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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링크 #1    http://www.kormt.co.kr/ssangaya.html
링크 #2    http://www.theosociety.org/pasadena/isis/iu1-12.htm
제 목    흥선대원군의 야망이 묻힌 곳 남연군 묘



흥선대원군의 야망이 묻힌 곳
남연군 묘
http://72.14.253.104/search?q=cache:b1hC-1UnqoUJ:www.etimes.net/service/isuperpage/ShellView.asp%3FArticleID%3D2006090808582800673%26LinkID%3D6002%26Newsset%3Dloc_kyungin+%EC%A0%95%EB%A7%8C%EC%9D%B8&hl=ko&gl=kr&ct=clnk&cd=13
http://www.kormt.co.kr/ssangaya.html
http://www.fungsoo.com/leftsub10/leftsub10-10.htm
풍수가 정만인과 이하응http://sooni.donga.com/d_authorR/auEssay_view.htm?ck_author_id=245&es_id=1769&page=2&S_genre=

정만인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62157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62321


도지정(기념물)
지정번호 : 제80호
위     치 :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지정월일 : 1989.12. 9  

? ~ 1822(순조22) 조선말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부친 이구의 묘이다. 명당자리를 찾아 옛 가야사를 불지르고 이곳에 대원군 부친의 묘를 썼다.  


남연군 묘는 조선조 말 야심가였던 흥선대원군의 야망이 묻힌 곳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안동김씨 세도가가 정권을 좌지우지하고 종친들은 조금이라도 잘못 보이면 역모로 몰려 죽음을 당하거나 귀양가기가 예사이던 시절이라 흥선군은 한편으로는 파락호로, 또 한편으로는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왕권을 강화하여 나라를 굳건히 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으니 그 오랜 계획을 실천에 옮긴 교두보가 바로 아버지 남연군 묘를 이곳으로 옮긴 일이다. 그 옮긴 장소와 옮기던 내력이 모두 숱한 뒷얘기로 남았으니 황현의 『매천야록』에도 소상히 전하고, 조금씩 다른 점이 있지만 예산의 향토사가 박흥식 씨의 『예산의 얼』에도 전한다.

1822년에 남연군이 돌아가고 난 뒤 어느 날 한 지관이 찾아와 명당자리를 알려 주었다(한편으로는 흥선군이 당대의 명지관 정만인에게 명당자리를 알려 달라고 했다고도 한다). 지관은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는 자리(二代天子之地)가 있고 광천 오서산에는 만대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가 있다고 했다. 흥선군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가야산을 택했다.

그러나 정작 가야산에 지관이 가리키는 자리는 이미 가야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었다. 게다가 명당이라는 바로 그 자리에는 금탑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자리에 아버지 묘를 쓰기 위해 흥선군은 차례차례 일을 벌여 나갔다.

그는 우선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임시로 탑 뒤 산기슭으로 옮겼다. 그 땅은 영조 때 판서를 지낸 윤봉구의 사패지로 그 후손에게서 자리를 빌려서 했다. 연천에서 가야산까지 오백리길을 종실의 무덤을 옮기는 일이었으므로 상여는 한 지방을 지날 때마다 지방민들이 동원되어 옮겼는데, 맨 마지막에 운구를 한 '나분들'(남은들) 사람들에게 상여가 기증되었다. 이 상여는 지금 남은들 마을에 보존되어 있다.





두번째 일은 가야사를 폐하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흥선군이 재산을 처분한 2만 냥의 반을 주지에게 주어 중들을 쫓아내고 불을 지르게 했다고도 하고, 충청감사에게 중국 명품 단계벼루를 선사하여 가야사 중들을 쫓아내고 마곡사의 중들을 불러다가 강압하여 불을 지르게 했다고도 한다. 절집을 폐허로 만든 뒤에는 탑을 헐어 내는 일이 남았다. 탑을 헐기 전날 밤 잠을 자던 흥선군의 네 형제는 똑같은 꿈을 꾸었다. 꿈에 수염이 흰 노인이 나와 "나는 탑신이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나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느냐? 만약 일을 벌인다면 네 형제가 폭사하리라"고 하는 것이다. 깜짝 놀라 깬 형들이 꿈 이야기를 하니 모두 같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은 흥선군은 "그렇다면 이곳은 진실로 명당자리"라며 운명을 어찌 탑신이 관장하겠느냐고 하여 형들을 설득했다. 마침내 탑을 부수자 바닥에 바위가 드러났는데 도끼가 튀었다. 그때 흥선군이 "나라고 왜 왕의 아비가 되지 말란 말이냐" 하고 하늘에 소리친 뒤 도끼를 내리치자 바위가 깨졌다고 한다.

그 다음해인 1845년에야 뒷산에 임시로 모셨던 곳에서 묘를 옮겼다. 뒷날 도굴의 일을 염려하여 철 수만 근을 붓고 강회로 비비고 봉분을 했다. 임시묘가 있던 곳은 '구광지'(舊壙地)라고 하여 지금도 움푹 패어 있다.

남연군 묘의 지세는 한마디로 풍수지리가 일컫는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뒤로 가야산 서편 봉우리에 두 바위가 문기둥처럼 서 있다는 석문봉(石門峰)이 주산이 되고, 바라보아 오른쪽으로는 옥양봉, 만경봉이 덕산을 거치면서 30리에 걸쳐 용머리에서 멎는 청룡세를 이루고, 왼쪽으로 백호의 세는 가사봉, 가엽봉에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맥이 금청산 월봉에 뭉쳐 감싼 자리이다.
동남향을 바라보면 평야를 지나 멀리 60리 떨어진 곳에 있는 봉수산(鳳首山)이 안산이 된다.

남연군 묘 앞에 있는 장명등 창으로 남쪽을 바라보면 그 동그란 창 새로 보이는 곳이다. 또 청룡맥의 옥녀폭포의 물과, 백호맥의 가사봉 계곡의 물이 와룡담에 모였다가 절 앞에서 서로 굽이치며 흐르니 임수(臨水)의 지세도 얻었다.
가야사는 그 두 물줄기가 합치는 곳에 있었다.

금탑이 있던 자리라는 남연군 묘는 그 뒤 우뚝 솟은 언덕빼기이니, 흔히 절 마당이나 법당 앞에 탑을 놓는 방식과는 달리 절 뒤쪽의 언덕에 탑이 있었던 것만도 예사 자리는 아니다. 옛 탑 자리, 곧 남연군 묘에 올라가려면 요즈음에 해놓은 층계를 꽤 걸어올라가야 하며, 위에 올라 내려다보는 시야는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남연군 묘에서 보아 왼쪽 산기슭에 돌부처가 한 분 있다. 풍채도 자그마하고 생김도 그만저만한 민불인데, 재미있는 것은 골짜기 앞쪽이 아니라 골짜기를 향해 있다는 점이다. 그 내력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남연군 묘의 풍수에서 보면 그쪽이 좀 비어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골짜기로 빠져나가는 기를 막느라 부처를 세웠다는 말이 있다. 또 하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돌부처는 원래 거기에 있었는데 흥선군에 의해 가야사가 불타 버리자 그 모습이 보기 싫다고 돌아섰다고도 한다.

흥선군은 이 자리에 남연군 묘를 쓴 지 7년 만인 1852년에 둘째 아들 재황(載晃, 아명은 命福)을 얻었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1863년에 이 아이가 고종이 되었으며 그 아들이 순종이 되었으니 2대 천자를 본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두 임금을 끝으로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맥이 끊기고, 남연군 묘는 오페르트라는 독일 상인이 파헤친 바 되었으니 과연 그런 수난을 당하고 2대 천자의 결말이 그렇게 난 자리가 결과적으로 명당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오페르트 사건은 고종 5년인 1868년에 일어났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두 번이나 통상을 요구하다 실패하자 미국인 자본가 젠킨스의 도움을 받고 프랑스 선교사 페롱을 앞세워 상해에서 '차이나호'를 타고 왔다. 덕산군 고덕면 구만포(현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에 내린 그들은 한국 천주교인을 앞세워 와서 남연군의 묘를 파헤쳤다. 밤중에 일어난 급습이었으므로 막을 틈이 없었는데 날이 밝아오고 썰물 때가 다가오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각해 버렸다. 대원군이 선견지명으로 비벼 놓은 강회 때문에 정작 그다지 파헤치지도 못한 상태였다.

대원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잔존하는 천주학쟁이를 가일층 엄단하라"고 지시했으니 이땅 천주교 신자들은 또 한차례 회오리바람을 맞아야 했다. 한편 이 사건은 국제적으로도 물의를 일으켜서 자본주 젠킨스는 불법파렴치죄로 기소됐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 버렸다.

흥선대원군이 폐해 버린 가야사는 성종 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 에서는 수덕사보다 앞에 들고 있어, 수덕사보다 큰 절이었던 듯하다. 형승(形勝)조에 설명한 '금탑'(金塔)은 "그 윗머리는 구리쇠로 씌우고 네 모서리에 철사를 꼬아 만든 줄을 걸어 늘어뜨리고 풍경을 달았다. 그 형태가 웅장하고 만든 법이 기이하고도 교묘하여 다른 탑과 다르다"고 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공주 마곡사에 있는 라마교 방식의 탑처럼 탑 상륜에 구리쇠로 보개를 씌웠는데 빛을 받으면 반사하여 번쩍이므로 금탑이라 한 듯하다. 그렇다면 고려 말기에 건립되었을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도 공민왕 7년(1358)에 나옹화상이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고 적고 있다. 또 가야사 보웅전에는 철불 세 분이 모셔져 있었는데 불에 타 녹아서 쇳덩어리가 되었다. 철불이었다면 신라 하대 또는 고려 초중기의 것일 수 있다.

뒷날 봉산면의 대장장이가 파묻혀 있던 쇳덩이를 녹여 쓰려고 했으나 가루가 되었다고 한다. 남연군 묘 아래쪽의 넓은 절터는 지금 논밭으로 변해 버렸는데 군데군데 깨진 석등, 부도, 탑비 조각이 있었으나 더러는 묻히고 더러는 캐 가서 건물 자리와 주초석이 남아 있다. 이곳에 있던 석등 화사석은 보덕사에 옮겨져 있다.

탑을 깨부수고 절을 폐한 것이 마음에 걸린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즉위한 몇 달 뒤에 가야골 아래 상가리에 한양에서 목수를 보내어 은덕을 보답한다고 지은 절이 보덕사(報德寺)이다. 장남 재면(載冕)의 이름으로 지은 이 절은 왕실의 원찰이 된 셈이다. 규모로는 보잘것없어서 가야사의 영화를 재현하지는 못했던 이 절에 있는 가야사 석등 화사석은 그나마 가야사가 어떤 절이었는지를 말해 준다. 팔각의 몸돌에는 돌아가며 창이 넷 뚫려 있고 그 사이사이에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모두 귀신을 밟고 있는 형상으로 갑옷이 정밀하고 천의 자락이 날리는 품이 예사 조각과는 다르다. 석등의 몸돌만도 높이가 87cm나 되니 전체 크기는 꽤 컸을 듯하며 형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이 가야사 석등의 운명만 보아도 가야사가 양택으로 명당이었는지도 의문스럽다. 2대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도 흥선대원군의 아들과 손자까지가 왕이 되었기에 붙은 후대의 해석일 수 있다. 그러나 남연군 묘에 얽힌 처절한 이야기들은 우리 근대사의 아픈 한 구석으로 남아 있다. ■



○ 교통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다. 예산에서 삽교를 지나 수덕사로 가다 보면 덕산이 나온다. 덕산 초입에 있는 한화 덕산 주유소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300m 가면 덕산슈퍼가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계속 직진해 덕산 초등학교를 지나면 대승철물점을 사이에 두고 길이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 10번 군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길 왼쪽으로 덕산(옥계)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서부터는 비포장길이 남연군며가 있는 산가리까지 이어진다. 덕산수퍼 사거리에서 묘까지는 약 4.9Km이다. 남연군묘로 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보덕사 입구가 나온다.

승용차는 남연군 묘와 보덕사까지 갈 수 있으나 대형버스는 감가리 버스 정류장 근처에 주차해야 한다. 만불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마을에는 구멍가게가 있을 뿐 숙식할 곳은 없다. 덕산에서 상가리까지 하루 5회 버스가 다닌다.


○ 관련정보
·예산군청 문화공보실(041-30-2221) ·예산문화원(041-35-2441) ·덕산면사무소(041-37-4302)

천자지지(天子之地)’ 란 왕이 배출될 자리란 뜻이고 2대 천자지지란 2대에 걸쳐 왕이 배출될 자리란 뜻의 풍수용어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 아래의 혈(穴)이 2대 천자지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 묘가 조선조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다. 이 묘의 이장비화와 묘의 수난 등을 상·하로 나누어 다루면서 해설을 덧붙인다.

대원군은 남연군의 묘를 현 위치에 이장한 후 아들 명복을 낳았는데 후에 왕위에 올랐다는 설은 알려진 이야기다. 대원군은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명당 자리에 아버지의 체백을 이장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 풍수공부를 하며 자리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유명한 지관(地官)과 명산을 찾던 중 어느 날 정만인(鄭萬仁)으로부터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와 만대에 걸쳐 영화를 누릴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대원군은 만대영화지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2대천자지지를 보려고 나선다. 그 곳에는 가야사(寺)가 있었고 묘를 쓸 자리에는 5층 석탑이 있었다. 정만인이 “이 자리는 묘를 쓰면 10년 안에 제왕이 날 것”이라고 하자 대원군은 정만인의 입을 틀어 막으며 “잘되면 영의정 하나쯤 나겠다”며 입 단속을 했다. 제왕지지에 묘를 썼다는 소문이 나면 당장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원군은 천자지지 혈을 차지하기 위한 일을 벌인다.

대제학 김병학을 찾아가 가보(家寶)인 옥벼루를 잠시만 빌려 달라고 해 벼루를 갖고 영의정 김좌근을 찾아간다. “김대감. 이 옥벼루는 어느 선비한테 난초 한 폭을 쳐주고 얻은 것인데 중국에서 처음 가져올 때는 한 쌍이었으나 하나는 어디로 가고 하나밖에 없다고 하더이다. 나 같은 술꾼이 이 물건을 계속 갖고있다가는 결국 언젠가는 술값으로 없애게 될 것이니 마음에 들면 대감이 가지시오”라고 했다.

옥벼루를 유심히 살펴본 김좌근은 평소 대제학 김병학이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임을 알고 기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 기회에 대원군은 “대감. 그런데 내 부탁이 하나 있소 충청감사에게 내 청을 하나 들어주라는 편지 한 장만 써 주시오”라고 했더니 김좌근은 쾌히 승낙했다. 대원군은 이 편지를 갖고 충청감사를 움직여 가야사 5층 석탑을 헐고 남연군의 묘를 이장한다. 이밖에도 대원군이 남연군 묘를 이장한 이야기는 있으나 어쨌든 가야사는 폐사(廢寺)되고 남연군묘는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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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道 기타 브로그 참조 : http://myblog.moneta.co.kr/yj5288

도선국사는 풍수지리를 잘 알면서 “왜!”자기인생의 운명을 바꾸지 않았을까?
아마도 전국을 다니면서 풍수비기를 만들었으니 모르지는 않았으리니!
그리고 미래의 살 수 있는 명당인지 죽을 명당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풍수지리로 대통령 3명을 만들었다는 유명한 국지사인 고 손석우 선생은 왜 자기 집안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하였을까?
풍수지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척 궁금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 자신의 운명이다.
또한 빈 자리에도 주인이 있기 때문에 명당 주변에 가서도 혈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나 자신도 인생사가 왜 이런 것인지 의문이 들어서 뛰어 넘고자 풍수지리를 독학하였다.
알면서도 못하고 때로는 너무 힘들어 한때는 寅場卯發地로 쓰고자 부모님과 언쟁을 높이기도 하였지만 숨어있는 북진(풍수에서 사)들을 확인하고 인간사가 내 마음대로 않되더라는 것을 !
왕이 나오는 산의 명당과 집터는 풍수에서 말하는 왕사와 북진이 구비되어야 한다.

이제는 주역도 풍수지리도 마무리가 된 시기라는 것을 !
우주순환으로 다시 태어나는 지구를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내 자신이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도 하늘의 뜻일 것이다.
대권과 風水

출처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010/nd2000100160.html

暗葬으로 대권쟁취한 윤보선 전두환,
移葬으로 출세한 노태우 김대중

윤보선·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생가와 선영묘지를 수년간 풍수 답사한 결과 드러난 비밀은 역대 대통령 모두 산 능선의 끝 집에서 태어났고, 일족 중에 명당 풍수에 밝은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역대 권력자들이 추구한 권력지향적 땅이란 어떤 것일까?

●김두규·풍수지리학자·우석대교수 ●안영배·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신 은 죽었다”며 신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린 철학자 니체는 ‘나는 왜 이렇게 똑똑한가’라는 글에서 그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장소와 풍토, 즉 우리 식으로 말하면 풍수(風水)적 조건을 언급하였다.
“어느 누구도 아무 곳에서나 살 수는 없다. 자기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큰 과업을 이뤄야 할 사람은 누구나 이 점에 있어 선택이 제한되지 않을 수 없다. 풍토가 신진대사에 끼치는 영향, 즉 그 부정적 및 긍정적인 영향은 지대하다.

장소와 풍토 선택에 한번 실수하면 자기가 지향하는 목적을 완수할 수 없으며, 아예 그 기회조차 갖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니체는 좋은 땅에서 나올 인물로,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천재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니체는 천재가 나올 수 있는 땅의 조건으로 ‘맑은 공기, 청명한 하늘, 즉 거대하고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을 언급하였다.

그러니 니체가 말한 천재가 나올 수 있는 지리 조건을 염두에 두고 역대 대통령들의 땅을 보면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은 니체와 같은 천재 사상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란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한 자들이다. 니체의 논리에 따르자면 그들의 생가 터는 ‘권력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땅이어야 할 것이다.
과연 집터의 기운은 있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

“무릇 땅에 집을 짓고, 뼈를 묻을 때 받게 되는 것은 그 땅의 기운이다. 땅의 기운에는 좋고 나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즉 땅의 기운을 받아 태어날 때 맑고 탁하고, 현명하고 어리석고, 착하고 악하고, 귀하고 천하고,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되고, 오래 살고 일찍 죽고 등의 차이가 어찌 없겠는가?”

이는 조선조 지관을 선발하는 데 필수 시험과목이었던 ‘지리신법’의 한 대목이다. 특정한 땅의 기(地氣)가 특정한 인체의 기(人氣)와 만나 상생(相生) 관계를 가질 때 발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인걸지령론(人傑地靈論)이다.
따라서 특정한 땅의 기를 받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에 한 명씩 독특한 인물이 나올 수 있다. 반면에 특정 지기(地氣)와 인기(人氣)가 만나 상극 관계를 가질 때 재앙이 일어나기도 한다.

권력과 궁합이 맞는 땅
다시 니체에게로 돌아가보자. 그의 말을 따르면 자기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땅을 선택할 때 한 번 실수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재기 불능 상태가 될 수 있으며 반대로 땅의 선정에 성공하면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은 성공한 대통령이다. 김대중은 97년 대통령 선거 전에 오랜 세월 자신의 정치무대였던 동교동에서 일산으로 이사하였다.

동교동 저택에서는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풍수 술사(術士)의 말을 따랐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이 집을 팔았다. 퇴임 후에는 다시 동교동 옛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이로 보아 김대중의 일산 집은 거주하려는 실질적 목적보다는 풍수 도참설에 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의 이러한 선거전략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800년 전 중국에서 조조(曹操)가 활용한 수법이었다.

후한이 몰락할 즈음 조조, 유비, 손권, 원소, 제갈공명, 주유 등 쟁쟁한 시대의 영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이때 후한의 신하 왕립(王立)은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에게 천문과 오행의 이치로 볼 때 새로운 천자가 나타날 조짐이 있는데, 오행상 ‘흙의 덕(土德)’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흙(土)에 해당되는 지역에서 천자가 될 것이니 대비하라는 글을 올린다.

바로 토(土)의 덕성을 갖고 있었던 군벌 가운데 하나가 조조였다. 자기가 풀어놓은 정보원을 통해 그 말을 들은 조조는 왕립을 협박하여 더 이상 그런 말을 떠벌리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측근과 상의하여 오행상 토(土)의 방위에 해당하는 땅을 찾는데, 그곳이 바로 허창(許昌)이었다. 결국 그는 이곳으로 한나라 도읍지를 옮기게 하고 자신의 세력 기반을 다져 마침내 위왕(魏王)이 되었고 그 아들대에 이르러 천자가 나왔다.

고려 때 묘청과 신돈의 서경 천도설, 조선 광해군의 교하(파주군 교하면) 천도 계획 역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풍수도참 사상이다.
김대중이 일산으로 이사하게 된 풍수도참적 근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지만, 일산 집터는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읽게 해준다. 그의 일산 집터는 일산의 유일한 야산인 정발산 기슭에 있다.

정발산은 평지돌출의 야산으로 한강을 만나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춘 곳이다. 갈 곳까지 가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산이자, 드러낼 것을 다 드러낸 산이다. 따라서 절박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개방적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에 몇 번이나 떨어진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와 일산 집터는 그런 의미에서 성격이 맞아떨어진다.
사람마다 성격과 그 지향하는 바가 다르듯, 땅도 그 성격이 다르다. 특정한 땅과 특정한 사람이 만나 궁합이 맞으면 성공하지만, 서로 궁합이 맞지 않으면 실패한다.

역대 대통령 집터의 공통점
실제 역대 대통령들과 몇몇 대권을 지향하는 정치인들의 생가와 선영 묘소를 살펴보면 독특한 보편성을 보여준다.
먼저 이들의 집터, 즉 생가에 대해 언급해 보기로 하자. 역대 대통령들의 집터를 따지는 데 우선 언급되어야 할 것은 그 출생 성분에 따라 집터 입지가 두 가지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출생 성분이라 함은 신분이 아니라 태어날 때의 집안의 빈부 정도를 말한다.

중략

어떻든 노태우 생가의 경우도 집 주변에 보이는 자연 암반이 좋은 돌로 강력한 기운을 소응(昭應)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기가 살기(殺氣)를 완전히 벗지 못했다는 점도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그는 아버지의 교통사고 사를 겪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불행을 야기했던 5·18 전후의 노태우 행적도 어느 정도 이 살기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해기(海氣)가 넘보는 김대중 생가
목포에서 두 시간 뱃길 거리에 있는 김대중 생가는 하의도 맨 끝으로 알려져 있다. 하의도 선착장이 있는 웅곡리 면소재지에서 ‘김대중 대통령 생가’ 안내판을 따라가면 후광리가 나온다. 후광 2구와 후광 1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1km 떨어진 곳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생가 마을을 바라보면 마치 거북이가 목을 길게 빼고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

김대중 생가가 있는 곳은 거북이 머리 부분이다. 금거북이 진흙 밭으로 들어가는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이다.
이곳은 하의도 북동쪽 끝으로 후광마을에서도 끝 집이자 왼쪽 외딴집이다. 이 역시 다른 대통령들의 집터처럼 동네의 좌청룡 끝 지점에 있다. 집터는 마을 뒷산에서 내려온 산 능선의 끝부분에서 반달 모양의 언덕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1999년에 복원한 생가는 반달 모양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집 뒤로 이어지는 산 능선은 후덕하여 그곳 특산인 마늘밭으로 활용되고 있다.

집 뒤 수백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주산(主山)은 높지 않기 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이곳에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데, 썰물 때는 섬의 북동쪽에 있는 장병도와 갯벌로 이어진다. 따라서 김대중 생가터는 하의도의 맨 끝집이 아니라 장병도에서 이어지는 지맥의 원줄기이자 맨 처음 갈라져 나온 왼쪽 능선 끝이다. 하의도 전체의 산들은 이곳 김대중 생가 우측 능선에서 이어져 나가는 꼴이다.

중략

권력지향적인 땅과 사람들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를 살펴볼 때 단지 땅만이 그렇게 권력 지향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 살았던 사람들 역시 권력 지향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권력 지향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방법은 다양한데, 그들 집안의 묘지를 살피는 것이 그들의 권력관을 엿볼 수 있는 유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1846년 훗날 고종의 아버지로서 흥선대원군으로 불린 이하응은 지관(地官) 정만인(鄭萬仁)의 도움을 얻어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묘를 이장한다. ‘천자가 나올 자리’를 택해서 이장한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뒤인 1853년에 둘째 아들 명복(命福)이 태어나고, 명복은 나이 12살 되던 해인 1863년에 고종 임금이 된다. 그 후 그는 임금에서 황제로 즉위한다. 결국 고종 황제와 그 아들이 뒤를 이어 순종 황제가 되었으니 예언된 풍수설이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그로부터 150년 후인 1995년에도 아주 비슷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에 ‘남북통일을 주도할 지도자가 나올 자리’에다가 아버지와 어머니 묘를 이장했다.2년 후인 1997년 김대중 총재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그는 최근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등 남북통일에 기여할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김대중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부모의 산소 아래 자신이 죽어 묻힐 자리, 즉 신후지지(身後之地)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1846년과 1995년 사이 150년 세월에 왕조가 바뀌고, 사회경제체제가 바뀌었지만 풍수지리에 관한 것은 바뀐 것이 없었다. 흥선군도 아버지 묘를 ‘천자가 나올 자리’에 이장해서 아들로 하여금 왕이 되게 하였고, 김대중도 아버지 묘를 ‘대통령이 될 자리’에 이장하고 대통령이 되었다.김대중뿐만 아니라 이전 역대 대통령들의 풍수관련 사안들을 챙겨보면 모두 풍수지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개 권력을 장악하는 이들은 풍수를 활용하여 권력장악의 필연성을 정당화시켜 나간다. 대개 ‘천명이 바뀌었다!’느니, ‘구국을 위한 역사적 결단!’이니 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동시에 ‘용비어천가’를 창작하는데, 이때 풍수지리가 요긴하게 활용된다. 그 조상의 무덤 혹은 생가가 ‘제왕이 나올 땅’이었다고 이야기하면 일단 그 조작된 ‘왕권신수설’은 백성과 국민에게 먹혀 들어간다.

이것은 단지 권력을 획득한 이들에게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 부정과 불의로 엄청난 부를 획득한 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석숭과 같은 거부가 나올 자리에 그 조상의 무덤이 있거나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정당성 여부를 떠나 심리적으로 ‘그러면 그렇지!’ 하고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점만으로 권력과 풍수의 오랜 야합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풍수지리가 갖는 또 다른 내적 이유가 있다. 풍수지리의 핵심이론인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이 갖는 선동성과 신비성 및 혁명성이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인간과 자연,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아우르는 천지간에는 일정한 기가 충만하다. 그 기를 매개로 하여 인간과 자연이 감응하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감응한다는 것이 동기감응론이다. 이때 발생하는 감응은 서로 유사성이 강할 때, 즉 동기에 가까울수록 더욱 쉽게 또는 빨리 발생한다.

이러한 풍수지리의 동기감응론은 ‘신이 하는 일을 빼앗을 수 있으며, 하늘이 부여한 운명을 고칠 수 있다’는 소위 ‘신공가탈 천명가개(神工可奪 天命可改)’적 사고를 동아시아 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심어놓았다. 즉 스스로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집단의 운명을 고칠 수 있다는 ‘탈신공개천명(奪神工改天命)’ 사상을 풍수지리가 대변해온 것이다.
풍수지리는 한 개인뿐만 아니라 한 가문을 흥하게 할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한 나라를 빼앗을 수 있다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기 때문에 대중성, 전통성 그리고 신비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운명을 거부하는 적극적 사고 방식은 다른 한편으로 동아시아 고유의 사고 관념으로 이야기되는 ‘하늘을 따르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순천자흥 역천자망(順天者興 逆天者亡)’이라는 운명론이 줄 수 있는 절망감에 한 줄기 희망이 된다.
그러한 이유로 순천(順天) 사상과 역천(逆天) 사상은 지금까지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공존을 하고 있다.

암장으로 권력을 잡은 대통령들
실제로 탈신공개천명의 논리로 정권에 도착한 역대 권력자가 엄연히 존재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고향은 북한에 있기 때문에 답사가 불가능하지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이승만의 아버지가 그 부모, 즉 이승만의 조부모 묘를 제왕이 날 자리에 암장(暗葬)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그 묘가 실전되었다고 한다.

2대 대통령인 윤보선의 경우도 그러하다. 윤보선의 조상은 고향과 서울에 교회를 세웠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풍수지리의 은총’을 가득 받은 집안이다.
윤보선 대통령 조상 묘가 명당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다음은 윤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의 자서전 내용이다.

“흉년이 들었던 어느 해 이야기다. 하루는 5대조 할아버지가 굶주림에 쓰러진 스님 한 분을 구해주었다. 생명의 은인인 윤대통령 5대조 할아버지에게 스님은 보은으로 산소 자리를 하나 물색해 주었다.
현재 윤대통령 선영이자, 윤대통령 무덤이 있는 바로 그 자리였다.
그러나 그 땅은 원래 사패지지(賜牌之地)로 나라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하사한 곳이었다. 이순신 장군 가문의 땅이었다. 그리하여 윤보선 4대조는 그 아버지, 즉 윤보선 5대조 할아버지가 죽자 이순신 장군의 땅에 암장하였다.”

역시 기독교도이며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공덕귀 여사조차 그 땅이 좋아 보인다고 칭찬하는 자리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윤보선은 풍수설을 맹신하였다. 윤보선이 1990년 서거했을 때,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고 충남 아산군 음봉면 동천 선영에 안장되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죽어 묻힐 자리, 즉 신후지지(身後之地)를 만들어놓고 즐겨 찾았다. 공덕귀 여사는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해위(윤보선 대통령 호)를 모신 곳은 생전의 해위가 5대조 할아버지 산소에서 별로 높지 않은 뒷산을 사서 그곳에 별장을 조성해 놓은 곳이다. 해위는 한식과 추석 외에도 이곳에 일하러 오면 자신의 신위지까지 올라 그곳의 풀도 뽑고 멀리 서해바다 쪽을 바라보며 그림같이 아니 병풍같이 둘러 있는 산들을 바라보고 ‘아, 우리 별장 참 좋다!’며 좋아라 했다.”

윤보선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고 선영으로 간 까닭을 시인 김소월의 노래처럼 “조상님 뼈 가서 묻힌 곳”이기 때문이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보건대 그것보다는 명당에 묻히고 싶은 소망에서였다. 윤보선은 자신이 명당에 묻힌 이후 윤씨 가문에서 “다시는 그 누구든지 (선영에) 묘를 쓰지 못한다”라고 유서에 못박아 놓을 정도였다. 이유는 선영의 아름다움이 손상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현재 윤보선 대통령 산소와 그 아래 5대조 윤득실의 무덤 사이에 아늑한 자리가 빈 공간으로 남아 있고 그곳에는 조경수가 십자가 형태로 심어져 있다. 누구든지 묻히고자 탐낼 자리인데, 일부러 나무를 심어 아무도 쓰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선영의 아름다움이 망가지는 것을 꺼려서일까? 풍수지리를 신봉하는 관점에서 보면 지기(地氣)의 손실을 막자는 의도다.

중략

풍수지리의 윤리
문제는 땅이 인간의 윤리를 무시하고 자체의 논리를 가져 악한 사람에게도 부귀를 주는가 하는 문제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는 국민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야망과 부귀를 탐해 정권을 찬탈하고, 인권을 유린하였고, 국정을 파탄시켜 수많은 국민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자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풍수지리가 이러한 불의한 자와 무능한 자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준다면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풍수지리의 윤리 역시 인간의 윤리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인간과 풍수지리가 서로 상정하는 시간 개념이 틀릴 뿐이다.
역대 정치인들에게 좋은 땅이 주어진 것은 하나의 기회 부여이며 시작일 뿐이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었다가 물러난 후 그들의 잘잘못에 대해 사법적 심판이 있었고, 더러는 역사적 심판으로 미뤄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풍수적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심판은 인간의 심판과 다르다. 더욱더 잔인하다.

당나라 때 복응천(卜應天)이 지은 ‘설심부(雪心賦)’에는 “나쁜 짓을 하면 좋은 땅도 도리어 재앙을 부른다”고 하였는데, 원나라 때의 학자 조방은 ‘장서문대(葬書問對)’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하였다.
“무릇 집안이 장차 흥성하려면 반드시 그 조상이 음덕과 선행을 두텁게 베풀되 그 보답을 당대에서 누리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비록 땅을 골라 일부러 장사지내지 않더라도 명당을 차지하며 그 자손이 번창하는 것은 확실하다.

하늘의 묵계, 이것은 하늘이 주는 것이다. 후손들이 그 조상의 번창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모르고, 이에 묘하게 탐하고 교묘하게 취하고 농락하고 비정한 짓을 하는 것이 누구의 계략인지 모르고(즉 돈을 탐하는 지관들의 행위인지 모르고) 땅을 고르는 데 급급한 것은 역시 사사로움을 심고 이익을 엿보는 일단일 뿐이다. 마음을 이와 같이 쓰면 하늘에 죄를 얻어 스스로 그 운명을 재촉함이 허다하다.

대통령을 지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비록 그가 조상의 음덕과 하늘의 묵계로 대통령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혹은 대통령 신분으로 행한 악행이 있다면 그 후손이 재앙을 당하는 것 또한 필연이다.
이것은 역대 대통령의 후손들에서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하늘의 묵계는 완성이 아니고 진행되고 있다. 그리하여 지나친 악행에 대해서는 그 후손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하늘은 자신의 일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풍수지리의 논리다.

”송나라 유학자 채원정(蔡元定)은 주자(朱子)의 친구이자 제자로서 주자에게 풍수지리를 가르쳐준 사람이다. 그의 ‘발미론(發微論)’은 풍수의 윤리를 정의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나쁜 업보가 가득하면 하늘은 반드시 나쁜 땅으로 대응하는데, 그 자손이 화를 입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http://monthly.chosun.com/board/essay/boardread.asp?idx=2495&table=e_200310&cPage=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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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s Unveiled by H. P. Blavatsky -- Vol. 1

Theosophical University Press Onlin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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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17]]
CHAPTER XII.
"You never hear the really philosophical defenders of the doctrine of uniformity speaking of impossibilities in nature. They never say what they are constantly charged with saying, that it is impossible for the Builder of the universe to alter his work. . . . No theory upsets them (the English clergy). . . . Let the most destructive hypothesis be stated only in the language current among gentlemen, and they look it in the face." -- TYNDALL: Lecture on the Scientific Use of the Imagination.
"The world will have a religion of some kind, even though it should fly for it to the intellectual whoredom of Spiritualism." -- TYNDALL: Fragments of Science.
"But first on earth as vampires sent
Thy corpse shall from its tomb be rent. . . .
And suck the blood of all thy race." -- LORD BYRON: Giaour.
WE are now approaching the hallowed precincts of that Janus-god -- the molecular Tyndall. Let us enter them barefoot. As we pass the sacred adyta of the temple of learning, we are nearing the blazing sun of the Huxleyocentric system. Let us cast down our eyes, lest we be blinded.

We have discussed the various matters contained in this book, with such moderation as we could command in view of the attitude which the scientific and theological world have maintained for centuries toward those from whom they have inherited the broad foundations of all the actual knowledge which they possess. When we stand at one side, and, as a spectator, see how much the ancients knew, and how much the moderns think they know, we are amazed that the unfairness of our contemporary schoolmen should pass undetected.

Every day brings new admissions of scientists themselves, and the criticisms of well-informed lay observers. We find the following illustrative paragraph in a daily paper:

"It is curious to note the various opinions which prevail among scientific men in regard to some of the most ordinary natural phenomena. The aurora is a notable case in point. Descartes considered it a meteor falling from the upper regions of the atmosphere. Halley attributed it to the magnetism of the terrestrial globe, and Dalton agreed with this opinion. Coates supposed that the aurora was derived from the fermentation of a matter emanating from the earth. Marion held it to be a consequence of a contact between the bright atmosphere of the sun and the atmosphere of our planet. Euler thought the aurora proceeded from the vibrations of the ether among the particles of the terrestrial atmosphere. Canton and Franklin regarded it as a purely electrical phen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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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18 THE VEIL OF ISIS.
non, and Parrot attributed it to the conflagration of hydrogen-carbonide escaping from the earth in consequence of the putrefaction of vegetable substances, and considered the shooting stars as the initial cause of such conflagration. De la Rive and Oersted concluded it to be an electro-magnetic phenomenon, but purely terrestrial. Olmsted suspected that a certain nebulous body revolved around the sun in a certain time, and that when this body came into the neighborhood of the earth, a part of its gaseous material mixed with our atmosphere, and that this was the origin of the phenomenon of the aurora." And so we might say of every branch of science.

Thus, it would seem that even as to the most ordinary natural phenomena, scientific opinion is far from being unanimous. There is not an experimentalist or theologian, who, in dealing with the subtile relations between mind and matter, their genesis and ultimate, does not draw a magical circle, the plane of which he calls forbidden ground. Where faith permits a clergyman to go, he goes; for, as Tyndall says, "they do not lack the positive element -- namely, the love of truth; but the negative element, the fear of error, preponderates." But the trouble is, that their dogmatic creed weighs down the nimble feet of their intellect, as the ball and chain does the prisoner in the trenches.

As to the advance of scientists, their very learning, moreover, is impeded by these two causes -- their constitutional incapacity to understand the spiritual side of nature, and their dread of public opinion. No one has said a sharper thing against them than Professor Tyndall, when he remarks, "in fact, the greatest cowards of the present day are not to be found among the clergy, but within the pale of science itself."* If there had been the slightest doubt of the applicability of this degrading epithet, it was removed by the conduct of Professor Tyndall himself; for, in his Belfast address, as President of the British Association, he not only discerned in matter "the promise and potency of every form and quality of life," but pictured science as "wresting from theology the entire domain of cosmological theory"; and then, when confronted with an angry public opinion, issued a revised edition of the address in which he had modified his expression, substituting for the words "every form and quality of life," all terrestrial life. This is more than cowardly -- it is an ignominious surrender of his professed principles. At the time of the Belfast meeting, Mr. Tyndall had two pet aversions -- Theology and Spiritualism. What he thought of the former has been shown; the latter he called "a degrading belief." When hard pressed by the Church for alleged atheism, he made haste to disclaim the imputation, and sue for

[[Footnote(s)]] -------------------------------------------------
* "On the Scientific Use of the Imag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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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19 THE PHYSICAL BASIS OF LIFE.
peace; but, as his agitated "nervous centres" and "cerebral molecules" had to equilibrate by expanding their force in some direction, he turns upon the helpless, because pusillanimous, spiritualists, and in his Fragments of Science insults their belief after this fashion: "The world will have a religion of some kind, even though it should fly for it to the intellectual whoredom of Spiritualism." What a monstrous anomaly, that some millions of intelligent persons should permit themselves to be thus reviled by a leader in science, who, himself, has told us that "the thing to be repressed both in science and out of it is 'dogmatism!' "

We will not encroach upon space by discussing the etymological value of the epithet. While expressing the hope that it may not be adopted in future ages by science as a Tyndallism, we will simply remind the benevolent gentleman of a very characteristic feature in himself. One of our most intelligent, honorable, and erudite spiritualists, an author of no small renown,* has pointedly termed this feature as "his (Tyndall's) simultaneous coquetry with opposite opinions." If we are to accept the epithet of Mr. Tyndall in all its coarse signification, it applies less to spiritualists, who are faithful to their belief, than to the atheistical scientist who quits the loving embraces of materialism to fling himself in the arms of a despised theism; only because he finds his profit in it.

We have seen how Magendie frankly confesses the ignorance of physiologists as to some of the most important problems of life, and how Fournie agrees with him. Professor Tyndall admits that the evolution-hypothesis does not solve, does not profess to solve, the ultimate mystery.

We have also given as much thought as our natural powers will permit to Professor Huxley's celebrated lecture On the Physical Basis of Life, so that what we may say in this volume as to the tendency of modern scientific thought may be free from ignorant misstatement. Compressing his theory within the closest possible limits, it may be formulated thus: Out of cosmic matter all things are created; dissimilar forms result from different permutations and combinations of this matter; matter has "devoured spirit," hence spirit does not exist; thought is a property of matter; existing forms die that others may take their place; the dissimilarity in organism is due only to varying chemical action in the same life-matter -- all protoplasm being identical.

As far as chemistry and microscopy goes, Professor Huxley's system may be faultless, and the profound sensation caused throughout the world by its enunciation can be readily understood. But its defect is that the thread of his logic begins nowhere, and ends in a void. He has made the best possible use of the available material. Given a universe crowded

[[Footnote(s)]] -------------------------------------------------
* Epes Sargent. See his pamphlet, "Does Matter do i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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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0 THE VEIL OF ISIS.
with molecules, endowed with active force, and containing in themselves the principle of life, and all the rest is easy; one set of inherent forces impel to aggregate into worlds, and another to evolve the various forms of plant and animal organism. But what gave the first impulse to those molecules and endowed them with that mysterious faculty of life? What is this occult property which causes the protoplasms of man, beast, reptile, fish, or plant, to differentiate, each ever evolving its own kind, and never any other? And after the physical body gives up its constituents to the soil and air, "whether fungus or oak, worm or man," what becomes of the life which once animated the frame?

Is the law of evolution, so imperative in its application to the method of nature, from the time when cosmic molecules are floating, to the time when they form a human brain, to be cut short at that point, and not allowed to develop more perfect entities out of this "preexistent law of form"? Is Mr. Huxley prepared to assert the impossibility of man's attainment to a state of existence after physical death, in which he will be surrounded with new forms of plant and animal life, the result of new arrangements of now sublimated matter?* He acknowledges that he knows nothing about the phenomena of gravitation; except that, in all human experience, as "stones, unsupported, have fallen to the ground, there is no reason for believing that any stone so circumstanced will not fall to the ground." But, he utterly repels any attempt to change this probability into a necessity, and in fact says: "I utterly repudiate and anathematize the intruder. Facts I know, and Law I know; but what is this necessity, save an empty shadow of my own mind's throwing?" It is this, only, that everything which happens in nature is the result of necessity, and a law once operative will continue to so operate indefinitely until it is neutralized by an opposing law of equal potency. Thus, it is natural that the stone should fall to the ground in obedience to one force, and it is equally natural that it should not fall, or that having fallen, it should rise again, in obedience to another force equally potent; which Mr. Huxley may, or may not, be familiar with. It is natural that a chair should rest upon the floor when once placed there, and it is equally natural (as the testimony of hundreds of competent witnesses

[[Footnote(s)]] -------------------------------------------------
* In his "Essay on Classification" (sect. xvii., pp. 97-99), Louis Agassiz, the great zoologist, remarks: "Most of the arguments in favor of the immortality of man apply equally to the permanency of this principle in other living beings. May I not add that a future life in which man would be deprived of that great source of enjoyment and intellectual and moral improvement, which results from the contemplation of the harmonies of an organic world would involve a lamentable loss? And may we not look to a spiritual concert of the combined worlds and all their inhabitants in the presence of their creator as the highest conception of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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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1 WHAT SHOCKS PROF. HUXLEY'S COMMON SENSE.
shows) that it should rise in the air, untouched by any visible, mortal hand. Is it not Mr. Huxley's duty to first ascertain the reality of this phenomenon, and then invent a new scientific name for the force behind it?

"Facts I know," says Mr. Huxley, "and Law I know." Now, by what means did he become acquainted with Fact and Law? Through his own senses, no doubt; and these vigilant servants enabled him to discover enough of what he considers truth to construct a system which he himself confesses "appears almost shocking to common sense." If his testimony is to be accepted as the basis for a general reconstruction of religious belief, when they have produced only a theory after all, why is not the cumulative testimony of millions of people as to the occurrence of phenomena which undermine its very foundations, worthy of a like respectful consideration? Mr. Huxley is not interested in these phenomena, but these millions are; and while he has been digesting his "bread and mutton-protoplasms," to gain strength for still bolder metaphysical flights, they have been recognizing the familiar handwriting of those they loved the best, traced by spiritual hands, and discerning the shadowy simulacra of those who, having lived here, and passed through the change of death, give the lie to his pet theory.

So long as science will confess that her domain lies within the limits of these changes of matter; and that chemistry will certify that matter, by changing its form "from the solid or liquid, to the gaseous condition," only changes from the visible to the invisible; and that, amid all these changes, the same quantity of matter remains, she has no right to dogmatize. She is incompetent to say either yea or nay, and must abandon the ground to persons more intuitional than her representatives.

High above all other names in his Pantheon of Nihilism, Mr. Huxley writes that of David Hume. He esteems that philosopher's great service to humanity to be his irrefragable demonstration of "the limits of philosophical inquiry," outside which lie the fundamental doctrines "of spiritualism," and other "isms." It is true that the tenth chapter of Hume's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was so highly esteemed by its author, that he considered that "with the wise and learned" it would be an "everlasting check to all kinds of superstitious delusion," which with him was simply a convertible term to represent a belief in some phenomena previously unfamiliar and by him arbitrarily classified as miracle. But, as Mr. Wallace justly observes, Hume's apothegm, that "a miracle is a violation of the laws of nature," is imperfect; for in the first place it assumes that we know all the laws of nature; and, second, that an unusual phenomenon is a miracle. Mr. Wallace proposes that a miracle should be defined as: "any act or event necessarily 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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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2 THE VEIL OF ISIS.
plying the existence and agency of superhuman intelligences." Now Hume himself says that "a uniform experience amounts to a proof," and Huxley, in this famous essay of his, admits that all we can know of the existence of the law of gravitation is that since, in all human experience, stones unsupported have fallen to the ground, there is no reason for believing that the same thing will not occur again, under the same circumstances, but, on the contrary, every reason to believe that it will.

If it were certain that the limits of human experience could never be enlarged, then there might be some justice in Hume's assumption that he was familiar with all that could happen under natural law, and some decent excuse for the contemptuous tone which marks all of Huxley's allusions to spiritualism. But, as it is evident from the writings of both these philosophers, that they are ignorant of the possibilities of psychological phenomena, too much caution cannot be used in according weight to their dogmatic assertions. One would really suppose that a person who should permit himself such rudeness of criticism upon spiritualistic manifestations had qualified himself for the office of censor by an adequate course of study; but, in a letter addressed to the London Dialectical Society, Mr. Huxley, after saying that he had no time to devote to the subject, and that it does not interest him, makes the following confession, which shows us upon what slight foundation modern scientists sometimes form very positive opinions. "The only case of spiritualism," he writes, "I ever had the opportunity of examining into for myself, was as gross an imposture as ever came under my notice."

What would this protoplasmic philosopher think of a spiritualist who, having had but one opportunity to look through a telescope, and upon that sole occasion had had some deception played upon him by a tricky assistant at the observatory, should forthwith denounce astronomy as a "degrading belief"? This fact shows that scientists, as a rule, are useful only as collectors of physical facts; their generalizations from them are often feebler and far more illogical than those of their lay critics. And this also is why they misrepresent ancient doctrines.

Professor Balfour Stewart pays a very high tribute to the philosophical intuition of Herakleitus, the Ephesian, who lived five centuries before our era; the "crying" philosopher who declared that "fire was the great cause, and that all things were in a perpetual flux." "It seems clear," says the professor, "that Herakleitus must have had a vivid conception of the innate restlessness and energy of the universe, a conception allied in character to, and only less precise than that of modern philosophers who regard matter as essentially dynamical." He considers the expression fire as very vague; and quite naturally, for the evidence is wanting to show that either Prof. Balfour Stewart (who seems less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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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3 THE TRINITY OF FIRE.
clined to materialism than some of his colleagues) or any of his contemporaries understand in what sense the word fire was used.

His opinions about the origin of things were the same as those of Hippocrates. Both entertained the same views of a supreme power,* and, therefore, if their notions of primordial fire, regarded as a material force, in short, as one akin to Leibnitz's dynamism, were "less precise" than those of modern philosophers, a question which remains to be settled yet, on the other hand their metaphysical views of it were far more philosophical and rational than the one-sided theories of our present-day scholars. Their ideas of fire were precisely those of the later "fire-philosophers," the Rosicrucians, and the earlier Zoroastrians. They affirmed that the world was created of fire, the divine spirit of which was an omnipotent and omniscient GOD. Science has condescended to corroborate their claims as to the physical question.

Fire, in the ancient philosophy of all times and countries, including our own, has been regarded as a triple principle. As water comprises a visible fluid with invisible gases lurking within, and, behind all the spiritual principle of nature, which gives them their dynamic energy, so, in fire, they recognized: 1st. Visible flame; 2d. Invisible, or astral fire -- invisible when inert, but when active producing heat, light, chemical force, and electricity, the molecular powers; 3d. Spirit. They applied the same rule to each of the elements; and everything evolved from their combinations and correlations, man included, was held by them to be triune. Fire, in the opinion of the Rosicrucians, who were but the successors of the theurgists, was the source, not only of the material atoms, but also of the forces which energize them. When a visible flame is extinguished it has disappeared, not only from the sight but also from the conception of the materialist, forever. But the Hermetic philosopher follows it through the "partition-world of the knowable, across and out on the other side into the unknowable," as he traces the disembodied human spirit, "vital spark of heavenly flame," into the AEthereum, beyond the grave.**

This point is too important to be passed by without a few words of comment. The attitude of physical science toward the spiritual half of the cosmos is perfectly exemplified in her gross conception of fire. In this, as in every other branch of science, their philosophy does not contain one sound plank: every one is honeycombed and weak. The works of their own authorities teeming with humiliating confessions, give us the

[[Footnote(s)]] -------------------------------------------------
* "Diog. in Vita."

** See the works of Robertus de Fluctibus; and the "Rosicrucians," by Hargrave Jenn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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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4 THE VEIL OF ISIS.
right to say that the floor upon which they stand is so unstable, that at any moment some new discovery, by one of their own number, may knock away the props and let them all fall in a heap together. They are so anxious to drive spirit out of their conceptions that, as Balfour Stewart says: "There is a tendency to rush into the opposite extreme, and to work physical conceptions to an excess." He utters a timely warning in adding: "Let us be cautious that, in avoiding Scylla, we do not rush into Charybdis. For the universe has more than one point of view, and there are possibly regions which will not yield their treasures to the most determined physicists, armed only with kilogrammes and meters and standard clocks."* In another place he confesses: "We know nothing, or next to nothing, of the ultimate structure and properties of matter, whether organic or inorganic."

As to the other great question -- we find in Macaulay, a still more unreserved declaration: "The question what becomes of man after death -- we do not see that a highly educated European, left to his unassisted reason, is more likely to be in the right than a Blackfoot Indian. Not a single one of the many sciences in which we surpass the Blackfoot Indians throws the smallest light on the state of the soul after the animal life is extinct. In truth, all the philosophers, ancient and modern, who have attempted, without the help of revelation, to prove the immortality of man, from Plato down to Franklin, appear to us to have failed deplorably."

There are revelations of the spiritual senses of man which may be trusted far more than all the sophistries of materialism. What was a demonstration and a success in the eyes of Plato and his disciples is now considered the overflow of a spurious philosophy and a failure. The scientific methods are reversed. The testimony of the men of old, who were nearer to truth, for they were nearer to the spirit of nature -- the only aspect under which the Deity will allow itself to be viewed and understood -- and their demonstrations, are rejected. Their speculations -- if we must believe the modern thinkers -- are but the expression of a redundance of the unsystematic opinions of men unacquainted with the scientific method of the present century. They foolishly based the little they knew of physiology on well-demonstrated psychology, while the scholar of our day bases psychology -- of which he confesses himself utterly ignorant -- on physiology, which to him is as yet a closed book, and has not even a method of its own, as Fournie tells us. As to the last objection in Macaulay's argument, it was answered by Hippocrates centuries ago: "All knowledge, all arts are to be found in nature," he

[[Footnote(s)]] -------------------------------------------------
* Professor B. Stewart: "Conservation of Ener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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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5 [[[mi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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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6 THE VEIL OF ISIS.
The artist will display his waves of harmony better on a royal Erard than he could have done on a spinet of the sixteenth century. Therefore whether this instinctive impulse was directly impressed upon the nervous system of the first insect, or each species has gradually had it developed in itself by instinctively mimicking the acts of its like, as the more perfected doctrine of Herbert Spencer has it, is immaterial to the present subject. The question concerns spiritual evolution only. And if we reject this hypothesis as unscientific and undemonstrated, then will the physical aspect of evolution have to follow it to the ground in its turn, because the one is as undemonstrated as the other, and the spiritual intuition of man is not allowed to dovetail the two, under the pretext that it is "unphilosophical." Whether we wish it or not, we will have to fall back on the old query of Plutarch's Symposiacs, whether it was the bird or the egg which first made its appearance.

Now that the Aristotelean authority is shaken to its foundations with that of Plato; and our men of science reject every authority -- nay hate it, except each his own; and the general estimate of human collective wisdom is at the lowest discount, mankind, headed by science itself, is still irrepressibly drawing back to the starting-point of the oldest philosophies. We find our idea perfectly expressed by a writer in the Popular Science Monthly. "The gods of sects and specialities," says Osgood Mason, "may perhaps be failing of their accustomed reverence, but, in the mean time, there is dawning on the world, with a softer and serener light, the conception, imperfect though it still may be, of a conscious, originating, all-pervading active soul -- the 'Over-Soul,' the Cause, the Deity; unrevealed through human form or speech, but filling and inspiring every living soul in the wide universe according to its measure: whose temple is Nature, and whose worship is admiration." This is pure Platonism, Buddhism, and the exalted but just views of the earliest Aryans in their deification of nature. And such is the expression of the ground-thought of every theosophist, kabalist, and occultist in general; and if we compare it with the quotation from Hippocrates, which precedes the above, we will find in it exactly the same thought and spirit.

To return to our subject. The child lacks reason, it being as yet latent in him; and meanwhile he is inferior to the animal as to instinct proper. He will burn or drown himself before he learns that fire and water destroy and are dangerous for him; while the kitten will avoid both instinctively. The little instinct the child possesses fades away as reason, step by step, develops itself. It may be objected, perhaps, that instinct cannot be a spiritual gift, because animals possess it in a higher degree than man, and animals have no souls. Such a belief is erroneous and based upon very insecure foundations. It came from the fact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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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7 ARE THE POOR BEASTS IMMORTAL?
the inner nature of the animal could be fathomed still less than that of man, who is endowed with speech and can display to us his psychological powers.

But what proofs other than negative have we that the animal is without a surviving, if not immortal, soul? On strictly scientific grounds we can adduce as many arguments pro as contra. To express it clearer, neither man nor animal can offer either proof or disproof of the survival of their souls after death. And from the point of view of scientific experience, it is impossible to bring that which has no objective existence under the cognizance of any exact law of science. But Descartes and Bois-Raymond have exhausted their imaginations on the subject, and Agassiz could not realize such a thing as a future existence not shared by the animals we loved, and even the vegetable kingdom which surrounds us. And it is enough to make one's feelings revolt against the claimed justice of the First Cause to believe that while a heartless, cold-blooded villain has been endowed with an immortal spirit, the noble, honest dog, often self-denying unto death; that protects the child or master he loves at the peril of his life; that never forgets him, but starves himself on his grave; the animal in whom the sense of justice and generosity are sometimes developed to an amazing degree, will be annihilated! No, away with the civilized reason which suggests such heartless partiality. Better, far better to cling to one's instinct in such a case, and believe with the Indian of Pope, whose "untutored mind" can only picture to himself a heaven where

". . . admitted to that equal sky,
His faithful dog shall bear him company."
Space fails us to present the speculative views of certain ancient and mediaeval occultists upon this subject. Suffice it that they antedated Darwin, embraced more or less all his theories on natural selection and the evolution of species, and largely extended the chain at both ends. Moreover, these philosophers were explorers as daring in psychology as in physiology and anthropology. They never turned aside from the double parallel-path traced for them by their great master Hermes. "As above, so below," was ever their axiom; and their physical evolution was traced out simultaneously with the spiritual one.

On one point, at least, our modern biologists are quite consistent: unable, as yet, to demonstrate the existence of a distinct individual soul in animals, they deny it to man. Reason has brought them to the brink of Tyndall's "impassable chasm," between mind and matter; instinct alone can teach them to bridge it. When in their despair of ever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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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8 THE VEIL OF ISIS.
able to fathom the mystery of life, they will have come to a dead stop, their instinct may reassert itself, and take them across the hitherto fathomless abyss. This is the point which Professor John Fiske and the authors of the Unseen Universe seem to have reached; and Wallace, the anthropologist and ex-materialist, to have been the first to courageously step over. Let them push boldly on till they discover that it is not spirit that dwells in matter, but matter which clings temporarily to spirit; and that the latter alone is an eternal, imperishable abode for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Esoteric philosophers held that everything in nature is but a materialization of spirit. The Eternal First Cause is latent spirit, they said, and matter from the beginning.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 . . and the word was God." While conceding the idea of such a God to be an unthinkable abstraction to human reason, they claimed that the unerring human instinct grasped it as a reminiscence of something concrete to it though intangible to our physical senses. With the first idea, which emanated from the double-sexed and hitherto-inactive Deity, the first motion was communicated to the whole universe, and the electric thrill was instantaneously felt throughout the boundless space. Spirit begat force, and force matter; and thus the latent deity manifested itself as a creative energy.

When; at what point of the eternity; or how? the question must always remain unanswered, for human reason is unable to grasp the great mystery. But, though spirit-matter was from all eternity, it was in the latent state; the evolution of our visible universe must have had a beginning. To our feeble intellect, this beginning may seem so remote as to appear to us eternity itself -- a period inexpressible in figures or language. Aristotle argued that the world was eternal, and that it will always be the same; that one generation of men has always produced another, without ever having had a beginning that could be determined by our intellect. In this, his teaching, in its exoteric sense, clashed with that of Plato, who taught that "there was a time when mankind did not perpetuate itself"; but in spirit both the doctrines agreed, as Plato adds immediately: "This was followed by the earthly human race, in which the primitive history was gradually forgotten and man sank deeper and deeper"; and Aristotle says: "If there has been a first man he must have been born without father or mother -- which is repugnant to nature. For there could not have been a first egg to give a beginning to birds, or there should have been a first bird which gave a beginning to eggs; for a bird comes from an egg." The same he held good for all species, believing, with Plato, that everything before it appeared on earth had first its being in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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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29 ARISTOTLE ON DREAMS.
This mystery of first creation, which was ever the despair of science, is unfathomable, unless we accept the doctrine of the Hermetists. Though matter is coeternal with spirit, that matter is certainly not our visible, tangible, and divisible matter, but its extreme sublimation. Pure spirit is but one remove higher. Unless we allow man to have been evolved out of this primordial spirit-matter, how can we ever come to any reasonable hypothesis as to the genesis of animate beings? Darwin begins his evolution of species at the lowest point and traces upward. His only mistake may be that he applies his system at the wrong end. Could he remove his quest from the visible universe into the invisible, he might find himself on the right path. But then, he would be following in the footsteps of the Hermetists.

That our philosophers -- positivists -- even the most learned among them, never understood the spirit of the mystic doctrines taught by the old philosophers -- Platonists -- is evident from that most eminent modern work, Conflict between Religion and Science. Professor Draper begins his fifth chapter by saying that "the Pagan Greeks and Romans believed that the spirit of man resembles his bodily form, varying its appearance with his variations, and growing with his growth." What the ignorant masses thought is a matter of little consequence, though even they could never have indulged in such speculations taken a la lettre. As to Greek and Roman philosophers of the Platonic school, they believed no such thing of the spirit of man, but applied the above doctrine to his soul, or psychical nature, which, as we have previously shown, is not the divine spirit.

Aristotle, in his philosophical deduction On Dreams, shows this doctrine of the twofold soul, or soul and spirit, very plainly. "It is necessary for us to ascertain in what portion of the soul dreams appear," he says. All the ancient Greeks believed not only a double, but even a triple soul to exist in man. And even Homer we find terming the animal soul, or the astral soul, called by Mr. Draper "spirit," [[thumos]], and the divine one [[vous]] -- the name by which Plato also designated the higher spirit.

The Hindu Jainas conceive the soul, which they call Jiva, to have been united from all eternity to even two sublimated ethereal bodies, one of which is invariable and consists of the divine powers of the higher mind; the other variable and composed of the grosser passions of man, his sensual affections, and terrestrial attributes. When the soul becomes purified after death it joins its Vaycarica, or divine spirit, and becomes a god. The followers of the Vedas, the learned Brahmins, explain the same doctrine in the Vedanta. The soul, according to their teaching, as a portion of the divine universal spirit or immaterial mind, is capable of uniting itself with the essence of its highest Entity. The teaching is 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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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 Page]] 430 THE VEIL OF ISIS.
plicit; the Vedanta affirms that whoever attains the thorough knowledge of his god becomes a god while yet in his mortal body, and acquires supremacy over all things.

Quoting from the Vedaic theology the verse which says: "There is in truth but one Deity, the Supreme Spirit; he is of the same nature as the soul of man," Mr. Draper shows the Buddhistic doctrines as reaching Eastern Europe through Aristotle. We believe the assertion unwarranted, for Pythagoras, and after him Plato, taught them long before Aristotle. If subsequently the later Platonists accepted in their dialectics the Aristotelean arguments on emanation, it was merely because his views coincided in some respect with those of the Oriental philosophers. The Pythagorean number of harmony and Plato's esoteric doctrines on creation are inseparable from the Buddhistic doctrine of emanation; and the great aim of the Pythagorean philosophy, namely, to free the astral soul from the fetters of matter and sense, and make it thereby fit for an eternal contemplation of spiritual things, is a theory identical with the Buddhistic doctrine of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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