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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세계) 귀신 2 조선의 신비한 조상 혼령-인평대군 부인의 혼령& 흥선대원군과 산신&두창신(痘瘡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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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신비한 조상 혼령-신명들 얘기  2.


인평대군 부인의 혼령

숙종 경신(庚申, 1680)년 4월에 이른바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인평대군(효종의 아우)의 세 아들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 등 3형제가 영의정이던 허적의 서자 허견과 모의하여 역모를 꾀한다는 서인 측의 고발에 따라, 남인 세력이 제거되고 인평대군의 아들 3형제가 모두 사형당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이 있기 직전인 이해 봄, 인평대군의 집 여종이 수백 리 밖에 있는 친척 집을 방문했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평소의 두 배 속력으로 달려와, 높은 담을 뛰어넘고 집안으로 들어와서는 곧바로 인평대군 사당으로 가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집안사람들이 보니, 여종은 옷을 벗어 사당 문밖 나무에 걸어 놓고 사당의 계단에 주저앉아 사당 안을 들여다보며 계속 울고 있었는데, 이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매우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ㅋ
그래서 인평대군의 아들 복창군과 복선군, 그리고 대군의 손자들이 그 여종을 묶어서 내쫓으려 하니, 여종은 손을 뿌리치며 크게 소리치기를,
“나는 인평대군 부인이고 너희 어미인 오씨이다. 곧 우리 집안이 망하는 큰 재앙이 임박했기에, 너희에게 어떤 지시를 내려 집안의 재앙을 면하고 살아날 방도를 알려 주려고 왔는데 이 무슨 무례한 짓이냐?”
하고 꾸짖으면서 울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군의 아들들은 요망한 소리를 한다면서 밖으로 내쫓으라고 하인들에게 엄명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여종은 집 밖으로 쫓겨났는데, 이튿날 또 어떻게 들어왔는지 집안으로 다시 들어와 역시 사당 앞에 앉아 곡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 어미 오씨 부인이다. 지금 조정에서 너희를 죽일 계책을 꾸미고 있는데, 내가 저 세상에서 이것을 미리 알고 하늘에 가 계시는 여러 선대 임금님께 달려가 호소했지만, 효종대왕께서 재앙이 이미 완전히 결정된 것이어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와서 알려 주는 것인데 왜들 알아듣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호소하듯 말하고 계속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껑충 뛰어 그 높은 담장 위로 올라가 엎드려서 마치 형벌을 받는 것 같은 시늉을 하면서,
“너희가 이 모양으로 형벌을 받게 될 터이니 그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하고는 담장 위에서 굴러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대군의 아들들은 역시 이 여종을 꾸짖으며 대문 밖으로 끌고 나가 던져 버렸습니다.
그 후 몇 달 뒤에, 영의정 허적의 서자 허견이 이들 인평대군의 아들 3형제와 결탁해 반란을 꾀했다고, 김석주 등이 숙종에게 고변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인평대군의 아들 3형제는 사사(賜死)당했으며, 대군의 손자들도 모두 죄를 입어 죽음을 당하거나 귀양을 가게 되어 집안이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란이 있고 나서야 그 여종은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듯 보통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조선 중기]

흥선대원군과 산신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98)이 대원군이 되기 전인 헌종 기유(己酉, 1849)년에, 안성 청룡산에 있는 부친 남연군의 묘소로 성묘를 하러 갔습니다.
가는 도중 한 스님이 길을 막고 누워 일어나지 않아, 종들이 소리치며 일어나라고 해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흥선이 다가가 살펴보니 이승(異僧) 같아서, 주점으로 데리고 가 밥을 함께 먹고 같이 자면서 밤새 얘기를 해보니 풍수지리에 매우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흥선이 부친 산소를 이장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튿날 스님은 같이 가서 남연군 묘소를 보고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소승이 좋은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니 저를 따르소서.”
라고 말하고는, 한 곳에 왕이 날 곳이 있다면서 덕산 가야동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 산 중턱에는 낡은 절이 하나 있는데, 스님은 그 절 법당 뒤 한 지점을 지시하면서 이장할 날짜를 정해 주고 그날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약속한 날 이하응이 관을 운반해 가니, 스님은 절의 법당을 불 질러 태우고, 타지 않은 구리 부처만 쇠망치로 부숴 골짜기에 땅을 파고 묻었습니다. 그리고 산신에게 제사를 모신 후 지정한 자리에 묘를 썼습니다.
이때 가야동에 오래 살고 있던 윤식이 와서,
“왕기(王氣)가 있다는 이 산에 묘를 쓸 수 있느냐? 그렇게 하면 반역죄에 걸리게 되어 있다.”
하고 항의했지만, 스님은 남연군 역시 왕손이니 상관없지 않느냐고 설득해 돌려보냈습니다.
이러고 세월이 흘러 임자(壬子, 1852)년에 고종(高宗)이 태어나고, 계해(癸亥, 1863)년 왕위에 오르니, 부친 이하응은 흥선대원군이 되었습니다.
이후로 대원군은 그 스님과 매우 가까워졌으며, 남연군의 묘역을 다시 넓혀 크게 만들고 각종 석물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새로 보덕사라는 절을 지어 남연군의 혼령을 모셔 놓고 명복을 빌게 하면서 묘역 시설을 사치스럽게 꾸미니, 그곳에 오래 살았던 윤식은 그 세력에 밀려 거기를 떠났습니다.
그 뒤로 스님은 대원군 곁에서 대소사의 자문에 응했으며, 이 스님의 이름은 정만인이라고 했는데, 왜승(倭僧)이라는 사람도 있고 양승(羊僧)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원군이 국권을 잡고 있으면서 이 스님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하니 스님은,
“다른 소원은 없습니다. 다만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을 인판(印版)해 출간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원군이 명령을 내려 팔만대장경을 인쇄해 찍어냈습니다.
[조선 후기]

두창신(痘瘡神) 된 친구
    
서울에 사는 김씨 선비에게는 몇 년 전에 죽은 친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씨 선비가 무슨 일로 영남으로 가게 되어 조령을 넘는데, 조령고개 정상에서 뜻밖에도 그 죽은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좋은 말을 타고 호위하는 사람들과 많은 아이들을 죽 거느리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씨 선비가 반갑게 인사한 다음에 의아한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오래 전에 죽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 이렇게 많은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여기 나타났는고? 그리고 웬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거느리고 있는가?”
이에 친구는 자신이 죽어 두창신이 되었다고 하면서,
“그래서 내 경기 지방에서 아이들에게 두창병을 행사하여 이렇게 두창으로 죽은 아이들을 거느리고 영남으로 가는 길일세. 이제부터는 영남에서 두창병을 퍼뜨려야 하거든.”
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이 말에 선비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자네는 살아 있을 때 인정 많고 착한 사람으로 이름나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죽여서야 되겠는가?”
하고 나무라니, 친구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자네는 저승 세계와 인간의 명수(命數)에 대해 아직 모르고 있네. 시운과 또 타고난 명수에 따라 죽게 되어 있는 아이들인지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
이 말을 듣고 선비는 말이 없다가, 그렇다고 해도 최대한 은혜를 베풀어 아이들을 적게 죽이도록 하라고 부탁하니, 친구도 슬퍼하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김씨 선비가 안동 지역에 이르러 한 마을에서 숙소를 정하려고 물으니, 온 마을 아이들이 모두 두창을 앓고 있으며, 이미 마을 아이들 중 절반에 달하는 아이들이 죽었다고 말하면서 다른 마을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선비가 사정사정하여 한 집에 숙소를 정하였는데, 역시 이 집 아이도 거의 죽게 생겨 있었습니다. 곧 선비는 주인을 불렀습니다.
“주인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아이를 살릴 수가 있습니다. 내 시키는 대로 하시겠습니까?”
“아, 하고말고요. 아이만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합니까?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래서 주인에게 깨끗한 음식을 마련해 상위에 올려놓고, 술 석 잔을 준비해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차려 왔기에 선비는 죽은 친구에게, 인심을 발휘해 아이들을 제발 살려 달라는 간절한 내용으로 제문을 지어 읽고 빌면서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러고 술 석 잔을 연속 올렸더니, 얼마 후에 주인집 아이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마을의 죽지 않은 아이들이 모두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되니 주인이 감사를 표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제사 올린 사실을 알리니,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고맙다고 사례했습니다. 이날 밤 꿈에 친구가 나타나더니,
“이 마을은 죄가 많아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되어 있었는데, 자네와의 약속 때문에 내가 노력해 모두 살렸다.”
라고 말하고는 사라졌습니다.
김씨 선비는 마을 사람들의 만류로 여러 날 그곳에서 유숙하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떠났습니다. [조선 중기]

 
서산 동암 이씨 ( 洞巖李氏 )

서산에는 동암 이씨가 사는데 , 그 상대 ( 上代 ) 조상 중에 매우 후덕한 군자 노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

이 노인이 가을에 대청에 앉아 마당에서 일꾼들이 타작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 멀리에서 한 관원의 행차가 지나다가 자기 집 쪽으로 곧장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 곧 가까이 다가오기에 살펴보니 , 분명히 몇 년 전에 죽은 친구 아무개였습니다 .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노인이 하도 기이하여 물었습니다 .

“ 자네는 벌써 세상을 떠났지 않은가 ? 그런데 어찌 아직까지 이렇게 살아 있단 말인가 ? 혹시 다시 깨어났는가 ?”

이 물음에 친구는 웃으면서 ,

“ 그렇다네 . 나는 벌써 죽어서 두창신이 되었네 . 그래서 호남지역에 두창병을 실시하라는 명령을 받고 가는 도중에 자네 집 앞을 지나게 되어 , 옛정을 못 잊어 잠시 들어온 걸세 . 이제 의문이 풀렸겠지 .”

하고 설명했습니다 . 이 말에 이씨 노인은 슬픈 표정을 짓고 ,

“ 아 , 그렇게 된 게로구먼 . 하지만 자네의 어진 성품으로 그런 모진 짓을 어찌하겠는고 ? 남의 귀한 자식을 가급적 살려서 은덕을 많이 베풀 것을 잊지 말게나 .”

하면서 신신당부했습니다 .

조금 있다가 친구는 뒤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르겠다고 말하고는 떠났습니다 . 그러나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 친구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시간이 흘러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되었는데 , 하루는 이씨 노인 집에 앞서 지나갔던 그 죽은 친구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 그런데 지난번 갈 때와는 달리 , 많은 짐을 싣고 사람들이 죽 따라와서 어마어마한 행차 같았습니다 .

이때 이씨 노인이 보니 12,3 세 가량 되어 보이는 깨끗하게 생긴 아이가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며 따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이씨가 하도 가엾어서 친구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물으니 , 친구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

“ 저 아이는 호남 어느 읍에 사는 김씨 성을 가진 아이인데 , 3 대 과부 집안의 독자라오 . 그 집안도 넉넉했고 두창병도 무사히 끝나 아이가 살아났는데 , 그 집에서 감사의 뜻으로 신령을 보내면서 많은 물자를 뇌물로 주었다네 . 그 물자를 거두어 가려니까 일꾼이 부족해 , 부득이 저 아이를 다시 잡아 짐을 지고 가게 한 것이라네 .”

“ 아니 이 사람아 , 그렇다면 다 살아난 아이를 자네가 짐을 지워 데리고 간다면 그 아이는 지금 죽었지 않은가 ?”

“ 그렇다네 . 저 아이는 두창병을 앓고 나서 살아났다가 다시 죽은 것이라네 .”

이 말에 이씨 노인은 어찌 그렇게 남의 자식을 부당하게 잡아 갈 수 있는가 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친구에게 사정했습니다 .

“ 자네 내 말 잘 듣게 . 내가 지금 말 한 필을 줄 테니 저 아이가 지고 있는 짐을 말에 싣고 가고 , 저 아이 목숨을 돌려주게나 .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 ?”

친구는 너무 인정 많은 것도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렇게 하라고 승낙했습니다 . 그래서 이씨가 마구간에서 말 한 필을 끌고 와 건네니 , 말이 눈을 살그머니 감더니 곧 쓰러져 죽었습니다 . 그러고 친구가 짐을 말에 옮겨 싣고 아이에게는 가라고 하니 , 아이는 금방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

이씨는 이렇게 하여 친구를 떠나보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며 한탄을 했습니다 .

몇 달이란 세월이 흘러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는데 , 하루는 이씨 노인이 마루에 나와 앉아 한가롭게 봄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

이때 한 부인을 실은 내행 ( 內行 ) 가마가 멀리 동구 밖에서 들어오더니 곧장 자기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 이에 이씨 노인이 깜짝 놀라 급히 종을 불렀습니다 .

“ 여봐라 , 게 누구 없느냐 ? 어떤 내행이기에 불시에 우리 집으로 들어왔는지 물어보아라 . 혹시 집을 잘못 든 게나 아닌지 알아보도록 하라 .”

이렇게 소리치자 종들이 나와 가마를 메고 온 일꾼에게 물으니 , 전라도 어느 읍에 사는 김씨 집 내행인데 이 댁에 함께 살기 위해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

그러고는 가마에서 한 부인이 나와 이씨 노인 앞에 공손히 절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 두창에서 살아난 외아들이 갑자기 다시 죽어 거적을 덮어 가매장을 해두었는데 , 며칠 후에 거기에서 김이 솟아오르기에 보니 아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 그리고 살아난 아이가 , 서산 동암 이생원님이 두창신에게 부탁해 말 [ 馬 ] 과 자신을 대신 바꾸어 주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는 내력을 자세히 말하기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어 집을 모두 정리해 이렇게 왔으니 소첩과 아이를 받아주소서 .”

얘기를 들은 이씨 노인은 곧 개울 건너에 따로 집을 짓고 그 아이 일가를 살게 하고는 아이 성을 이씨로 바꾸었으며 , 이후 대대로 자손이 번성했습니다 . 그래서 동암 이씨는 ‘ 천좌 ( 川左 : 개울 동쪽 )’ 와 ‘ 천우 ( 川右 : 개울 서쪽 )’ 두 계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 [ 조선 후기 ]

 

두창신에 대한 인식

 

유몽인 (1559~1623) 은 자신이 엮은 설화집 ≪ 어우야담 ( 於于野譚 ) ≫ 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습니다 .

세속에는 두창신을 받들고 꺼리는 일에 정성을 쏟고 , 약 쓰는 일에는 소홀히 합니다 . 두창으로 희생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서 , 부인들뿐만 아니라 사대부들까지도 두창신의 조화라고 믿으며 무당에게 매달리니 한심한 일입니다 .

생각해 보면 , 역 ( 疫 ) 은 열 ( 熱 ) 이고 열은 불 [ 火 ] 입니다 . 따라서 열과 불에 의해 허 ( 虛 ) 한 마음속을 비추므로 헛소리를 하게 되고 , 총명한 영험을 나타내 영감으로 안 보이는 것도 보이고 먼 곳의 일도 말하게 되어 영이 ( 靈異 ) 한 것처럼 현혹당하게 됩니다 . 예를 들어 스님이나 신선이 앉아 마음을 비우고 정관 ( 靜觀 ) 하면 집 밖의 일도 알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

우리 집 종이 두창에 걸려 50 리 밖의 농장에 내쳤다가 가엾어서 잡은 노루 다리를 보냈더니 , 그 고기가 가고 있는 도중에 ‘ 내 노루 다리 달라 ’ 고 소리치다 고기가 도착하기도 전에 죽어서 , 그 고기로 제사를 지내 주었습니다 . 또 이웃집 아이가 두창으로 반점이 솟았는데 , 누가 소 발굽을 3 개 주어서 몰래 삶으니 아이가 방안에서 , ‘ 우리 집에서 삶는 쇠고기 세 덩이를 맛보게 해 달라 ’ 고 외쳤다합니다 .

이것을 가지고 신이 알고 말하는 것이라 얘기하는데 , 이는 결코 그런 신의 작용이 아니라 열과 불에 의해 거울 비추듯이 조명된 영감에 의한 감지 ( 感知 ) 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것을 신에게 비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 [ 조선 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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