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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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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천자문(千字文)의 유래(由來)



천자문(千字文)의 유래(由來)



  글공부를 하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으례 읽고 쓰고 외는 것이 천자문(千字文)이다.  천자문이 얼마나 널리 보급되었는지는 흔히 무식한 사람을 가리켜 「하늘 천(天)자 왼다리 글줄도 모르는 자.」라고 비웃는 말로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만큼 이 천자문은 천하의 명작이요, 중국의 역사 속에서 찬란한 빛을 잃지 않는 불멸의 고전이다.  

그러나 이 천자문의 작자(作者)와 그 유래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천자문은 지금으로부터 약 천 육백여 년 전 위(魏)나라의 종요(鍾繇)라는 사람이 지은 글이다. 종요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재질이 탁월하고 뛰어나게 총명한데다가 시문(詩文)에 능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과연 신동(神童)이라 부를 만큼 칭송이 자자했다.  더구나 그는 천문지리(天文地理)에도 통달하여 아무리 청명한 날씨일찌라도, 그가 만약 비가 오겠다고 말하면 어김없이 비가 오고, 아무리 비가 억세게 쏟아지는 중이라도 날씨가 곧 개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개는 까닭에 앞날의 재상(宰相)감으로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옥(玉)에도 티가 있듯이 그에게도 씻을 수 없는 큰 흠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나치게 여색(女色)을 즐기는 것이었다.  일찌기 장가도 들기전에 자기 고을에서 얼굴이 반반한 계집이라면 처녀건 유부녀건 손을 대지 않은 일이 없었고, 그 교묘하고 능숙한 솜씨는 심지어 이웃 고을에까지 미쳤다.  그 피해는 매우 컸다.  종요에 대한 칭송과 추앙이 그칠 길이 없는 만큼 그에 대한 원성 또한 그칠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천자문이 후세에까지 전해 내려오는 동안 불미했던 그의 행실도 또한 전해 내려와 지금도 우리나라의 어떤 지방에서는 아직도 행실이 나쁜 사람을 가리켜 「종(종요의 종)간나 새끼.」라고 욕하는 풍습이 남아 있는 것은 이같은 유래에서이다.  



  아뭏든 종요는 나이 스물이 훨씬 넘어서야 비로소 장가를 들게 되었다.  이것도 물론 매파가 가져온 여자의 화상(畵像)만 보고 기꺼이 정혼(定婚)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장가든 첫날 저녁 신방으로 들어오는 신부의 얼굴을 보니 이것은 여자가 아니라 차라리 못 생긴 남자라고 해두는 것이 좋을 정도로 검붉고, 찌그러지고, 우락부락하게 생겨서 옆에서 구경하는 어른들만 없으면 당장 뛰어나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기만 했다. (내가 왜 이런 팔자를 타고 났던고?) 팔자 한탄까지 한 종요는 어찌나 마음이 언짢고 섭섭했던지 얼마 전에 먹은 음식이 온통 되살아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종요는 돌아누운 채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새웠다. 가장 아기자기하고 깨가 쏟아져야 할 첫날밤의 신방이었다. 종요의 입에서는 애석함을 금치 못해 처절한 신음소리까지 흘러나왔다.  날이 새었다. 한밤을 번민으로 드샌 종요의 얼굴은 마치 오래도록 병을 앓은 사람처럼 초췌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내는 종요 앞에 다소곳이 도사리고 앉은 채, 무정한 낭군에 대한 원망의 넋두리를 늘여놓기 시작했다.「낭군께서는 어찌 그리 무정하오이까? 서로 인연이 있어 백년해로를 굳게 언약하였사오면 부부지간의 금슬도 또한 변치 않아야 할 것이어늘 낭군께서는 첫날부터 이러시오니 어찌 마음을 놓고 일생을 맡길 수 있사오리까? 섭섭하고 서글픈 심정 참을 길이 없사옵니다.」그녀는 애절히 흐느껴 울었다.

그러나 그 애절한 울음소리에나마 아녀자다운 처량함이 깃들었더라면 그래도 사내 대장부의 간장에 속속들이 스며들 수 있었겠지만, 이건 마치 깨진 옹기그릇을 호되게 두들기는 소리나 무서운 맹수의 부르짖음 같아서 듣고 있던 종요는 온 몸에 소름이 쪽 끼치는 것 같았다.  종요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간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처가댁에서는 때아닌 소동에 크게 놀라 종요를 붙잡고 여러 가지 좋은 말로 만류했으나 종요는 끝내 듣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처가댁에서 급히 마련해존 얼마간의 음식을 등에 걸머지고 백여 리나 떨어져 있는 집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떠나보내는 사람은 한결같이 섭섭하고 애절한 마음이 간절했으나 처가댁을 떠나는 종요의 마음은 홀가분하였다. 무엇보다도 몸서리처지는 흉물(兇物)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는 것만이 천만 다행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삐 걸었다. 아니 거의 뛰다시피 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혹시 그 흉측스러운 아내가 뒤쫓아 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와, 어서 그녀의 곁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져가고 싶은 절실한 충동 때문이기도 했다. 한낮이 거의 되었을 무렵, 그는 길가의 서있는 나무 그늘에 주저앉아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쉬면서, 걸머지고 온 음식으로 점심요기를 했다.

그러자 급히 달려온 피로 때문인지 걷잡을 수 없이 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쉴새 없이 걸었다. 처가집 동네는 아득히 바라보이는 지평선 저쪽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그는 아직도 입에서 신물이 났다. 또 한나절을 쉬지 않고 달려가 보니 어느덧 사방이 어두워지고 성급한 별들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적이 마음이 놓인 종요는 보드라운 잔디로 뒤덮힌 언덕 위에 올라앉아 고달픈 다리를 쉬어가며 저녁 요기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였다 비단결 스치는 소리가 문득 나는 것 같더니 바로 곁에 아내가 다소곳이 끓어앉아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아닌가.「저의 집을 떠나신 지 이미 오래시거늘 어찌하여 이곳에 아직 머물러 계시옵니까? 이몸이 생각컨대, 낭군께서 이몸에 대한 깊은 정을 차마 잊을 수 없어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계시는 줄로 아오나, 앞으로 나라를 위하여 큰 일을 하실 대장부께서 어찌 일개 아녀자의 정을 못 잊으시오니까?」 자못 실망하는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넋을 잃고 바라보던 종요는 차라리 자기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귀신일 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가 지금 앉아 있는 언덕은 바로 처가집 담뒤요, 한 낮에 점심 요기 한 큰 나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부인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눈이 휘둥그래진 종요는 겁에 질려 음성이 떨리기까지 했다.「낭군께서 하시는 일이오라 이 몸이 감히 알 바 못되오나, 기왕  날도 저물었아오니 집으로 들어가시어 주무시고 가심이 어떠하오리까?」아내가 권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간절한 것이 아니라 들어가든지 들판에서 자고 가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차가운 태도였다. 종요는 문득 불길 같은 울분이 치밀었다.  

그러나 들판에서 한밤을 지새울 수도 없는 형편이라 할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처가집에 들어가서 능글맞은 구렁이 같은 흉물을 밤새 끼고 자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잠시도 처가집에 머물러 있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종요는 약간의 음식을 짊어지고 다시 떠났다. 종요는 어제와 같은 창피는 다시 당하지 않을 작정으로 앞뒤를 유심히 살펴가며 열심히 길을 걸었다. 심지어는 오고가는 길손들에게 뻔히 아는 길을 물어가면서. 과연 점심을 먹은 곳도 어제와 다르고 저녁밥을 먹으면서 쉬고 있는 곳도 분명 처가집 돌담 뒤는 아니었다  적이 안심이 된 종요는 비로소 쑤시는 듯 아픈 두 다리를 쭉 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일진 광풍이 이는 듯하더니 어제처럼 아내가 자기 앞에 다가와서 다소곳이 끊어앉아 머리를 조아렸다.「어른들께서 허락만 하시오면 낭군과의 인연을 끊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옵니다. 소위 대장부가 한낱 아녀자에 대한 정에 그토록 약하시옵니까?」 사납게 눈을 흘기며 꾸짖기 까지 했다. 깜짝 놀난 종요는 재빨리 주위부터 살폈다. 오늘도 어제처럼 처가집 돌담 뒤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절실히 깨달은 종요는 아내를 따라 힘없이 처가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것은 모두 그 아내가 종요의 좋지 못한 행실을 고쳐 주기 위해서 술법(術法)으로 일부러 돌담 뒤를 이틀 동안이나 빙빙 돌게 한 것이었으나 아직 그 술법을 깨닫지 못한 종요의 마음 속은 한없이 어둡고 침울하고 서글프기만 했다.



  며칠을 그대로 처가집에서 지낸 종요는 비로소 깨달은 바 있어 그 아내 앞에 무릅을 끊고 애걸을 했다.「내가 부덕한 탓으로 많은 죄를 졌을 뿐더러 그대에게까지 욕뵈인 바 적지 않았소. 모두 아름다운 꽃을 따르는 나비와 같은 경박한 심정 때문이었으니 과히 허물하지 마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흉측한 마음을 품지 않을 테니 또한 염려하지 마오. 허지만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랜 탓으로 내일은 꼭 돌아가야하겠으니 그대는 모든 것을 너그러이 생각하고 꼭 돌아가도록 허락하여 주오.」「낭군께서 꼭 떠나시겠다면 이 몸인들 어찌 막을 수 있사오리까? 다만 섭섭할 따름이옵니다. 아내는 역시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별을 서러워하는 초연한 빛은 아내의 얼굴에 가득 넘쳐 흘렀으니 역시 술법을 도통한 부인이라 할지라도 여느 아녀자와 다름이 없음은 어찌할 수 없는 천리(天理)일 것이었다. 한편 이날 밤 아내를 맞은 종요도 비록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쳤다고는 하나 그의 태도는 전날과 추호도 다름이 없었으니 이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상정일 것이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종요는 자기 눈을 의심할이만큼 깜짝 놀랐다. 바로 옆에 누워자던 흉물은 간 곳이 없고 그 대신 아리따운 여인이 정열을 아쉬워하듯 푹 잠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순간 종요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 칠흑같은 머리에 백옥같은 흰 살결, 꽃송이 같은 얼굴에 앵두알 같은 입술, 종요가 지금껏 수없이 상대해 온 아녀자들에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기는 종요로 하여금 금시 넋을 잃게 할 것만 같았다. 「여보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종요는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아내를 성급히 흔들어 깨웠다. 잠시 후 아내는 조용히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고쳤다. 추호도 동요하거나 놀라는 빛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낭군의 마음을 번거롭게 하온 죄 너그러이 용서하세요. 이 몸은 원래 전세에서 큰 죄를 짓고 이 세상에 다시 없는 추물로 태어났던 것이오나, 바로 어제로서 온갖 죄를 벗고 비로소 아녀자다운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 입니다. 그러하오나 아녀자들이 지닌 아름다움이란 영영토록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옵고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것이옵니다. 아녀자의 아름다움은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은 것이옵고 또한 대장부의 마음을 한없이 어지럽게 하는 요사스런 것이온데  낭군께서는 그처럼 마음이 얕으시고 아름다움에만 현혹되시오니 어찌 나라의 큰 일을 도모하실 수 있사오리까? 천신(天神)께서 낭군을 미워하시어 장차 큰 고역을 당하시게 하오리이다.」

조리 있게 사리를 밝히는 부인의 목소리는 쟁반에 구슬을 굴리듯 맑고 아름답기만 했다. 종요는 한편 기쁘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여 몸둘 바를 몰랐다. 이날, 집을 향하여 떠나야 할 종요는 지난번처럼 부인의 술법에 얽매어 돌아가지 못함이 아니라, 다시 없는 절세가인을 두고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 부인이 내주는 봇짐을 한사코 내동대이 치고, 아리따운 부인의 품에서 여러 날을 정답게 지내니 과연 종요는 호탕한 인물이 아닐수 없다.  이 부인이 바로 사씨 부인(司氏夫人)이다.



  종요는 이 부인의 말을 받들어 그후부터는 외간 부녀자를 범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글공부에만 열중하여 그 문장이 당대에 어깨를 겨룰 자 없었으나 사씨 부인이 예언한 대로 그는 천신의 미움을 받아 비록 옳은 일일지라도 다시 없는 큰 고역(苦役)을 당하게 되었다.  조정에 나아가게된 종요의 벼슬은 날이 갈수록 점점 높아만 갔다. 때는 중국의 삼국시대로서 후한말(後漢末)의 큰 난에 이어 곳곳에서 군웅(群雄)이 할거(割據)하는 등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때였다.  

원래 위(魏)나라는  조조(曺操)가 산동성에서 군사를 일으킨 후 한(漢)나라 헌제(獻帝)를 모셔다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허현(許縣) 또는 장현(장縣)이라 불리는 곳에 도읍하고, 스스로 위공(魏公)이라 부르며 천하를 호령하다가 그 아들 曺丕(조비, 文帝) 때에 이르러 요순(堯舜)이 선양(禪讓)하는 예에 따라 헌제로 하여금 양위케 함으로써 이룩한 나라이니 건국초기나 그 종말이 하나도 복될 것이 없었다. 더구나 문제(文帝)는 그의 부친의 성격을 닮아 사람됨이 교활하고 교만한데다가 신하들을 의심하기 끝이 없었다. 종요는 당대의 으뜸 가는 문장으로서 온 백성들의 추앙을 한몸에 받았을 뿐더러 그 벼슬이 춘관(春官) 대종백(大宗伯)에까지 이르렀는데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사씨 부인의 내조의 공이 무엇보다도  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종요는 문제에 대해서 항상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양위(讓位)에 대한 불만이었다. 일찌기 문제(조비)는 헌제를 협박하여 양위케 함으로써 임금의 자리에 강제로 올라앉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요는 문제를 임금으로 받들지 않았다. 헌제를 다시 받들려는 수많은 무리들과 함께 종요도 문제를 비방하고 그 부당함을 일일이 내세웠다. 심지어 문제는 임금이 될 그릇이 못되는 이상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물러남이 당연하다고 늘 주장해 왔다.  그러니 문제로서는 종요를 탐탁찮게 여길 것이 당연한 일이다. 기회만 있으면 한 칼에 처치해 버리려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종요는 덕망이 있고 재질이 범상치 않은데다가 그 부인 사씨의 술법이 또한 비상하여 웬만한 술책으로써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이 큰 한이었다.  더구나 종요는 선대왕 때부터 무시 못할 공신이요, 그 재질이 또한 아까우니 죽이기에 앞서 애석한 마음이 먼저 가슴속에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이처럼 종요는 벌써 죽을 몸이었으나 스스로가 애써 쌓아올린 덕망과 부인이 지닌 술법의 덕으로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위하여는 지위와 목숨을 돌보지 않는 그는 임금에게 여러 차례 그 부당함을 간하였다. 하지만 역시 간하면 간할수록 그에 대한 문제의 분노는 더해 가기만 했다.

더구나 의(義)를 위하여 생사를 같이 하기로 했던 여러 중신들마저 처음과는 달리 문제의 노여움이 두려워 점점 외면하기 시작했으니 덧없는 세정(世情)이라고나 할까, 종요의 마음속은 한 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영감께서 그리 심뇌하신들 무슨 소용이있습니까. 이 나라 사직이 오래 지탱되기 어려울 것이니 영감께서는 벼슬을 버리심이 좋을까 생각됩니다.」보다 못해 부인이 벌써 여러차례 이같이 권했다. 차라리 초야에 묻혀 흙을 파느니만 못했기 때문이었다. 「옳은 말이오 나도 그렇게 생각 아니한 바 아니로되 신하된 자로서 어찌 그릇된 것을 그냥 보고만 있겠소? 내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간해 보아서 듣지 아니하시면 벼슬을 버리고 이곳을 떠나겠소」비장한 결심을 한 종요는 이튿날 입궐하는 즉시 문제 앞에 나아가 정중히 머리를 조아렸다.

「모름지기 신하된 자로서 임금을 배반할 수 없는 법이요, 또한 이것은 천리를 어기는 일이옵니다. 더우기 헌제를 받드는 무리들이 뜻을 이루지 못해 도리어 음흉한 계책으로 천년 사직을 어지럽히려 하옵고, 이 나라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무리들은 호시탐탐 때를 엿보는 형편이오니 선인(先人--曺操)의 뜻을 받들어 헌제를 다시 모셔옴이 지당하올 줄로 아옵니다. 신하된 자, 마땅히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충의지심(忠義之心)을 신 종요 모르는 바 아니오나, 무리들의 음흉한 계책이 두려워 목숨을 아끼려 함이 아니오라 다만 헌제의 뜻에 따라 양위를 다시 받으심이 도리일 줄 아옵니다.

그러면 이 나라의 원한을 품을 자 없을 것이옵고 창생들도 또한 우러러 받들어서 영영토록 무너짐이 없는 이 나라가 굳건히 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성상께서는 소신의 참 뜻을 굽어 살피소서.」진심으로 간하는 종요의 눈에는 어느덧 피눈물이 흥건히 괴었다. 「그러면 과인이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나라가 올바로 선단 말이오?」문제의 얼굴빛이 거의 피빛으로 변하였다. 그와 동시에 지렁이 같은 핏줄이 문제의 이마에 여러 줄 곤두섰다. 무슨 일이 꼭 일어나고야 말 것 같은 절박한 순간이었다. 좌우에 기라성처럼 늘어선 문무백관들은 차라리 외면을 한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황공하오나 성상께옵서는 헌제를 다시 모시어 성지를 받드시옵소서.」역시 물러가라는 말이었다. 참혹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비장한 아뢰임이었다. 그러나 종요는 추호도 동요하는 빛이나 두려움이 없었다. 죽음을 각오한 탓이겠지만 그보다도 문제가 헌제를 물리치고 임금의 자리에 오를 때를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비분이 일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장차 나라 안팎이 어지러워졌을 때, 신하된 자가 임금 앞에서 칼을 뽑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느냐고 필사적으로 아뢰었다. 더우기 문제는 왕자(王子)로서의 기품을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간사한 무리들만을 가까이 하는 형편이니 이 염려는 더욱 틀림없는 예언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하늘의 뜻을 어길 수는 없사옵니다. 선인의 크신 뜻을 받들어 후세의 한을 남기지 마옵소서.」종요는 끝내 굽히지 않았다.「듣기 싫소 당장 물러가지 못하오?」문제는 용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상께옵서 그래도 가납(嘉納)하지 아니하시오면 신은 다시는 성상을 뵈옵지 않겠나이다. 그러하옵고 다시는 칭신(稱臣)하지도 않겠나이다.」「뭣이, 칭신하지 않겠다구?」문제는 내전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칭신하지 않겠다는 것은 신하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뜻도 있으려니와 그보다도 자기를 왕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뜻도  다분히 섞여 있는 것이다. 일찍부터 종요를 없애려 했으나 덕망이 높고 공신인 까닭에 관대히 대해왔던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센 물결처럼 솟구치는 분노와 증오를 더는 참을 길이 없었다.



  「저 늙은 것을 당장 하옥 시켜라.」대들보가 쩌렁 울리도록 문제는 소리쳤다. 그렇게 소리침과 동시에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부르르 떨었다. 그맘큼 문제에 분노는 절정의 이르렀다. 춘관 대종백 종요가 하옥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씨 부인은 추호도 당황하는 빛도 나타내지 않았다. 자식들과 하인배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거리고, 성내 여러 백성들이 수심에 잠긴 얼굴로 문전에 꾸역꾸역 모여들었을 뿐이었다. 종요가 역적이라는 죄명을 뒤집어 쓰고 곧 참수되리라는 소식을 들은 사씨 부인은 비로소 깨끗한 물에 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넓은 뜰안에 칠성단을 모셔 놓고 매우 오랫동안 지성으로 빌었다. 그러자 문득 하늘로 부터 한 줄기 빛이 칠성단에 비치었다. 좌우에 늘어선 하인배들은 감히 우러러 바라볼 수도 없을 만큼 그 빛은 눈부시고 찬란했다. 더우기 이상한 것은 대종백 종요가 하옥되어 있는 옥사(獄舍)에도 똑같은 눈부신 빛이 찬란히 비치어 옥리(獄吏)들이 크게 놀라 모두 그 자리에 엎드리기까지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문제는 놀라기보다 우선 종요가 한없이 두려워졌다. 만약 참수하였다가는 무슨 우환이 꼭 있을 것만 같이 여겨졌다.

그렇다고 해서 일단 하옥시킨 종요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더욱 없었다. 문무백관들이 보는 앞에서 엄포한 이상 왕자(王子)로서의 체신을 생각해서라도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며칠을 두고 골똘히 생각한 문제는 기어이 한 계교를 생각해 내었다. 그것이 가장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문제는 곧 옥에 갇힌 종요를 불러내었다.「죄인은 듣거라. 그대를 당장 참수할 것이로되 그대의 재능을 가상히 여겨 과인이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이니, 그대가 국은(國恩)을 입고 충의지심이 있어 능히 과인이 기대하는 대로 글을 지어 내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그때에는 정말 죽음을 면치 못하리로다. 」문제의 옥음은 노여움에 찬 호통이라기보다 어떤 기대가 가득 서려 있는 듯했다. 종요는 조용히 얼굴을 들었다. 그동안 심하게 야윈 얼굴에서는 한 가닥 핏기조차 찾아볼 길이 없었다.

그리고 목숨을 건지게 될지도 모르는 이 마당에서 그는 추호도 기뻐하는 빛도 없이 그저 온화하고 태연한 빛만이 그대로 넘쳐 흐를 뿐이었다.「죄인은 사언체(四言體) 이백오십 구(二百五十句)로서 내일 아침까지 글을 지어 바치되, 그 속에 중복되는 것이 한자라도 있어서는 안되느니라 알겠느냐?」하고 다짐하며 문제는 사령을 시켜 지필묵을 내주게 했다. 사언체 이백오십 구를 하루 동안에 지어내는 것만도 웬만한 재사로서는 도저히 어려운 일이 거늘, 하물며 같은 한자(한자)를 두 번 쓰지 못하게 하였으니 비록 신인(神人)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이오나 뜻하시는 대로 지어 바치면 가시셨던 고집을 거두시고 종요의 말대로 하시겠사옵니까?」그는 왕을 성상이라고 부르지 않고 자기를 신(臣)이라고 하지 않았다. 「과인은 오직 죄인이 죽고 사는 일에 대해서 염려할 뿐이로다.」문제는 매우 비위에 거슬렸으나 모든 것을 꾹 참고 그대로 내전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할 수 없이 지필묵을 받아들고 옥사로 되돌아온 종요는 이 글을 써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 크게 망설였다 후세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리켜 비겁한 인간이라고 비방할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인명은 재천(在天)인 것이니 이 기회에 우매한 문제의 머리를 깨우쳐 주고 싶은 충동이 크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거의 한참 동안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동안 헤아릴 수 없는 착잡한 감회가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죽음을 앞두고 쓰는 최후의 글…… 좀처럼 얻기 어려운 천재일우의 이 기회. 그의 온갖 경력과 타고난 재능을 다하여 그는 붓을 들여 쓰기 시작했다.



천  지  현  황 (天 地 玄 黃)

우  주  홍  황 (宇 宙 洪 荒)



  사언체 이백오십 구로 한정되고 같은 한자(漢字)를 이 글 속에서 두 번 쓰지 못하게 한 제약된 테두리 속에서 그는 천지와 온 우주의 움직일 수 없는 이치는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도와 법칙을 비롯하여 임금에 대한 충의, 어버이에 대한 효성, 그리고 인간사회에 대한 의리와 도덕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이 이끼야(也)를 끝으로 꼭 천 자(千字)를 엮으니 그것은 종요가 지은 글이라기보다 하늘이 내리신 경전(經典)이었다. 이튿날 천자문을 받아본 문제는 우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대종백 종요가 과인을 버리니 이는 곧 하늘이 과인을 버림이로다.」미리 언약한 대로 종요를 옥에서 내보내기는 했으나 침통한 빛이 용안에 어리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한가지 괴이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종요는 원래 수(壽), 부(富), 강(康). 호덕(好德). 효종명(孝終命),등 오복(五福)을 모두 갖춘 위인이어서 비록 나이가 육순(六旬)이라 할지라도 머리털에 흰 것을 찾아 볼 수 없도록 검었는데 천자문을 짓기위하여 머리를 무던히 쓴 탓인지, 그렇지 않으면 천신의 노여움을 받아 고역을 치른 탓인지 하룻밤 사이에 모두 백발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이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하느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뭏든 종요는 이 천자문을 지어 바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사씨 부인은 별로 기뻐하는 기색조차 나타내지 않았으니, 역시 범상치 않은 부인임에는 틀림없었다. 문제는 그 후 여러 차례 종요에게 시신을 보내어 조정에 다시 출사하도록 극진히 권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천관(天官) 총재(總宰-재상벼슬)를 제수한다는 전갈까지 내렸으나 종요는 끝내 응하지 않고 조용히 여생을 마치었다. 더구나 사씨 부인과 종요가 한결같이 예언한대로 위나라는 건국한 지 불과 사십 육 년 만에 다시 헌제를 받들고 밀려든 군사들의 말발굽 아래 여지없이 쓰러지니 때는 건안(建安)이십 오년 오월이었다. 천자문은 그후 양조(梁朝)때에 이르러 주흥(周興)이라는 사람이 다시 운(韻)에 따라 순서로 정리하였으니 후세에까지 내려온 것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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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흥사(周興嗣)
천자문은 1,000자의 중복되지 않은 글자로 만들어진 문장이다. 그렇기에 1,500년전에 만들어진 책이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中國 南朝의 梁나라에 주흥사(周興嗣․468~521)라는 가난한 선비가 있었는데, 가난하여 책을 수선하고 낡아 떨어진 부분을 복원하는 일로 먹고 살았다. 그가 고서 복원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듣고 天子는 그를 불러 일부러 낡은 책을 골라 복원하도록 하였더니, 그가 말하기를 “이 책은 復原이 不可能합니다. 그러나 臣은 이 책의 核心 內容을 要約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라 하여 허락을 얻고는, 불과 며칠만에 4字 2백50句의 長篇詩를 바친 것이 이 ‘千字文’이라고 전해온다. 天子는 感歎을 금치 못했고, 당장 官職을 내려 그를 登用했다고 한다. 일설(一說)에 의하면 주흥사가 너무 고심한 나머지 온통 머리가 다 셌다 해서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만큼 1,000자의 중복되지 않는 글자로 글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웠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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