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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탄허 대선사 法門

삶과 죽음

    

탄허스님. (1977년)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삶과 죽음일 것이다. 즉 생사문제야말로 무엇보다 앞선 궁극적인, 그리고 이 세상에서 몸을 담고 살아가는동안 기필코 해 내어야 할 중심 문제이다. 인간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종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불교에서는 생사문제를, 쉽게 말해서 이렇게 해결한다. 즉 마음에 생사가 없다고. 부연하면, 마음이란 그것이 나온 구멍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 또한 없다. 본디 마음이 나온 것이 없음을 확연히 갈파한 것을 도통했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의 어디든 찾아보라. 마음이 나온구멍이 있는지. 따라서 나온 구멍이 없으므로 죽는 구멍도 없다.

   그러니까 도가 철저히 깊은 사람은 이 조그만 몸뚱아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수 있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중생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천년만년 살려고하지, 도인, 성인은 굳이 오래 살려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헌옷 벗는것이나 한 가지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굳이 때묻은 옷을 오래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뭇중생들의 우견일 따름이다.

  도를 통한 사람은 몸뚱아리를 그림자로 밖에 보지 않는다. 다시말하면 우리의 삶은 간밤에 꿈꾸고 다니는 것이나 같이 생각한다고 할까. 간밤 꿈꾸고 다닌 사람이 꿈을 깨고 나면 꿈속에선 무언가 분명히 있었긴 있었느나 헛것이거든 그렇게 삶을 본다. 이와 같은 것이어서 이 육신을 굳이 오래 가지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벗으려고 들면 향 한대 피워 놓고 향 타기 전에 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중생에겐 나서 멸말이 있고 몸뚱이엔 나고 죽음이 있으며 일년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세계엔 일었다가 없어짐이 있으나  앞서 말한대로 도인에겐 생사가 붙지 않는다. 혹자는 그 도인도 죽는데 어찌 생사가 없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겉을 보고 하는 소리일 따름이다. 옷벗는 것 보고 죽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이 '옷'을 자기 '몸'으로 안다. 그러니까 '죽는다'.
그러면 도인이나 성인은 무엇을 자기 몸으로 생각하는 걸까.  몸 밖의 몸, 육신 밖의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 좀 어렵게 말하면 시공이 끊어진 자리, 그걸 자기 몸으로 안다. 시공이 끊어진 자리란 죽으나 사나 똑같은 자리, 이 몸을 벗으나 안 벗으나 똑같은 자리. 우주 생기기 전의 시공이 끊어진 자리, 생사가 붙지 않는 자리란 뜻이다.

   부처란 이 '자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오셨다. 이 세상의 한 마당 삶이 '꿈'이란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더웁고 춥고 괴로운 경험을 꿈속에서 했을 것이다. 꿈을 만든 이 육신도 일점도 안되는 공간에 누워 10분도 안되는 시간의 꿈속에서 몇백년을 산다. 그리고 보면 우주의 주체가 '나'라는 것을 알 것이다. 곧 '내'가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우주 속에서 내가 나온 것이 아니다.  세간의 어리석은 이들이 꿈만 꿈인줄 안다.

현실 이것도 꿈인 줄 모르고.  다시 말하거니와 성인이 도통했다는 것은 이 현실을 간밤의 꿈으로 보아 버린 것을 말한다.

   우리는 간밤 꿈만 꿈으로 보고, 현실을 현실로 보니까  몇 백년 부귀영화를누리며 살고 싶다며 아둥바둥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눈엔 현실이 꿈, 즉 환상이니까 집착이 없다. 그러니까 천당 지옥을 자기 마음대로한다.  

이 정도로 말해 놓고 나서 우리의 삶이 영원하다면 영원하고 찰나로 보면 찰나일 수 있다고 하면 좀 수긍이 될지 모르겠다.  요컨대, 우주 창조주 즉 하느님이라는건 우주가 생기기 전의 면목을 타파한 걸 '하느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이란 하늘 어느한 구석에 담요를 깔고 앉아 있는 어떤 실재 인물이 아니란 말도 이해가 될 것이다. 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

   내 얘기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 태어나 젊은이라면 3천만, 5천만의 잘못을 나의 잘못으로  즉 나 하나의 잘못을 3천만, 5천만명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 무슨 문제에 부딛치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준비를 갖추며 살일이다.

청년은 그런 자신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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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77年 캠페인 '自己를 定立해야 한다'  第 3輯

우리가 안고 있는 오늘의 문제는 무엇인가. 급변하는 오늘의 상황은 이같은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를 모든 인류에게 깊게 제기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오늘의 우리가 가치관의 다양화 속에서 목표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고백적으로 입증하는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더 깊게 제기될수록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참된 의미의 인간의 재발견과 자기확립의 실현이 더 크게 요청되어지고 있다. 자기 정립을 통한 인간성의 재발견, 회복만이 복잡하고 거대한 현실의 와중에서 고뇌하고 있는 현대인을 구제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종교 철학사상을 폭넓게 비교 해석 정리하면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呑虛(탄허) 스님과 본사 鮮于 煇(선우 휘) 주필과의 신춘대담(新春對談)을 마련,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제 1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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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根機가 至高의 삶    

呑虛스님에게 '自我(자아)의 길'을 묻는다

  

조선일보 1977년 1월 18일 화요일자  

☞ 鮮于(선우) ♤♤♤

  요즘 몇십 년만의 강추위가 십여 일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추우니까 일상생활에서 오는 어려움과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사람이 이렇게까지 살아야만 되느냐하는 간사한 마음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이런 의문은 인간의 영원한 물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과연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우선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해 주시지요.



☞ 呑虛(탄허) ♠♠♠

  사람이 사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禮)-법(法)-정(精)으로 사는 거지요.

  첫째, 여기서 예(禮)는 천리(天理)의 대명사를 이르는 것입니다. 세속(世俗)의 예로 이해해서는 곤란하지요. 이를 불가에서는 상근기(上根機)의 삶이라고 합니다. 대인군자(大人君子), 즉 물아양망(物我兩忘)한, 다시 말해 우주와 자신을 함께 잊는 - 객관(客觀)과 주관(主觀)을 다 잊어버린 성인(聖人)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둘째로 법(法)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물아양망(物我兩忘)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자리(自利)보다는 이타(利他)면에 치중하면서 세속법규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사는 사람을 이름하는 것입니다. 중근기(中根機)의 인간, 이를테면 '중등(中等)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셋째, 정(精)으로 사는 사람이란 예(禮)도 법(法)도 다 모르고 오로지 인정(人情)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천치'같은 사람들이지요. 한가지 예화(例話)를 들어보겠습니다.
조선왕조 선조(宣祖) 때의 명현 김사계(金沙溪)의 아들로 신독제(愼獨劑)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도 명현이었습니다. 사계(沙溪)의 스승 율곡의 친구되는 사람의 딸로 천치가 있었는데 신독제 같은 명현군자가 아니면 데리고 살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 율곡이 신독제에게 중매하여 결혼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신독제의 장인이 세상을 떠나 사계와 신독제 부자가 며느리 친정으로 문상을 간 일이 있었지요. 문상하는 신독제에게 천치부인이 느닷없이 술을 권하자 그는 아무런 사양없이 받아 마셨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 사계가 '문상을 왔으면 정중하게 문상이나 할 것이지 술은 왜 받아 마시느냐'고 꾸짖자 '정으로만 사는 천치에서 남편을 향한 정마저 말살해버리면 폐물이 되고 말 것이니 불쌍하여 이를 막기 위해 받아마신 것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에요. 이 말을 들은 사계는 무릎을 치며 '네 공부가 나보다 낫다'라고 감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일 잘사는 것이냐 - 상근기(上根機)의 삶이 가장 잘 사는 길임은 불문가지이지요.


☞ 鮮于(선우) ♤♤♤

  지금까지의 말씀을 들어보면 사람이 사는 것을 상중하(上中下)로 나눌 수 있고 이 중 하근기(下根機)의 삶이 천치같은 생활이라는 것인데, 그러면 인간의 대부분이 천치라는 말입니까?

☞ 呑虛(탄허) ♠♠♠

 

 聖人(성인)의 門庭(문정)에서 보면 사회적 지식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다 유치원생이올시다.



☞ 鮮于(선우) ♤♤♤

  그렇다면 세속적인 면에서 스님께 묻겠습니다. 세속을 다스리는 게 정치가 아닙니까. 그러면 정치는 법과 정으로 사는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지요. 이러한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까.

☞ 呑虛(탄허) ♠♠♠

  현실적인 정치는 上根機(상근기)와 下根機(하근기)를 위해 나온 것이지요. 정치적인 문제로 말하자면 공자님께서 일찍이 말씀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논어에 '導之以政(도지이정)하고 齊之以刑(제지이형)이면 民免而無 (민면이무치)니라' '導之以德(도지이덕)하고 齊之以禮(제지이예)면 有 具格(유치구격)이니라' 했습니다. 즉, '형법과 정치로만 다스린다면 백성이 죄짓는 것은 근근히 면할 수 있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과 예로 다스린다면 백성이 잘못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스스로 개과천선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전자는 세속정치를 두고 한 말이고 후자는 성인군자의 정치를 말한 것입니다.

   동양사상의 정치는 왕도의 정치와 패도(覇道)의 정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왕도의 정치란 성인의 정치를 말하는 것인데 하도 그 덕화(德化)가 커 백성이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까지를 잊어버리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지요. 패도의 정치는 백성이 각기 그 처소(處所)를 얻어 다 잘살기는 하지만, 단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야심이 위정자의 뇌리에 잠재해 있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정(學政)종합시대가 왕정의 시대라고 한다면 학정분립(學政分立)시대는 패정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요. 삼황오제(三皇五帝), 삼황시대까지는 학정의 종합시대이고, 삼황 이하 오제 이후의 시대는 학정의 분립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최고의 학문도덕을 가진 성인이 그 시대의 정권을 잡고 세상을 지배한 것이 학문과 정치의 종합시대라고 한다면, 최고의 학문과 도덕을 가진 성인(聖人)이 초야(草野)에 묻히고 魚頭鬼面之徒(어두귀면지도)와 患得患失之徒(환득환실지도)인 소인들이 정권을 잡고 지배한 것이 학문과 정치가 분리된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堯) 임금이 대신들에게 '내 정치가 어떠냐'고 물으니까 '모른다'고 대답했어요. 들에 내려가 백성들에게 물어봐도 역시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 군데를 가니까 어떤 농부가 땅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며 노래하기를 '日出而作(일출이작)하고 日入而息(일입이식)하며 耕田而食(경전이식)하고 鑿井而飮(착정이음)하니 帝力(제력)이 阿有於我哉(아유어아재)'(해가 뜨면 나가 농사짓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고 밭을 갈아먹고 우물을 파 물을 마시니 요임금 힘이 내게 무슨 기여를 하고 있겠느냐?)라고 하니 그제야 요임금이 안심을 하고 돌아갔다는 史記(사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魚相忘於江湖(어상망어강호)하고 人相忘於道術(인상망어도술)'[莊子(장자)]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고기를 잡아다 놓고 물을 한 그릇씩 부어주면 목마른 것을 적시는 그 마음을 알지만 강호(江湖)에다 놓아두면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를 잊어버린다는 말과 같이 백성은 도덕정치 안에서는 모든 것을 잊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덕 정치가 아니면 감사의 정을 잊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현시대의 동서양 정치를 볼 때 왕도의 정치는 夢外靑山(몽외청산; 꿈밖의 청산)이요, 패도의 정치도 완성됐다고 평할 수 없습니다. 동양사상으로 본 이야기입니다.

  莊子(장자) '應帝王(응제왕)'편 결론에 말하기를 '南海之帝(남해지제)가 爲 (위숙)이요 北海之帝(북해지제)가 爲忽(위홀)이요 中央之帝(중앙지제)가 爲混沌(위혼돈)이라  與忽(숙여홀)이 時相與遇於(시상여우어) 混沌之地(혼돈지지)러니 混沌(혼돈)이 待之甚善(대지심선)이어늘  與忽(숙여홀)이 謀報混沌之德曰(모보혼돈지덕왈) 人皆有七竅(인개유칠규)하여 而視聽食息(이시청식식)이어늘 此獨無有(차독무유)하니 嘗試鑿之(상시착지)하리라 하고 日鑿一竅(일착일규)에 七日而混沌(칠일이혼돈)이 死(사)하니라'했습니다.

  풀이해 보면 南海에 있는 임금을  (숙)이라 하고 北海에 있는 임금을 忽(홀)이라 하며 중앙에 있는 임금을 混沌(혼돈)이라 한다는 말인데, 남해는 우리 耳目口鼻(이목구비)의 分別覺知(분별각지)하는 陽明方(양명방)을 말하는 것이고 북해는 우리의 분별각지하는 후면인 暗方(암방)을 이르는 것입니다.

  陽明方(양명방)에서 일어나는 한 생각은 문득 일어나는 것이기에  (숙)이라 이름하고 한 생각이 멸할 때에도 문득 멸하기 때문에 忽(홀)이라고 이름한 것입니다. 한 생각이 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문득 났다 문득 없어졌다하는 변화막측이란 것입니다. 혼돈은 우리 현 생각의 起滅以前(기멸이전)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생기기 전, 즉 이 우주가 생기기 전의 핵심체를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한 생각의 나고 멸하는 것이 이 혼돈의 핵심체를 떠나 別立(별입)할 수 없기 때문에  (숙)과 忽(홀)이 때때로 混沌(혼돈)의 땅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混沌(혼돈)은 起滅以前(기멸이전) 無念(무념)의 경지이기 때문에  (숙)과도 忽(홀)과도 언제나 無心(무심)으로 대하여 잘 대접하는 것입니다.  (숙)과 忽(홀)이 혼돈의 덕을 갚기 위해 상의했습니다. 사람이 모두 七竅(칠규: 일곱구멍의 이목구비)가 있어, 보고 듣고 숨쉬고 먹는데 이 혼돈만은 이목구비가 없으니 만들어주자고 합의,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 7일만에 완성하고 보니 혼돈은 그만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帝王(제왕)의 법칙에 합하는 도리는 혼돈을 파괴하지 않는 聖人(성인)의 경지라야 가능한 것이고, 學政分立(학정분립)시대이후로 지금까지 혼돈을 파괴하지 않은 帝王(제왕)이 과연 몇 명이었겠느냐 하는 탄식의 피눈물을 흘려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王道(왕도)의 정치를 어디서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 鮮于(선우) ♤♤♤

  스님 말씀에 따르면 사람이 사는 것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제 자신, 이 기준에 의하면 겨우 法(법)과 情(정) 사이에서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속적으로 볼 때 법과 정으로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天理(천리)에 합한 禮(예)로 사는 사람은 소수가 아니겠습니까. 법, 정으로 사는 많은 사람과 예로 사는 소수의 사람의 격차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孔子(공자)님도 그 높은 도덕과 학문을 실천에 옮기려다 실패했고 釋迦(석가)나 예수는 아예 현실에 뜻을 두지 않은 듯합니다.

  

이로 보아 사상이 높을수록 우리현실에 적용되기가



힘든 것같은데  이러한 出世間的(출세간적)인 聖人(성인)의



思想(사상)과 현실정치와의 관계에 있어서 양자가 합해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합해질 수 없는 것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 呑虛(탄허) ♠♠♠

  선우선생은 자신을 너무 謙稱(겸칭)하시는군요.

  서양과 동양인의 사고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지요. 서양식 사고방식은 하나에서 만가지를 연역하는 것이고, 동양식 사고방식은 만가지를 하나로 귀납시키는 것입니다. 英國人(영국인)은 아이를 키울 때 '너는 이다음에 커서 일류기술자가 되어라, 기술자가 될 수 없다면 일류예술가가 되어라, 예술가가 될 수 없다면 일류종교가가 되어라'고 한답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太上(태상)은 立德(입덕)하고 其次(기차)는 立言(입언)하고 其次(기차)는 立功(입공)이라'[春秋(춘추)]합니다. 가장 잘난 사람은 종교인 도덕가가 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문화인 예술가, 그 다음은 과학자 기술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서양 사람이 바라는 내용은 같지만 그 순서는 정반대이지요. 서양인의 사고방식은 外本內末(외본내말)인 것입니다. 근본을 밖으로 내버리고 枝末(지말)을 안에 두는 것이지요. 따라서 총체적으로 볼 때 서양의 외본내말하는 사상은 현실과 조화를 이룰 수 없고 동양의 一本萬殊萬殊一本(일본만수만수일본; 한 근본이 우주 만유요 우주만유가 한 근본이다) 사상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전체의 10%가 極善質(극선질)이라면 그 다음 10%는 極惡質(극악질)이며 80%는 平民(평민)인 것입니다. 堯(요) 舜(순)때라고 전 백성이 다 善質(선질)은 아니었고 桀紂(걸주)때라고 모든 국민이 惡質(악질)은 아니었습니다. 단 최고의 영도자가 성인일 때엔 거기에 수반된 10%의 極善質(극선질)이 등용되기 때문에 10%의 極惡質(극악질)이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이고, 최고의 영도자가 小人(소인)일 때엔 거기에 수반된 10%의 極惡質(극악질)이 등장되기 때문에 10%의 極善質(극선질)은 모두 岩穴(암혈)에 숨고마는 것이지요. 나머지 80%의 평민은 어느 시대건 따라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堯舜(요순)이 師天下以仁(사천하이인)하신데 而民(이민)이 從之(종지)하고 桀紂(걸주)가 師天下以暴(사천하이폭)한데 而民(이민)이 從之(종지)하니 其所令(기소령)이 反其所好(반기소호)면 而民(이민)이 不從(부종)이라'[大學(대학)]했습니다.

  堯舜(요순)이 어진 정치를 베풀 때 백성이 그를 좇았다면 桀紂(걸주)가 사나운 정치를 베풀 때 백성이 좇지 않아야 할 것인데도 그대로 따른 것은 영도자로서 백성에게 명령하는 바가 영도자 자신이 좋아하는 바와 배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堯舜(요순)이 聖人(성인)으로 어진 행동을 하면서 반대로 백성에게 어질지 못한 행동을 하라하면 백성이 좇지 않는 것이요, 桀紂(걸주)가 어질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 반대로 백성에게 어진 행동을 하라하면 백성은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니까 평민이 정치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평민은 성인이 정치하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독을 굴리려면 자기 몸이 독 속에 들어 있어서는 불가능합니다. 몸과 독이 같이 굴러가기 때문이지요. 독은 국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국가를 굴리려면 한 국가의 뛰어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고, 온 天下(천하)를 굴리려면 천하에 뛰어난 사람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에 뛰어난 사람이란 三大 聖人(삼대 성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성인이라도 각각 주장하는 분야가 다릅니다. 예를 들면 堯舜(요순)이 천하를 다스리는 분이라면 巢父(소부)와 許由(허유)는 천하 밖에서 노는 분인 것입니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政權(정권)을 讓與(양여)하면서 하는 말이 '日月(일월)이 出矣(출의)어늘 而  不息(이포작불식)하니 其於光也(기어광야)에 不亦難乎(불역난호)며 時雨降矣(시우항의)어늘 而猶浸灌(이유침관)하니 其於澤也(기어택야)에 不亦勞乎(불역노호)잇가 未子立而天下治(미자입이천하치)어늘 而我猶尸之(이아유시지)하니 吾自視缺然(오자시결연)이라 請治天下(청치천하)하노이다' 하니 허유가 曰(왈) '子治天下(자치천하)에 天下(천하)가 旣已治也(기이치야)어늘 而我猶代子(이아유대자)인댄 吾將爲名乎(오장위명호)아 名者(명자)는 實之賓也(실지빈야)니 吾將爲賓乎(오장위빈호)아   (초료)가 巢於深林(소어심림)에 不過一枝(불과일지)요 堰鼠飮河(언서음하)에 不過滿腹(불과만복)이라 歸休乎君(귀휴호군)이여 余無所用天下爲(여무소용천하위)니  人(포인)이 雖不治 (수불치포)나 尸祝(시축)이 不越樽髮而代之矣(불월준발이대지의)니라'[莊子(장자)]고 했습니다.

  즉 요임금이 허유에게 정권을 양여할 때 말하기를 '선생님의 도덕이 日月이라면 나의 도덕은 횃불이요, 선생님의 도덕이 때맞추어 내리는 비라면 나의 도덕은 가뭄에 물대는 것에 불가합니다. 선생님이 정치한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텐데 내가 오히려 이 천하를 맡아가지고 있으니 스스로 보기에 부끄럽습니다. 請(청)컨데 천하의 정권을 양여합니다'하니까 허유가 답하는 말씀이 '자네가 천하를 다스리매 천하가 이미 잘 다스려졌는데 내가 오히려 자네를 대신한다면 내가 장차 명예를 위해서 이겠는가. 명예란 것은 實相(실상)에서 일어나는 客(객; 虛妄(허망)한 것)이니 내가 장차 객을 위하겠는가. 뱁새가 깊은 수풀에 깃들일 때에 나무 한 가지만 만족하고 산쥐가 河水(하수)의 물을 마시는데 그 배 하나 채우면 그만이다. 돌아가 쉴지어다. 군이여, 나는 천하를 일삼는 사람이 아니니 푸줏간 주인이 푸줏간을 잘못 다스린다해서 祝文(축문)을 읽는 관리가 축문을 읽다말고 제상을 넘어서 푸줏간 주인의 일을 대신해줄 수는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을 한 후 허유는 穎川水(영천수)에 가서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고 귀를 씻었습니다. '때마침 허유의 친구인 소부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영천수에 왔다가 허유의 귀씻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허유의 말이 요임금으로부터 천하를 맡아달라는 더러운 소리를 들어 귀를 씻는다고 하니, 소부도 소에게 이 더러운 물을 먹일 수 없다고 소를 끌고 岐山(기산)너머로 가버렸습니다'[史記(사기)]. 이처럼 성인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사상과 역량에 따라 所任(소임)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기에 孟子(맹자)의 말씀에 '徒善(도선)이 不足以爲政(부족이위정)'이라 했습니다. 한갓 착한 것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儒彿仙(유불선) 三敎(삼교)를 비판하면 道(도; 根本(근본))자리는 같으나 用法(용법)은 다릅니다. 불교는 공간적으로 현실세계만 기준한 것이 아닙니다. 무한한 허공 속에서 무한한 세계를 들었고 시간적으로는 三世(삼세; 과거 현재 미래)를 포괄했기 때문에 그 用이 현세계 현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지요. 個個人(개개인)이 스스로 자기의 人品(인품)을 완성하여 未來際(미래제)가 다하도록 一切衆生(일체중생)을 자기와 같이 성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불교의 용이 넓고 커 현실정치에 국한된 것이 아닌데 반하여, 유교와 선교는 용이 현실정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유교, 선교를 內聖外王之學(내성외왕지학)이란 자가(自家)의 덕을 완성하여 정치로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정치 하면 제일 큰 것으로 보지만 기실 현실이란 것은 몇푼어치도 안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때문에 허유의 귀씻은 역사가 우리 후학에 끼치는 수천 권의 저서를 남긴 것보다 위대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天(천)은 無言之天(무언지천)이요, 聖人(성인)은 有言之天(유언지천)이므로 성인은 어느 시대든지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고 남는 것을 덜어서 그 시대 그 인류에게 이익을 끼칠 뿐인 것입니다.

  邵康節(소강절)의 皇極經世書(황극경세서)에 시대의 조류를 皇(황), 帝(제), 王(왕), 覇(패), 夷狄(이적), 禽獸(금수)로 나누고
사업의 종류를 五種(오종)으로 얘기하기를 五覇(오패)를 百世(백세)의 사업, 三王(삼왕)을 千世(천세)의 사업,  五帝(오제)를 萬世(만세)의 사업, 三皇(삼황)을 億世(억세)의 사업, 孔子(공자)를 不世(불세)의 사업이라 했습니다.

  공자의 사업은 繼往聖 開來學(계왕성 개래학; 간 성인을 계승하고 미래의 학자를 開示(개시)한다)하신 교육사업이므로 영원불멸의 사업이 된 것입니다. 공자가 정치를 못한 것은 그시대로 보아 불행이지만 정치를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불세의 교육사업이 된 것입니다. 莊子(장자)도 역시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 鮮于(선우) ♤♤♤

  말하자면 공자가 정권을 잡지 못했던 것이 후세인들에게 다행스러웠다는 말씀이신 듯한데. 만일 공자가 정권을 잡았다면 이상적인 정치를 했을까요.

☞ 呑虛(탄허) ♠♠♠

  물론이지요. 정권을 잡았으면 잘 했을 것입니다.

<정리 - 李俊佑(이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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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77年 캠페인 '自己를 定立해야 한다'  第 3輯

우리가 안고 있는 오늘의 문제는 무엇인가. 급변하는 오늘의 상황은 이같은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를 모든 인류에게 깊게 제기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오늘의 우리가 가치관의 다양화 속에서 목표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고백적으로 입증하는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더 깊게 제기될수록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참된 의미의 인간의 재발견과 자기확립의 실현이 더 크게 요청되어지고 있다. 자기 정립을 통한 인간성의 재발견, 회복만이 복잡하고 거대한 현실의 와중에서 고뇌하고 있는 현대인을 구제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종교 철학사상을 폭넓게 비교 해석 정리하면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呑虛(탄허) 스님과 본사 鮮于 煇(선우 휘) 주필과의 신춘대담(新春對談)을 마련,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제 2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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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宇宙(우주)의 主體(주체)는 '나'    

呑虛스님에게 宗敎(종교)의 本質(본질)을 묻는다

  

조선일보 1977년 1월 19일 수요일자  


☞ 鮮于(선우) ♤♤♤

  佛敎(불교)는 개인의 成佛(성불)을 목적으로 하는 宗敎(종교)로 알고 있습니다. 쉽게는 개인의 욕망부터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새해들어 55세가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니까 누구를 미워하다가도 힘이 들어 그만둡니다. (웃음). 喜怒哀樂(희노애락)의 감정적 柔軟性(유연성)이 점점 鈍化(둔화)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呑虛(탄허) ♠♠♠

"嗜欲(기욕)이 深者(심자)는 天機賤(천기천)"[莊子(장자)]이란 말과 같이 嗜欲(기욕)이 많은 사람은 天理(천리)와는 먼 것이고 嗜欲(기욕)이 적은 사람은 道(도)에 가까운 것입니다.

  孔子(공자)의 말씀에 "소년시절엔 血氣(혈기)가 未定(미정)하므로 色(색; 여자)을 경계해야 하고 長成(장성)해서는 혈기가 强壯(강장)하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며 늘그막엔 혈기가 이미 쇠했기 때문에 貪心(탐심)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貪心(탐심)은 嗜欲(기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로 보아 鮮于(선우)선생은 修養(수양)이 깊어졌다고 볼 수 있지요.

  古人(고인)의 詩(시)에 "人情(인정)을 閱盡頭全白(열진두전백)이요 世味嘗來齒已寒(세미상래치이한)" 이라는 것이 있는데 온갖 人情(인정)을 다 지내고 보니 머리는 허옇게 되었고, 세상만사를 다 겪고보니 이가 시리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嗜欲(기욕)과 樂欲(낙욕)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嗜欲(기욕)은 감정에서 일어나지만 樂欲(낙욕)은 理智(이지)에 속하므로 嗜欲(기욕)이 없다해서 樂欲性(낙욕성)까지 없다면 一切聖人(일체성인)들이 꾸짖는 것입니다. 樂欲性(낙욕성)은 發願(발원)이나 立志(입지)를 의미합니다.


☞ 鮮于(선우) ♤♤♤

  

그러니까 聖人(성인)이 가장 욕심이 많다는 얘기입니까?



☞ 呑虛(탄허) ♠♠♠

  그렇지 않습니다. 輕重(경중)을 달리 해야지요. 세상욕심이 희박한 이는 좋은 사람들이지만 樂欲性(낙욕성)이 없는 사람은 천치바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양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제 경우를 보면 저의 先考(선고)께서는 17세부터 독립운동을


(보천교 핵심간부였던 부친의 독립운동 자금 발각사건 동아,조선 대서특필 )


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정치문제를 가지고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17~18세가 되었을 때 先考(선고)께 "邵康節(소강절:우주원리를 밝힌 황극경세서 저자)은


小人(소인)입니까, 君子(군자)입니까"하고 여쭈었더니


"宋朝(송조) 六君子(육군자) 중의 한 분이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또 말씀드리기를 "그러면 그의 학설이 거짓말이 아니겠지요. 皇極經世書(황극경세서)에 五種 事業(오종 사업)의 種別(종별)을 들어 '寧爲鷄口(영위계구)이언정 無爲牛後(무위우후)'(작아도 닭의 입이 되는 것이 낫지, 커다란 소궁둥이가 되지 말라는 뜻) 라는 말이 있듯이, 가다가 못 갈지언정 孔子(공자)의 不世之事業(불세지사업)을 따르겠습니다"고 하니, 先考(선고)께서도 막지 못하셨습니다. 이처럼 樂欲性(낙욕성)은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것입니다.

☞ 鮮于(선우) ♤♤♤

  聖人(성인)이 중생을 濟度(제도)한다거나, 계몽할 때 너무 높은 경지에서 한다면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같이 여겨집니다. 聖人(성인)이 중생의 차원인 밑바닥까지 내려와 중생과 苦樂(고락)을 같이 하며 濟度(제도)할 때 가능할 것 같은데요.

☞ 呑虛(탄허) ♠♠♠

  물론 그렇지요. 한 번 부정을 거친 긍정이어야 더욱 철저한 긍정이 되는 것이니까요.


☞ 鮮于(선우) ♤♤♤

  현실사회에는 여러 종교가 混在(혼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佛敎(불교), 기독교, 최근엔 마호멧교까지 활발한 포교활동을 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들 종교가 내세우는 각기 다른 여러 神(신)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습니까.



☞ 呑虛(탄허) ♠♠♠

  天(천) (神(신)의 대명사)은 4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形體之天(형체지천)으로  (?)天(회천), 昊天(호천) 旻天(민천), ,玄天(현천)의 春夏秋冬(춘하추동) 네 절기 하늘입니다. 둘째는 運命之天(운명지천)이니 天命(천명), 天運(천운) 또는 '天也(천야)라 奈何(내하)'(천명이라 어찌하겠나) 등의 하늘이지요. 셋째는 主宰之天(주재지천)입니다. 하나님, 옥황상제 등을 이름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眞理之天(진리지천)이니 天理(천리), 天道(천도) 또는 '莫之爲而爲者(막지위이위자)는 天也(천야)'(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 하늘이다. 孟子) 라는 등의 하늘입니다.

  기독교에서는 主宰之天(주재지천) 하나만을 말하고 儒彿仙(유불선) 三敎(삼교)에서는 때에 따라 4種 天을 다 말합니다.

☞ 鮮于(선우) ♤♤♤

  가장 단순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만 지금 스님이 이야기하신 종교를, 인연이 없는 중생으로서 왜,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 呑虛(탄허) ♠♠♠

  좋은 질문이십니다. 종교를 믿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인데, 그것을 부정하면 결국 자기부정의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東洋思想(동양사상)의 견지에서 볼 때 종교는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主體性(주체성)인, 다시 말하면 우주와 인생의 핵심인 그 밑바탕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종교의 本旨(본지)가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기타의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문제는 '유치원 학생을 지도하는 것'과 같은 방법입니다.

  우주의 주체가 무엇인지 세상사람들은 모릅니다. 우주의 주체는 우주가 아닙니다. 우주의 주체는 우주 아닌 자입니다. 즉 우리의 정신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時空(시공)이 끊어진 자리이지요. 왜 시공이 끊어졌느냐. 과거의 생각은 이미 滅(멸)했고 미래의 생각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의 생각은 머무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공이 끊어진 이 정신(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간밤 꿈에 一點(일점)도 안 되는 공간 위에 누워있는 肉身(육신)이 10분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수만 리를 거닐면서 70~80년을 살았습니다. 꿈속에서 보는 우주가 현실과 다른 것이겠습니까.

  여전히 산은 높고 물은 깊습니다.

  불은 뜨겁고 물은 찹니다. 따라서 현실에서 보는 우주가 眞(진)이라면 꿈속에서 보는 우주도 眞(진)일 것이고 꿈속에서 보는 우주가 헛것이라면, 현실에서 보는 우주도 헛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꿈속에서 보는 우주만을 眞(진)으로 여기기 때문에 1백 년도 못 사는 몸으로 한없는 妄想(망상)을 좇아 내일 공동묘지에 갈지라도 오늘 富貴功名(부귀공명)을 한다면 집착하고 매달리는 것이 凡夫(범부)가 아닙니까.

  꿈에 관련된 古事(고사)를 비유하여 말씀드려 보지요. 1천 5백년전 漢(한)  帝(훤제) 때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국내에서 해몽을 제일 잘 하는 자를 불러 시험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꿈을 날조하여 말하기를 "내가 간밤 꿈에 궁전 처마끝의 기왓장이 鸞鳥(난조; 鳳凰(봉황)의 별명)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는데 무슨 꿈인가"고 했습니다. 해몽자의 답변이 "큰일났습니다, 폐하. 궁전에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이 밀이 끝나자마자 문밖에서 아뢰는 말이 "폐하, 궁중에서 싸우다 한 놈이 죽었습니다"고 했습니다. 황제가 하도 기특하여 "얘야, 나는 네가 하도 해몽을 잘한다고 하기에 시험삼아 꿈을 하나 날조해 말했는데 어찌 그렇게 잘 맞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해몽자가 대답하기를 '夢是神遊(몽시신유)라고 했습니다.


  즉 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꿈이기 때문에 폐하가 한 생각을 일으켰을 때 그것이 벌써 하나의 꿈이 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한 생각이 일어남으로써 꿈이 있고 꿈이 있으므로 우주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聖人(성인)은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面目(면목)을 각파했기 때문에 꿈도 우주도 없는 別天地(별천지; 時空(시공)이 끊어진 세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聖父(성부)', 儒敎(유교)에서는 '中(중)', 불교에서는 '佛(불)'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聖人(성인)은 우리의 현실을 간밤 꿈으로 覺破(각파)한 것입니다. 佛(불)이란 覺(각)이란 말인데, 覺(각)이란 것은 현실우주가 간밤 꿈으로 보아 환상으로 있는 것이요, 實有(실유)가 아니라는 것을 철저하게 보아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聖人(성인)은 우주라는 苦海(고해)를 완전히 건넌 것입니다. 중생은 苦海(고해)를 건너지 못했기 때문에 此岸(차안)이라 하는 동시에 中流(중류)에서 허덕이고 있고, 聖人(성인)은 완전히 건넜기 때문에 彼岸(피안)이라고 합니다. 苦海(고해)의 씨앗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한 생각을 타파하는 것은 苦海(고해)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한 생각의 씨앗을 타파하는 방법은 道(도)를 보지 않고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凡夫(범부)는 일초 일분도 생각이 머물지 않기 때문에 중생이라 하는 것이요, 哲人(철인)은 道(도)자리를 보아 원래 생각이 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聖者(성자) 또는 覺者(각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파리가 곳곳에 가서 붙지만 불꽃 위에는 붙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중생의 망상이 어디든지 다 가서 붙지만 道(도)자리에는 붙지 못하는 것입니다. 道(도)자리를 보면 苦(고)의 씨앗은 송두리째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 그래서 道(도)를 닦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학을 연구하느니, 종교를 믿느니 하는 것은 철학이나 종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어떻게 이 苦海(고해)를 벗어나느냐 - 主觀的(주관적)인 견지에서 연구하고 믿어보는 것입니다. 철학과 종교를 떠나서 이 고해를 벗어날 수 있다면 철학과 종교는 하나의  (?) [갈포; 옛날 제사지낼 때 쓰는 위패인데 짚으로 개모양을 만들어 쓰고 내버리고 마는 것]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서양철학을 대표하는 독일의 칸트도 철학적으로 思索[사색; 여러 갈래로 찾는 것] 冥想[명상; 연구할 한길을 얻은 것] 침묵[三昧(삼매)와 같은 物我兩忘(물아양망)의 경지] 冥想[명상; 三昧(삼매)속에서 홀연히 알아지는 것]을 거쳐 우주 萬有(만유)의 認識主體(인식주체)를 純粹理性(순수이성)이라고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칸트철학의 결론은 認識境界(인식경계)와 認識主體(인식주체)의 절대적인 相反性(상반성)이 一體(일체)위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양학의 입장에서 볼 때 칸트의 최종적인 결론은 미흡한 것입니다. 우주만유의 모체인 순수이성을 파악할 때에 우주만유가 순수이성化되어야 하는데 칸트는 그런 결론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동양학적인 견지에서는 우주만유의 모체를 파악할 때에 그 모체에서 일어난 우주만유의 모체화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一本萬殊(일본만수) 萬殊一本(만수일본)'(한 근본이 만가지 다른 것이 되고, 만가지 다른 것이 한 근본이다)이라 하며, '物物(물물)이 名具一太極(명구일태극) 統體一太極(통체일태극)'(우주만물 하나하나가 각각 太極(태극; 우주의 핵심체)의 진리를 갖추었고 우주전체를 통합해보면 太極(태극)의 진리일 따름인 것이다) 이라고 했습니다.

  동양화의 三敎聖人(삼교성인)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거나 자기의 인품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사람 사람의 마음 속에 본래 갖추어 있는 우주의 핵심체인 '太極(태극)의 眞理(時空이 끊어진 자리)를 소개해 주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천당 지옥의 유치원 학설'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천당에 가느니, 지옥에 가느니 하는 문제는 因果法則(인과법칙)의 사실이지만 三敎 聖人(삼교 성인)이 인류에게 가르친 교리는 이에 국한된 것이 아니지요. 오직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달아 이 세계가 그대로 極樂化(극락화)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聖人(성인)의 가르침이 어떤 종교를 믿으라는 것이겠습니까? 오직 자기가 자기 주체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다면 자기의 주체를 부정하여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은 것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 鮮于(선우) ♤♤♤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 깨달은 듯 하기도 하고 마음이 가라앉은 듯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난 다음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점심을, 저녁을 먹어야 하고 땔감을 마련해야 하며 직장문제, 이웃과의 관계, 老後(노후)를 대비한 앞으로의 문제 등으로 또다시 현실과 부딪쳐 어지럽게 됩니다. 역시 世俗人(세속인)은 도를 깨친 聖人(성인)과는 달리 비린내나는 인간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속세에 발딛고 살면서 그래도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 呑虛(탄허) ♠♠♠

  물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물질을 第一義(제일의)로 삼고, 정신을 第二義(제이의)로 삼는 데서 삶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정신을 第一義(제일의)로 삼고, 물질을 第二義(제이의)로 삼아 정신과 물질을 조화시키는 데서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물질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권력자나 갑부는 고통이 없어야 하겠는데 그들 역시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은 정신적인 양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현미경이 아니면 微菌(미균)을 볼 수 없고 망원경이 아니면 원거리를 볼 수 없듯, 인간의 罪惡相(죄악상)은 聖人(성인)의 經典(경전)을 통하지 않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聖人(성인)의 경전을 보아 자기의 주체성을 믿고 거기에 따라서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苦海 衆生(고해 중생)을 건지기 위해 上中下(상중하)의 그물을 쳐 놓은 것이 불교의 교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上根大智衆生(상근대지중생)을 건지기 위해서는 고래를 잡는 것과 같은 그물, 中根機(중근기)를 건지기 위해서는 대구나 명태를 잡는 것과 같은 그물, 下根機(하근기)를 위해서는 멸치나 새우를 잡는 것같은 그물을 쳐서 한 중생도 남음없이 다 濟度(제도)하려는 것이 佛陀(불타)의 願力(원력)입니다.

  上根(상근)은 문자를 의지하지 않고 바로 參禪(참선)을 통해 道(도)에 들어가고, 中根(중근)은 교리적으로 문자에 의지하여 一心 三觀(일심 삼관), 三觀 一心(삼관 일심)의 도리인 觀法(관법)으로 道(도)에 들어가며, 下根(하근)은 참선에도 교리에도 해당되지 못하므로 '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불' 등의 名號(명호)를 외거나 기독교의 주기도문과 같은 呪力(주력)으로 道(도)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전문가처럼 入山修道(입산수도)를 해야만 道(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根機(근기)에 따라 上中下(상중하) 어느 門戶(문호)든지 알맞게 택하여 隨時隨處(수시수처)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밤새도록 가는 길에 해돋을 때가 오는 것이지요. 비록 道(도)에 들어가는 문이 上中下(상중하)의 차별이 있다하더라도 들어가고 보면 한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古人(고인)의 말씀에 '發心(발심)은 有先後(유선후)어니와 悟道(오도)는 無先後(무선후)'라 즉, 發心(발심)은 선후가 있을 지라도 道(도)를 깨닫는 데에는 앞뒤가 없다 했습니다.



<정리 - 李俊佑(이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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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77年 캠페인 '自己를 定立해야 한다'  第 3輯

우리가 안고 있는 오늘의 문제는 무엇인가. 급변하는 오늘의 상황은 이같은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를 모든 인류에게 깊게 제기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오늘의 우리가 가치관의 다양화 속에서 목표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고백적으로 입증하는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더 깊게 제기될수록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참된 의미의 인간의 재발견과 자기확립의 실현이 더 크게 요청되어지고 있다. 자기 정립을 통한 인간성의 재발견, 회복만이 복잡하고 거대한 현실의 와중에서 고뇌하고 있는 현대인을 구제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종교 철학사상을 폭넓게 비교 해석 정리하면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呑虛(탄허) 스님과 본사 鮮于 煇(선우 휘) 주필과의 신춘대담(新春對談)을 마련,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제 3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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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終末은 滅亡아닌 成熟    

呑虛스님에게 韓國의 미래를 묻는다

  

조선일보 1977년 1월 20일 목요일자  

☞ 鮮于(선우) ♤♤♤

  

스님 말씀을 듣고 보면 사람은 뜻을 두고 살아야겠는데



흔히들 죄를 많이 지어 오히려 極惡(극악)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극악한 죄악도



구원받을 수 있는지요?



☞ 呑虛(탄허) ♠♠♠

  물론이지요. 구원받을 수 있다뿐입니까?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事懺(사참)이요, 다른 하나는 理懺(이참)이라는 것입니다. 事懺(사참)이란 밖으로 참회하는 것으로,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죄를 범했을 때 佛前(불전)이나 善知識(선지식)앞에 죄상을 발로하여 瑞光(서광)을 보거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理懺(이참)은 罪相(죄상)의 본래 없는 도리를 內的(내적)으로 觀照(관조)하여 백 년동안 지은 죄를 한 생각으로 없애는 것이지요. 觀照(관조)하는 법은 '죄가 어디로부터 나느냐. 죄는 妄想(망상)으로 좇아난다. 妄想(망상)은 어디로부터 나느냐. 마음으로부터 난다. 마음은 어디로부터 나느냐. 마음은 나온 곳이 없다. 마음이 나온 곳이 없는데, 죄가 어느곳에 있겠느냐'는 식으로 죄의 뿌리를 뽑는 것입니다.

  例話(예화)를 하나 들어보지요. 朝鮮王朝(조선왕조) 宣祖(선조) 때 平壤(평양)에 無着(무착)스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庵子(암자)에서 修道(수도)하고 있었지요. 평양 府中(부중) 한 貫家(관가)에 청춘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약혼자가 죽어 결혼식도 올려보지 못한 채 옛풍속 대로 守節(수절)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陰陽之樂(음양지락)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궁금했지만 하소연할 길이 없었습니다. 생각 끝에 無着(무착)스님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그 여자는 기도한다는 핑계로 쌀 몇 가마를 싣고 암자를 찾아갔지만 목적이 딴 곳에 있었기 때문에 밤에 스님방에 홀로 들어가 자기의 의사를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無着(무착)스님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사흘밤을 반복해도 끝내 거절당하고만 그 여자는 無着(무착)스님에게 '내 恨(한)을 풀지 못할 바에야 자살하고 말겠습니다'고 말하고 높은 바위로 올라갔습니다. 無着(무착)스님이 생각하기를 殺盜 妄酒(살도음망주) 五戒 中 殺戒(오계 중 살계)가 第一(제일)에 있고  戒(음계)가 第三(제삼)에 있는데 내가  戒(음계)를 破(파)하지 않기 위해 殺戒(살계)를 범한다면 이는 輕重(경중)을 모르는 것이라 하여 그 여자를 불러 소원을 풀어주었습니다. 그 여자도 보통사람이 아닌 大人(대인)이기 때문에 '원을 풀어주어 대단히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이만하면 一生守節(일생수절)할 만하다면서 府中(부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無着(무착)스님은  戒(음계)를 범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유명한 栗峯禪師(율봉선사)를 찾아가 문밖에 거적자리를 펴놓고 참회를 구했습니다. 栗峯(율봉)이 無着(무착)에게 "네가 참회를 하러 왔다니 내가 너를 위해 참회를 시켜주겠다. 죄상을 네 앞에 놓여있는 소반 위에 들여 바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無着(무착)이 주먹으로 상을 치며 하는 소리가 "罪性(죄성)이 본래 없는데 어디에 들여 바칠게 있겠습니까"하니 栗峯(율봉)이 손을 잡으며 "어! 참회 잘했다. 위로 올라 오너라"고 했답니다.

  聖經(성경)에서는 "네가 사회적으로 아무리 착한 일을 했어도 하나님을 부정하는 날 너는 지옥이요, 네가 사회적으로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어도 하나님을 믿는 날 너는 천국이라"했습니다. 이 하나님은 진리의 대명사인 것입니다. 만일 진리의 대명사가 아니라면 사회적으로는 모순된 말입니다. 진리의 대명사이기 때문에 진리를 부정하는 날 지옥-캄캄한 세계라는 말이고, 진리를 믿는날 천국-깨끗한 세계를 맞는다는 것입니다.


☞ 鮮于(선우) ♤♤♤

  좀 속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세상사람이 모두 신부 수녀가 되고 비구 비구니가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자의 말씀에 '朝楣(조문도)면 夕死(석사)라도



可矣(가의)라' 즉,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可(가)하다 했으니 인류가 하루아침에 道通(도통)한다면



모두 죽어 없어져도 좋다는 말입니까?



☞ 呑虛(탄허) ♠♠♠

  이런 부조리한 질문은 惡質門(악질문)이라 해요(웃음). 물이 산으로 올라가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전세계 인류가 도통군자가 된다면 道자리에는 生死(생사)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朝楣(조문도)면 夕死(석사)라도 可矣(가의)라는 것보다 朝楣(조문도)면 朝死(조사)라도 可矣(가의)라고 할 것입니다. 또 전인류가 모두 신부 수녀가 되고 비구 비구니가 되어 이 세계가 도통군자들만이 모인 修道場(수도장)이 된다면 천당, 극락을 따로 갈 것 없이 이세상 그대로가 천당, 극락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혼을 하지 않고도 천당 극락에서처럼 연꽃 속에서 化生(화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을 그렇게 될 수 있겠느냐고 질문한 것이 바로 악질문이지요(웃음).

  그렇지만 전인류가 모두 도통하는 극락에 갈 수는 없어도 因果法則(인과법칙)을 철저히 믿는다면 정치가나 교육자가 필요없게 될 것입니다. 모든 하는 일이 주관적인 문제이지 객관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鮮于(선우) ♤♤♤

  지금까지 스님께서 말씀하신 불교가 발상지인 인도에서 거의 사라져갔고, 공자의 사상도 오늘의 중국에서 배척받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 呑虛(탄허) ♠♠♠

  消息(소식) 盈虛(영허) 消長(소장) 盛衰(성쇠)는 우주순환의 자연법칙입니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봄이 가면 가을이 오는 원리가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면 자동차바퀴가 굴러갈 때, 가는 것으로 보면 順(순)이지만 바퀴밑에서 보면 도리어 逆(역)이 됩니다.

  70卷(권)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실린 역사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孔子(공자)가 일찍이 길을 가는데 웬 女人(여인)이 길가에서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孔子(공자)가 그 이유를 물은즉 동네 당산나무 밑에 천 년 묵은 지네가 있는데 年例(연례)로 한 번씩 제사를 지내야 하며 그때마다 사람을 한 명씩 지네에게 재물로 바치게 되었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네의 毒氣(독기)로 한 동네가 폐허가 될 지경이었지요. 그러나 자진해서 제물이 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제비를 뽑아, 뽑힌 자가 들어가기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길가에서 통곡하고 있는 과부의 외아들이 뽑혀 그 여인은 자기 아들을 못 내주겠다고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孔子(공자)는 그 모양을 보고 동네 사람에게 양해를 얻어 여인의 아들 대신 당산나무밑 祭堂(제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지네가 사람을 먹으려고 毒(독)을 품는데 그 毒(독)은 홍두깨같은 새파란 빛이었습니다. 이튿날 동네 사람들이 뼈라도 추려 장례지내주려고 문을 열어보니 孔子(공자)는 조금도 動(동)함이 없고 지네가 죽어 있었습니다. 이 天下(천하)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定力(정력) 즉 道力(도력)인 것입니다. 定力(정력) 앞에서는 天地(천지)도 어찌할 수 없고, 귀신도 엿볼 수 없고 權力(권력)도 총칼도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가 開判(개판)한 이래로 자기의 父祖(부조)를 다 버리고 三大聖人(삼대성인)만을 전인류가 숭배하는 것은 헛일이 아닐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孔子(공자)께 百拜謝禮(백배사례)하고 지네를 태웠습니다. 그때에 그 지네의 毒(독)이 무지개처럼 하늘에 뻗쳐 있었습니다. 孔子(공자)가 그것을 가리키며 하는 말씀이 百年(백년)후에 이것이 반드시 내 道(도)를 해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후 백 년 만에 만고영웅(?)인 秦始皇(진시황)이 나왔습니다. 바로 그 진시황이 천 년 묵은 지네의 후신이라는 거예요. 孔子(공자)가 崇尙(숭상)하는 詩書(시서)는 다 소각해 버리고 그 敎(교)를 믿는 儒生(유생)들을 모두 생매장한 것입니다. 孔子(공자)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아시고 七書(칠서)를 그의 집 벽속에 감추고 흙으로 발라 보존하였기에 後世人(후세인)들이 七書(칠서)를 七書壁經(칠서벽경)이라고 千字文(천자문)에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진시황 당년에 孔子(공자)의 敎(교)가 全滅(전멸)당하여 움도 싹도 없을텐데, 진시황은 불과 二世(이세)에 망하고 그 후로 漢唐宋元明淸(한당송원명청)의 六朝(육조)에 걸쳐 孔子의 敎는 전성하였습니다.


  世上萬事(세상만사)는 塞翁之馬(새옹지마)같아서 盛衰(성쇠)가 맞붙어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逆境(역경)을 당한다고 서러워할 것도 없고 順境(순경)을 만난다고 좋아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强暴(강폭)한 원자탄 수소탄으로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면 우주의 원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60여년을 살아오는 동안에도 보아온 세상이 아닙니까. 제1차 世界大戰(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독일이었습니다. 만일 이 강폭한 것이 세계를 지배한다면 세계는 독일의 것이었겠지만 독일은 두 번 다 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肉身(육신)에서 제일 강한 것이 뼈입니다. 그러나 그 강한 치아는 60, 70이 못되어 의치를 해야 하고 제일 부드러운 혀는 백년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동양사를 볼 때, 우주개벽이래로 원시시대의 전쟁은 맨주먹으로 하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뒤로 시대가 발전되면서 나무로 창을 만들었지요. 주먹[土(토)] 열이 나무창[木(목)] 하나를 당하지 못하는 것은 木克土(목극토)하는 원리예요. 그후엔 쇠로 창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나무창 열이 쇠창 하나를 당하지 못하는 것은 金克木(금극목)하는 원리입니다.

  다음엔 총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총 끝에 화약을 달아 사용하게 된 것이 堯舜(요순) 前 皇帝(황제) 때 蚩尤作亂(치우작란) 시절이었습니다. 쇠창 열이 불총 하나를 당하지 못하는 것 역시 火克金(화극금)하는 원리이지요. 그후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불의 전쟁도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三國(삼국)시절에 諸葛孔明(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어 적벽대전에서 大勝利(대승리)를 거둔 것도 역시 불전쟁이었으며, 오늘날 원자탄이 생긴 것도 역시 불을 사용한 것입니다. 物極則反(물극즉반; 物이 최상까지 가면 내려오는 것)으로 불의 사용은 원자탄으로 종결을 지은 것입니다.

  수소탄이 나오자 원자탄이 무력하게 된 것은 水克火(수극화)하는 원리가 아니겠습니까. 불의 사용은 원자탄에 이르러 더 갈 수 없게 되었고, 물의 사용은 수소탄에 이르러 다한 것입니다.

  그러면 수소탄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시 맨주먹입니다. 왜냐하면 土克水(토극수)하는 원리이니까요. 그 맨주먹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道德君子(도덕군자)를 말합니다. 道德君子(도덕군자) 앞에는 총칼도 원자탄 수소탄도 다 쓸데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현실의 인도문제와 중공문제 등은 消長(소장) 盛衰(성쇠)의 法則(법칙)에서 일시적인 수난기라고 봐야겠지요. 그렇다고해서 그 싹이 永滅(영멸)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잘 될 장본이라고 보겠습니다. 皇(황), 帝(제), 王(왕), 覇(패), 夷狄(이적), 禽獸(금수) 6단계의 時代潮流(시대조류)로 보아도 禽獸運(금수운)이 지나고나면 다시 처음의 皇運(황운)이 오지 않겠습니까.



☞ 鮮于(선우) ♤♤♤

  

마지막으로 스님께 한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한국의 미래는


어떻겠습니까. 좋습니까, 나쁩니까.



☞ 呑虛(탄허) ♠♠♠

  글쎄요. 백지 한 장도 투시하지 못하는 우리 肉眼(육안)으로 어떻게 한국의 장래문제를 추측하겠습니까. 그러나 기왕에 질문이 있으시니까 부득이 한말씀드리려고 합니다.

  周易(주역)의 八卦(팔괘)로 전세계를 分野(분야)해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艮方(간방)'이 됩니다. 艮(간)은 사람으로 말하면 結實(결실)이요, 德(덕)으로 말하면 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周易(주역) 繫辭(계사)에 '艮(간)은 止也(지야)니 萬物之所以成始成終者也(만물지소이성시성종자야)라'하며 또 '始萬物終萬物者(시만물종만물자)가 莫盛乎艮(막성호간)이라' 했습니다.

  즉 艮(간)이란 것은 그치는 것이니, 그치는 것은 도덕을 의미합니다. 우주만물이 도덕으로부터 시작하고 도덕에서 종결짓는다 하며, 만물을 시작하고 종결짓는 것이 艮卦(간괘)보다 더 盛(성)함이 없다하셨습니다. 우리는 自來(자래)로 이 도덕분야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맞고만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그 陰德(음덕)이 자신에게 미쳐 앞으로는 희망적이라 하겠습니다. 몇 년 전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하기를 앞으로 25년 후에 세계의 멸망기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의 예언은 평소 99%가 맞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말이 틀림없이 오지만 그의 예언은 부조리한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째서 멸망한다는 까닭도 없고, 어떻게 멸망한다는 얘기도 없고, 멸망후에 어떻게 되리라는 얘기도 없고, 어째서 25년 후이냐는 점을 밝히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동양의 易學的(역학적)인 원리로 전개한다면 周易(주역)을 아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조리있고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간단히 결론만 얘기하겠습니다.


  
세계의 종말은 멸망이 아니라 성숙입니다. 易學(역학)의 伏羲八卦(복희팔괘)가 天道(천도)를 밝힌 것이라면 文王八卦(문왕팔괘)는 人道(인도)를 밝힌 것이며, 正易八卦(정역팔괘)는 地道(지도)를 밝힌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성숙기가 바로 노스트라다무스가 멸망한다고 한 시기입니다. 그 시기는 25년 후가 아니예요. 멸망은 아니지만, 전세계 인류의 60%가 줄어드느냐, 80%가 줄어드느냐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의 멸망으로 보는 거지요.

  그때엔 현재 지구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대륙이 4분의 3으로 확장됩니다. 세계적인 지진과 해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요즘 지진이 전혀 없던 나라에서도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艮方(간방)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搖動(요동)이 적고 해일의 피해도 극히 적을 것입니다. 易學(역학)의 원리에 의거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세계적으로 제일 좋아진다고 보겠습니다. '相逢此理立談者(상봉차리입담자)여, 千萬人中無一人(천만인중무일인)'이라는 古人(고인)의 말과 같이 과연 이렇게 오는 한국의 장래를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해보겠습니까.

☞ 鮮于(선우)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 - 李俊佑(이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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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탄허 스님의 예지



탄허스님 예언의 글  

탄허스님의 예언에 관련된 글
====인류의 구원은 한국에서 이루어진다

1995년 1월 3천 3백여 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낸 일본 고베 대지진 사건이 터졌을 때 생전에 ≪주역≫을 풀어 미래 세계를 예언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고(故) 탄허 스님의 예지가 언론에 다시 화제가 된 바 있다.
탄허 스님은 생전에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도교 등 동양사상 전반,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난해하다는 ≪화엄경≫과 ≪주역≫의 으뜸 권위자로 평가받은 당대의 학승이다.

1983년 자신의 임종 시간을 불과 10시간 차이로 예언하고 열반, 몸에서 13과의 사리가 나온 고승으로 6·25전쟁과 울진·삼척 공비 침투 사건을 사전에 예견하고 재난을 대비함으로써 자신의 예지능력을 입증한 일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이 베트남에서 이기지 못하고 물러날 것임도 예견했다.

1980년 언론인 김중배(전 한겨례신문 사장)씨는 "예지의 거창함이 지나쳐 허황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뿌리치기 어렵다. 그러나 자연과학 지식까지 동원한 그의 예지에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고 탄허 스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글을 쓴 바 있다.

탄허 스님의 예지가 다시 화제가 된 배경은 이번 대지진이 그가 생전에 예언한 일본열도 침몰의 전조가 아니냐는 관측 때문이었다. 일본열도 침몰에 관해 탄허 스님은 "일본은 손방(巽方)으로 손(巽)은 주역에서 입야(入也)로 푼다. 들 입(入)자는 일본 영토의 침몰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지구는 지축 속의 불기운〔火氣〕이 북극으로 들어가 빙산을 녹이고 있는데, 북극의 얼음이 완전히 녹게 되면 일본은 영토의 3분의 2 가량이 바다로 침몰하게 된다는 것이 탄허 스님의 주역으로 본 일본운명론의 골자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것은 원자력 잠수함이 북빙하의 얼음 밑을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부연한 바 있다.

그는 ≪주역선해≫ ≪부처님이 계신다면≫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으며, 여기에는 미래에 대한 그의 예언이 담겨 있다. 탄허 스님은 역학을 근거로 하여 미래를 보는 눈은 훨씬 포괄적이며 나아가서 인류사회의 미래를 우주적인 차원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구의 표면은 물이 4분의 3이고 육지가 4분의 1 밖에 안 되는데, 앞으로 지구의 대변화를 거치고 나면 바다가 4분의 1이 되고 육지가 4분의 3이 된다고 밝힌다. 그는 이같은 전 세계적인 지각변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현재 지구의 지축은 23.5도 기울어져 있는데 이것은 지구가 아직도 미성숙 단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구 속의 불기운이 북극으로 들어가서 빙하가 완전히 풀려 녹을 때 지구의 변화가 온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음양을 모르는, 즉 이성을 모르는 처녀가 이제 초경을 치르면서 규문(閨門)을 열고 성숙한 처녀로 변하는 것처럼 지구도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초경이라는 피를 흘리는 것은 지구가 지각변동과 함께 지축이 바로 정립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로써 결실의 신시대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예언자(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세계 멸망기가 아닌가 합니다. 또는 성경에서 말세와 예언자의 말은 심판이니 멸망이니 하지만, 역학적인 원리로 볼 때는 심판이 아니라 성숙이며, 멸망이 아니라 결실인 것입니다." (≪주역선해≫ 제 3권)

탄허 스님은 또 재미있는 설명을 한다. 지구를 여자의 몸으로 비유해 볼 때, 최근의 세계적인 풍조가 여자들이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은 곹 지구가 적나라하게 자신의 변신을 드러낼 조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처녀가 초조(初潮) 이후에는 인간적으로 성숙하여 극단적인 자기 감정의 대립이 완화되듯이, 지구가 성숙해진 후천의 세계에는 극한과 극서의 혹독한 기후가 없어진다고 한다.


지구가 성숙한 처녀로 변화해 갈 때 우리나라와 이웃나라는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피를 흘리는 희생이 따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탄허는 김일부의 ≪정역≫의 원리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

■ 한국 그 때 우리나라는 동남해안 1백리 땅이 피해를 입게 되나 서부해안쪽으로 약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해서 늘어날 것이다. 또 지금은 중국 영토로 되어 있는 만주와 요동반도 일부가 우리 영토로 속하게 될 것이다. 이런 파멸의 시기에도 우리나라는 가장 적은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는 한반도가 지구의 주축부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김일부의 ≪정역≫ 이론에 따르면, 한국은 지구의 중심부분에 있고 간태(艮兌)가 축으로 작용한다. 일제시대의 일본 유키사와 박사는 계룡산이 지구의 축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 중국 역학으로 보면 중국은 진방(震方)이요 장남(長男)이다. 그래서 장남인 중국은 미국과 사이가 오래가지 못한다. 이것은 미국이 태방(兌方)으로 소녀(少女)에 해당하는데, 노총각인 중국과 남녀관계로 얼마간은 관계가 지속될지 모르나 곧 틀어지기 쉬운 이치이다.

소녀인 미국은 자신과 제일 궁합이 맞는 소남(小男)인 한국과 가까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은 아내로서 남편인 한국을 내조해 그 결과 남편의 성공을 드러내게 된다.

한편 중국과 소련 사이에 전쟁의 발생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왜냐하면 소련은 감방(坎方)이고 중남(中男)인데 장남인 중국과 같은 양이기 때문에 서로 조화할 수 없고 대립되기 때문이다.

■ 일본 미래의 역사에 관한 한 일본은 가장 불행한 나라이다. 영토의 3분의 2 가량이 바다로 침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문화를 전파시켜준 한국에 대해서만도 지난 5백 년 동안 무려 49차례에 걸친 침략행위를 일삼아 왔다. 이처럼 일본의 선조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 미래의 업보가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동양사상의 근본 원리인 인과의 법칙이요, 우주의 법칙인 것이다. 또 일본은 독립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작은 영토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영향권 내로 들어오게 된다.

■ 강대국의 지하 핵폭발 소규모의 전쟁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인류를 파멸시킬 세계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지진에 의한 자동적인 핵폭발이 있게 되는데, 이때 핵보유국들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을 것이다. 남을 죽이려고 하는 자는 먼저 죽고 남을 살리려고 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사는 법이다.

탄허 스님은 이러한 현상은 성숙으로 가기 위한 인류의 비극적 운명이며 이때 전 세계 인구의 60-70%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소멸'된다고 고통스럽게 말한다. 이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죽게 되는데 ≪정역≫의 이론에 따르면 이때에 놀라지 말라는 교훈이 있다고 전한다.


탄허 스님은 지구가 성숙되는 결실시대로 접어드는데, 이 결실을 맡은 방위가 간방(艮方)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간방은 지리적인 팔괘(八卦) 분야로 보면 바로 우리 한국이다.

'간'은 갓난아이요, 결실을 의미한다. 바로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으로 처음과 끝을 함께 뜻한다. 조금 풀어서 얘기하자면 결실은 뿌리의 결과이니 뿌리가 시(始)라면 열매는 종(終)이다. 일단 결실이 되고 나면 뿌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 열매이다. 그것은 열매가 다시 뿌리가 되기 때문에 뿌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니, 이것으로 보아도 결실은 처음과 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한편 간은 연령적으로 20대 청년을 뜻하는 소남(小男)의 뜻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부모의 여분인 결실인종이기 때문이다. 20대 청년들이 부모의 말도 선생의 말도 다 듣지 않고 오직 내 말만 들어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결실인종이므로 스스로 뿌리가 되려고 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든다.

"4·19 혁명이 청년학도들의 궐기로 이승만 정권을 타도했는데, 이렇게 청년 학생의 힘으로 정권이 붕괴된 일은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4·19 혁명 이후 세계 도처에 학생들의 봉기 현상이 유행병처럼 번져나가 그 결과 선진제국의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를 형성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우리나라 간방에 시간적으로 '간의 도수'가 왔고 간의 주인공인 20대 청년들이 정권을 붕괴시킨 것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 아니할 수 없는 거지요."

탄허 스님은 간방(우리나라)에 시간적으로도 결실의 간의 도수(度數)가 이미 와 있으므로 어두운 역사는 끝맺게 되고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인류역사의 시와 종이 모두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엄청난' 발언이다. 우리나라의 1980년대는 바로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의 진통이 있던 때이다.

이 아픔은 희망찬 아픔이었다. 이 고통이 지나면 우리의 숙원인 남북통일의 서광도 엿보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땅이 결실이 되려면 꽃잎이 져야 하고 또 꽃잎이 지려면 금풍(金風)이 불어야 합니다. 그 금풍(?)이란 西方바람(?)을 말하는데 이 바람은 곧 해방 이후부터 우리나라에 불어오기 시작한 이른바 '미국바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금풍인 미국바람이 불어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 맺는 가을철, 다시 말해서 결실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도움으로 인류사의 열매를 맺고 새로운 세계사를 시작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혹자들은 IMF환란을 금풍으로 보기도 한답니다)

한편 탄허 스님은 스스로 종교인이면서도 현재의 종교는 앞으로 없어질 것이라고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는다.

"앞으로는 왕도정치(王道政治)가 세워질 것입니다.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 모를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과연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가 궁금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종교의 알몸이 세상으로 들어날 것입니다. 현재의 종교는 망해야 할 것입니다. 쓸어 없애버려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끼리 반목 질시하고 네 종교, 내 종교가 옳다고 하며 원수처럼 대하는, 이방인이라 해서 동물처럼 취급하는 천박한 종교의 벽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그 장벽이 허물어지면 초종교가 될 것입니다. 김일부 선생은 유(儒)·불(佛)·선(仙)이 하나가 된다고 했고, 강증산 선생도 그렇게 된다고 했습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탄허 스님은 또 인류사의 열매가 바로 이 땅에서 맺어질 것이라고 한다. 한국문제의 해결은 곧 세계문제의 해결과 직결되며, 우리나라를 초점으로 시작과 끝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남북분단문제와 통일문제가 전체 인류적 차원에서 보면 아주 작은 문제 같지만, 오늘날 국제정치의 가장 큰 쟁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에서 북한의 핵문제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지도국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북한정권의 행보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탄허 스님은 세게 구원의 방안이 이미 한국 땅에서 준비되고 있다고도 말한다. 그가 다음과 같이 남긴 말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 선조가 적선해 온 여음(餘蔭)으로 우리 한국은 필경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선 이 우주의 변화가 이렇게 오는 것을 학술적으로 전개한 이가 한국인(김일부) 외엔 있지 않으며, 이 세계가 멸망이냐 심판이냐 하는 무서운 화탕(火湯) 속에서 인류를 구출해낼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있는 이도 한국인 외에 또다시 없는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나와서 조국을 통일하고 평화적인 국가를 건설할 것이며 모든 국내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국위를 선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한국은 세계적인 신도(神都), 다시 말하면 정신 수도(首都)의 근거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주역선해≫ 제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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