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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만인적덕(萬人積德)


만인적덕(萬人積德)





중국의 유명한 시(詩)가운데는

변방으로 수(戍)자리 가족을 그리는 내용이 많다.

청(淸)나라 옹정(雍正)황제 때 유명한 민각공(敏恪公)의 아버지도 한때 그런 고생을 했었다.

말하자면 가난하고 배경 없는 사람들이

언제죽을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만리 변방으로 징발을 당해 가게 되었는데

민각공의 아버지도 그 틈에 끼게 되었던 것이다.



효성이 지극한 민각공은 한 해 걸러 한번씩은 이 멀고 먼 서북방으로 왕복 만리 길을

혼자 걸어서 아버지를 찾아 문안을 드리고 집 소식을 전하곤 했었다.

효성도 효성이지만 얼마나 가난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하루 평균 백 리를 잡아도 왕복에는 백 날이 걸려야 한다.

그러나 그 백 리가 그리 뜻대로 안될 경우가 많다.

비가 오는 날은 물론이요 가다가 때묻은 옷을 빨아 널어 말려야만 할 때도 있었다.



그것은 또 아무 것도 아니다.

가지고 있는 돈을 아끼노라 가다가 기회가 있으면 품팔이를 하는 경우도 있고,

또 때로는 뜻하지 않은 병에 걸려 며칠씩 누워 고생을 하기도 한다.

늦은 봄 집을 떠나,

여름철에 무사히 아버지 있는 곳에 이르면,

늦가을이나 되어야 집에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원래 수자리란 죄인의 징역살이보다도 더한 것이어서,

한 번 가기만 하면 돌아올 기약마저 없는 곳이다.



이태백의 유명한 시에 이런 것이 있다.



장안 조각 달에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여!

님계신 수자리로

생각은 옥관에 가 있네!



長安一片月

萬戶도衣聲

良人征胡虜

總是玉關情



안록산(安綠山)의 난리를 겪을 당시의 시였던 만큼,

남자란 남자는 다 변방으로 징발되어 가고 집에 남은 여인들만이 다듬이질로

밤을 지새는 정경은

시인의 가슴을 서글프게도 했을 것이다.



훨씬 뒷날 일이다.

절강(浙江)에 와서 살던 그는

영파(寧波)에 부자로 사는 친척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기로 했다.

먼길을 걸어 친척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섣달 그믐이 가까이 다가온 때였다.

친척이 사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높다랗게 솟은 대문으로 무수한 하인들이 들락날락하고 있는데,

모두가 담비털 모자에 여우 갓옷을 입고 있었다.



가난한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민각공은 순간 용기가 푹 꺽이고 말았다.

명색이 친척이라고 찾아온 사람이 거지중에도 상거지 같은 꼴을 하고 나타났으니

주인이 반가와 할 리도 없거니와,

주인도 만나기 전에

당장 하인 놈들에게 미친놈 대우만 받고 쫓겨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걸음을 멈칫거리며 멀찌감치 서서 대문 앞만 바라 보고 있던 민각공은 끝내 용기를 못내고

근처 값싼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 날, 아침, 다시 용기를 내어 이름이라도 알아 보려고 가기는 갔으나

막상 대문 가까이 가니 여전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용기가 가 안 났다기 보다는 눈 앞의 현실이 뜻을 이룰만한

아무런 근거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여인숙으로 들어가려니 비상용으로 금쪽같이 아끼던 몇 푼 안든 주머니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온종일 근처를 왔다갔다 하던 그는

해가 저물어 가자 처량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생각던 끝에 근처 가겟집을 찾아가 그 부자집 내력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자기 친척이 확실한가를 안 다음, 태도를 결정지을 생각이었다.

「미안하지만 옆집 부자댁의 고향이 어딘지 혹 아십니까?」

「글쎄요?……그건 알아서 뭣하시려고요?」

가겟집 주인은 민각공의 옷차림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친척인줄 알고 찾아왔는데 혹시 아니면 공연히 실없는 사람만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모르지요. 어디 상종을 할 수 있어야 그런 것도 알지요.」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하는데

맞은 편 푸줏간 주인이 민각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옷차림은 비록 남루하나 어딘지 모르게 귀인의 기상이 엿보였다.

푸줏간 주인은 길을 건너 와서 허리를 굽혀 보이며 무슨 사연인지 캐어 물었다.

푸줏간 주인은 그 집 내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이름이며 고향이며 민각공이 찾아온 친척이 분명했다.

민각공은 다소 얼굴에 기쁜 표정이 일 수밖에 없었다.



물에 빠진 신세가 된 그는

지푸라기보다는 훨씬 붙들어 봄직한 대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푸줏간 주인은 손을 저어 보였다.

얼굴에도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감돌았다.

「내가 여기 한 골목에서 이십 년을 이웃하고 살아 왔지만

아직 한 번도 친척이 찾아오는 것을 못 보았고

남을 동정해서 돈 한푼 밥 한그릇 주는 것을 못 보았으니

아예 찾아가실 생각은 마십시오.」



민각공은 그만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공연한 짓을 했다 싶은 후회가 천근같이 몸을 덮어눌렀다.

「여기 오게 된 것은 오직 그 하나를 바라고 왔는데 이를 어쩌면 좋담!」

푸줏간 주인은 퍽 안된 모양이었다.

「집안이 유명한 집안이시니 필시 공부를 하셨을 것 같은데,

계산 같은 것은 하실 수 있겠지요?」

「약간은 압니다만……」

「그럼 저희 집에서 잠시 일을 보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무슨 일을 말씀입니까?」

설마 소를 잡고 고기를 팔아달라고 하지 않겠지만,

백정의 집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보아달라는 건지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해도 저물어 가는데 각처로 외상 놓은 것이 적지 않습니다.

장부가 제게 있으니 그걸 선생님께서 정리하고 계산해 주시면

외상값 받기에 퍽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가게는 여기지만 저희 집도 과히 멀지 않으니 저희 집에서 주무시면서………」



민각공은 그의 성의가 고마왔다.

누구를 불쌍한 심정에서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친숙하고 다정한 태도로서

사정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친척집에서 싫어하는 동정을 받는 것보다는 마음부터가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민각공은 백정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여보 귀하신 손님이 오셨소!」

하고 그는 문간에 들어서며 그의 아내를 불러내서 인사를 시켰다.

내외가 다 대하는 것이 퍽 은근하고 상냥했다.

모처럼 맛있는 고기 반찬에 따뜻하게 하룻밤을 편히 쉰 그는, 다음 날 곧 장부를 달래서

사람별 종목별로 외상값을 간추려 일람표를 만들었다.

겨우 한나절 일거리 밖에 되지 않았다.

주인은 그가 써 준 일람표를 접어들고 외상값 받으러 사흘 동안을 나다녔다.

가겠다고 나서는 민각공을, 주인 내외는 한사코 설을 지내고 가라고 만류했다.

「올해는 외상값 받기가 아주 수월했습니다. 모두가 선생님 덕택입니다.」

하고 주인은 나갔다가 들어올 때면 으례 입버릇 처럼 인사를 했다.



섣달 그믐날 밤이 되자,

주인 내외는 민각공을 아랫목 윗자리로 모시고 그들 둘은 맞은 편에 앉아 수세연(守歲宴)을 베풀었다.

수세연이란 해를 지키는 잔치란 뜻으로 망년회(忘年會)와도 비슷한 것인데

해를 잊은 것이 아니라 해를 지킨다는 뜻이다.

섣달 그믐날 잠을 안자는 풍속도 여기서부터 유래된 것이다.

지난해의 찾아온 복을 나가지 못하게 지키고,

새해의 재난을 싣고 들어오는 악귀를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두 가지 뜻이있다.



이 때 주인은 다섯 살 먹은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어린 딸도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는 뒷날 양반의 집 아내가 되어 가게 되었다.

덕택에 설을 잘 지내게 된 민각공은 날이 밝자 곧 고향을 향해 떠나려 했다.

「떠나시다니 어디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 깊은 겨울에 솜옷도 없이 먼 길을 가셔서야 되겠습니까?」

주인은 이미 그 부인에게 부탁해서 솜옷을 짓고 있는 중이라면서 굳이 붙들었다.

닷새만에야 옷이 다 되었다.

주인은 솜옷을 들고 아내는 버선과 신을 들고 들어와서 이를 입히고 신기고 했다.

옷이 걸레가 된 사람이 모자가 성할 리가 없었다.

주인은 자기가 쓰던 전립(전笠)을 벗어 민각공에게 주었다.

마치 인정 많은 누님 집에 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 만도 아니다.

돈을 이천 닢이나 노자라고 주지 않겠는가?

민각공은 감격하여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다.



항주(杭州)에 이르는 동안 그럴 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으나

한 사람도 반가이 맞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일 없이 서호(西湖)를 거닐고 있는데 문득 바라보니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웬 관상보는 사람이 손님의 상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관상장이는 먼 눈으로 민각공을 한 번 흘긋 바라보더니 얼른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손짓해 물리치고

「귀하신 손님께서 오십니다.」하고 그에게 읍(揖)을 보냈다.

공은 그가 자기를 놀리는 줄로 알았다.

「내가 상을 보아달라고 한 일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농담을 하십니까?」

관상장이는 그를 아래위로 한참 흝어 보았다.

「왜 그렇게 훑어보시오?  상을 볼 만한 주변도 못되는 사람이 왔다고 해서 그럽니까?」

가만히 서 있기가 멋적어 이렇게 농담 비슷한 소리를 보냈다.



「여기서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조용한 곳으로 가십시다.」

하고 관상장이는 짐을 걷어 챙긴 다음, 그와 함께 근처에 있는 조그만 사당집을 들어갔다.

자리를 정하고 앉자, 관상장이는 공에게 청하지도 않은 상평을 하는 것이었다.

어느 해 무슨 벼슬을 하고, 어느 해는 총독(總督)에 까지 오르게 된다는 것을 말해 준 다음

「애석하게도 편안히 돌아가시지 못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 되겠습니다.」

「당장 잘 곳이 없는 몸이 무슨 복에 그런 벼슬을 할 수 있겠소?」

「이미 운수가 열렸으니 빨리 서울로 올라가십시오. 반드시 이상한 인연을 얻게 되실 겁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당장 가진 돈이 없는데 어떻게 서울에 간단 말이오?」

「그거야 과히 어렵지 않습니다.」

하고 관상장이는 주머니를 열어 돈 이십 금을 노자로 주었다.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곧장 북으로 올라가십시오.」

이렇게 다시 한번 다짐을 주더니 이번에는 종이 쪽지를 꺼내 사람의 이름을 하나 적어 주면서

또 이런 부탁을 했다.

「뒷날 섬서(陝西)와 감숙(甘肅)절도사로 계실때, 총병(總兵)한 사람이 군령을 늦게 집행한 죄로

사형에 처하게 되는 일이 있을 테니 부디 잊지 마시고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의 성함은 누구신지?」

「차차 아시게 될 날이 계실 것입니다.」

하고 가르쳐 주기를 꺼렸다.



민각공은 관상장이가 주는 이십 금으로 곧 서울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직예(直隸)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 또다시 불행이 밀어 닥쳤다.

여관에 묶고 있는데 어느 사람이 그의 노자를 훔쳐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어찌 복이 될지 알 수 있으랴?>

고 한 새옹(塞翁)의 말이 있긴 하지만 당한 그순간의 그의 심정은 암담하기만 했다.

민각공은 하는 수 없이 아는 사람의 집을 찾기로 했다.

노자가 없이는 서울까지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을 서둘러 보정(保定)으로 가는데,

백하(百河)에 이르자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허 벌판에서 눈보라를 만난 그는 사방을 둘러보아야 마을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날은 벌써 저물어 가는데 점심도 먹지 못한 그는 다리가 무거워 더는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다 허물어져가는 절이 하나 보였다.

최후의 용기를 내어 절로 찾아 가는 동안 날은 이미 어둡고 추위는 점점 더해 갔다.

그가 있는 힘을 다해 절 문 앞에까지 이르자,

그만 그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어죽게 된 것이다.

밤늦게 중 한 사람이 우연히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 난데없는 호랑이 한 마리가

눈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달려가 주승에게 사실을 고하자 주승은 중들과 함께 불을 켜 들고 호랑이를 쫓았다.

호랑이로만 알았는데 뜻밖에도 웬 사람 하나가 눈 위에 누워 있지 않겠는가!

「이게 웬일이야?」

놀라 방으로 떠메고 가서, 얼마를 주무르고 만지고 해서 겨우 살아나게 되었다.

며칠을 절에서 쉬며 눈이 그치고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절에는 이미 죽은, 전 주지승이 애써 모은 서첩(書帖)이 무수히 많았다.

주지는 그것들을 꺼내 공에게 보이며 필요하면 가져 가 팔아 쓰라는 것이었다.

원래 글씨를 좋아하는 공은 고맙게 이를 받아 길을 떠났다.

그가 보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친구를 찾아가는 대신,

서첩들을 길가에 벌려놓고, 이것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 공교롭게도 행차가 그리로 지나갔다.

길을 인도하던 전도(前導)가 빨리 길을 치우지 않는다고 채찍으로 민각공의 등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고개까지는 이런 불행의 시련이 언제나 따르는 것일까!

울분을 참지 못한 공은 권세의 발자국이 쓸고 지나간 그 자리를 물건까지도 버리고 떠나버렸다.



고생 끝에 서울까지 온 공은,  당장 잘 곳이 없고 밥 사 먹을 돈이 없었다.

백척간두(百尺竿頭)까지 다다른 공은, 생각다 못해 이상한 것에 착안을 했다.

동화문(東華門)앞으로 가서 글자 풀이로 점을 쳐주는 파자점(破字占)장이가 되었다.

그동안 각 명승지로 떠돌아다니며 파자점하는 구경을 많이 해 본 그는 맞고 안맞는 건 둘째로 쳐놓고 그럴싸하게 설명을 붙이는데 상당한 흥미를 갖기도 했었다.

구걸보다는 그런 것이라도 해서 먹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새로운 희망이요 결심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우연히 평군왕(平群王)이 그 앞을 지나게 되었다.

웬 점잖은 선비가 글자 풀이를 하고 있는데,

그 옆에 세워둔 간판 글씨가 여간 명필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수레를 멈추고 시종을 보내 물었다.

「그 간판 글씨는 누가 쓴 거요?」

「제가 쓴 것이올시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글씨가 명필인 것을 보아 글도 필시 명문일 것 같은데,

이런 아까운 인재가 길거리에서 저런 궁한 짓을 하다니……」

하고 민각공을 수레에 태워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평군왕에게 그의 재주를 인정 받은 민각공은

그날로 비서실과 같은

기실(記室)의 우두머리로 앉게 되었다.



평군왕은 무척 사람이 겸손하고 소탈한 편이어서 공을 친 형이나 친구처럼 대했다.

얼마 뒤 평군왕의 새저택은

기둥이며 문 위며 현판 액자 등의 모든 글씨가 공의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느 날 황제인 옹정(雍正)이 평군왕의 집으로 행차를 하게 되었다.

옹정은 들어오던 길로 기둥에 새로 걸린 현판 글씨를 보고 대단히 칭찬을 했다.

「이 글씨가 명필이로구나. 누가 쓴거냐?」

왕이  민각공이 쓴 것이라고 하자 황제는 곧 공을 불러 이야기를 걸었다.

얼굴도 준수하거니와 예의 범절이며 말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사삿집에 둗혀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다.」

황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떨어졌으니 행운의 문은 마침내 열리고 만 것이다.

민각공은 곧 중서(中書)라는 벼락감투를 쓰게 되었다.

중서에서 더욱 실력을 발휘하게 되자,

감사(監司)를 거쳐 절도사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 기간이 십년도 못되었다.



민각공은 명파에서의 푸줏간 주인을 잊을 수가 없었다.

벼슬이 높아지자 맨 먼저 그를 불렀다.

불려온 푸줏간 주인도 민각공이 십 년이 못가서 이런 출세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민각공은 그에게 삼천 금을 주어 직업을 딴 것으로 바꾸게 하는 한 편,

그때 다섯 살이었던 딸을 위해 인물 좋은 선비에게로 중매를 하기로 했다.



다음은 얼어 죽을 것을 구원 받게 되었던 절로 사람을 보내, 그 절을 다시 세워 줌으로써

주지에 대한 은공에 보답했다.



끝으로 서호의 관상장이를 찾았으나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섬서와 감숙 두 지방의 절도사를 겸하게 되었다.

그가 부임하자 가욕관(嘉욕關)밖에서 군량을 공급 받게 되어 있었는데 이를 감독하는 총병(總兵)

한 사람이 군령대로 제 때에 책임 이행을 못해 사형을 받게 되어 있었다.

서호에서 관상장이가 그에게 부탁하고 사정한 이야기를 잊었을 리가 없다.

민각공은 도착하자마자,

그의 과오를 부득이한 이유로 만들기에 있는 힘 있는 지혜를 다해서

겨우 형을 면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바로 그 관상장이의 아들이었다.

그제야 그가 아들의 이름만은 가르쳐 주고 자기 이름은 밝히기를 꺼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은 <옳게 죽지 못하리라>고 한 관상장이의 말이 걱정이 되어,

그 아들을 통해 그를 공청으로 초청했다.

서로 고마운 인사를 교환한 다음,

공은 불행한 죽음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것은 이미 수가 정해져 있으므로 바꾸는 도리는 없습니다.

오직 가능하다면 그것은 수천 수만의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좋은 일을 함으로써

신명의 감동을 받은 길 뿐입니다.」

하고 방법이 되기에는 너무도 가능성이 없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공은 이날부터, 생명을 건질 수 있는 방법보다도 불행하게 죽음을 당하는 불행한

사건부터 먼저 찾아내야 했다.

각지에서 들어온 보고서와 사건 내용을 하나하나 검토하던 끝에

이런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직예성(直隸省)일대는 전체를 통해 흉년이 자주 들고 토지가 척박해서 해마다 고향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거리로 방황하다가 길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이 수백 명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다가 일거리를 주어 일을 하게 만들고, 노인과 병약자를 위해 양육원 같은 것을 만들면

그런 재난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착안한 공은 곧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이를 검토하도록 지시를 내릴 예정으로 있었다.

그러나 정식 안건으로 보고가 되고 정식으로 서류가 제출되려면 아직도 까마득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관상장이를 만나자,

관상장이는 기뻐 어쩔 줄을 모르며 축하의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상공의 얼굴에 온통 서광이 어리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옵니까? 필시 없었던 큰 공덕을 끼치신 것 같사옵니다.」

「이제 죄를 입어 비명에 죽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다시 이를 말씀입니까?  

형을 면할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영광을 누리게 되겠습니다.

대관절 무슨 좋은 일을 하셨기에?」

공은 마침내 그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설명했다.

「이미 계획만으로도 그러하니 그 일이 실천에 옮기게 되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하고 관상장이는 자기 일이나 되는 것처럼 기뻐했다.

마침내 공이 계획한 이재민 구제대책은, 나라의 승낙을 얻어 국비로서 이의 실현을 보게 되었고,

다시는 그런 참혹한 정경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뒤 중대한 군사 사건으로 인해, 두 독무(督撫)와 장군 한 사람이 사형을 당하게 되었으나

민각공만은 황제의 특사로 인해 죄를 면하게 되었다.



실은 민각공은 이러한 내용들을 손수 기록한 자서전이 자손들에게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저자는 덧붙히고 있다.



군자(君子)는 몸을 죽여서라도 좋은 일을 한다고, 공자(孔子)는 말하고 있다.

하물며 몸을 살리게 되는 좋은 일을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 다같이 민각공의 고사를 잊지 말았으면 싶다.


[출처] 만인적덕(萬人積德)|작성자 광야

http://blog.naver.com/uichol5730?Redirect=Log&logNo=80091419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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