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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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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오고대부 백리해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했다. 자기를 알아주는 진(秦) 목공(穆公)에 의해 등용되어 진이 춘추오패 중 한 나라가 되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백리해(百里奚)이다.



아내와의 이별



백리해는 나이 30이 다되도록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30이 돼서야 맞은 그의 처인 두씨(杜氏)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남자가 뜻을 두면 길은 천지사방에 열려 있다고 했사온데 서방님께오선 어찌 출사(出社)의 꿈을 접고 구구히 처자식을 지키느라 허송세월을 하고 계시옵니까? 한때의 곤란은 소첩이 기꺼이 이겨낼 것이오니 집안 걱정은 마시고 출사의 길을 찾으소서.”

백리해 부인 두씨는 하루하루 끼니 걱정에 시름을 덜 날이 없건만 아내는 지금까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갓 돌을 넘긴 아들을 등에 업고 날품을 팔면서도 미소와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전쟁이 끊이지 않은 험한 세상이고, 처 혼자 아기를 키울 수 없다면서 출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서방님이 존귀한 자리에 올라 높은 뜻을 펼치기를 바랬던 것이다.

부인 두씨는 남편과 굳게 약조를 하고, 어렵게 암탉 한 마리를 잡아 대접하였다. 그녀는 막상 불을 지필 나무가 없어 대문의 빗장을 뽑아 닭을 삶고 밥을 지었다고 한다.

“후일 귀하게 되더라도 소첩을 잊지 마소서.”

남편을 떠나 보낸 두씨는 길쌈과 날품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연명해 갔다. 두씨가 기다리는 남편 소식은 3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5년이 지났다. 고향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아들 시(視)를 데리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곳 저곳을 떠돌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근근이 주린 배를 채우고 아들을 키웠다. 그러면서도 남편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두었다.

“일일이 여삼추(如三秋)라 하더니, 벌써 십 년이 흘렀구나. 하늘이 무심치 않고 부부 인연이 변치 않는다면 언젠가는 서방님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또 몇 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전국시대 참혹한 병화의 말발굽에 차이며 그녀의 기약 없는 방랑생활은 계속됐다.



백리해의 인생유전

한편 아내와 작별한 백리해는 제(齊)나라에서 꿈을 펼치려 했으나 누구도 양공(襄公)에게 그를 천거하는 사람이 없어 나이 사십이 되도록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질(銍)이라는 곳에서 마침내 건숙(蹇叔)이라는 사람을 만나 결의형제(結義兄弟)를 맺고 머물러 살면서 소를 길러 호구하였다.

이어 주(周)의 왕자(王子) 퇴(頹)가 소를 기르는 자에게 봉록(俸祿)을 후하게 준다는 소문을 듣고 주나라로 가서 소를 길렀으나 이마저 왕자 퇴의 인물됨을 본 건숙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한때 처자 생각에 고향을 찾기도 했으나 아내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다시 아내를 찾아 천하를 떠돌던 그가 우여곡절 끝에 우공(虞公)의 천거를 받아 중대부(中大夫)가 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공이 나라를 진(晋)나라에 빼앗기게 되자 그는 진국(秦國)으로 시집가는 백희(伯姬)의 추종관에 임명됐다. 추종관이란 다른 나라로 시집가는 공주를 따라가 그 나라에 정착해 사는 관원이다. 백리해는 여자의 몸종이 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나를 알아주는 주인을 아직 만나지 못해 높은 뜻을 펼 수 없으니 한스럽기 그지없구나. 이제 다 늙어 추종관으로 내몰리니 일신의 욕됨이 어찌 가볍다 하리.”

결국 백리해는 백희를 호송하던 도중에 초(楚)나라로 도망쳤다. 진(秦)의 목공(穆公)이 추종자의 명단에 백리해의 이름만 올라 있고 사람이 보이지 않아 묻자, 공손지(公孫枝)가 대답했다.

“백리해는 현인이옵니다. 우공이 간할 수 없는 위인임을 알고 한번도 간하지 않았으니 지혜롭고, 우공을 따라 진(晋)에 갔으나 그의 신하가 되지 않았으니 충신입니다. 경세의 재주를 지녔으나 지금까지는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오니 그를 데려와 중용하시면 필시 나라의 근간을 세울 것입니다.”

그래서, 진 목공은 사자를 뽑아 숫양 가죽 다섯 장을 주어 지참하게 하고 초나라로 가서 초왕을 만나게 한다. 목공의 사자는 초왕에게 "백리해는 천한 몸종으로 초나라로 도망쳤으니 그 자를 잡아 죄를 주어 도망친 자들에 대한 경고로 삼고자 합니다. 이에 몸종 값인 숫양 가죽 다섯장을 몸값으로 하고 우리 나라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하고 말했다.

이에 백리해는 초나라에서 진나라로 향하게 되고 건숙과 함께 진나라에서 목공에게 등용되어 진나라가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한 나라가 되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이 일로 백리해는 오고대부(五羖大夫; 양 가죽 다섯 장에 사온 대부)라는 명칭으로도 불리우게 된다.


부인과의 상봉

백리해의 부인 두씨도 아들 시와 함께 천하를 정처 없이 떠돌다가 진나라에 들어왔다. 살림은 여전히 궁핍했다. 남의 빨래를 해주고 받은 대가로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장성한 아들 시는 사냥을 하고 씨름판에서 뒹굴면서 두씨의 속을 썩였다. 어느 날 두씨는 남편 백리해가 진나라 상국이 됐다는 소문을 들었다. 가슴이 뛰었다. 30년 만에 접한 남편의 소식에 빨래감을 팽개치고 남편을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두씨는 퇴궐 중인 백리해를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두씨는 그러나 남편이 앞을 지나자 고개를 숙여 피했다.

‘지금 이런 모습으로 서방님의 앞에 나타난다면 위명(威名)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이다. 이제야 때를 만나 높은 뜻을 펼치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두씨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에 대한 모든 것을 잊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들 시에게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궁궐에서 세탁부를 구한다는 방이 나붙었다. 두씨는 자원해 궁에 들어갔다. 상국이 된 남편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두씨는 열심히 빨래를 해서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던 남편의 모습을 대할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하루는 백리해가 당상(堂上, 대청위)에 앉아 있고, 악사들이 낭하(廊下;행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두씨가 보게 됐다. 두씨는 궁중의 하녀를 붙잡고 부탁했다.

“이 늙은이가 미천하지만 악(樂)에 대해 들은 바가 많으니 저 낭하에서 한 곡만 연주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오. 이 늙은이의 소원이오.”

하녀는 두씨를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에게 데려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악사는 두씨에게 물었다.

“당신이 배운 음악은 무엇인가?”

“거문고도 타고 노래도 좀 부릅니다.”

악사는 거문고를 내주며 두씨에게 한 곡 타보라고 했다. 두씨는 거문고를 안고 연주를 했다. 두씨의 연주는 청아한 가운데 격조가 있고, 깊은 애조까지 담겨 듣는 이들을 모두 심취시켰다. 그녀의 탄주에 감탄한 악사들이 이번에는 두씨에게 부탁했다.

“당신의 기예는 우리가 감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오. 내가 상국께 고할 것이니 당상에 올라 상국을 위해 노래를 한 곡 불러보지 않겠소?”

“그래 주시겠습니까!”

악사가 고하자 백리해는 허락했다. 두씨는 백리해가 앉아 있는 당상 뒤편에 고개를 숙이고 섰다. 가까이서 남편 모습을 대하자 30년을 기다려온 인고의 세월이 격정과 증오로 뒤섞여 눈물을 자아냈다. 백리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해를 보며 나직이 탄식하는 소리가 두씨의 귀에 들려왔다.

“30년, 각고의 노력 끝에 상국의 자리에 올랐으나 헤어진 처자식을 아직 찾지 못했으니 진정 안타까운 일이로다. 이렇게 당상의 자리에 앉아 있으나 가시방석이요, 산해진미가 좁쌀밥만 못하구나.”

두씨는 목이 메었다. 남편은 30년 전의 약조를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시름에 젖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작별할 때 알을 품은 암탉을 잡아 빗장으로 불을 지펴 삶고 끓여 눈물로 상을 차렸소. 오늘날 상국의 자리에 오르니 그때의 일을 정녕 잊으셨는가? 아버지는 산해진미로 배부르나 아들은 굶주리고, 지아비는 비단옷을 자랑하나 아내는 궁중에서 빨래를 한다네. 아서라, 지키지 못한 그날의 맹세가 허망스레 잦는구나.”

노래를 듣던 백리해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노래의 가사가 자신이 부인과 이별하던 그때를 그리고 있지 않는가? 백리해는 노래를 부르는 두씨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구며 노래를 부르는 노파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부둥켜안으며 섧게 울었다.  


목공은 훗날 백리해가 처자식과 상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좁쌀 천 종(鍾)과 금백 한 차를 선물로 하사했다. 또한 활쏘기와 사냥으로 무예를 연마한 백리해의 아들 시를 군의 대부로 삼았다. 시는 타고난 용맹과 뛰어난 무예로 연이어 타국을 정벌한 공로가 인정돼 장군이 되었으며, 서걸술(西乞術), 건병(蹇丙)과 더불어 진나라의 삼수(三帥)로 이름을 드높였다.

이 모두 오로지 남편의 입신양명을 위해 반평생을 헌신한 두씨가 온몸으로 일궈낸 값진 영화가 아니랴.

한편,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이사열전(李斯列傳)’에 보면 ‘간축객서(諫逐客書)’라는 명문이 있다. 이는 진시황(秦始皇)을 도와 중국 최초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인 초나라 출신의 이사(李斯)가 자신이 추방될 위기에서 진왕에게 간언하기 위해 쓴 상소문인데, 여기에 백리해의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목공(穆公)은 선비들을 구함에 있어 서쪽으로는 융 땅에서 유여(由余)를 구하였고, 동쪽으로는 완 땅에서 백리해(百里奚)를 얻었으며, 송나라에서는 건숙(蹇叔)을 맞아들였고, 진나라에서는 비표(丕豹)와 공손지(公孫支)를 구하였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나라에서 나지 않았지만 목공은 그들을 등용하여 이십국을 합병하였고, 마침내 서융을 제패하였습니다. (…) 태산(泰山)은 한 줌의 흙도 양보하지 않아 저렇게 커졌으며 하해(河海)는 한 줄기 세류(細流)도 가리지 않아 저렇게 깊어졌습니다.”

요즘에는 정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널리 등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백리해의 예를 자주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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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맹자왈, 순임금은 밭농사를 하다 부름을 받았고, 부열은 공사판 출신이고, 교격은 생선과 소금장수 출신이고, 관이오는 옥리에게 붙잡혀 있다가 등용됐고, 손숙오는 어촌 출신이고, 백리해는 시정 출신이다.
  하늘이 사람들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그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몸을 아프게 하고, 굶주리게 하고, 가진 것이 없게 하고, 실패하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발하게 하고, 인내심을 기르게 해 그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길러준다. 사람은 실수한 뒤에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고민과 번뇌가 얼굴에 나타난 뒤에야 문제해결 방법을 깨닫게 된다.

사마천: 장군엄마가 애들에게 맹자를 읽어주고 있군요. 근데 맹자에 나오는 백리해는 오늘 들려줄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이랍니다. 원래 우(虞)나라 사람이었는데, 진(秦)나라 목공을 도와 진이 크게 세력을 떨치는 데 기여하게 되지요.
  백리해 역시 강태공과 마찬가지로 가난 속에서도 책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 부인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다. 어느 날 백리해의 부인은 씨암탉을 잡았지요. 그리고 땔감이 없어 문빗장을 떼어내 불을 피워 닭을 삶았답니다. 부인은 닭요리로 상을 차린 뒤 그길로 가출해버렸지요.
  그러나 고진감래였답니다. 백리해가 과거에 떡 하니 붙어 높은 벼슬을 하게 됐지요. 그리고는 어느 고을로 행차하게 됐답니다. 백리해의 부인은 남편의 급제 소식을 듣고는 남편이 행차한 마을로 부리나케 달려갔지요. 그리고는 백리해가 지나는 길목에 지키고 앉아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를 불렀답니다. “문빗장을 뜯어내 씨암탉을 삶아드린 일을 기억하시나요? 우리 둘이 다정히 손잡고 부귀영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게 어떨까요?” 백리해는 지나가며 부인의 노래를 들은 뒤 잠시 멈칫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등을 돌려 혼자만의 길을 재촉했지요.

엄마: ㅋㅋ 아니, 도망간 마누라들이 왜 그렇게 많아요? 강태공과 백리해도 그렇지, 젊은 시절 고생을 함께 한 조강지처의 잘못을 살짝 눈감아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사마천: 글쎄,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 생각은 안 그런가보죠? ^^ 아무래도 출세하면 예쁜 여자들이 줄줄이 따랐을 텐데, 그래서 늙은 조강지처의 애원을 모른 척했나? 에이, 나도 잘 모르겠네. 하던 얘기나 계속 합시다.
  백리해는 과거급제 이후 승승장구해 대부가 됐답니다. 그러나 백리해의 고국인 우나라가 진(晉)나라에 멸망당했지요. 진(晉)나라에서는 높은 학식으로 명성을 떨치던 백리해를 진(秦)나라 목공에게 시집가는 공주의 하인으로 삼아 진(秦)나라로 보내게 됐답니다. 그러나 백리해는 도중에 도망쳐 완(宛)지방에 숨었지요.
  백리해의 명성을 들은 적이 있는 진(秦)나라 목공은 백리해를 어떻게 해서든 자기 밑에 두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큰돈을 써서라도 백리해를 찾아내고 싶었지요. 그러나 그럴 경우 완지방 사람들이 더 큰 돈을 벌 욕심으로 백리해를 돌려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작전을 바꿨답니다. “나의 하인 백리해가 그대들 땅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소. 다섯 마리의 양가죽을 드릴 테니 내 하인과 교환합시다.” 완 사람들은 백리해가 다섯 마리의 양가죽 가치밖에 안 되는 하찮은 인물이라고 생각해 얼른 목공의 제안을 받아들였지요. 이로 인해 백리해는 오고대부(五 羊+殳 大夫)라 불리게 됐답니다.
  목공은 백리해를 알현한 뒤 국정을 맡아줄 것을 당부했지요. 그러나 백리해는 망국의 신하로서 중책을 감당할 수 없다며 자신의 친구인 건숙을 목공에게 추천했답니다. 목공은 즉시 건숙을 불러 들여 상대부(上大夫)에 임명했지요. 그리고 백리해에게도 국정을 맡겼답니다. 당시 백리해의 나이는 일흔이었지요. 목공은 자신이 백리해를 너무 늦게 얻었다면 한탄했답니다. 그러자 백리해는 말했지요. “새를 잡거나 맹수와 싸우기에는 너무 늙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계획을 세우는 일이라면 아직도 젊습니다.”
  
사마천: 진(秦)나라 목공의 처가인 진(晉)나라에서는 헌공의 애첩 여희의 음모로 목공의 처남인 태자 신생이 자살하고, 중이와 이오도 외국으로 망명하게 됐단다. 막내처남인 이오는 매형인 목공을 찾아가 귀국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지. 목공은 그 청을 받아들여 군사를 동원해 이오를 도왔단다. 이오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감사의 뜻으로 여덟 성을 바치겠다고 말했단다. 그러나 이오는 진(晉)왕이 된 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단다. 또한 여희 일파를 제거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극을 제거해버렸지. 이에 따라 진(晉)의 백성들 사이에선 이오에 대한 여론이 나빠졌단다.
  그러던 중 진(晉)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단다. 진(晉)나라는 이웃 진(秦)나라에 양식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지. 목공은 신하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었단다. 그러자 이오를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던 진(秦)의 신하들은 식량 원조를 반대했단다. 단지 백리해만이 “이오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죄가 없습니다.”라며 식량 원조를 지지했단다. 목공은 백리해의 말을 받아들여 진(晉)에 대량으로 양식을 지원했지.
  이 년 뒤 거꾸로 진(秦)나라에 흉년이 발생했단다. 목공은 진(晉)에 식량을 요청했지. 그러나 이오는 또다시 은혜를 원수로 갚았단다. 식량을 지원해주기는커녕 위기에 빠진 진(秦)을 공격했지. 이에 따라 처남 매부지간인 이오와 목공은 한원에서 한판 전투를 벌였단다. 목공은 이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 포위망에 갇히게 됐단다. 그런데 포위망을 뚫고 용감하게 목공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병사들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단다.
  몇 년 전 목공의 애마가 달아난 적이 있었지. 기산에 자리 잡은 건달 3백여 명이 목공의 애마를 잡아먹었단다. 신하들은 그 건달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러나 목공은 “군자는 짐승을 죽였다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말고기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에 해롭다고 하던데?”라고 말하며 오히려 건달들에게 술을 하사했단다. 그런데 진(晉)과의 전투에서 위기에 빠진 목공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포위망을 뚫은 병사들은 바로 예전에 목공의 애마를 잡아먹었던 그 건달들이었단다.
  목공은 건달들 덕분에 목숨을 건진 뒤 전투에서도 승리했단다. 그리고 이오를 생포했지. 그런데 이오의 누나인 목공의 부인이 자신의 동생을 살려줄 것을 간청해 이오를 풀어줬단다. 대신 이오의 태자를 인질로 붙잡게 되지. 그런데 이 태자가 도망쳐 귀국한 뒤 아버지인 이오를 이어 진(晉)왕이 됐단다. 목공은 이 일로 인해 잔뜩 화가 나게 되지. 그래서 때마침 진(秦)나라로 망명지를 옮긴 둘째 처남 중이가 진(晉)왕이 되는 것을 돕게 되지. 중이는 진 문공이 돼 어진 정치를 펴게 된단다.
  목공 32년 진(秦)나라는 정나라 정벌에 나섰단다. 그러나 건숙과 백리해 두 신하는 먼 나라를 공격해 승리를 거둔 예가 없다며 정나라 공격에 반대했지. 목공은 두 사람의 의견을 묵살하고 백리해의 아들 맹명시와 건숙의 아들 서걸술을 장수로 임명해 원정에 나서게 됐단다. 건숙과 백리해는 아들들의 출정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단다. 그리고는 아들들을 조용히 불러 말했지. “만약 너희들이 패한다면 그곳은 효산 골짜기가 될 것이다.”
  한편 효고라는 정나라 상인이 소 12마리를 끌고 가던 도중 자신의 나라를 치러 가는 진나라 군사들을 보게 됐단다. 효고는 얼른 자기 나라에 사람을 보내 진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린 뒤 꾀를 내 자신의 소 12마리를 진나라 군대에 바치면서 말했단다. “정나라 군주께서 원정길에 오른 진나라 군사들을 위로하라며 이 소들을 내주셨습니다.” 그러자 진나라 장수들은 자신들의 공격 계획이 탄로났음을 알고 정나라 공격을 중단하게 됐단다. 그리고 약소국인 활나라 정복에 만족해야 했지. 꿩 대신 닭을 잡은 거란다.
  그런데 활나라는 진(晉)의 속국이었단다. 문공(중이) 사후 진(晉)왕이 된 양공은 아버지의 상중에 속국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해 효산 골짜기에 군사를 매복시킨 뒤 진(秦)군이 나타나자 모조리 쳐부수게 됐지. 백리해와 건숙의 예언이 맞아떨어졌단다.
  효산 골짜기의 패배 이후 오랑캐족인 융나라의 사신 유여(由余)가 진(秦)나라를 방문했단다. 목공은 자국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유여에게 금은보화를 꺼내보였지. 그러나 이를 본 유여가 말했단다. “만약 귀신이 이것들을 만들었다면 틀림없이 귀신도 지쳤을 것입니다. 만약 백성들이 만들었다면 백성들이 큰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유여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여긴 목공은 물었단다. “중원의 나라들은 시서(詩書), 예악(禮樂), 법도(法度)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지만 소란이 그치지 않소. 귀국에서는 이렇다 할 통치기준이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고 있소?”
  그러자 유여는 말했단다. “중원이 어지러운 것은 법도를 과신하기 때문입니다. 융나라에서는 통치자가 법도가 아닌 덕으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이는 성인(聖人)의 정치라고 할 것입니다.”
  유여의 말을 들은 목공은 유여 같은 훌륭한 신하를 둔 융나라가 두려워졌단다. 그래서 신하들을 불러 계책을 상의하게 됐지. 신하들은 미녀 가무단을 보내 융왕의 혼을 빼놓자고 제안했단다. 그리고 그 계책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유여가 귀국해서 보니 융왕은 정사는 뒤로 한 채 미녀 가무단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단다. 때마침 진 목공은 유여를 다시 진나라로 초청했단다. 자기 나라의 현실에 크게 실망한 유여는 진나라로 망명하게 되지. 그리고는 진나라의 융나라 토벌을 도와주게 된단다.
  융나라를 치러 나선 진 목공은 효산 골짜기를 지나면서 예전 진(晉)나라와의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거두어 매장했단다. 그리고 병사들 앞에서 자신이 건숙과 백리해 두 나이 많은 신하들의 의견을 묵살해 수많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과오를 인정했단다. 병사들은 목공의 말을 들으며 모두 눈물을 흘렸지.
  목공은 재위 39년 되던 해 세상을 떴단다. 그러자 목공의 뒤를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하의 수가 177명에 이르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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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義兄) 건숙(蹇叔)을 진목공에게 천거하는 백리해




진목공은 백리해가 재주가 매우 출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상경(上卿)의 직에 제수하려고 하였다. 백리해가 사양하면서 말했다.




" 신의 재주는 신의 의형(義兄)인 건숙(蹇叔)에 비해 그 십분의 일도 못 미칠 것입니다. 군주께서 만약 나라를 다스려 부강하게 만드시고자 하신다면 건숙을

청해 상경에 임명하시고 저로 하여금 그를 돕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




목공 " 선생의 재주는 내가 보았으니 알겠으나 건숙의 현명함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




백리해 " 건숙의 현명함은 어찌 유독 군주께서만 모르신다고 하겠습니까? 비록 그가 살았었던 제나라나 지금 살고있는 송나라조차도 역시 그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혜로운 선비라는 사실은 저 혼자만이 알고 있는 일입니다. 신이 옛날에 제나라로 벼슬을 구하러 갔을 때 제나라의 공자 무지(無知)에게 출사하려고 하던 것을 건숙(蹇叔)이 신에게 불가하다고 제지하였습니다. 그래서 건숙의 말을 따라 신은 제나라를 떠나게 되어 결국 공자무지가 당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주 나라로 가서 왕자퇴(王子頹)를 모시려고 했으나 역시 건숙이 제지하여 다시 주나라에서 출사하지 않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후에 왕자퇴가 반란을 일으켜 혜왕에게 토벌 당하여 도주하다가 살해당했는데 신이 건숙의 말을 듣고 주나라를 떠났기 때문에 왕자퇴가 당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주나라를 떠난 신이 우(虞)나라에 가서 우공(虞公)에게 출사하려고 하자 건숙이 또다시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때 신이 너무 빈한한 처지에 있어 건숙의 말을 듣지 않고 작록(爵祿)을 탐하여 우공에게 출사했다가 우나라가 당진국(唐晉國)에 망하게 되어 신은 그 나라의 포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신이 건숙의 말을 두 번 들어 화를 면하게 되었고 한번 그의 말을 듣지 않아 몸을 망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지혜가 중인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건숙은 송나라의 명록촌(鳴綠村)에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속히 사람을 보내어 데려와야 될 것입니다."




목공이 공자집(公子縶)을 상인으로 분장시키고 많은 폐백을 주어 송나라로 보내어 건숙을 모셔오도록 했다. 백리해가 별도로 자기 뜻을 편지에 써서 공자집에게 주었다. 공자집이 행장을 수습하여 송아지가 끄는 수레 두 대를 몰고 송나라의 명록촌을 향하여 출발했다. 송나라 경계를 통과하여 명록촌과 가까운 곳에 이르자 여러 사람들이 밭고랑 사이에서 밭을 갈다가 쉬면서 노래를 번갈아 가며 부르고 있었다.




山之高兮无(산지고혜무) 

산은 높은데 도와줄 사람은 없고




途之濘兮无燭 (도지영혜무촉)

길은 험한데 불빛 한점 없다




相將隴 上兮(상장농상혜)

서로 함께 밭고랑 사이에 앉아 있음이여




泉甘而土沃(천감이토옥)

샘물은 달고 땅은 기름지다




勤吾四體兮(근오사체혜)

사지를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分吾五谷(분오오곡)

나에게 오곡이 생겼구나




三時不害兮(삼시불해혜)

하루 삼시 때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餐飧足(찬손족)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樂此天命兮(락차천명혜)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无榮辱(무영욕)

영화도 없지만 욕됨도 없구나




공자집이 수레 안에서 그 소리를 듣고 그 노래 속에는 세속의 먼지가 묻지 않았음을 느끼고서는 수레를 모는 종자를 향하여 말했다.




" 옛날 말에 조그만 고을에도 군자가 있어 세상의 비속한 풍 습을 바르게 한다는 했는데 금일 건숙이 사는 동네에 이르니 밭을 가는 농부조차도 모두가 덕이 높은 처사의 풍도가 있으니 과연 그가 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구나."




공자집이 즉시 수레에서 내려 밭가는 농부들에게 길을 물었다.




" 건숙이 사는 집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농부 "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공자집 " 건숙선생의 옛날 친구 백리해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




농부 중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 앞으로 계속 길을 따라 가시면 대나무가 빽빽이 우거진 숲이 나오고 왼쪽에는 우물이 있고 오른쪽에는 큰 바위가 있는 중간에 초가집이 한 채 있을 것입니다. 그곳이 건숙선생이 사시는 곳입니다."




공자집이 두 손을 높이 올려 인사를 올린 후에 다시 수레에 올라타고 길을 반 리쯤 가니 농부가 말한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공자집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풍경이 과연 깊숙하고 아늑하였다. 은거하는 처사의 생활을 노래한 농서거사(隴西居士) 거사의 시가 있다.




翠竹林中景最幽(취죽림중경최유)

짓푸른 대나무 밭의 풍경은 깊은데




人生此樂更何求(인생차락경하구)

이렇듯 즐거운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서 다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數方白石堆云起(수방백석퇴운기)

사방에 쌓인 돌무더기 위에서 구름이 일고




一道淸泉接澗流(일도청천접간류)

길 가운데의 맑은 샘에서 흐르는 물은 바위 사이에 흐르는

실개천과 만나는 구나




得趣猿<犬+侯>堪共樂(득취원후감공락)

원숭이를 구하여 같이 노닐자 했더니




忘機(<鹿+米>鹿可同游(망기미록가동유)

때를 놓쳐 사슴과 같이 놀게 되었다.




紅塵一任漫天去(홍진일임만천거)

번거로운 세상 일을 던져버리고 한가롭게 지내니




高臥先生百不<心+憂>(고와선생백불우)

고와선생은 백살까지 살았구나.




공자집이 초가집 담장 밖에 수레를 멈추게 하고는 종자에게 사립문 앞에서 주인을 부르게 하였다. 조그만 동자 아이 하나가 집안에서 나오더니 물었다.




" 어디서 오신 손님이십니까?"




공자집 " 건숙(蹇叔)선생을 만나러 왔습니다."




동자 " 주인님께서는 지금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




공자집 "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동자 " 이웃의 노인 분들과 함께 석량(石梁)에 있는 샘물을 구경하러 가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돌아오실 것입니다."




공자집이 그 집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의 바위 위에 앉아서 기다렸다. 동자가 사립문을 반쯤 열어 놓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자 눈썹은 짙고 눈은 고리 모양처럼 동그랗게 생기고, 얼굴은 네모나며 키가 큰 대한이 등뒤에 사슴 넓적다리 두개를 지고 밭이랑 서쪽으로 난 길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자집이 그 사람의 용모가 범상치 않은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였다. 그 대한은 즉시 사슴 다리를 땅에 내려놓으면서 공자집에게 예를 올렸다. 공자집이 그 대한에게 성과 이름을 묻자 대한이 대답했다.




" 성은 건(蹇)이고 이름은 병(丙)입니다. 자(字)는 백을(白乙)입니다."




공자집 " 건숙이라는 분과 귀하는 어떤 사이인가요?"




대한 " 저의 부친이 되십니다. "




공자집이 건병(蹇丙)에게 다시 한번 예를 올리면서 말했다.




" 오랫동안 뵙기를 앙모하여 왔습니다. "




건병 " 귀하는 어떤 분이시기에 친히 이곳까지 왕림하셨습니 까?"




공자집 " 백리해라는 분이 지금 저희 섬진(陝秦)에서 벼슬을 살고 있는데 저에게 편지를 써서 주며 부친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건병 " 선생께서는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잠시 쉬시고 계시면 저희 부친께서는 조만 간에 돌아오실 것입니다. "




건병이 말을 마치자 사립문을 밀쳐 열고 공자집을 방안으로 청한 후 땅에 내려 논 사슴다리를 다시 등에 지고는 집안으로 옮겼다. 동자가 나와서 건병에게서 사슴다리를 받아들고는 부엌으로 날랐다. 건병이 방안으로 들어와 다시 공자집에게 예를 올리고 손님과 주인의 격식을 따져 자리에 앉았다. 공자집과 건병이 농사와 누에치는 일에 대해서 담론을 시작하여 무예에 대하여 논하게 되었다. 건병의 강론은 순서가 심히 정연하여 공자집이 마음속으로 칭찬하면서 생각했다.




"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니 정백이 추천한 것도 도리가 있는 일이었구나"




동자가 차를 가지고 들어오자 건병은 동자에게 그 부친이 오는지 문 앞에 나가서 기다리게 했다. 얼마 있지 않아 동자가 달려와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 노옹께서 돌아오십니다."




건숙과 이웃에 사는 노인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건숙의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수레 두 대가 서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말했다.




" 우리마을 같은 벽촌에 무슨 연고로 이와 같은 수레가 있는가?"




건병이 집밖으로 나와서 그 연고를 먼저 이야기했다. 건숙과 이웃의 노인 두 명이 같이 방으로 들어가 공자집과 상면하게 되었다. 건숙이 공자집과 예를 마치고 자리에 좌정하면서 말했다.




건숙 " 제 자식을 통해서 귀하께서 저의 아우 정백(井伯)의 편지를 전하기 위하여 오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져오신 편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공자집이 백리해의 서신을 꺼내어 건숙에게 전했다. 건숙이 편지의 봉함을 뜯고 읽었다.




' 해(奚)가 형의 충고를 듣지 않아 우(虞)나라에서 재난을 당했으나 다행히 섬진(陝秦)의 군주가 현사(賢士)를 좋아하여 소를 치는 노예의 신분에 있던 저를 속죄 시켜 섬진(陝秦)의 정사를 맡겼습니다. 해(奚)가 스스로 헤아려 본바 재주와 지혜가 형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형을 천거하여 섬진의 군주를 같이 모시려고 하였습니다. 진군이 형을 경모하기를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것 같이 하시어 대부 공자집(公子 )에게 폐백을 내려 형을 모셔오라고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대 빨리 출산(出山)하시어 평생에 펴보지 못한 뜻을 세상에 베풀기 바랍니다. 만약 형이 산림에 연연하여 세상으로 나오지 않으신다면 이 해(奚)도 섬진의 군주로부터 받은 작록을 버리고 명록촌(鳴鹿村)으로 가서 형과 함께 살겠습니다.'




건숙이 편지를 다 읽고 말했다.




" 정백(井伯)이 어떻게 해서 섬진의 군주를 만나게 되었읍니까?"




공자집은 백리해가 당진(唐晉) 헌공(獻公) 딸인 백희(伯姬)의 몸종 신분으로 섬진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초나라로 도망친 것을 섬진의 목공(穆公)이 백리해가 현사(賢士)라는 것을 알고 양가죽 다섯 장을 초나라에 주고 백리해를 속죄시켜 섬진으로 데려온 일의 전후사정을 상세하게 이야기한 후에 이어 말했다.




" 저희 군주께서 백리해에게 상경(上卿)의 벼슬을 내렸으나 정백(井伯)이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는 건(蹇) 선생에게 못 미친다고 말하면서 반드시 건 선생을 섬진으로 모셔와야만 비로소 정사를 맡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군주께서 얼마간의 예물을 내려 주시면서 저에게 건 선생을 모셔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




공자집이 말을 마치자 좌우에 있던 종자들에게 말하여 수레의 짐칸에 있던 물건들을 꺼내게 하여 예물의 품명을 적은 장부와 맞추게 한 다음 건숙의 초가집 마당에 늘어놓게 하였다. 이웃에 사는 노인들은 모두 산야에 사는 농부들이라 이와 같은 성대한 예물을 본적이 없어 서로 얼굴만을 쳐다보며 놀라워하면서 공자집을 향하여 말했다.




" 우리는 귀인이 여기에 온 것과는 상관이 없는 듯 하오니 이 만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공자집 " 두 분 노인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군주께서 건숙(蹇叔) 선생을 모시고 싶은 마음은 마치 말라비틀어진 묘목이 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으십니다. 번거롭겠지만 두 분 노인께서는 한 말씀을 올려 저를 도와주신다면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겠습니다. "




두 노인이 건숙을 향하여 말했다.




" 천리 밖에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 섬진(陝秦)의 군주가 현사賢士)를 이렇게 중히 여겨 귀인을 보내 여기까지 힘들여 찾아오게 했으니, 귀인께서 헛걸음을 하게 되면 안될 것입니다. "




건숙 " 옛날에 우공(虞公)은 정백(井伯)을 곁에 두고도 쓰지 않아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하였습니다. 만약에 섬진의 군주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현사를 대한다면 정백 한사람만으로 족할 것 입이다. 노부가 세상에 미련을 끊은 지가 오래라 부득이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귀국의 군주께서 하사하신 예물은 원컨대 거두어 주시기 바라오며, 공자께서는 제가 사양하는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공자집 " 만약에 건숙 선생께서 가시지 않으신다면 정백도 역시 혼자서는 섬진(陝秦)을 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5. 섬진의 목공에게 출사하여 패자의 도리를 설파하는 백리해와 건숙




건숙이 얼마동안 숨을 죽이고 나더니 탄식하면서 말했다.




" 정백이 가슴에 품고 있던 뜻을 아직까지 펴보지 못하고 일생을 유랑하다가 이제서야 다행히 명군(明君)을 만났는데 나로 인하여 그 뜻을 못 이룬다면 내가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정백을 위하여 한번 가보지 않을 수 없으나 머지 않아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살리라."




동자가 들어와 말했다.




" 사슴다리가 이미 익었습니다. "




건숙이 침상의 머리맡에 있는 새로 빚은 술을 가져오게 하고 공자집을 상석인 서쪽에 앉게 하여 이웃의 두 노인과 서로 마주보게 한 후에 손님을 접대하였다. 흙으로 만든 술잔과 나무 젓가락을 내오게 한 다음에 서로 술잔을 권하여 모두가 흔연히 취하게 되었다. 해는 어느덧 기울어 바깥이 어두워지자 공자집은 초가집에 머물며 유숙하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 두 노인이 건숙의 노자에 보태 쓰라고 조그만 술병 안에다 얼마간의 돈을 넣어 가지고 와서는 어제 앉았던 자리에 순서대로 앉았다. 시간이 다시 얼마간 지나자 공자집이 들어오더니 건병의 재주를 칭찬하면서 역시 건병도 같이 섬진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건숙이 허락했다. 곧이어 건숙은 섬진의 군주가 하사한 예물들을 두 노인에게 나누어주고 자기가 없을 때라도 자기의 집을 살펴봐 달라고 당부하였다.




" 이번의 행차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조만 간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건숙이 다시 집안 사람들을 불러 당부하였다.




" 농사를 힘써지어 결코 논밭을 황폐하게 만들면 안될 것이다. "




두 노인이 건숙에게 몸을 잘 보중하라고 하면서 이별을 고했다.




건숙이 수레에 타고 건병이 앞에서 몰았다. 공자집은 남은 한 대의 수레에 타고 같이 행차를 하였다. 날이 어두워지면 자고 날이 밝으면 수레를 몰아 섬진의 경계에 당도하게 되었다. 공자집이 먼저 섬진의 조정에 입조하여 목공(穆公)을 알현하고 말했다.




" 건 선생이 이미 진나라 도성 밖에 당도하였습니다. 그의 아 들 건병(蹇丙)이라는 사람도 재주가 비범하여 얼마간의 시간을 주어 준비하게 하면 마땅히 일을 맡길 만 하다고 생각하여 신이 같이 데리고 왔습니다. "

목공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백리해를 보내 맞이해 오게 하였다. 건숙이 당도하자 목공이 계단을 내려와 예를 갖추어 맞이하고 좌정을 하게 한 다음에 물었다.




" 정백(井伯)이 여러 번 선생의 현명함을 말했습니다. 선생은 어떤 말로 저를 깨우쳐 주시겠습니까?"




건숙 " 섬진(陝秦)은 서쪽의 변방에 위치하여 융(戎)과 적(狄)에 이웃하고 있고 지세는 험하고 병사는 강합니다. 중원으로 나아가 능히 싸울 수 있고 관내로 후퇴하여 능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원의 제후들의 반열에 같이 서지 못함은 섬진의 위엄과 덕이 그곳에 미치지 못한 연유에서입니다. 위엄이 없으면 심복(心腹) 시킬 수 없으며 덕이 없으면 품을 수 없습니다. 심복 하게 할 수도 없고 가슴에 안을 수도 없는데 어찌 패업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




목공 " 그렇다면 위엄과 덕(德) 중 어느 것부터 먼저 행해야 합니까?"




건숙 " 덕은 기본이고 위엄은 덕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덕이 있으되 위엄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외부로부터 침입을 당하게 될 것이며 위엄이 있으나 덕이 없으면 그 나라는 안으로부터 무너질 것입니다. "

목공 " 과인이 덕을 쌓고 위엄을 세우려고 하는데 어떤 가르침 이 있습니까?"

건숙 " 섬진은 융(戎), 적(狄)의 오랑캐 풍속에 젖어있어 예(禮)와 교(敎)에 낯설어 하여 위엄을 세우려 해도 구분하지 못하며 귀천도 분간하지도 못합니다. 신이 청하옵건대 먼저 백성들을 교화시킨 다음에 형벌을 분명히 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교화가 시행되면 백성들은 그 상전들을 존경하게 될 것이며 연후에 은혜를 베풀어 스스로 느끼게 하여 그때 형벌을 이용하여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자연히 백성들 사이에 높고 낮음은 마치 사람 몸에 있어서 손과 다리 및 머리와 눈과 같은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관이오가 이런 방법으로 군사조직을 창제하여 천하를 호령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목공 " 정녕 선생의 말씀대로 시행하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습니까?"




건숙 " 아직 충분치 않습니다. 무릇 천하를 제패하고자 하는 자는 세 가지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탐하지 말고, 화내지 말며, 조급해 하지 말라 . 탐하면 잃는 것이 많을 것이며 화는 내게 되면 곁에 있는 친한 사람들이 떠날 것이며 조급하게 일 을 하게 되면 빠뜨리게 되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주도면밀(周到綿密)하게 일을 처리하여 문제가 없게 하기 위해서는 탐하지 말 것이며 이익과 손해를 따져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화를 겉으로 들어내면 안될 것이며 완급을 참작하여 순서를 정하여 일을 하기 위해서는 조급하면 안될 것입니다*. 군주께서 이 세 가지 계율을 능히 지킬 수 있으신다면 패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毋貪, 毋忿, 毋急. 貪則多失, 忿則多離, 急則多蹶.夫審大小而圖之, 烏用貪, 衡彼己而施之, 烏用忿, 酌緩急而布之, 烏用急.




목공 " 훌륭하신 말씀이십니다. 청컨대 과인이 현재 먼저 해야 할 일과 후에 할 일을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




건숙 " 섬진은 서융의 땅에 입국하였는데 이것은 나라를 운영하기에 따라 화가 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작금에 있어서 패자를 칭하고 있는 제후(齊侯=제환공)의 나이가 이미 80이 넘어서 그가 이룩한 패업도 장차 허물어 질 것입니다. 군주께서 진실된 마음으로 옹(雍)과 위(渭) 땅에 백성들을 선무(宣撫)하시고 여러 융족들의 추장들을 불러들이고 복종하지 않는 융족들은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하고 복종시킨 다음에 병사들을 모아 중원(中原)의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수습할 군사를 보냄과 동시에 진나라의 덕(德)과 의(義)를 펼치신다면 비록 군주께서 패업에 뜻이 없다 하더라도 결코 사양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 과인이 새로이 얻은 이노(二老)는 과연 뭇 백성들의 어른이로다."




목공이 즉시 건숙을 우서장(右庶長)으로 백리해를 좌서장(左庶長)으로 삼아 위계를 상경(上卿)으로 하고 이상(二相)이라고 불렀다. 건숙의 아들 백을병(白乙丙)도 불러서 대부의 벼슬을 내렸다. 두 사람의 재상(宰相)이 섬진의 정사를 맡아 법을 세우고 백성들은 교화하고 이로움은 구하고 해로운 것은 제거하자 섬진은 크게 다스려졌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두 사람을 노래했다.




子(執+사)薦奚奚遷叔(자집천혜혜천숙)

공자집은 백리해를 천거하고 백리해는 다시 건숙을 천거하여




轉相汲引布秦庭 (전상급인표진정)

모두 진나라 뜰로 데려와 진나라 재상으로 삼았다.




但能好士如秦穆(단능호사여진목)

세상의 군주들이 단지 선비 구하기를 진목공처럼만 했다면




人杰何須問地靈(인걸하수문제령)

인걸들이 어찌 돌아다니면서 땅의 신령들에게 물어보고 다녔겠는가?










6. 40년 만에 가족을 만나는 백리해




한편, 백리해의 처 두(杜)씨는 그의 지아비가 길을 떠난 후 매일마다 천을 짜서 먹고살다가 후에 기근이 들어, 먹고 살길이 없게 되자 그 아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찾아 다른 곳으로 유랑을 하던 중 연이어 섬진(陝秦)으로 들어 와서 남의 옷을 빨아 받은 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아들은 이름은 시(視)라하고 자는 맹명(孟明)이라 했는데 매일마다 시골사람들과 사냥을 나가서 무예를 다투고 들판에서 자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두씨가 여러 번 그러지 말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백리해가 진나라 재상이 됨에 이르자 두씨가 그 이름을 전해 듣고 수레를 타고 지나가는 백리해를 보고자 했으나 감히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침 백리해가 정사를 보고 있는 부중(府中)에서 옷을 빠는 아녀자를 구하자 두씨가 자원하여 부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씨가 몸을 돌보지 않고 옷을 열심히 빨았다. 부중의 사람들은 모두가 기뻐하였다. 부중에서 백리해의 얼굴을 보고자 벼르고 있던 중 하루는 백리해가 당상에 앉아서 행랑에서 연주하고 있던 악공의 음악소리를 듣고 이었다. 두씨가 부중의 관리에게 말했다.




" 이 늙은이가 음률을 좀 알고 있습니다. 원컨대 저를 행랑에 들게 하여 음악소리를 한번 듣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중의 관리가 두씨를 행랑으로 들게 하여 악공의 음악소리를 듣게 하였다. 두씨가 악공이 부르던 음악에 대해서 아는체 하였다. 악공은 두씨에게 어디서 음률을 배웠냐고 물었다. 두씨가 대답했다.




" 거문고를 탈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래도 능히 부를 수 있습니다."




즉시 거문고를 건네 받았다. 두씨가 거문고를 타고 북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매우 처연하였다. 악공이 귀를 기울려 듣더니 자기도 못 미치겠다고 스스로 말했다. 다시 한번 노래를 부르게 하자 두씨가 말했다.




" 노첩은 여기저기 유랑하면서 이곳까지 흘러오게 되었는데 아직 노래를 불러볼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상군에게 말씀을 올려 주시어 당에 올라가 노래를 한번 부르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




악공이 품하자 백리해가 당의 왼쪽에 서서 노래를 부르도록 명했다. 두씨가 눈썹을 깔고 소매를 걷어올리더니 목소리를 높이 올려 노래를 불렀다.




百里奚, 五羊皮 (백리해,오양피)

백리해, 오양피




憶別時, 烹伏雌(억별시, 팽복자)

이별할 때 기억나는가? 암탉을 잡고




春黃<艸+齋>, 炊<戶+炎><戶+多>(용황제, 취염이)

서숙을 절구에 찧고, 빗장을 떼어 내어 불을 지폈다.




今日富貴忘我爲(금일부귀망아위)

금일 부귀하게 되어 나를 잊었는가?










百里奚, 五羊皮(백리해, 오양피)

백리해, 오양피




夫粱肉, 子啼飢(부양육, 자제기)

지아비는 서숙과 고기를 먹는데 그 아들은 배가 고파 우는구나




夫文繡, 妻浣衣(부문수, 처완의)

지아비는 비단옷에 호강하는데, 그 처는 옷을 빨아 양식을 구하는구나




嗟乎! 富貴忘我爲 (오호, 부귀망아위)

오호라! 부귀가 나를 잊게 만들었는가?










百里奚, 五羊皮(백리해, 오양피)

백리해, 오양피




昔之日, 君行而我啼(석지일, 군행이아제)

옛날에, 당신이 길을 떠날 때 나는 울었다.




今之日, 君坐而我離(금지일, 군좌이아리)

오늘은 그대는 앉아 있고 나는 떠나려 하네




嗟乎! 富貴忘我爲?(오호! 부귀망아위)

오호라! 부귀가 나를 잊게 만들었는가?




백리해가 노래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불러서 물어보니 정히 그의 아내였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크게 울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백리해가 물었다.




"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두씨가 대답했다.




" 시골에서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리해가 곧 사람을 시켜 불러오게 했다. 이 날이 되어서야 부부와 아들이 다시 만나서 모여 살게 되었다. 목공이 백리해의 처자가 모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 천 가마와 비단 한 수레를 보냈다. 다음날 백리해가 그 아들 맹명시(孟明視)를 데리고 왕을 뵙고 고마움을 표했다. 목공이 맹명시를 대부로 임명했다.




서걸술(西乞術), 백을병(白乙丙)과 함께 맹명시(孟明視)를 장군으로 삼아 진나라의 '삼수(三帥)'라고 했다. 삼수(三帥)가 병사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이때 강융(戎)의 군주 오리(吾離)가 군사를 이끌고 섬진(陝秦)의 변경을 침략해 왔다. 삼수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워 오리를 패주시켰다. 싸움에서 패한 오리는 당진(唐晉)으로 도망가서 강융(姜戎)의 땅이었던 과주(瓜州)는 모두 섬진의 소유가 되었다. 뒤이어 서융(西戎)의 군주 적반(赤斑)이 섬진이 강성해지고 있음을 알고 그의 신하인 요여(繇余)를 보내어 목공의 위인 됨과 나라의 허실을 알아오게 하였다. 목공이 요여와 같이 동물원이 딸린 후원으로 데리고 가서 삼휴대(三休臺)에 올라 궁궐과 동물원이 달린 후원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였다.




요여 " 이 모든 것을 짓는데 귀신을 부리셨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억압하여 만드셨습니까? 귀신을 부리셨다면 귀신들에게 수고를 끼치셨을 것이며 사람을 시키셨다면 백성들이 매우 괴로웠겠습니다. "




목공은 오랑캐의 나라에서 온 요여(繇余)가 뜻밖의 말을 한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 그대의 나라 융이(戎夷)는 예악(禮樂)과 법도가 없는데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는가? "




요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 말씀하시는 예악과 법도는 중원의 나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옛날의 성군(聖君)들도 법을 글로 만들어 백성들과 약속을 하여 근근히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날이 지나감에 따라 군주들이 교만해지고 황음에 빠지게 되면서 예악의 이름을 빌려 그 몸에 장식을 두르고 거짓된 법도의 위엄을 이용하여 밑의 사람들을 닥달한 결과 백성들로 부터 원성을 사게 됨과 동시에 군위가 찬탈 당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융이(戎夷)의 습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윗사람은 순박한 덕으로 아래 사람들을 대하고 아랫사람들은 충성과 신의로써 윗사람들을 섬깁니다. 상하가 한결 같아 서로간에 속이지 않습니다. 형적(刑籍)이 없어도 서로 속이지 않고 법을 글로 써 놓지 않아도 서로 근심하는 법이 없으니 이와 같은 다스림은 전에 본적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다스림의 극치라 할 것입니다."




목공이 아무 대답도 못하고 요여와 헤어진 후에 백리해에게 그가 한말을 전했다.




백리해 " 그 사람은 당진 출신의 대현(大賢)입니다. 신은 이미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




목공이 불쾌한 기색을 얼굴에 띄고 말했다.




" 과인은 '이웃나라의 성인은 우리나라의 우환이다'라는 말을 들었오. 오늘 요여(繇余)가 그 지혜를 융나라를 위해 쓰고 있으니 장차 우리의 화근이 되지 않겠습니까?"




백리해 " 내사(內史)의 직(職)에 있는 요(廖)가 지혜가 있으니 군께서 부르셔서 그




계책을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




목공이 즉시 내사요(內史廖)를 불러 요여(繇余)에 대한 생각을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 융의 군주는 멀리 떨어진 황야에 살고 있어 중원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군께서 여자 악공을 시험삼아 보내시어 견융주의 뜻을 빼앗아 보기 바랍니다. 또한 요여(繇余)를 이곳에 머물게 하고 귀국일을 어기게 하 여 오랫동안 돌려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융주는 결국은 정사를 태만히 하여 돌보지 않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상하가 서로 의심하게 되어 그 나라도 취할 수 있을 것인데 항차 한 사람의 신하정도야 문제가 될 것이 있겠습니까? "




목공 " 훌륭한 계책이로다 "




그 뒤로는 목공은 요여(繇余)와 자리를 같이 하여 식사를 할 때는 같은 그릇에 먹고 항상 건숙(蹇叔), 백리해(百里奚)와 공손지(公孫枝) 등과 같이 머물게 하고는 서로 번갈아 가면서 요여와 같이 다니면서 융(戎) 땅의 지형의 험함과 병세(兵勢)의 강약과 허실을 탐문하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곱게 치장한 미녀와 노래를 잘 부르는 미녀 여섯 명을 선발하여 옷을 화려하게 입히고 난 다음에 내사료(內史廖)를 답례사절로 융국으로 파견하고 미녀들을 딸려 보내 융주에게 바치게 했다. 융주 적반(赤斑)이 크게 기뻐하여 매일마다 낮에는 노래 소리를 듣고 밤에는 같이 데리고 놀기에 바빠 자연히 융국의 정사를 소흘히 하게 되었다. 요여(繇余)가 섬진에 일년 동안이나 머무른 뒤에 융국에 귀국하였다. 융주는 요여가 늦게 돌아온 것을 괴이하게 생각하자 요여가 융주에게 설명했다.




" 신이 밤낮으로 귀국을 졸랐지만 진군이 고집을 피워 보내주지 않아 이렇게 늦게 되었습니다. "




융주가 요여를 의심하게 되어 자연히 멀리하게 되었다. 요여는 융주가 미녀 악사들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힘들여 간했다. 융주는 요여의 말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목공이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요여를 데려오게 하였다. 요여가 융주를 버리고 섬진(陝秦)에 오자 목공은 즉시 요여를 아경(亞卿)에 임명하여 건숙과 백리해와 함께 국정을 돌보게 하였다. 요여가 곧 융국을 정벌하기 위한 계책을 목공에게 말했다. 목공이 요여의 계책을 받아들여 삼수(三帥)에게 병사를 주어 융국을 정벌하게 하였다. 삼수와 병사들이 융국에 당도하였는데 요여가 융국의 지리를 상세하게 알려 주었기 때문에 마치 익숙한 길을 가듯이 진격할 수 있었다. 융주 적반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진나라에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후세 사람이 이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虞違百里終成虜(우위백종성로)

우공은 백리해의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은 진나라의 포로가 되었고




戎失繇余亦喪邦(유실요여역상방)

융주는 요여를 잃더니 역시 나라마저 뺏겼구나




畢竟賢才能幹國(필경현재능간국)

필경은 훌륭한 사람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니




請看齊覇與秦强(창간제패여진강)

제후가 중원의 패자가 되고 진나라가 강성해진 것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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