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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육도윤회의 세계는 정말로 있는가




육도윤회의 세계는 정말로 있는가


1. 여섯 세계는 외부에 정말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앞에서 하늘, 아수라, 인간, 동물, 아귀, 지옥의 윤회하는 여섯 존재영역(六道)을 보았다.

이들 여섯 세계가 실재한다면 왜 우리는 볼 수 없는가? 왜 우리는 동물과 인간밖에 볼 수 없는가?

그 이유는 카르마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높이 날지 못하는 새는 멀리 보지 못하는 것, 그것이다.

우리는 카르마로 인하여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카르마의 시선으로 그 환상들을 바라본다.

자극과 반응의 과정을 다시 보면, 외부에서 조건의 변화가 올 때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식하는 감각은 눈·코 등 육신의 감각기관에 의존한다.

그 감각기관은 우리가 섭취하는 영양분·물·공기 등의 조합물이고, 다시 감각을 분별하는 힘은 표면의식에서 빌려 온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각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의 감각과 지각은 정화된 것이 아니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지혜 역시 구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수행으로 지각의 문을 정화시킨 스승들은 깊은 선정에 들어 하늘세계의 음악과 신들의 모습과 풍경들을 일별할 수 있다.

그러나 수행 체험이나 깨달음의 체험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자신만의 경험이라고 나는 믿기에, 그러한 구체적인 신비체험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 산길에서 지렁이 한 마리가 등산로에 나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뜨거운 땡볕이 내리쪼이는 터라 온 몸이 메말라 더 이상 기어가지 못하고 옹크리고 있었다.

지렁이의 천국 같은 아늑함은 햇볕이 들지 않는 촉촉한 땅이다.

그 흙을 파먹으며 땅 속을 기어다니는 것이 지렁이에게는 최고로 쾌적할 것이지만, 지금 뜨겁게 햇볕이 내리쪼이는 메마른 땅에 노출된 그는 지옥에 들어온 것이다.

개미들이 떼로 몰려와서 딱딱하게 메말라 굳어 가는 지렁이의 몸을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지렁이의 지옥은 인간이 상상하는 최악의 지옥과 비슷한 형국이다.

지렁이가 글을 가지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지옥풍경을 묘사하여 지렁이의 세계에 전해 내려왔더라면, 그 지옥 풍경은 분명 불의 지옥이었을 것이다. .

"끝없는 폐허에 그 세계는 온통 불바다였다. 그 곳의 대지는 온통 달구어진 쇳덩어리처럼 딱딱하고, 먹는 음식 역시 뜨거운 불덩어리이다. 하늘 역시 보이지 않는 불덩어리의 화살을 피부 곳곳에, 세포 하나하나에 무수히 쏘았고, 지렁이는 괴로움의 비명을 지른다. 지옥의 옥졸들은 까만 몸을 하고서, 다리가 여섯 개나 되는데, 그들은 우리를 갈기갈기 물어뜯어 작살내려 한다."

지렁이의 카르마에 의하면, 그의 지옥은 그에게 진실된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업으로 인해 한정된 일부분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우주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가지 무지개 색깔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햇빛이 분신되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일곱가지의 가시광선 뿐이다.
그런데 일곱가지 가시광선은 적외선, 자외선, 라디오파, 마이크로웨이브파, X선 등 전체 빛 중엔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어린왕자라는 동화 속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말이 멋지게 묘사되어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지의 구름 속에 가려진 우리의 본성을 언뜻 비추는 말이기에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리라.

정화되지 못한 우리의 지각은 눈앞의 것만 볼뿐이며, 이 우주 너머의 다른 세계는 의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도 교만하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믿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위대한 붓다의 가르침은 서로 다른 차원에 수없이 많은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붓다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 세계와 비슷한, 아니 심지어는 똑같은 세계가 많이 있을 수도 있다.
현대의 몇몇 천체 물리학자들은 평행우주의 존재에 대한 이론을 탐구하고 있다.
업(카르마)에 의해 제한된 능력밖에 가지지 못한 우리가, 단지 우리의 흐릿한 시야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감히 우리의 시야 너머에 무엇이 있느니 없느니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2. 그러나 육도윤회의 세계는 이 삶 속에 분명 존재한다.

여섯 세계는 지금의 삶 속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심리체계 안에 다양한 부정적 감정의 서로 다른 씨앗과 성향으로써 존재하며, 외부세계에 투사(投射)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도 육도(六途)는 존재하게 된다.
세계의 존재방식이 우리의 마음의 투사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말은 쉽게 와 닿는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부정적 감정을 우리 주위의 환경에 투사(投射)하고 덩어리화(結晶化)시키면, 우리의 마음이 투사 되어 굳어버린 그 환경들이 역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상황과 스타일, 형식, 분위기를 결정짓는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여섯 세계는 존재(存在)하게 되는 것이다.

선정에 들어 스스로 만족하고 위안하는 사람들의 마음엔 약간의 자만이 있는 하늘 신의 속성이다.

인간의 시기심과 질투는 아수라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속성이며, 어리석음은 동물세계를 만든다.

탐욕은 아귀의 속성이며, 앞뒤 분간 없이 분노와 성냄의 노예가 되는 것은 지옥 종자이다.

이 마음 상태에 따라 세계는 다양하게 갈라진다.



여기 강물이 있다고 치자. 여섯 세계의 존재들은 이 강물을 각각 다르게 인식한다.

강물은 목을 축이거나 몸을 씻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지각일 뿐이다.

물고기 같은 동물은 그것이 그들의 집으로 인식되어질 것이다.

모든 것을 기쁨으로 만들 수 있는 하늘의 신들은 그것을 감로수라 여긴다.

자기보다 더 좋은 것은 파괴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수라들에겐 그것이 무기일 것이고, 탐욕과 허기에 굶주리지만 결코 먹을 수 없는 아귀들에겐 그것이 피고름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고통으로만 다가오는 지옥의 존재들은 그것을 끓어오르는 용암으로 인식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대상을 카르마에 따라 다양하게 지각하므로, 모든 카르마의 시선들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가 그렇게 천차만별로 지각된다면, 어떻게 그 지각들 가운데 하나만이 참되고 본질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티끌 속에도 우주가 들어있다는 진리처럼, 우리 인간세계의 사람들 속에는 윤회하는 모든 세계가 깃들어있다.

모든 것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마음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하늘처럼 투명하게 비어 있는 마음은 모든 것을 스스로 안다.

직관적인 지혜의 투명성 속에 만물이 깃들어 있다. 마음이 모든 현상과 존재를 만들어 낸다.

모든 현상과 존재, 윤회와 해탈은 마음의 산물일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피상적인 현상은,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현상은 마음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흐름을 바꾸면 세상은 변형된다.

그 무엇이건 집착할만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집착하는 사물, 생명 없는 무정물(無情物), 육도 윤회의 유정물, 행운의 여신, 개념이 사라진 삼매, 형태와 색깔, 근원적인 지혜의 성취, 악마와 망령······

이 모든 것은 마음 속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바다와 파도가 둘이 아니듯이, 마음과 현상도 둘이 아니다.

나타나는 현상에 우리는 기를 쓰면서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지만, 마음 밖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실상 육도윤회의 세계는 지금 여기 사람의 마음 속에 고스란히 몽땅 담겨져 있다.

지금도 지구상 어디에선가 피 터지게 서로 죽이는 전쟁터들, 즉 아수라장이 있다.

머리끄덩이 붙잡고 '너 죽고 나 죽자'며 싸우는 사람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동원하는 정치인들, 이들의 마음엔 음모와 경쟁과 시기심이 판을 치는 아수라의 세계가 펼쳐진다. 매일 매일 음모와 경쟁이 판을 치는 증권가나, 국회와 청사의 로비, 사건과 사건이 소용돌이치는 사람 사는 곳에서는 아수라가 있기 마련이다.

부유하지만 결코 만족할 줄 모르며 탐욕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계속해서 이 회사 저 회사를 사들이는 사람, 끝없이 법정소송을 벌여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귀의 세계를 살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아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창조적 발상으로 일을 해결한 능력이 없어 시키는 것 이외엔 결코 스스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동물세계에 산다.

지옥 풍경은 우리 사는 세계에 가장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이혼법정을 나오면서 '네 새끼 네가 데려가라'며 아이를 바닥에 내던지는 사람, 재산상속을 노리고 아버지를 죽이는 대학 교수, 식칼과 도끼를 들고 룸살롱에서 패싸움을 일으키는 조직 폭력배······ 이러한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이 바로 지옥세계이다.

간통하다 들켜 가정을 고통에 빠뜨리는 사람, 아이가 싸움을 말려도 서로 엉겨붙어 머리채를 휘두르는 부부, 바둑을 두다가 훈수꾼 때문에 언쟁이 붙어 바둑판을 뒤엎고 싸우는 사람, 호형호제하며 술마시다가 심사가 뒤틀려 술병으로 상대의 머리를 후려치며 싸우는 사람.....
지옥풍경은 사후에 가는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풍경 역시 흔치는 않지만 있기는 있다.

고통을 회피하고 변치 않는 아름다움과 황홀경을 추구하는 사람들 마음이 그것이다.

그들에겐 모든 것이 풍족하기에, 반짝이는 햇살이 넘쳐흐르는 정원이나 해변을 어슬렁대면서 자신이 고른 음악을 듣고, 명상 요가나 보디빌딩 등 육체를 단련시키는 수많은 방식들과 자극에 몰두해 있는 큰 키의 미남 미녀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머리를 써서 고심하지 않으며,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어떠한 상황에도 부딪히려 하지 않고, 자신의 참된 본성을 의식하지 않고, 그래서 지금 자신들이 놓여있는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지 못한다.


3. 육도윤회의 교훈

죽음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축적한 진화의 추진력에 따라 여섯 영역 중에 한 곳에 속하게 된다.
모든 존재 영역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죽음의 바르도에선 붓다의 경지를 향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무한하고, 동물의 차원이나 아귀, 지옥을 향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무한하다.
차원이 낮은 영역의 삶은 끔찍하고 비참하다.
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무(無)에 빠지는 것은 악취공이라 하여, 지옥보다도 훨씬 더 바람직하지 못하다.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각성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존재 양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고통받고 있는 다른 존재를 구원하겠다는 보살의 서원도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육도 윤회에 대한 개념은 이기적 존재를 이타적 보살로 변화시키는 영적인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무시무시한 상태에 대한 묘사는 문자적인 사실이 아니고, 단지 피해야 할 마음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일 뿐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선사들이 많이 가르치는 내용이다.
물론 온 우주가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리하여 선의 스승들은 오직 한마음 뿐이라 하여, 그들의 서양인 제자들은 수천년동안 기독교에서 배워왔던 유황불이 펄펄 끓는 지옥이라는 개념을 버린 지 오래다.
따라서 그런 개념을 정신적인 상태에 대한 비유라고 설명하는 것은, 배움과 명상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게 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의 문제로만 돌려버리는 형이상학적인 접근은 궁극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사실 이런 접근 방식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긍정적인 세상이든 부정적인 세상이든 모두 마음이 만들어 낸다는 말은 진리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달려오는 화물 열차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아마 화물 열차에 깔려 죽을 것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존재의 실상을 명백히 깨닫고 완전히 해탈한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다른 존재들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달려오는 화물 열차 앞에 서 있어도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지옥, 아귀, 동물의 세계가 존재하든 말든, 또는 자유와 기회가 털끝만큼도 없는 지옥 보다 더 비참한 존재 상태가 있든지 없든지 아무 상관이 없으리라.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이라면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래야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칠 테니 말이다.

우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부정적인 성향이 자라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 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결과가 따라 온다.
이것이 연기법이고, 자연의 법칙이다.
인도의 라즈니쉬나, 뉴에이지를 부르짖는 부류가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억겁동안 쌓아 온 악업은 직시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채, 단지 현재의 평안만 추구하도록 현혹시키는 것은 똥구덩이 위에서 똥구덩은 가만 놔두고 연꽃만 피우면 된다고 말하는 꼴이다.
그러나 그곳에 피는 꽃은 가짜 연꽃일 것은 뻔한 일인 것을...

그 누구도, 설령 깨달았다 한들, 인과법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완벽한 도인이 아니라면 부정적인 성향이 꽃으로 피어나 열매를 맺기 전에,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봉오리를 꺾어 버리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낫다.
선업을 쌓고 악업을 버리며 궁극적인 행복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로 육도윤회의 진정한 가르침인 것이다.

--

윤회주체로서의 영혼은 있는가 없는가?

월간불광  


귀의 三寶하옵고...

이 글은 어느 불자님께서 저에게 문의하신 내용에 대한 답변 글입니다.
비슷한 의문을 가지신 분이 많으실 것 같아 이 곳에 올립니다...

이 종린 合掌

<윤회의 주체로서의 영혼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반갑습니다!
불교에서는 본래 '내가 없다'라고 말을 하는데, 윤회 사상을 보면 분명히 윤회하는 '내'가 있지요! 그래서 예전부터 이것은 일반인들에게 혼란을 가져 온 사항 중의 하나였답니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주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깨치지 못한 어리석은 세계(전도 망상의 세계)'에서의 일이고, 실상은 '윤회는 없다'라고 합니다.
깨친 눈으로는 윤회란 없는 것이지요... 간다 간다 하지만 장 그 자리고 늘 그 놈이거든요? 가고 온 녀석이 하나도 본래 없고, 간 곳 온 곳이 본래 없다, 는 이야기이지요...

예가 적절하진 않지만, 우리 나라 정치인 장관들 보십시오! 늘 장관 사직하고 임명되고 보직 내 놓고 하지만, 늘 자리만 바꾼 데 불과하지요? 일반인들은 일단 사직하면 재취업은 커녕 먹고 살기조차도 힘든데, 소위 높으신(?) 이 분들은 그렇지가 않지요?
이와같이 어리석은 범부 눈에는 윤회란 다람쥐 체바퀴 돌 듯 끝없이 펼쳐지지만, 깨친 분들에게는 본래가 꿈이요 본래가 없는 것이다, 이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정말 깨친 뒤에나 알 수 있는 꿈같은 이야기일 것이고...
그러므로 당장 현실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윤회를 하는 영혼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적인 거짓 나, 가짜 나(假我)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연과 오온이 화합하여 형성된 '가짜 나'라는 것이지요.

불교에서는 영혼은 <단일 물질>이 아니라 여러 인과가 결합한 <복합체>라고 합니다.
영혼에 해당되는 불교 용어는 <중음신>이고 중음신의 정체는 바로 <아라야식>이지요. 그리고 이 아라야식은 엄밀히 말해 단일 순수체가 아니라, 이름 그대로 여러 업식이 쌓인 <종합 물질>에 해당하지요... 즉, 여러 인과와 업의 결과가 뭉친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 말입니다.

마치 눈싸움하기 위해 뭉친 눈이, 겉으로는 주먹만하게 하나로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작은 눈송이의 결과이듯, 영혼도 얼핏 보기에는 완전한 개체 같지만 알고 보면 여러 업이 쌓인 것에 불과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눈 양에 따라 모습도 여러 가지로 다를 수 있으며, 뭉친 눈을 던지면 날아가는 덩어리는 분명히 있지만 물체에 부딪혀 터지고 나면 예시당초 눈뭉치라는 것은 본래 없었던 것이지요. 물론 안 터지면 그 눈뭉치에 또 다른 눈을 뭉쳐 다른 곳에 던질 수가 있구요...흡사 영혼이 업을 더하며 윤회해 가듯, 말입니다...

결국 영혼은 눈송이가 뭉친 눈 덩어리와 같다, 는 이야기이지요.
이 때까지 수많은 생을 생사를 거듭한 나(我)라는 존재가 실존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그래서 까맣게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아 왔는데, 알고 보니 윤회하는 것은 가짜 나일 뿐, 참나(眞我)는 윤회도 생멸도 본래 없는 것입니다!

불교적으로 분석해 보면 현재 '홍길동'을 구성하고 있는 영혼은, 지난 생의 온달 장군의 영혼도 조금 섞여 있고 또 임꺽정의 영혼도 조금은 섞여 있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뭉친 것이지금 내 눈 앞에서는 마치 절대 고정불변하는 홍길동의 본 모습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고, 우리는 또 거기 속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리하여 본래 모습은 까마득하게 잊어 버리고 내 가족 내 물건이 애당초 있었고 영원한 것인양 착각하여, 또한 윤회하는 내가 진짜로 있는 줄 알고 허망한 환(幻)을 좇아 평생을 허비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가 버립니다. 없는 것을 있는 줄 알고 그 귀한 삶을 그렇게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미망을 깨지 못하니, 또 환을 찾아 정처없이 가는 것이지요. 허깨비가 허깨비를 찾아 가는 형국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보신 윤회하는 중생의 가엾은 모습입니다.

이렇게 불교에서는 불생불멸의 실체로서의 영혼은 인정하지 않고 단지 인격의 주체로서의 영혼-살아 있을 때 이 몸을 움직이는- 을 인정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혼도 알고 보면 사실은 단지 오온이 거짓 화합하여 만들어진 거짓 자아(假我)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거짓 자아에는 과거 윤회하며 경험한 모든 지식, 기억이 쌓여 있고 또한 분명히 현실로 존재하므로 전생을 보시는 분(도인이나 무당,초능력자 등)들은 과거에 너는 누구였구나, 하는 말씀들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이란 어리석은 우리의 본래 모습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 윤회하는 고정불변의 영혼이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견설(常見設)이라 하여 금기 시 하였습니다. 이렇듯 지금까지 '윤회하는 고정불변의 나'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사실은 진아(眞我)가 아니라 오온, 인연이 화합한 가짜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 까닭으로 선사들은 너의 본래 면목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제 말씀이 잘 이해가 되셨는지요? 혹시 제가 이해를 도우려는 마음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해 드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저의 못남을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더욱 정진하시옵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 종린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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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영화 ‘다빈치 코드’, 세 가지 관점으로 보기  안원전   2006/05/22  6477
1935    선의 황금시대  안원전   2007/11/04  6458
1934    실존하는 신비의 지저문명, 텔로스  안원전   2010/09/03  6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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