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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종교의 출발점 기초자료) 종교와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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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환상
글쓴이 소나무    


* 당신은 종교가 위대한(가장 고귀한 가치와 윤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사기집단이라는 생각을 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프로이트에 의하면 종교는 심리적 현상이며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됩니다. 실제로 특정한 약초를 사용하면 종교경험과 유사한 신들림과 황홀경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사람은 최면에 걸리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종교가 다만 심리적 현상일 뿐이라는 주장에 얼마만큼 동의할 수 있습니까?

만일 종교가 심리적 현상이고 환상이라면 예수나 붓다는 ‘위대한 사기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종교들이 있고 종교인들은 제각기 상이한 이미지의 신앙대상을 가지고 있으며 제각기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고 믿고 있는데, 이런 사실과 ‘종교는 심리적 현상’이라는 주장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종교인에게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매저키즘적인 심리경향(신은 위대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여류감독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1994)라는 영화가 던져주었던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 영화는 흔히 여성의 자아인식을 천착한 페미니즘 영화로 평가됩니다. 주인공 에이다는 벙어리입니다. 원치않는 재혼을 하게 된 그녀의 이삿짐 가운데에는 피아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피아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스튜어트는 바닷가에 피아노를 버리고 갑니다. 에이다의 마음은 그녀의 피아노를 인정해 주는 베인즈에게로 기울어졌고, 남편은 이런 에이다의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 내고 맙니다. 이제 베인즈와 함께 섬을 떠나는 에이다는 피아노를 바다 속에 던져 넣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도 피아노와 함께 자기 몸을 던집니다.

그러나 결국 삶을 선택한 그녀는 밤마다 바다밑 무덤 속의 피아노를 생각하면서 그 피아노 위에 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여기서 <피아노>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녀가 기대어 삶을 영위하는 환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없이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그런 환상이지요.



  우리 모두는 이런 환상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종교라는 <피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를 환상이라고 말할 때 그 환상은 반드시 오류나 망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를 심리적 현상 혹은 환상으로 환원시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은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파악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한가지 더 유의할 점은 프로이트의 종교비판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유대-기독교 전통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입장을 동양종교 전반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종교일반의 관계에 대해 프로이트가 던져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ꡔ토템과 타부ꡕ(1913), ꡔ환상의 미래ꡕ(1927) 등에서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종교란 원래 외부의 자연세계가 내뿜는 온갖 위험에 대처할 수 없었던 원시고대인의 절망감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 앞에 무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원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에 아버지의 성격을 부여하고 자연력을 신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물론 동양적 사유전통에서 자연은 대체로 모성적 성격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프로이트의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아버지 콤플렉스는 어디까지나 서구적인 맥락(특히 사막 혹은 유목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인류의 원시시대는 인간의 유아기에 비견되는데,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위험과 마주치게 될 때 유아시절의 경험을 기억하여 거기로 퇴행합니다. 이 유아시절의 경험이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뛰어난 지혜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 아버지에 의해 보호받았던 경험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는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가 금하는 것을 어기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인데, 종교는 이런 유아시절의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서, 유아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강박신경증과 유사한 일종의 집단신경증 곧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집단적 신경증으로서의 종교를 <문명의 환상>이라는 말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명이란 쾌락원칙에 따르는 리비도 혹은 본능을 자제하고 현실원칙에 따르는 노동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런 문명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본능을 자제하고 리비도의 에너지를 노동력으로 승화시키는 데에는 강제와 억압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명은 사람들의 저항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한 메카니즘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종교란 바로 이와 같은 문명의 방어수단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프로이트는 문명의 정신적 목록 중에서 종교를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꼽고 있습니다. 종교를 <문명의 환상>이라고 말할 때는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요컨대 프로이트는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말하는 아버지 하나님이란 실은 유아기적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종교는 이런 유치한 본능을 마치 성스러운 것인양 만들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종교는 사람들이 환상을 믿도록 교화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간지성의 빈곤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 주변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더 악착같이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사회생활을 하는 자가 교회장로라느니 열성적인 불교신자라느니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상 종교지도자들은 거의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편승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상식적인 눈으로 어떻게 종교인이 저럴 수 있을까 의아스럽게 생각하겠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종교적 신앙과 현실적 삶 사이에서 발견되는 이와 같은 괴리는 종교가 지닌 환상적 측면을 방증하는 자료가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 하나의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만 자기보다 더 큰 힘에 의한 보호와 안전을 찾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일 경우, 이는 정신분석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신경쇠약의 한 증세일 뿐입니다. 종교가 집단적 유아신경증이라면, 역으로 신경증은 사적 형태의 종교라 할 수 있지요.

우리는 주변에서 인간적 성숙과 완성을 이루는 데에 실패한 사람이 어떤 한가지 종류의 신경증을 나타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가령 지극히 신경질적이 되거나 혹은 어떤 일정한 패턴의 행동을 반복한다거나 지나칠 정도의 결벽증세를 보이거나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습관적으로 교회나 절에 가고 한 번이라도 종교의례를 거르면 불안해하는 사람에 대해 정신분석학자는 신경증이라는 진단을 내릴 것입니다. 요컨대 종교와 신경증은 대단히 유사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종교가 신경증과 유사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헌신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사람들은 그것이 아무리 비합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 속의 개인들은 집단과의 일체감을 얻어 어느 정도의 안도감과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가령 빨간불도 여러 명이 같이 지나가면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종교라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요?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역사를 보라. 얼마나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기독교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가? 그들의 신앙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역사를 바꾸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그들은 종종 기독교에 대한 일체의 비판적 사고를 닫아 버립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다만 자기합리화를 위한 암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기독교인들은 십자군 전쟁의 비합리성,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도덕성, 마녀사냥의 잔인성,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증오심에 기반을 두고 저질러진 홀로코스트, 근대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도왔던 기독교교회의 왜곡된 우월의식 등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들여다 보기를 꺼려합니다.

종교에 내포된 이런 이중성은 비단 기독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 대해 우리는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거의 모든 제도종교는 세속권력과 타협함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신장시켜 왔고, 일상생활에서의 사랑과 겸손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경직된 교리에만 얽매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요컨대 집단적 권력이 내뿜는 마력이 모든 비합리적인 요소를 정당화시켜 온 것입니다.



  이상에서 집단의 차원을 생각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개인의 차원에서 종교의 비합리적 측면을 은폐하려는 경향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매저키즘적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신학자들이나 종교인들은 흔히 신에 대한 복종,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자각과 무력감, 피조물로서의 허무의식 등을 종교경험의 핵심으로 지적하곤 합니다.

이 때 신이 완벽해지면 질수록 인간은 상대적으로 더 불완전해지게 마련입니다. 이윽고 신만이 모든 사랑과 지혜와 정의와 힘을 가지게 되며 인간은 그야말로 앙상한 뼈만 남은 공허하고 궁색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처음에 인간은 자신의 왜소함과 무력함을 해소하고자 신을 생각해 냈는데, 이제는 인간이 자기의 모든 힘을 신에게 다 투사함으로써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기자신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신을 통한 길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신에 대한 투사로 인해 잃어버린 자기자신과의 만남이 오직 신에 대한 숭배와 복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낍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좋고 선하고 아름답고 힘있는 것은 모두 신에게 투사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다시 그런 것들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신의 자비와 은총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이 자신에 대해 가지는 이런 매저키즘적인 태도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감정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자율성의 확보, 자기 힘의 인식이야말로 종교경험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듯 싶습니다.



  이런 입장은 신프로이트 학파의 한사람으로 말해지는 에릭 프롬의 종교이해와 통합니다. 프롬이 볼 때 프로이트가 비판한 종교는 권위주의적 종교유형에 속한 것이 됩니다. 이에 비해 프롬은 휴머니즘적 종교유형을 제시합니다. 이 때 종교란 삶이 곧 하나의 문제라고 느끼는, 즉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이 대답해야만 하는 하나의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관심영역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독교인이니 불교인이니 하는 구분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지금 여기 있음’ 및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있음’과 관련하여 어떤 물음을 던지느냐 하는 데에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착실하게 교회의 모든 모임에 참석하고 십일조를 포함하여 각종 헌금을 꼬박꼬박 잘 낸다 하더라도 그의 관심이 언제나 ‘무엇’(건강, 행복, 물질적 축복, 출세 등등)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는 결코 종교적이라 할 수 없게 됩니다.

반면에 아무런 종교에도 소속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언제나 ‘왜’(나는 왜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가) 혹은 ‘어떻게’(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면 그는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신자라든가 불교신자 만이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종교신자>라는 것과 <종교적 인간>이라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되풀이 말하지만, <종교적 인간>에게는 삶 자체가 하나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에 있습니다. 그는 삶을 에워싸고 있는 실존적 양면성을 항상 느낍니다. 즉 그는 자신이 자유로우면서도 결정되어 있고 분열되어 있으면서도 통일되어 있고 알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무지한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고 느낍니다. 따라서 그의 생각과 행동은 이런 모순에 대한 최선의 해답을 찾으려는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최종적이고 유일한 답안이 영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 이외에 진정한 삶의 목적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싶어합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센서스 조사에 의하면 대략 전체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종교인으로 나타납니다. 대단한 비율이지요. 하지만 그 가운데 정말 종교적인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종교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관해, 종교와 신경증의 유사성, 문명의 자기방어 메카니즘으로서의 종교, 그리고 그런 종교의 비합리적 측면을 정당화시키는 집단의 마력 및 개인의 매저키즘적 태도를 중심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환상의 부정적인 그림자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적 태도로서 프롬의 휴머니즘적 종교이해를 소개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프로이트든 프롬이든 종교의 문제가 결국 신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문제로서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의 문제를 인간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다시 인간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자세는 한편으로 종교라는 담론에 내포된 신비주의의 영역을 희석화시킬 위험도 내포합니다. 프로이트의 수제자였다고도 할 수 있는 칼 구스타브 융은 이런 위험성에 누구보다도 민감했으며, 모든 것을 성적인 문제로 환원시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결별한 후 독자적인 분석심리학의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는 일체의 형이상학적 혹은 철학적인 고려없이, 다만 실제의 현상 그 자체에만 관여하는 현상학적 태도에서 종교를 분석했습니다. 가령 성모 마리아의 처녀수태가 과연 참이냐 거짓이냐는 융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성모 마리아의 처녀수태를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현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가집니다. 이런 태도는 종교학의 기본적인 입장과도 상통합니다.

그런데 이런 객관적 태도와 동시에 융은 실은 한사람의 신비주의자였다고 보입니다. 이는 무의식에 대한 이해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과학자이기를 고집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정신의 한 <부분>으로 보았습니다. 이에 비해 신비주의자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융은 인간정신의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 하나의 강력한 힘으로서 무의식을 이해했습니다.

이 때 무의식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종교현상이 됩니다. 융이 말하는 무의식은 프로이트식의 우리 안에 있는 나쁜 것, 억압된 것이 아니라, 계시의 원천이자 나아가 신적인 어떤 것의 상징으로 간주됩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아름다운 환상인 셈이지요.



  감정적인 자기주장이 강한 한국인들은 자칫하면 종교의 영역에서 자기신앙의 옳음을 인정받기 위해 타종교의 허위성을 증명하려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종교가 실은 어떤 방식으로든 환상의 측면을 내포한다는 지적에 귀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 앞서 살펴 본 프로이트, 프롬, 융은 제각기 종교라는 환상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관해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융은 비록 그것이 환상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의 명령에 그대로 따를 것을 권합니다. 그에 의하면 종교는 꿈과 마찬가지로 우리로 하여금 참된 자기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좋은 환상이 됩니다. 융은 이런 과정을 개성화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에 비해 프롬은 권위주의적 종교의 환상을 배격하고 그 대신 휴머니즘적 종교를 배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때 휴머니즘적 종교는 모든 권위로부터 해방된 자유인만이 이성의 힘을 사용하여 이 세계 및 세계 속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한편 프로이트는 종교를 일종의 병리현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인간이 이런 유아기적 고착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인류가 종교에 대한 지금까지의 태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고집한다면 문명이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만일 인간이 종교라는 환상을 포기한다면, 그리고 만일 인간이 이 우주에서 자신의 고독과 무의미함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고자 한다면, 그는 마치 의지할 데 없는 고아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부담을 안는 한이 있더라도, 종교라는 환상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발달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프로이트의 대안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어떤 대안이든 자기와는 다른 생각, 다른 신념, 다른 행동양식과 공존할 줄 아는 지혜가 무엇보다 먼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다음에야 어떤 대안이든 그것이 대안으로서의 효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피아노>에는 검은 건반도 있고 흰 건반도 있습니다. 그리고 건반들은 제각기 다른 음색과 음높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다름들의 공존으로부터 아름다운 하모니가 생겨난다는 사실이 아닐까요?<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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