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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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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청음 이상호와 해방직후 증산교 대법사를 만든 운산 안흥찬과 만남





청음 이상호와 운산 해방직후 증산교 대법사를 만든 안흥찬과 만남

청음 이 상호와 남주 이 정립 형제는 29년 동화교 무렵 교인들로 하여금 사택공사를 하면서 안집 사택을 가리켜 내전(內殿)이라고 부른 바 있습니다. 두 형제 스스로 태모님과 차 교주를 차례로 내쫓고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추수하는 해도진인(海島眞人)이라 생각하고 태모님까지는 내쫓는데 성공했지만 차 교주가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을 만들면서 보천교 혁신운동의 명분이 없어지자 차 교주를 내쫓는데 실패하고 보천교 재산을 챙겨 일제관리의 비호(庇護)를 받으며 금은보화로 치장한 여고생 첩까지 대동하고 만주로 도망가고 맙니다.

  

뒤에 만주에서 사기를 당해 감옥에 갇혔다가 국내로 다시 들어와 비록 차 교주 축출에는 실패하여 보천교를 탈퇴하고 조선총독부 촉탁 김환의 기획과 후원을 얻어 동화교를 창교했지만 영원히 버릴 수 없는 추수 주인공으로서의 달콤한 야망을 내전(內殿)이라는 호칭으로 속마음을 다시 한 번 드러내고 맙니다.

  

두 사람은 평생 죽는 날까지 제왕적 사고를 지닌 채 살았는데, 사택을 내전(內殿)이라 칭하여 많은 신도들이 항의를 해 물의를 빚자 동화교사택(舍宅)으로 평범하게 이름을 바꿉니다. 그러나 그 야무진 꿈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느닷없이 안 흥찬(安興燦)이라는 젊은 20대 총사수(總師首)가 두 형제 앞에 수호천사로 등장해 자신이 몸소 개척한 증산교 조직을 쾌척하고 종적 없이 사라지자 단체를 장악한 이후인 62년에 비로소 용화동 본부에 자신들만의 사택을 짓고 형식적으로는 다른 이름을 내걸어 놓지만 실제로는 결국 다시 내전(內殿)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기독교 인구 30만인 일제치하 시절 550만 신도를 거느린 일제하의 실세 차 교주도 우습게 알며 산전수전 다 겪은 두 형제는 해방 후 느닷없이 전국적으로 포교대운을 일으키며 젊은 총사수(總師首)가 전면 등장해 나타나자 내심으로 이는 마치 상제님이 자기들 꿈을 이루고자 보내준 비장의 수호천사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젊은 총사수의 배려로 자신들이 과거 일제치하 동화교 시절 근거지였던 용화동 증산교 대법사 본소에 다시 자리잡게 되자 노회한 전략으로 범 증산 종단을 통합하겠다는 명분과 신앙촌을 건설한다는 금산도득(金山圖得)의 명분을 내세워 전국 신도들로 하여금 땅 팔고 재산을 팔아 금산 용화동으로 들어오게 하는 재산집중의 허망한 공사를 벌입니다.

  

보천교 초기에 교주 없이 방주제도로 운영했던 차 경석 성도처럼 교주 없는 방주제도로 조직을 관리하던 총사수가 포교활동에 정신이 팔려 전국으로 떠도는 사이(교통도 불편하고 연락체계가 불편해 전국포교를 떠나면 1-2개월 걸리던 시절) 이 상호 형제는 이 허망한 공사를 통해 인권이 자신들에게 집중되도록 하면서 포교활동으로 부재중인 젊은 총사수와 간부사이를 이간시키려 각종 모함과 흑색선전을 하며 젊은 총사수(總師首)를 자연스럽게 도태시킵니다.

  

  

<2변 도운 121(1991).3.7 강론>*그러면, 이 상호· 이 정립의 정책도 장하려니와 사실은 당시 신도들이 부응을 해 주었어. 한 놈도 나 찾아와서 용화동으로 다 팔아서 들어오라 하는디 가야 옳읍니까 하는 놈을 지금 이 시간까지 한 놈을 보지 못했고. 내가 집에 와서 누웠는디(20년 말점도 은거) 날 찾아오는 놈 한 놈 없었고.

  

<2변 도운 121(1991).3.7 강론>*그러구서 허튼 신도만 50명도 찾아오고 뭐 30명도 찾아오고 밥만 삶아내느라고 죽을 고생하고 말여. 그러구서 간부진에 있다는 자들은 대가리도 안 디밀고. 그리고 몰래 돈도 이 상호· 이 정립에게 갖다 바치고. 나는 인패 같은 거 준비 하려고 하는디 속으로 이 상호· 이 정립에게 다 팔아먹고. 다 팔아먹어버려..... 돈 받고. 이러한 얘기를 참 다 할 수도 없고.

  

<2변 도운 121(1991).3.7 강론>*“전주로 가고 싶었지만 전주로 가면 이 상호· 이 정립이 꼴도 보기 싫고 말여. 그래서 애들 교육상도 그렇고 해서 공주로 가서 있었는디.....내가 이 얘기를 하면서 또 한 가지 얘기할 말이 있어. 집이를 앉았는디 박 복만이 바로 또 그 놈여, 그 놈이 전국에 꼬뺑이를 쳐가지고서 격문이 말여, 우리 아버지가 어디서 가지고 들어왔어. 이 격문이 최종적으로 황 원택(장남을 주사 놓아 죽인 장본인)에 와서 떨어졌는디 전국일주를 해가지고서....

  

<2변 도운 121(1991).3.7 강론>*(총사수가 임명한 토방주 이상호가 인권을 집중시키면서 이미 교주인 듯이 행세)그런디 그 격문이 뭐냐 하면, 뭐 나는 수교정(首敎正)도 아닌디, 수교정 안 흥찬이가 망령이 발작해서 망령된 생각이 발작해 가지고서 천인천패(天印天牌)를 위조하고 뭐 어쩌고 해서 직권을 정지허구 말여. 그 사람들 말로 수교정의 직권을 정지한단 말여. 허니께 전국신도는 본부로 직접 연락해라 하는 그런 내용이여. 그걸 내가 다 외든 못혀 지금. 그게 우리 집에 있어. 그런 내용여. 그런디 나두 사람아녀 사람은. 내가 칠정 있는 사람으로서 그걸 볼 때 그 장님 새끼를 내가 말여, 도와준 죄 밖에 없고 말여.

  

◎이상호가 보낸 자객 박복만의 자백과 용서

  

<2변 도운 121(1991).3.7 강론>*(6.25 전쟁중에) 공주-청양-부여로 가서 부여군 내산면(內山面) 마전리(麻田里) 이 평국(李評國) 신도 집에 가서 좌정하고 위방에서 거의 두어 달 있었는데 이 평국 씨가 무슨 말을 하냐면 이상하게 집주변을 싸고 배회를 하는데 참말로 이상합니다. 여러 날을 두고 저렇게 같은 사람이 저러는디, 그게 참 이상하다고 만날 그려. 그러다가 조금 있다가 아이고 선생님, 나와서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한번 보쇼.

  

<2변 도운 121(1991).3.7 강론>*나가서 보니 박 복만이란 사람여. 박 복만이. 나한테 들켰거든? 아니 복만이가 왠 일여? 내가 하니께. 얼굴이 새빨개져서 주저 앉어 버려, 그 자리서. 아니 이 워쩐 일이냐고 말여, 들어가자고 방에 떡 들어가 앉혀 놓았더니, 그 사람이 하는 소리여 그 사람이. 선생님, 선생님 같이 인자하고 그런 양반을 참 내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내가 바로 제가 선생님을 죽이려 했던 사람의 하수인였습니다. 내가 보름을 별렀습니다. 내 독심을 품고서. 했는디, 결국 내가 선생님에게 참 사죄를 합니다.

  

<2변 도운 121(1991).3.7 강론>*내가 그래서 니가 나를 죽이면 뭐가, 나를 죽임으로서 뭐가 있느냐. 내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상제님 사업을 위해서, 내가 죽어져야 줘야 할 이유라도 있다면, 내가 만 번이라도 죽어주겠다, 헌디 내가 이 세상에 무엇 때문에 죽어줘야 하는지, 누가 나를 꼭 죽여야만 하는지, 그거나 좀 알자 그랬더니, 내가 선생님을 죽이면 내가 감투가 높아지고 중언부언하고... 이게 내가 될 수 있으면 이런 말을 안 할라고 한겨. 항자는 불살로 내가 쾌히 용서를 해주고 그 사람에게 가서 내가 밥 잘 먹여줬으면 됐고 늙은 사람들이 상제님 진리가 해원상생인데 천하에 나쁜 놈이다.

  

<2변 도운 121(1991).3.7 강론>*장님이고 눈깔 먼 놈이....증산교는 내가 하는 것이지 그 누구(이상호· 이정립)도 증산교하고 관계가 없다. 여기 신도들이란 게 내가 신앙하라고 해서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고 여기 신도들의 지도자요 선생님이라고 해서 떠메야 할 사람이 나하나 밖에 없어. 그 이외에는 다 객꾼이여. 개평일 뿐이지. 도와는 못줄망정 무슨 상관이 있어 나를 괴롭게 하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자 문화권에서도 일찍이 이런 일이 없고, 석가모니 불교 권에서도 이런 일이 없고, 서교에서도 나는 이런 일을 나는 못 들어봤다. 그러나 상제님 사업위해 쾌히 용서할 테니 가서 전해라.

  

<2변 도운 121(1991).3.7 강론>*그러면서 내가 거기서 그런 말을 했어. 이건 공자문화권인 유교에서도 일찍이 이런 일이 없고, 석가모니 불교에 문화권에서도 이런 일이 없고, 이건 서교에서도 말여, 나는 이건 못 들어본 사실이 없다 말여. 어떻게 세상에 이럴 수가 있냐. 허나 나는 상제님 사업을 위해서 쾌히 용서 할테니께 그런 줄을 알고, 그런 일을 가서 전하라고. 내 그러구서 용서해 준 사실이 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한 날은 김 창원이라는 사람이 보천교 재산을 죄다 바치고 우리 집을 자기 집처럼 노냥 와서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 집에 와서는 나하고 밤 세워 태을주를 읽거든, 밑천이 태을주여. 밤새 태을주를 읽고서 홍성군 운암면 금곡리 우리 아버지 친구하고 한 번 전라도를 다녀와라. 그런 제안을 해서 좋다고 말여, 그 뒤에 한 번 가자고 한단 말여. 좋다 해서 가자! 그때는 내가 돈이 많았쟎어, 그래서 돈에 구애를 안 받았쟎어. 홍성군 운암면 금곡리에 가서 보천교 고급간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거든. 그 중에서도 윤 설 씨는 아주 웅변가여, 나하고 전라도를 한번 가자고 해서 내친걸음에 당장 가자고 해서 여러 군데를 들렀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박 공우 씨의 수제자 송 종수라는 분이 있어. 봉남면에 살았어. 금남면에서 황산고개 넘어가면 봉남면이여, 그 옆이 원평 금산면이고. 거기를 뜩 가니 그 의통 인패를 준비하는데 의통인패를 제작하는데 한 반가마를 새겼어, 많이 새겼어. 그래서 송 종수씨한테 의통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더니 송 종수씨야 나를 끌려고 난리가 났었지. 내가 아주 잘생기고 귀골이고 하니까 말여. 호신의통, 호부의통이니 그리고 내가 양 비누를 좋아서가 아니라 녹수비누가 있다. 녹수비누로 세수하면 절반은 하루 종일 냄새가 가. 냄새가 좋으니께 PX에서 나온다고...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러고 나서 세상에 호사하던 사람이니께 너무 잘 빠졌다고... 대전 와서 가난해서 기가 막히게 고생을 많이 하고 있지만....내가 어디가면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여들어서 장사꾼들이 가게 문을 닫고서도 쫓아다니는 사람이었어. 장사 잘된다고 그렇게 쫓아 다녔어. 그 때도 어디를 가면 금새 사람들이 모여들고, 송 종수씨 댁에서 이틀인가 잠깐 묵었는디, 그 근방 사람들이 다 모이고 신도라고 모이고,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고 말여, 송 종수씨가 그러기도 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상제님 사업을 해야겠는데 동지를 규합할려고 그런다 하니께 송 종수씨가 얼마나 좋아하겠어. 그러고서 누구를 가서 만났냐면, 정읍장터 있는 데 시기리가 있어. 시기리에 이 한우, 윤 순탁이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들이 보천교 신도여. 그 사람들은 윤 설 씨하고 그렇게 잘 알어. 그 분들을 만났는데 역시 그 분들도 의통을 준비하고 앉았더라. 이 한우씨 집하고 윤 순탁 씨 집하고 한 30미터거리나 되나? 그 의통을 어떻게 제작을 하냐면 송 종수씨에게 있으면서 배워가서 만들고 앉았던겨, 윤 순탁 씨 집에서. 신기리 산다고.. 이 한우는 약종상이여. 또 보천교 때 차 경석 씨의 안전질서 전담하던 사람 가서 만나보니, 우리 선생님이라고 월곡 선생님이라고 꼭 그러면서 하늘처럼 떠받들고 숨결마다 월곡 선생이여.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내가 의통 제작한 이야기를 윤 설 씨에게 들어보니께 이 상호씨, 윤 순탁 씨, 이 한우, 함 우열, 김 태성, 김 규찬 이렇게 여섯 사람이 상제님이 육임을 말했으니까 육임을 짜서 육임도장을 만들어야 된다고 혀. 호신의통을 네모진 도장으로 말여. 어떤 놈은 호신 의통에다가 도장 찍는 사람도 있고, 호신의통을 겉껍데기로 싸서 이 상호 도장 찍은 사람, 윤 순탁, 이 한우 도장 찍는 사람도 있어. 한 이틀 머물면서 윤 설 씨하고 시기리 정읍 장사구경도 하고 오늘 길에 이 상호 씨 댁이라고 들어간단 말여. 들어가서 보니께 사람 들어가도 목소리만 듣지 몰러. 보니께 장님이여, 장님. 그런대로 잘 생겼는데 하관이 빠져서 속을 썩이게 생겼어. 뒤끝을 못 맺을 사람이구나, 거기서 얘기가 되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내가 큰 홍어 하나를 사가지고 술을 사서 푸짐하게 먹으면서 이 한우, 윤 순탁 씨가 소개를 혀. 윤 설 씨랑 나랑. 자기에게 의통을 박 공우 선생이 전수를 했다. 이 상호가 그런 일을 해여, 자기도 때를 모른다. 그런데 해방도 됐고 공개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우리끼리 이렇게 하는데, 함 우열하고 김 태성이라는 사람은 그 후로 나오덜 않는다. 육임이 부족하니 혹시 상제님 사업에 열의가 있으면 의통제작 하는데 한번 악수를 해보자고 말여. 그래서 거기서 결합을 하게 된 동기가 그렇게 되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 집은 하루저녁 잘 수도 없어. 집 구조가 안방, 건너방, 뒷마루. 정읍에 명주베라는 것이 왜 거기서 발전이 됐냐면, 보천교 때 보천교 신도들이 거기 들어와서 다 떨어먹고 굶어죽게 생겼단 말여, 농사터전이 있나. 저 경상도 함경도 평안도 전국적으로 수많은 신도들이 들어와서 가지고 온 재산 다 떨어먹고 굶어죽게 생겼거든. 그래서 강화의 한 인희 아버지 한 호석 씨가 강화에 직조하는 것을 모방해서 명주베라도 짜서 밥 먹구 살아야겠다구 구황방을 내 놓았어. 구황방을 해서 생식을 하고 사니 그게 살 수가 있어? 생식도 한 달에 쌀 한 되는 있어야 할 거 아녀. 그래서 직조를 하게 된 거여, 보천교 신도들이 다 망하면서 베 짜서 먹고 살았어. 이 상호씨도 직조기를 한 대 갖다 놨는디 아마 서너 필이 감겼는지 다 헝클어져서 말여. 내 던진 베틀 하나 있어(폐기물로 던져두고 이사 간 빈 집.장님이라 직조불가). 그러고 가만히 보니께 쌀도 없어. 그래서 쌀 한 가마 값이나 주고, 그런 인간적인 정으로...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리고 박 모 모씨 집에서 며칠 묵다 올라왔는데, 구황방 얘기를 보충하면 내가 11살 땐가 생식을 8개월을 해 봤어. 각시바위 구멍에서 며칠 있은 후로 생식을 시작했는디, 한 8개월 나중에는 전혀 화식이란 걸 먹지 않고 쌀가루, 콩가루 먹었어. 한 8개월하고 났는디, 내 어머니께서 따라서 굶으시더란 말여, 어머니 때문에 할 수 없이 밥을 먹었어. 생식을 하면 한 9일, 10일 만에 똥을 요거만한 새까만 똥을 싸고 말어. 세상에 안 먹고는 살 수 있나... 그래서 어려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어. 구황방도 쌀이 있어야 되는 건데, 보천교 신도들이 구황방 갖고 생활을 한다 해도 돈은 벌어야 될거 아녀. 그래서 대흥리에 직조가 유명해졌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리고서 내가 정읍서 그 얘기를 하고 떠나 집으로 와서 한 바퀴 돌고 다시 정읍을 갔어. 가서 이 한우 씨한테 가서 의통제작을 하는데 쓰라고 돈을 주고 왔어. 뒤에 가서 보니께 6임조에 근거해서 내 도장을 하나 마련해 놨더라고. 책임감도 있고 그래서 집으로 와서 보천교 신도들한테 이제 너희들도 의통준비를 하고 다시 그때는 내가 교주할 욕심도 없고, 다 같은 신도들이고 하니께 누가 뭐가 되고 그러는 걸 따지기 전에 동지적인 입장에서 뭉쳐서 단체도 구성하고, 상제님 사업을 하고 그러는 거지. 보천교 신도들은 차 경석씨도 꼭 신앙하는 것도 아니고.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차 경석 씨를 믿으면 강 증산에게로 끌려 들어가는거고. 그런 정신으로 뭉쳐 있던 사람들이여. 그렇게 해서 그때 뭐 그 수치를 다 얼마라고 지적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젊은 사람들이 모아지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뭉쳤어. 근디 이 한우 씨가 맨날 충청도를 가자고 그려. 그러고 있는디 집회할 곳이 없어서 정읍으로 갔어. 보천교 때 건물 지어놓고 버린 궁궐터, 지금 조계사 된 그거. 이름이 십일전十一殿, 열 십十에 일 一하면 토土자여, 세상 사령탑이다 이 말여.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런데 그걸 왜놈들이 뜯어다가 불교 조계사를 지어 버렸어. 처음에는 각황사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태고사라고 고쳤었어, 그러다가 이제 조계사로 고쳤지. 그러고 전주에도 보천교 건물 헐어다가 전주 역을 지었어, 지금은 새로 지었는디. 그 십일전十一殿에 빈 건물이 있어서 김 규찬 씨라고 말여, 그런 분이 상제님 사업한다고 하니께 그렇기 때문에 그 건물을 손쉽게 얻어 거기서 모아서 치성도 올리고. 지도자도 없을 때여. 여럿이 뭉쳐서 계모임의 의장 하나 제대로 없이 그냥 그렇게 뭉쳤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런데 거기는 이 상호 씨가 집이 없어. 집이 당시 시기리에 있던 집도 그것도 남의 집이여. 그래서 거기 앉어 있을 사람이 없고 하니께, 이 상호 씨가 그 건물에 앉아 있었단 말여. 김 규찬 씨가 보천교普天敎 시대에 차車 교주를 모시고서 그 교체를, 종교가 되기 때문에 우주원리로 수화금목토 그렇게 짜거든. 토주土主가 교주여, 교주의 보좌역은 수화금목이 되는거여, 토주는 차월곡 차 경석 씨고. 금주金主는 같이 일을 하자고 했던 김 규찬 씨여. 수화금목이 흙을 떠나서는 안 되는 거거든, 그래서 토가 중앙이 되는겨.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보천교 건물을 지었는데, 치성 때 상제님을 믿든지, 차 교주를 믿든지, 한 뿌리다 이거여. 차 월곡이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치성의전致誠儀典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쟎어. 치성에 내가 한두 번 다니는데 이 한우라고 하는 사람이 충청도를 같이 가자 이거여. 대흥리로 집회장소를 옮기기 전부터 욕심이 많은 사람인디 대흥리로 이전을 하기 전부터 자꾸 충청도를 구경시켜달라고 그려. 상리학상으로 보면 그 사람이 입속이 시퍼렇고 아주 욕심쟁이여, 어딘가 모르게 삐뚤어진 것도 할 수도 있는거구. 그래서 그 사람을 따돌리고 왔는디, 대흥리로 나서는데 기어코 따라와서 같이 가자고 그려. 결국 나중에 우리 아버지까지도 그 사람 편이 되더라고.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우선 이 상호李祥昊 씨가 갑자년(1924)에 보천교 혁신운동을 했어. 지금도 어지간히 판 밖의 사람도 나이 먹은 사람은 보천교의 갑자년의 혁신은 다 알어. 이 상호 씨가 서울에서 진정원 원장으로 있었거든? 그렇게 있으면서 보천교普天敎하고 갈등이 나서 보천교를 때려부시자 혁신운동이 일어났는데, 서울의 깡패들을 사가지고 대한민국 보천교에서 그거 시원찮은 거 한 방이면 꼴딱하쟎어! 서울서 몇몇이 힘깨나 쓰고 주먹 쓰는 사람들 써서 어떻게 해서 혁신파가 졌다네. 대흥리가 그래도 더 쎘던가 봐.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어찌되었든 종국적으로 이상호가 졌어. 그러고서 보천교에 있을 수가 없으니께 진정원 원장 명의로 소유권이 되어 있었던지 그걸 3만 원에 팔았어. 그러고 2만원은 어음으로 가지고 그 동생 이 정립하고 고등학교 다니는 여학생을 이상호가 원래 꼬아서 있었던 모양이여. 그를 데리고 만주로 갔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 진부를 확실히 판단을 못했는데 우리 증산도 대원출판사 사장인 부종정이 글을 쓰잖어. 동양학 이렇게 한다. 통곡하는 민족혼. 나중에 쓴 책은 상제님 진리를 바탕으로 쓰는 모양여. 자꾸 홍 성렬이 못되게 구니께 우리도 우리대로 사실을 알아보자 하고 대학생 연합회장 학생들에게 <보천교 연혁사普天敎沿革史>를 얻어 오라고 해서 보니께 전부 중 한귀퉁이것지.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때 이 상호 씨의 비리가 하나 나오는데 진정원 팔아서 만주로 도망가는데 고등학교 여학생 꼬아서 좋은 패물을 많이 해주고 만주로 데리고 갔더라는 내용이 있었어. 이 상호 씨가 그렇게 호색하고 못되 먹었나 봐. 그걸 쓰것다고 해서 세상에 아버지보다 더 당한 사람이 있냐. 그거 쓰고 파헤치면 종국적으로는 도성덕립 전에 알아보았댔자 실덕失德되는 거니께, 그걸 파헤쳐서 뭐 할려고 그러느냐 말여. 그런 사리에 부당한 일을 해쌌고.

  

<2변 도운 121(1991).3.4 강론>*홍 성렬이가 제 뿌리를 매도하고 말여. 부종정이 개인적으로는 내가 아버지요, 신도로써 종도사인디, 그 사람도 의리의 사나이니깐 아버지를 모시구서.... 하루에 그 사람은 요즘도 아침을 못 먹어. 아침을 먹을 수도 없고. 시간도 없고. 그 사람은 돈 만 원도 들고 다니는 사람 아니여. 그 죽을 고생을 해가면서 장가도 안가고 그 사람 동창들은 자식들이 다 고등학생이여. 화가 날 거 아녀. 너무 죽어지낼 필요 없다고 글을 쓰것다구.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이 한우 씨를 더불고 충청도를 나왔는데 이 상호 그 역적 같은 놈 소리가.... 보천교에서는 이 상호 인간으로 취급을 안 했어. 서자출신 해원한다고, 보천교해서 진정원 팔아서 딸년 같은 여자 꼬셔서 만주로 도망가고. 아주 이 상호는 보천교의 공적이여. 보천교는 이 상호를 아주 그렇게 매도하고 인간사의 양심, 종교적으로도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놈이라고 한다. 이 상호란 역적 같은 놈을 어떻게 상대하냐? 그 개 같은 놈하고. 흥찬이 자네나 이 상호· 이 정립하고 하든지. 좋으면 같이 그 놈하고 하든 말든. 우리하고는 이야기 할 것 없네 그런다 말여. 이 한우가 다녀가고는 아주 싹 그렇게 됐어. 그러면서 보천교와 별 관련 없는 젊은이들, 내가 내 나름대로 만들어 놓은 그런 사람들만 남았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하나 예를 들면 홍성군 운암면 금곡리에 광천 다 가다보면 겹개리에 김 은재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 옆에 김 흥재라는 사람들, 뭐 그런 사람들 포교를 시켜놨는데, 싹 이 한우에게 뭉쳐서 보화교普化敎라는 것을 만들었어. 이 한우, 이 순택이 보천교니께, 보천교가 변해서 되는거니께 보화교普化敎라고 해야 한다고 그네들끼리 싹 뭉쳐서, 일은 내가 (다 하고) 다 어만 사람이 떡 들어와서 보화교普化敎라고 다 훔쳐가고 그러더라고. 내가 근 일 년을 남의 다리를 긁었어. 새로 또 꾸며야지!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더불고서 철길 옆으로 철도를 따라 다니면서 포교를 하고 다녔어. 철로라는 것이 생활도 안정되고, 정신이 안정되고 교통도 좋고 해서.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러는 동안에 집회장소를 옮겨야 하는데 갈 곳이 있냐 말여. 용화동으로 옮겼는데, 이 상호 씨 건물이 삼 칸 오막살이 하나가 용화동에 있어. 그건 이 상호 씨 개인이 살 수 있는 집이지. 우리 단체하고는 무관하고. 또 수용능력이 없어서 마침 옥성광산 거기가 노다지가 나던 곳이여. 그 사무실을 얻어서 금산여관 자리 그 사무실을 내가 샀어. 삼분의 이는 내가 내고 나머지는 신도들 몇이 내고. 신도가 몇 명이나 되냐 이 말이여. 몇 명 없지. 그 눈먼 장님을 더불고 다니면서. 그걸 뭐하러 이 상호를 눈먼 장님을 쫓아 다녔는지. 내가 자살행위를 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서울서 도장 잘 새기는 사람 최 기석이라는 사람을 내가 데려다가 의통인(印)을 새기는디, 그때 50 전인가 50 원씩인가를 줬어. 매 개 새길 때마다. 그리고 나서 그건 하루저녁에 되는 게 아니니께 그건 일방적으로 정리를 하고. 그러니께, 말로만 본부도장이고 돈이 있나 신도도 없고. 그러니께 내 호주머니 돈이 공금이고 그렇게 4년을 지냈었어. 이 상호 씨를 그날 내버려두면 똥수깐에 빠지게 생겼어. 이 정립 씨는 감옥살이 3년하고 8.15후에 나와서 서울서 하숙하고. 그래서 같이 일하자는 생각에 나가서 밥 먹자고 하면 먹고, 담배 피우고 그랬지.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런데 그 사람이 <대순전경大巡典經> 제호題號 쓴 임경호林敬鎬씨 집에서 하숙을 했어. 그 하숙비도 내가 줬어. 내가 책이나 쓰라고 했어, 이 정립 보고. 그래서 <대순철학大巡哲學>이라는 게 그래서 쓴겨. 그거 책 쓰는 것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쓰는 거 아니쟎어? 한 2년을 썼나 봐. 이 정립 씨가 하숙을 하러 서울 합정동 27번지 근처로 갔어. 서울에도 연락소 하나는 있어야 되쟎어. 그래서 대법사 연락소라고 이 정립 씨가 거기 있었거든? 일을 누가 했냐? 최 규석 씨가 다 했거든? 나이도 많은데 농사짓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것어. 그래서 내가 지금 돈으로 10억 가지고 있었을 겨.

  

◎❀증산교❀는 내가 만들어 놓은 거여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내가 그런 능력을 갖고 뱃심도 좋았고. 영등포 같은데서 마이크 걸어놓고 포교를 하면 석 달 만에 교회가 문 닫았어. 그럼 목사가 와서 뭐라고 그려. 왜 신도관리 못해서 다 잃어버리고.... 재주 있으면 내 신도 다 가지고 가라고 그렇게 포교를 했어. 그러면 신도가 많아지고 그래서 무슨 조직을 해야 할 거 아녀. 그 때 까지만 해도 특별히 교주敎主고 그런 것도 없어. 이 정립(李正立)이 양말, 양복도 다 내가 사주고. 이 상호(李祥昊) 경제문제 다 알쟎어. 누가 그렇게 돈을 줘? 그러면 나 건드리면 그 사람들 경제활동이 없어지거든. 내 의사에 항의할 수도 없고. 이런 문구가 내게 해당될 겨 -동충서 남주북- 나 혼자 활동을 해도 한 대여섯을 활동을 했어. 단시일 내에 활동을 해서 사람을 많이 모았어. 최 규석, 경상도 이 원호 같은 사람들 뭐 나하고 싸울 일이 있었나. 내가 웬만하면 다 받아주고. 그래서 조직을 하자. 그 조직이름을 ❀증산교❀라고 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신도도 내 사람이고. 포교라는 것은 내 기운을 붙여야 포교가 되어. 그 때는 이 간부들을 어떻게 했냐면. 간부들 전국적으로 모아놓고 조직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간부직을 준다. 감투를 쓸려면 이런 공이 있어야 된다. 우선 먼저 실적을 만들어라. 반드시 내가 절 받고 다짐하고 그런 마음으로 포교를 하면 포교가 되어. 그렇지 않으면 뭐가 되어? 그래도 똑똑한 사람이 간혹 있어, 그렇지만 건방진 수작하고 그러면 그 사람 되덜 않어. 내게다 절을 하고 그 사람들이 되어, 그 사람들하고 조직을 했어. 내 몸뚱이가 하는거지.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러면서도 증산교 교칙을, 조직을 하는데. 그 때는 이 상호 씨한테 청음 선생이라고 했어. 우리 아버지 연배니께 말여. 당신이 의통 얘기하는데 천하에 다 공개된 사실인데. 내가 당신한테 받은 게 뭐가 있냐? 내가 당신 지켜주고 당신 동생 생활시켜 주고 그런 거 밖에 없는데 조직으로 하자. 그래서 내가 <수주>여. 이 상호 씨가 <토주>고. 내가 포교한 김 종렬이가 화주이고. 경상도 이 원호라는 사람이 목주고. 서울 합정동 27번지 최 규석이라는 사람이 금주여. 내가 조직을 위해서 조직 정비하고 의통을 이 상호 씨에게 반환을 했어. 받건 말건 동지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역사적으로 이 상호 씨 밑구녕 닦아주기 위해서 생겨난 게 아니다. 다만 상제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차 교주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리의 사도로서 그러는 거지.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이 정립이 50여살 넘었을 때 자기 집이 없으니께, 마누라도 없고. 이 정립이 돈 일 푼이 있나? 또 늙었고 해서 이 정립한티 시집온다는 사람도 없고. 그런 사람이 장가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혀. 그건 지 부모도 어떻게 하덜 못혀. 그래서 내가 안 되는 일이 어딨냐고. 내가 결혼시켜 준다고 말여, 내가 책임진다고. 그렇게 해서 결혼시켜서 아들 삼형제를 낳게 해줬어! 그 중에는 교수도 있고. 이 정립이는 신명이 다할 때까지도 나한테 은혜를 다 못 갚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대법사大法社에 입사원서여, 입사원서에 입사금으로 그때 돈 50원을 받았어. 쌀 한말 값이 50원했어. 그래서 이 상호 씨 보고 입사금入社金으로 쌀 팔아 먹어라. 그래도 됩니까?. 내가 그래라고 했으니 되는 거 아니냐? 그런데 포교를 못하니께, 입사금入社金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려. 그것도 안 되니까 옥성광산의 아랫 칸이 비었고 그랬으니까 가족을 전부 더불고 오라고, 내가 쌀을 팔아주마. 쌀 밥 먹게. 이사하구서 내가 쌀값을 주니께 좋은 옥배미 밥을 먹는단 말여. 이 상호씨 부인이 배가 아퍼서.... 이 상호씨 살림도 내가 돌봐 주었는디 말여, 신도들도 드나들고.

  

<2변 도운 121(1991).3.4 강론>*그러면서 그네들도 그런대로 다 밥 먹고 살게 해줘. 이 상호 씨 부인이 하얀 쌀밥을 보니께 ....이 상은 씨가 금평호 오리알터 <법종교> 있쟎어 글로 가 버렸어. “우리 집 안사람이 인간적으로 (이상호 부인이) 미워서 여기 안 있는답니다.” 그래서 나갔어. 이 상호 씨 부인 미워서. 이 상은 씨는 그렇게 못살게 해서 잃어버리고. 또 이 돈영 씨도 꼴 보기 싫다고 그리 가 버렸어. 이 상호 부인 하는 짓거리 때문에.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이 돈영 씨가 포교한 이 원호, 당시 65살 정도 됐을까? 도체 조직할 때 사람이 없으니께 목주로 하고. 거개가 이 상은, 이 돈영 그런 사람들 많이 끌고 그랬거든. 화주가 내 신도다 말여. 이 상호 심부름꾼 그런 거 하고 싶지 않다 말여. 김 종렬 씨 같은 이, 최 규석 씨 같은 이, 목주로 있는 이 원호 같은 이 말여, 다 내 영향권에서 일하고 있고.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 사람들하고 같은 위치에서 이 상호 씨 밑에서 있을 수 있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래서 내가 조직에서 빠졌다 말여 할 수 없이. 실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이 창용이란 사람이 있었어. 차력을 하는 사람인디, 어금니로 트럭 중 최고로 큰 트럭이여. 그걸 쇠줄로 이렇게~ 해서 이 어금니로 트럭을 잡아끄는 사람이여. 배를 깔고 있으면 배 위로 트럭이 지나가. 그 사람은 원래 장사여. 지 까짓 것이 어디에 쓸 것이냐. 그게 무슨 소용 있냐고. 살려면 그 따위 것 버리고 내 심부름이나 해라. 나보다 열 댓 살 더 먹었지. 이놈이 당장 무릎 꿇고 선생님께 심부름이나 하겠습니다. 그런다고 그 버릇이 고쳐지나. 개안도 시키고 신명도 보고 네 조상을 봐라~! 그래서 내 그림자처럼 쫓아다녔어. 가족이야 얼마 안 되니께, 쌀이나 좀 팔어 주고 그러니께 그 가족도 좋아하지. 건달하다 나 같이 좋은 선생님 따러 다니면서.

  

<2변 도운 121(1991).3.4 강론>*이 창용이가...이것이 이 창용 명부인데(명부 보여주심) 이 사람이 윤 명규라고 윤 보선씨 친척을 포교하고, 또 진천에 가서 여러 사람을 포교를 허구. 우선 이야기를 해야 할 사람이 은 태석이란 진천 신도가 있는디, 은 태석이를 포교를 했는디, 진천에 한판이 잔뜩 되었거든? 그 놈이 지금 용화동의 교주인가 무슨 종정도 하고. 그리구 용화동에 박 달수라고 하는 운전하는 무식한 놈이 있는디, 나를 보면 ‘당신 말여 행정적으로 처리한다’고 이런 천고의 반역자 새끼들 말여!(박달수는 홍범초가 주동되어 조직한 증산종단연합회 회장 역임)

  

<121(91년).3.4 강론>*차력하다 들어왔다는 이 창용말여, 그 자가 온양 초사리 사람인디 진천을 가서 한판을 차렸어! 진천 신도 중에 윤 태섭이라고, 그때는 청장년이었어. 지금 아마 62-3살 됐나? 그 윤 태섭이가 박 달수를 포교했어. 박 달수란 놈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놈인지. 이유 없이 내게 도전을 해여. 날 보면 얼굴빛이 달라지고. 그 자도 용화동의 책임자로 선출되는 일급간부거든. 종교가 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여. 그리고 지금 교화원장이라던가, 고 형신이라는 자가 있는데, 천안 지나 망향동산이라는 휴게소 그 동네 살어. 본래 온양 살았는데 이창재가 포교를 했어. 그 자가 면장을 하다가 용화동을 갔는데. 시골에서 면장이라도 지냈으면 사람이 껄이라도 좀 벗어지고 허니께, 그 사람에게 간부 책임을 맡겼나봐.

  

<121(91년).3.4 강론>*그리고 내가 참고로 이야기 할 것이 있는데, 여기 지금 한 윤식이라고 부산 서부도장 한교정이 증인으로 있는디, 한 윤식 교정이 여기 실장으로 있을 때 증산도 포정실이라고 있을 때 실장으로 와서 있었거든. 그 때에 아산에서 어떤 손님이 왔습니다. 선생님을 뵙는다고. 누구냐! 아산에서 왔는데 윤 택룡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김 종수라고 합니다. 내가 그 사람 만난 것은 얼마나 못되졌나 볼려고 만났어. 저기 식당 청학동가서 점심 먹는데, 아산서는 모두들 안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김 종수는 만주에서 사범학교를 나왔어. 영등포 무슨 극장에서 청소나 해주고 방을 지키고 하는 일을 했는디. 하도 불쌍해서 내가 쓸려고 시험도 해보고 하니깐 그런대로 쓸 만혀. 그때에 내가 상제님 사업하는데 인재양성하려면 고등학교라도 있어야 되겠다. 근디 최종 목표는 증산대학이였어. 그게 지금 대산 중학교 되고 했는데.

  

<121(91년).3.4 강론>*김 종수헌티 당장 내가 옷을 사주고 해서 우선 집에가 있어라. 내 집에 가서 세상말로 목구멍 때 베끼고 있었을 것 아녀, 허니께 오죽 푸짐한 생활 했겠냐. 그렇게 해서 내게 심부름하고 4-5년 했나? 그러다가 아산으로 와서 안산만 있는 태창이란 곳이 있어. 지금은 거기서 200석 추수하나봐, 그런대로 식견도 있고. 그 자가 상제님 도판에 별로 모르는디가 없어, 맨날 내 심부름해서. 또 모르는 신도도 별로 없어, 그렇게 내 그늘 속에서 그 자가 컸건만 여기 한 교정이 같이 처음 만나서 떨어질 때까지 행동을 봤거든. 김 종수라는 놈은 지가 몇 억 재산이 되는 거거든. 참 나를 공적으로는 제 선생이요, 제 어버이 노릇까지 다 한 사람이여. 다만 담배 하나라도 혹시 때 점심 값이라도 내가 밥값 애끼는 사람도 아니고. 오늘 점심은 지가 점심을 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잖어! 나한테 점심 먹는 것은 지당 지당한 걸로 아주 태도가 그려.

  

<121(91년).3.4 강론>*그리구서 내 처제가 여기 살어. 동서가 의사가 하나 있어. 우리 집 마누라가 제 애미 비슷할꺼여. 사람이라면 그 손에서 밥도 수 없이 먹고. 제 똥 묻은 빤스 다 빨아주고, 지 큰 살림에... 아무리 남남이지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지가 뭔데 우리 마누라 죽었는데 내가 상처된 지 13년 되었는데 뭐 사모님이든, 여편네든,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서 그 여자한테 밥도 얻어먹고 똥빤스라도 다 빨아 입고 참 고마웠다고 한 마디라도 할 수 있거든. 인간이라면. 개도 지 주인을 아는디 말여. 전혀 말 한마디 없고 150% 모른 척 해버리고 그러구서는 내 처제 집을 소개해 달라는 거여. 그리서 내가 ‘종수 그런 것 까지 안내해줄 수 있겠어?’ 내 본성대로하자면 이 새끼 그건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발길로 내 차버리지 말여.

  

<121(91년).3.4 강론>*2변때 붙은 신도라는 사람들이 전부 다 150% 그 자와 같은 거여. 나는 인간세상 너무 너무 별스런 것을 다 봐서 사람이란 것이 이럴 수가 있냐 말여.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결론을 내렸냐면 말여. 복 받는다니께 붙어있고 의통 얘기가 있고 산다니깐 붙어 있는거지. 속담에 그런 말 있쟎어. 정승의 말이 죽었다니 아침도 안 먹고 말 죽었다고 위안하러 정승 댁 가는디, 정승이 죽었다니 늦장 부린다. 왜 꿈쩍도 안하냐고? 아! 끝나지 않았어? 그 때는 정승이 살았으니 아부하러 쫓아가야 하고, 참 세상은 하잘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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