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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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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천국과 지옥 Heaven and Hell-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의 영혼의 세계



천국과 지옥 Heaven and Hell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의 영혼의 세계


글쓴이 개리 래취맨(Gary Lachman)

옮긴이 박윤정



스웨덴보르그의 영적 체험을 통한 [천국과 지옥]의 실체를 밝히는 이 글은 미국의 뉴에이지 저널인 《그노시스 Gnosis》 1995년 여름호에 실린 것을 본지와의 제휴로 실은 것입니다. 엠마뉴엘 스웨덴보르그의 이 글을 두 번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다음 호에는 그의 지옥에 대한 견해와 천국과 지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에 관한 글이 이어지게 됩니다. 글을 쓴 게리 레취맨은 여러 정신세계 잡지에 기고하고 있으며, 영국 록그룹 [블론디Blondie’의 작곡가로도 활동한 바 있습니다.

이 신비로운 스웨덴의 영성가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영혼의 여행을 통해 우리를 빛으로 휘감을 진정한 사랑의 거처 '천국과 지옥'을 목격했다.



관습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일상의 세계가 유일한 세계는 아니라는 생각은 공상적인 기이한 생각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실재(Reality)의 전부라는 물질주의적인 시각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식의 이해가 자리잡은 건 근래의 일이다. 고대의 인류와 문화는 결코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들이 실재의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물질계를 확신하듯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실재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일례로 중세인들에게 있어 영적인 세계는 나무나 집의 존재처럼 아주 분명히 실제하는 것이었다. 물질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며 물질계 너머의 세계에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놓여 있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이처럼 영적인 세계의 실재를 더욱 확실하게 믿도록 만든 것 같다.



미지의 저 세상에 대한 정직한 안내자 스웨덴보르그

오감을 통해 인식한 것이 실재의 전부라는 견해가 지난 수 세기 동안 우리의 문화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그 한편에선 언제나 또 다른 세계의 실재를 인정하는 사상의 조류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이 두 가지 개념들이 흥미로운 변증법적 상호 작용에 들어섰다.



신경과학자들은 인간 정신의 신체적인 기반으로 추정되는 것에 천착하는 반면, 대중문화에선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한 스케일로 또 다른 세계를 포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영혼의 시장’엔 채널러와 물리학자, 신비주의자, 온갖 분야의 선지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 중엔 물론 진실로 유익한 지혜를 설파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소 미심쩍은 가르침들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소설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백년 전의 지구처럼, 우리의 내면엔 아직도 미지의 아프리카 대륙과 인적미답의 보르네오 섬, 아마존 습지 같은 곳들이 존재한다.] 또 다른 세계로의 이끌림과 함께 이 세계에 대한 탐구의 어려움을 토로한 대목이다. 미지의 영역에서는 길을 잃기 쉬우며,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없을 경우엔 그곳을 다녀왔다는 사람의 주장도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들의 기묘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확고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밝힐 방법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말이다. 하지만 진실로 현명한 방법은 역시 믿을 만한 안내자를 찾는 데에 있을 것이다.



두 세계의 장벽을 뚫어버린 놀라운 염력

근대에서 다른 세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도 일관된 안내자의 한 명으로 스웨덴의 선지적 철학자인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그의 책을 논하면서 올더스 헉슬리가 스웨덴보르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심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천국과 지옥』은 분명 영계를 다룬 서양의 정전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훌륭한 안내서이다.



심각한 영적 위기를 맞이했던 1745년, 57세의 스웨덴보르그는 이를 계기로 그 이전은 물론 이후까지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훌륭한 영계 안내서를 만들어냈다.



귀족의 칭호를 받기 전까지 스웨드베르그(Swedberg)로 불렸던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는 1688년 1월 29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772년 3월 29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천사나 영혼들과의 대화를 기록하는 데에 스무 해도 넘는 세월을 바친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이 세계와 저 세계간의 장벽을 뚫어버릴 수 있는 그의 능력을 확실하게 입증해 보였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달, 그는 영적인 세계를 통해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그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존 웨슬리 자신은 누구에게도 이런 소망을 고백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광범위한 설교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웨슬리는 스웨덴보르그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영적인 세계를 통해 당신이 나와 간절히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란 웨슬리는 유감스럽지만 방문을 몇 달 뒤로 연기할 수밖에 없으며,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에 뵐 수 있으면 감사하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그러자 스웨덴보르그는 내달 29일이 되면 자신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므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회답했다. 실제로 스웨덴보르그는 그가 예견한 바로 그 날, 이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예언은 그의 놀라운 염력을 입증해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의 생애를 다룬 책들을 보면 그의 이런 능력에 대한 기록들이 무수하게 실려 있으며, 그 자체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들이다. 그래서일까? 영계에 대한 그의 저작물들은 괴테나 윌리엄 블레이크, 헨리 제임스, 사뮤엘 테일러 코울리지, 오노레 드 발자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어거스트 스트린드베리 같은 주목할 만한 인물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뿐만 아니라 랄프 왈도 에머슨 같은 경우는 그를 일컬어 [평범한 학자들로서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는 문학의 거성]이라고까지 했고, 자기 나름의 색다른 방식으로 이미 보이지 않는 세계에 거주하고 있던 헬렌 켈러 같은 경우는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들을 담은 그녀의 점자식 책들 속에 영적인 세계의 비밀들을 가득 채워 넣었다. 하지만 이들이 스웨덴 보르그에게서 이토록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은 결코 그의 사소한 이적들(minor miracles) 때문은 아니었다.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그린 영계 지도

그렇다면 이처럼 무수한 사람들에게 스웨덴보르그가 엄청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실제로 천국과 지옥을 가 보았으며 다시 돌아와 아주 세밀하게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스웨덴 보르그는 내면의 세계가 아닌 외면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데에 생의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했다. 그의 학문적 열정은 그야말로 탐욕스러웠다. 덕택에 영적인 위기를 맞이할 즈음 그는 이미 야금학에서부터 두뇌 해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역에 걸쳐 엄청난 양의 글을 쓴 저자이자 정치가, 광산의 감독원으로서 스웨덴에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대단한 수완가이기도 했다. 일례로 배 몇 척을 산 넘어 내륙으로 운반하는 일을 원래 일정보다 훨씬 앞당겨 완수하기도 했다.



요컨대 스웨덴보르그는 결코 모호한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실제적이고도 체계적인 접근법으로 영계의 지도를 그려냄으로써, 천국과 지옥에 대한 자신의 기록에 논리적인 일관성을 부여했다. 이는 덜 꼼꼼했던 다른 탐구자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미덕이다.



윌슨 반 뒤센의 말처럼, [내면으로의 여행은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간과했던 것들을 설명하는 개인의 가치와 시각을 근본적으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스웨덴보르그는 당대의 과학과 철학에 두루 정통했지만 정작 자신의 내적인 삶, 즉 감성의 세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적인 위기를 맞이하던 시기, 그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인간의 두뇌 안에 있는 영혼의 자리, 당대의 신경 과학자들도 계속해서 찾고 있던 그 자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결국엔 영혼에 대한 그의 과학적인 탐구에 가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진정한 집, 인간 정신의 내적인 영역들로부터도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가 『꿈일지(Journal of Dreams)』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를 이런 깨달음으로 인도한 것은 일련의 파편적인 비젼들이었다. 한창 그런 비전들에 시달리기 시작할 즈음, 꿈에 예수가 나타나 스웨덴보르그에게 [건강 증명서]를 갖고 있냐고; 전염병을 옮긴다는 오해로 죽을 뻔했던 사건을 암시하는 것; 물었다. {주여, 저보다 주께서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하거라.} 스웨덴보르그는 자신이 영적인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들게 되리라는 것으로 이 꿈의 의미를 해석했다.



그 영적인 위기를 통해 스웨덴보르그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영적인 세계에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 예로 『천국과 지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보다 내적인 영역과 관계를 맺는 만큼 천국과 교류할 수 있다.]


[출처] 스웨덴보르그가 전하는 영혼의 세계|작성자 신비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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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보르그(Emanuel Swedenborg : 1688~1772)1)




스웨덴의 위대한 발명가, 과학자, 신학자이자 영시자였던 스웨덴보르그는 1688년 스톡홀롬의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목사인 동시에 대학의 신학교수였다. 어릴 때부터 종교적으로 독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인생의 궁극의 문제에 대하여 사색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의 부친은 그가 종교세계의 큰 인물이 될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생 때 과학과 계몽주의에 대해 열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자형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 것을 계기로 과학에 대한 깊은 탐구심도 가지게 되었다. 1709년 21세의 나이로 웁살라 대학 졸업한 그는 선진 문물과 과학을 익히기 위해 런던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과학발전의 중심지였고 스웨덴은 상대적으로 뒤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머무는 동안 그는 아이작 뉴턴, 후람스지드, 하레, 도 라일등 저명한 수학자 및 물리학자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 무렵 그는 이미 비행기계, 잠수함, 속사포, 공기펌프, 소화펌프등 여러 가지 발명설계도를 고안하고 또한 라틴어 시를 작시하기도 했다. 5년간의 해외생활 후 스웨덴으로 돌아온 그는 28세 때 스웨덴의 광업을 관리하는 광산국의 임시감사관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57세 때 스스로 퇴직할 때까지 광산국의 감사관으로 봉직하면서 광업분야에 많은 연구와 공헌을 하게 된다. 광산국에 근무하던 기간 동안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광업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영역에 대해 활발한 탐구 및 저술활동을 펼쳤다. 그 기간 동안 그가 발표한 아래 저서 목록들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분야에 대하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연구"(1714), "토양과 진흙"(1716), "화석"(1716), "입체측량"(1716), "사물의 원인"(1717), "지구의 정지"(1717), "소금의 증류"(1717), "상업과 공업"(1717), "불과 색채"(1718), "대수학"(1718), "경도의 측정"(1718), "지구의 회전"(1719), "수위"(1719), "운동과 그 본질"(1719), "용광로"(1719), "기하학 및 대수학"(1719), "열의 보존"(1722), "조류의 계산방법"(1722), "정수역학"(1722), "철의 가공에 대하여"(1723), "유황과 유황철에 대하여"(1724), "소금에 대하여"(1725), "철학과 해부학상의 잡다한 테마에 대하여"(1733), "경험적 심리학"(1733), "마음과 몸의 메커니즘"(1734), "인체"(1734), "무한과 유한"(1738), "근육의 일반론"(1740), "피부와 혀"(1740), "인쇄술"(1740), "뇌 1권~4권"(1740), "미립자론"(1740), "우주의 수학적 원리"(1740), "섬유"(1741), "생식기관에 대하여"(1743), "꿈에 대하여"(1744), .........2)




그는 이상과 같이 활동으로 야금학, 채광학, 공병학, 천문학, 물리학, 동물학, 해부학, 재정학, 경제학. 성서연구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 나갔다. 그는 또한 9개 국어를 구사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의 책들은 주로 라틴어로 출판되었다. 그 당시의 학자들의 언어가 라틴어였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듯 여러 분야에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절정기에 달하고 있었던 1743년경(당시 55세)에 스웨덴보르그는 인생의 극적인 전환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는 밤마다 꿈을 꾸면서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고 그의 영안이 서서히 열리게 된 것이다.3) 1744년 그는 하느님의 비전을 보았고 1745년 4월 또다시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이후 그는 비로소 천사와의 완전한 교섭을 가지게 된다. 즉 1745년 4월(당시 57세) 이후 스웨덴보르그는 각성상태에서 자유로이 영계를 보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천사와 영과 완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 때(1745년 4월) 일어난 사건을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단골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그대여 과식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 사람은 내게 그 말만 남기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뒤에 구름이나 안개 같은 것이 방안 가득히 피어올라 나를 에워쌌다. 그러더니 이내 구름 또는 안개가 흔적도 없이 걷히고 나는 전과 같이 나 혼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밤중에 앞서 나타났던 분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그 분은 그때, 자신이 우주신이며, 세계의 창조자, 속죄자이며, 성서의 영적 의미를 인간에게 설명해 주기 위하여 나를 택한 것이고 내가 그 주제에 관하여 써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설명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밤에 영적 눈이 열렸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것들의 실제성, 영들의 세계, 천계, 지옥을 철저하게 확신하고 그곳에서 온갖 상태의 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지인(知人)들을 보았다. 그날부터 나는 세상의 모든 과학의 연구를 단념하고 주님이 나한테 쓰라고 명령하신 대로 영적인 일에만 정력을 쏟았다. 그 후에도 주님은 낮 동안에 여러 번 나의 영안을 뜨게 해 주셨다. 그래서 낮 동안에도 나는 다른 세계를 보았으며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 천사와 영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때부터 그는 과학적 저술활동을 포기하고 신학적 저술과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적인 메시지 전달에 전념하기 위해 57세 되던 해 그는 급여의 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금으로 받기로 하고 광산국에서 퇴직을 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면서 그의 체험을 담은 36권의 대저작을 남겼다. 그가 특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영안이 열린 뒤의 30년간의 삶 때문이다.




그가 보고 온 영계




그는 55세 때부터 시작된 특수한 능력 및 체험에 근거하여 그가 보고 온 영계에 대하여 여러 권의 저술을 남겼다. 그가 영계에서 보고 온 것에 대한 기술은 "영계일기", "천계와 그 경이 및 지옥", "쳔계의 비의", "결혼애(結婚愛)", "영의 세계" 등의 책에서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근본적으로 현대의 심령론의 가르침과 큰 차이가 없다.

그에 따르면, 사후에 영혼은 사자를 인도하기 위해 온 영계에서 온 영을 만나게 되며, 그 인도령의 안내로 정령계로 가게 되는데 정령계로 간 영혼은 검사령의 앞에서 인간으로 살았던 모든 기록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시 검토하게 된다. 또한 그에 따르면 영혼 상태에서는 모든 지각이 인간보다 훨씬 정묘하게 살아 있게 되고 영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없으므로 생각하는 즉시 원하는 곳에 가 있을 수 있으며 상대방의 생각을 바로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주변에 원하는 환경을 바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영계에 대한 그의 저술 중 일부를 아래에 소개해 보자.




"자연계의 그 어느 것도 영적인 기원에 의하지 않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그것을 존재시키고 있는 그 본질은 영적인 것이다."



"신의 사랑과 신의 지혜는 원질과 형태 그 자체이며, 그러므로 참다운 실재이며 유일한 실재인 것이다."





"영은 물질적 신체를 가지고 생활했을 때의 지각보다도 훨씬 예리한 지각을 가지고 있다.....  영은 시각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승의 한낮의 빛도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한 빛 속에 살고 있다. .... 그들은 또 듣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더구나 그것은 그들이 이승의 신체 안에 가지고 있던 것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정묘한 것이다. ..... 또한 인간의 의식은 생존시보다 사후에 훨씬 더 명석 또는 명확하게 된다. 왜냐하면 영적인 상태의 존재에서는 자연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 천 개의 관념 속에 포함되어 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이 하나의 관념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은 죽음으로써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으며, 신체를 가지고 있을 때보다 모든 점에서 여전히 더 완전한 인간인 것이다."




"나는 영계의 큰 산 정상 위에 서 있었다. ..... 나는 처음 보는 영계의 경관에 소리도 못지르고 서 있었다. ..... 그것은 참으로 장대한 경관이었다. 서쪽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빙산들이 나의 시야를 가릴 듯이 솟아 있었고 그 봉우리의 높이나 길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며 장려하였다. ....... 산맥의 끝에는 멀리 푸른 바다같은 것이 펼쳐져 있었다. 그 넓이가 어디까지 계속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바다 우측에는 높고 낮은 암산들이 여러 모양으로 솟아 있었다.

이상이 나의 시야 저편에 보이는 경관이었으나 나와 경관 사이에 실로 여러 가지 잡다한 것이 보였다. 거기야말로 영(靈)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었다. 그 세계에는 강과 산 그리고 초원과 계곡도 있었다. ...... 즉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그곳에도 있었다. 더욱이 도시나 시골 같은 곳도 있었고, 주택들도 연이어서 있거나 드문드문하게 서 있었고 영들도 여기저기 있었다."




"인간의 사후의 영은 정령계(精靈界)로 처음 들어가며, 그곳에서 일정기간을 지난 후엔 어떤 영은 영계로 가고 어떤 영은 지옥계로 간다. 그러면 영계와 지옥계 그리고 정령계(精靈界)는 어떤 관계일까? 영의 세계는 실제로 지금 말한 세 가지 세계를 한꺼번에 묶은 것이다. 그 중에서 정령계는 영의 세계에서는 ??중간지대??라고 말할 수 있는 특별한 세계이며, 영계와 지옥계는 각각 성질을 달리하는 영들이 살고 있는 두 개의 상이한 세계인 것이다. ........ 지옥계는 영계의 지하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사후 정령이 된 자 중에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가게 되는가를 말하자면 결론적으로 영에 눈뜨지 못하고 영계의 존재를 볼 수 없는 정령들이 지옥에 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현세에서 악업을 하였으므로 하나님에 의해 벌을 받고 지옥에 보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바에 따라서 스스로 지옥에 가는 것일 따름이다. ....... 지옥으로 가는 정령들은 현세에 있었을 때 인간의 외면적, 표면적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예를 들면, 물질적 욕망, 색욕, 명예욕, 지배욕 등등)에만 마음을 쓰고 진정한 영적 일에는 극히 무시해 버린 사람들이다."




"인간은 살아 있을 때의 비행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악행이 사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다.

신은 아무도 지옥에 내던지지 않는다. 아무도 지옥에 보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떠나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도 그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신의 형벌에는 보복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실로 우리가 말해 온 것 같은 신의 형벌 또는 천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믿음에 따라 자기 자신 위에 형벌과 가책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신은 결코 아무도 지옥에 던지시지 않는다.(물론 고문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악한 영은 지옥이라는 곳에서만 친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거기에 끌리어 가게 되는 것이다. 악한 영은 천계로 들어가려고 해도 순결한 천계의 영기를 견디어 내지 못하고 거꾸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의 이적들




그는 영적능력을 지니게 된 55세 이후 많은 이적을 행하였다. 그의 이적들은 그의 주장들의 진실성을 뒷받침해주는 굳건한 토대가 되고 있다. 이하에서 유명한 그의 이적들을 몇 가지 소개하는 것으로 그에 대한 서술을 마치고자 한다.




스톡홀름의 화재




1759년 여름. 대중의 주목을 사로잡은 첫 번째 사건은 스웨덴보르그가 예테보리(Gothenberg)시의 윌리암성(城)에서 시장 및 고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만찬에 참석하고 있을 때 일어났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스웨덴보르그(당시 71세)는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같이 식사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동안 혼자 정원에 나가 있었다. 한참 후에 돌아온 그는 사람들에게 ‘스톡홀름에 무서운 화재가 발생했다. 우리 집 근처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화재의 진행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화재가 어디서 시작해서 지금 어디가 불타고 있는지 그리고 불이 점점 꺼져가고 있다는 것과 어디서 꺼지기 시작했는가를 눈으로 직접 보듯이 설명하였다. 스톡홀름은 300마일(5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손님들은 그가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녁 8시경 스웨덴보르그는 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신이여 감사합니다. 화재가 내 집으로부터 3번째 집에서 멈추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손님 중 하나였던 시장은 너무나 진기한 일이어서 그날 저녁 만찬이 끝난 뒤에 스웨덴보르그를 그의 집으로 불러서 스웨덴보르그로부터 그 화재의 정확한 진행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 놓았다. 다음 월요일 저녁 스톡홀름의 상공위원회의 전령이 화재보고서를 가지고 도착했다. 그에게 화재의 전 과정에 대하여 물어본 결과 스웨덴보르그의 앞서 진술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마뜨빌 부인(Mme. de Marteville)




1760년 봄, 마뜨빌 부인은 남편이었던 네덜란드 대사를 막 여의어 미망인이 된 상태였다. 한 은세공사가 그녀에게 그녀 남편이 죽기 직전 구입하였던 은 세공제품에 대한 대가로 아주 거액의 청구서를 보내왔다. 그녀는 그 대금이 이미 지불되었다는 것을 확신하였으나 그 영수증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기 때문에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영과 교신할 수 있는 스웨덴보르그의 탁월한 능력을 전해들은 그녀는 그에게 접근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스웨덴보르그(당시 72세)는 만약 그가 영계에서 그녀 남편을 만나면 기꺼이 그 이야기를 전해 주겠다고 대답했다.

며칠 후 스웨덴보르그는 마뜨빌 부인에게 그녀 남편을 만났으며 그녀 남편은 그녀에게 직접 와서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 주겠다고 말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다음 주에 그 미망인은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그녀의 남편이 나타나서 오래된 책상의 어떤 서랍 뒤를 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깨어난 후 남편의 지시대로 서랍 뒤를 찾아 보았다. 그녀는 잃어버린 영수증뿐만 아니라 한동안 잃어버렸던 다이아몬드 머리핀도 찾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스웨덴보르그가 그녀를 방문했다. 스웨덴보르그는 그녀에게 ‘그녀 남편을 다시 만났으며 그녀 남편이 대화 도중에 그녀의 꿈속으로 가봐야겠다고 하면서 사라졌다’라고 전했다.




여왕의 비밀




1761년 가을, 스웨덴의 루비사 우라카 여왕은 스웨덴보르그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그녀는 측근인 세페르 백작에게 죽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이 인물이 혹시 미치광이가 아니냐고 물었다. 백작은 스웨덴보르그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며 다음 번에 그를 왕궁으로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하여 스웨덴보르그(당시 73세)는 왕궁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여왕은 그에게 그녀의 죽은 오빠인 오거스틴 윌리암과 교신을 부탁했다. 스웨덴보르그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여왕은 그의 능력을 진심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진지하게 질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며칠 뒤에 그가 다시 궁정을 방문했을 때 여왕은 그를 보고 가벼운 말투로 오빠로부터 무슨 전갈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스웨덴보르그는 여왕에게 사람들이 안 듣는 곳에서 둘이서만 대화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였다. 여왕과 스웨덴보르그는 방의 저쪽 편에서 가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여왕은 스웨덴보르그가 한 말에 심한 쇼크를 받아 침실로 물러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 여왕은 스웨덴보르그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을 영계의 오빠로부터 듣고 왔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4)




상인의 죽은 친구




1770년경 엘바페스트의 한 상인이 당시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던 스웨덴보르그(당시 80세)를 찾아갔다. 그는 스웨덴보르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고 그의 저서를 읽은 일도 있었다. 상인은 스웨덴보르그에게 책을 읽고 크게 감동했다고 하면서 그가 정말로 영계와 접촉할 수 있는지 확실한 증거를 보러왔노라고 말했다. 그 상인은 ‘신학을 공부하다가 결핵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병들기 전에 자신(상인)을 찾아와 중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것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였는지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스웨덴보르그는 그 죽은 친구를 접촉해 보겠노라고 하면서 2~3일 후에 다시 찾아와 보라고 말했다. 수일 후 다시 찾아온 상인에게 스웨덴보르그는 “당신들은 성서의 ‘만물의 창시자’에 대해 논쟁을 한 모양이더군요”하고 말하면서 상인과 친구가 각각 어떤 입장에서 논쟁했는가를 상세한 내용까지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상인은 새파랗게 질려서 스웨덴보르그에게 죽은 친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황을 물었다. 그는 이후로 스웨덴보르그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믿게 되었다.




존 웨슬리(John Westley) 목사




1771년 겨울 영국의 유명한 목회자인 존 웨슬리는 스웨덴보르그의 신학에 관한 저술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스웨덴보르그를 직접 만나서 토론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후 그는 스웨덴보르그(당시 83세)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가 스웨덴보르그에 대한 관심을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놀랐다. 그 편지에는 “나는 영의 세계로부터 당신이 나와 대화하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당신이 방문해 주신다면 기꺼이 만나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웨슬리는 즉시 스웨덴보르그의 편지에 답을 하였다. 웨슬리는 편지에서 그가 6개월 일정의 여행을 막 시작했기 때문에 그 여행 말미 무렵 그와 만났으면 좋겠다고 썼다. 스웨덴보르그의 답장은 처음 편지처럼 그를 놀라게 했다. 그 편지에는 그가 내년 3월 29일날 영원히 영계로 올라가기 때문에 제안된 날짜는 너무 늦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스웨덴보르그의 죽음




1772년 3월, 84세였던 스웨덴보르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3월초에 스웨덴보르그는 그가 묵고 있던 하숙집의 하녀에게 3월 29일 5시에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5) 그래서 그녀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3월 한달 동안 많은 스웨덴보르그의 친구들이 방문하여 그의 신학적 저술의 진실 여부에 대하여 마지막 말을 해보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에게 일부 종교지도자들이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진술들을 철회할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했다. 스웨덴보르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진실만을 적었다. 모든 종류의 악을 피함으로써, 그리고 하느님의 말을 열심히 탐구함으로써, 당신들이 하느님을 가까이 하고 열심히 섬긴다면, 생을 살아가면서 점점 더 확신할 진실만을....... 당신이 당신 눈앞의 나를 보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내가 적은 모든 것도 진실이다. 그리고 허락만 되었다면 나는 더 이상의 것을 말했을 것이다. 당신도 영원의 세계로 가게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나와 당신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1772년 3월 29일 그는 하녀에게 몇 시냐고 물었다. 그녀가 5시라고 대답하자 스웨덴보르그는 “좋군. 그 동안의 수고에 감사한다. 신의 은총이 있기를”이라고 말하고 두려움이나 걱정스런 모습 없이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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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다음의 서적과 웹싸이트를 참고로 하여 "내안의 나"가 정리한 것입니다.
조지 트로브리지, "스웨덴보르그傳(Swedenborg: Life and Teaching)", 송산출판사
스웨덴보르그, "영의 세계", 도서출판 동암
http://www.swedenborg.com - 스웨덴보르그 재단(Swedenborg Foundation)
http://swedenborg.newearth.org - Newearth Swedenborg BBS
http://www.swedenborg.org.uk - 스웨덴보르그 소사이어티(Swedenborg Society)  

2)  조지 트로브리지(George Trobridge), 스웨덴보르그傳(Swedenborg: Life and Teaching),

     송산출판사  




3)  이 체험을 기록한 글은 나중에 "스웨덴보르그의 꿈"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4)  이 이야기는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 그로 하여금 이러한 사례를 연구하도록 만들었다. 칸트는 그의 저서 "어느 영시자의 꿈(Dream of Spirit Seer)"에서 스웨덴보르그의 젊었을 때부터의 초상현상을 몇 가지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5) 그는 당시 영국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죽기 수일 전부터 모든 하숙집 사람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즐거운 모습으로 마치 피크닉이라도 가는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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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enigmaunveiled.wordpress.com/2009/04/28/emanuel-swedenborg/


Emanuel Swedenborg (February 8, 1688–March 29, 1772) was a Swedish scientist, philosopher, theologian and inventor. In 1710 made a tour through the Netherlands, France, and Germany. In London he spend the next four years and he studied physics, mechanics, and philosophy, and read and wrote poetry. Swedenborg wrote to his benefactor and brother-in-law Eric Benzelius that he believed he might be destined to be a great scientist. In one of his letters he includes, somewhat boastfully, a list of inventions he claims to have made, including a submarine and a flying machine.
In 1715 Swedenborg returned to Sweden, where he was to devote himself to natural science and engineering projects for the next two decades. A first step was his noted meeting with King Charles XII of Sweden in the city of Lund, in 1716. The Swedish inventor Christopher Polhem, who became a close friend of Swedenborg’s, was also present. Swedenborg’s purpose was to persuade the king to fund an observatory in northern Sweden. However, the warlike king did not consider this project important enough, but did appoint Swedenborg assessor-extraordinary on the Swedish board of mines (Bergskollegium) in Stockholm.
From 1716 to 1718 Swedenborg published a scientific periodical entitled Daedalus Hyperboreus (”The Northern Daedalus”), a record of mechanical and mathematical inventions and discoveries. One notable description was that of a flying machine, the same he had been sketching a few years earlier (see in the foto bellow his Flying Machine).
In 1724 he was offered the chair of mathematics at Uppsala University but he declined, saying that he had mainly dealt with geometry, chemistry and metallurgy during his career. He also noted that he did not have the gift of eloquent speech because of a speech impediment.
Swedenborg’s desire to understand the order and purpose of creation first led him to investigate the structure of matter and the process of creation itself. In the Principia he outlined his philosophical method, which incorporated experience, geometry (the means whereby the inner order of the world can be known), and the power of reason; and he presented his cosmology, which included the first presentation of the Nebular hypothesis.
The 1735 he also published the small manuscript de Infinito (”On the Infinite”), where he attempted to explain how the finite is related to the infinite, and how the soul is connected to the body. This was the first manuscript where he touched upon these matters. He knew that it might clash with established theologies, since he presents the view that the soul is based on material substances.
At the age of fifty-six he started to experience dreams and visions. Swedenborg claimed he had a vision in which God appointed him to write a heavenly doctrine to reform Christianity. He also claimed that from then on he could visit heaven and hell, and talk with angels, demons, and spirits. In the last 28 years of his life, he published 18 theological works, the best known was Heaven and Hell (1758).

The Dreams
By 1744 he had traveled to the Netherlands. Around this time he began having strange dreams. Swedenborg carried a travel journal with him on most of his travels, and did so on this journey. The diary was long unknown and it was discovered in the Royal Library in the 1850s and published in 1859 as Drömboken, or Journal of Dreams.
He had many different dreams and visions, some very disturbing. The experiences continued during his voyage to London. Analyses of the diary have concluded that what Swedenborg was recording in his Journal of Dreams was a battle between the love of his self, and the love of God.

Visions and spiritual insights
In the last entry of the journal from October 26-27 1744, Swedenborg appears to be sure which was the right path for him to follow. So he dropped his current project, and wrote a new book about the worship of God. He soon began working on “De cultu et amore Dei” (”The Worship and Love of God”) but never completed it. One explanation why the work was never finished is given in the following story: “In April 1745, Swedenborg was dining in a private room at a tavern in London. By the end of the meal, a darkness fell upon his eyes, and the room shifted character. Suddenly he saw a person sitting at a corner of the room, telling Swedenborg: “Do not eat too much!”. Swedenborg, scared, hurried home. Later that night, the same man appeared in his dreams. The man told Swedenborg that He was the Lord, that He had appointed Swedenborg to reveal the spiritual meaning of the Bible, and that He would guide Swedenborg in what to write. The same night, the spiritual world was opened to Swedenborg.”
In June 1747, Swedenborg resigned his post as assessor of the board of mines. He took up afresh his study of Hebrew and began to work (1746-1747) on the spiritual interpretation of the Bible with the goal of interpreting the spiritual meaning of every verse.
His life from 1747 until his death in 1772 was spent in Stockholm, Holland, and London. During these twenty five years he wrote another fourteen works of a spiritual nature of which most were published during his lifetime.

In July, 1770, at the age of 82, he traveled to Amsterdam to complete the publication of his last work. The book “Vera Christiana Religio” (”The True Christian Religion”), was published in Amsterdam in 1771 and was the most concrete of his works.
In the summer of 1771, he traveled to London. Shortly before Christmas he suffered a stroke and was partially paralyzed. He died on March 29, 1772.

Swedenborg’s philosophy fascinated many people such as Immanuel Kant, William Blake, Goethe, Arthur Conan Doyle, Balzac, Jorge Luis Borges, August Strindberg, Ralph Waldo Emerson and Carl Jung.

Some claimed Swedenborg was mentally ill. But the analysis of his life establish clearly his sanity and the system of thought in his theological papers is very coherent.

Psychic ability
There are three well known incidents of psychic ability reported about Swedenborg. The first was from July 29, 1759, when during a dinner in Gothenburg, he excitedly told the party at six o’ clock that there was a fire in Stockholm (405 km away), that it consumed his neighbour’s home and was threatening his own. Two hours later, he exclaimed with relief that the fire stopped three doors from his home. Two days later, reports confirmed every statement to the precise hour that Swedenborg first expressed the information.
The second was in 1758 when Swedenborg visited Queen Louisa Ulrika of Sweden, who asked him to tell her something about her deceased brother Augustus William. The next day, Swedenborg whispered something in her ear that turned the Queen pale and she explained that this was something only she and her brother could know about.
The third was a woman who had lost an important document, and came to Swedenborg asking if a recently deceased person could tell him where it was, which he was said to have done the following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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