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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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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진채지액(陳蔡之厄)


인생에서 가장 큰 곤액을 뜻하는 진채지액(陳蔡之厄)





[요약] (陳: 나라 진. 蔡: 나라 채. 之: 갈 지. 厄: 액 액)

공자(孔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당(當)한 봉변(逢變)

[출전]《사기(史記) 卷047 공자세가(孔子世家)》




[내용] 이 성어는 기원전 489년 주유열국(周遊列國)하던 공자(孔子)가 섭(葉)나라와 채(蔡)나라를 거쳐 진(陳)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 당한 고통에서 유래한다.



사기(史記) 卷047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는 그 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공자가 채나라로 옮긴 지 삼년이 되던 해에 오(吳)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는 진나라를 구하려고 성보(城父)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의 사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초나라는 사람을 보내 공자를 초빙했다. 공자가 예를 갖추려고 하자, ls나라와 채나라의 대부들이 의논하여 말했다.

“공자는 어진 사람이니 그가 풍자하고 비판하는 바는 모두 제후들의 병폐에 들어맞을 것이다. 지금은 오랫동안 그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머물렀으니, 여러 대부들이 시행한 행동들은 모두 공자의 뜻에 맞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초나라는 큰 나라인데 공자를 초빙하려고 한다. 공자가 초나라에 등용되면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일하는 대부들은 위험해 질 것이다.”

이에 그들은 서로 제각각 노역자들을 보내어서 들판에서 공자를 포위했다. 이에 공자는 초나라로 가지 못하고 식량마저 떨어졌다. 시종하는 자들은 병들어 잘 일어서지도 못했다. 그러나 공자는 강독하고 시를 읽고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 부르는 것이 쇠하지 않았다.

자로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군자도 이처럼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곤궁해도 절개를 지키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분에 넘치게 된다.”[생략]

孔子遷于蔡三歲,吳伐陳。楚救陳,軍于城父。聞孔子在陳蔡之間,楚使人聘孔子。孔子將往拜禮,陳蔡大夫謀曰:「孔子賢者,所刺譏皆中諸侯之疾。今者久留陳蔡之間,諸大夫所設行皆非仲尼之意。今楚,大國也,來聘孔子。孔子用於楚,則陳蔡用事大夫危矣。」於是乃相與發徒役圍孔子於野。不得行,絕糧。從者病,莫能興。孔子講誦弦歌不衰。子路慍見曰:「君子亦有窮乎?」孔子曰:「君子固窮,小人窮斯濫矣。」

史記/卷047 孔子世家



[이하 국제신문. 동아대 철학과 강사 황태현의 고전 속 성어에서 인용]



공자의 일생 중 가장 힘들었던 이때를 진채지액(陳蔡之厄)이라고 부른다. 후인들이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공자가 포위돼 거문고를 타며 노래했던 곳을 현가대(弦歌臺)라 이름하고, 여행 중에 어려움을 당하거나 인생의 어려운 때를 일러 진채지액(陳蔡之厄)이라 표현한다.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편에는 “진나라에서 곡식이 끊어지니 따르는 자들이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였다. 자로(子路)가 화가 나서 공자를 뵙고 여쭙기를 ‘군자도 가난한 때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공자께서 ‘군자는 가난에도 굳건하지만 소인은 가난하면 함부로 군다.(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 君子亦有窮乎 子曰 :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고 자로를 나무라신다.

또 선진(先進)편에서 공자는 “나를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따르던 이들은 문하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구나.”하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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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여의도 서당



衛靈公은 <論語>에 두 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관계된 장이 꽤 많아서 이 靈公을 제대로 알아야 <論語> 읽기가 제대로 될 수 있을 정도다. 孔子가 周遊天下할 때도 衛나라를 숱하게 드나들었다. 憲問편 26장과 衛靈公편 6장에 나오는 籧伯玉, 公冶長편 14장과 憲問편 20장에 나오는 公文子(仲叔圉라고도 한다)와 雍也편 26장에 나오는 南子, 衛靈公편 6장에 나오는 史魚, 雍也편 14장에 나오는 宋朝, 영공 자신이 나오는 憲問편 20장과 본편 1장, 八佾편 13장과 헌문편 20장에 나오는 王孫賈, 雍也편 20장과 憲問편 20장에 나오는 祝駝 등이 모두 영공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한편 實名이 아닌 衛君으로만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述而편 14장과 子路편 3장이다. 여기 나오는 위군은 각 장의 해설에서도 설명했듯이 衛靈公의 손자인 出公 輒이다. 이 비운의 인물은 자기 아버지와 기나긴 왕권 다툼을 벌이게 되는데, 이 모든 사건의 端初는 물론 不敏한 영주 위령공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고로 모난 놈들은 命이 길다고, 위령공은 在位 기간만 42년이나 되는 長壽한 임금이었다. 하기야 <論語>에 몇 번 등장하는 또 다른 임금 齊나라의 景公(흔히 齊景公이라고 한다.)은 재위 기간이 무려 58년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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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함이 없이 다스리신 분은 舜임금이실 것이다. 무엇을 하셨는가? 몸을 삼가하고 南面을 하였을 뿐이었다."



無爲而治者, 聖人德盛而民化, 不待其有所作爲也. 獨稱舜者, 紹堯之後, 而又得人以任衆職, 故尤不見其有爲之跡也. 恭己者, 聖人敬德之容. 旣無所爲, 則人之所見如此而已.

無爲로 다스렸다는 것은 聖人의 德이 융성함에 백성이 저절로 교화되어, 作爲하는 바가 있기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유독 舜임금만을 일컬은 것은 堯임금의 뒤를 이었고, 또 인재를 얻어 여러 직책을 맡겼기 때문에 더욱 有爲의 자취를 볼 수 없어서이다. 몸을 공손히 한다는 것은, 聖人의 敬德의 모양이니, 이미 作爲하는 바가 없으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을 뿐이다.



<해설> 여의도 서당



사람들은 이 장에 나오는 '無爲'를 보고 의아해할 것이다. 무위, 즉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천하를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道家의 중심 사상이 아닌가. 실제로 老子의 <道德經(흔히 <老子> 또는 <老子道德經>)>이라고도 한다. '爲無爲 則無不治(함이 없음으로 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글이 있다. 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요, 조금도 간섭하지 않음이요, 자연 그대로 人爲를 가하지 않음을 뜻한다.

<도덕경>에는 이렇듯 無爲라는 말이 숱하게 나온다. 이러한 道家的 사상이 <論語> 속에 보이는 것은 바로 <論語>의 생명력과 더불어 포용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論語>는 시대와 함께 성장하여 후대에 나온 사상들도 받아들여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다. <論語>는 단지 孔子가 생존했던 시대에 나온 사상과 생활과 관습만을 담은 책이 절대 아닌 것이다.

'몸을 삼가고 단지 남쪽만 향했다'는 것은 훌륭한 인재를 適材適所에 잘 앉혔다는 舜임금의 덕을 칭송한 것이다. 윗사람이 禮를 좋아하면 아랫사람 부리기가 쉽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子路편 4장, 憲問편 43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같이 각부의 장관을 자주 바꾸는 실정에서 한번 되새겨 볼 대목이 아닌가 싶다. 지도자가 기분 내키는 대로 정치를 하든, 머리가 나쁘든, 건강이 좋지 않건 국민들은 알 바 아니다. 한번 임명한 장관이 오래해서 일관성 있는 정책, 소신 있는 정책을 펼쳐주길 바랄 뿐이다. 그게 바로 民生을 편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바로 '無爲之治'를 하지 않고, '有爲之治'를 하려고 해서 탈이다. 그것도 지나칠 정도의 '有爲之治'를 하려고 안달이다.

우리 민족의 불행은 바로 이 指導者를 잘못 만나고 있는데 있다. 역대 대통령 치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과연 있기는 한가? 지나고 나면 그저 욕이나 얻어먹는 게 우리네 대통령의 서글픈 신세였다. 그리고 그런 서글픈 운명을 다 자기네들이 만들어냈다. 因果應報인 셈이다. 그러니 쫓겨나고, 총 맞아 죽고, 감옥 가고, 계란세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하긴 또 그런 인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이 바로 우리 국민들 아닌가. 그게 바로 우리네 民度가 아닌가.



孔子가 <論語>에서 순임금의 덕을 칭송한 대목은 泰伯편 18장, 20장, 顔淵편 22장 등이다. 泰伯편 20장에는 '舜有臣五人而天下治(순임금이 다섯 사람의 신하를 두고 천하를 다스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장관의 숫자가 많다고, 끊임없이 갈아치운다고 能事가 아니다.


<孔子家語>의 困誓편에 史魚에 관한 故事가 실려 있다. <論語>에 사어가 이 장에 한번 등장하는 터라 이런 고사는 아주 유용하다.

衛나라의 籧伯玉은 어진 인재인데 靈公은 그를 등용하지 않았고, 도리어 소인인 彌子瑕를 신임했다. 史魚는 이 점을 영공에게 諫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어가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그는 臨終때 아들에게 유언했다.

"내가 위나라 조정에서 거백옥을 내세우고 미자하를 물리치는 일을 못했으니, 이것은 내가 신하 노릇을 하면서 임금을 바로잡지 못한 큰 죄이다. 살아서 임금을 바로잡지 못했다면 죽어서도 예법대로 장사지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죽거든 시체를 창문 밑에 두고 殯所도 마련하지 말라."



그 아들이 유언을 거역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장사를 치렀다. 영공이 弔問하러 갔다가 괴이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다. 사어의 아들은 아비의 유언을 영공에게 고하고 울뿐이었다. 그제야 영공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내 빈소를 제대로 설치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거백옥을 등용하고 미자하를 물리쳤다. 孔子가 이 소문을 듣고 말했다.

"옛날부터 임금에게 간하는 자 여럿이 있었지만 죽은 뒤에는 그만이었다. 그런데 사어는 죽어 시체가 되어서까지도 오히려 그 임금을 감동하게 했으니, 참으로 곧은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이것이 이른바 사어의 屍諫으로 孔子를 그토록 탄복하게 한 것이다.



六本편에서는 孔子가 '史鰌에게는 군자의 도가 세 가지 있으니 벼슬을 하지 않고서도 윗사람을 공경하며, 제사를 지내지 않고서도 귀신을 공경하며, 자기 몸을 바르게 하고 남에게는 굽힐 줄을 아는 것 등이다.'라고 한 대목이 나온다.



한 가지 걱정인 것은 <孔子家語>에 실린 故事와 기사들이 다 믿을 만한가의 여부다. 같은 책 내에서도 이름도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시대 배경도 다른 경우가 있고, 나라도 이랬다저랬다 하고, 孔子의 말도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이러니 이 책을 '僞書'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 않았던가.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慧眼을 가지고 인용할 것은 인용하고, 과감히 뺄 것은 빼고, 異論이 있는 부분은 정리를 해야 한다. <論語>를 읽는데 <공자가어>이상으로 많은 도움을 주는 書物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책을 잘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

한편, 거백옥에 관한 기사는 <左傳>에 나오는데, 憲問편 26장의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거백옥 역시 <論語>에 두 번밖에 나오지 않아서 이 역시 유용하다. 거백옥의 처세는 한층 더 군자다워서 孔子는 위나라에 두 번째 갔을 때는 거백옥의 집에 손님으로 머물렀으며, 거백옥은 孔子가 위나라에서 뜻을 이룰 기회를 얻어 주기 위해 힘쓰기도 했다.

당시 위나라에서는 영공의 부인 南子의 淫行이 원인이 되어 謀反도 일어나서 조정이 어지러울 때였다. 이러한 와중에 用舍行藏(세상에 쓰일 때는 나아가서 자기의 도를 행하고, 쓰이지 아니할 때는 물러나 숨음)의 처세에 잘못 없이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거백옥은 언제나 그 올바른 節度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孔子가 사어와 함께 거백옥을 칭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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