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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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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and.us/#!/band/61758246


< 보천교 연혁사 ( 普天敎 沿革史 )> 2.

다음 문서는 일제하 600만 보천교 정사인 보천교 연혁사로 범증산계 통합경전에 실린 본문 내용으로 이 곳에 처음 밝힙니다. 일제하 조선총독부에서 조선통치 백서 3부를 간행했는데 당시 2000만 인구에 비밀교단 보천교 6백 만이라 보고하고 있으며 이 기록은 미 국방성 비밀 보고서(밀러보고서)와 일치합니다. 당시 불교와 함께 친일정책의 창씨개명을 공식화 한 기독교는 불과 20만이던 시절입니다. 당시 불교, 기독교는 창씨개명을 공식화하는 친일노선을 공개화 했던 때여서 기독교의 조만식 목사마저 보천교 신도로 독립운동 군자금 전달미수사건으로 동아일보 1925년 11월 25일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보천교는 상해 김구주석의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고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에 군자금을 전달해 무기를 준비한 김좌진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보다 규모가 컸던 보천교 <십일전>은 압록강의 침엽수 통나무를 뗏목으로 군산항으로 가져와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국내 6백만 민족종교로 독립운동 자금 창구를 인지한 일제는 보천교 신법까지 제정해 강제해체해 경매에 부쳐 십일전 건물은 모두 뜯어져 당시 친일노선을 걸으며 조선총독부에 이쁘게 보이던 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인 종로 1가의 조계사 대웅전으로 변신합니다. 지금도 조계종에서는 조계종의 총본산인 종로 조계사 대웅전이 일제시대 보천교의 십일전을 뜯어 만든 것으로 밝히고있습니다.




天長地久 申命無窮 安原田 譯




조만식 보천교 독립운동 자금 전달 미수 체포사건 동아일보 기사

차경석 교주의 차남 차용남의 1991년 1월 21일 기자 인터뷰/ “김철수(제3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씨도 부친께 3만원, 2만원 두차례 받았고... 조만식, 송진우, 안재홍 등도 비밀리에 보천교 본소에 다녔으며... 송진우, 장덕수가 군자금을 비밀리에 받았고... 송진우는 당시 보천교 외교담장 차석으로 간부였다. 송진우는 당시 권총단(독립자금) 사건으로 옥고 치른 후 상해임정으로 돌아갔다.”‘물산장려운동’의 배후는 보천교였다. 국내 종교단체 중 은밀하게 독립운동자금을 대던 가장 막강한 비밀조직이었는데, 조 만식에 의해 시작된 『물산장려운동』의 기관지 <산업계>는 『보천교』의 기관지 <보광>을 인쇄하는 「보광사」인쇄부에서 인쇄되었다. 『보천교』 충남 진정원 간부 임경호와 보천교 경성 진정원 간부 고용환(高龍煥) 그리고 3.1 운동과 상해임정에 참여한 바 있는 경성 진정원 부장 주익(朱翼)이 물산장려회 이사로 참여한 사실과 <산업계>의 실제 사무 담당자가 바로 임 경호, 고 용환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보천교의 역할이 『물산장려운동』의 단순한 배후가 아니라 이를 모든 면에서 실질적으로 주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고당 조만식, 여운형, 설산 장덕수, 고하 송진우, 조병욱, 설태희, 안 재홍 등 적지 않은 독립운동가 및 사회운동가들이 비밀리에 보천교(普天敎)를 내왕하며 독립운동자금과 사회운동 자금을 제공받았으며 그 중 일부는 직접 입교하여 신도가 되기도 했다. 안 후상은 1918년 10월에 제주 중문 법정사에서 벌어진 항일봉기를 한일합방 이후 최초의 조직적 독립운동이라 말하고 3.1운동에 버금가는 독립운동이라 말한다. -단일 기미독립만세운동(1919) 직전인 1918년 10월에 지금의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에서 '항일 무장봉기'가 발생하였다. 한라산 중턱의 법정사(法井寺)라는 곳에 근거지를 둔 봉기대 약 500여 명은 중문리로 내려가 주재소를 불태우고 일 관헌들을 납치하였다. 불교계 승려와 보천교 24방주 조직이 깊이 관여한 이 사건은 경술국치 이후 처음 있는 조직적인 반일 항쟁이었다. 이에 당황한 일제는 도내(島內)에 대규모 군대를 상륙시켜 일대 소탕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때, 조직원 수백 명이 체포, 수감되면서 보천교의 24방주 조직이 세상에 드러났던 것이다. 차 경석 역시 이때부터 수배의 긴 장정에 오르게 되었으며 교인 수천 명이 검거, 구속되었다. 검거된 이들의 형량만으로 따진다면 단일 사건으로는 기미독립만세운동에 버금가는 대규모 봉기였다. 구속된 간부 수십 명이 고문으로 죽었으며 수 십 명이 긴 수감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1년 대규모 검거 선풍: 제주도 봉기의 실체가 채 파악되기도 전인 1919년 3월, 동학계열의 주도로 '기미독립만세운동'이 발발하였다.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일제의 다음 수순은 보천교 조직의 해체였다. 당시 관련 자료가 이를 잘 말해준다. 드디어, 1921년 보천교에 대한 대규모 검거 선풍이 일어 수 천,수만 명의 교인이 구금, 구타당하는 일대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때 각 일간지에서는 '당국에서는 기미독립만세운동의 재발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보도하였다. 충남의 한 간부 김홍규의 집 마루 밑에서 지폐와 은화를 합쳐 약 10만 7천여 원을 넣은 항아리가 발각되었다.(1905년 경부선 건설비용 20만원, 운암댐 기초석에 1925년 운암댐 건설비가 205만원)일경은 압수와 함께 곧 조사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최도홍, 육원익, 고편상 등 교 간부 수십 명이 구속되었으며, 구속된 이들 모두는 반란죄로 처벌되었다. 그리고 그 돈 항아리와 관련해 일경은 이렇게 밝혔다. 상해 임시정부와 연계된 돈으로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교도들로부터 모금한 자금이라고. 이외, 강원도 간부 이 주범도 같은 죄목으로 체포, 구금되었다. 특히, 강원도 양양의 간부 김 홍석은 독립단을 조직하여 봉기를 꾀하려다가 발각되어 체포, 구금되기도 하였다. 경북 지방에서도 수 천 명의 교인들이 검거되기도 하였다. 1922년 전남 고흥 교도 피살사건: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교인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와 고문 또는 구타로 이어졌다. 따라서 조직의 활동은 위축되었지만 비밀 집회를 통하여 조직운동(국권회복을 위한 제 활동)을 더욱 공공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바야흐로 시세를 보건대 정자(靜者)는 누구이고 동자(動者)는 누구인가. 이르노니 대중의 계획하는 바는 다만  백성의 일을 낱낱이 들춰내는 것뿐이라. 일에는 선후가 있고 각기 그때가 있으며 때가 시동함에 시운이 아님이 없음을 어찌 감히 부정하리오. 그러나 뭇 별들의 광채가 비록 밝다 해도 달 하나의 밝음만 못한 것이며, 뭇 물고기들의 용기가 비록 높다 해도 일룡(一龍)의 기운만 못한 것이고, 뭇 새들의 울음소리가 비록 좋다 해도 일봉(一鳳)의 울음소리만 못한 것이니, 그러므로 도(道)를 품고 있는 깊은 곳은 마치 봄 연못(春沼)의 잠룡과 같아서, 기회를 얻고 때를 만나 움직인 즉,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는 권세로 세속의 먼지구덩이를 청소하고 더불어 봉황이 울고 용이 움직이는 기운으로 일월의 밝음을 새롭게 드러내 그 끝(其極)을 반드시 달성할 것이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잠시 쉬어 객쩍은데 의지해 한두 마디 짧은 말과 글(片言隻字)로 간략히 기록해 몇몇 행간으로 제군들에게 경고하노니 조금도 망동치 말라. 심화기화(心和氣和)로 춘화(春和)를 기다리며 기미(道紀49, 1919) 기사(己巳) 기망(旣望) 서(書)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교주께서 태백산 중에 들어 가사 김 처사를 만나 잠시 몇 마디 한 후 작별이러니 수개월 후에 다시 방문한 즉 김 처사가 이미 죽은지라 만사(輓詞) 일절을 지으시니 그 시에 가로대 둔세김처사(遯世金處士) 조수우채산채조(釣水又採山採釣) 유위혐몽성백운간(猶爲嫌夢成白雲間)이라 하시다. 동년 7월에 교주께서 강원도 울진군 서면(西面) 전천동(前川洞)에 계실새 송 대선(宋大善)으로 하여금 채 규일(蔡奎壹) 김 홍규(金烘圭)를 2인을 부르사 가로대 전일(前日) 24방(方)을 다시 60방(方)으로 정하리니 2 군(君)은 성적(成績)이 있는 사람을 고려선정하야 천거 보고하라 하시니 2인이 명을 받아 물러나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동년 9월에 교주께서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에 계실새 채 규일 김 홍규 2인을 부르사 60방주 선정시 고천제(告天祭) 거행할 장소를 하문(下問)하시니 김 홍규 대해 가로대 경남 함양군 대황산(大篁山) 아래에 한 촌락이 있으니 촌명은 덕암리(德庵里)오, 촌인 중 두령자난 서 만식(徐萬植) 서 만영(徐萬永) 2인 이온대 2인이 모두 우리 교에 열심히 종사하온즉 소관사에 반드시 구속 장애됨이 없는지라 행사를 치룰 땅을 알아봄이 이보다 나은 곳이 없을듯 합니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교주 가로대 그런즉, 덕암리(德庵里)에 정소를 정하고 일자난 10월 초로 예정하노니 군 등은 먼저 출발하야 각처 교인 중 가위 강령자(綱領者:책임자) 60인을 선택하야 상기(右) 기일내로 덕암리에 도착케 하라. 나 역시 기일 전에 당도할 터이니 공심(公心)으로 사람을 보고 훗날에 있어 원망이 없게 하라. 두 사람이 명을 받들고 각처에 주행하야 인원을 선택하다. 동월 그믐날 정축에 교주께서 함양군 병곡면 덕암리 서 만식(徐萬植) 가(家)에 임하사 일자를 정하시고 덕암리 뒤 대황산 기슭에 단소(壇所)를 정하사 단소 축단 공사를 설비할 새 비료에 오염된 부토(腐土)는 다 제거하고 깨끗한 흙으로 3층을 매축(埋築)하야 백목(무명)으로 연폭해 장막을 치고 제수(祭需)를 정결히 하며 폐백을 풍성히 준비하야 정성을 다해 고천(告天)할 새 60인을 3회로 나누어 고명(告名)하시니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제 1회는 10월 초 5일 임오에 참배인은 교중(敎中) 강령자(綱領者) 12인을 택하고 수(水) 문 정삼(文正三), 화(火) 채 규일(蔡奎壹), 금(金) 채 선묵(蔡善黙), 목(木) 김 홍규(金洪圭), 동(東) 유  종상(柳鍾相), 서(西) 이 상호(李祥昊), 남(南) 박 종하(朴鍾河), 북(北) 김 영두(金英斗), 춘(春) 채 규철(蔡奎喆), 하(夏) 안 동일(安東一), 추(秋) 김 정곤(金正坤), 동(東) 이 교현(李敎玹)이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제 2회난 10월 초 7일 갑신에 참배인은 24지방을 응하야 24인을 택하니 간(艮) 김 천종(金千鍾), 인(寅) 송 영대(宋永大), 갑(甲) 전 해우(全海宇), 묘(卯) 김 영두(金永斗), 을(乙) 이 용하(李容河), 진(辰) 신 기섭(申基燮), 손(巽) 임 치삼(林致三), 사(巳) 이 영조(李英兆), 병(丙) 곽 한성(郭漢成) 오(午) 김 혁중(金赫中), 정(丁) 이 원유(李元有), 미(未) 백 윤기(白潤基), 곤(坤) 김 병희(金昞熙), 신(申) 조 만원(趙晩元), 경(庚) 이 달호(李達濠), 유(酉) 이 기호(李基浩), 신(辛) 최 일문(崔逸文), 술(戌) 김 성두(金成斗), 건(乾) 이 교상(李敎祥), 해(亥) 이 두현(李斗鉉), 임(壬) 고 주경(高周景) 자(子) 강 수영(姜琇永), 계(癸) 서 만식(徐萬植) 축(丑) 송 명희(宋明熙)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제 3회는 10월 초 9일 병술에 참배인은 24절후를 응하야 24인을 택하니 동지 이 성영(李成英), 소한 채 경대(蔡慶大), 대한 김 동식(金東植), 입춘 채 수홍(蔡洙鴻), 우수 한 상용(韓相庸), 경칩 강 기돈(姜琦暾) 춘분 한 정호(韓錠浩), 청명 강 재달(姜在達), 곡우 장 인택(張仁澤), 입하 조 제영(曺悌永), 소만 정 진구(鄭鎭九), 망종 권 창기(權昌機), 하지 임 종태(林鍾泰), 소서 신 철휴(申哲休), 대서 이 영호(李英浩), 입추 이 병엽(李炳燁), 처서 이 중규(李重奎), 백로 권 민화(權珉和) 추분 한 규숙(韓圭淑), 한로 임 학선(林鶴善), 상강 주 시하(周時夏), 입동 강 응규(姜應奎), 소설 박 성배(朴性培), 대설 백 남구(白南具)라.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수화금목은 교정(敎正)이라 칭하고 동서남북, 춘하추동은 교령(敎領)이라 칭하고 24방은 포주(胞主)라 칭하고 24절은 운주(運主)라 칭하고, 이때에 64방주 등이 협의하고 교주(敎主)를 선생으로 숭배코저 한 대 교주께서 불허해 가로대 나의 양덕(凉德:부족한 덕)으로 스승의 자리에 위치하기 부당하니 내가 제군과 더불어 전과 같이 지내다가 차후 우리(吾輩) 중에 도덕이 숭고하야 스승의 자리에 위치할만한 사람이 있으면 그때 그 사람을 선생으로 숭배함이 가하다 하시다. 대저 이때에 모든 사람이 교주를 상종함에 다만 주인장(主人長)이라 칭호하고 언어에 이르러서도 서로 경대하야 서로 상하의 구분이 없이 지내왔음으로 교주께서 이전과 같이 지내자 함이라.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포교 12년 경신(道紀50, 1920)이라 정월 초에 각 방주(方主)가 세배를 드리러 오고 대리(代理) 6임 추천보고서를 바치다(呈上). 교주께서 대리 6임 교첩을 하사하실 새 관리의 수색과 외인의 지목으로 인하야 은거해 숨으신 처지에 교인을 불러 친히 명 내리시기 불편하심으로 대표인을 명하야 전수하실 새 김 홍규(金洪圭), 채 규일(蔡奎壹), 김 영두(金英斗), 김 해우(金海宇), 이 상호(李祥昊) 5인을 파송(派送)하시다. 동년 8월에 교주께서 방주중 대표자 김 홍규, 채 규일, 채 선묵, 문 정삼,이 상호, 김 영두, 이 용하, 유 종상, 박 종하, 김 정곤, 이 교현, 안 동일, 채 규철, 이 교상, 조 만원, 전 해우 등을 부르사 가로대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군(君) 등이 다년간 포교에 노력함으로 정신이 소모되어 흩어졌을 터이라 지금에 교도가 번창하야 방주(方主) 1인하에 만여 인이 수종하게 되었으니 금년 겨울에난 교무에 한가한 틈이 조금 있는 즉, 포교의 전적인 교무는 대리(代理)와 6임(任)에게 위탁하고 오는 10월로 위시하야 조용한 곳을 택하야 정신을 수양하라.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그러나 지금 내가 이르는 바는 방사(方士) 무리의 신통묘술이 아니오, 옛 성인이 서로 전해 내려오는 심법이라. 즉, 오직 유일극기(唯一克己)의 공(工)을 사(思)하고 방심(放心)을 구하야 그 처음(初)을 내복(乃復)할지어다. 모든 사람이 명을 받고 배퇴(拜退)하야 교무를 6임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10월로 위시하야 49일을 한하고 수양할 새 김 영두(金英斗)는 은연중(隱暎中)에 신통묘술이 있을까 자신하였다가 소망이 합당하지 않고 일한(日限)이 이미 지남으로 불신을 품어 배교심이 유(有)하였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포교 13년 신유(道紀51, 1921)라. 정월 초에 각 방주(方主)가 일제히 세배를 드리러 오거늘 교주께서 각인의 공부 소득을 물어보신 후 앞으로 닥칠(來頭) 진행방침을 말씀하사 가로대 현금(現今) 교도가 전 조선에 두루 가득(彌滿)하야 수백만에 달하나 기관(機關)이 미비하였으니 지금으로부터 각처에 기관을 설립할 터이니 각도에 정리(正理) 1인 부정리(不正理) 1 인과 각 군(郡)에 포장(布長) 1인 부포장(副布長) 1인을 신언서판(身言書判) 위주로 선택하야 금년 가을겨울(秋冬) 전으로 보고하라 하시고 우선(爲先) 방주 중 11인을 택하야 임시 정리(正理)를 임명하시니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전남은 박 종하(朴鍾河), 전북은 유 종상(柳鍾相), 충남은 이 상호(李相昊), 충북은 조 만원(趙晩元), 경기난 이 교현(李敎玹), 황해는 채 선묵(蔡善黙), 평안은 김 홍규(金洪圭), 함경은 채 규일(蔡奎壹), 강원은 채 규철(蔡奎喆), 경남은 김 영두(金英斗), 경북은 김 정곤(金正坤) 등이 피임되다. 각도 정리(正理)가 명을 받들어 부임할 새 교주께서 김 홍규에게 명하사 가로대 군(君)의 관리하는 바(所管)의 교금은 군의 가족 친부자간도 알지 못하도록 타처에 옮겨 밀봉해 두라(封置). 홍규 대하여 가로대 그리하오리다. 교주께서 재삼 친히 부탁하시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동년(道紀51, 1921) 동월 그믐 경부터 조선 내 각 지방 관청에서 검거선풍이 크게 일어나다. 경남 합천에서는 이 영조(李英兆)가 잡혀(被捉) 진주 지방법원 거창 지청에서 8개월 구형함을 불복하고 대구 복심(覆審) 법원에 공소한 바 4개월 감형되고 4개월 처분을 받아 부득이 복역 중 경북 안동 재판소에서 보천교(普天敎)에 대한 신 법율(新法律)을 제정한 바 방주는 6년, 6임은 4년, 12임은 2년, 8임은 1년 징역으로 결정하고, 15임은 혹 구류 혹 벌금 혹 방면함을 정도 따라 하기로 제정하야 이 법률로 경남북에난 균일히 적용하니 차후로는 교도를 잡으면(捕捉) 그 임명(任名)에 따라 강제로 법률에 따라 처분하고 청송(靑松)군에서는 고문으로 인하야 교도 수 인이 사망까지 되었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강원도 교인 700여인이 잡혀 그 중 김 홍식(金鴻植)은 경성 복심(覆審) 법원까지 공소하야 끝내 6개월 복역하고 그 외 전 조선 내 교인이 징역 구류 벌금 집행유예 자를 매 건마다 거론키 불능하며 교주에 대하야는 각 지방 관청에서 체포와 수색에 노력하다. 동년 2월 10일에 채 선묵(蔡善黙) 김 홍규(金洪圭) 2인이 부임차로 평양역에 하차하다가 관리에게 포착(捕捉)되야 감옥에 구금되다. 교주께서 이 소식을 듣고 즉시 입산결옥(入山結屋)하시고 삼칠일을 한하야 천지에 기도하사 해방되기를 비시더니(乞) 삼칠일 기도 종료하는 날에 김 홍규가 내알하니 감옥에 들어간 총 날수가 42일이오, 채 선묵은 홍규의 죄과까지 홀로 부담하고 유죄로 판결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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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6.25 피난시 혼사시켜준 이정립 부부와 한강을 함께 넘은 젊은 總師首  안원전   2017/03/05  1166
1209    이정립이 왜곡한 <증산교사>의 조직은 허구, 젊은 總師首가 직접 조직한 실체  안원전   2017/03/05  1367
1208    교주제도가 아닌 목화토금수 방주제도로 운영한 8.15 해방이후 증산교 대법사  안원전   2017/03/05  1007
1207    숙구지 문왕 추수사명 초,중,말복 세살림 종통의 핵심잡기  안원전   2017/03/03  1413
1206    ◎이상호 정립형제 2변 운산 총사수님 조직 접수 및 청부 살해 기도 내막  안원전   2017/03/05  1097
1205    보천교 기관지 보광의 폐간은 이 성영 스스로 <증산교사>에서 차교주에 불만한 자신이 했다고 고백  안원전   2017/03/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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