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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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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선정원경>이 전하는 계묘년(1903) 상제님과 곤존 태모 고수님과의 첫 만나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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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and.us/#!/band/61758246




태모 고 수부님이 상제님과 만나신 것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청음 이상호의 <대순전경>에 의거해 정미년(1907)년 차경석 성도와 상제님의 용암리 물방앗간 옆 서릿골 주막의 만나심 이후로 알고 있으나, 태모님을 모셨던 고 민환 성도의 <선정원경>과 태모 고 수부님의 행적을 그린 <선도신정경> 에 의하면(<선정원경>을 인용소개), 태모님과 상제님이 이미 계묘년(1903)에 공사를 보신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청음 이상호보다 태모님을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모신 고 민환 수석 성도의(상제님의 김 형렬 수석성도 격) 증언이 더욱 정확하다 할 수 있습니다. 본래 대순전경은 태운장 김 형렬 성도와 월곡 차 경석 성도의 전언(傳言)으로 이루어진 경전입니다. 그런데 수부사명에 얽힌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두 분의 정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태운장 김 형렬 성도의 경우, 상제님이 들여세우라 하던 셋째 따님 김수부님 공사를 태운장 부인의 불응과 타처로의 결혼조건으로 선폐금 50냥 까지 받음으로써 불발이 됩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양반(兩班)이 집안은 망(亡)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실제 다른 곳으로 혼인까지 해 병이 들었으며 고 수부님이 약장 궤와 기물을 송 찬오 집으로 옮기던 때 이미 사경에 이르러 선화하신 바 계십니다. 하지만 곤존 고 수부님은 김수부님의 불변의 위격(位格)을 다음과 같이 인정해 주셨습니다.“(금산사 미륵전)북방(北方)에 시립(侍立)하고 있는 시녀불(侍女佛)은 천상(天上) 요운전(曜雲殿) 묘향보살(妙香菩薩)인 바 이 세상(世上)에 와서는 김 형렬(金亨烈)의 딸이었느니라”

상제님 기유년(1909) 어천 이후, 신해년(1911) 차 경석(車京石)은 태모 고 수부님의 명을 받들어 짐꾼에게 태운장 구릿골(銅谷)의 약장(藥藏)과 궤(櫃)와 철연자(鐵硏子)와 삭도(削刀)와 횃대와 부벽시(附壁詩)와 액자(額子)와 벽 바른 종이와 방바닥에 먼지까지 쓸어서 지우고 송 찬오 집으로 가져가게 됩니다. 이 때 태운장 김 형렬 성도는 이들 상제님 유품을 고 수부님에게 넘기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여 '내 딸은 사경(死境)에 임박(臨迫)하였노라' 하며 약방기물(藥房器物)을 가져가기를 허락(許諾)치 아니합니다.

다시 차 경석 성도가  '신도(神道)에서 결정(決定)된 일을 그대가 쫓지 아니하면 화(禍)가 있으리라' 하니 형렬(亨烈)이  '만일(萬一) 신도(神道)에서 결정(決定)된 일일진대 천지(天地)에서 징조(徵兆)를 나타낼 것이니, 어떠한 징조(徵兆)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나는 그대의 말을 믿지 못하겠노라' 하므로 태모 고 수부님께서 형렬(亨烈)이 듣지 아니한다는 기별(寄別)을 들으시고, 양지(洋紙)에 해와 달을 그려놓고 두 손 식지(食指)로 하늘을 향(向)하여 지휘(指揮)하시니, 문득 청천(靑天)에 벽력(霹靂)이 일어나고 소낙비가 쏟아지며 번개가 온 집을 두르는지라. 형렬(亨烈)이 징조(徵兆)를 요구(要求)하다가 이 현상(現狀)이 일어남을 보고 크게 놀래며, 문득 마음에서 '망하는 세간사리는 애체(愛滯)없이 버리고 딴 배포(配布)를 꾸미라. 만일 아껴 놓지않고 붙들고 있으면, 몸까지 따라서 망(亡)하느니라' 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생각나거늘, 이에 경석(京石)에게 가로대 '진실(眞實)로 천의(天意)이니 마음대로 가져가라' 합니다.

태운장 김 형렬 수석성도는 태모님이 자신으로부터 가져간 약장궤를 비롯한 신기(神器)를 배경으로 그 해 신해년(1911) 선도교(일명 태을교) 교단을 개창하자(낙종물 사명) 자신의 딸에게 돌아가야 했을 자리를 고 수부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합니다.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1914년 가을 정부인을 초대해 도통공부를 시켜 고 수부님의 신권에 도전하려 했으나 정부인이 수련 중 실신하는 바람에 포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황은 태운장이 수부사명의 전말에 대해 자식들에게 전한 <동곡비서>나 이 상호에게 전해준 <대순전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틀이 됩니다.

왜냐하면 태운장이 보천교를 탈퇴하고 미륵불교에 입교한 청음 이 상호에게 <증산천사공사기(1926)>, <대순전경 초판(1929)> 의 천지공사 내용 사료를 전해준 시절은 미륵불교 시절 중에서 1924년~1928년 기간으로 차 경석 성도와는 인간적으로 등지고 미륵불교를 창교했던 시기입니다. 이 기간의 태운장 김 형렬 성도의 도국내(道局內) 정황을 간추리면, 1911년 9월 곤존 고 수부님이 상제님 성령(聖靈)과 통하신 다음 정읍 대흥리에 증산교단 최초의 교단인 선도교(태을교)를 창립하자 1913년 봄 태운장은 장 기준이 현무경을 필사해 간 3룡(태모님, 차경석 등 3 경진생) 회동 직후 대흥리 본소로 가서 고 수부님을 뵙고 현무경(玄武經)을 등사(筆寫)해 와서 그 이치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이듬해인 1914년 가을 상제님의 본부인인 정 치순(鄭治順) 대모님을 모셔다 상제님의 성령(聖靈)이 감응되게 한다고 주송(呪誦) 수련을 시켰으나 정부인이 수련석에서 실신하여 허사가 되고 맙니다. 이에 태운장은 자신이 직접 통령(通靈)하겠다고 결심하고, 해를 넘긴 1915년 봄 모악산 금강대에 올라 백일 수도에 전력하게 됩니다. 결국 백일 수도 만에 그는 신안(神眼)이 열려 증산 상제님 성령의 가피를 받아 영서(靈書)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금강대문답(金剛臺問答)- 일명 도통심경(道通心經)이라는 글을 발표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보천교 시절 편지 전달문제로 차 경석 성도와 인간적으로 등진 태운장 김 형렬 성도가 과연 월곡 차 경석 성도의 입도시기를 있는 그대로 이 상호에게 전해 이종물 사명자의 정통연대기를 훼손치 않게 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은 태운장과 월곡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하지 못합니다. 동시에 임인년(1902), 계묘년(1903)으로 소급되는 차 경석 성도의 입문시기가 정적관계에 있던 이 상호에 의해 정미년(1907)으로 늦추어졌을 개연성 역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도선(徒善)이라 복 마련하기 어렵다는 태운장에 대한 상제님의 평가와 차 교주를 배신하고 보천교를 탈퇴하고 갓 입도한 이 상호를 태운장이 신뢰하지 않아 천지공사의 내막을 전하지 않고 수련에만 매달린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당시 차 월곡 성도에게 유감을 가진 이 상호에 의한 성구 왜곡으로 보는 것이 설득력이 더 커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시대일보 사건과 보천교 혁신운동을 통해 사활을 걸고 차 경석 보천교 교주 축출운동을 벌인 청음 이 상호·남주 이 성영(정립) 형제의 입장에서 보면 원한이 서린 차 경석 성도의 이력에 대해 그 정통성을 깎아내리면 깎아내렸지 추종시기를 굳이 앞당겨 점수를 주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임인, 계묘 기록이 정미년으로 둔갑된 가능성에 대해 이 상호는 이미 보천교 시절 차 경석 성도 배척운동 만 벌인 것이 아니라 그 뿌리인 태모님 배척 운동을 공식적으로 벌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차 경석 성도의 경우, 본래 동학교도로서 동학혁명에도 참전한 총대(지휘관)로 후일 손 병희를 지도자로 모신 일진회 회원 출신으로 있다가 손 병희에 실망하고 방황하던 차 용암리 물방앗간 옆 서릿골 주막에서 만나신 상제님 문하에 들어온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선정원경>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용구의 일진회가 1904년 8월 창립된 단체이므로 차 경석 성도에 대한 <대순전경>의 일진회원 운운은 차 교주에 대해 원한서린 이 상호가 정미년에 알리바이를 맞추기 위해 공백을 채워 넣은 가공 스토리에 불과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차 경석 성도 입문과 태모 고 수부님의 수부사명이 계묘년(1903)이라는 <선정원경>의 주장이 맞다면 대순전경의 정미년(1907) 설은 차 경석과 등진 정황에서 수부사명 문제에 있어서 고 수부님과도 대척점에 서 있던 김 형렬 성도의 전언이거나 김 형렬 성도의 전언을 배경으로 이 상호가 그 여백을 가공으로 메꾸었을 개연성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원경에 대한 100% 확정을 못하는 이유는 <보천교普天敎 교전敎典>에 “월곡성사月谷聖師께옵서 정미오월십칠일丁未五月十七日 금구군거야주점金溝郡巨野酒店에서 증산천사甑山天師를 처음으로 뵈오매 기其 온화溫和한 의표儀表와 모든 언어言語 동지動止가 일견초인간적一見超人間的이며 또 수운가사水雲歌詞에 [여광여취如狂如醉 저양반을 간곳마다 따라가서 진질한 그 고생을 누구다려 한말이며]라는 구절구절이 문듯 생각히며 깊이 깨달은바있어 ”라 하여 정미년 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산 상제님 절대적 신격와 호칭에 대해 『보천교 교전』의 ‘증산천사甑山天師’라는 표현은 차 경석 교주의 견해에 반한 청음 이 상호의 독단적인 의견이었음이 후일 밝혀지게 됩니다. 청음 이 상호는 조선 총독부에 매수되어 비밀조직으로 운영되던 민족종교 보화교(보천교) 공개 프로젝트인 ‘보천교 양해사건’의 실질적인 행동책으로 활동하면서 차 경석 교주로부터 단체 전권을 위임받아 일제에게 단체의 모든 비밀을 공개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청음이 1922년 2월 소위 보천교 종지宗旨를 차 교주 대신 발표할 적에 증산 상제님의 절대 신격을 드러내는 가장 중대한 호칭을 “우리 천사天師께서 대순大巡의 성인으로서 이 땅에 내려오사...” 라 공식적으로 대내외에 선포함으로써 일개 도가 문파의 스승을 의미하는 ‘천사’ 또는 비범한 ‘성인’ 정도로 간단히 매도해 버리고 맙니다. 그 뒤 일제에 의한 보천교 강제해체 이후 이에 대한 정리가 안 된 상황에서 이 호칭이 해방이후 『보천교 교전』에 그대로 옮겨져 기록된 것입니다.

차 경석 보화교(보천교) 교주는 이미 청음이 보천교 종지宗旨를 발표하기 바로 전 해인 1921년 함양 황석산 고천제告天祭를 지낼 때에 제단 위에 <구천하감지위>, <옥황상제하감지위>, <삼태칠성하감지위>라 3 신위패神位牌를 모시어 증산 상제님이 옥황상제님이심을 공표한 바 있고 무라야마지준(村山智順)과의 대담(『보천교 교전』)에서도 증산 상제님이 옥황상제이심을 공표한 바 있습니다. 청음은 상제님의 절대 신권을 선화할 때까지 인정하지 않고 성격 모호한 ‘천사天師’란 칭호로 초지일관해 당시 600만 신도대중을 기만했습니다.

남주 이 성영(정립) 또한 이러한 형의 생각을 물려받아  ‘우주宇宙의 유일唯一 주재자主宰者 신神은 없다. 지방신들 만 있고 신계가 미 통일되어있다’고 선언宣言하여(『증산교사』 1977년) 상제님 신위神位를 절대 조화옹 미륵존불이신 옥황상제 하나님으로 인정안하고 <오두미도>를 창시한 장천사張天師 장도릉(張道陵, 34-156년)처럼 도가의 스승격인 천사天師로 일관되게 비하해 호칭했습니다. 그러한 그가 고 민환高旻煥 성도의 『선정원경仙政圓經 1960년』으로 크게 충격을 받아 태모 고 수부님의 신권을 비로소 재인식하게 되고 61년 태운장 김 형렬 성도의 자제 김 찬문과 김 자현 성도의 자제 김 태진의 수기 <성화진경(61년=『동곡비서』로 재출간 90년)>이 출간되자 다시 한 번 상제님의 절대 신격을 깨우치면서 1963년 <고부인신정기>를 서둘러 발표하고 선화仙化 2년 전인 1966년 소책자 <증산교甑山敎 요령要領>에서 “천사天師께서는 곧 통천상제統天上帝시니라”고 애둘러 한 마디 남겼을 뿐입니다.

『보천교 연혁사』에 의하면 일제 시대에 차 경석 교주는 이 상호 형제를 내세운 조선총독부 산하의 경성 경무국과 경기도 고등경찰부의 감시로 보천교 시절 내내 보퉁이 하나 짊어진 채 지방 산골 방방곡곡 교도들 집으로 비밀리 야밤에 산길과 절벽을 타고 쫓겨 다니며(폐의파립 암행어사(暗行御史) 도수) 비밀교단 보천교를 원격조종했을 뿐 대중 앞에서 자신의 입문경력을 밝힌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보천교普天敎 교전敎典>의 ‘聖師典성사전’“月谷聖師월곡성사 誕降幼年時代탄강유년시대” 부분에 나오는 차 교주에 대한 정미년 기록은 보천교 신도들이 기존경전의 기록을 보고 해방이후 정리한 기록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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