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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보천교의 독립운동)함석태와 강우규, 그리고 대동단-신채호 부인 박자혜는 보천교 '부인 선포사'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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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태와 강우규, 그리고 대동단
Korean Academy of the History of Density



지난 호에 이어 ▶
7) 이종욱과 조계종1) 중ㆍ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일제는 우리 불교를 전쟁의 총알받이와 재산을 강탈할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대표기관 설립을 주문하였다. 그러나 반응이 없자, 당시 이토오 히로부미를 기념하는 사찰인 박문사의


 일본 스님이“ 한국불교를 장악하고 통제하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이종욱, 김상호, 만공, 오성월 스님이 본사


주지회의를 열고 총본산과 종단을 만들자고 추진해 각황사를 보수해 현재 조계사2)로 이전하고 1941년 4월 23일 임제


 스님의 선 정신을 담은 조선불교 조계종을 출범시켰다. 종정과 종무총장(지금의 총무원장), 종회를 만드는 등 자생적인 종단을 출범 시켰다.























대흥사 조실 천운스님이 2005년 4월15일 인터뷰기사는 이종욱의 친일논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김구가


 귀국하여 공항에 도착했을 때 당시 불교혁신동맹 청년당원이었던 강석주, 김어수 등이 김구를 마중하러 갔다.


 이들은 이종욱이 친일파라 하여 종무총장 자리에서 끌어내린 주역들이었다. 김구가 마중나온 불교계 인사와


악수하다가 이종욱이 보이지 않는 까닭을 물었고, 친일파라 하여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했다는 대답을 듣더니


진노하였다.“ 이종욱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전해준 불교계 대표적 인사”라고 김구가 설명하자, 김어수


등은 이종욱을 찾아 참회하였다. 용성, 만공, 한암, 구하, 성월, 대은 스님이 이종욱을 좋아하였다. 이들이


이종욱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준 스님들이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요령을 좌우로 흔들며 옴마니반메훔을


외면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았다는 뜻으로 서로 교감하였다. 범어사의 이동인과 백담사의 탁몽성은 갑신정변


혁신파에 속하는 스님이었는데, 탁몽성은 화계사에서 김옥균을 만나 참가하게 되었다.




탁몽성의 제자가 불영사의 이설운이며, 이설운의 제자가 이종욱이다.3)경허의 제자는 범어사의 성월, 부산


선암사의 혜월, 수덕사의 만공, 만주의 수월, 월정사 한암, 해인사의 제산 등이다. 만공은 한용운을“


내 애인”이라며 아꼈으며, 김좌진과는 팔씨름을 하며 허물없이 지냈다고 한다. 8) 백초월스님4) 5)과 진관사


 태극기 2009년 5월 진관사 칠성각을 수리하기 위해 벽체를 뜯던 중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일명‘ 진관사태극기’,


‘ 자유신종보’, 신채호가 발간한 항일 지하신문‘ 신대한’ 1호, 2호, 3호6)가 발견되었다. 백초월은 감시하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죽은 거북이를 방안에 비치하여 두고, 요시찰인들이 내방하여 묻는 말은 대답하지 않고, 죽은


거북이와 자문자답하여 정신이상자로 오인하게 하여 문답을 교묘히 피하였다.




백초월은 1918년 화엄경에서의 일심에 착안하여 이것을 독립운동에 활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백초월은 3·1운동


 직후 불교계 중앙 차원의 독립운동을 추동하면서 비밀결사체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일심교를 창설하고


 마포에 있는 진관사 포교소에 사무소를 개설하였으며, 강령을 제정하였다. 백초월의 항일투쟁은 임시정부와의


 긴밀한 연계아래 국내 불교도 독립운동본부를 운영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며, 상하이 임정 및 만주 독립군에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다양한 국내의 비밀결사체와의 연계하여 태극기를 이용한 시위와, 의용승군을 기획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하였으며, 승려 독립선언서의 배포와 상하이에서 유입된 독립운동 신문의 배포, 그리고,


용산역에서의 대한독립만세 낙서 사건 등 실로 다양하였다.













일심교는 일심만능, 군교통일, 세계평화 등의 3대 강령을 정하고 진관사 포교소에서 예득성, 박수남, 박수희,


유창섭, 조정원, 박동진 등을 동지로 포섭하고 김동초, 김성에게 자금출자를 부탁하여 목적 달성을 위해 활약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1939년 10월 만주로가는 군용열차에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낙서 사건을 주도한 것이 일제에


발각되어 일심교의 전모가 드러났다.7)



일심교에 관련된 80여명이 체포되고, 3명은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백초월도 체포되어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


1944년 순국하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인물에는 낙서 주범인 박수남, 진관사 포교당 주지인 김형기와


여학생도 있다. 그리고, 의친왕이 망명 직전 거처하였던 구기동 최성호의 집이 진관사에서 사모바위 넘어서


3시간 걸리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것은 백초월이 의친왕 망명 작전에 가담하였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8)진관사에서 비봉까지의 등산로는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코스로 바윗길로 되어 있으며, 2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비봉에서 북한산 구기동 매표소까지는 1시간이면 내려갈 수 있다. 중간에 승가사가 있으며, 승가사도


독립운동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세검정의 소림사도 연락처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진관사에서는


요즈음도 국행수륙대재를 지내는데, 국행수륙대재는 조선시대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평안을 기원했던 불교식


천도의례였다. 진관사는 왕실의 사찰이었는데, 의친왕 망명미수사건에 직접 관여하였다. 1907년 의친왕이


북한산성에서 의병봉기를 독려하는 연설을 했다고 하는데 진관사도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우이동의 봉황각도 위치는 다르지만 북한산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2015년 1월27일 이문창9)은


해방직후에 아나키스트들의 집회로 진관사를 방문하기도 했다고 증언하였다. 8) 보천교주 차경석10)11)보천교는


1909년 차경석에 의해 창시되었다. 차경석은 동학농민군 지도자 차치구의 장남으로 강증산의 제자이다.


보천교는 종교적 근원을 증산교에 두고 있다.




보천교 교도들은 사고를 지키는 관리들의 후손이었다. 보천교12)는 상하이 임시정부 등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1922년 모스크바(Moskva) 극동민족대회에 김규식, 여운형, 김철수, 김상덕, 나용균, 정광호,


 장덕진 등을 파견하기로 할 때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최팔용, 장덕수가 차경석을 방문하여 1만 엔을 받아


 김철수를 통하여 지급하였다. 또한 보천교 사장 임규가 5만 엔을 영국 유학중인 나용균을 통해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 강일은 태을교 대표로, 배치문은 보천교 청년대표로 참석하였으며, 그 후,


 강일과 배치문은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입단한 뒤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4년 11월 보천교가 김좌진에게 2만 엔을 지원했는데 이 때 최진동이 장쭤린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좌진은 닝안현으로 피신하였다. 13)김좌진은 보천교 교주 차경석을 북만주로 이주하도록 하여


 그의 자금력과 만주로 이주하는 보천교도들을 독립군으로 양성할 계획이었으나 차경석을 만주로 이주시키지는


 못했다. 14)신채호의 두 번째 부인인 박자혜15)는 보천교 부인선포사라는 직책으로 활동하였다고 정의부사간


 판결문에 기록되어 있다. 1925년 조만식은 보천교도들과 함께 정의부 군자금 모집사건으로 검거돼 재판을


받았다.




경성법원의 재판기록부에 따르면 그해 조만식은 만주에서 돌아와 정읍으로 가 차경석을 만나 군자금의 일부를


 받았다. 이후 권총 두 자루와 실탄을 반입해서 군자금을 모으려다 체포된 사건이다. 당시 정의부 조만식16)은


권총을 휴대하고 보천교 한규숙, 김정곤과 함께 활동하였다.



차경석도 수배령이 내렸지만 소재 불명으로 기소가 중지되었다.17) 그래서 일제는 보천교 자금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보천교는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잡지‘보광’을 발행하고,‘ 시대일보’를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그리고 보천교는 자급자족 운동으로 기산조합을 설립하였으며, 직물공장과 염색공장을


운영하였다.



대중문화운동으로‘ 보천교 농악단’을 조직하였다. 조만식, 여운형, 장덕수, 송진우, 설태희, 안재홍 등


독립운동가들은 비밀리에 보천교를 내왕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제공받았으며, 일부는 직접 입교하여 신도가


되기도 하였다. SB
다음 호에 계속 ▶






1. 박희승: 조계종의 산파 지암 이종욱, (주)조계종 출판사, 2011.
2. 보천교의 십일전을 해체하여 서울로 옮겨와서 태고사를 지었는데 지금의 조계사이다.
태고사를 지을 때 실무를 맡아서 처리한 사람이 이종욱(李鍾郁)이다.
3. 박희승: 조계종의 산파 지암 이종욱, (주)조계종 출판사, 2011. 26쪽
4. 네이버 지식백과, 백초월, 네이버캐스트/한국사>일제강점기역사
5. 김광식: 백초월(독립운동가 초월스님의 불꽃같은 삶), 민족사, 2014.
6. 신대한1호, 17호, 18호만 있었는데 이때 1호, 2호, 3호가 발견되었다.
7. 국내항일운동자료, 경성지방법원 검사국문서, 사상에 관한 정보 12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일심교 검거에 관한 건, 京高特秘 제1128호, 1940년 05월04일.
8.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5 5권 대동단사건 Ⅰ> 경무총감부, 경찰서 조서> 董昌律 신
문조서(제1회) 韓基東이 나간 후 羅昌憲도 어디론가로 나갔는데, 그리고 나서 약 2시간 쯤
있다가 崔成鎬 집의 어머니가 문밖에서 들어오더니 일본인이 많이 왔다고 알리므로 나는
무서워져 도망치려고 그 집에서 산쪽으로 올라가 약 1丁 (1정≒109m)가량 갔을 때 붙잡혔
던 것이다.
9. 마지막 아나키스트
10. 네이버 지식백과: 차경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종교/철학>신종교
11. 차치구의 장남은 차경석이다. 차경석의 아들은 차일혁이고, 차일혁의 아들은 차길진이다. 차일혁은 1945년 11월2일 원남동 124번지 일제경찰 사이가(齊賀七郞: 송남헌을 고문한 악질형사)의 집 앞에서 사이가(齊賀七郞)를 김지강(김성수), 이규호(이규창), 공형기등과 같이 암살하였으며, 아나키스트들과 같이 활동하였다. 6·25동란기 빨치산 토벌담당 전투경찰대 제2연대장으로 활약했다. 1951년 5월 빨치산이 숨어들 만한 절과 암자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구례 화엄사 대웅전의 문짝들만 뜯어내 불태운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차길진은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대행), 사단법인 후암미래연구소장 등 직함이 여럿이다. 대중에게는 ‘법사’로 통한다. 영능력자, 예언가다.
12. 이정규: 우관문존, 국민문화연구소 출판부, 2014. 151쪽. 독립운동 사화, 양기탁은 시천교, 보천교, 유림 등 일부 인사들을 결속하여 통천교란 신흥교단을 만들고 가회동 취운정에 본부를 두었다.
13. 김춘선, 안화춘, 허영길: 최진동 장군, 흑룡강 조선 민족 출판사, 2006. 225쪽
14. 이성우: 만주 항일무장투쟁의 신화 김좌진, 역사공간, 2011. 134쪽-135쪽
15. 네이버 지식백과: 박자혜,네이버캐스트/인물>독립운동가
16. 조만식(曺晩植)과 동명이인이다.
17. 2008년 3월20일 주간경향, 한국의 창종자들, 함양 황석산에서 창교와 건국을 선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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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

1936년 차경석이 사망하자 보천교는 강제로 해산되었다. 보천교의 십일전을 강제로 철거하려 하였다. 이종욱은 십일전을 서울로 옮겨와서 태고사(지금의 조계사)를 지을 때 실무자였다. 보천교 정문은 내장사 대웅전이 되었는데 2012년 10월 31일 오전 2시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용오정사(龍塢精舍)는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에 있는데 용오는 정관원의 호로 정관원의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당대에 유명한 유익서 대목장이 지은 건축물이다. 정관원과 기삼연의 영정이 있다.

유익서 대목장은 차천자궁을 지었는데 그 솜씨를 아까와 한사람들이 차천자궁을 헐어버리는 대신 뜯어서 옮겼다. 정관원은 의병을 모집하여 항일투쟁에 앞장섰다가 고종황제가 승하한 뒤에 통곡하며 지내다가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홍의재 앞에 있는 강당인 경의당에는 의친왕의 친필인 ‘金聲玉振’의 친필행서가 있다. ‘金聲玉振’은 八音을 연주할 때 먼저 종을 치고 마지막에 경을 친다는 뜻으로 시종일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지덕을 겸비하라는 내용이다.

보천교의 2인자 김홍규의 자제 김탄허는 1936년 경 오대산 한암 스님 문하에 출가하여 지암 이종욱스님과 인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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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한국어)

본고는 차경석과 보천교 교단의 민족주의적 성격을 일제 식민권력의 기록물들을 중심으로 고찰하여 보았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국운이 기울어버린 상황에서 종교 더욱이 민족종교 창교주의 운명은 순탄할 수만은 없었다. 차경석은 교명도 내걸지 못한 채 창교의 초기부터 민족의식과 민족사상, 민족운동 등을 예의 주시하는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를 받았고, 뒤에는 혹심한 탄압(취체)을 피해 수년간 은피의 길에 나서기도 했다. 보천교는 3·1운동 이후 민족독립운동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교단 내부에서 고민과 간부들의 협의를 거쳐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와 연결되어 군자금을 지원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특히 북만주 지역에 김좌진 등을 중심으로 세워진 신민부에 군자금을 제공하여 별동대를 구성, 일제에 저항케 했는가 하면 남만주를 중심으로 세워진 정의 부에도 자금을 제공하여 민족사업을 영위하면서 포교는 물론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하려 구체적으로 계획, 실행에 옮기려 하던 중 검거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대교단을 형성하고 있었던 보천교 역시 식민지 상황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자각하고 민족적 사명을 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해방 이후 근년까지도 차경석과 보천교는 긍정적 이미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유사종교, 사이비종교의 대명사로 치부되어 왔고 그런 과정에서 보천교의 민족주의적 성격은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지극히 종교에 대한 제국주의적 시각이며 일제강점기 형성된 식민주의적 시각이다. 이제 늦었지만 그러한 보천교에 씌워진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 시각을 되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초록(외국어)

This study examines the nationalist character of new-religion, expecially BoCheonGyo and its founder Cha Kyung-Suek`s activities that appearing in the archives and documents of the Japan Government-General of Chosen. There are still plenty of debates and discussions about the BoCheonGyo, the typical example of the so-called new religions which had come into existence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contents of debate about the BoCheonGyo are the matter of quasi-religions, the relation with the National Independent-Movement. Discussing those matters, it is certain that the negative sentimentality against BoCheonGyo was already firmly established in that times. But despite the fact that the BoCheonGyo was recognized as being a quasi-religion, the size of the BoCheonGyo was enlarged in the 1920s after 3·1 Movement. So it becomes clear that the BoCheonGyo suffered heavy damage by the Japanese Colonial Power. It should be noted to be condemned of being a anti-social, anti-national as the Japanese Colonial Power intentionally spreaded malign propaganda to oppress the religion. But, as a result of researching, it is found that Cha Kyung-Suek is the target of police supervision in the 1910s constantly and, after the 3·1 Independence-Movement, BoCheonGyo has taken a very active part directly and indirectly in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Expecially, BoCheonGyo has been acting the best role in supporting the government-in-exile in ShangHai and independence-movement group of Manchuria Region (a General Kim Juoa-Jin and so on). These documents give a demonstration of BoCheonGyo`s positive activities that realizing the condition of colonial situation and never forgetting the calling of Korea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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