람이)흘러 들어온 사람이 많았고 항상 마한 사람들이 통제를 하였다.(또는
마한사람 하는 것을 따라했다."

" 진한시유육국초분위십이 신라즉기일야

진한(辰韓)시(始)유(有)육국(六國)초(稍)분(分)위(爲)십이(十二) 신라(新羅)즉(卽)기(其)일(一)야(也) "

진한의 시작은 6국인데 더 작게 나누면 12이고 신라는 그 중의 하나이다. "

섬서성 서안의 인접도시인 진나라 수도 함양을 비롯한 그 일대에 진나라 귀족 집단이었던 신라인
들이 진나라 천하통일 30년 후 망해서,동서남북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주제 세력인 후일의 신라 선
조들의 비참한 유랑이,당시 낙양에 존재하던 마한의 동쪽 경계였던 낙양 동쪽 200km지점 개봉(開
封)(그 후의 고려때 송나라 수도)동쪽으로 가서 최초의 6국을 세웠다는 말인데, 이를 기존사학에
서는 경주에 6촌이 있었다고 함.

또한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구려의 전신인 마한의 통제와 간섭을 받던 진한은 고구려와 신라가
되고 나서도,통제와 도움을 받다가 나중에 신라가 고구려를 친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 내지
는 건국 시초부터 받은 모멸감을 갚은 것 아닌가 하고 2가지로 해석 될수 있음.


1) 분명히 6촌아닌, 6국중의 하나가 신라라고 써있고,

이는 같은 대륙에 살았던 북사의 기록이라 정확하다고 보는데, 기존사관에서는 6국->6촌   이 합
하여 신라가 되었다는 날조입니다.

2) 이와 같이 북사는 아주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음을 볼 때, 북사 집필진이 과연 극동의 한반도 동
남부 경주에 쳐박힌 신라라면 이런 자세한 기록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아심.

3) 이전의 이 학회 토론 문답의 터줏대감 김상님과 식민사학자님 말씀대로 진나라 후손들이 B.C.
200전후해서 대거 한반도 경주로 이민 왔다면,또는 한반도 토착 세력이었다면,철궁이나 각궁도 아
닌 나무활로 도둑질해서 연명하며,자포자기한 망국민의 행태를 내비치는 길 가면서 술 먹고 다녔
다는 이 기록이 거꾸로 왜곡 기록이 되는데?!경주였다면 적어도 원시를 벗어나는 농업경제인 농경
의 풍요스러움이 있었을텐데?!

4) 이 중국인명국위방(중국인(中國人)명(名)국(國)위(爲)방(邦)이 뜻하는 신라인들의 위치와 중국
인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하는 가?!

나라 가운데(당시의 진(辰),마한(馬韓)에 소속된 무수한 작은 나라 가운데)사람이라, 사람이름 되
고 나라이름 되었다는 이 기록은 신라인 선조가 그렇다니 얼마나 넌센스인가?!

그리고 경주에 기존사학계 말대로 진한이 있었다해도 진나라 후손들이 마한 동쪽으로 가서 진한
세웠다 소리는 배워 보지도 못했다.삼국사의 전(前) 3분의 1을 부정하여 알기 쉽게 부정한 기존 사
학계의 잘못.

다음 남사(남사(南史)) 79권 이(夷)맥(貊)전(傳) 2883쪽

" 신라기사상북사재백제동남오십여리

신라(新羅)기(其)사상(事祥)북사(北史)재(在)백제(百濟)동남(東南)오십(五十)여(餘)리(里)

북사에 그 사실이 자세히 써 있는 신라는 백제의 동남 50여리에 있다."

기존 사학에서는 백제 동쪽이지 동남은 아님.

"기지동빈대해남북여구려백제접위시신로송시신라혹왈사라

기지동빈(其地東濱)대해(大海)남북여구려백제(南北與句麗百濟)접(接)위(魏)시(時)신로(新盧)송
시(宋時)신라(新羅)혹왈(或曰)사라(斯羅)

그 땅은 동쪽에 있는 큰 바다와 같다. 남북은 고구려와 백제에 접했고 위나라 때는 신로였다가 송
나라때는 신라 혹은 사라."

"기국소불능자통사빙양보통이년성모명진시사수백제봉헌방물기속호

其國小不能自通使聘梁普通二年姓募名秦始使隨百濟봉헌(奉獻)방물(方物)其俗呼

그 나라는 작아서 스스로 사신 초빙을 못했다.양나라 보통 2년 진나라가 처음으로 성명을 모집했
다(사신을보내서).백제가 이를 받들어 모시고 방물은 헌납하고 그 풍속을 따랐다.

*참고 : 진(秦)나라도, 신라 전신(前身)이니까 우리민족.

" 성왈건모라기읍재내왈탁평재외왈읍록역중국지언군현야

城曰健牟羅其邑在內曰啄評在外曰邑勒亦中國之言郡縣也

(그 신라 당시) 성은 건모라이며 그 성안, 읍에 있는 사람은 바깥으로 다니지 않았고 밖으로 다니
는 사람은 좋지 않은 행세 했다고 평하고 나라안에서만 군현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말을 통하며 살
았다 한다."

" 국유육탁평오십이읍륵토지비미의식오곡다상마작겸포복

국유(國有)육(六)탁(啄)평(評)오십(五十)이(二)읍(邑)륵(勒)토지(土地)비(肥)미(美)의(宜)식(植)
오곡(五穀)다(多)상(桑)마(麻)작(作)겸( )포(布)복(服)

나라는 여섯이며 사람을 튕겨 낸다는 평이 있고 52읍 둘레의 토지는 비옥하며 마땅히 오곡 심겨
있고 뽕나무와 마가 많아 비단 옷과 베옷을 만든다."

" 우승마남여유별기관명유자유한지일한지제한지알한지일길지기패한지

우(牛)승마(乘馬)남(男)여(女)유별(有別)기(其)관명(官名)유(有)자(子)유한지(유旱支)일(壹)한지
旱支제(齊)한지旱支알(謁)한지旱支일(壹)길(吉)지(支)기(奇)패(敗)한지旱支

소, 말을 타는데, 남녀 유별했고 관명의 이름에는 유한지, 일한지, 제한지, 알한지, 일길지, 기패한
지이고, 그 자식 격이 되는 이름이[유자(有子)],"

" 기관왈유자예유왈위해고왈가반화왈세기배급행여


기(其)관(官)왈(曰)유자(有子)예(禮)유( )왈(曰)위(尉)해(解)고(袴)왈(曰)가(柯)반(半)화(靴)왈
(曰)세(洗)기(其)배(拜)급(及)행(行)여(與)

유자예유, 위해고, 가반화, 세기배급행여이다.

" 고려상류무문자각목위신어언대백제이후통언

고려(高麗)상(相)류(類)무(無)문자(文字)각(刻)목(木)위(爲)신(信)어(語)언(言)대(待)백제(百濟)
이(而)후(後)통(通)언(焉)

고려(=고구려)는 (신라와) 유사하게 같은 문자가 없어 나무에 조각하여 서로 알수 있는(믿을 수 있
는) 언어로 통하였는데, 백제도 후에 통하였다."

여기에서 깨우치는 것은 진(秦), 한(漢)이 우리민족의 나라인 것이다.이를 우리민족 역사에서 끊
어다 지나인들에게 선물 한 것이 일제(日帝)이다. 우리를 왜곡축소 시키면서 한 술 더 뜬것이 진
(秦), 한(漢)을 지나인들에게 붙여주니 지나인들이 덩달아 맞장구 친 것.

이하생략
--
*유양잡조전집 예전편에, 중국 곤륜산길 서쪽의 가까운 길목에 고구려와 백제가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목천자전 예전편에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다.
*한치윤은 해동역사(海東繹史) 삼한편(三韓篇)에서, 三韓 땅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三韓 땅은 만주 일대와 몽고 일부, 그리고 天山 신강성(新疆省), 청해성(靑海省) 일부이다.
*진서(晉書)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진한(辰韓은 秦韓)과 마한이 함께 있었고, 또 가까이 경계선을 두고 서로 사이좋게 살았다. 하지만 진(秦)나라 사람이 너무 많이 망명 또는 피난을 와서 동쪽 경계에 살았기 때문에 그 지역을 진한(秦韓)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삼국유사에는 최치원(崔致遠)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마한은 고구려(高句麗)이고, 진한(辰韓)은 신라(新羅)다."   "....고구려高句麗는 그 뒤 갑신甲申년에 일어났다.이시기에 진(秦)나라가 망하고 망국의 유민들이 마한의 동쪽땅에 피난와서 살게되었다.
*삼국유사에는 다음과같이 기록되어있다. "진한(辰韓; 진한秦韓이라고도 했다) <후한서(後漢書)>에 이렇게 말했다.  "진한(辰韓)의 늙은이가 말하기를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한국(韓國)에 오자 마한(馬韓)이 동쪽 경계의 땅을 베어 주었다..... 또 최치원(崔致遠)은 이렇게 말했다.  "진한은 본래 연(燕)나라 사람이 피난해 와 있던 곳이다. 그런 때문에 탁수(탁水)의 이름을 따서 그들이 사는 읍(邑)과 마을을 사탁(沙탁)·점탁(漸탁)이라고 불렀다."
*자치통감(資治通鑑) 193권 당기(唐紀) 9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중국여근본사이(中國如根本四夷) 중국의 근본은 사이(四夷)라는 것을 말한다.또한 자치통감 195권 당기(唐紀) 11권에는, 중국근간야사이지엽야(中國根幹也四夷枝葉也)라고 되어있다. 이 뜻은 중국사람들의 뿌리는 사이(四夷)의 가지와 잎에 해당한다는 것을 말한다.통전(通典)과 통지(通志)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동이구족(東夷九族) 중 사이(四夷)에 해당하는 나라는, 고려(高驪)와 백제(百濟), 신라(新羅), 왜(倭)라고 적고 있다. 중국 사람들의 뿌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중국사람들의 뿌리가 시작된 것은 한(漢)나라 초기이다. 중국사람들은 한(漢)나라 때의 사이(四夷)에서 그 뿌리가 이어진 것이다. 중국인들은 한족(漢族)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한족(漢族)이라기보다 사이(四夷)인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이 자치통감에 똑똑히 기록되어 있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는 복희, 염제, 신농씨, 黃帝, 소호금천씨, 전욱고양씨, 제곡고신씨, 요, 순, 하, 은, 주, 진(秦), 한(漢), 서한(西漢), 동한(東漢), 후한(後漢), 삼국(三國), 위(魏), 촉(蜀), 오(吳), 진(晋), 서진(西晋), 동진(東晋), 남조(南趙)는 송(宋), 제(齊), 양(梁), 진(秦), 후양(後粱), 북조(北趙)는 북위(北魏), 동위(東魏),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 그리고 수(隋), 당(唐), 무주(武周), 오대시(五代時), 북송(北宋), 남송(南宋), 거란(契丹), 요(遼), 서요(西遼), 금(金), 몽고(蒙古), 원(元), 명(明), 후금(後金), 청(淸) 등은 모두 고조선(古朝鮮)이 뿌리라고 밝히고 있다.(율곤 이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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