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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통)교운의 역사에서 골간이 되는 맥을 정리함(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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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운의 역사에서 골간이 되는 맥을 정리함(3/4)





득의지추득의지추




건곤사당을 짓는 것은
상제님과 고수부님을 천지부모로
자리 잡게 하라는 것이며,
용봉기를 꽂는 것은
천지를 대행하는 세상의 중심임을 상징하는 것인데,

청음과 남주는 이 말씀의 액면 그대로만 실천하여 용화동에 통천궁을 짓고
용봉기를 꽂는 퍼포먼스를 남겨주었지만,
정작 이 말씀의 깊은 뜻을 깨우쳐 천하사를 집행한 인물은 안운산 증산도 초대 종도사이다.

용화동 ‘증산교 대법사’에서 함께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청음 남주 형제와 운산의 관계는
세간에 잘못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은 사제(師弟)관계가 아니라 동지(同志)적인 관계였다.

비록 젊은 연령이었지만 운산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이미 어린 나이에 태을주를 읽고 초통을 체험한 존재였고, 출세간적인 위풍으로 당당히
종교지도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조직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맡겼던 두 사람에게
오히려 뒤통수를 맞게 된 것이었다.

운산의 이러한 면모를 모르는 경우엔,
청음 남주 형제가 주도권을 쥐면서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분위기와
일반 사회상식적인 판단 위주로는
실상을 제대로 알기 어렵게 되어있다.










운산의 독특한 삶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보천교’ 신앙을 한 부친으로 인해
자연스레 만들어진 집안 분위기에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보고 듣고 깨우쳤으며 남다른 수행으로 이치를 관통한 이후로,

자신의 사명을 알고
세상 경험 속에서 자의적으로 준비를 하였고,
젊은 나이로도 손색없는 지도자의 격을 보여주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하여 배우고
전수받고 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남주가 남긴 <증산교사>에서는
‘증산교 대법사’가 그들 형제가 주역이 되어
만든 교단인 것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정밀한 분석을 해보면
문제가 많은 기록임을 느낄 수 있다.

그들과 함께 한
운산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 것이
결국 어설픈 기록이 되고 만 것인데,
두 형제의 맥을 잇는 홍범초의 <범증산교사>가
그 문제를 똑같이 답습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그들의 문제를 확인시켜 준 모양새가 되었다.

이것은 ‘증산교 대법사’의 실제적인 개척 주역은
운산 본인이었다고 한,
당시 활동에 관한 회고담이
진실임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준다.











운산은 당시 안흥찬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목화토금수 방주제로 운영되는 조직에서
본인이 수주를 맡았고, 총사수의 위치에서
청음을 토주로 임명하여
본부를 지키며 신도들을 수렴하는 역할을 맡겼다고 한다.

운산 자신이 순수 개척한 ‘증산교’ 단체에서
그들 형제에게 결국 쫓겨나 숨어지내는 입장이 되어 20년간을 은둔하다가
70년대 중반에야 다시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행보는 운산이 교주 자체에 욕심이 없었으며 실질적인 진리 사업 본위로 살아온 사람임을 증거해 준다.

그런데, 예전의 교단을 다시 찾은 운산은
청음 남주 형제에 의해 변질되어버린 용화동 교단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하였지만,
물리적인 힘까지 동원하는 패륜적 행태로 인해
교단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 밑바닥에서 새롭게 개척을 하게 되었는데, 자녀들까지 개척 전선에 총동원하여 매진한 결과,
마침내 ‘증산도’를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운산이 1차적으로 해방 후 ‘증산교’ 개척 활동에서
짧은 시간에 빠른 조직 구축을 이룬 데에는,
개안 공부를 진두지휘하여
영적 체험을 강력하게 이끌어준 것이
큰 요인으로 볼 수 있는데,

결국 이렇게 개척한 조직이
변질되고 무너진데 대한 반성으로서
2차 개척 활동인 ‘증산도’에서는 영적 체험보다
진리 정립을 통한
사상 신앙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게 된다.











운산이 20년의 공백을 깨고 세상에 상제님의 진리를
‘증산도’라는 이름으로 펼치게 된 이후로,
인류 문화사에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절대자로서의 신격과 위상이 바로잡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주 자연 이법과 신도(神道)와 인사의 관계를 바탕으로 상제님 진리가 체계적으로 이해되어졌으며, 천지공사 보신 뜻이
현실 역사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대국적인 틀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상제님과 고수부님을 대행하여 공도를 집행하는, 역사적인 과제로 주어진 의통성업이
천하사로서 인식될 수 있는 개념을 열어주었고,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한 일꾼의 심법을
삶 속에서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운산의 등장에 의해 상제님의 진리가
이 세상에 제대로 그 면모를 드러낼 수 있었기에,
그를 제외하고서는
상제님 진리를 얘기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운산은 상제님 진리를 통투하고
천하를 석권할 만한 기개와 뱃심을 가진 존재였지만, 인사는 능력만으로 그 성공이 보장되는 게 아니다.

도수는 능력 있는 개인의 성공이라는 차원을 넘어,
인간 사회가 나아가야 할 전체 모습을
디자인하는 차원에서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인류구원 프로젝트는
교화의 방법을 넘어
치화의 수준에서 전개되는 특징이 있다.











운산의 타계로 촉발된 ‘21세기혁명담론’과
‘증산참신앙’ 사이트에서 벌어진
내부 비리 폭로 문제, 즉 일가 생활비 문제, 상속문제, 성녀단 운영 등 도정 경영상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 제기는 운산이 그전까지 밝혀준
진리와는 무관한 행위의 문제인데,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본질을 깊이 헤아려볼 겨를이 없이, 그의 모든 것을 쉽게 판단하는 것을 본다.

이렇게 사건이 심각한 후유증을 낳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가볍게 다루고 넘어갔던 일이 결국에는 사후에 판을 흔드는 결과로 빚어진 것 또한
진법 출산을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각자의 신앙 연륜이나 진리 이해도,
지도자를 체험한 깊이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 ‘21세기담론’ 활동이 ‘증산참신앙’과 ‘증산혁명위원회’로 크게 투쟁노선이 갈라지게 되었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관망자를 양산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지도자의 잘못을 비판하더라도
그것은 단체의 운영에 관한 것일 뿐,
진리적 깨달음으로 출발하는
교운의 발전적, 긍정적인 업적까지
폄하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운산이 처음으로 밝힌 진리라고 알고 있는 내용조차,
젊은 시절 용화동 ‘증산교’의 간부로 있으면서
청음 남주 형제로부터 배운 것이며,
그 단체를 배신하고 나와서
‘증산도’라는 단체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증산참신앙’에 의해서 공공연히 조성되어 버렸는데,

이것은 운산의 사후,
지도자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좀 더 신중한 고증을 거치지 않고,
<범증산교사>의 기록과 용화동에 유포된 얘기를
그대로 믿어버린 결과라 하겠다.

상제님에 관한 청음 남주의 입장은
운산의 가르침과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 격에서 엄청나게 수준이 떨어진다.

인간으로 강세하시기 전의 상제님의 위상은
아예 언급하지 못하였고,
그동안의 신명계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씀만 근거하여,

기존의 역사과정에서 각각의 족속들이
나름 절대자로 신앙해온 신적(神的) 존재를 지방신이라고 이해하였고,
결과적으로 중국 한족의 지방신으로서의
옥황상제 칭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환부역조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였다.

상제님에 대한 호칭도
‘증산 천사’라는 호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증산교단통정원’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통천 상제’라는 새로운 칭호로 받들게 되는데, 어디까지나 강세 이후에 처음 추존되는 입장일 뿐,
강세 이전과 연결되는
체계적 통일적 신관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족은 생화삼신으로서
환인천제 환웅천황 단군임검 삼성조를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훌륭하나,
민족종교로서의 신앙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상제님께서 제시하신 사상과 이념을 체계화시키려고 노력한 결과도 나름 훌륭하나,
신도(神道) 세계를 확연히 알지 못하였기에
한계가 있었고,
최수운 대신사의 동학과 상제님의 가르침을
대등한 수준에서 다루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이상의 몇 가지만 따져보더라도
운산이 청음 남주 형제에게 배운 것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운산이 제시한 진리의 수준은
학자가 공부하여 사상을 집대성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이며,
경전에 등장하는 말씀을 100% 이해한다고 해도
가능한 영역이 아니며,
본질적인 이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경계임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진리 사상을 비교 분석해보면
분명하게 드러날 일인데도,
사회 상식적 표면적인 관계로만 쉽게 판단해버린 채,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운산이 어떤 인물인지를 놓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상제님 진리의 노른자 핵심에
다가갈 기회를 놓치고 만다.










안원전


德在於道 化在於德

 운산 안흥찬 총사수가 1945년 8.15 해방과 더불어  개척한  증산교 김제 용화동에 갓떨어졌다고 믿은 노회한 맹인 이상호를 토방주로 임명하자 청음은 동생 남주 이정립을 내세워 총사수를 고립시키고 단체를 차지합니다.  총사수는 남주 이정립에게 서울 합정동에 하숙시키며  우주원리를 가르치고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본질과 신명세계의 본질 및 신위를 강론하며 책을 쓰도록 뒷받침하지만 해도진인 마지막 인류추수 열매자로 크게 착각한 청음남주는 이미 자신들 스스로 설정 카테고리화한 고정관념으로 상제님을 천사로 규정하고 태모 고수님은 그저 교단개창한 일꾼정도로만 알게됩니다. 그러다 후일 자신이 고수부님과 함께 핍박한 성포 고민환이 선정원경을 발표해 태모 고수부님이 미륵불 하느님으로서 증산 상제님의 음양 합덕 여성 하느님으로 10년 신정공사를 집행하셨음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 <고부인신정기>를 1년 반만에 서둘러 내놓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두 분 청음 남주 형제는 증산상제님에 대해 절대자의 신권을 부인하고 도가의 장천사 정도의 기행이적을 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수준에 머뭅니다. 신계는 통일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하에 조화정부라는 천지공사의 본질은 사상이나 철학으로 이해해 그의 천지공사 정리편은 신학적 철학적 사변론에 불과한 대순철학 수준에 머뭅니다. 이는 사실상 운산 총사수가 2년간 하숙시키며 용돈주며 채근해  상제님 진리 포교의 훌륭한 신앙교재가 나오기 바라며 강설한 간곡한 소망에 찬 물을 끼얹은 결과물로 나온 것입니다. 후일 상제님 신위를 통천상제라 한것은 청음이 66년 말 남주가 68년초 (세상의 주인공으로 여겼던 이들 형제가  형 청음의 선화에 충격받은 남주가 약 1년만에 선화) 선화하던 즈음 통천궁을 지으며 소책자를 발행하면서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이는 전명숙 기운을 받아 용봉기를 꽂아놓고 사람나서면 전해주라는 공사와 연결된 것으로 청음남주 형제는 최수운과 전명숙이 사명기가 없어 일이 실패되어 귀신으로 포한이되어 하소연한 이후 상제님이 사명기 공사를 보신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천하의 종주권이 실현되지않자 이들 형제는 후일 일꾼나서면 전해주라는 용봉기를 자신들의 사명기로 잘못 오인해 전명숙 기운을 받는 것으로 견강부회한 것입니다. 동시에 태모 고수부님 입장에서는 너희 청음 남주 둘은 그 주인공이 아니니라 하시는 간접적인 충고말씀인데 말씀의 진의를 끝내 이해 못하고 선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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