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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충청도, 전라도 축복의 또 다른 풍수여건 마이산~~





 









글쓴이 : 향수

  

  
충청도, 전라도 축복의 또 다른 풍수여건



역사에서 전하는 전라도가 축복받은 땅이라 함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예를 들면, 이성계는 전라도 마이산馬耳山에서 영몽靈夢으로 금척金尺을 받고 전라도 장수에서 봉황이 개국을 알리는 등 전라도를 왕조의 발상지이자 개국의 근간으로 보았고 전주, 개성, 한양을 3京으로 승격하여 전라도를 특별 대접하였다. 또한 방석(芳碩)의 태자비를 전주출신 심효생의 여식으로 하여 전라도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준다. 태조는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와의 사이에 방우(芳雨)·방과(芳果:정종)·방원 등 여섯 형제를 두었고,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와의 사이에 방번(芳蕃)·방석(芳碩)을 둔 바 있다.



세종은 조상대대로 전라도 장수와 남원에 살던 장수황씨 황희를 18년간 영의정으로 제수하여 국정을 총괄하게 한다. 또한 당시 전라도의 위세를 말해주는 조선8도에서 가장 크고 웅장했던 전라감영의 객사에 한 고조漢高祖의 고향처럼 왕조가 일어난 고장이라 하여 풍패지향豊沛之鄕이란 현판을 걸었으니 지금도 전주시 중앙동 객사에 그 현판이 남아있다.



또한 정조대왕은 전라도는 조선8도에서 가장 어질고 충성스런 고장이란 뜻의 최명현절의지향(最名賢節義之鄕)이라며 최고의 찬사를 보냈고 전라도로 유배 왔던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호남은 참으로 어진 사람들이라고 칭찬하였으며 김정호는 호남은 조선8도에서 가장 축복받은 땅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내내 축복받은 땅으로 있었던 근본이 바로 마이산 때문이었기 때문에 마이산은 영험이 있는 산임에 틀림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안현 산천조에 부친으로부터 조선개국에 얽힌 꿈 얘기를 들었을 태종 이방원이 남행하여 산하에 이르러 관원으로 하여금 제를 지내고 그 모양이 말귀와 흡사하여 마이산馬耳山이라 이름했다는 기록이 있다.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서 용출봉湧出峯이라고도 했고 붓 끝 같다고 해서 문필봉文筆峯, 바위가 많아 개골산皆骨山, 용 뿔 같다고 해서 용각봉龍角峯이라고도 했다 한다.



<석불중건기(石佛重建記)>에는 “금마는 익산구읍의 자리인데 동, 서, 북의 3면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으나 유독 남쪽만이 터져 있어 물이 다 흘러나가 허허(虛虛)하게 생겼기에 읍의 수문(水門)의 허(虛)함을 막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금마면의 주산(主山)인 금마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모양과 같은데, 말에게는 마부가 있어야하므로 마부의 역할로 이 석상을 세웠다고 전해지며, 그래서 금마산을 마이산(馬耳山)이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서쪽의 석상은 남자이고, 동쪽의 석상은 여자라고 하는데 이 두 석상 사이로 옥룡천(玉龍川)이 흐르기 때문에 남녀는 평상시에는 떨어져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옥룡천 냇물이 꽁꽁 얼어붙으면 서로 건너와서 끌어안고 그동안 맺혔던 회포를 풀다가 새벽에 닭이 울면 헤어져서 다시 제자리에 가 선다고 한다.



“하루는 백제 무왕이 부인(선화공주)과 함께 사자사로 가려고 용화산 밑 큰 못가까지 왔는데, 미륵불 셋이 못 속에서 나타나 왕이 수레를 멈추고 치성을 드렸다. 이에 부인이 왕에게 여기에 큰 절을 짓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자 왕이 이를 승낙하고 지명법사를 찾아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물었더니 법사가 귀신의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미륵불상 셋을 모실 전각과 탑, 행랑채를 각각 세 곳에 짓고 미륵사라는 현판을 붙였다고 한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미륵사의 창건설화이다.



창건설화와 상관없이 무왕은 백제의 국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마한 세력의 중심이었으며 자신의 고향인 이곳 금마에 미륵사를 세우고 이 지역을 새로운 도읍지로 하여 백제 중흥의 원대한 포부를 펼치려고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으로 불렸다는 마이산馬耳山에 얽힌 유명한 전설하나가 있다. 고려 공민왕은 원나라에서 수도하고 돌아온 나옹대사를 왕사에 봉한다. 그러나 나옹대사는 고려가 이미 기울고 새 왕조의 기운이 싹터 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수제자 무학과 함께 조선왕조의 주인 이성계를 비밀리에 만나면서 밀교의식을 거행한다. 1380년 왜구가 삼남일대에 쳐들어와 온갖 노략질을 일삼자, 서강부원수 이성계장군은 남도로 왜구 토벌에 나섰다. 남행하기 직전 개성 광명사에 있던 나옹과 무학을 찾아갔다.


이성계는 나옹을 스승으로 무학을 친구로 삼았던 것이다. 몇 달 전 꿈에 몽금척의 꿈을 꾸었는데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나옹은 이성계 꿈에 신인이 나타나 금척을(왕권상징 金尺) 주었다는 산이 바로 이성계의 본관인 전주 동쪽 고을에 있는 산이라고 하며 높이 솟구쳤다 하여 서다산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 산은 목(木)기운이 성한 영산으로 그곳 산신이 이성계 장군에게 삼한 강토를 다스리라는 영물을 내린 듯 하다고 풀이했다.


이성계는 남원 황산 전투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승전고를 울렸다. 그는 종친들이 잔치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전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진안에 들렀다. 그리고 드디어 두 봉우리의 바위산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금척을 받았던 산이 눈 앞에 우뚝 서 있던 것이었다. 이성계는 정성을 다해 산신제를 올리고 시 한수를 읊었다. 이성계는 전주 오목대에서 종친들과 연회를 갖고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옹대사의 마이산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그 산은 산태극 수태극의 중앙 혈 자리다. 또한 계룡산까지 다시 속리산에서 관악산 너머 한양까지 힘을 밀어 올리는 역할을 하며 천을, 태을이라고 하는 귀봉이다. 왕을 좌우에서 돕는 문인과 무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거대하게 용출된 산의 모양이 목성체이니 목자(木子)인 이성계 장군의 기상이기도 하다. 장차 큰일을 도모하려면 고려의 상징인 금金 기운을 제압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성계는 나옹대사의 제안에 따라 서족 봉우리 안쪽 골바람이 몰아치는 허한 곳에 그 산의 형상과 흡사한 두 기의 돌탑을 쌓아서 비보裨補(채움)하고 작은 탑 다섯 개를 쌓아 음양오행 기운을 충만하도록 했다. 그리고 인근에 전주 종친들을 풀어서 산 이름을 속금산束金山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속금산은 태종 이방원에 의해 나중에 馬耳山으로 다시 이름이 고쳐졌다. 그는 두 차례나 이 곳으로 와서 마이산 산신께 제사를 올렸다.(작성자 화백거석)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하늘에 제(祭)를 지내던 제사장(祭司長) 나라요 천손(天孫)민족이었음을 그들(일본)은 알았을 것이다. 즉, 조선은 이 땅에 속했으나 그 정신은 하늘에 속했던 민족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귀신같이 알았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그 기운을 끊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조선이 잉태하고 있고 때가 되면 낳게 될 하늘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음을 오늘날 우리는 깨닫게 된다.



전북 진안(鎭安)에 가면 유명한 ‘마이산(馬耳山)’이 있다. 말이 하늘의 소리를 듣기 위해 두 귀를 쫑긋하고 있는 형국이라 해서 마이산이라 부른다. 또 이 산에 떨어지는 물은 동쪽으로 가면 금강이 되고 서쪽으로 가면 섬진강이 된다고 하며, 산맥으로 말하면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가 되기도 하다. 그 두 개의 돌산 아래엔 다른 유명사찰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은수사라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절이라고 하지만 예부터 단군을 모시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치하에서 우리의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을 때, 위기를 모면키 위해 절의 모습으로 위장한 사찰이 바로 오늘의 은수사이며,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절이기도
하다. 이 마이산과 은수사에는 예로부터 의미심장한 얘기가 오늘까지 명확하게 구전(口傳)되어 오고 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꿈속에서 선인이 나타나 “이 나라 땅을 헤아려 보라”며 금척(金尺, 금으로 만든 자)을 이성계에게 준다. 얼마 후 운봉에 출몰한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하던 길에 그곳을 지나는데 꿈속에서 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던 곳이 바로 그곳(마이산)과 같음을 깨닫고, 이성계는 이 마이산에 자리를 잡고 나라를 세울 꿈을 키우게 된다. 따라서 이곳엔 불교와는 무관하게 이성계를 모시는 전각모양의 묘사채인 ‘태극전’이 설치돼 있다. 즉,
이 마이산과 은수사는 우리 민족의 태동과 조선의 건국에 대한 기원이 서려 있는 민족의 성지가 되는 곳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갈 것은 조선의 얘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제의 민족 및 문화말살정책으로 말미암아 표면적인 조선의 역사와 문화는 끊긴 듯 보이지만 조선은 또 다른 의미의 조선을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며, 결국 오늘날 큰 울음소리와 함께 이씨 왕조의 혈통을 이어 받은 한 영적 지도자가 하늘로부터 금척을 받고 하늘에 귀를 기울이며 이 땅에 새로운 영적(靈的) 조선을 척량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천지시론] 朝鮮은 ‘해가 일찍 뜨는 동방의 나라’ 이상면 편집인
)



1979.10.16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마이산은 백두대간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위치하여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산태극.수태극의 중심지로 국가지정 명승 제12호로 지정된 세계적인 명산이다.



마이산은 두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 때 지층이 갈라지면서 두 봉우리가 솟은 것이라고 한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 448층계를 오르면 숫마이봉 중턱 화암굴에서 약수가 솟는다. 또한 두 암봉 사이에 낀 마루턱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탑사에 닿는다. 세찬 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돌탑들이 신기하다.<한국의산하 참조>



산 전체가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암마이봉(680M)과 숫마이봉(686M)이 자연이 만든 걸작품으로 우뚝 서 있으며 봉우리에 움푹 파여진 타포니 현상과 음양오행의 신비를 간직한 천지탑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시대별로 신라때는 서다산. 고려때는 용출산. 조선초기에는 속금산. 조선 태종때부터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馬耳山)으로 불렀다.



또한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전까지 담수호였으나 대홍수시 모래.자갈등이 물의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수성암"으로 약 7천만년전 지각 변동으로 융기되어 지금의 마이산이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민물고기 화석이 간혹 발견 되는 자연이 만든 최대의 걸작품이다.


아득한 먼 옛날 한 쌍의 두 신선이 자식을 낳고 살아 가던중 마침내 승천할 때가 이르러 남신이 말하기를 "뭇 인간들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면 부정을 타서 안되니 한밤중에 떠나자"고 말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기는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하였다. 그래서 새벽에 떠나게 되었는데 때마침 아침 일찍 물을 길러 온 동네 아낙이 승천하려는 장면을 보고 "어머나! 산이 하늘로 올라가네!"하고 소리치자 승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 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가 이꼴이 되었구나."하고 여신으로 부터 두 자식을 빼앗아 그 자리에서 바위산으로 만들고 주저 앉았다고 한다.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긴 하지만 진안읍에서 마이산을 보면 아빠봉은 새끼봉이 둘 붙어있고 서쪽에 있는 엄마봉은 죄스러움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신비스러워 무한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옛 시인 김종직(성종때 성리학자)은 마이산을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기이한 봉우리가 하늘밖에 떨어지니, 쌍으로 쭛빗한 모양이 말의 귀와 같구나. 높이는 몇 천길 되는데, 연기와 안개 속에 우뚝 하도다. 우연히 임금의 행차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이름이 만년에 전 하네. 중원에도 또한 이름이 있으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비슷하도다. 천자 조화의 교묘함은 실로 끝이 없으니, 천지가 혼돈했던 처음 일을 생각 했도다.



마이산은 두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 서쪽 봉우리가 암 마이봉이다.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 때 지층이 갈라지면서 두 봉우리가 솟은 것이라고 한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의 448 층계를 오르면 숫마이봉 중턱의 화암굴에서 약수가 솟는다. 또한 두 암봉 사이에 낀 마루턱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탑사에 닿는다. 세찬 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돌탑들이 신기하다.



신비하게 생긴 바위산에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도민 휴양지로 지정되었으며 이갑룡 처사가 평생 동안 쌓았다는 80여 무더기의 석탑과 함께 마이탑사가 유명하다. 탑사, 은수사, 금당사, 북수사, 이산묘 등의 문화재가 있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 보여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불리우며 사계절 아름답다. 봄이면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1.5km의 길에 벚꽃이 만발하고 마이산 벛꽂축제가 열린다. 오가는 길에 전주-군산
47㎞ 도로변이 벚꽃 터널을 이룬다. 가을이면 억새가 물결을 이루고,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물든다.



탑은 산의 남쪽 엄마봉우리 아래 움푹 들어간 계곡에 있다. 조선8도 명산의 자연석을 날라다 쌓았다는 원추형의 음양오행 탑은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신비로운 탑이다. 그 곳에서 도를 닦아 우주 삼라만상의 비밀을 알아내고 현묘한 세계에 들겠다는 사람들이 시대마다 끊임없이 나타났다. 도사라 불리우는 이갑용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수년에 걸쳐 우주의 비밀을 캐내려고 탑을 쌓으면서 수행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전라북도 임실 땅에서 태어나 오랜 수행 끝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마침내 도사의 경지에 이른다.



세종임금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의 16대 손으로 전북 임실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16세의 젊은 나이에 부친상을 당하고 3년 상을 치루던 중 괴승 미후랑인을 만나 부친의 묘가 복시혈이라는 말을 듣고 이장한 후 수도자의 길로 들어선다. 그 후로 조선8도 명산을 두루 섭렵해 오다가 25세 때 이 곳 마이산 탑골에 들어와 산막을 짓고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석탑을 쌓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 혼자 원시림이나 다름없던 곳을 정리하여 하늘을 드러내고 무너진 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고달픈 수행을 수 십 년간 계속해 왔다. 혼자의 힘으로 1885년부터 30여 년 간 인근 30 리 안팎의 돌을 날라 탑을 쌓았으며 39세 때는 축지법과 공중부양을 쓰는 도사가 되었으며 팔진도법과 음양이치 법에 따라 상단 부분은 기공법을 이용하여 쌓았다. 1957년 98세로 사망하였으며 현재 약 80개의 돌탑이 현존해 있다.



탑사는 말 그대로 탑으로 이루어진 절이다. 여느 절에는 탑에 다듬고 쪼아낸 석공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다면 이곳의 돌탑은 이와는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여느절의 탑들이 커다란 뭉치로 큼직큼직 그 높이를 더해 간다면 탑사의 돌탑들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조금 씩 조금 씩 그렇게 그 높이를 더하느라 더욱 더 많은 땀과 정성을 기울였음을 느낄 수 있다. 성인 머리만한 돌덩이에서부터 밤톨만한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돌에 돌을 얹어 쌓은 80여개의 크고 작은 석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화백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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