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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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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청음 남주에 이어 홍범초로 계승된 2변 날조와 왜곡












<통합경전>다음 밴드에 들어가면 전체 파일 다운됩니다. 비회원 입장 가능. 다운만 받고 나와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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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남주에 이어 홍범초로 계승된 2변 날조와 왜곡



  

안 운산 총사수(總師首)가 대국을 내다보고 이 상호 · 이 정립 형제에게 애써 일군 패를 송두리째 던져버린 용화동 증산교(甑山敎) 대법사(大法社)는 이같이 연원의 근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생태학적인 한계가 대물림 된 곳입니다. 이러한 연장선 위에서 청음(1888-1966)에 이어 남주(1895-1968.1)마저 선화하자 그 허망한 종통을 물려받았다는 범초(凡草) 홍 성렬(洪性烈)이 뿌리부터 날조 왜곡된 <증산교사> 2변 내용을 바탕으로 스승인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를 집요하게 흠집내며 교단 통합운동에 그렇게 목을 맨 것입니다. 홍 범초가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에 대해 자신의 저작물 <범증산교사(汎甑山敎史)>에서 이 상호· 이 정립의 뿌리말살에 비견되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왜곡 2가지만 대표로 지적합니다.

  

1)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의 부친 안 병욱이 이 상호· 이 정립 형제를 따랐으며 안흥찬 총사수가 이상호를 해도진인에 비유하면서 포교했다는 허위주장에 대해,

  

  

<범증산교사>*안병욱이 어느 때 이상호(李祥昊)· 이정립(李定立)형제를 따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안병욱은 아들 운산에게 말하기를 네가 일을 하려거든 아산(牙山)의 원응섭(元應燮) 이응상(李應祥) 두사람과 손을 잡으라 했다 한다. 원응섭과 이응상 두사람은 인근에 덕망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운산(雲山)이 원응섭 이응상과 함께 정해(丁亥 1947)년에 아산군(牙山郡) 배방면(排芳面) 남리(南里)에 와서 윤철원(尹哲元) 반상철(班相喆)에게 포교하니 이들이 아산지방에서 대법사(大法社)에 입교한 최초의 교인이었다. 이 때 운산은 대법사교주 이상호(李祥昊)의 출생지가 전남(全南) 해남군(海南郡) 삼산면(三山面) 구성리(九星里)인 것을 비결의 진인해도출(眞人海島出)에 비유하면서 포교에 열성을 다 했다 이후에 서산(西山) 아산(牙山)지방의 교인의 수효가 수백세대(數百世代)에 이르었고 인접지역인 공주(公州) 천안(天安)등지로 전파되어 적지 않은 교인이 늘어났다.

  

홍 범초는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의 부친까지 언급하며 보천교시절 이 상호 형제를 따른 혁신파로 매도함과 동시에 안 운산 총사수가 이 상호를 해도진인(海島眞人)으로 비유하면서 포교했다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단체를 탈취하고 뿌리역사를 날조한 이 상호로부터 허위 날조된 가르침을 사주(使嗾)받았거나 홍 범초 개인의 상상으로 적은 소설에 불과합니다.

  

<대개벽경>에, 어느 성도가 상제님께 묻길 무진기사에 진인이 해도에서 출현한다는 설이 있사온데 믿을만 하옵니까? 말씀하시되 나의 덕을 피는 자는 무진년에 세상에 기두하니라, 천지대운이 서전서문에 있노라. 내 조정에 설자는 서전서문을 만독하라. 말씀하시되 내도 아래에서 이 서문으로 망하는 자 한 사람 있고 흥하는 자 한사람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상호가 <대순전경>을 간행하여 태모님께 올리자 태모님께서 아무말씀도 않으시고 담뱃대로 바닥에 놓인 책을 옆으로 휙 밀쳐버리셨습니다. “이 서문으로 망하는 자 한 사람 있고 흥하는 자 한사람 있느니라.”에 대해 무자(戊子:道紀 18,1888)년 2월 생인 이 상호의 현무경 자부(子符)를 참고로 보면 상제님은 크게 보아 <충자充者는 욕야慾也라 이악충자以惡充者도 성공成功하고, 이선충자以善充者도 성공成功하느니라(玄武經)>라 경계하시고 반면 임술(壬戌:道紀 52, 1922)년 6월생인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의 현무경 도안都安 세 살림부로 시작되는 문왕도수 술부(戌符)에 “사무여한부(死無餘恨符)”라 하셨습니다.


진인이 해도에서 출(出)한다는 말씀에는 답을 하지 않으셨고 바로 나의 덕을 펴는 자는 무진년에 기두한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이 상호는 기사삼월기망에 대순전경이 출간 되도록 시점을 맞춘 것일 뿐이지 기사삼월 기망에 경전이 나오다는 공사는 어디에도 없는 구절입니다. 무진년은 바로 상제님 숙구지 공사로 구월도에 태모님이 이어서 문왕이 일어나는 공사를 보시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이 상호는 무진기사 진인해도출 비결을 상제님의 무진년 후진주 기두설에 연관시켜 자신이 상제님 진리를 펴는 주인공으로 크게 착각했습니다.

  

더욱이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의 부친 안 병욱(安柄彧)은 이 상호· 이 정립 형제를 따른 적이 결코 없습니다. 당시 일제의 협조를 얻어 보천교 혁신운동을 벌이며 주먹깨나 쓰는 역사(力士)를 동원해 보천교 간부들을 폭행해 사경에 빼뜨리고 보천교 재산을 횡령하는 등 불의한 이 상호 형제 추종자를 제외한 모든 보천교인이 이 상호· 이 정립 형제에 대해 악평을 한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음이 보천교 정사(正史)인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에 나옵니다.

  

동시에 총사수의 연원으로 목화토금수 방주제 아래 조직인 8교리 직책에 있으면서 이 정립의 결혼을 성사시킨 경상도 지역의 대연원주 배 동찬(裵東燦)이 총사수 은퇴 후 이 상호 · 이 정립 형제의 신앙촌 운동에 부응하여 용화동에 자리를 잡자 배 동찬(裵東燦)의 160여명 경상도 출신 연비들이 이 상호가 장악한 용화동 증산교 대법사를 집단 탈퇴해 연원주 배 동찬(裵東燦)으로 하여금 왜 피를 토하게 만들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면 알 일입니다.(<용화도장 지킴이> 57P. 張玉 著)

  

이 상호를 추종했다면 당시 몇 안 되는 극소수의 이 상호 혁신파라는 의미인데 이들 극소수 이 상호 혁신파는 이미 보천교 연혁사에 명단이 다 공개되어 있고 소수파인 그들이 그 명단을 내세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터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보천교 역사의 중대한 왜곡일 뿐 아니라 숙구지 문왕의 도수가 출범되는 배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대한 걸림돌이 되는 사실왜곡입니다. 만일 2변 총사수(總師首)의 부친이 이 상호를 추종했던 혁신파라면 이 상호 형제가 부친 안 병욱이나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와 관계가 매우 우호적이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가 이 상호를 해도진인(海島眞人)에 비유하면서 포교했다는 허위, 날조주장은 2변 증산교 대법사를 개창한 단체의 총사수로 이 상호를 용화동 본소에 임명한 내막을 당시 국민(초등)학교 학생이었던 홍 범초가 알았을 리 만무하며 홍 범초의 신앙 연원에 대한 자료나 홍 범초 스스로 고백한 인터뷰를 고려할 때 전혀 사실과 다른 주장에 불과합니다. 홍 범초 형제와 관련해 안 흥찬 총사수의 연원체계 일지도 80년대에 간부들에게 반 공개된 바 있고(*안운산 2변 간부, 온양 이 창제(재)-송 태진(천안 200여명 포교)-천안 이 정득-홍 성찬(홍범초 兄)-범초 홍 성렬) 홍 범초 스스로도 자신에게 도를 전해준 연원이 사실은 안 운산 총사수라는 양심고백을 80년대 중반 신문지상에 발표 한 적 있기 때문입니다.

  

천안 이 정득에게서 도를 받은 형 홍성찬을 추종한 홍 범초는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가 개척한 2변 증산교 대법사 교단의 아산 배방면 박 재근 신도에 의해 범초의 손위 형(당시 중학생)을 따라 수행공부와 함께 상제님 진리를 심화교육 받은 사람으로 자신이 80년대 중반 통일교 주간지 「週刊宗敎」 칼럼에 기고한 5단 기사에서 자신은 대전의 안 흥찬 선생에게 도를 전해 받았다고 양심 고백한 적이 있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그의 주장이 얼마나 상호모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당시 중학생이던 손위 형을 따라 총사수 신도이던 박 재근(당시25세) 집에서 무료 숙식하며 수련을 받고 진리를 들었던 1945년 당시에 나이는 불과 13세에 불과했습니다. 박 재근 신도는 2000년대 까지 평생 총사수를 따라 신앙했습니다.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아무튼 그러면서 신도가 많이 느는디, 내가 25~27세 때 포교를 하면서 아산 천안서 배방면 남리가 있는디, 남리는 한명도 빠짐없이 다 신도를 만들었어. 100% ! 그 못 배우고 무지한 촌사람들에게 어떻게 상제님 진리를 주입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지금 『증산도의 진리』를 보면은 지구 타원형으로 그려놓고 동서남북 해서 ‘인의예지신’해서 하추교차기 개벽기 -우주변화의 원리 도표- 그게 그때 거기서 나온거여. 그게 지금 제군들이 알구서 보니께 우스운 것 같지? 그게 하도, 낙서보다 더 좋은겨.

  

<2변 도운 121(1991).3.4 강론>*하도, 낙서 죽을 때까지 주역공부해도 이 세상 꼬라지를 몰라. 누구도 그것 그려놓고 이야기하면 한 시간이면 우주원리가 싹 들어와! 그것을 내가 개발했어. 인류역사를 통해서 동양문화권에서 가장 알기 쉽게 개발한 게 나여, 누구도 알기 쉽게 포교 전략으로 그런 것을 개발했어. 그게 보천교普天敎에서도 그런 게 없었고, 상제님 진리권에서도 그런 걸 얘기한 사람도 없었고, 유교권·불교권에서 그런 이야기 한 사람이 없었어. 내가 그때 그런 지식의 소유자여. 그렇게 해서 내가 한 시간쯤 얘길 하니께, 전부가 다 만세를 불러.

  

그러니께 내 호주머니 돈이 공금이고 그렇게 4년을 지냈었어. 이 상호 씨를 그날 내버려두면 똥수깐에 빠지게 생겼어. 이 정립 씨는 감옥살이 3년하고 8.15후에 나와서 서울서 하숙하고. 그래서 같이 일하자는 생각에 나가서 밥 먹자고 하면 먹고, 담배 피우고 그랬지.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런데 그 사람이 <대순전경大巡典經> 제호題號 쓴 임경호林敬鎬씨 집에서 하숙을 했어. 그 하숙비도 내가 줬어. 내가 책이나 쓰라고 했어, 이 정립 보고. 그래서 <대순철학大巡哲學>이라는 게 그래서 쓴겨. 그거 책 쓰는 것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쓰는 거 아니쟎어? 한 2년을 썼나 봐. 이 정립 씨가 하숙을 하러 서울 합정동 27번지 근처로 갔어. 서울에도 연락소 하나는 있어야 되쟎어. 그래서 대법사 연락소라고 이 정립 씨가 거기 있었거든? 일을 누가 했냐? 최 규석 씨가 다 했거든? 나이도 많은데 농사짓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것어. 그래서 내가 지금 돈으로 10억 가지고 있었을 겨.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내가 그런 능력을 갖고 뱃심도 좋았고. 영등포 같은데서 마이크 걸어놓고 포교를 하면 석 달 만에 교회가 문 닫았어. 그럼 목사가 와서 뭐라고 그려. 왜 신도관리 못해서 다 잃어버리고.... 재주 있으면 내 신도 다 가지고 가라고 그렇게 포교를 했어. 그러면 신도가 많아지고 그래서 무슨 조직을 해야 할 거 아녀. 그 때 까지만 해도 특별히 교주敎主고 그런 것도 없어. 이 정립(李正立)이 양말, 양복도 다 내가 사주고. 이 상호(李祥昊) 경제문제 다 알쟎어. 누가 그렇게 돈을 줘? 그러면 나 건드리면 그 사람들 경제활동이 없어지거든. 내 의사에 항의할 수도 없고. 이런 문구가 내게 해당될 겨 -동충서 남주북- 나 혼자 활동을 해도 한 대여섯을 활동을 했어. 단시일 내에 활동을 해서 사람을 많이 모았어. 최 규석, 경상도 이 원호 같은 사람들 뭐 나하고 싸울 일이 있었나. 내가 웬만하면 다 받아주고. 그래서 조직을 하자. 그 조직이름을 ❀증산교❀라고 했어.

  

❀증산교❀는 내가 만들어 놓은 거여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신도도 내 사람이고. 포교라는 것은 내 기운을 붙여야 포교가 되어. 그 때는 이 간부들을 어떻게 했냐면. 간부들 전국적으로 모아놓고 조직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간부직을 준다. 감투를 쓸려면 이런 공이 있어야 된다. 우선 먼저 실적을 만들어라. 반드시 내가 절 받고 다짐하고 그런 마음으로 포교를 하면 포교가 되어. 그렇지 않으면 뭐가 되어? 그래도 똑똑한 사람이 간혹 있어, 그렇지만 건방진 수작하고 그러면 그 사람 되덜 않어. 내게다 절을 하고 그 사람들이 되어, 그 사람들하고 조직을 했어. 내 몸뚱이가 하는거지.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러면서도 증산교 교칙을, 조직을 하는데. 그 때는 이 상호 씨한테 청음 선생이라고 했어. 우리 아버지 연배니께 말여. 당신이 의통 얘기하는데 천하에 다 공개된 사실인데. 내가 당신한테 받은 게 뭐가 있냐? 내가 당신 지켜주고 당신 동생 생활시켜 주고 그런 거 밖에 없는데 조직으로 하자. 그래서 내가 <수주>여. 이 상호 씨가 <토주>고. 내가 포교한 김 종렬이가 화주이고. 경상도 이 원호라는 사람이 목주고. 서울 합정동 27번지 최 규석이라는 사람이 금주여. 내가 조직을 위해서 조직 정비하고 의통을 이 상호 씨에게 반환을 했어. 받건 말건 동지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역사적으로 이 상호 씨 밑구녕 닦아주기 위해서 생겨난 게 아니다. 다만 상제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차 교주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리의 사도로서 그러는 거지.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이 정립이 50여살 넘었을 때 자기 집이 없으니께, 마누라도 없고. 이 정립이 돈 일 푼이 있나? 또 늙었고 해서 이 정립한티 시집온다는 사람도 없고. 그런 사람이 장가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혀. 그건 지 부모도 어떻게 하덜 못혀. 그래서 내가 안 되는 일이 어딨냐고. 내가 결혼시켜 준다고 말여, 내가 책임진다고. 그렇게 해서 결혼시켜서 아들 삼형제를 낳게 해줬어! 그 중에는 교수도 있고. 이 정립이는 신명이 다할 때까지도 나한테 은혜를 다 못 갚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대법사大法社에 입사원서여, 입사원서에 입사금으로 그때 돈 50원을 받았어. 쌀 한말 값이 50원했어. 그래서 이 상호 씨 보고 입사금入社金으로 쌀 팔아 먹어라. 그래도 됩니까?. 내가 그래라고 했으니 되는 거 아니냐? 그런데 포교를 못하니께, 입사금入社金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려. 그것도 안 되니까 옥성광산의 아랫 칸이 비었고 그랬으니까 가족을 전부 더불고 오라고, 내가 쌀을 팔아주마. 쌀 밥 먹게. 이사하구서 내가 쌀값을 주니께 좋은 옥배미 밥을 먹는단 말여. 이 상호씨 부인이 배가 아퍼서.... 이 상호씨 살림도 내가 돌봐 주었는디 말여, 신도들도 드나들고.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러면서 그네들도 그런대로 다 밥 먹고 살게 해줘. 이 상호 씨 부인이 하얀 쌀밥을 보니께 ....이 상은 씨가 금평호 오리알터 <법종교> 있쟎어 글로 가 버렸어. “우리 집 안사람이 인간적으로 (이상호 부인이) 미워서 여기 안 있는답니다.” 그래서 나갔어. 이 상호 씨 부인 미워서. 이 상은 씨는 그렇게 못살게 해서 잃어버리고. 또 이 돈영 씨도 꼴 보기 싫다고 그리 가 버렸어. 이 상호 부인 하는 짓거리 때문에.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이 돈영 씨가 포교한 이 원호, 당시 65살 정도 됐을까? 도체 조직할 때 사람이 없으니께 목주로 하고. 거개가 이 상은, 이 돈영 그런 사람들 많이 끌고 그랬거든. 화주가 내 신도다 말여. 이 상호 심부름꾼 그런 거 하고 싶지 않다 말여. 김 종렬 씨 같은 이, 최 규석 씨 같은 이, 목주로 있는 이 원호 같은 이 말여, 다 내 영향권에서 일하고 있고.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 사람들하고 같은 위치에서 이 상호 씨 밑에서 있을 수 있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래서 내가 조직에서 빠졌다 말여 할 수 없이. 실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

  

  

이에 대한 사실판단은 당시의 정황을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풀리는 문제이므로 다음에 계속 설명되는 2변교운의 내막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면 홍 범초가 이 상호· 이 정립에 속아 얼마나 허무맹랑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인지 명백히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홍 범초 역시 이 상호 · 이 정립이 뿌리부터 말살한 2변 교운의 거짓말에 속은 피해자 중에 한사람이라 생각되지만 그렇다 해서 그의 역사적인 허물까지 면죄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상제님 천지공사에 있어 그동안 숙구지 문왕의 도수를 제대로 이해하는 가름이 되는 분기점이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동년 8월에 이르러 교중(敎中)에서는 상호(祥昊) 등의 야심을 탐지하고 중벌(重罰)의 과(科)에 붙였다. 상호(祥昊)는 본시 사회에서 내쫓긴 자(社會出脚者)로 교(敎)를 위하는 공공심(公共心)은 없고 자기를 살찌우려는 마음(肥己心)이 많은 사람이라. 경성 양해시(諒解時)에도 교주에 대한 체포령(逮捕令)과 각 방주(方主)의 체포장(逮捕狀)은 취소하도록 주선한 것이 없고 자신만 활동하기 편의(便宜)하도록 주선하였으며, 김 홍규 등 체포 수금(囚擒) 사건에도 하등의 주선력이 없이 한도 밖에 방치하였고, 교중 공금 4 만여 원 압수 사건에도 하등의 주선력이 없다가 필경 국고로 편입이 되었고, 또 경성(京城) 가회동(嘉會洞)과 창신동(昌信洞) 진정원(眞正院) 가옥 및 대지(垈地)를 저의 단독명의로 증명권(證明權)을 총독부에 제출 등록(屆出)하야 소유를 만들었으며, 또 망령되게 교주 법통 계승(繼統)을 몽상하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전후소행이 모두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다가 이 기회(此際)를 틈타 경쟁(逐)해 반역자로 화하야 보천교 혁신인이라 자칭하고 교주를 성토하며 방주(方主)를 능욕하고 사회단체와 악수하야 교주 성토문과 및 혁신 이유의 선언서를 인쇄하야 전 조선(全鮮) 교도에게 발송 선포하야 인심을 난동(亂動)하고 사람으로 감히 행하지 못하는 바를 감행함으로 교중에서는 이 상호(李祥昊) 토죄문(討罪文)을 전 조선(全鮮) 교도에게 발부하고 간부 수인이 상경하야 이 상호를 정중히 질책한 즉 저들(彼等)은 유도 숙련인과 역사(力士)를 모집하였다가 간부 등을 난타하야 사경(死境)에 이르므로 인근 파출소에 급히 고발하니 경관이 웃어 가로대 종교가(宗敎家)에 투쟁함은 고래(古來)로부터 그러한 일이 많이 있다 하고 냉정히 물리쳤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진정원(眞正院)의 건물 대지(垈地) 및 비품 등 수 만원의 재산은 보천교(普天敎)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무관계한 혁신파가 점거함으로 이를 돌려받기(取戾) 위하여 경성 지방법원 검사국에 형사고소를 제기하였더니 검사국에서는 죄상을 취조(取調)도 아니하고 마침내 기소중지의 처분을 하였다. 그 후에 이 상호(李祥昊)는 교중에서 횡령한 금전을 다 소비하고 지나(支那)지방으로 망명하다. 동시에 이 성영(李成英)은 보광사(普光社) 인쇄기 및 활자를 매각하야 지나(支那)로 동행해 가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이 해 동월 그믐(晦)경에 이 상호(李祥昊)가 내알하다. 지난 해 갑자(道紀 54, 1924) 8월에 이 상호가 혁신운동이 불성공함으로 지나(支那:중국)에 망명하였다 함은 위(上文)에 기술한 바어니와 그 내용 사실을 들은 즉 당국자 중에서 이 상호(李祥昊)와 친밀한 사람이 있어 이 상호를 권고해 가로대 군(君)이 조선 내에서난 피신할 곳이 없으니 만주 방면에 건너가 개척 사업에 종사하면 우리도 될 수 있는데 까지 원조하고 선도 하겠다 하고 김 응두(金應斗)를 수행케 하야 만주에 들어가라 하였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이 상호(李祥昊)는 당국자의 지도 후원 아래에 상등(上等) 양복(洋服)을 착용(着用)하고 금은보석(金銀寶石)의 장신품(裝身品)을 갖추며(俱) 그 첩(妾)인 여학생도 극(極)히 사치적(奢侈的)으로 장식하야 동반(同伴)으로 만주에 들어가 이름(名字)을 바꾸어(改) 전라남도 이(李) 모(某)라 가칭하고 백만장자로서 만주 토지를 매수하려 왔다고 선전하였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그런대 금전이라 하면 친자식 사이(親子)도 모른 체 하는 만주 각 사회단체 등은 이 상호(李祥昊)의 내력을 철저히 탐사한 후에 그 사람(彼)은 보천교의 금전을 절취하야 왔으니 그 재물을 우리들이 나누어 먹음(分食)이 가하다 하야 주야로 협박 공갈하여 일방으로난 지나 관헌에게 불량분자로 고발하야 이 상호를 포박(捕縛) 수금(囚禁)하였다.

  

<보천교 연혁사(普天敎 沿革史)>*이 상호(李祥昊)의 친동생(實弟)인 순탁(淳鐸:보천교 자금으로 교토대 상경대 유학하여 교토의 개신교에 다니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언더우드와 함께 연희전문 창립. 각기 초대 의과 학장, 초대 상과 학장. 좌익 사회주의 운동. 해방 후 기획처장 역임. 6.25때 월북)이 경성에서 그 형이 잡혔다는 말을 듣고 경무 당국에 교섭하야 당국의 소개장을 얻어 만주 일본 영사에게 교섭하고 영사는 지나 관청에 교섭하야 이 상호(李祥昊)를 석방하니 이상호 형제(이상호, 이성영)는 만주를 벗어나 을축(道紀 55, 1925) 정월에 경성에 도착하야(이 성영은 입지가 없음을 알고 지나로 다시 건너가 1928년에 귀국)

  

2)홍범초는 <범증산교사> -운산(雲山) 대법사(大法社) 간부와 불화(不和)-라는 소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인신공격성 소설을 썼습니다.

  

  

<범증산교사>*대법사(大法社)는 신묘(辛卯 1951)년 음력 2월에 원평 장승백이에서 호신부(護身符)와 인패를 만들 때 인육(印肉)의 제조에 필요한 경면주사(鏡面朱砂)15근을 운산이 자기의 연원(淵源)지역이라고 주장하는 공주(公州) 부여(夫餘)지방에서 거출하여 냈고, 의통구호단의 조직국장의 책임을 맡아 자긍(自肯)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운산이 호신호부(護身戶符)의 배부(配付)와 의통구호단의 인원배정(人員配定)을 자기의 연비(連臂)에 유리하도록 짠데다가 장승백이에서 만든 호신부와 인패를 자기 연비 교인들을  시켜 모두 가져 갔으므로 경상도(慶尙道)의 이원호(李元浩)같은 이는 ‘충청도 사람만 사람이냐 만일 안세찬(安世燦)연비의 의통구호단이 경상도에 내려오기만 하면 그냥두지 않겠다; 고 분개했다.  

  

  

이는 상제님 진리의 신앙인으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매우 불량한 진리왜곡입니다. 해방전후 운산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가 증산교 연원 방주조직을 개창했을 때 홍 범초는 초등학생으로 중학생인 형을 따라 천안의 이 정득에게서 도를 전해 받은 홍 성찬(홍범초 兄)을 따라 아산 배방면 박 재근 신도 집에서 수련을 하며 도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 부친이 어린자식들이 상제님 신앙권에 몸을 담그자 증산상제님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해서 그 모친이 물에 빠져죽는 우환이 일어나고 어린 범초는 충격을 받아 기독교 예배당을 다니다가 커서 공주사범학교를 다니던 57년 전후 무렵 용화동엘 드나들며 이미 안 흥찬(安興燦) 총사수(總師首)가 개창한 증산교 역사를 말살한 이 정립의 가르침을 착실히 따르게 됩니다.

  

당시 공주 사범 전문학교 학생이던 홍 범초는 당시 대학생이 아주 귀할 때여서 남주 이 정립으로부터 아주 기대받는 신도로 총애를 받으며 가까이합니다. 증산교 대법사의 뿌리역사를 왜곡시킨 장본인 밑에서 올바른 역사를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심성이 불의로 물든 사람에게서 정의를 배울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올바른 모습은 그 사람의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곤존 하느님이신 태모님을 박해한 사실은 워낙 큰 죄라 감히 평가할 수조차 없어 제외한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진리를 밝혀준 스승으로서 천지공사 내용을 일일이 구술 지도해준 보천교 차 경석 교주를 수없이 기만하고 속였으며 최종적으로 혁신운동을 벌여 배사율을 범하고 뛰쳐나간 것으로도 모자라 또다시 김형렬 수석성도의 미륵불교에 들어가 미륵불교 경전을 만든다고 기만하고 진리만 전수해 듣고 다시 또 배사율을 범하여 배신한 채 경전을 출간한 사람이 바로 이 상호이며 그와 항상 일체로 동행한 동생 이 정립입니다.

  

보천교 시절 이 상호 이 정립 형제의 가장 큰 죄는 일제에 이중으로 매수되어 형사대를 이끌고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독립운동 자금처였던 550만 비밀교단의 정체와 신비화된 월곡 차 경석 교주의 비밀 거처를 급습해 공개시켜버린 소위 “보천교 양해”사건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태모님이 강조하시는 참사람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이 상호, 이 정립은 역사에서 도덕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이미 아웃인 사람입니다.

  

태모님은 용화동 동화교 합동교단을 열고 이들 형제에게 온갖 핍박을 당하고 “조강맥식(糟糠麥食)이라도 임옥자손(臨沃子孫)을 영솔(領率)하고 제반사(諸般事)를 결탁(結托)하리라” 결론을 내신 바 있습니다. 즉 변변챦은 거친 보리밥만 먹는 한이 있더라도 심법이 그릇된 용화동 이 상호 이정립 형제를 비롯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성산 임옥자손 데리고 천지공사의 제반사 모든 일을 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대순전경 편자로서의 불멸의 공덕은 부정하지 않지만 과거 다른 경전이 없을 때는 대순전경이 독보적인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대순전경 이전의 근본 1차 사료인 차 경석 성도의 <보천교 교전(普天敎敎典)>과 김 형렬 수석 성도의 <동곡비서(銅谷秘書)>와 <중화경(中和經)>이 공개된 바 있고 김 낙원의 <용화전경(龍華典經)> 그리고 이 중성의 <대개벽경(大開闢經)>과 정 영규의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을 비롯하여 그 이외에도 상당수의 진리체계가 공개되어 상제님 진리의 큰 퍼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공(公)과 사(私)는 구분해야 하는 법이며 정의와 불의 그리고 선과 악은 신앙인에게 바르게 제시해 줘야 올바른 법통과 종통이 드러날 것입니다.

  

홍 범초가 제시한 다음의 대연원주들은 거의 모두 안 흥찬 총사수의 직계연원입니다. 45년 해방이후 방주제로 운영한 수방주(水方主) 총사수가 이상호 토방주(土方主), 이정립 사성(司成:토방주 보좌역)으로 임명하고 원평의 움막집에 세들어 사는 청맹과니 이 상호씨를 경제적으로 거두어 용화동 증산교 본소에서 중노년층을 규합하도록 배려합니다. 노회한 두 형제는 젊은 총사수가 포교차 부재한 때가 많자 보천교 시절의 사기협잡의 정신을 못 버리고 총사수를 애송이 취급해 모함하여 직계 간부들을 틈을 이간시키고 금산도득 문제를 제기하여 신앙촌화 주장과 범 증산계 통합문제로 교단운영의 주도권을 쥐며 인권을 자신들에게 집중시킵니다.

  

  

<2변 도운 안운산 성도사 121(1991).3.7 강론>*(신앙촌 건립을 주장한 이상호)“당시 이 상호씨 왈, 차 경석 성도 태모님 떼어내듯이... 천사님 금산 도득한다 했는데 다 팔아 용화동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하여 용화동 신앙촌화 유도를 주장했다. 용화동에 인성을 쌓고 꽃밭이 이루어지니 여기가 기지니 전 재산을 팔아가지고 와야 한다고 틈만 나면 신도들을 설득했다. 나는 정당한 사람이라, 그러지 마라. 바르게 해라. 나는 내가 포교한 사람이고 그들 안녕질서를 책임 질 사람이고 당신들은 곧 죽을 사람이다. 내 몸뚱이 내가 가는 곳이 곧 본부다. 사람이 모이니 그곳을 본부로 정했을 뿐이다.” “조직을 개창해 만든 나를 따돌리고 조직을 거머쥔 그 사람들의 재주도 비상하다면 비상하거니와 실제로는 당시 신도들이 이상호 이정립에게로 복종해 들어가 나를 등지고 지금까지 나에게 연락하는 신도들이 단 한 명도 없다.”

  

<증산도 도전(甑山道 道典)>*(들어가는 말)김자현 성도의 손자 김택식에 의하면 “조부님은 이상호에게 증언을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자현 성도는 김형렬 성도, 김갑칠 성도에게도 당시 보천교에서 출교된 뒤 태운장의 미륵불교 신도로 들어온 이상호에 대해 “한 판 차려 보려는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전해 주지 마시오.” 하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다. 이상호에 대한 이런 비판적인 의식은 당시 주요 성도들에게 널리 파급되어 있었다.

  

  

다음 홍 범초 글은 <범증산교사>에 담긴 2변 교운 내용 전체가 허위 왜곡사실인 것처럼 90% 이상 거짓말입니다. 이는 홍범초의 <범증산교사> 2변 교운 내용이 거짓으로 왜곡 말살된 이 정립의 <증산교사> 내용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며 범초가 이 정립 살아 생존 시 새빨간 거짓말 역사를 착실히 전수받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내막을 알 리 없는 일반 사람은 이 상호 이 정립이 말살한 2변 증산교 대법사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어 진리의 올바른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범증산교사>*대법사(大法社)는 신묘(辛卯 1951)년 음력 2월에 원평 장승백이에서 호신부(護身符)와 인패를 만들 때 인육(印肉)의 제조에 필요한 경면주사(鏡面朱砂) 15근을 운산이 자기의 연원(淵源)지역이라고 주장하는 공주(公州) 부여(夫餘)지방에서 거출하여 냈고, 의통 구호단의 조직국장의 책임을 맡아 자긍(自肯)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운산이 호신호부(護身戶符)의 배부(配付)와 의통 구호단의 인원배정(人員配定)을 자기의 연비(連臂)에 유리하도록 짠데다가 장승백이에서 만든 호신부와 인패를 자기 연비 교인들을 시켜 모두 가져갔으므로 경상도(慶尙道)의 이 원호(李元浩)같은 이는 ‘충청도 사람만 사람이냐 만일 안 세찬(安世燦) 연비의 의통 구호단이 경상도에 내려오기만 하면 그냥두지 않겠다; 고 분개했다.

  

<범증산교사>*당시 지방별로 많은 교인을 거느린 대 연원주격(大淵源主格)인 경상도(慶尙道)의 이 원호 배 동찬(裵東燦), 경기도의 원 제철(元濟喆) 유 흥고(柳興臯), 충청도의 김 종렬(金鍾烈)등은 운산(雲山)의 처사가 부당함을 지적하고 사사건건(事事件件)대립하게 되자 운산(雲山)은 자기가 많은 교인을 포교하여 교세를 떨치게 하였고 의통 인패의 제작을 가능케 하였으며 의통 구호단을 조직해 놓으니 이 공로는 인정해 주지 않고 교주 청음과 남주는 자기에게 대드는 두령들 편을 들어 자기를 몰아 내려 한다고 오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오해는 교본부(敎本部)에서 박 복만(朴福萬)을 시켜 자기를 해치려 했다고 까지 항의하게 되었으니 운산(雲山)이 청음(靑陰) 남주(南舟)밑에서 교(敎)를 함께 신봉할 수 없게 되어 신묘(辛卯 1951년)년 가을에 대법사(大法社)를 떠났다. 이로써 운산은 을유(乙酉 1945)년 9월 19일 대법사 창립에 참가한 이후 6년여 간 몸담아 종교 활동을 해온 대법사와 인연이 끊어지게 되었다.

  

  

김 종렬(金鍾烈)과 배 동찬(裵東燦)은 특히 총사수의 사람으로 배 동찬은 총사수(總師首)의 명으로 영덕울진의 자기고향출신인 장 옥을 이 정립과 연결해 결혼까지 해 준 사람이며 그의 아들은 박 기백(朴耆伯)(용화동 교령(교주직) 및 증산신도친목회(甑山信徒親睦會) 회장 역임)의 아들 박 주호와 함께 총사수를 도와 의통(醫統)을 직접 제작한 실무 팀이기도 했습니다. 화방주(火方主)였던 김 종렬(金鍾烈)은 초기 총사수의 명으로 용화동 본소를 지은 사람으로 방주직 제도 하에서 토방주(土方主) 이 상호의 욕심을 눈치채고 총사수(總師首)에게 교주직(敎主職)에 오르기를 간청한 사람입니다.

  

용화동 본소는 총사수가 결혼시켜준 이 정립이 용화동 본소에 임명된 이 상호와 함께 경상도 지역 대연원주인 배 동찬(裵東燦)이 주도하여 다시 지어지게 됩니다. 이 당시 서울에 살림집을 두었던 이 정립이 수시로 개축공사를 살피러 내려간 것을 보면 이미 그때부터 총사수를 심중으로 열외로 하고 마치 물 만난 듯이 보천교시절 해도진인(海島眞人)의 주인의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 흥찬 총사수가 20년 말점도 도수를 가슴 속에 담고 대휴게기를 선언하며 장막 뒤로 사라지자 의지처가 없던 대부분 간부나 신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경상도 지역 대연원주인 배 동찬은 이 정립 부부를 성혼시킨 당사자였기 때문에 이 상호가 주장한 신앙촌화의 이슈 속에 휘말려 신앙생활 역시 그 속의 한 가족 생활권으로 평생을 신앙하고 맙니다.(89년 선화) 안 흥찬 총사수가 장막 뒤로 사라진 뒤 배 동찬 대연원주가 아무 연원관계가 없는 이 상호형제의 용화동 생활권 속에 휩쓸려 가던 즈음 그가 거느렸던 160여명의 직계연비들은 보천교시절 일제에 매수되어 보천교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혁신파 두목으로 악명을 익히 아는지라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서로 모여 합의를 보고 한 날 한 시에 이 상호가 장악한 용화동 대법사 휘하를 떠나 선불교(법종교)로 들어가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마 용화동 증산교 대법사 역사 중 가장 큰 충격으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인해 그들을 직접 포교한 배 동찬(裵東燦)은 당시 피를 토했다고 이 정립 부인 장 옥 여사는 전합니다. 이 상호의 명을 받들어 자신의 신앙 뿌리인 안 흥찬 총사수를 암살하려다 붙잡혀 용서해주고 풀어준 박 복만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홍 범초는 어린 시절이라 알지 못하는 일이므로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홍 범초가 이에 대해 언급한 것은 부적절한 문제로 보입니다. 후일 박 복만은 거사에 성공은 못했지만 높이 평가되어 용화동의 이 상호, 이 정립 휘하에서 평생 간부생활을 하며 황 원택, 홍 범초, 정 영규 등 간부들과 서로 선생님이라 호칭하며 편히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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