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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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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역사상 부자의 대명사 진나라 부호 석숭(石崇) 미인 녹주(綠珠)때문에 죽다.













 역사상 부자의 대명사 진나라 부호 석숭(石崇) 미인 녹주(綠珠)때문에 죽다.


 


양력 : 249년 8월 4일 진시생


음력 : 249년 7월 9일 진시생


 

시 일 월 년


戊 甲 辛 己


辰 午 未 巳


 

79 69 59 49 39 29 19 9


癸 甲 乙 丙 丁 戊 己 庚


亥 子 丑 寅 卯 辰 巳 午


 

기토당령, 진사공망, 300년 (병인대운 52세, 경신년) 처형을 당했다고 함.


 

출처- 원수산의 명보에서 발췌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msm21&logNo=50019945216


 

 

<시대 배경>


 

호족 출신 사마의는 조조 이래 위나라에 벼슬하여 249년에는 승상이 되고 이후 그의 아들 사마사. 사마소 등이 사실상 위나라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사마소는 촉한을 토멸한 공로로 진왕(晋王)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사마염은 265년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서진왕조를 세웠다.


 

무제 사마염(제위 265-290)은 귀족의 특권을 옹호하고 정치를 안정시켜 나갔다. 즉위 초에는 검소한 생활로 모범을 보였으나, 점점 사치와 방탕에 빠지자 귀족들도 다투어 사치와 부를 마치 무슨 경쟁이라도 벌이듯 과시하였다.


 

특히 천하의 부호 석숭과 왕개의 사치 싸움은 당시의 부패상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무제가 죽고 혜제가 즉위하자 국정은 점점 문란해지고 제실의 울타리로서 강력한 군사력을 장악하고 왕들이 난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역사상 팔왕의 난이다.


 


이 팔왕의 난은 무제의 황후 양씨 일족과 혜제의 황후 가씨 일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비롯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여남왕, 초왕, 조왕, 제왕, 장사왕, 성도왕, 하간왕, 동해왕의 팔왕이 16년에 걸쳐 싸움을 벌여 마침내는 영가의 난이 일어나게 되었다.


 

결국 팔왕의 난이 영가의 난을 부르고, 영가의 난이 서진을 멸망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중국 북부에서 오호 십륙국 시대의 막이 열리게 되었다.


 


 


 

◦ 석숭(石崇). 그는 남조(南朝) 진(晉)대 사람으로 자는 계륜(季倫)이고 청주(淸州)에서 태어났다. 대외무역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으나, ... 해 설 : 석숭은 금곡원에서 당대의 명사인 왕개(王愷)와 같은 이들과 어울려 늘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중국 역대에 제일 부자라는 진(晋)나라 석숭(石崇)과 왕개(王愷)의 사치 경쟁은 유명하다. 왕개가 말린 밥(乾食)을 땔감으로 지은 밥을 먹으면 석숭은 오색 꽃초를 태워 밥을 지었다. 석 부자가 은요강을 쓰면 왕 부자는 황금대야를 썼다. 왕 부자가 사람젖만을 먹여 기른 돼지를 잡아먹자 석 부자는 비단옷 입히고 금가루 먹여 기른 닭을 잡아먹었다.


 

 

중국 역사상 제일 부자로 진(晋)나라의 석숭(石崇)과 왕개(王愷)를 친다. 이 두 부호가 사치를 겨루는데, 석숭이 비단옷 입혀 금싸라기와 제호탕만을 먹여 기른 통닭구이를 즐긴다니까, 왕개는 첫 아기를 낳은 미모의 여인들 젖만을 먹여 기른 돼지고기 구이를 즐긴다고 응수했다.


 

석숭은 형주지방에서 무역업, 운송업으로 축재하였으나 애첩 녹주 때문에 몸을 망쳤다.  


 

진(晋)나라 때 석숭(石崇, 249-300)은 변기통에 오리털을 깔고, 똥을 누는 동안 여러 명의 시녀들로 하여금 향수 등을 들도록 뒷간에 사치를 부렸다. 또한 볼일이 끝나면 새 옷으로 갈아입기도 하였다.      


 

역사상 가장 호사스러웠던 인물 중 한 명이 진 무제(晉武帝) 때 인물 석숭(石崇)이다. 금곡(金谷)이란 말은 석숭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석숭이 낙양(洛陽) 서북쪽 계곡에 금곡원(金谷園)이라는 별장을 지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녹주전(綠珠傳)』에 따르면 계곡에 금수(金水)가 흐르기 때문에 금곡이라고 전한다.


 

석숭은 1000여 명의 미인 중에서 수십 명을 선발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아꼈던 애첩이 녹주였다. 녹주는 피리를 잘 불고 ‘명군(明君)’이라는 춤도 잘 추었다. 명군은 흉노(匈奴) 황제에게 시집가야 했던 비운의 미녀 왕소군(王昭君)을 뜻한다. 소(昭)자가 진나라 문제(文帝)의 이름이기 때문에 소(昭)자를 비슷한 명(明)자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석숭의 호사생활은 다름 아닌 녹주 때문에 파탄에 처한다. 녹주를 달라는 권신 손수(孫秀)의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모함에 걸려 처자 열다섯 명과 함께 처형당했다.


 


수레에 실려 처형장인 동시(東市)로 끌려가던 석숭이 “종놈들이 내 재산을 탐냈기 때문이다”라고 억울해하자, 압송하는 사람이 “재산이 해를 끼치는 줄 알았으면 어찌 일찍이 분산시키지 않았는가”라고 충고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2012.4.23


 

 

'석숭의 재물'


 

옛날에는 아이를 낳으면 할머니가 칠성당으로 가서 빌었다. "칠성님, 석숭(石崇)의 복을 아이에게 주십시오. 동방삭(東方朔)의 명을 아이에게 주십시오. 삼천 갑자의 명을 아이에게 주십시오!" 삼천 갑자라는 긴 명을 살았던 동방삭이 장수의 대명사라면, 석부만재(石富萬財)라 하여 만석의 재산을 지닌 석숭은 부자의 대명사였다.


 

석숭은 중국 진(晉)나라 때의 사람으로 엄청난 재물을 모아 호사를 부렸다. 그의 집 화장실은 바닥에 최고급 양탄자를 깔았으며, 천장에서부터 엷은 자줏빛 비단 막을 늘어뜨려 놓았다. 실내에는 향기 좋은 방향제를 비치한 것은 물론, 시중을 드는 십수명의 미녀를 항상 대기시켜 놓았다. 이 화장실에 들른 한 지방관리는 침실로 착각, 황급히 돌아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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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시대

사치를 겨룬 석숭과 왕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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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는 사마염이 위나라로부터 천자의 자리를 물려받은 후 15년이 지나 태강 원년(280)에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로써 분열되었던 중국은 재통일되었다. 진나라는 전·후반을 합쳐 156년간 지속되었는데 전반 52년간은 수도를 낙양에 두었기 때문에 역사상 서진(西晋, 265~316)이라 하고, 후반 104년간은 수도를 건강(建康, 지금의 남경)에 두었기 때문에 동진(東晋, 317~420)이라고 부른다.


서진 왕조를 창립한 무제(武帝) 사마염은 즉위 당시에는 진상품인 치두구(雉頭裘)각주1) 를 사치품이라 하여 대주전 앞에서 불태워 없앰으로써 검소한 기풍을 솔선수범하는 등 어진 정사를 실현시키려 하였으나 점차 사치와 방종에 흘러 1만 명에 가까운 미녀들을 후궁에 불러들였다. 당시 전국의 총인구가 대략 1,600만 명이었다고 하니 인구 비율로 따져 볼 때 그가 차지한 여자의 수는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미인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황제 자신도 어떤 여자를 골라야 할지 몰라 매일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양이 발길을 멈추는 곳의 후궁 처소에 들러 식사를 하고 그곳에서 밤을 지냈다. 후궁들은 확률로 따지면 만분의 일의 임금의 총애를 받기 위하여 처소 문 앞에 댓잎을 꽂고 길거리에는 소금물을 뿌리는 어리석은 일을 벌였다. 양이 댓잎과 소금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진무제                                                                                                                                                
                    
                
                                                                                                                                                                                                                                                                                                        

그러나 황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녀를 구하기에 열을 올렸고 또 관리들은 이를 미끼로 백성들을 쥐어짜는 바람에 도처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신하들도 황제의 음탕과 호사에 뒤질세라 경쟁을 벌이면서 지배 계급 전체가 부패한 생활에 젖어들었다.


승상 하증(何曾)이란 자는 하루에 1만 전을 들여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린 산해진미 앞에서도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고 짜증을 부렸고, 그의 아들 하소(何劭)도 하루에 2만 전을 들여 오로지 먹는 일에 부를 과시하였다. 하씨 부자의 호사한 생활도 유명했지만 무제의 사위 왕제(王濟)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였다.


어느 날 무제가 왕제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비단과 보석으로 몸을 장식한 수많은 하녀들이 진기한 유리(보석의 일종) 그릇에 담은 산해진미를 분주하게 나르고 있었다. 그 잔칫상 한가운데 구이 요리로 된 돼지고기가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무제의 눈에도 그 고기가 무척 먹음직스러워 한점 시식을 해보니 무제로서도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 기막힌 맛이었다. 무제는 그 요리를 맛있게 먹으면서 물었다.


“어떻게 해서 이 고기의 맛이 이렇게도 훌륭한가?”


왕제는 자랑스러운 듯 대답하였다.


“이 고기는 사람의 젖으로 기른 돼지고기이옵니다.”


왕제의 사치스런 생활은 이렇듯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으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있듯이 왕제보다 몇 갑절 더한 인물이 서진 시대에 존재하였다.

                            
금팔찌                                                                                                                                

귀족 여성의 금팔찌

                    
                
                                                                                                                                                                                                                                                                                                        

석숭(石崇)과 왕개(王愷) 두 사람은 마치 무슨 경주라도 벌이듯 부와 사치를 겨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부패한 서진 시대 호족의 전형이며 그 축도라고 할 수 있다.


왕개가 부를 과시하기 위하여 맥아당(麥芽糖)을 사용하여 식기를 씻었다. 그러자 석숭은 뒤질세라 섶 대신 백랍(白蠟)을 사용하여 음식을 지었다. 왕개는 석숭을 제압하기 위하여 자색 비단으로 20킬로미터를 둘러칠 수 있는 큰 장막을 만들었다. 이에 대하여 석숭은 왕개가 사용한 비단보다도 값이 훨씬 비싼 비단으로 25킬로미터를 둘러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장막을 만들었다. 그들의 경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석숭이 향료의 열매로 방의 벽을 바르자 왕개는 적석지(赤石脂)각주2) 로 담을 발라 맞섰다.


석숭·왕개의 사치 싸움은 수도 낙양에 파다하여 석숭이 이기느냐, 왕개가 이기느냐를 놓고 왈가왈부 말이 많았으나, 왕개가 석숭에게 한 걸음 뒤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왕개가 열세라는 소문을 들은 황제는 외삼촌인 왕개를 후원하기 위하여 두 자가 넘는 산호수(珊瑚樹)를 왕개에게 주었다. 이에 왕개는 득의양양하여 석숭을 초대하여 그 산호수를 자랑삼아 구경시켰다. 그러나 석숭은 코웃음을 치더니 쇠막대기로 산호수를 내리쳐서 산산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왕개가 사색이 되어 노발대발하자 석숭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이 정도 물건이 그렇게도 아깝습니까? 아무 염려 마십시오.내가 깨끗이 변상해 드리리다.”


석중은 그 자리에서 하인을 시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산호를 모두 가져오도록 하였다. 하인이 가져온 산호수를 본 왕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높이 3, 4척 되는 산호수 6, 7개 그 모두가 눈길을 끄는 훌륭한 물건이었다. 이에 비하면 황제가 왕개에게 보낸 산호수 따위는 보잘 것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석숭은 왕개에게 말하였다.


“이 가운데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 골라 가져 가시지요.”


이 말을 듣는 왕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하여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석숭과 왕개가 어떻게 해서 이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지 자못 궁금하고 의아스럽다. 그 해답은 두 사람 모두 대대로 관료나 지주로서 오랜 세월을 두고 백성들을 착취했기 때문이었다.


서진의 정치 체제는 이러한 호족의 자제들을 9등급으로 나누고 모든 관리를 그 가운데서 선발 임용하였다. 일단 관직에 임용되기만 하면 그 직위야 어쨌든 넓은 토지가 수여되고 세금이 면제되었다. 또 본인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들까지도 납세와 부역의 의무가 면제되었다.

                            
청자대서용                                                                                                                                                
                    
                
                                                                                                                                                                                                                                                                                                        

이렇게 해서 지주 계급 가운데서도 특권층인 관료 지주가 형성되었다. 이것을 역사상 세습 호족이라 부른다. 세습 호족들은 모두 창두·가동·노비라는 명목의 하인들을 거느렸는데, 이것은 사실상 노예나 반 노예와 같았다. 석숭의 집에는 ‘창두 8백여 인’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호족들의 집은 모두 고래등 같은 누각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었는데 모두가 농민의 피와 땀으로 다져지고 노예들의 희생을 토대로 이룩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악랄하고 비정한 행위도 있었다. 석숭은 형주 자사로 있을 때 심지어 행상들까지도 습격하여 그들의 짐을 빼앗아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이들 특권 계층은 세습의 대관료 지주였을 뿐만 아니라 노예주이자 강도이기도 하였다.

                            
서진 청유벽사                                                                                                                                                
                    
                
                                                                                                                                                                                                                                                                                                        

왕개와 석숭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왕개가 손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고 손님들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여자 악사를 시켜 피리를 불도록 하였다. 그런데 피리를 연주하던 중 1절을 건너뛰었다. 이를 알아차린 왕개는 즉석에서 여자 악사를 끌어내어 죽여버렸다.


또 석숭은 손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일 때 미녀들로 하여금 손님들에게 술을 권하도록 하고 그 손님이 술을 다 마시지 않으면 그 미녀를 죽여버렸다. 언젠가는 손님이 술을 마실 줄 몰라 세 사람의 미녀를 죽인 적도 있었다.


서진보다 앞선 전한 말기에 조정의 권력자 왕망은 그의 아들이 노비 한 사람을 죽이자 자결로써 그 죄를 받도록 하였다. 후한 초기에는 노비 해방령을 내려 노비의 인권을 보호하고 노비를 살상한 자를 처벌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서진 왕조의 세습 호족들은 노비를 쓰레기 같은 존재로 취급하여 제멋대로 살상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이러한 서진 호족의 부패는 왕공 대신들의 물질적인 사치뿐이 아니고,귀족 자제들의 정신적인 면에도 영향을 주어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무위 도식의 생활 속에서 사치만을 일삼게 되었다.

                            
서진 기사용                                                                                                                                                
                    
                
                                                                                                                                                                                                                                                                                                        

부패한 세대 가운데서도 가장 심한 것은 무제의 아들 사마충(司馬衷)이었다. 사마충은 궁중에서 자라 세상 일은 도무지 아는 것이 없었다. 흉년이 들어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려 죽는다는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쌀이 없으면 고기라도 먹을 것이지 왜 죽는단 말이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렇게 젊은 세대들이 타락하여 구제불능의 늪에 빠져든 사실은 서진의 지배 계급이 이미 황혼기에 다가갔음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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