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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2서 문(김경진)
서        문


1. 이 책의 목적과 글의 전개 방법

이 책을 쓰는 큰 목적은 예수께서 원래 전하고자 하셨던 말씀들이 모든 사람들-특히 기존의 성실한 기독교인들-에게 올바르게 전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신학자들이 신약 복음서들 속에 들어있는 편집이나 삽입 및 왜곡의 흔적들을 지적해 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 내부에서 다루어진 데에 불과할 뿐, 그로 인해 예수님이 하신 것으로 되어있는 왜곡들이나 복음서가 잘못 제시하고 있는 비뚤어진 방향을 수정하려는 노력은 외적으로 행해진 바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비록 보고 배운 것이 천박하지만 기독교를 바깥에서 관심 깊이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작업을 시작함으로써, 종래의 기독교인들이 수천 년 동안 가슴 한편을 짓눌리면서 살아온 원죄라느니 죄악, 사탄, 마귀, 심판, 멸망, 죽음, 지옥 등과 같은 부정적 개념들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유인으로서 밝고 맑고 따뜻하게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타종교에 비해 두드러진 편협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독교가 원래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의 원대한 폭과 깊이를 되찾아,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류의 영적 의지처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예수께서는 기회만 있으면 유대인들을 통렬하고 신랄하게 꾸짖으셨다. 나는 근 이십 년 동안 그 이유를 궁금하게 여겼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뜨거운 사랑과 연민에서 비롯된 답답함, 계속 빗나가는 자식 때문에 속 상해하는 부모의 마음임을 깨닫고 가슴이 메어지는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외람되지만 저자 또한 이와 비슷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바이다.

   글을 전개하는 방법으로는, 첫째, 대표적 신약성서인 마태복음의 내용 가운데 저자의 논리와 지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수록하고 둘째, 그에 대해 저자의 눈에 비치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한 다음, 셋째, 그 부분이 정통 신학자의 지적을 받고 있는지를 살펴본 뒤, 넷째,「탈무드 임마누엘」이라는 책에는 그 부분들이 실려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 다섯째, 복음서와 「탈무드 임마누엘」 내용의 폭과 깊이를 비교해 보기로 할 예정이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원래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이 이천 년이 지난 우리들의 지성과 논리에 비추어 보아도 전혀 하자가 없는, 실로 엄청난 지혜의 말씀들이었음을 미약하나마 간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2. 종교의 전체적 쇠퇴 현상과 그 원인
일반적으로 우리는 ‘인류는 진화 발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즉, 과거에 비해 인류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발전해오고 있고, 또 앞으로도 발전해 나갈 것으로 믿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해왔던 종교는 분명히 쇠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의 기성 종교 가운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오고 종교는 하나라도 있는가? 근세 이후 우리 한국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독교만 보아도 본고장인 서구 사회에서는 교인들의 숫자나 신앙에 대한 의존도는 줄곧 낮아지고만 있다. 도대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1) 진리는 사람을 찾지 않는다.

산악 등반가로서 기사(騎士) 작위를 받은 힐러리라는 이는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고 말했다. 그렇다. 산은 다만 제 자리에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올라오라고 손짓하지도, 왜 왔느냐 내려가라고 등 떠밀지도 않는다. 정상에 올라도 너 애썼다고 땀 닦아주는 법 없고, 중간에서 내려온들 왜 마저 올라오지 그러냐고 섭섭해하지도 않는다. 잘못해 부상을 입거나 심지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안타까워하는 일 없고, 정상에 오른 인간들이 자기 정수리에 깃발 꼽고 ‘정복했습네’ 하고 깝신거려도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진리 역시 산과 마찬가지다. 진리가 사람들을 찾지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헤맬 뿐이다. 진리 역시 우리에게 오라 손짓하지도 않고, 찾은들 잘했다고 치하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있을 따름이다. 산은 아무리 높아도 태양 아래에서 형태를 나타내고, 잘 하면 그 정상을 우리가 밟아볼 수라도 있지만, 진리는 우리가 확연하게 감지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것이 과연 진리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이것이 진리라고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도, 내가 인식하지 못하면 그뿐,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합당한 진리를 스스로 발견하거나 깨달았을 때에는 절실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가슴으로 그것을 느끼게 된다. ‘아, 이것이 바로 그것,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로구나!’ 하고 가슴이 ‘두근두근’ 고동치고 온몸이 ‘찡’하니 전율을 일으킨다. ‘그래, 이거야!’하고 내 가슴이 맞장구치는 느낌, 그 뿌듯함과 희열, 그리고 홀연히 밝아지는 눈앞…. 자신이 자신에게 합당한 진리를 발견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뿐이다.

2) 진리의 종류 :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

‘진리는 시공을 초월한다’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진리로 간주되고 있는 것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진리에도 대별하면 두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즉,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절대적 진리는 진실로 만고불변하겠지만, 백 년도 못되는 짧은 세월을 사는 우리 인간들로서는 쉽게 인식하기 힘든다. 따라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진리의 대부분은 사실 상대적 진리에 속하며, 인류가 진화하고 발전함에 따라 진리로서의 그 빛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기독교 천지 창조설의 근간 논리인 ‘천동설(天動說)’ 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중세 서구에서 무려 이천 만에 가까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그 ‘절대적’이던 진리가 말이다. 또한 ‘지적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행성은 지구뿐이다’라는 말 역시 이제는 진리로서의 빛을 잃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절대적인 진리란 어떤 것일까? 예를 들어, ‘진화 발전하고 있는 삼라만상의 모태(母胎)인 우주 역시 진화 발전한다’는 가설은 어떤가? 나는 이것이 절대적 진리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는 우주의 홀로그램적 일부를 이루고 있는 삼라만상의 생장소멸을 보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고, ‘위에서 행해지는 것은 아래에서도 행해지며, 작은 데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큰 데에서도 이루어진다’는 황금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를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시야를 넓혀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 눈에 보이는 땅은 편평하지만, 시야를 넓혀서 지구 바깥으로 나가있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우주인의 눈으로만 보아도 ‘지구가 둥글다’는 말은 실감할 수 있다. 이 때 ‘지구는 둥글다’는 말은 절대적 진리라고 할 수 있고, 제 눈에 보이는 대로 ‘지구는 편평하다’라고 하는 말은 상대적 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장소멸의 진화 과정을 밟는 우주의 핵심 에너지를 창조주라고 칭하면서, ‘창조주는 완전 무결하고 영구 불변하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게 된다. 또, 생장 소멸하는 우주의 핵심을 ‘참된 나(眞我)’ 혹은 ‘큰 나(大我)’라고 하면서 ‘나고 죽지도, 더럽혀지지도 깨끗해지지도, 커지지도 줄지도 않는다’ 라고 하면 그 또한 상대적 진리에 불과하게 된다. 상대적 진리는 인간의 지성이 높아짐에 따라 그 한계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3) 기독교의 한계 : 상대적 진리의 보고(寶庫)

기존 기독교의 기본 틀이 ‘삼위 일체설, 동정녀 수태설, 예수 부활설 및 보속설(補贖說), 천당․지옥설’ 등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항상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는 상대적 진리로 가득 차 있다는 창고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또 이 틀은 신약 복음서의 존재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4대 복음서가 상대적 진리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말이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한 마디로 저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간단히 말해서 복음서에 근간을 둔 기독교의 교리는, 마치 땅에 금을 그어놓고, 이쪽에 서면 ‘내 편’ 저쪽에 서면 ‘네 편’으로 구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하고 외치는 것이 그것을 적나라하게 입증하고 있다.
   가가호호를 방문하면서 전도하는 열성 기독교인들을 흔히 본다. 나는 정말로 안타깝다. 자신조차도 앞을 못 보면서 그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겠다고 나선 맹인과 다름없지 않은가? 스스로 절대적 진리를 탐구해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 그 귀하다는 복음서의 내용조차도 스스로 깨치지 못하고 목사나 전도사의 머리와 입을 빈 주제에, 소위 ‘예수 안 믿는 불신자들’에게 삶에서 제일 소중한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동분서주한다. 자신의 가정과 가족을 돌보아야 할 아까운 시간들을 낭비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간과 정신까지 뺏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소금과 촛불이 되면 족하다. 그 누가 짠맛과 빛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옆에 모이고자 하지 않을 것인가? 현재의 상황은 밀가루와 반딧불이 ‘나 소금’, ‘나 촛불’하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요즈음 중고생들이 봉사 점수를 따기 위해 관공서나 자선기관 등을 쫓아다니는 꼴을 보는 것과 똑같은 참담한 기분이 든다. 죽어 천당 가는 데에도 내신 성적이 필요하고 거기에 전도 점수가 반영되는가?

4) 예수님의 방향 수정과 복음서 기자들의 왜곡

예수의 행장(行狀)을 기록하고 있는 신약복음서들은 이론상 예수 이전 유대인들의 역사서인 구약과 노선을 달리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원래 신과 그들의 메신저-예언자-들이 전한 내용을 구약의 기록자들이 왜곡하여 전했기 때문이며, 예수께서 구약과 전혀 다른 방향을 유대인들에게 제시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비뚤어진 방향을 바로잡고자 하셨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구약의 가리키는 방향과 신약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차이가 없다. 신약의 복음서를 읽어보면, 모든 것이 다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지 않는가? 예수께서는 원래의 자신들이 제시했던 방향조차 틀렸음을 깨달은 신인들의 요청을 받아 그 방향을 옳게 바로잡고자 이 세상에 오셨던 것이다. 예수 스스로도 분명히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이처럼 인간이 걸어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 번 올바르게 제시한 예수의 손가락을 신약 복음서의 기자(記者)들은 또 한 번 약간씩 비틀어 놓았다.
   미약하나마 저자가 솔직히 평가하자면, 신약 복음서의 교리는 바울의 주장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바리새인의 껍질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정신적 혼미(昏迷)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채로 단지 예수의 기적적인 능력에만 경도되어 개종한 열성파 기독교인이었던 그(본명 사울)를 중심으로 한 소위 초기 기독교 교부(敎父)들-초대 교황 베드로는 충직한 사람이었지만 머리는 이름 그대로 반석(盤石)이었다-이 예수께서 가리킨 손가락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놓았고, 그 뒤의 종교 권력자들이 그 손가락 자체에 조금씩 도금을 거듭해 놓은 것이 신약 복음서인 것이다.

5) 중병환자 되기를 자청하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인들

세례 요한도 그랬지만, 예수께서는 종종 당시의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을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부르며 질타하기를 서슴지 않으셨다. 그 분이 왜 그처럼 독사의 자식들 같고 음란하고 사악한 세대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로 오신 줄로 생각하는가? 예수 자신도 말씀하셨듯이, ‘의사는 환자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혹시 그대는 명의(名醫)의 치료를 받고 싶어 스스로 죽을병에 걸리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대 역시 아마 단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다르다. 무수히 많다. 보라.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재림을 학수고대하는 한편, 유대인이 되기를 자청하여 아브라함과 이삭을 조상으로 섬기고 있지 않는가? 이 무슨 비극인가? 모든 인간의 모범이신 예수를 본받으려 노력하고, 그 분이 전하신 인간의 길을 걸어가면 그만이지, 꼭 죽을병에 걸려 그 분의 치료를 받아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6) 필연적으로 허울이 벗겨지는 상대적 진리들

예수께서 지상에 오셨던 지도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당시로서는 꿈도 꾸지 못했을 정도의 발전을 구가하고 있다. 당시에는 물론 불과 이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했을 첨단 문명의 산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유치원 아이들조차도 당연히 생활의 일부로 알고 있는 주변 기기들-자동차, 비행기, 헬리콥터, 잠수함, 무선전화, 컬러TV, 냉장고, 비디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 핸드폰, 랩탑 컴퓨터, DVD, MP 3, 위성 통신 등...-만 해도 그 종류와 숫자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실정이다.
   이천 년 전 사람들이 밤하늘의 비행기를 보았다면 무엇이라 했을까? 헬리콥터가 이착륙하는 것은? 헬기에서 탐조등이 내리쪼이고 확성기에서 말이 들린다면? 탱크가 포탄을 쏘아대는 것을 본다면?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레이저 총을 쏘는 것을 본다면? 또 지하철이 움직이고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것을 보았다면? 어쩌면 우리가 복음서에서 보고 있는 대로, 별이 길을 안내하고 거대한 잠자리가 큰 소리를 내면서 날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둘리더라고, 집채만한 쇠풍뎅이가 긴 뿔로부터 큰 알들을 하늘 높이 쏘아대더라고, 또 그것들이 떨어진 곳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소돔과 고모라에 머물 듯 하더라고, 천사가 영광의 홀을 내밀자 사람들이 기절하더라고, 큰 뱀이 거대한 굴 속을 달리면서 그 속으로 사람들을 삼켰다 뱉었다 하더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천 년 전 사람들이 선대(先代)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일화들을 자신들의 인식 범위 내에서 적은 글, 또 필사가 거듭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가감과 편집이 행해진 글들이 소위 ‘신약성서’들이다. 물론 기자나 편집자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는 진리에 부합하는 신성하고 용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그들 나름대로 절대적 진리인 것으로 믿고 첨삭과 편집을 가한 내용들이 실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절대적 진리들 대신 자리잡고 앉아 있게 된 것이다.
   문명과 지성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지는 상대적 진리들을 납득하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수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흔히 목사 등의 기독교 사제들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가도 믿음으로 뛰어 넘으라’고 설득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신학교에서 성서 비판론을 배울 당시, 정통 신학자들이 해 놓은 실로 엄청난 양의 지적에 대해서 또 그들의 비판에 반박할 여지가 없음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웠을 터이다. 물론, 그 후에 믿음(?)으로 뛰어넘었든 현실과 타협했든 했을 터이지만 말이다.


3. Q 성서와 「탈무드 임마누엘」

오랜 세월에 걸쳐 복음서를 연구하는 동안 신학자들은 복음서들의 원전이 되었음직한 어떤 책이 있었음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존재 여부가 불분명한 그 책을 가칭 ‘Q 성서’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마침내 1963년 예루살렘 근교 야산의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암굴 유적의 안쪽 납작한 바위 밑에서 수지(樹脂)로 방부 처리되어 있는 두루마리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하층민들이 상용하던 아람어로 기록된 임마누엘의 행장기(行狀記)였다. 충격적인 것은 그것의 앞부분을 기록한 사람은 예수를 배신한 자로 이천 년 동안 알려졌던 이스카리옷 유다였으며, 뒷부분을 기록한 사람은 예수의 친아들인 요셉이라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무덤을 발견한 사람은 기독교 정교회의 사제였던 이사 라시드였고, 그 안에서 두루마리를 발굴한 사람은 스위스인(人) 빌리 마이어였다. 라시드는 두루마리의 앞부분 1/4 정도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마이어에게 보냈고, 마이어는 이를 정리하고 체계를 갖추어 책으로 출판하였다. 이에 대한 상세한 전말은 「탈무드 임마누엘」에 수록되어 있다.
   독일어로 옮겨진 1/4 정도의 두루마리 내용은 빌리 마이어에 의해 1976년 독일에서 타자본으로 출간되었다. 마침내 ‘Q 성서’에 해당되는 책이 「Talmud Jmmanuel」이라는 이름으로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92년에 「The Talmud of Jmmanuel」이라는 이름으로 영어판이, 1994년 말에는 한국에서 「탈무드 임마누엘(향후 TJ로 약칭)」이라는 이름으로 한글판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역사상으로 기독교의 경전이 애초에 현재의 신․구약을 이루고 있는 성서들만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몰몬경이나 보병궁 복음서처럼 후세에 새롭게 나타난 복음서들도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지만, 2천 년 전에 당시의 언어로 기록된 복음서가 예루살렘의 유적에서 발굴된 것은 「탈무드 임마누엘」의 원본이 되는 두루마리 외에는 달리 없다. 하지만, 그 두루마리가 진정 유다에 의해 기록된 예수님의 행장기인가, 또 정말로 ‘Q 성서’에 해당하는 것인가 하는 점은 이제 증명할 길이 없다.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난민 수용소 폭격으로 두루마리 자체가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드시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도 또한 의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행실로, 책은 내용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내 진리가 반드시 그대에게도 진리여야 하는 법은 없다

절대적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리고 사람을 속박하지 않는다. 사람을 속박하기에는 너무나도 그 시야가 넓다는 것이 절대적 진리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옳다’, ‘그르다’하는 논쟁의 소지가 추호라도 있는 것은 그만큼 좁은 시야를 갖는 상대적인 진리에 불과하다.
   모름지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지상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진화 과정을 밟고 있다. 따라서, 부자지간, 부부지간, 친구지간, 동기간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은 똑같을 수가 없다. 혹시 일란성 쌍둥이 혹은 ‘소울메이트(soulmate)’끼리라면? 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 역시 궁극적인 진화 과정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갑에게 진리인 것이 을에게도 진리여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고, A에게 진리가 아니라고 해서 B 역시 부인할 것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생명체의 천부적 권리다.
   지금도 저자처럼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면서 특정 종교를 신봉하지 않으면서도 잘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종교를 가지고 더 잘 지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말이다. 내가 산이 좋아 매주 등산을 한다고 등산하지 않는 사람들 나무랄 이유가 없는 것이나, 주말마다 골프 치는 사람들이 안 치는 사람을 비판할 이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로 그대에게 이 글은 물론 기독교의 복음서들이나 TJ 혹은 CT를 읽어보라고, 더 나아가 그 내용을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들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내용이 ‘꿀처럼 달’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별 거 아니네’ 싶을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는 ‘겁나게 헷갈리는 글’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도대체 말도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대가 원하면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정독하고, 자신의 가슴이 말하는 대로 따를 일이다. 설혹 그대 주위의 어떤 이-부모, 스승, 친구, 선후배 혹은 연인-가 정말 좋은 내용이라고 읽고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하더라도, 그대가 읽어볼 수는 있어도 자신의 가슴이 맞장구를 치지 않는 한 그대 자신의 진리는 아닐 수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5.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영어판 TJ를 처음 접한 것이 1994년 초, 내 나이 마흔 살의 일이다. 어려서부터 생사(生死)와 초자연 현상 및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십대 중반부터 기독교의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항상 페이지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이해 안 되는 부분들-비논리적인 부분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그 뒤 30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황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앉아 있겠는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으려 시도해 보았어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고, 40 이후로는 사람마다 자신의 진화 수준에 맞는 진리가 달리 있음을 인정하고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사실 나로서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지만-에 가까운 친구로부터 TJ의 한글 초역 원고를 검토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고, 그것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TJ를 무수히 정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남의 원고에 손을 대는 일은 이중으로 어렵다. 원서의 뜻을 우리말로 정확히 옮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거기에 덧붙여 초역자가 ‘왜 이렇게 번역을 했는가’하는 이유도 짚어내고 설명할 수 있어야 그 사람에게 떳떳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역을 마칠 때까지 어림잡아 TJ를 스무 번쯤은 읽었는데, 매 번 읽을 때마다 복음서들 속에서는 논리가 통하지 않던 부분들이 마치 초 칠한 마루를 미끄러져 나가듯이 매끄럽게 논리가 통하는 것이었다. 작업하는 몇 달 동안 나는 예수께서 왜 어째서 그런 말씀들을 하셨는지를 마치 그 앞에 앉아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한 구절 한 구절 옮길 때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광경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고 그 분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온몸으로 전율을 느껴가면서 “맞아, 그래, 그렇지! 맞는 말씀이야! 이게 이렇게 되어야 옳지!”하고 무수히 무릎을 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비유로 말하자면, 편평하고 네모난 지구를 설명하고 있는 복음서의 내용을 TJ를 통하니, 구형(球形)의 지구뿐만 아니라 광대한 우주 전체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원대하고 심오한 내용으로 탈바꿈하더라는 말이다. 한 마디로, 그 내용이 ‘꿀처럼 달더라’는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그대에게 TJ를 읽으라고 강요하거나, 또 그대에게도 읽은 뒤의 느낌이 나와 같이 ‘꿀처럼 달기’를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혹시라도 기회나 계기가 없어서, 영적으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TJ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면, 이 책을 통해 TJ의 내용 일부를 접해보시고, 직접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바람일 뿐이다.


6. TJ를 권하는 저자의 심정

   또 비유다. 한 사람이 어느 음식점의 햄버거를 먹어봤는데, 그 맛이 여태까지 먹어본 온갖 햄버거는 물론 모든 음식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최고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즐겨 먹는 것은 물론,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맛을 칭찬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사서 먹여 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권유로 그 집 햄버거를 먹어보는 사람들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햄버거 자체를 처음 먹어본 사람도 있고, 몇 가지 햄버거를 먹어본 사람들도 있고, 그 특정 햄버거를 질리도록 먹어본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또 개중에는 입맛에 맞는 사람도 있고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을 알면, 설혹 자신의 입에는 그렇게 잘 맞는 햄버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만 하다면,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을 가까운 사람에게 권하는 행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 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내가 임마누엘-예수-과 기독교를 진실로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TJ라는 책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를 신약 복음서와 비교 대조해 보임으로써, 내가 쌓고 있었던 불신이라는 담장이 얼마나 탄탄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TJ를 통해 얼마나 쉽게 무너졌는지를 그대가 한 번 체험에 보시라는, 그래서 그대에게 TJ를 직접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하고픈 내 마음이 담겨 있다.


7. TJ와 CT

이 재건이라는 분과 제임스 디어도프라는 분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 두 분은 서로를 전혀 모르고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 하지만, 두 분은 TJ를 접한 뒤 삶의 방향이 바뀌었고, 또 TJ와 또 나 그리고 그대와 깊은 관련을 맺게 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 재건 씨는 재미교포로서 개신교의 목사였다(현재도 그런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92, 3년도에 영어판 TJ를 읽고 그 내용의 진실성에 감복한 나머지, 목사직을 사퇴할 각오로 이 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국내로 들여온 분이다. 비록 내가 그이의 번역에 손을 많이 댄 뒤 출판을 했고 원저자인 빌리 마이어로부터 사후 출판 승인을 받는 등 보완을 하기는 했어도, 한글판 TJ가 태어나기까지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신 분이다.
   제임스 디어도프. 이 분은 원래 오레곤 주립대학의 천문기상학과 교수였다. 권위 있는 과학 저널들에 무려 100 편이 넘는 논문들을 발표하는 등-이 정도의 숫자는 장난이 아니다- 과학자로서 또 교수로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던 분이다. 그는 빌리 마이어의 UFO 접촉 사례의 진위를 몸소 조사를 시작했다가 TJ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본인이 책을 직접 읽어본 결과, 이 책이 조작이 아닌 원전일 가능성이 높다는 심증을 굳히는 한편, 이에 대한 면밀한 신학적인 연구 조사 및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교계 혹은 학계, 그 어디에서도 그런 일을 맡아 스스로의 입지를 위험하게 만들려 할 사람이 없음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분은 스스로가 그것을 감당하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교수직을 조기 은퇴한 뒤 본격적인 신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이 1991년도에 출간된 「씰레스티얼 티칭즈(Celestial Teachings. CT로 약칭)」라는 책이다.
   CT는, 이 글과는 달리, TJ의 진위 여부를 신약 복음서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신학자가 이미 책으로 출간해 놓은 복음서 비판, 그것도 TJ가 참조했을 가능성이 없도록 1976 이후에 출간된 비판서가 지적해 놓은 복음서의 내용들을 근거로 하여, TJ 역시 마찬가지로 비판을 받는가를 중점적으로 검증해 놓은 책이다. 다시 말해, 디어도프 자신이 이렇다, 저렇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성서 신학자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기존의 복음서들과 TJ를 비교해 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도록 해 놓은 책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가 내린 결론은 ‘TJ는 성서신학자들이 제기한 그 많은 비판들로부터 자유롭더라’ 하는 것이다. 즉, TJ의 내용에는 기존의 신약복음서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이나 첨삭의 흔적들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글판 CT는 대원출판사에서 원 출판사와의 계약과 이미 번역을 끝내고 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 UFO, 외계인과의 접촉, 고대 문명, 외계 문명, 채널링 등 뉴 밀레니엄에 걸맞은 외국 지식들의 과감한 국내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출판사가 대원출판사다.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내며, 하루 빨리 CT가 출간되기를 고대하는 바이다. 참고로 이 책의 말미에 TJ와 CT의 목차를 실어 놓기로 한다.


8.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성장․발전하게 되어있다. 생명체가 태어나 성장하다가 늙어 죽고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성장․발전의 일환이다. 삼라만상의 모태인 우주조차 생장소멸하면서 진화를 해나가고 있는 마당에, 그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들 가운데 정체되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다. 그것 역시 성장․발전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한국인들 가운데 설사 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기독교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눈을 돌려보지 않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어설프게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보다 기독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 또한 기독교에 관해서 할 말이 적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어설픈 기독교인들에게서 느낀 점, 고려해 주었으면 하는 점이 있다. 즉, 이들은 마치 평생을 바깥을 출입하는 일 없이 동굴 속에서 살면서 동굴 안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불러 세워서는 동굴 속으로 들어와서 같이 살자고 설득하는 사람들 같다는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자기네 나라가 지상 낙원인 줄 알고 살던 ’90 년 이전의 북한 사람들 같다는 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독교 바깥의 사람들은 다루는 화제가 문학, 역사, 민속, 철학, 타종교, 심지어는 전생, 윤회, 환생, 외계인, 차원론, 채널링 등 온갖 분야를 다 넘나드는데, 이들은 열이면 아홉이 성서의 테두리-그나마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니는 교회의 목사나 전도사들에 의한-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대화를 고집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야 서로가 무슨 의미 있는 대화가 나누어지며 물이 썩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그 성서 자체가 왜곡된 부분들을 적지 않게 내포하고 있는 마당이 아닌가?


9. 당부와 축복

이 글은 원래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이 영적 공부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어떤 종교, 어떤 종파의 사람이든지- 읽더라도 쉽게 알아듣고 수긍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었다는 것, 즉, 교인과 비(非)교인의 구분이 애초에 필요치 않는 우주적 진리를 전하신 것임을 밝히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그대가 쉽게 구입해 읽을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TJ 즉,「탈무드 임마누엘」을 제시하고 있다.
   그대에게 굳이 존대를 하지 않는 점과 다소 신랄한 표현이 들어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나는 기독교가 상대적 진리를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고 받아들이는 교인들만의 편협한 종교의 틀을 벗어나, 우주의 삼라만상을 포용할 수 있는 거대한 진리의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답답하고, 그 밝고 맑고 따뜻한 예수의 말씀이 어둡고 답답한 굴레로 변질되어 교인들의 목을 조이고 있는 실정에 가슴이 메이는 사람이다.
   그대가 이 말을 받을 만하면 받아서 이 책을 열린 마음으로 읽어보고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진리가 원래 그대의 가슴 안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원한다.
   임마누엘의 사랑과 창조의 지혜가 그대와 함께 하기를...

            선도산 하(下)에서
            唯存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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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비밀글입니다 8 논리적 의문들 14-16  안원전   2003/07/08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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