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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18개 경전포함 범 증산계 통합경전 <가칭 십경경전>) 내용: 1.


<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비회원 입장 가능. 다운만 받고 나와도 됩니다.
http://band.us/#!/band/61758246




(18개 경전포함 범 증산계 통합경전 <가칭 십경경전>) 내용:
1.

기존의 메이저 경전 중에서 편년체로 되어있는 경전은 박 공우 성도와 사돈관계를 맺은 이중성(李重盛) 선생의 <대개벽경(일명 천지개벽경)>입니다. 따라서 본 약칭 <통합경전>은 편년체로 짜여진 <대개벽경>의 편집체제를 그대로 수용하여 연도별 사건별로 모든 경전의 해당 성구를 추출해 하나의 틀 속에 종합 편집한 상제님의 후천 5만년 무극대도 성훈 말씀을 종합해 놓은 신성한 대도집-성도대전(聖道大典)입니다.

(범 증산종단 18개 경전포함 공통 <통합경전>) 내용: 편년체(編年體:연대순 기술) A4 용지로 3704P 분량으로(본문 2734P) 길라잡이 서문만 A4 용지 970P 분량입니다. 참고로 <증산도 도전道典>이 A4 용지로 900P 분량, 기독교 신구약 합본이 A4 용지 1800P 분량입니다.

<대개벽경(이중성)>, <보천교 교전>, <보천교 연혁사>, <중화경(상제님 말씀 김형렬 수석성도가 적은 후천 개벽 성리학)>, <동곡비서(성화진경)>, <천지개벽경(정영규)>, <선도신정경(정영규)>, <증산천사공사기(이상호)>, <대순전경 초판(이상호)>, <대순전경 3판(이상호)>, <용화전경(김낙원)>, <현무경(상제님 친필)>, <선정원경(고민환)>, <고부인신정기(천후신정기:이정립)>, <화은당실기>, <용화선경이 오면(이효진)>, <증산도 道典> 등 이상 17권의 원문 내용은 100% 모두 수록되었습니다.

특히 <대순전경 초판>과 <증산천사공사기>는 의고체(고어체)이므로 한 페이지 이상 읽기 어려워 중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원문과 함께 쉽게 평역을 부기해 함께 대조해 볼 수 있게 했으며 <선도진경>, <증산교사>는 그 핵심과 김 호연 성도 성구를 비롯 새로운 사료 성구를 채록해 기록한 <증산도 도전> 성구 역시 새로 채취된 성구는 100% 반영했습니다. 그 이외는 기존의 경전에서 뽑은 것이므로 사실상 거의99% 포함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본 <통합경전>이 도안(都安) 세 살림도수의 전체 퍼즐을 밝힌 완성판 통합경전이므로 <대개벽경> 편집차례 마지막에 낙종물 사명, 이종물 사명, 숙구지 문왕 추수 사명이 추가되었습니다.  낙종물 사명에는  <선도신정경(정영규)>,  <선정원경(고민환)>, <고부인신정기(천후신정기:이정립)>, <천지개벽경(정영규)> 등의 내용이 모두 들어갔고, 이종물 차 경석 보천교 사명에는  <보천교 교전>, <보천교 연혁사>, <증산교사> 내용이 모두 반영되었으며, 이 효진(李孝鎭)의 대순전경 초판 보완집인 <대성경집(大聖經集)>의 새로운 부분이 반영되었고 숙구지 문왕 추수사명에는 <안 운산(安雲山) 종도사 어록> 4권, 30년간 강연 어록(녹음 테이프 포함) 중 중요부분 발췌해 100여 페이지로 압축해 들어갔습니다.

<증산도 道典>의 경우, 은두장미(隱頭藏尾)의 천지공사 정신에 의해 기존의 경전에서 밝혀지지 않다가 어린 초립동이 시절 상제님을 직접모신 김 호연 성도 증언 성구를 비롯 전혀 새로운 사료 성구를 채록해 기록한 <증산도 道典>의 핵심 성구 역시 모두 포함시켰습니다. <통합경전>은 경전 수와 상관없이 10무극 상제님 성언聖言, 성구聖句이므로 범증산계 통합경전-<십경대전(가칭)>이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하 보천교 시절 당시 일제의 눈을 피해 상제님 진리의 핵심을 모두 드러낼 수 없어 태운장 김 형렬 수석 성도, 월곡 차 경석 성도는 핵심교의를 깊숙이 은장(隱藏)하고 비교적 초보적 형태의 단순 교의(敎義)만 청음 이 상호에게 전해주어 <증산천사공사기>와 <대순전경> 초판을 발행하게 됩니다.

청음(靑陰) 이 상호(李祥昊)는 보천교에서 보천교 교경 편찬위원을 자청해 동생 이 성영(정립)으로 하여금 차 경석 교주가 알고 있는 천지공사의 모든 교의체계를 뽑아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차 경석 교주는 신뢰성이 적은 이 상호 형제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해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납니다. 이는 본 <통합경전>에 전재(全載)한 이사전서(二師傳書), 대도지남(大道指南) 내용을 포함한 <보천교 교전(普天敎 敎典)>과 보천교 정사(正史)인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의 내용이 뒤늦게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보천교 교전(普天敎 敎典)>은 띄어쓰기, 오자, 탈자 등 한자음 틀린 곳 등이 수백 군데인데 원본의 맛을 살리려 <통합경전>에는 크게 오인할 부분 몇을 제외하면 가급적 교정(矯正)없이 그대로 전재(全載)했습니다.

청음(靑陰)이 조선총독부 경무청 경시(警視) 조선인 정탐(偵探) 동광회 두령 김 태식(金泰湜:김태석으로 밝혀짐)과 경기도 경찰부 후지모토(藤本) 고등과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후원으로 보천교 혁신운동을 일으키자 차 경석 교주는 1924년 7월 이 상호를 60 방주(方主)직책에서 해임시키는 초강수로 맞대응합니다. 보천교로부터 교직敎職을 파면 당하자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어진 청음 이 상호는 보천교를 탈퇴한 뒤, 김 형렬(金亨烈) 수석성도가 개창한 <미륵불교> 신도로 들어간 다음, 다시 김 형렬 성도를 설득해 미륵불교의 교경을 편찬하겠다고 설득해 공사내용을 채록합니다.(1925년 9월)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태운장 김 형렬 성도 역시 보천교에서 자신의 스승을 배신하고 나온 청음에 대해 반신반의하여 모든 것을 전해주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청음은 당연히 태운장 김 형렬 수석성도 마저 다시 배신하고 나갔지만 뒤에 <대순전경> 초판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 대거 실린 <동곡비서> 및 <중화경>의 내용과 상대적으로 분량이 상당히 빈약한 <대순전경> 초판 내용을 감안하면 김 형렬 수석성도 역시 청음에게 전해준 내용이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립은 <증산교사>에서 김 형렬이 늙어서 옛일을 잊어버렸고 제대로 조리 있게 강화(講話)하지 못해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 뒤에 <동곡비서>와 <중화경>이 나온 것을 참고하면 이는 애초에 이 상호를 불신한 김 형렬 교주가 적당히 핑계를 대고 핵심을 다 전해주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의 검열 때문에 많은 내용이 누락되었다고 서문에 밝혔지만 해방이후 3판도 내용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이 상호에 대한 불신은 차 경석
성도와 마찬가지로 김형렬 성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증산교사(甑山敎史)>*이상호가 노 좌대(盧左大)와 더불어 경석에게 교경을 편찬하자고 권고하니 경석이 이에 이 성영(李成英), 이 영호(李英浩) 두 사람을 교경편찬위원으로 임명하여 매일 오후에 경석의 담화를 필기하게 하여 십여 차례에 걸쳐서 천사의 행적을 강설한 뒤에 필기한 것만 재료로 하여 교경을 편찬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10 여건에 불과한 기록만으로는 너무 빈약하므로 교경편찬 문제는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천교 교전>을 보면 ‘10여건 주장’은 감정적 허위증언)

<증산교사(甑山敎史)>*을축년(道紀 55, 1925) 구월에 상호는 경성에서 김 형렬(金亨烈)을 만나 그 뜻을 고하여 찬동을 얻고 곧 전라북도 김제군 수류면 금산리 용화동으로 이거(移居)한 뒤에 날마다 형렬을 방문하여 천사(天師)께서 재세 시에 말씀하신 바와 행하신 바를 직접 들은 대로 또는 직접 본대로 자세히 강화하여 주기를 청하여 낱낱이 필기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형렬이 이미 늙었고 또 수십 년을 지내버린 옛일이므로 잊어버린 일이 많아서 대번에 조리 있게 강화할 수가 없었다.

<증산교사(甑山敎史)>*그러므로 형렬의 기억이 회복 되는대로 하루에 한두 절씩 혹은 며칠 만에 한두 절씩 필기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병인년(道紀 56, 1926) 7월에 형렬에게서 필기한 것을 수집하고 전자(前者)에 차 경석에게 들은 바를 보태어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라는 제호(題號)로 간행(刊行)하였다.

<증산교사(甑山敎史)>*상호는 이로써 만족치 아니하고 다시 김 경학, 박 공우, 안 내성, 김 송환, 유 찬명, 김 덕찬, 김 준찬, 이 치복, 김 자현, 문 공신, 최 덕겸 등 모든 친자종도들을 방문하여 그 강화를 청하고 또 천사(天師)께서 돌아다니시던 지대를 답사하며 천사(天師)께 지면(知面)이 있었다는 촌 늙은이를 찾아서 그 강화를 청하여 재료 수집을 계속하였다.

<甑山道 道典 들어가는 말>*김자현 성도의 손자 김택식에 의하면 “조부님은 이상호에게 증언을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자현 성도는 김형렬 성도, 김갑칠 성도에게도 당시 보천교에서 출교된 뒤 태운장의 미륵불교 신도로 들어온 이상호에 대해 “한 판 차려 보려는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전해 주지 마시오.” 하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다. 이상호에 대한 이런 비판적인 의식은 당시 주요 성도들에게 널리 파급되어 있었다.(참고: 임술 생 김형렬 성도의 손자 김현식씨의 증언도 김자현 성도의 손자 김택식의 증언과 동일하게 청음 이상호가 수차에 걸쳐 상제님 성적을 들려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들려주지 않았다고 증언함)

<甑山道 道典 들어가는 말>*백운동의 안내성 성도는 몇 차례 찾아와 증언을 구하는 이상호에게 단 한 마디도 응대해 주지 않고, 멀리 구성산만 바라보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소년 시절에 곁에서 이를 지켜본 아들 안정남이 증언한다. 또 안필성은 이상호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도인이 일찍 봉사가 되었다.’고 그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그래서 주요 성도들 못지않게 상제님과 삶을 함께 하고 상제님에게서 큰 도수를 부여받았음에도,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증언해 주지 않았다.

<甑山道 道典>(도문(道門)과 성도(聖徒) 3편 192장<측각주>)* 안내성 성도의 입문 과정이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까닭을 그의 아들 정남은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 아버님 생전에 이상호 씨가 와서 뭔가를 알려고, 뿌리를 캘려고 했는데 안 가르쳐 줬어. 그 이유가 있어. 이상호가 가고 나면 아버님이 ‘저놈이 역천을 해도 보통 역천을 하는 놈이 아니다. 책을 쓴다고, 우리 대선생님을 빙자해서 종교 장사를 한다. 그런 놈한테 내가 뭣 하러 알려 주냐.’ 그러고 ‘저놈이 얼마 안 가서 천벌을 맞는다.’ 했거든. 결국 이상호는 눈도 못 보고 살다가 운명을 했다고 하더만.”

<보천교(普天敎) 교전(敎典)>*(跋)그러나 敎徒들은 百折不屈의 信仰으로 日政에 對抗하여 宗敎의 自由를 부르짖는 其戰蹟은 本敎沿革史 太半이 日政과의 鬪爭史라 하여도 過言이 아니었다. 그러한 波瀾中에서도 二師傳書 大道指南等 經典을 刊行하였으나 當局의 忌憚都底히 社會에 頒布치 못하고 敎徒의 秘藏書에 不過하였다 天運이 循環하사 解放後 開敎以來로 社會 各界各層에서 더욱이 靑年學徒等이 甑山天師와 月谷聖師의 偉大한 道德을 認識하고 崇拜하는 傾向이 漸漸增加하여 兩師의 文籍을 要求하는 人士들이 多有함으로 日政의 彈壓으로 奏爐를 僅免하고 秘藏遺書인 二師全書 大道指南及各敎徒의 秘藏한 二師의 道理訓話等 遺稿를 綜合修訂하여 本誌를 甑山天師編 月谷聖師編으로 分合一冊하여 敎徒의 貧弱한 財力으로 誠意를 다하여 辦出한 結果僅僅百餘卷만을 社會人士들에게 贈呈하게 되오니 遺憾千萬이오며

내용 2
해방이후 청음 이 상호에게 채 전해주지 않은 교의 ( 敎義 ) 는 태운 김 형렬 성도의 자 ( 子 ) 김 찬문 · 김 찬진 ( 이종질 ) 형제에 의해 < 동곡비서 ( 성화진경 )> 라는 형태로 < 중화경 > 과 함께 세상에 선을 보이고 , 차 경석 성도의 보천교 쪽에서는 < 보천교 연혁사 > 와 함께 보천교 시절 필사본 형태의 구전심수 비밀교의서였던 < 대도지남 >, < 이사전서 > 등이 포함된 < 보천교 교전 ( 普天敎敎典 )> 이 발행됩니다 .

 

범 증산교계에 그동안 전설처럼만 존재했던 < 보천교 교전 ( 普天敎敎典 )> 의 내용 100% 가 본 < 통합경전 > 에 포함된 것은 이종물 사명의 보천교 이후 초장봉기지세로 물중전의 본을 보여 왔던 범 증산 교단의 통합도수인 태모님 윷판도수와 사오미 개명도수에 맞추어 상제님 진리의 전체 퍼즐의 전면모를 확연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으리라 봅니다 .

 

그도 그럴 것이 < 보천교 교전 ( 普天敎敎典 )> 은 100 부만 찍어 당시 출판성금을 낸 80 여명에게 책을 모두 돌리고 말아 세월과 더불어 소장한 당사자들이 모두 선화하여 한정판 경전이 모두 유실되었기 때문입니다 . 게다가 그 속에는 < 보천교 普天敎 교전 敎典 > 경 經 4 부에 “ 물위아주재우주 勿謂我主宰宇宙 이역주재우주 爾亦主宰宇宙 - 내가 우주를 주재한다고 말하지 말지니 , 너 또한 우주를 주재하느니라 ” 와 같이 기존경전에서 볼 수 없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놀라운 선언과 차 경석 성도가 전하는 새롭고도 다양한 진리 내용이 담겨있어 상제님 진리의 경계와 지평이 더 한층 새로워졌습니다 .

 

본래 < 증산도 道典 > 은 기존의 경전에다 90 년대 이후 김 호연 성도를 비롯한 오세동이 백 운기 성도 등 수많은 성도들 3 세 및 일가친척의 전언을 취합해 만든 경전입니다 . 특히 기존 경전 내용 모두를 수용한 것이 아니고 여러 사정상 많은 부분 누락되었으며 , < 도전 > 편찬의 편집방식이 비슷한 성구를 서로 섞고 누락시킴으로써 내용을 표준화하고 단순명료화한 감이 있습니다 .

 

그러나 이러한 편집방식은 그 의도가 어떠하든 대중화하는데 큰 공로가 있는 반면 그 핵심은 오히려 알기 어려운 역설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 게다가 일반신도들로서는 일일이 각 성구내용의 올바른 출처와 표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각 공사의 진의가 무엇인지 상호 연관관계가 과연 무엇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천지공사의 총론적 실체에 접근하고 종통의 맥을 올바로 잡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

 

따라서 본 약칭 < 통합경전 > 에서는 모든 성구의 출처를 모두 밝혀 이러한 문제를 명료히 하여 천지공사 내용의 객관성을 유지했습니다 . 그런 면에서 본 < 통합경전 > 을 < 증산도 道典 > 의 입장에서 보면 < 증산도 道典 > 내용을 모두 포함하되 외연 ( 外延 ) 이 확대된 더욱 완벽한 < 증산도 道典 > 이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 증산도 道典 > 내용은 90 년대 이후 추가된 내용은 100% 반영되었으며 그 이외의 내용은 기존의 경전을 실은 것이므로 기존경전은 100% 실었기 때문에 < 증산도 道典 > 내용은 사실상 100% 반영한 것으로 보면 정확할 것입니다 .

 

약칭 통합경전은 경전 수와 상관없이 10 무극 상제님의 성언 ( 聖言 ), 성구 ( 聖句 ) 이므로 가칭 범증산계 통합경전-<십경대전>이라 했습니다 . 본 통합경전을 편찬하며 느낀 점은 < 증산도 道典 > 을 비난하는 일부 목소리도 있지만 일부 부족한 면과 잘못된 점 몇몇을 제외하면 기존의 단편적인 소의 ( 所依 ) 경전을 종합한 정말 잘된 경전이라는 점을 수없이 느끼는 바입니다 . 다만 < 선도진경 ( 宣道眞經 )> 의 경우는 조 정산 ( 철제 ) 의 부산 감천동 무극도 시절 , 당대 경전이 < 대순전경 ( 大巡典經 )> 밖에 없어서 단체를 이끌기 위해 사정상 판권문제로 < 대순전경 ( 大巡典經 )> 짝퉁 성격의 경전을 따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따라서 < 선도진경 ( 宣道眞經 )> 은 < 대순전경 ( 大巡典經 )> 의 내용과 99% 같지만 항목별 제목을 바꾸고 표기방법만 약간 현대어로 바꾸어 서술한 것이 특징인지라 얼마 안 되지만 < 대순전경 ( 大巡典經 )> 과 다소 다르거나 지리적으로 보완된 부분 또는 자세히 풀어놓았거나 무언가 새로워 보이는 부분은 모두 본 < 통합경전 > 에 삽입해 넣었습니다 . 이 중성 ( 李重盛 ) 선생의 딸 이 옥수 씨가 부친의 뜻으로 호칭한 바 있는 < 대개벽경 ( 大開闢經 )> 은 일명 < 천지개벽경 ( 天地開闢經 )> 으로 정 영규의 < 천지개벽경 ( 天地開闢經 )> 과 혼돈이 되기 때문에 향후 < 대개벽경 ( 大開闢經 )> 으로 통칭합니다 .

 

< 선도진경 ( 宣道眞經 )> 의 최대 장점은 < 대순전경 ( 大巡典經 )> 에서 이 상호가 증산 상제님의 호칭을 하늘스승이라는 애매모호한 < 천사 ( 天師 )> 로 기술한 것에 비해 상제 ( 上帝 ) 라는 확실한 신격을 처음으로 드러내 기술한 데 있습니다 . 이 상호 · 이 정립 형제는 우주를 주재하는 절대자 조화옹은 없다고 선언하고 절대자이신 증산상제님의 신격을 도가서 ≪ 옥추보경 玉樞寶經 ≫ 의 3 번째 신위 神位 인 < 대법천사 ( 大法天師 )> 로 비정하고 이 입장을 죽을 때까지 견지했습니다 . 상제님의 신위를 인정하지 않다보니 곤존 ( 坤尊 ) 태모 고 수부님이 눈에 보일 리 없었습니다 .

 

그리하여 10 년 신정공사를 집행하신 곤존 여성 하느님으로서의 신성성 ( 神聖性 ) 을 부정하여 그저 낙종물 사명자인 교단개창자로만 인식해 온갖 핍박을 가했던 것입니다 . 본래 곤존 ( 坤尊 ) 은 지존의 여성 하느님을 뜻하며 태모 ( 太母 ) 는 인류의 어머니는 물론 우주 만물 생명체 ( 태극 ) 의 어머니를 뜻하고 수부 ( 首婦 ) 는 만 여성의 우두머리로 상제님이 집행하시는 천지인신 ( 天地人神 ) 귀신수찰 ( 鬼神垂察 ) 의 정음정양 천지공사를 집행함에 필요한 우주 절대자 배필 ( 配匹 ) 사명자로서의 칭호입니다 . < 선도진경 ( 宣道眞經 )> 이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 증산 상제님이라고 확실히 드러내 표기해준 획기적인 용단은 대순전경 내용의 99% 를 옮겨놓은 짝퉁임에도 불구하고 < 선도진경 ( 宣道眞經 )> 을 출간한 공덕이 될 것입니다 .

 

현재 증산 상제님 진리권에 가장 영향력이 큰 종단 중 보천교 시절 이 치복 성도 연원계열의 라인이 둘 존재합니다 . 첫 번째는 증산 상제님 9 년 천지공사와 태모 고 수부님 10 년 신정공사의 최종결론으로 문왕의 추수 도수를 받은 운산 雲山 안 세찬 증산도 창도자이며 , 두 번째는 태극도의 전신인 무극대도교를 창도한 정산 鼎山 조 철제입니다 . 안 운산 창도자는 그 부친이 이 치복 성도로부터 직접 도를 받은 모태 신앙인이며 , 조 정산은 이 치복 성도에게 도를 받은 독립운동가 김 혁으로부터 도를 받아 진리를 펼쳤습니다 .

 

부연하면 , 무극대도교는 보천교 이 치복 ( 李致福 ) 성도에게서 도를 받은 독립운동가 김 혁 ( 金赫 ::1875. 10. 16~1939. 4. 23. 본명은 학소 學韶 , 호는 오석 烏石 ) 으로부터 다시 도를 받은 보천교 신도 정산 鼎山 조 철제가 세운 단체입니다 . 조 정산이 선화 ( 仙化 ) 하고 그 아들 조 영래는 태극도로 단체명을 바꾸고 경전도 < 선도진경 > 과 함께 < 무극진경 > < 태극진경 > 으로 나누어 다시 발간합니다 . < 무극진경 > 은 태극도에서 증산상제님을 무극상제님이라 하여 증산상제님 성구위주의 경전으로 , < 태극진경 > 은 무극대도교를 연 조 정산 ( 철제 ) 을 태극상제라 신격화 하여 조 정산 언행록 위주의 경전으로 분리한 가공의 소설입니다 .

 

이에 대한 내막을 자세히 아는 담당자와 경전 편찬자마저 다음과 같이 조 철제를 옥황상제로 칭하는 것 자체가 가공으로 픽션화한 사상누각의 허탄한 소설이라 말하는 지경입니다 . 편찬자 자신이 이에 대해 정확한 근거 없이 지어진 「 태극진경 」 을 자주 접하게 되면 나중에는 그 내용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병폐가 생겨나므로 자제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고 고해성사하는 지경입니다 .

 

이 말은 결론적으로 조 정산을 지존 ( 地尊 ) 상제로 칭하는 것 자체가 전혀 신빙성이 없는 가공의 소설이라는 선언입니다 . 이러한 가공의 터전위에 박 한경을 인존 ( 人尊 ) 상제로 칭한 것 역시 사상누각의 허탄한 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이는 마치 이종물 보천교 시절 영적으로 가장 뛰어난 보천교 신도로 증산 상제님을 신앙하면서 수많은 기행이적을 보인 인정상관 여 원월 ( 余圓月 ;1887-1953 일명 여처자 ( 余處子 ) ) 이 선화한 이후 서 상섭 ( 徐相燮 ) 을 비롯해 그를 추종하던 보천교 신도들이 여 원월 ( 余圓月 ) 을 떠메어 모악교를 만들고 무을교를 만들어 관세음보살로 신격화한 것과 같습니다 .

 

차 월곡 교주의 청혼마저 거절한 적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여 원월 ( 余圓月 ) 은 후일 김 경학 ( 金京學 ) 성도의 1945 년 태인 대학골 21 일 대학공부에 수련지도를 하기도 한 분으로 , 정읍에서 증산 상제님만 신앙하며 독실히 수행하던 분으로 조 철제와 같은 보천교 신도였습니다 .

< 무극도 해산 고찰 , 권지 1-22>* 그간 무극도를 계승한 당사자임에도 대순진리회 측의 기록은 연구자들에 의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그 결과 무극도의 사정을 잘 모르는 ( 때론 악의적인 견해를 가진 ) 외부 학자의 책이 많이 채택되어 왔다 . 여기에 편승해 태극도의 『 진경전서 』 (87 년 출간 ) 와 같은 서적조차 상당한 근거를 가진 문헌으로 묻어가고 있다 . 『 진경전서 』 는 2 년 후인 89 년에 『 진경 』 이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되었다 . 『 진경 』 은 「 무극진경 」 과 「 태극진경 」 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 이중 「 태극진경 」 이 도주님의 행적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부 수도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 그 내용이 전혀 신빙성이 없는 소설이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 도주님으로부터 유명 ( 遺命 ) 으로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에 대해 수도인들이 알아야 할 부분을 교운 2 장으로 친히 작성하여 내려 주셨다 . 도주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 무극도의 해산사례에서 보듯이 정확한 근거 없이 지어진 「 태극진경 」 을 자주 접함으로써 나중에는 그 내용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병폐가 생겨나는 것이므로 자제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 외부의 학자들이야 도를 모르는 사람들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 그들의 잘못된 설을 가지고 종단 내부에서까지 주장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 차제 ( 此際 ) 에 『 典經 』 의 신성성 ( 神聖性 ) 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 무극도 해산 고찰 , 권지 1-22> * 「 태극진경 」 즉 『 진경 』 의 저자인 황 진규의 진술에 따르면 윤 금현의 기록을 참조해서 썼다고 한다 . 윤 금현은 1952 년에 도주님 ( 정산 조 철제 ) 을 처음 뵈었고 , 당시 직위가 호령 ( 지금의 교정 ) 이었다고 한다 . 따라서 일단 1952 년 이전의 내용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 1952 년 이후도 도주님을 계속 가까이서 시봉할 위치는 아니었다 . 그런데 「 태극진경 」 의 내용은 계속 곁에서 시봉했던 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확률이 매우 높다 . 「 태극진경 」 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면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나 우선 대표적인 한 가지만을 들자면 ‘ 태극주 ’ 문제를 들 수 있다 . 옥황상제님 재세시에는 ‘ 정산님 ’ 또는 ‘ 도주님 ’ 이라는 두 가지 호칭 외에는 쓰이지가 않았으며 , 당신께서 스스로를 ‘ 태극주 ’ 라고 지칭하신 적은 더욱 없었다 . 그런데 「 태극진경 」 에는 옥황상제님께서 당신이 ‘ 태극주 ’ 라고 말씀하시는 장면과 ‘ 태극주 ’ 라는 호칭이 여러 군데 나오고 있다 . 이는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자가 임의로 지어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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