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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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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달마 혈맥론5


<달마 혈맥론5>


10.  ――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곧장 보임 ――

물음이라.
『나의 분수에 의하건대 어느 것이 비고 고요하되 신령하게 아는 마음입니까?』
대답이라.
『그대가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바로 비고 고요하되 신령하게 아는 마음이거늘 어찌 반조(返照)하지 않고 여전히 밖을 향해 구하는가?
내가 이제 그대의 분수에 의하여 근본 마음을 곧장 가리켜서 그대로 하여금 당장에 깨닫게 하리니, 그대는 마음을 맑히어 나의 말을 들으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 두시간 동안에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며,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성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옳다고 주장도 하고 그르다고 헐뜯기도 하면서 갖가지로 활동을 하나니, 말해 보라. 끝내 이게 누구의 운전인가!

만일에 말하기를 「색신(色身)이 운전한다」면 무슨 까닭에 어떤 사람이  잠깐 사이에 죽어서 전혀 썩지 않았으되 눈은 보지 못하며, 귀는 듣지 못하며,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며, 혀는 말을 하지 못하며, 몸은 요동치 못하며, 손은 잡지 못하며, 발은 다니지 못하는가?
이것으로 보건대 능히 보고 듣고 운동하는 것이 반드시 그대의 본심(本心)이요 그대의 색신(色身)이 아님을 알 것이다.
하물며 이 색신은 四대(大)의 성품이 공하여 거울 속의 그림자 같으며, 물 속의 달 같으니, 어찌 능히 요요(了了)하게 항상 알며 명명(明明)히 매하지 않고서 느끼는 대로 곧 항하사 같은 묘용(妙用)을 통하리요?
그러므로 신통과 묘용이 곧 물 깃고 나무 나르는 것이라 하노라.

11. ―― 관음이 깨달아 들어간 법문을 곧장 보임 ――

진리에 들어가는 길이 여러 갈래 있으나 그대에게 한 문을 가르쳐 주어 그대로 하여금 근원에 돌아가게 하리라.
그대는 저 까마귀와 까치의 울음 소리를 듣는가?
「예, 듣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으라. 거기에도 여러 가지 소리가 있는가?
「거기에 이르러서는 온갖 소리와 온갖 분별이 전혀 없습니다.」
기특하도다. 이것이 관음이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로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물으리라.
그대가 말하기를 「거기에 이르러서는 모든 소리와 모든 분별이 전혀 없다」하였으니, 이미 아무 것도 없다면 그 때를 당하여 허공이 된 것이 아닌가?
「원래 공하지 않아서 밝고 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바탕인가?
「모양조차 없으니 말로는 미치지 못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여러 부처님과 조사들의 수명이니 더 의심하지 말라. 이미 형상과 모습이 없다면 크고 작음은 있는가?  크고 작음이 없을진댄 끝은 있는가? 끝이 없으므로 안팎이 없고, 안팎이 없으므로 멀고 가까움이 없고, 멀고 가까움이 없으므로 너와 나가 없느니라.
너와 나가 없으면 가고 옴이 없고, 가고 옴이 없으면 나고 죽음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면 예와 이제가 없고, 예와 이제가 없으면 미혹과 깨달음이 없고, 미혹과 깨달음이 없으면 범부와 성인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없으면 더러움과 깨끗함이 없고, 더러움과 깨끗함이 없으면 옳고 그름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면 온갖 이름과 말을 모두 얻을 수 없느니라.
이미 이런 것이 전혀 없다면 온갖 감관과 경게와 그리고 온갖 망념(妄念)과, 나아가서는 갖가지 모습과 갖가지 이름과 말을 모두 얻을 수 없나니 이 어찌 본래 공적(空寂)한 것이 아니며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리요?
그러나 모든 법이 모두 공한 곳에 신령한 알음알이가 어둡지 않아서 무정물과는 달리 성품 스스로가 신그러이 이해하나니, 이것이 그대의 비고 고요하고 신령한 알음알이[空寂靈知]이며 청정한 마음의 바탕이니라.

이 청정하고 비고 고요한 마음은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들의 대단히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며 중생들의 근원인 각성(覺性)이니, 이것을 깨달아 지키는 이는 일여(一如)에 앉아서 해탈의 경지에서 요동치않고, 이것을 미혹하여 등진 이는 六취(趣)로 가서 여러 겁을 헤매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한 마음을 미혹해서 六취로 가는 것은 감[去]이며 움직임[動]이요, 법계를 깨달아서 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옴[來]이며 고요함[靜]이라」하니, 미혹과 깨달음은 다르나 그 근원은 하나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법이란 것은 중생의 마음이라」하시니,이 비고 고요한 마음이 성인에게서도 늘지 않고, 범부에게서도 줄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성인의 지혜에서도 빛나지 않고, 범부의 마음에 숨어서도 어둡지 않다」하시니라.
이미 성인에게서 늘지 않고, 범부에게서 줄지 않을진댄 불조(佛祖)가 어찌하여 사람들과 다르리요? 사람들보다 다른 까닭은 스스로가 마음을 지키기 때문이다.

12. ―― 수행하기를 권함 ――

그대가 믿기만 한다면 의심을 활짝 쉬게 되리니, 장부의 뜻을 내고 진정한 견해를 일으켜서 친히 그 맛을 맛보고, 스스로가 긍정할 경지에 이르면 이것이 바른 수행인(修行人)의 깨달을 곳이라, 다시는 계급(階級)도 차례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활짝 깨달음[頓悟]이라」하며, 또 말하기를 「믿음의 인행(因) 때에 모든 부처님의 과덕(果德)에 부합되어서 털끝만치도 어기지 않아야 비로소 믿음을 이룬다」하셨느니라.』

13. ―― 깨달은 뒤에 차츰 닦는 법을 거듭 보임 ――

물음이라.
『이미 이런 이치를 깨달아 다시 계급이 없을진댄 어찌 뒤에 다시 닦아서 차츰 익히고 차츰 이루는 절차가 필요하리요?』
대답이라.
『깨친 뒤에 차츰 닦는 이치를 전에 이미 구족히 말했거늘 아직도 의혹을 풀지 못했으니, 다시 설명함이 무방하리니, 그대는 마음을 맑히어 자세히 들으라.
범부가 끝없는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五도(道=지옥‧아귀‧축생‧인도‧천상)에 헤매되, 태어나면 오고 죽으면 가는 사이에 아상(아상=내라는 고집)을 굳게 집착하여 전도된 망상과 종자로 훈습된 무명과 더불어 오랫동안 성품을 이루었으므로 비록 금생에 이르러서 자기의 성품이 본래 공적해서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묵은 습성을 끝내 갑자기 제하기는  어려우므로 역경과 순경을 만나면 성냄과 기쁨과 옳고 그름이 어지러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거칠은 번뇌와 미세한 번뇌가 예전과 다름이 없나니, 만일 반야로써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 어찌 능히 무명을 물리쳐서 크게 쉬는 경지에 이를수 있으리요?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활짝 깨달으면 부처와 같으나 여러 생의 습기가 깊은지라 바람이 멈추어도 파도는 여전히 솟구치고 진리가 나타나도 망념은 아직도 침입한다 하였으며, 또 종고(宗杲)선사가 말하기를 「간홋 영리한 무리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일을 깨닫고는 문득 수월하다는 생각을 내어 더 닦지 않다가,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전과 같이 떠돌다가 윤회를 면치 못한다」하시니, 어찌 잠시 깨달은 바가 있다하여 다시 닦는 일을 던져 버리리요?
그러므로 깨달은 뒤에 오래오래 밝히고 살펴서 망념(妄念)이 일어나거든 도무지 따르지 말지니, 덜고 또 덜어서 더 할것이 없는데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하리니, 천하의 선지식(善知識)이 깨달은 뒤에 목우행(牧牛行=수행)을 한 것이 이것이니라.
비록 나중에 닦는다고는 하나 망념이 본래 공하고 심성(心性)이 본래 맑은 줄을 먼저 이미 깨달았으므로 악을 끊되 끟는 것이 없고, 선을 닦되 닦는 것이 없나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비록 만행(萬行=갖가지 수행)을 골고루 닦는다 하여도 오직 무념(無念)으로 조종[宗]을 삼는다」하셨느니라.

규봉(圭峰)이 깨달은 뒤에 닦는 도리를 통틀어 판단하기를 「이 성품은 원래 번뇌가 없으며, 무루지혜[無漏智]의 성품이 본래 구족한 줄을 활짝 깨닫고, 이에 의하여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 하고, 또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 하나니,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 백 천 삼매를 자연히 차츰 차츰 얻게 되리니, 달마(達磨)의 문하에서 대대로 전한 것이 이 선법(禪法)이니라」 하시니, 활짝 깨달은 뒤에 차츰 닦는 도리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가 없어도 안 되느니라.
어떤 이는 선과 악의 성품이 공한 줄을 알지 못하고 굳이 앉아 요동치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억누르는 것으로 마음 닦는 일이라 하니, 이는 큰 잘못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성문은 생각마다 미혹을 끊으나 끊으려는 마음이 도적이라」 하시니, 살생 ・ 투도 ・ 음행 ・ 망어가 성품으로부터 일어나는 줄로 자세히 관찰하기만 하면 일어남이 곧 일어나지 않음이라, 그 자리가 바로 적멸이거니 어찌 더 끊으려 하리요?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달음이 늦을 것만을 두려워한다」하였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망념이 일어나면 곧 깨달으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의 처지에서는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으나 모두가 제호(醍醐=최상의 맛) 가 되느니라.
미혹의 근본이 없는 줄 알면 허공꽃[空華]같은 삼계가 바람이 연기를 걷는 것 같고, 허깨비[幻化]같은 六진이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리라.

만일에 이와 같이 생각마다 닦아 익히어 살피기를 잊지 않아,정(定)과 혜(慧)를 균등히 지니면 사랑도 미움도 자연히 얇아가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늘어나며 죄와 업이 자연히 없어지며 공덕과 수행이 자연히 두터워지리니, 번뇌가 다할 때에 생사가 바로 끊어지리라.
만일 미세한 번뇌[流注]가 영원히 끊어지고 원각의 큰 지혜가 오롯이 밝아지면 즉시에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을 나타내어 十방국토에 근기 따라 감응하되, 마치 달이 중천에 밝으면 그림자가 여러 물에 나누어 비치듯 끝없이 응용하면서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되 즐거워 근심이 없으므로 대각세존이라 부르느니라.』

14. ―― 정과 혜를 바로 보임 ――

물음이라.
『깨달은 뒤에 닦는 부문에서 정과 혜를 균등히 지니는 이치를 아직도 분명히 알지 못하겠으니, 다시 설명하시고 자세히 보이셔서 어리석음을 열어 해탈의 문에 들게 하여 주소서.』

대답이라.
『만일 법과 이치[法義]를 시설한다면 진리에 들어가는 문이 많겠으나 정혜(定慧=선정과 지혜)아닌 것이 없고, 그 강요(綱要)를 취하건대 자기 성품 위의 체(體)와 용(用) 두 가지일 뿐이니, 전에 말한 바 비고 고요하고 신령하게 안다 한 것이니라.
정(定)은 본체요 혜(慧)는 작용이니, 본체 그대로인 작용이기 때문에 지혜가 선정을 여의지 않았고 작용 그대로인 본체이기 때문에 선정이 지혜를 여의지 않았으며, 선정 그대로가 지혜인 까닭에 고요하면서도 항상 알고, 지혜 그대로가 선정인 까닭에 알면서도 항상 고요하나니, 조계(曹溪)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 바탕에 어지러움 없는 것이 제 성품의 선정이요, 마음 바탕에 어리석음 없는 것이 제 성품의 지혜라」하시니라.
만일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달아서 걸림없이 적적히 알아 가리움과 비춤이 둘이 없이 되면 이는 활짝 깨달은 자가 정과 혜를 쌍으로 닦는  것이니라.

만일 말씀하시기를 「먼저 적적(寂寂=아주 고요함)으로서 산란[緣慮]을 다스리고, 나중에 성성(惺惺=또렷 또렷함)으로써 혼침[昏住]을 다스려서 처음과 나중의 다스림으로 혼침과 산란을 균등히 조절해서 고요함[靜]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이는 차츰 깨달은 열등한 무리가 행하는 바이니라.
성성과 적적을 균등히 지닌다고 하나 고요함을 취함으로써 수행을 삼는 허물을 면치 못했으니 어찌 일을 마친 사람[了事人]이 본래의 고요함과 본래의 신령스런 알음을 여의지 않고서 자유로이[任運] 쌍으로 닦는 것이라 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六조[曹溪]께서 말슴하시기를 「스스로가 깨닫고 수행하는 것은 다투는데 있지 않나니 앞과 뒤를 다투면 미혹한 사람이라」하셨느니라.

통달한 사람의 경지에서는 선정과 지헤를 균등히 지닌다는 것이 공용(功用=애써서 노력함)에 속하지 않나니, 원래부터 함이 없어서 더 이상 특이한 경지가 없느니라.
빛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그저 그렇게 하고, 옷을 입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그저 그렇게 하며, 똥을 누고 오줌을 눌 때에도 그저 그렇게하며, 사람을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그저 그렇게 하며 나아가서는 다니거나 멈추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잠잠하거나 기뻐하거나 성내거나에 이르기까지 항상 이와 같이 하되, 마치 빈 배를 파도 위에 띄우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 같으며, 물이 산골을 지나면 곧았다 굽었다하는 것 같아서 마음마다에 아무런 지각이 없느니라.
오늘도 훨훨[騰騰] 자유로우며[任運] 내일도 훨훨 자유로와서 뭇 인연에 따라 순응하되 아무런 장애가 없어서 선과 악에 대하뎌 닦으려고도 않고 끊으려고도 않으며, 곧고 거짓이 없어서 보고 듣는 일에 예사로우니라.
한 티끌도 상대할 것이 없거니 어찌 수고로이 떨어버리는 공부를 할 것이며, 한 생각도 망정(妄情)을 낼 것이 없거니 반연을 잊으려는 힘을 쓸 필요가 없느니라.

그러나 장애가 진하고 습기가 무거우며 수행[觀]이 미약하고 마음이 들떠서 무명의 힘이 크고 반야의 힘이 작으므로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하여 시끄럽거나 고요함에 끄달리지 않을 수 없어서 마음이 편안치 않은 이에게는 반연을 잊고 떨어버리는 공부가 없지 않으니라.
옛 사람이 말하기를
「六근(根)이 경계를 거두어서 마음이 반연을 따르지는 않는 것을 선정이라 하고, 마음과 경계가 모두 공하여 의혹없이 밝게 비추는 것을 지혜라한다」하였느니라.
이것이 비록 겉모습을 따르는 문중의 정과 혜이며, 차츰 닦는 문중의 못난 근기들이 행할 바 이기는 하나 다스려 나아가는 문중에는 없을 수 없느니라.
만일 도거(掉擧=산란)가 성하거든 먼저 선정의 문으로 이치에 맞게 산란을 거두어서 마음이 반연을 따르지 않아 본래의 고요함에 계합하게 하고, 만일 혼침(昏沈=졸음)이 너무 많거든 다음엔 지혜의 문으로 법을 선택하고 <공>을 관찰해서 비춤에 미혹이 없이 본래의 알음[本知]에 계합하여야 하느니라.
선정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지혜로써 무기(無記=무감각)를 다스려서 시끄러움과 고요함을 모두 잊고 물리치는 공부가 끝나면 경계를 대하되 생각마다 조종에 돌아가고 반연을 만나되 마음마다 도에 계합해서 자유로이 상으로 닦아야 바야흐로 일없는 사람[無事人]이 되리니, 능히 이와같이 하면 참으로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어 불성을 분명히 본 사람이라 하리라.』

15.  ―― 선정과 지혜를 자세히 밝힘 ――

물음이라.
『그대의 판단에 의하건대 깨달은 뒤에 닦는 문 가운데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는 이치가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자성정혜(自性定慧)요, 또 하나는 수상문정혜(隨相門定慧)이다.
자성문정혜에 대하여 말하기를 「자유로이 고요하게 알아서 원래부터 무위(無爲)인지라 한 티끌도 상대될 것이 없거니 어찌 버리고 소탕하는 공부를 할 것이며, 한 생각도 망정을 낼 것이 없거니 반연 잊는 힘이 필요치 않다」하고, 판정하되, 「이는 활짝 개달은 이가 제성품[自性]을 여의지 않고서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는 것이라」하였으며, 수상문정혜에 대하여는 말하되 「이치에 맞게 산란을 거두며, 법을 가리어 <공>을 관찰하되 혼침과 산란을 균등하게 조절해서 무위의 경지에 들어간다」하고, 판정하되 「이는 차츰 닦는 문중에 속하는 열등한 무리의 행할 바라」하시니, 이 두 부문의 정과 혜에 대하여 의심이 없지 않도다.

만일 말하기를 「한 사람의 행할 바라」한다면 먼저 자성문(自性門)에 의해서 선정과 지혜를 쌍으로 닦은 뒤에 다시 수상문에 의하여 혼침과 산란을 균등하게 조절한 뒤에 자성문에 들어가야 되는가?
만일 먼저 자성문의 정과 혜에 의지한다면 자유로이 고요하게 알아서 더 이상 물리치고 닦을 공부가 필요치 않을 것이어늘 어찌 다시 수상문의 정과 혜를 취할 필요가 있으리요? 마치 흰 옥에다 문채를 새겨서 옥의 덕을 해치는 것과 같도다.
만일 먼저 수상문의 정과 혜로써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가 이루어진 뒤에 자성문에 나아간다면 이는 완연히  차츰 닦는 문중에서 못난 근기[劣機]가 깨닫기 전에 차츰 닦아 익히는 법이어늘 어찌하여 말하기를 「활짝 깨닫는 문중의 사람이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아서 공부할 것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이라」하리요?

만일 동시이어서 앞 뒤가 없다면 두부문의 선정과 지헤가 돈(頓=활짝)과 점(漸=차출)의 차이가 있거늘 어떻게 동시에 함께 행하리요?
활짝 깨닫는 부문에 속하는 이는 자성문에 의하여 자유로이 공부를 잊고, 차츰 닦는 부문의 못난 근기는 수상문에 나아가서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를 힘써야 하나니, 두 부문의 근기가 돈과 점이 같지 않고 우수하과 열등함이 분명하거늘 어찌 먼저 깨닫고 나중 닦는 문에서 두 가지를 함께 해석하겠는가?
대답이라.
『이미 해석한 것이 분명하거늘 그대 스스로가 의혹을 내는구나.  뜻을 얻고 말을 잊으면 공연히 따질 필요가 없으리라.
만일 두 문에 대하여 그들의 수행을 나누어 판별하건대, 자성정혜를 닦는 이는 활짝 깨닫는 부문에서 공력없는 공력을 써서 함께 운전하고 쌍으로 고요히 하며, 스스로의 성품을 스스로가 닦아서 스스로가 불도저를 이루는 무리니라.

수상문(修相門)의 선정과 지혜를 닦는 이는 깨닫기 이전에 차츰 닦는 문중의 못난 근기가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를 써서 마음마다 미혹을 끊어 고요함을 취하는 것으로 행을 삼는 것이니라.
이 두 부문에서 행하는 것이 돈과 점이 각각 다른지라 혼돈하지 말지니라.
그러나 깨달은 뒤에 닦는 문중에 수상문에서의 물리쳐 다스리는 법을 겸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차츰 닦는 근기의 행할 바를 완전히 취하는 것이 아니라 방편을 취하되 길을 빌리거나 투숙을 의탁하는 것 같을 뿐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활짝 깨닫는 문에도 근기가 수승한 이가 있고, 근기가 열등한 이도 있으니, 한 예로써 그의 행적을 판정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번뇌가 얇고 몸과 마음이 거뜬[輕安]하여 선(善)을 대하되 선을 여의고 악을 만나되 악을 여의어 여덟 가지 바람에 요동치 않고 세 가지 느낌에 고요해진 이는 자성문의 선정과 지혜에 의하여 자유로이 쌍으로 닦을지니 천진(天眞)하여서 작위[作]가 없으며 움직이고 고요하매 항상 선정에 있는지라 자연의 진리를 성취했거늘 어찌 수상문의 물리쳐 다스리는 법을 쓸 필요가 있으리요. 병이 없으면 약을 구하지 말지니라.
비록 먼저 깨달았으나 번뇌가 짙고 습기가 굳고 무거워서 경계를 대하면 생각마다 망정을 내고 인연을 만나면 마음마다 상대를 이루어서 혼침과 산란에 끄달려서 고요한 알음[寂知]의 항상 빛남을 어둡히는 이는 수상문의 선정과 지혜를 의지해서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를 잊지 말고 혼침과 산란을 균등히 조절해서 무위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니라.
비록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에 의하여 잠시 습기를 조절하나 심성(心性)이 본래 깨끗하고 번뇌가 본래 공한 것을 미리 깨달았기 때문에 차츰 닦는 문중의 못난 근기들의 더럽혀진 수행[汚染修]에 속하지는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행이 깨닫기 이전에 있으면 비록 잊지 않고 공부하여 생각마다 익히고 닦으나 닫는 곳마다 의혹을 내어서 무애(無礙)를 이루지 못함이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한 모습이 항상 눈앞에 나타나 있다가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물리쳐 다스리는 공부가 익어지면 몸과 마음의 번뇌가 한결 거뜬한 것 같으리라.
거뜬해지기는 했으나 의혹의 뿌리가 끊이지 않음이 마치 돌로 풀을 누른 것 같아서 아직은 생사의 세계에서 자유자재하지 못하므로 옛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닦음이 깨달음의 앞에 있으면 참 닦음이 아니라」하셨느니라.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는 비록 물리쳐 다스리는 방편이 있으나 생각생각에 의혹이 없어서 더렵혀지지 않나니, 날이 오래고 달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 자연히 천진하고도 묘한 성품에 부합하여 자유로이 고요하게 알며, 생각마다 온갖 경계를 반연하되 마음마다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어서 제성품을 여의지 않으며 선정과 지혜를 균등히 지니어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되 전의 수승한 근기와 조금도 차별이 없나니, 수상문의 선정과 지혜가 비록 차츰 닦는 근기의 행할 바이기는 하지만 통달한 사람의 경지에서는 가위 무쇠에 환단(還丹) 한 점을 찍어 금을 이루는 격이라 하리라.
만일 이런 도리를 안다면 어찌 두 부문의 선정과 지혜에 앞뒤의 차례가 다르리라는 두 가지 소견의 의혹을 일으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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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6    수부사명(水府司命)  안원전   2017/07/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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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    증산도 제1 부흥의 역사로 기록된 600만명의 보천교시대(이종물사명)  안원전   2017/06/08  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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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2    [정역으로 보는 인사] 간태궁(艮兌宮)과 인신상화(寅申相火) / 칠현금  안원전   2017/08/06  997
1271    보천교 윤고문(보천교총정원)의 상해 임정 독립운동자금  안원전   2017/08/21  976
1270    도통맥을 직접전한 선매숭자 ~  안원전   2017/07/02  1273
1269    오작도烏鵲圖23<벽력표에 대한 소고>  안원전   2016/01/22  1514
1268    종통宗統. 가장 큰 천하사 ~도안 세살림  안원전   2017/08/13  970
1267    후천으로 이끄는 세살림~ 문왕과 이윤의 사명~  안원전   2017/07/09  1320
1266    미륵존불로 강림하신 증산 상제님  안원전   2016/04/28  1535
1265    판밖성도의 천지도수 - 도통판과 남조선배도수  안원전   2017/07/06  1665
1264    21세기 미래문명 만능 광물자원 희토류 정보  안원전   2017/07/31  2029
1263    선정원경은 상제님 태모 고수부님 결연(結緣)시기를 계묘년(癸卯:1903)으로 기록  안원전   2017/07/21  1064
1262    징비록과 꽉 막힌 증산도(서나파)의 도정  안원전   2017/07/27  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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