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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예수에게 동생이 있었다고?-예수 왕조&예수의 인간 구원의 길



예수에게 동생이 있었다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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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행복한 책읽기




예수 왕조

제임스 D 타보르 지음

김병화 옮김, 현대문학

456쪽, 1만9000원

서구 사회에서 예수만큼 흥미진진한 소재는 없는 듯하다.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는 발상을 소설로 옮긴 '다 빈치 코드'의 열기가 한동안 식지 않았던 것만 봐도 그렇다. 이번엔 예수가 기독교를 창시한 게 아니라, 다윗의 피를 이어받은 왕조를 세우려 했다는 학설이 제기됐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종교학과 학과장인 지은이는 성서 분석 및 고고학적 근거를 동원해 예수의 생애를 꼼꼼히 밝혀나간다. 기본적으로 예수도 인간이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당연히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남성의 개입 없이 처녀인 상태로 임신할 수 없었으리란 의문이 뒤따른다. '처녀 출생'은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만들어 발전한 교리이며, 새로운 성서가 쓰이는 과정에서 조금씩 은폐.왜곡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수의 생부가 로마 병사일 확률이 높다는 주장을 펼친다. 예수에게 배다른 동생도 여럿 있었단다. 요셉이 죽은 뒤 과부가 된 마리아가 요셉의 동생인 글로바와 결혼해 야고보와 요세.시몬 등의 자식을 낳았다는 것이다. 유대의 율법에 따르면 형이 자식 없이 죽은 경우 동생이 '대체자'가 되어 과부인 형수와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고. 다윗의 피를 이어받은 마리아가 낳은 자식이므로 예수의 동생들도 다윗의 혈통을 이었다. 따라서 예수 사후에 지도권이 야고보.시몬으로 이어지며 '예수 왕조'가 성립됐단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이 책을 곱게 봐주기 어려울 것이다. 신성성의 베일을 벗겨내고 예수를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흥미롭게 읽을만한 역사서다. 종교적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40년간 예수의 생애를 추적한 학자의 열정이 빛을 발한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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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인간 구원의 길  



신약성서의 3대 공관복음서(「마태」·「마가」·「누가」)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는 『보병궁복음서』의 가장 큰 특징은 신약성서에 빠져 있는 예수의 생애, 특히 12세부터 30세에 이르는 삶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예수가 전한 가르침의 연원(배경)과 진수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제 『보병궁복음서』를 통해 예수가 걸은 구도(求道)의 과정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원래,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러 왔던 세 명의 동방박사(호르, 룬, 메르)는 페르시아의 마기(magi, 사제)들이었다(『보병궁의 성약』 5장, 38장). 그 후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자벳과 마리아 성모가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아기 예수와 요한을 안고 이집트로 피난갔을 때, 조안(zoan)이라는 곳에서 엘리후와 살로메라는 현자를 만나게 된다. 엘리자벳과 마리아는 이 두 현자의 성림(聖林)의 구도장에서 사랑, 생명의 통일, 두 개의 자아, 삼위일체의 신(神), 도신(道神), 브라만교, 유대의 성서, 석가부처의 교훈, 페르시아의 종교 등에 대하여 3년간의 영적 교육을 받은 후 다시 유대로 귀국한다.(『보병궁의 성약』, 7∼12장)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후 소년시절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유대의 여러 예언을 명쾌하게 해석하고 또한 진리에 두루 정통하여 율법학자들과 막힘 없이 논하기도 하자, 어떤 이들은 소년 예수를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이거나 그리스도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자라 12세가 된 예수는 목수가 되어 아버지 요셉을 돕고 있었다. 이 때 남부 인도 오릿사 주(州)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다가 성전에서 만난 예수의 총명함에 반하여, 예수의 부모를 찾아가 그에게 동양의 지혜를 배우도록 인도 유학을 청원한다(『보병궁의 성약』, 21장). 예수가 동양의 지혜를 배웠다는 구도의 편력은 『보병궁복음서』 외에도, 러시아의 역사가이며 고전학자인 니콜라스 노토비치(Nicholas Notovitch, 1858~?)가 인도 북부의 케시미르 지방에 있는 헤미스 사원에서 라마승으로부터 전해 받은(1887년) 예수에 관한 두 권의 기록을 바탕으로 출간한 『이사전』*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해뜨는 방향을 향해 떠난 예수
이사(예수)가 아버지의 집을 은밀히 빠져 나와 예루살렘을 떠나 상인들과 함께 신드(Sind)로 향했던 게 바로 그 때였으니 이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스스로 자신을 완전히 하고 대붓다(the great Buddha)의 법을 연구하기 위함이라.(『이사전』 4:12∼13 /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180쪽 재인용)
‘해뜨는 방향’을 향해 떠난 예수는 남부 인도 오릿사 지방의 쟈간나스의 절에 들어가 4년간 수행하면서 『베다』성전과 『마니』법전을 배우고 승려 라마스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쟈간나스의 광장을 걸으면서 라마스가 “유대의 선생, 진리란 무엇이라 생각하오?”라고 물었을 때, 예수가 말한다.
예수-진리는 변치 않는 유일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진리와 허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진리란 있는 그대로의 것이고, 허위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진리는 유(有)로 원인은 없지만 일체의 것의 원인이 됩니다. 허위는 무(無)이면서 유(有)의 표현을 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시작된 것은 끝나야 합니다. 모든 눈에 보이는 것은 유(有)의 표현이지만 본래는 무(無)이므로 사라져 버려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에테르가 진동하는 동안만 반영의 표현을 하고 사정이 변하면 소멸합니다. 성스러운 기(氣)는 진리입니다. 과거·현재·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화될 수도 소멸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라마스-과연 그렇겠구나. 그럼 인간이란 무엇인가?
예수-인간이란 진리와 허위의 이상한 혼합체입니다. 이 양자가 싸웁니다.
라마스-힘(power)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힘(power), 그것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 환영(幻影)입니다. 진기(眞氣, force)는 변치 않지만, 힘은 에테르가 변하면 변합니다. 절대적인 기(氣, force)는 신의 의지이며 전능한 것입니다. 힘은 성기(聖氣)에 이끌려 나타난 신의 뜻이죠. 바람에도 힘이 있고, 파도, 전기, 인간의 팔, 눈에도 힘이 있습니다. 에테르는 이와 같은 힘(power)을 일으키고, 엘로힘·천사·인간 그 밖에 사고하는 것의 사상을 진기(眞氣, force)가 지도합니다.
라마스-예지(叡智)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예지란 인간이 이것을 토대로 삼아 그 위에 자기자신을 세우는 바위입니다. 그것은 유(有)나 무(無), 진리와 허위를 구별하는 영지(靈知)입니다.
라마스-신앙이란 무엇인가?
예수-신앙이란 하느님과 인간이 전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인간이 신적인 생활에 도달할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의 마음에서 신의 마음에 이르는 사다리로, 구원에는 삼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신념으로 이것은 인간이 아마 그것이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둘째는 신앙으로 그것은 인간이 진리를 아는 것, 셋째는 완성 즉 인간 자신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신념은 신앙 속으로 승화되고, 신앙은 완성으로 열매맺고 그럼으로써 자기와 신이 하나가 될 때 인간은 구원을 받습니다.(『보병궁의 성약』 22:1∼31)
예수는 라마스와 함께 갠지스 강 주변 마을의 노예(수드라), 농부(바이샤)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그들에게 인류는 한 동포라는 것과 만민평등, 인간의 절대평등을 가르친다.(『보병궁의 성약』 23∼25장)
이사(예수)께서 주거나웃, 라자그리하, 베나레스 그리고 다른 성지에서 6년을 지내셨더라. 그가 바이샤와 수드라에게 경전을 가르치시고 또한 그들과 함께 평화롭게 거하시니 모든 이들이 그를 사랑하였더라.(『이사전』 5:5/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181쪽 재인용)



우도라카로부터 의도(醫道)를 전해 받다
갠지스 강변의 마을 베나레스는 브라만교의 성지로서 문화와 학술이 고도로 발달된 곳이었다. 예수는 인도의 의술(醫術)을 배우기 위해서 당시 인도 최고의 의원이었던 우도라카의 제자로 입문한다. 우도라카의 한 줄기 시 같은 가르침의 요지는 이러하다.
자연의 법칙은 건강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대로 살면 결코 병에 걸리는 일이 없습니다. 이 법칙을 어기는 것은 죄이며, 죄를 범하면 병에 걸립니다.(『보병궁의 성약』 23:5∼6)
인간은 현악기와 같아서 그 줄이 너무 느슨하거나 너무 팽팽하게 되면 악기는 정상적인 소리를 내지 못하듯 인간은 병이 들게 됩니다.(『보병궁의 성약』 23:9)
한편 자연계의 물상(物像)은 모름지기 인간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모두 의료의 비약(秘藥)이 됩니다.(『보병궁의 성약』 23:10)
물론 인간의 의지는 최고의 의약이니까 …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병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보병궁의 성약』 23:12)
인간이 ‘하느님과 자연과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권능(power)의 거룩한 말씀을 알게 됩니다. 이 성언(聖言)은 모든 상처의 진정제가 되고, 생명의 온갖 병을 치료합니다.(『보병궁의 성약』 23:13)
치료인이란 신앙심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영혼이 위대한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으로, 그는 다른 사람의 영혼 안에 들어가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하느님, 자연,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을 심어줍니다.(『보병궁의 성약』 23:14∼15)
예수는 우도라카, 승려, 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주신(본체신)은 한 분이고, 신(인격신)은 ‘한 분 이상’이어서 모든 것은 신(개체화된 인격신), 모든 것은 하나이다(본체신과의 관계).(『보병궁의 성약』 28:4)
하나님의 향기로운 숨결에 의하여 생명 전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보병궁의 성약』 28:5)
사람들은 누구나 모두 한 분의 하나님을 모시지만 아무도 하나님(우주자체의 조화신)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보병궁의 성약』 28:13)
이 우주신은 지혜, 의지, 사랑이시다.(『보병궁의 성약』 28:14)



성현 멘구스테를 만나다
인간의 절대평등을 주장하던 예수는 인도의 신분제도(카스트)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정죄하려는 승려들을 피해, 라마스의 도움으로 네팔로 피신하였다. 농부, 노예, 상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히말라야의 큰 봉우리에 있는 가빠비츄 사원에 들어간 예수는 그곳의 주지 비쟈빠찌 성자와 함께 앞으로 오는 시대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예수는 험난한 고원을 넘어 티벳의 랏사에 있는 사원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요동(遼東)의 최고 성현으로 이름이 나있던 멘구스테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이 사원에 소장되어 있던 수많은 고전(古典)을 읽었다. 예수는 이 곳을 떠날 때 ‘광명의 부처’, ‘살아있는 신탁(神託)’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조국으로 향하는 길에 페르시아에 들러 자신이 태어날 때 찾아준 마기(magi)들을 만난다. 이 때 예수의 나이는 24세였다.
그 후 예수는 유프라테스 강까지 페르시아의 성자 카스파아의 배웅을 받은 후, 자신의 선조 아브라함의 고향인 앗시리아의 갈데아 우르로 찾아가서 그곳 최고의 성자인 아시비나와 함께 야산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다가오는 시대에 어떻게 봉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보병궁의 성약』 43:16)



다시 희랍·이집트로 구도의 길을 떠나는 예수
이윽고 요단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온 예수는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어머니의 애정어린 환대를 받았으나, 동생들로부터는 혼자 잘난 체하며 헛된 명성을 구하는 자로 비난을 받았다.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와 여동생 미리암에게만 지난 날 구도의 과정에서 겪었던 사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곧 희랍으로 떠났다. 아테네에 이르러, 희랍의 성자인 ‘아폴로’의 인도로 다른 현인들을 만나 희랍의 정신세계에 대해 듣고, 또한 희랍의 여러 교사들을 가르치기도 했다.(『보병궁의 성약』, 44장, 46장)



그리스도라는 법명(法名)을 받다
이듬해에는 이집트 조안에 가서 엘리후와 살로메를 만난 뒤, ‘헬리오폴리스(해의 도시)’로 가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 입회를 허락받았다. 예수는 이들 성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지상생활의 길을 널리 더듬을 생각입니다. 널리 학문적으로 추구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오른 높은 곳에 저도 오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고통받은 일을 저도 경험하고, 이것으로 내 동포의 비애, 실망, 시련, 유혹을 알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보병궁의 성약』 47:12∼13)
이 ‘비밀 형제단’의 서약을 받아 ‘성실, 공정, 신앙, 박애, 의열, 성애(聖愛)’라는 여섯 단계의 시험을 진실과 용기로써 극복하고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과 생사의 문제 그리고 태양계 바깥 세계에 대한 비밀을 배웠다(『보병궁의 성약』, 47∼54장). 예수는 사자의 방에서 시험을 마친 뒤에 보랏빛 방에서 일곱 번째의 마지막 시험을 이겨내고 마침내 ‘그리스도(하느님의 사랑)’라는 최고의 법명(法名)을 받았다.
당신은 천지의 큰 저택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이다.(『보병궁의 성약』55:6)
이어 당시 사상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파일로의 집에 세계의 일곱 성현이 모였는데, 예수도 이 모임에 참가하여 명상에 잠겼다. 중국의 멘구스테, 인도의 비쟈빠찌, 페르시아의 카스파아, 앗시리아의 아시비나, 희랍의 아폴로, 이집트의 맛세노, 희랍사상의 대가 파일로, 이렇게 모인 7인의 성자들은 세계의 근본원리에 대해 토론하고 예수도 이들에게 진리를 설하였다. 다음은 멘구스테의 말이다.
때의 바퀴는 한 번 돌아 인류는 ‘보다 높은 사상의 단계’에 서 있습니다.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인류를 위하여 알맞은 옷을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자들은 좀더 커다란 빛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보병궁의 성약』 56:9, 56:13, 56:11)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
나는 죽음에서 살아난 사랑의 표현이로다.(『보병궁의 성약』178:26)
그리스도란 말의 어원은 희랍어의 크리스토스(Kristos)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데, 그 의미는 히브리말의 메시아(Messiah)와 같다.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는 특정한 사람만을 부르는 고유 호칭이 아니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면 모두 그리스도가 된다. 즉, 그리스도의 진정한 뜻은 ‘인간을 영원히 구원하려고 하는 신(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며, 그러한 ‘사랑을 구현시킬 수 있는 인격자’를 말하는 것이다.
과거 각 시대마다 그리스도가 있었다. 구약시대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이었다. 그는 아브라함 시대의 살렘왕[평화의 왕, 의(義)의 왕]으로서, 희생을 통하여 참 생명에 이르는 길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그리스도였다. 4,000여 년 전의 이 신비의 인물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신약성서의 「히브리서」에 조금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지만, 멜기세덱은 구약시대의 그리스도로서 제사장이었다.
신약시대의 예수는 그의 구원정신을 좇아 인류 구원의 제사장이 되었다.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6:20)
기독교의 구원의 도맥은 이렇게 ‘구약(멜기세덱)-신약(예수 그리스도)’으로 이어지는 사랑과 희생의 철저한 구원정신을 실천하여, 영원불멸의 생명의 몸을 열망하는 신선(神仙)맥이다. 기독교는 동양의 선도(仙道)를 철저한 희생과 사랑, 봉사정신으로 승화시킨 서양의 선맥(仙脈)인 것이다.
기독교 구원관의 최종 결론은 이제 신약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인류의 보편적 구원과 꿈의 낙원이 지상에 이룩되는 ‘성약(成約)의 시대’를 맞이하여, 제3의 그리스도인 기독교의 하느님(天主님)이 강림하신다는 구원의 메시지에 있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인도 유학 시절 예수는 모든 인간의 해탈의 가능성을 철저히 가르치는 불교에 매혹되어 승려가 된 후, 베나레스, 녹야원, 부다가야, 헬리오폴리스 등지에서 오랜 수도생활을 하였으며 티벳을 마지막으로 29세 때 귀국을 하였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최후의 외침
인도 및 티벳 등지에서 예수에게 심령 치료의 비법을 전수해 준 밀교계 고승인 우도라카와 멘구스테 등 예수의 스승들은, 예수에게 도술을 이타적으로 쓰되 남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귀국 후 예수는 유일신교인 유대교파들에게 모든 인간의 절대 신성을 부르짖으며 여러 가지 초월적 이적을 행하고, 군중을 모아 신의 사랑과 평등 사상을 전파하였다.
결국 예수는 유대교 성직자들의 질시와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는데, 이 때 예수는 제자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한 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Eli Eli Lama Sabachthani: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 한 마디를 크게 소리친 뒤 혼절하였다. 그런데 예수가 외친 이 최후의 말씀은 티벳 라마불교의 진언(眞言)인 ‘엘리엘리 라마 삼약 삼보리(Eli Eli Lama Sammach Sam Bori)’라는 다라니[Dharani=총지(總持)=주문(呪文)]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극도로 탈진하여 생에서 사로 넘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 한량없는 복덕(福德)을 지어내는 권능이 있다고 전해지는 라마불교의 주문(다라니)을 암송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예수의 제자들은 이 주문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죽은 뒤 수십 년이 흐른 후 예수의 언행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말씀의 의미가 잘못 기록된 채 번역되어 후세에 전해졌다.
예수가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둔 극한상황에서 라마불교의 진언을 암송했다는 이 충격적인 사실은 예수의 인도·티벳의 구도생활을 밝혀 주는 결정적 증거의 하나이다.



베일에 감추어진 예수의 죽음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33세 때 십자가형을 받고 사망했으며 죽은 지 3일 만에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여 승천하였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와 상반되는 전혀 다른 주장이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 주장에 의하면, 예수가 33세 때 죽지 않았으며―죽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부활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중년 이후의 생애를 인도 캐시미르 지방에서 대부분 보냈다고 한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금요일 낮 12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오후 3시경에 사망하고 해질 무렵인 오후 6시경에 십자가에서 끌어 내려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당시 로마의 형벌제도에 따르면, 죄인들이 십자가형을 받으면 완전히 죽을 때까지 약 5일 정도 매달린 채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유독 예수만이 6시간만에 끌어 내려진 것은, 아리마대(Arimathea) 사람으로 당시 명망 있는 의원이며 부자였던 요셉이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간청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예수가 아직 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부하를 시켜 생사여부를 확인하고 예수를 내주었다고 한다.(「마가복음」 15장 42∼47절 참고)
문제의 핵심은 이 때 예수가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가사(假死) 상태였다는 것이다. 요셉은 자신이 죽으면 묻히기 위해 바위 속을 파서 만든 무덤에 예수를 눕히고 무덤 입구를 큰 돌로 막았다. 이 때 예수의 어머니와 몇몇 사람이 무덤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공관복음서 참고)
가사 상태의 예수는 그 곳에서 수일 동안 치료를 받은 후 마침내 깨어나 소생했다. 그 후 예수는 박해를 피해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추종자를 동행하고 인도 캐시미르 지방으로 이주하여, 그 지역을 중심으로 수십 년 동안 신앙운동을 펼치고 적어도 80세 내지 120세까지 살다가 슈리나가르에 묻혔다고 한다.(『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참고)



여러 가지 증거들
이상이 독일인 신학자 케르스텐이 주장한 핵심 요지이다. 그는 이에 관해 인도에 전해 오는 숱한 이야기와 여러 문헌들 그리고 캐시미르 지방에 있는 예수의 무덤과 어머니 마리아의 무덤 등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은 캐시미르 인근 슈리나가르에 있는 유즈 아사프 곧 예수의 무덤이다. 당시 예수는 인도에서 ‘유즈 아사프(Yuz Asaf)’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이는 ‘정화된 사람들의 지도자’라는 뜻이다. 당시 인도에는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예수 또한 ‘예수, 이사, 유즈 아사프’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려졌다. 이슬람권에서는 통상 예수를 이사(Issa)라 부른다.
예언자 유즈 아사프(예수)의 묘지는 오늘날 슈리나가르의 구도시 칸자르(Khanjar) 지역의 안지마르(Anzimar)에 있다. 후에 묘지 주위에 세워진 건물은 라우자 발(Rauza Bal)의 준말인 로자발(Rozabal)이라 한다. 라우자(Rauza)는 예언자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묘실로 들어가는 통로 위에는 유즈 아사프가 수세기 전 캐시미르 골짜기로 들어 왔으며, 그의 일생은 진리를 찾는 탐구에 바쳐졌다고 설명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안쪽의 묘실에는 두 개의 긴 돌이 있는데 두꺼운 천으로 덮인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큰 묘석은 유즈 아사프의 것이며, 작은 것은 이슬람의 성인인 시에드 나시르-우드-딘(Syed Nasir-ud-Din)의 묘석인데 그는 15세기에 여기에 묻혔다.(『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284쪽)
또한 홀거 케르스텐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무덤이 현재의 파키스탄 지역에 있다고 주장한다.
탁실라에서 동편으로 70km 떨어진 ‘마리(Mari)’라는 조그만 마을―캐시미르의 경계에 한가롭게 자리잡은 산 속의 휴양지. 현재는 파키스탄에 속해 있다―에 오랜 옛날부터 무덤이 있었다. 그것은 ‘마리아 아스탄(Mai Mari da Asthan)’ 이라고 불리는데 그 뜻은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휴식처’라는 뜻이다.(『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257쪽)
예수가 인도에 살며 활동했던 행적은, BCE 5세기부터 CE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교문헌에서 끊임없이 인용되어 온 힌두족의 오래된 이야기 선집(選集)인 『뿌라나(Purana)』에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 270∼271쪽 참고)
여기서 한가지 분명하게 밝혀둘 것은, 예수의 잃어버린 생애나 죽음에 얽힌 문제들이 신과 인간에 대한 예수의 본질적 가르침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며, 또한 예수의 종교적 위상을 손상시키는 것도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의 전 생애가 명확히 밝혀지면, 다만 초기 기독교 시대 이래 약 2천여 년에 걸쳐 진실을 은폐하고 교리를 조작한 기독교 성직자들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이다.
후세의 사람들이 뭐라고 했든 예수는 예수 그대로이며, 진리를 전한 예수의 본래 가르침은 그 자체로서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진실은 개벽의 법정을 통해 드러나리라.



예수가 가르친 인간의 위대함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아들이다. 사람들이 ‘신령한 생활’을 보내면 언제나 하느님과 편히 쉰다.(『보병궁의 성약』 91:35)
인간은 지상에 하느님의 의지를 행하기 위한 ‘하느님의 사자’이다. 그리고 인간은 병자를 고치고 하늘의 영(靈)을 관리하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다.(『보병궁의 성약』 91:39)
그래서 ‘인간은 지상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숭배하는 자는 사람을 숭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식이 한 몸인 것과 같이 한 몸이기 때문이다.(『보병궁의 성약』 91:41)
예수께서 12사도에게 말하기를 이 전능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대들은’ 만유와 하늘의 모든 힘을 통어할 수가 있다.(『보병궁의 성약』 89:8)
하느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이다. 만일 너희들을 이끄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에 있다고 한다면, 새가 너희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갈 것이다. 만일 그들이 바다 속에 있다고 말한다면, 물고기가 너희들보다 하느님 나라에 먼저 갈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너희들 속에 있다. 동시에 너희들 밖에 있다.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을 안다면 너희들은 아버지 하느님의 아들이 너희들 자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면 너희들은 가난한 나라 안에 있고 가난함이란 너희들 자신일 것이다.(『법화경과 신약성서』, 13∼14쪽)



자유(생명, 구원)로 가는 유일의 길
만약 그대들이 죄를 범하지 않으면 그대들은 자유롭다. 그러나 그대가 만약 사상, 언어, 혹은 행위로 죄를 범한다면 그대는 노예로다. 진리 말고 너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도다.(『보병궁의 성약』 135:23)



생명의 근원은 인간의 마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자아, 하늘에서 천국을 구하는 것을 그만 두시오. 오직 마음의 창을 여시오. 그러면 빛이 환히 비쳐들 듯, 천국이 와서 무한한 환희로 넘치게 해 줍니다.(『보병궁의 성약』 33:10)



인간은 육화(肉化)한 신(神)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形相),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다음에 나오는 예수의 가르침은, ‘인간의 본질은 피조물로서 죄인의 상태에 있으므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을 기본교리로 하여, 2천 년 동안 서구 기독교가 인간의 신성(神性)을 억압해온 내용과는 본질을 달리하는 인간에 대한 최상의 진실된 고백이다.
인간은 지상의 하나님이다.(『보병궁의 성약』 91:41)
인간은 모두 육화한 신이다.(『보병궁의 성약』 163:37)
인간은 우주의 놀라움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온갖 생명의 단계를 지나온 생명이기 때문입니다.(『보병궁의 성약』 32:4, 바라타의 말씀)
인간에 대한 이 놀라운 선언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나타나 있는 내용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한 지상의 유일한 존재이므로, 인간은 지상의 하나님이며, 육체라는 옷을 입고 있는 신인 것이다. 인간(성자)은 성부와 성신의 조화가 결합하여 화생된 우주 최상의 신비와 조화로 가득 차 있는 존재이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35절까지를 보면 이와 같은 인간에 대한 가르침이 더욱 뚜렷해진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복음」 10:30)
이에 유일신 관념의 노예였던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 할 때(31절), “내가 하느님의 진리의 선한 일을 너희들에게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러한 나를 왜 돌로 치려 하느냐?”고 예수가 항변한다(32절). 이 때 이 무지한 유대 군중들이,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대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느님이라 하는 참람(僭濫)함, 즉 신에 대한 불경 때문이다”라고 자신들의 정죄행위를 정당화한다. 이에 예수는 다음과 같은 옛 이야기를 들추며, 인간 자신의 신성과 존엄성을 완전히 잊어버린 채 무지의 광기로 분노하는 폭도들의 맹신을 이렇게 힘있게 깨우쳐 준다.
너희 율법에 기록(「시편」 82:6)된 바 내가 너희를 신(gods)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한복음」 10:34)
쪾대문자 God은 하나님(대우주 변화정신)과 그 주재자인 하느님(상제님)을 뜻하지만, 이 구절의 소문자 gods는 일반적인 복수(復數)의 인격신을 뜻한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gods)이라 하셨거늘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느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요한복음」 10:36)
사실 이 때의 신(神)은 우주신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는 “내가 이것을 처음 말하는 것도 아니오, 너희 구약의 말씀에도 다 기록되어 있는 것인데 여태까지 그 뜻도 모르고 맹신과 광신만 하였으니, 너희들 참으로 무지막지할 정도로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이로구나!” 라고 통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계제에 2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한 기독교계의 중견 간부와 함께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기독교의 교리로는 인간이 신(神)이라 말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하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오도된 인식의 한숨소리가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내 귓가를 스칠 때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이 본래부터 신(성자 하느님)이라는 이 한소식을 깨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상에 와서 형극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생명까지 바쳤던 것이다.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요한복음」 7:28∼29)

기독교의 도맥  

구약과 신약에 흐르고 있는 기독교의 도맥은 신선의 도맥인 선도(仙道)이다. 기독교가 선도라고 하는 데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구약에 아담의 7대손인 에녹과 선지자 엘리야가 산 육신을 그대로 가지고 하늘로 선화(僊=仙化)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모세와 예수도 부활한 육신을 가지고 하늘로 승천하였다.(변찬린, 『성경원리』 상권)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옷은 호지 않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요한복음」 19:23)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로마의 위병들이 옷을 주워서 나누었다. 허나 저고리가 매우 좋은 ‘솔기(꿰맨 줄) 없는 것’임을 알았다.(『보병궁의 성약』 170:37∼38)
내가 당신들께 온 이 몸은 빛의 속도로 인간의 육에서 변한 것이오.(『보병궁의 성약』 176:28)
예수는 인간으로서의 육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원한 불사의 생명의 몸으로 화하여 천의무봉(天衣無縫)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예수는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와 여동생 미리암, 다수의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람산의 정상에서 빛의 날개를 타고, 꽃다발에 둘러싸여 하늘로 선화하였다고 전한다.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은 뒤에서 살펴본다.
그리고 예수가 천명(하느님의 명령)으로 펼친 구원의 도맥이 선도(仙道)인 것을 확고하게 알 수 있는 가장 명백한 내용은 “하느님은 십(十)이다”, 곧 “하느님은 10수의 차원에 계신다”고 하신 말씀이다. 왜 그러한가? 선도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조화의 근본자리는 십(十)무극(성부 하나님, 本體神)인데, ‘하느님에 대한 기독교의 10수 상징’은 선도가 지향하는 이 무극자리를 준엄한 법력으로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하권 1부 참고)

기독교는 여름철의 진리  



이제까지 우리는 기독교 정신의 몇 가지 중요한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대국적인 천지의 법도로 볼 때 예수가 걸어간 구도의 길은, 구원의 정신을 제시하기 위해 태초에 이미 예정된 각본이기도 했다.
본래 부유한 집의 딸로 태어난 그의 모친 마리아는 16세 때 예수를 수태하였다.
예수는 키드론 계곡에 세 개의 봉우리로 솟아 있는 올리브산(감람산, 820m)의 지맥(地脈)을 타고 나와 도를 폈다. 여기서는 심각할 정도로 왜곡되어 있는 기독교 정신의 핵심을 좀더 보완하여 알아보는 의미에서, 우주관과 신관 그리고 기독교의 도맥 등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로, 기독교는 한 하나님(대우주 자연의 본체신)을 근원으로 하여, 우주의 창조원리(理)를 주재하는 다수의 하느님들(인격신, 엘로힘)이 존재함을 밝혀낸 철저한 일원적 다신(多神)의 종교이다. 이러한 신도(神道)의 비밀을 기독교는 ‘1위(1수)-3위(3수)-7위(7수)-10수’의 전개원리로써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 정신의 기본 틀은 3수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신·구약에서 살펴보면, ‘유대인의 시조 아담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유대족의 정신적인 太祖) - 후(後)아담으로서 예수’로 계승되는 혈통사의 맥과, ‘선악나무 - 생명나무 - 십자가 나무(선악을 초월하여 생명으로 인도하는 중보자로서의 道木)’로 통하는 정신사의 맥이 그러하다.
그리고 아직도 완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삼위일체 신관(성부-성자-성신)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삼위의 하나님 신위(神位)는 본체의 관점에서 볼 때 비록 그 본질은 동일하며 일체의 관계에 있지만, 현실 역사에서 작용하는 삼위신 각자의 독자적인 주체적 입장에서 보면, 우주의 통치자이신 아버지(성부)와 아들(성자)과 성신(인격신)은 엄연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이 성삼위신(聖三位神)에 대한 내용은 다섯 차례에 걸친 종교회의에서, 삼위의 독자성을 무시한 채 일신(一神)적 관점만 고집하는 그릇된 유일신관으로 무지하게 해석되고 왜곡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해 잠깐 살펴보면 본래 미트라(고대 페르시아의 태양신)를 숭배하다(당시 유럽에 널리 퍼져 있었다) 임종의 병상에서야 영세를 받았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 교리에 문외한으로서, 자신이 선발한 318명의 주교를 소집한 제1차 니케아 종교회의(CE 325년)를 주재하여 “예수는 하느님과 같다”고 의결하여 버렸다. 그리고 본체적인 일체의 면만으로 삼위일체의 신관이 정립된 것은, 악의 폭군 테오도시우스 1세(CE 347∼395)가 소집한 제2차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였다. 그리하여 오늘의 기독교도들은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전혀 진지하게 생각 한번 해보지 않고 그저 단순하게, “삼위일체에 의해 하느님과 예수는 한 분이잖아요”라고 너무도 쉽게 말해 버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예수)은 각기 다른 사명을 갖고 있으며 서로 독립된 인격으로 존재한다.


둘째로, 기독교는 10무극 시대를 예고한 7수 종교이다. 이 7수에 담겨있는 신의 조화원리(천지의 象數원리)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기독교 정신의 정수에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최초로 우주와 인간화생을 주재했던 7성신을 비롯하여 창조의 한 역사시대(선천세계)를 끝맺는 7년 대환난만 보아도, 기독교는 역사의 시종(始終)을 7수로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노아의 홍수 때에는 천상에 있는 일곱 개의 수문과 일곱 개의 입을 가진 샘문을 열었다고 하는(神道에서 행하여진 비밀) 기록이 구약외경 「요벨서」 5장 24절에 남아있으며, 역시 구약외경의 하나인 슬라브어 「에녹서」를 보면, 기독교 최초의 신선인 에녹이 침상에서 선잠을 자다가 천상으로 올라가서 제1천에서부터 일곱(7)번째까지의 하늘을 차례로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우주조화의 타오르는 불[7午火]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풀어져서 새로운 시공으로 ‘질적인 대변화’를 이룬다는 천지개벽운동(「베드로 후서」), 마지막 날 개벽심판의 대환난을 주재하는 「요한계시록」의 일곱(7) 재앙천사, 그리고 예수의 유지(遺志)로 베드로가 이룩한 최초의 일곱(7) 교회 등등, 이러한 모든 것이 기독교 7수 정신의 중요한 예들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기독교는 우주의 ‘남방 7화[七午火]’의 창조정신을 맡아 가지고 출현한 7수의 여름 종교이다. 이 때문에 기독교가 세계 4대 종교 가운데 가장 번성하게 된 것이다(이는 하권 1부에서 설명될 것이다). 대저 이 7수는 우주의 완성(十數 무극시대)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 수이다.
그리하여 파티마 제3의 계시와도 상통하는 성(聖) 말라키의 예언 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해당하는 ‘태양의 신고(辛苦: 고통)’라는 말도, 바로 선천우주의 완성을 향한 마지막 준비[7火]시대의 종결을 의미한다. 이것이 옛사람이 그토록 외쳤던 ‘일곱 번째 큰 수’에 담겨 있는 심오한 의미이다.


셋째로, 기독교는 십수[十無極, 十天] 지향의 종교라는 점이다. 이는 하느님이 존재하시는 조화의 바탕자리가 10수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하느님은 십(10)수’라 하였으며, 구약외경 「피르게아보스」(『탈무드』를 구성하고 있는 「미슈나」 중의 한 권) 제5장 벽두에 보면 “열 가지 말로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전해 주고 있다. 또한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 꼭 10대 만에 제1차의 심판이 임하였으며, 아브라함이 황야에서 받은 열(10) 가지 시련과 열 가지 전염병, 그리고 모세가 받은 십(10)계 등의 내용이 기독교가 바로 이러한 십무극의 선맥(仙脈)을 계승하여 발전시켜온 도맥이란 사실을 증명해 주는 생생한 실례들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조화(10)시대를 예고하고 이를 실현시켜 가는 기독교 정신의 핵심이 십자가[十]정신이다. 이것이 얼마나 희생과 부활의 정신을 사무치게 우주에 드러내고 있는가는, 신약외경 「니고데모복음서」 26장을 보면 예수가 지옥의 중앙에 십자가를 두어 승리의 표상으로 삼고 있음에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옥은 기독교 신명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상에 두루두루 깔려 있다.
다음으로 인류 구원의 도맥이 기독교에서 전개된 흐름을 보면, 삼수원리(三數原理)에 의해 멜기세덱 - 예수 - 성부 하느님의 지상 강세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슬라브어 「에녹서」를 보면 멜기세덱은 비극적인 운명으로 태어났다. 성경 최초의 대제사장 멜기세덱은 평생 자식이 없었던 부모(니루, 소포님)가 노경의 죽을 나이가 되어서야 낳았는데, 어머니인 소포님이 사경에서 그를 낳고 죽자, 아버지인 니루와 니루의 형 노아가 신의 계시를 받아서 붙여준 이름이 바로 멜기세덱이라 한다.
기독교 구원의 맥은 선맥이다. 기독교는 서양의 선도이다. 아즈한(혹은 아프산)에서 승천한 에녹을 필두로 하여 몸을 산 채로 그대로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는 천선(天仙)과, 무덤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살아나서 변화된 몸으로 시해선(尸解仙)이 되어 승천하는 지선(地仙)의 2대 선맥(仙脈)이 성경에 굽이쳐 흐르고 있다.(변찬린 『성경원리』, 김현룡 『신선과 국문학』)
물론 이는 예수가 33세 때 부활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동양의 정신세계에 비추어 볼 때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10무극 자리(성부 하느님, 본체신)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도맥이 선맥이라는 것은 이언(二言)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끝으로 기독교의 세계관·시간관의 본질은 순환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선악나무(선천 상극) 정신에서 십자가 정신과 생명나무(후천 상생) 정신으로 이어지는 기독교의 세계관이 그러하다. 또한 에녹이 천상에 올라갔을 때 장엄한 우주의 천체가 운행되는 엄청난 모습을 보았는데, 그것은 태양이 열두 개의 하늘 문[天門]을 통과하면서 순환하는 광경이었다. 기독교는 우주의 순환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이 새로운 차원으로 대전환하는 새 하늘 새 땅의 개벽시대를 아버지 하느님의 천명을 받아 예시하였다.
그리고 이 순환의 대국적인 마디 가운데, 인간이 철들어 가는 선천 전반기 성장과정의 역사정신을 철저한 인과응보의 정신으로 말하고 있다.
애초에 아담 부부는 7년간을 에덴 동산에서 살았는데, 그 해 2월 17일에 선악이라는 우주의 상극의 음성을 들었다(「요벨서」 3:19, 이에 대한 설명은 4장 참고). 4월의 새 달에 들어설 무렵에 아담은 에덴에서 나와 에르다에 정착하였다. 아담은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을 두었는데, 형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이후, 야웨가 주재하는 하늘의 들판에는 가인을 똑같은 방법으로 응징하라는 철저한 인과응보의 정신이 확립되었다. 가인은 아벨의 원기(寃氣)에 걸려서 자기 집이 허물어지는 순간 그 돌에 치여 죽어, 인과응보의 섭리에 의해 동생을 죽인 죄의 대가를 치렀다.(「요벨서」 4:31∼32)―성경에서 말하는 천상의 하루는 지상의 1천년인데 타락의 결과로 아담은 하루를 못 채우고 960세로 죽었다고 한다.
신약외경인 「도마복음」 서언을 보면, “이 말의 해석을 찾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이 있는데, 우주의 법도를 전하고 있는 그 순수한 뜻을 느껴보라.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사람들이 아마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가 와서 이 세상에 주려는 것이 불화(不和), 즉 불, 칼, 그리고 전쟁임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숨겨진 성서』 1권, 314쪽)
기독교는 우주의 창조정신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 때문에, 예수의 이 고백을 2천 년 동안 역설로만 알아왔다. 그러나 이 말은 역사를 전개시켜 가는 신의 비밀인 우주운행의 법도를 그대로 전해 준 것이다. 「도마복음」의 이 말은―예수 스스로가 세계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다만 세계교회의 모델을 준비하러 왔다고 말한 것처럼―자신은 선천 분열 상극의 우주법도를 집행하러 온 성자라는 예수의 고백을 거짓없이 내보인 것이다.


*참고:<도마복음서>
이 책이 카이로의 골동품상을 통해 암시장에 팔리자마자 이집트 정부관리들의관심을 끌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코우덱스codex<고사본(古寫本). 복수는 codices>라고 불리는 13권의 가죽으로 묶인 책들 가운데 한 권을 매입하고 10권 반은 압수하여 카이로의 콥트 박물관coptic Museum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다섯 가지의 특이한 텍스트text들이 실려 있는 제 13권 코우덱스의 많은 부분이 이집트로부터 미국으로 밀반출되었다. 그러나 전체 텍스트의 발견은 새로운 의문점을 불러 일으켰다.이 텍스트가 의미하듯이 예수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는가? 과연 이 텍스트는 확실히 예수의 말을 기록한 믿을 만한 것인가? 제목에 따르면 이것의 내용은 '도마에 의해 씌어진 복음서'이다. 그러나 신약 복음서들과 달리 이 텍스트는 그 자체를 비밀 복음서라고 밝히고 있다.




기독교는 예수를 보내신 천국 백보좌의 아버지 하느님이신 서신의 진리를 예비하는 여름철 진리이다(하권 1부 참고). 그리하여 다수의 세계, 우주의 다천(多天, 7천까지를 말한다. 바울은 셋째 하늘을 체험하였다), 다신(多神)의 주재자를 말한다[다신(多神)이기에 다천(多天)이 되는지, 다천이기에 다신이 되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라]. 또한 기독교는 우주의 전반기 생장(상극 투쟁) 시대에 일어난 천상과 지상의 사건 가운데, 지상의 사건보다는 천상의 사건을 훨씬 잘 밝혀주고 있다. 12진영의 천사장 가운데 루시퍼의 반역사건이나 천상영계의 전쟁을 이야기하는 데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이상, 기독교가 안고 있는 중요한 몇 가지 문제점을 정리해 보았다.
스페인의 불멸의 지성 우나무노는 “인간은 한 우상을 위해서 자신을 죽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씀의 근본 바탕도 전혀 모르면서, 무조건 하느님의 말씀을 소리 높여 외치는 수많은 맹신의 무리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단지 자신의 마음 속에 뿌리 박힌 철성같은 아상(我相) 때문에 비위짱만 조금 틀려도 비기독교인을 마귀의 대왕 내지는 사탄으로 몰아 공박하는 광신이 실로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기독교도들의 의식 속에 파고들고 있다. 자신이 신앙하는 진리가 최고라는 깨질 줄 모르는 우상의 확신으로는 진정한 에큐메니칼(Ecumenical: 신앙일치) 운동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가 없다.
우나무노가 『기독교의 고뇌』란 저서에서 말하고 있듯이, 기독교는 성자의 종교이지 성부의 종교가 결코 아니다. 그는 초창기에 지녔던 순수성이 사라지고 의혹과 모순 덩어리로 변한 오늘날 기독교의 고뇌를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는 서구문명을 죽이고 있다. 동시에 이 서구문명은 기독교를 죽이고 있다. 이처럼 이 두 개는 서로 죽이면서 살고 있다.(『기독교의 고뇌』, 146쪽)”
아마도 이러한 진리의 파탄은 ‘그 날과 그 때’라는 선·후천 교역의 대개벽기를 맞이함으로써 비로소 종결되어지리라. 이러한 소식은 종말을 초점으로 하여 우주 규모의 대환난을 가장 강렬하고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는 대예언서 「시빌라의 탁선」*에서 다시 한 번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빌라 탁선의 대예언(구약외경)


저 깊은 곳에 계시는 영원하신 하느님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여!
아무 힘도 없으면서
인생의 종말이 어찌되는가 눈여겨보지도 않고
왜 그다지 교만해지기만 하느냐.(시빌라의 탁선 1권)



너희들은 잘못 마신 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만물을 굽어보는 하느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3권)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필연적인 힘이 가해진다.(3권)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참한 울부짖음이
광대한 대지에서 일어나고,
대지 자체마저도 죽은 자들의 피를 빨아들이고
짐승은 고기를 질리도록 먹을 것이로다.
그 날에는 칼과 비참이 온다!
고생의 시작이며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종말이여!
종말이 다가올 때는 한밤중에 세계를 놀라게 하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사람들 사이에서 서쪽에는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
피는 굽이치는 강의 제방까지 넘쳐흐를 것이다.
하느님의 분노는 마케도니아의 들판에 쏟아지며(백성에게는) 구원을 주시고왕에게는 멸망을 내리실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매서운) 겨울바람이 온 땅에 거칠게 불어
들판은 다시 악한 전쟁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것은 불과 피와 물과 번개와 암흑과 밤하늘과 전쟁으로 인한
쇠멸과 살육으로 덮는 안개가
모든 왕과 고관을 다함께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그 때야말로 그 분은 사람들 위에 영원한 나라를 세우신다.



그것은 모든 것을 만들어 낸 대지가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결실을 … 주기 때문이로다.…
큰 심판과 지배가 사람들 가운데에 닥쳐오리라.(3권, 5권)
인류의 구원과 천상 아버지 하느님의 지상 강세  



구원의 빛은 동방에서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느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印)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마음에 주셨느니라.(「고린도 후서」 1:21∼22)
기독교에서는 인격적인 절대자(하느님)의 성령의 인(印)침을 받아야 인간으로 생겨날 수 있으며, 또한 천지와 일월이 대변화하는 구원의 환난기에도 성령의 인을 받아야 후천(가을)의 신천지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인(印)은 도장을 말하는데 이는 곧 하느님의 보증을 상징하는 것이다.
다음 구절은, 천상 영계에서 내려와 개벽심판을 집행하는 신명(천사)들이 지구의 동서남북(four corners of the earth)에 자리잡고, 이에 맞서는 구원의 무리들이 지상에서 성령의 인침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본문의 말을 전혀 곡해하지 않고 순수하게 그대로 옮기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인침(구원의 보증)을 받은 자들의 총수는 14만 4천 명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동방으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요한계시록」 7:1∼4)
… 호신부(護身符)와 지환(地環)과 예복과 머리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라 …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香)을 대신하고 … 너희 장정은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이사야」 3:21, 3:24∼25)
이 구원의 인간 천사는 ‘동방의 해뜨는 곳(From the East)’으로부터 온다고 하였으므로, 동양보다는 ‘서양이 나중에 구원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무지한 신앙의 군중들은 구원의 날에 동·서양이 동시에 구원될 것이라는 환상의 꿈을 꾸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상의 인간은 신에 의해 일방적으로 구원받는 존재이므로, 단지 때나 기다리다가 휴거(携擧, rapture)와 같은 구원을 받거나, 아니면 죽거나 하는 두 가지 길뿐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요한계시록」과 기타 예언서에는 영계의 활동 이야기만 주로 나오고, 인간이 활동하며 행동하는 ‘인사(人事)문제’는 극히 조금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동방의 해뜨는 곳으로부터 출현하는 지상의 무리들은 ‘흰 옷을 입은 민족 즉 백의민족’을 말한다. 어린 양의 피에 씻기어 옷이 희어졌다는 것은 고난과 희생, 억압을 받아온 ‘민족의 수난’을 뜻하며, 여기에는 우주의 또 다른 비밀이 한 가지 담겨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요한계시록」 7:9∼10, 7:13∼14)
앞에 나오는 구원의 천사(「요한계시록」 7:2)는 구원의 민족이 나오는 지역에서 함께 구원의 작업을 주재하여 도와 주는 천상의 보호성신들이다.

예수가 증거한 아버지 하느님은 야웨인가
예수가 그토록 자주 부르짖은 하느님 아버지가 야웨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까지도 신약성서의 최대의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유대민족의 야웨는 본래 전쟁을 즐기는 군신(軍神)이며,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처단하며, 정죄하고 심판하는 신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
오늘날의 기독교 신자들은 무지의 환상과 지독한 아집 때문에 야웨를 창조주 하느님으로 생각하는 반면 단군성조나 제우스 등은 잡신 정도로 매도하지만,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수의 가르침을 전혀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무지의 소치인 것이다.
세계 각 민족의 신관을 두루 섭렵하였던 예수가 30세에 비로소 공생애의 첫발을 내디디면서 인류의 가슴에 안겨준 하느님(아바 아버지)의 소식-신약의 복음내용은 과연 유대민족의 주신(主神) 야웨를 가리키는 것일까?
야웨는 우주의 절대권자 하느님(우주생명의 주재자)이 아니라, 제우스가 그리스의 민족신이듯이 유대족의 운명만을 맡은 하느님의 대행자이다. 선천에는 세계를 통일, 구원할 수 있는 천지의 절대자(백보좌 서신)가 나타나실 수 없는 때이다. 이것은 우주의 개벽원리, 곧 운행정신을 알 때에만 풀리는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야웨를 하느님으로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하느님 아버지를 우주생명의 절대정신(우주신, 하나님)과, 이를 주재하신 인격신 하느님으로 동시에 선포하고 있다. 예수는 자신이 현실 우주의 신도(神道) 조직세계(천상 영계의 위계질서)에서 성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을 누차 강조하였다. 자신은 단지 인류에게 하느님의 천지개벽의 절대진리를 선포하고, 또한 구원의 나라가 지상에 펼쳐질 때까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회개하여 영적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구도의 길을 걸으라고 가르쳐준 성자임을 고백할 뿐이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only the Father)’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36)
기독교에서는 절대자를 해석할 때,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의 틀에만 성서의 전 내용을 획일화시켜서 그대로 갖다 맞추어 버리는 경향이 대단히 강하다. 성경의 본래 가르침 자체는 전혀 그러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는 기독교의 교리체계가 우주와 우주 신도(神道)의 체(體)와 용(用)의 관계에 대해 전혀 무지하기 때문이다(뒷편에서 자세히 해명한다). 이것이 다른 모든 세계종교와 갈등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세계교회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보내진 성자
하느님의 대행자인 예수의 사명은 다음과 같이 지상천국시대를 여는 초종교의 성부시대를 예비하는 일이었다. 지구를 아니 천지를 개벽하여 단일의 세계교회로, 하느님의 대도장(大道場)으로 건설하는 일은, 개벽기에 출세하시는 하느님의 일꾼에 의해 성취될 것을 예수는 이렇게 예고하고 있다.
인간은 세계교회를 이해할 만큼 아직 신성한 사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고로 하느님이 나에게 명하신 것은 세계교회를 세우는 일은 아니다. 나는 단지 모델을 만드는 사람일 따름이다. 장차 세워질 교회의 모형을 만들기 위하여 보내진 자이다. 이 모델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보병궁의 성약』 60:7∼8)

인격신 성부 하느님의 지상강세
그대들은 나의 모든 삶이 사람들을 위한 한 편의 웅장한 단막극이며 사람들을 위한 모범이었음을 알고 있도다. 내가 이룬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누구나 나와 같이 될 수 있도다.(『보병궁의 성약』 178:45∼46)
이제 나는 하느님께 가려니와 그대들과 온 세상도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게 되리라.(『보병궁의 성약』 180:16)
예수는 자신을 내려보내신 하느님(우주의 주재자)의 궁극적인 섭리는 모든 인간을 완전한 인간으로 익히는 것이라 하였다. 비록 그는, 성부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류의 죄 껍질을 홀연히 벗겨 전 인류를 성숙된 인간으로 익히시느냐 하는 구원의 비밀을 구체적으로 전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자신의 뒤에 오실 분이 ‘더욱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집행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 분께서 지상에서 병마에 시달리고 죄의식에 몸부림치는 인간을 완전히 구원하여, 온 인류를 자신과 같은 생명의 화신으로 화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구원의 절대자는 다른 때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종말에 인간(성자)으로 오시는 성부 하느님이심을 알 수 있다. 이 놀랄 만한 구원의 소식은 「요한복음」 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으로 오신다(우주구원의 실현)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 만일 다른 분이 자기 이름으로 오시면 영접하리라.(「요한복음」 5:43)
유대인들이 …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 하느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느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더라.(「요한복음」 5:18)
예수는, 자신이 아버지(성부)의 이름으로 온 성자인데도 자기 민족이 믿지 않으나, 다른 분(another)이 본래의 자기 이름으로 오시면 온 인류가 다 영접하게 될 것이라 예고하였다. 예수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는 말의 가장 근본적인 뜻을 이해하려면, 구약과 신약의 절대자 개념(神觀)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지상에 강세하시는 성부 하느님
말세에 오실 이 구원의 주님은, 예수와 같이 아들의 이름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자리 그대로인 성부 하느님으로 오신다. 이 성부 하느님이 천지의 새로운 질서를 여시는(개벽하시는) 백보좌의 서신(西神)인 것이다. 예수가 말씀한 신앙의 대가는 단순한 영적 구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상에 오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이루실 구원의 참된 영광을 누리는 데에 있다. 즉, 자신의 조상과 후손을 데리고 신천지(新天地)의 낙원에 들어가 나의 생명을 완성시키는 그것이 신앙의 열매인 것이다. 인류의 전체문명을 익혀 영글게 하실 이 성부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거니시다가, 동방의 땅에 인자(人子)로 강세하실 것을 이렇게 예고하였다.
그 때 물병을 든 사람이 하늘 모퉁이를 지나서 거닐고, 인자(人子)의 표시와 도장(印)이 동천(東天)에 나타나리라. 이 때 어진 사람은 머리를 들고 세상의 구원이 다가왔음을 알리라. … 준비하라, 준비하라, 평화의 사도는 오시도다.(『보병궁의 성약』 157:29~30, 41)
그 때란 선·후천이 교역하는 가을 대개벽기이다. 천상의 보좌를 떠나 물병을 든 사람은 지상에 강세하시려는 성부 하느님을 말한다. 손에 드신 물병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것은 성령의 생명수로서 이 생명수를 우주에 흥건히 돌게 하시어, 우주와 인간을 완전한 생명으로 익히실 것을 암시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느님의 나라(가을의 후천개벽세계)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25)
여기서 말하는 물이란 먹는 물과 같은 물질적인 물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과 생명, 우주 자연이 생겨난 창조의 본체 생명수를 말한다. 성신의 도움과 생명수로 그대의 죽음의 불기운을 끄라는 말이다. 지금은 천지만유가 성장발전의 극한에 도달한 불[火]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 본체 생명수(水)가 고갈되어[水 → 火] 모든 종교의 도맥이 끊어져 버린 혼돈의 말세이다.



예수의 재림은 아버지 하느님의 강세로 이루어진다
예수의 부활과 재림에 대한 학수고대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자 2천년 기독교 역사의 총결론이다. 이 재림에 대해서는 성경의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으며, 인간으로 다시 오는 것이 아니라 승천 때와 같이 신선으로 영화(靈化)된 모습으로 공중재림한다고 믿고 있다.
보라, 인자가 구름 타고 오리라.(「요한계시록」 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느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데살로니가 전서」 4:16)
구원하심이 우리 하느님(성부)과 어린 양(성자)에게 있도다.(「요한계시록」 7:10)
그러나 이와 같이 예수의 재림은 최종적으로 아버지 하느님의 지상강림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전하는 아버지(성부)와 아들(성자)이 성령으로 함께 재림하여, 지상의 낙원에서 삼위일체가 이루어지는 우주역사의 완성의 순간인 것이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가복음」 14:62∼64)
이 구절에서도 전능의 권능자란 성부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며, 예수는 이 아버지 하느님을 모시고 하늘 구름을 타고 함께 재림한다고 하였다.



새 하늘 새 땅의 낙원세계의 모습
이 낙원의 세계는 인류사의 통일문화 시대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가 하나로 통일된다. 예수가 인도의 성자 비쟈빠지와 산길을 걷다가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오는 시대는 분명히 승려도 사원도 산 제물도 필요 없게 되겠지요.(『보병궁의 성약』 35:2)
장차 천지의 새 질서를 여는 대개벽으로 지구상 모든 종교의 사원(교회·절·기도원 등)들이 대청소되어 사라지게 된다. 아직은 환상의 꿈으로만 존재하는 이 미래의 지구촌 낙원에서는 참된 보편진리가 세상을 인도하고, 인간은 한없는 기쁨 속에서 무병장수하며 천지를 관통하는 거룩한 영적 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리라.
그 때 세상은 진리로 인도되고 사람은 진리 그 자체가 되리라.(『보병궁의 성약』 162:9)
너희의 하느님께서 원수 갚으러 오신다. 하느님께서 오시어 보복하고 너희를 구원하신다. 그 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 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는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르리라.(「이사야」 36:4∼6)
곧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 같겠고 백 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 이는 내 백성의 수한(壽限)이 나무의 수한 같겠고 …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라.(「이사야」 65:20∼23)
어둠의 악마들, 죽음과 무지는 속절없이 도망하고 도망하여 아침 햇살 아래의 이슬과 같이 사라지도다.(『보병궁의 성약』 110:6)
그 날의 역사에서 최후로 승리하게 될 인류구원의 나라는 동천(東天)의 나라가 될 것이며, 그러므로 하느님의 조화세계로 열리는 도시(새 예루살렘)는 바로 이 나라에 건설되어 그곳으로 하느님이 강세하시게 되는 것이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느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느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느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계시록」 21:2∼4)



지구촌을 통일하는 세계황제의 출세
그리고 요한은, 석가부처가 양커대왕의 출세를 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지상의 낙원시대를 실질적으로 주재할 만국의 권능자가 다시 나타날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느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요한계시록」 12:5)
다음 구절의 푸르고 붉은 벽옥과 홍보석은 태극을 말하는데, 이 분은 무극성제(無極聖帝)이신 하느님을 대행하는 태극성제(太極聖帝)임을 알 수 있다.(하권 1부 참고)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러 이십사 장로들(24 elders)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요한계시록」 4:2∼4)
또한 이 지상의 낙원에 사람 몸을 받아 태어날 영혼들을 천상에서 내려보내는 주재 신명들은, 예전 지상생활에서 자손을 두지 못했던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펡勞)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이사야」 54:1)
이 성구의 마지막 부분의 의미는 기성종교의 세계관과 신관으로는 해명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자식 없던 자가 거꾸로 자손을 가장 많이 두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개벽세계에 천상 신도(神道, 영계)에서 인간의 생명줄을 열어주는 중천신(中天神)들의 대권에 얽혀 있는 생명창조의 비밀 문제이다.(하권 3부 참고)

세계의 대전환과 구원  



7년 대환난
보라, 추수기는 지금이다.(『보병궁의 성약』 82:7)
진정한 평화는 투쟁 뒤에 오노라. 평화의 님은 우선 투쟁의 님이어야 한다.(『보병궁의 성약』 113:10)
세계의 변국에 대한 성서의 예언의 커다란 특징의 하나는, ‘7년이라는 세기말적인 고통의 일정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우주적 차원의 대변국이 일어나리라는 것이다. 본래 이 ‘7년 대환난’이라는 숫자는, 「다니엘서」 9장 24절에서 27절까지와 사도 요한이 80이 넘은 노인이 되어 도적이 우글거리는 황량한 섬 밧모스에 귀양가서 계시를 받고 기록한 「요한계시록」 11장 2절에서 3절까지에 언급되고 있는데, ‘전반기 3년 반’과 ‘후반기 3년 반’으로 나누어 환난의 전개 과정을 말해주고 있다.
7의 시간적 의미는, 성숙을 이루기 전의 ‘자기발전의 최대 분열정신’을 나타낸다. 할 린제이 목사는 『지상 최대의 예언 1988』에서 이 7년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구 역사의 마지막 7년 … 그 7년은 운명이 판가름 날 운명의 7년이다. ‘7년은 기한이 정해진 내일’이다. 무서운 대재난이 다가올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무서운 대재난이, 세계를 휩쓸어 버릴 역병과 폭동의 유혈, 기아와 살육의 세월이 올 것이다.(『지상 최대의 예언 1988』, 220쪽)
세계 역사상 최대의 고통을 몰고 오는 이 7년의 기간(7火로서 불을 상징)은, ‘새로운 꿈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 기간이다. 자기 민족을 구원해 주기 위해 온 예수성자를 무고하여 죽인 죄값으로 2천 년간 나라를 잃은 채 떠돌았던 유대족이 다시 집결하는 이스라엘의 재건*이, 이 7년의 환난기가 다가오는 언저리에서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7년 대환난은 재난의 본격적인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태복음」 24:6∼7)
전쟁의 난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 숨어 있다가 터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자연의 원리로써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가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
만사는 자연법칙의 결과이다.(『보병궁의 성약』 37:12)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누가복음」 21:35)
심판의 날은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리라.(『보병궁의 성약』 116:11)
7년 대환난은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나 목자들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단순히 심판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우주자연의 법칙이 변화하는 대개벽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결정적인 대개벽이 있기 전에 세 가지의 재난이 있을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이것이 아마겟돈이라는 지구촌 최후의 전쟁과 대병겁, 그리고 천지와 일월성신의 큰 이변이다.



인류의 최후전쟁과 대병겁
성경은 중동사태가 점점 악화되어 결국은 전세계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확실히 중동은 화약고다. 이 화약고가 터지면 전세계의 이목이 여기에 집중될 것이다. 중동의 화약고는 전세계를 핵전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몰고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지상 최대의 예언 1988』 244쪽)

새 하늘 새 땅을 여는 대개벽의 강도(强度)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요한계시록」 6: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우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복음」 24:2)
예수는 이 진노의 큰 날이 천지의 처절한 대변국임을 말하면서 하늘과 땅, 바다까지도 흐느껴 우는 슬픔의 날이라 하였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누가복음」 21:25∼26)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요한계시록」 8:7∼10)
…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It is done)’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요한계시록」 16:17∼20)
그러나 이러한 지구의 대격변은 절대로 궁극적인 파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는 천지가 새 시간대로 들어서는 위대한 새 우주 창조의 몸짓이기 때문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도서」 1:2~4)
그렇다면 하늘과 땅과 별들의 대변동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것은 백보좌의 심판으로 새 하늘 새 땅이 우주에 펼쳐지는 순간인 것이다.



백보좌의 아버지 심판
기독교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심판 가운데서도, 천상의 보좌에 앉아계신 인격신 하느님에 의한 이 백보좌 심판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또한 백보좌 심판은 인간이라는 숙명적인 존재에 대한 감동적인 신비의 구원 내용이 함축된 심오한 우주 창조사상도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 서구의 기독교 신학은 백보좌 심판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백보좌 심판이야말로 기독교 구원관의 핵심결론임에도 불구하고, 몽매하기 짝이 없는 기독교 신학은 2천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도록 백보좌에 얽혀 있는 우주의 불가사의한 대개벽의 신비를 전혀 밝히지 못한 채, 단지 성경의 지엽적인 자구 해석에만 얽매여 있으니 어찌 한심치 않으리요.



백보좌의 아버지 하느님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 예수는 곧 하느님(아버지)인가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요한계시록」 20:11)
백보좌의 신은 단순히 글자 그대로 흰색의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서구 신학에 의한 왜곡과, 이에 절대적으로 맹종해 온 대중들의 철저한 무지 때문에 백보좌 하느님의 정체를 올바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 백보좌에 앉아 계신 절대자는 예수가 아니다. 그 분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과 하늘의 질서를 갈아치우는 전능의 절대자이다. 곧 예수가 피 흘리며 증거한 하느님이며 예수를 내려보낸 바로 그 아버지 하느님이다. 실제로 예수성자는 자기를 ‘하느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人子]’이라 하였을 뿐,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외친 구절이 성경에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사도 요한이 전한 백보좌 하느님은 곧 남사고 선생이 전한 서신(西神)과 동일한 분으로, 인간과 우주자연의 완전한 구원(full salvation)을 주재하시는 하느님을 뜻한다. 이 때의 하느님은 기독교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불러온 단순히 전지전능한 하느님보다도 훨씬 심오한 신도(神道)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서신(西神)은 천지일월의 운행원리와 천지신명계의 구원의 법도까지도 나타내고 있는 개념이다. 불교에서는 이 서신의 강세를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의 출현으로 전하면서, 장차 서방정토세계(가을천지)에서 걸어오신다 하여 불상을 만들 때 반드시 입불(立佛)로 조성한다. 서신을 금신(金神)이라고도 하는데, 금(金)은 생명을 여물게 하는 가을의 영기(靈氣)를 말하며 백색으로 상징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인류구원을 주재하시는 절대자를 백보좌 하느님으로 전한 것이다.
기독교의 최후의 구원관은 다음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과응보에 의한 예정론이다. 현 세계인류의 죽음과 삶은, 대국적인 차원에서 볼 때는 이미 이 백보좌에 어재(御在)해 계시는 대우주 통치자 하느님의 생명책에 명문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미국의 기독교 종말론 분야에서 시리즈로 1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하는 『우리는 종말의 시간대에 살고 있는가?(Are We living in the End Times?)』의 저자들(Tim F. Lahaye & Jerry B. Jenkins)이 고백하고 있는, 기독교 성서에서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구절이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요한계시록」 20:12)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요한계시록」 20:15)
천상의 명부책에 기록된 모든 인간의 행위를 총체적으로 심판하는 백보좌의 서신 하느님은, 지금의 천지를 뒤바꿔 놓으시는 대개벽의 절대자이다. 개벽세계의 경계를 미리 계시받았던 사도 요한이 백보좌의 절대자 앞에서 천지가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말한 것처럼, 백보좌 하느님의 권능은 묵은 하늘과 묵은 땅까지도 일순간에 새 하늘 새 땅으로 갈아끼우는 무상의 대권이다.



우주의 시공간이 질적 비약하는 개벽이 온다
그러나 주(아버지)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천지의) 체질이 뜨거운 불(fervent heat)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베드로 후서」 3:10)*
※ fervent heat: 양화(陽火) 즉 칠화(7火). 보통의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천지의 조화의 영기(靈氣)이다.
여기에서 예수의 수제자이자 기독교 영계의 천국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체질(원소들, elements)’이란, 린제이 목사의 설명과 같이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원자(atom)를 가리킨다. 아톰(atom)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아토모스(atomos)에서 유래되었는데, 본래의 뜻은 순간이다.
우주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원자들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는 것은 우주 개벽의 순간에 벌어지는 변화의 실상을 표현하고 있는 구절로서, 우주공간을 메우고 있는 지금의 천지기운(분열의 극인 火氣)이 질적으로 뒤바뀔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즉, 이는 지금의 인간과 천지를 잡아 돌리고 있는 이 7화[午火]의 영기운이 금화교역(金火交易)을 통해 자신을 융해시켜, 성숙된 가을의 천지기운인 금기(金氣)로 바뀌게 됨을 말한다. 앞서 알아본 백보좌의 서신은 이 천지 성숙기의 가을영기를 주재하시는 실질적인 우주 통치자인 하느님 아버지(인격신 성부)를 가리킨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성장기의 이 천지생명[7火]의 질적 대변화를 ‘일곱 번째 큰 수가 다 돌고 나면…’이라 하였으며,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레이포즈(Raypoz) 곧 서풍(西風)이라고도 하였다. 새 진리의 시간대로 들어서는 이러한 천지의 대개벽에 의해 새로운 하늘과 땅의 질서가 열리면서 인류의 영원한 낙원시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1:1)
기독교처럼 파멸, 심판, 재림, 구원과 같은 자극적인 언어를 많이 쓰고 있는 종교도 아마 없을 것이다. 죄악의 때가 벗겨진 이 새 하늘과 새 땅에 건설되는 세계가 바로 온 인류의 에덴(기쁨)의 동산인 것이다. 이 에덴의 지상에 천상의 하느님이 성령으로 강림하여 인류와 함께 지상에서 살리라는 것이 기독교가 전한 가장 큰 축복의 메시지이다. 기독교의 최종적인 구원도 이와 같이 천지 자체가 개벽으로 새롭게 바뀐 뒤에 완전히 실현됨을 알 수 있다.
본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롭다(New)’는 말에는 ‘질서가 새롭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경 내용은 어떠한 원리로 지금 천지의 질서가 개벽되는 것인가를 전혀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천지의 이법에 극히 취약한 모든 선천종교의 본질적, 태생적 한계라 할 것이다. 이 구원과 우주 개벽에 얽힌 신비의 극치는 증산도 우주론에서 명쾌하게 해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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