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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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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보천교 역사의 가장 큰 사건-청음 이상호, 남주 이성영(정립)의 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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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천교 역사의 가장 큰 사건-청음 이상호, 남주 이성영(정립)의 죄악







보천교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은 김 영두가 보천교 자금을 가로채려고 하여 보천교를  음해 타격한 사건이고 그리고 이 상호, 이 성영(정립) 형제 시대일보 횡령사건 및 차 경석 교주 배척 및 보천교 혁신운동 보천교 재산 횡령 및 만주 도주사건, 그 뒤를 이어 이 달호 배반 사건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상호는 1916년 최고위 간부 24방주(뒤에 60방주로 확대)를 임명할 때 24방주와 같은 위치에 있었고 보천교 초기부터 중요한 최고 간부에 있었는데 1921년 출판물허가를 재가하자 서울 창신동에 진정원을 만들어 그 책임자(진정원장)가 이상호가 됩니다. 1923년 보광사 인쇄소를 만들고 경영난에 처한 시대일보(사장 최 남선)를 사야 된다 하여 교금 14만 2천 원에 인수하게 되는데 동생 이정립을 편집국장으로 조선총독부에 사전에 등록하는 등 사적으로 전횡 권력암투 하다가 실패하자 더 큰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최남선을 만나서 앞으로 석 달 동안 경영비 3만원과 판권대금 일만 이천 원을 교단에서 부담할 것과 석 달 동안에 교단에서 10만원을 조달하고 남선이 10만원을 조달하여 주식회사를 조직하여 시대일보를 경영할 것을 계약하고 우선 한 달 경영비 만원과 판권대금 일만 이천 원을 남선에게 지불하고 이성영 명의로 판권명의 변경서류를 받은 뒤에 본소로 돌아와서 방주들을 동원하여 자금조달 운동을 일으켰다.


 


더 큰 계획은 바로 서울의 또 경성(京城) 가회동(嘉會洞)과 창신동(昌信洞) 진정원(眞正院) 가옥 및 대지(垈地)를 저의 단독명의로 증명권(證明權)을 총독부에 제출 등록(屆出)하야 소유를 만들었으며 모두 자기 재산으로 만들어 놓고 결국 횡령한 교금을 가지고 중국으로 도망가고 이 성영(정립)도 보광사 인쇄기 판돈을 사취하여 중국으로 도망갑니다.


 


*이 상호(李祥昊)는 당국자의 지도 후원 아래에 상등(上等) 양복(洋服)을 착용(着用)하고 금은보석(金銀寶石)의 장신품(裝身品)을 갖추며(俱) 그 첩(妾)인 여학생도 극(極)히 사치적(奢侈的)으로 장식하야 동반(同伴)으로 만주에 들어가 이름(名字)을 바꾸어(改) 전라남도 이(李) 모(某)라 가칭하고 백만장자로서 만주 토지를 매수하려 왔다고 선전하였다. 그런대 금전이라 하면 친자식 사이(親子)도 모른 체 하는 만주 각 사회단체 등은 이 상호(李祥昊)의 내력을 철저히 탐사한 후에 그 사람(彼)은 보천교의 금전을 절취하야 왔으니 그 재물을 우리들이 나누어 먹음(分食)이 가하다 하야 주야로 협박 공갈하여 일방으로난 지나 관헌에게 불량분자로 고발하야 이 상호를 포박(捕縛) 수금(囚禁)하였다.


 


자신들도 온갖 금은보화로 장식한 이 상호 이 성영(정립) 형제는 첩인 여고생도 호화 장식품으로 장식하고 만주에 들어가 전라남도 이(李) 모(某)라 가칭하고 백만장자로서 만주 토지를 매수하려 왔다고 선전하다가 결국은 만주에서 현지인에게 사기당하여 체포되어 구금된 상태에서 경성에 있는 동생 이 순탁의 조선총독부 로비로 알거지 상태로 입국해 뒤늦게 차 교주에게 선을 대고 용서를 빌어 위기를 모면하는데 반성은 하지 않고 차 교주에게 요구하기를


 


*만주에서 교도 50 호를 이민시키면 외무성으로부터 금 10만원을 당겨쓰겠다 하야 교도 이주시키기를 청구하는대 그 내용을 들은 즉 당국자와 결탁하고 만주개척하기 위하야 보천교도를 이민시킨다 하면 외무성으로부터 만몽(滿蒙) 개척비로 금 10만원의 보조를 받아 그 안에 얼마는 당국자에게 보수(報酬)하고 잔액은 교중(敎中)에 사용하겠다고 사기침.


 


*용서를 얻어 기소문제를 해결한 후 일신의 자유를 얻어 포교할 의사는 없고 중요 간부에 임명치 아니 한다는 감정뿐으로 경기도 경찰부 모(某)의 촉탁(부탁)으로 만주개척을 빙자하고 보천교 금전을 사기해 속이기(欺瞞)로 목적하다가 계획이 불성립함으로 인하야 탈퇴하고 예전(前日) 혁신운동 하던 때에 저당 잡힌 진정원도 환추해 되찾지 아니하고 우(右) 금액을 결국 사기횡령함.


 


뒤에 김 형렬 교단(미륵불교)에 들어가 많은 자료를 취득한 후 편찬할 경전이 마치 미륵불교의 경전으로 쓸 것 처럼 거짓말 하여 자료를 취합한 후 결국은 김 형렬 수석성도를 배반하고 일제 조선 총독부 고등밀정 촉탁(종교 문화계 고등밀정은 조선무속 연구 전문가 무라야마 지준과 조선 사회 문화계 전문기자인 김환이 보천교를 도맡다시피 하다 김환은 이상호 형제와 일체화되어 보천교 해체의 기획으로 동화교를 창교함) 이었던 김 환과 공모하여 박 공우 성도를 이용하여 자기에게 정통이 이어졌다는 식으로 동화교를 만들어 선포하는 종교인이 아닌 정치적으로 행보를 이어갑니다.(<보천교 연혁사> 참조)


 


그리고  잘 모시지도 못하면서 태모님까지 등에 업기 위해 엄청난 공로를 들인 끝에 31년 말 태모님 동지치성이후 용화동에 모시는데(32년) 성공하지만 결국 태모님을 신도들로부터 완전히  격리시켜 교권을 전횡하는 정치행보를 하여 태모님은 천지공사를 계속 볼 수 없어 결국 33년 하는 수 없이 다시 오성산으로 가서 보시게 되는데 결국 해방 후에 2변을 일으킨 젊은 지도자시며 총 사수였던 안운산 성도사님도 이러한 이상호 이정립의 심법 속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상호 죄악1)


김형렬 성도의 미륵불교의 대표자격을 빌려 이상호의 발안으로 각파 간에 서로 친목할 것과 교단운동에 서로 협조하며 환란에 서로 구조할 것과 경전편찬에 서로 협력한다는 미명하에 친자종도 박 공우, 안 내성, 이 치복, 김 경학, 미륵불교 대표 이 상호, 무극대도교 대표 조 용모(조철제 부친), 조종리 교단대표 고 찬홍과 채 경대 등이 원평에 모여서 팔파연합회를 조직하기로 유도.


 


*(이상호 죄악2)


교중(敎中)에서는 상호(祥昊) 등의 야심을 탐지하고 중벌(重罰)의 과(科)에 붙였다. 상호(祥昊)는 본시 사회에서 내쫓긴 자(社會出脚者)로 교(敎)를 위하는 공공심(公共心)은 없고 자기를 살찌우려는 마음(肥己心)이 많은 사람이라. 경성 양해시(諒解時)에도 교주에 대한 체포령(逮捕令)과 각 방주(方主)의 체포장(逮捕狀)은 취소하도록 주선한 것이 없고 자신만 활동하기 편의(便宜)하도록 주선하였으며, 김 홍규 등 체포 수금(囚擒) 사건에도 하등의 주선력이 없이 한도 밖에 방치하였고, 교중 공금 4 만여 원 압수 사건에도 하등의 주선력이 없다가 필경 국고로 편입이 되었고, 또 경성(京城) 가회동(嘉會洞)과 창신동(昌信洞) 진정원(眞正院) 가옥 및 대지(垈地)를 저의 단독명의로 증명권(證明權)을 총독부에 제출 등록(屆出)하야 소유를 만들었으며, 또 망령되게 교주 법통 계승(繼統)을 몽상하다.


 


(이상호 죄악3)*전후소행이 모두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다가 이 기회(此際)를 틈타 경쟁(逐)해 반역자로 화하야 보천교 혁신인이라 자칭하고 교주를 성토하며 방주(方主)를 능욕하고 사회단체와 악수하야 교주 성토문과 및 혁신 이유의 선언서를 인쇄하야 전 조선(全鮮) 교도에게 발송 선포하야 인심을 난동(亂動)하고 사람으로 감히 행하지 못하는 바를 감행함으로 교중에서는 이 상호(李祥昊) 토죄문(討罪文)을 전 조선(全鮮) 교도에게 발부하고 간부 수인이 상경하야 이 상호를 정중히 질책한 즉 저들(彼等)은 유도 숙련인과 역사(力士)를 모집하였다가 간부 등을 난타하야 사경(死境)에 이르므로 인근 파출소에 급히 고발하니 경관이 웃어 가로대 종교가(宗敎家)에 투쟁함은 고래(古來)로부터 그러한 일이 많이 있다 하고 냉정히 물리쳤다.


 


(이상호 죄악4)


*진정원(眞正院)의 건물 대지(垈地) 및 비품 등 수 만원의 재산은 보천교(普天敎)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무관계한 혁신파가 점거함으로 이를 돌려받기(取戾) 위하여 경성 지방법원 검사국에 형사고소를 제기하였더니 검사국에서는 죄상을 취조(取調)도 아니하고 마침내 기소중지의 처분을 하였다. 그 후에 이 상호(李祥昊)는 교중에서 횡령한 금전을 다 소비하고 지나(支那)지방으로 망명하다. 동시에 이 성영(李成英)은 보광사(普光社) 인쇄기 및 활자를 매각하야 지나(支那)로 동행해 가다.


 


(이상호 죄악5)수방주(水方主) 문 정삼(文正三)이 의의(意義)가 없이 배교하야 임 치삼(林致三), 임 경호(林敬鎬), 이 달호(李達濠) 등과 단결하여 경성부 가회동 보천교 진정원(眞正院)에 증산교 간판을 걸고 이 상호(李祥昊)와 공모하야 진정원 대지 및 가옥을 매각 소비하다.


 


<진리적으로 가장 큰 죄악:태모님을 차경석으로 건너가는 수단으로만  삼아 태모님 배척운동 벌이고 마지막엔 차 교주를 쳐내는 혁신운동 벌임>


(이상호의 죄악 6)(이상호의 태모님 배척운동)이에 채 규일(蔡奎一), 이 상호(李祥昊),문 정삼(文正三) 세 사람이 협력하여 신도들을 수습하여 교세를 만회하려 할 새 포교방법을 근본적으로 고치고 종래로 고부인(高夫人)에게 집중되었던 신도들의 신뢰감정을 경석에게로 옮기기에 힘을 들였다. 종래로 광명수련에 의존한 포교방법은 매양 경석에게 대한 비난공격의 기세를 올리는 결과를 일으키게 되므로 이것을 허령(虛靈)이라 하여 배척하고 규일(奎一)이 고안한 서전(書典)의 홍범도해와 김 일부의 정역팔괘와 정감비결과 풍수설 등을 교묘하게 연결부연한 설교로써 포교의 새 방법을 정하였다.


 


수부(首婦)를 택정한 것은 천사(天師)께서 천지운로를 뜯어고치고 도수를 짜심에 그 세간적(世間的)으로 나타날 큰 운명을 경석(京石)에게 붙여주시는데 중계다리의 의미에 지나지 못한 것인즉 원래 고부인(高夫人)의 신통력으로 포교활동이 벌어졌으나 이미 교단의 기초가 확립된 이제에 와서는 벌써 고부인(高夫人)의 사명은 다하였고 경석이 정면에 나서서 천사(天師)의 도통(道統)을 이어 세계경략의 대사명을 실천할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고부인(高夫人)이 교단에서 이탈한 것은 천사(天師)께서 규정하여놓은 도수이니 이제 와서 고부인(高夫人)을 신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오. 경석을 신뢰하고 따라서 대업을 함께 이루는 것이 천사(天師)를 믿는 참뜻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천사(天師)께서 기유년(道紀 39, 1909) 정월 초이튿날 본소 문밖 버드나무 아래서 경석에게 『곤이내(閫以內)는 짐이 제지하고 곤이외(閫以外)는 장군이 제지하라』고 말씀하신 일은 곧 경석에게 대도의 종통(宗統)을 전하여 주신 공사이며 『천고춘추아방궁 만방일월동작대』라고 써 붙이신 것은 진시황이 여(呂),영(嬴) 두 성(姓)을 가졌고 조조가 하후(夏候), 조(曺) 두 성(姓)을 가졌던 옛일을 끌어대여 경석의 실성(實姓)이 정(鄭)씨임을 암시하신 의미라고 선전하였다. 이 선전과 포교방법은 큰 효과를 내어 흩어진 신도의 대다수를 수습하고 경석에게 신뢰감정을 옮김과 동시에 교단의 재건에 성공하게 되었었다.


 


(이상호의 죄악 7) 진리를 전해준 월곡 차경석 성도와 태운 김형렬 성도를 배신하고 법신불의 본신으로 미륵불로 당래하강하신 절대 조화주 건존 증산 상제님을 도교의 3번째 칭호인 천사로 호칭하고 유고록 증산교사에서 절대자 하느님 옥황상제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차경석 성도가 증산상제님의 신격을 무라야마 지준과의 대담에서 밝힌 바 대로 옥황상제라 밝혔지만 이를 부인하고 대순전경으로 자료취합해 천사로 호칭하여 스스로도 이 입장을 죽을때까지 견지해 결과적으로 상제님 신격과 위격의 정체성을 왜곡하여 많은 대중신도들을 오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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