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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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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쿠르드족의 역사 1

  

쿠르드족의 역사 1

略史


1. 고대시대(BC 3000년 - BC 5세기)

분열 도시국가 시대

메소포타미아 비옥한 초생달 지역의 북쪽 산악지대에 살았던 토착민들이 인류 최초의 농경문화를 시작했음이 고고학적 발굴로 증명되었다. 이들의 영향으로 탄생한 것이 수메르 문명이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하면서 북쪽 산악지대에 부족별로 촌락을 이루고 살았던 민족들은 경제,정치적인 이유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과 계속된 충돌이 있었고 그들 보다 발달된 문명인들에게 시달림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었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으로 도시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정치체제를 갖출 수 있었다. kummuhu, melidi, gurgum, ungi, kamanu, kasku, nairi, shupria, urkish, mushku, urartu, namar, saubaru, qurtie, mardu, lullubi, kardu, zamua, ellipi, manna, qutil등이 당시에 존재했던 도시국가들이다.

이 도시국가 중에 쿠틸(Qutil)이 강력해져서 여러도시국가를 점령하고 왕조(BC 2250-2120)를 건립하였으며 남부의 아카드 왕국과 수메르 왕국에 침입하여 수메르 비문에 그 이름이 기록되기도 하였다. 기원전 653년까지 바빌론 사람들이 쿠르디스탄 전역에 살았던 사람들을 쿠틸이라 불렀던 것도 이 당시 쿠틸의 세력이 막강했음을 보여준다.

또 중요한 국가로는 만나(Manna)국인데, 만나의 정치형태가 민주주의 형태를 띈 사실이 중요하다. 이것은 지금까지 알려져있던 그리스의 민주정치 형태보다 훨씬 앞 선 것이다. 왕의 권력이 원로회의에 의해 제한되었다.

아리얀족의 이주&쿠틸인의 아리얀화(BC 1200 - 900)

메소포타미아와의 잦은 전쟁으로 많은 쿠르드 도시 국가가 파괴되었고 쿠틸인들이 노예로 잡혀가고 강탈당하였다. 이때 아리얀족의 침입이 있었다. 기원전 1200-900년 사이에 계속해서 아리얀족의 이주가 있었고 쿠틸인들을 비롯한 산악민족들은 아리얀화되었다.


메대왕국(BC 727 - 549)

쿠틸인으로 불린 산악민족과 아리얀족이 함께 동화되어 형성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들이 기원전 727년에 메데왕국 형성하였고 전 중동을 정복하였다. 이때 니느웨를 비롯해서 바빌론 등 성경에 멸망이 예언된 국가들이 파멸되었다. 세 번째 왕 Cyaxares the Great키악사레스 (624-585)가 니느웨를 정벌(BC 612)하였고 앗시리아를 무너뜨렸다. 이때 사용된 군사전술이 '카라'라고 불린 게릴라를 이용한 전술이었다. 지금은 '페슈메르가'라고 불린다. 마지막 왕인 Rshti-vega Azhi Dahak(584-549)는 아들이 없어서 그의 딸을 페르시아 장군에게 주었고 그들 사이에서 난 외손자 가 메데-파샤제국을 세운 키루스(Cyrus, 구약성서의 고레스)왕이다. 메대제국의 권좌는 이제 페르시아 아케메니드조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마지막 왕의 통치기에 천사숭배가 초기 조로아스터교의 태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조로아스터교의 마기(사제)제도가 소개된 것이 바로 이 때이다. 조로아스터교도들은 마지막 왕 Azhi Dahak을 악마로 보았다. 그래서 여전히 아즈다학은 쿠르드 야르산 종교를 믿는 자들에 의해 원래이름은 없어지고 술탄 싸학(Sultan Sahak)으로 숭배된다. 쿠틸인들이 아리얀화된 이후에 현재의 이란적인 문화로 바뀌었다. 그 전에는 현대의 그루지야와 같은 코카서스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현대 쿠르드에 남아있는 메데인의 흔적은 지명에 붙은 mah 또는 mai이다. 이것은 메데를 뜻한다.





2.고전시대 : BC 5세기 - AD 6세기


헬레니즘 시대

발칸반도에서 세력을 키우고 그리스문명을 온전히 흡수한 알렉산더제국은 동방의 페르시아제국과 필연적으로 접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리엔트지역을 병합하고 그곳에 헬라의 문화와 오리엔트의 문화를 융합시켜 헬레니즘 문화를 창출해 내었다. 역사가 크세노폰은 이 당시 이 지역을 방문해 쿠르드인들을 발견하고 카르두코라 불렀고 폴리비우스는 쿠르티라고 불렀다.


쿠르드 공국시대

BC 3세기에 페르시아는 또다시 파르티아라는 이름으로 제국을 형성하였고 오리엔트지역과 아나톨리아 지역을 장악하였다. 파르티아제국은 연방국으로 형성되었는데, 그 연방 안에서 쿠르드인들은 타민족의 오랜 지배하에서 벗어나 반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이 당시 쿠르드인들은 정치와 종교에 있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파르티아인은 많은 면에서 다른 페르시아인보다 쿠르드인과 비슷했다. 정치의 느슨한 자유가 쿠르드인들과 닮은 점이다. 쿠르드 공국 중에 알아둘만한 공국으로는 Adiabene, Pontus, Cappadocia, Commagene 등이 있다. Adiabene은 오늘날 이라크의 아르빌에 세워졌던 공국인데, BC 1세기에 많은 귀족들이 유대교로 개종하였다. 로마가 유대를 정복할 때, 사마리아를 방어하기 위해 Adiabene은 지원군을 파병하기까지 했다. 또한 AD 4세기 까지 이지역의 대부분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Pontus, Cappadocia, Commagene는 아나톨리아 중서부에 있었던 공국인데, 세력이 팽창하여 에게해를 넘어 유럽대륙까지 진출하여 로마제국과 부딪히기 까지 했다. 미쓰리다트6세(Mithridates BC 121-63)때 폰투스는 절정에 달해서 그리스와 코카서스, 우크라이나 남부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로마의 확장기(BC 57 - )

BC 57년에 서부의 3개 국가는 로마에게 정복당하였고 유프라테스를 경계로 로마와 파르티아가 접경하게 되었다. 고대로부터 서부쿠르드인들의 고향인 안디옥 주변의 아마누스 산지에 사는 쿠르드인들은 셀루키드왕국 당시에 안디옥에 정착해서 살았고 로마가 들어왔을 때, 로마 행정관들과 강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사산조 페르시아의 침입때에는 이 지역 방어를 돕기도 했다. 이 시대에 그리스-로마의 만신전 판테온이 쿠르드인들에게 전래되었다.

AD 3세기에 파르티아제국이 패망하고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이 일어났다. 이 당시 자그로스 남동부로부터 많은 수의 쿠르드인들이 아나톨리아로 이동하였다. 이 이동은 쿠르드의 동일화와 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이동을 통해 천사숭배가 공유되었고 문자, 예술, 등이 동일화되었다.



3. 중세시대 : 6세기 - 16세기


쿠르드인들이 역사상에 뚜렷이 부각되는 시대이다. 이 시대에 쿠르드인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이슬람 세계의 일원으로 녹아들어 이슬람 문화 창달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되었다. 7세기에 이슬람이 발흥하고 아랍의 정복시기에 3대 칼리프 우마르(Umar,634-644)의 이란 원정때에 반(Van),하카리(Hakkari)등 쿠르드 지역이 아랍군에게 정복당하면서 쿠르드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쿠르드는 최초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민족이다. 그 후,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의 아랍제국을 거쳐 튀르크족의 셀죽,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놓였다.

11세기 말경 압바스 왕조가 쇠퇴하자 수많은 쿠르드 공국들이 난립하여 일시독립을 유지하기도 하고, 1071년 오우즈 투르크족의 일부가 말라즈키르트(Malazgirt)전투에서 비잔틴 세력을 이기고 아나톨리아에 셀죽 왕조를 창건할 때, 이 일대의 토착세력인 쿠르드 부족들의 협력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한 댓가로 반(Van)호수와 자그로스(Zagros)산맥을 잇는 지역에 쿠르디스탄 주(州)가 설치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쿠르드족 자치지역이 공식적으로서 선포되었다. 또한 1514년 오스만 제국과 이란의 사파비(Safawid)왕조와의 찰드란(Chaldiran) 전투에서 23개의 쿠르드 공국들이 종교적으로 그들과 같은 순니파인 오스만 제국을 도와 전쟁을 오스만의 승리로 이끌고 쿠르디스탄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간헐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한 자치는 중앙 세력이 약할때나 주위 세력과 연합해서 이루었던 것이다. 쿠르드인들은 계속해서 타민족에게 지배를 받았고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다. 14세기 티무르의 통치하에 놓이면서 가혹한 살육과 핍박을 경험했으며, 찰드란 전투의 공로로 세워진 자치권도 1639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Sultan Murad)와 사파비조의 샤 압바스(Shah Abbas) 사이에 맺어진 국경선 조약을 통해 쿠르디스탄 지역이 상이한 두개의 구역으로 양분되는 운명을 맞이 하였다.

이때 부터 쿠르디스탄에는 고립된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수많은 부족적 자치소국(自治小國)이 등장했으나, 19세기까지는 터키, 이란, 러시아 간의 지리적 완충지대의 기능에 머물렀다.



4. 최근의 역사와 동향

19세기에 들어 서구의 본격적인 침략과 함께 쿠르드족의 견고하고 조직적인 반란이 1826-1880년까지 계속되었다. 최초로 쿠르드인의 정치적 민족주의가 발아하는 시기는 1880년이었다. 이 해 쿠르드 족장 쉐이크 우베이둘라(Sheikh Ubaidullah)가 이란을 침공한 대가로 오스만 정부로부터 쿠르디스탄의 일부를 할양받고 이란 영내의 쿠르디스탄에 일종의 쿠르드 민족국가를 설립하였다. 그는 8만의 강력한 쿠르드 연합군을 결성해서 계속해 이란을 침공하여 마하바드(Mahabad)를 점령하고, 한때 우르미아(Urmia)호수의 서안, 레자이 지역까지 진격했으나 앗시리아 네스토리우스 교도의 저항과 이란 정부군의 반격으로 민족국가 창설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우베이둘라의 [민족국가] 창설 이념은 이후 쿠르드 민족주의의 탄생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때에 쿠르드족은 이슬람 형제라는 이름으로 터어키군에 편입되어 터어키에 이용당했고 러시아와 터어키 사이의 전쟁은 터키의 쿠르드인들과 기독교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이 됨으로서 대리전(代理戰) 양상을 보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쿠르디스탄은 터키, 이란, 이락, 시리아, 소련 등 5개국에 편입됨으로서 분리되었다. 1920년 세브르조약은 쿠르드 자치권을 보장했으나 1923년 로잔조약에서 터어키의 반발과 영국의 이권에 의해 쿠르드 문제가 언급조차 되지않고 망각속으로 사라졌다.

쿠르드 민족운동은 2차 대전 이후 소련이 이란을 점령했을 때, 다시 일어났다. 소련의 도움을 받아 1946년 1월 24일 마하바드에서 카지 무함마드를 대통령으로 쿠르드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이 공화국도 1년이 채 못되어 이란의 속임수로 소련의 묵인하에 이란 정부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쿠르드족이 이란, 이라크, 터어키, 크게 3개국으로 편입되면서 쿠르드 독립운동의 장애물도 각각의 중앙정부의 정책에 의해 달리 나타났다.

이란에서 호메이니 혁명이 일어나면서 쿠르드인들이 혁명을 도왔으므로 자치에 대한 다소 희망이 있었으나 범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호메이니가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 터어키도 쿠르드인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쿠르드인들을 산악터어키인이라 부르면서 그들의 자율적인 문화생활까지 탄압하였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이라크의 공격을 묵인해 주었으나 이라크 세력을 제한하기 위해서 이란에게 쿠르드반군 원조를 부추겼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이라크의 사담후세인은 1987년과 88년 사이에 할랍자(Halabja Massacre, 1988.3.)등 대대적인 쿠르드 학살을 자행하였다.

1991년, 걸프전을 전후로 해서 쿠르드의 독립운동이 또다시 일어나자 이라크는 다시 한 번 쿠르드를 위협했고 이것을 계기로 북위 36도 비행금지구역내에 쿠르드 자치구역이 정해지고 서방의 도움으로 자치 정부를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쿠르드는 현재 독립운동을 다각적으로 진행시켜나가고 있다. 95년 4월에 헤이그에 망명의회를 설립하고 각종 국제기구에서 쿠르드족을 대표하게 될 것을 선포하였고 쿠르드 위성방송 MED TV이 95년 3월 영국에 세워져서 하루에 3시간씩 쿠르드어 방송을 시작하였다. 이 방송이 쿠르드 반군에게 힘을 더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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