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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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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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229. 요 치하의 우가 거했던 곳은 사천성, 우(禹)의 도읍지는 평양(平陽), 혹 안읍(安邑), 혹 진양(晉陽)-안읍은 곧 지금의 산서 하현(夏縣)이니 하현의 서음촌(西陰村)은 저명한 채도 구역
다음은 지나족 역사에 있어 채도문화를 집대성했다는 하후(夏后)씨 우(禹)의 역사를 조명할 차례이다. (서량지는 세석기문화의 주인공이 동이 제 족이며 회도 문화의 주인공이 동이족인 반면(여기까지는 하자가 없다)  채도문화의 주인공은 화하족이라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대륙의 향토사료를 점검한 결과 우(禹)로부터 시작했다는 채도문화는 동이족의 것이라고 결론내리게 되었다. 이 점은 본 담론을 자세히 읽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안원전)



단군 조선의 분치국으로 지나족 최초의 치수사업 공동기획문서 우공(虞貢)은 순(舜) 치하에서 사공(司空) 우(禹)가 단군왕검에게 보고용으로 작성된 것인데 우가 순을 밀어내고 하 나라를 연 뒤 자신에게 보고된 의미로 우공(禹貢)으로 고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여기서는 이에 관련된 내용은 중첩되므로 생략한다.(見 「통곡하는 민족혼」 안원전 著 89년) 다만 지나족의 채도문화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 중심추가 결코 지나족이 아니고 우리 동이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포인트를 꼭 견지하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사고전서·자부 유림(喩林) 27권에는 대우(大禹)가 동이에서 태어났다(大禹生於東夷)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태평어람(太平御覽) 780권에는 기(杞)나라는 하(夏)의 후예국인데 동이로 되었다(杞夏餘也 而卽東夷)라는 기록이 나온다. 기나라가 하의 후예라는 것은 공자도 언급한 사실로, 그 내용이 논어에 실려 있는데 이런 기록들은 하우(夏禹)가 동이족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해준다. 沈伯綱




상고 동이족의 주요 거점 쓰촨(사천).중국 남서부 양쯔강[揚子江] 상류에 있는 성. 성도(省都)는 청두[成都]. 면적 56만 9000 km2. 인구 1억 1천만(1992). 양쯔강·민장강[岷江]·퉈장강[江]·자링강[嘉陵江]의 4대강이 성내를 흐르기 때문에 ‘四川’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한족(漢族) 이외에 이족[彛族]·창족[藏族]·먀오족[苗族]·후이족[回族]·창족[羌族] 등 여러 종족이 살고 있다. 동쪽의 쓰촨 분지[四川盆地]와 서부고원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쓰촨 분지는 적색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어 ‘적색분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분지 주위에는 해발고도 1,000∼3,000 m의 다량산[大凉山]·민산산[岷山]·다바산[大巴山]·우산산[巫山山] 등의 산지와 고원이 펼쳐진다. 분지(盆地)의 바닥은 500 m 이하로, 광대하고 비옥한 선상지 청두 평원도 있으나 고원의 대부분은 파상지를 이루고 있다. 칭창 고원[靑藏高原] 남동쪽의 서부고원은 원래 시캉성[西康省]의 주요 지역으로 대부분이 해발고도 3,000 m 이상이다. 산맥이나 하곡은 북서쪽에서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많고, 하곡은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이루는가 하면 궁가산[貢山]처럼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는 7,000 m에 달하는 산도 있다. 하천은 모두 양쯔강 수계에 속하고 양쯔강의 본류가 우산산을 횡단하는 성의 경계에는 예로부터 험하기로 이름난 싼샤협[三峽]이 나타난다. 동부 분지에서는 겨울이 따뜻하고 여름에 극심한 무더위가 계속된다. 강수량은 1,000 mm 내외이며 ‘촉(蜀)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안개가 잦다. 그 반면 서부고원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식량 생산량과 쌀 생산량 모두 전국 제1위이고 밀·옥수수·보리도 많이 산출되는데 특히 청두 평원에는 두장언[都江堰] 등의 관개시설이 정비되어 있다. 상품 작물로는 목화·저마·차·유채가 주로 재배되고 양잠업도 성하며 과일 나무도 많다. 산지에는 1,000만 ha나 되는 광대한 원시림이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목재 이외에 동유(桐油)·동백유·옻칠·오배자(五倍子)를비롯하여 한방용 약재도 풍부하다. 사육 돼지·소의 숫자도 전국 제1위를 차지하고 서부고원의 광활한 초원에서는 야크(소와 비슷하며 힘이 세고 큰 짐승)·염소·면양이 사육된다. 팬더나 모피를 얻기 위해 기르는 가축도 많다. 지하자원은 종류나 매장량이 모두 풍부한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석유·천연가스·석탄·철·금·구리·알루미늄·아연·소금·석면·운모 등이 있다. 소금은 쯔궁[自貢] 일대의 염정(鹽井)에서 퍼올린다. 석유·천연가스는 쓰촨 분지의 중부에 널리 분포하고 탄전은 성의 동부와 남부에 많다. 화잉 산괴[華瑩山塊]의 중량산[中梁山] 광산은 석탄으로 유명하고, 치장[江] 이외에 시창 전구[西昌專區]의 판치화[樊枝花]에서 대규모 철광산이 발견되었으며, 석면은 스궤이현[石棉縣]에서 많이 난다. 공산정권 수립 후에는 철강·기계·전기·화학·방적·식품·제지 등의 공업도 급속도로 발전하여 충칭[重慶] 이외에 청두·난충[南充]·네이장[內江]·이빈[宜賓]·쯔궁 등의 발전이 두드러지고, 비단·동기(銅器)·칠기·죽세공 등 공예품의 생산도 활발해졌다. 바오청[寶成]·청위[成b]·촨첸[川黔]의 3개 철도가 개통된 뒤에는 싼샤협 항로(航路)가 정비되어 육상 및 수상 교통이 모두 편리하게 되었다. 주요 도시로는 청두·쯔궁·충칭·난충·완셴[萬縣]·두커우[渡口]·네이장·루저우[濾州]·이빈·5양[綿陽]·다셴[達縣] 등이 있다.지도상 검각촉도 왼편의 구채구는 사천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섬서성 한중으로 향하는 혈로 검각 싸움은 촉의 후주 유선과 제갈량의 아들이 건곤일척을 걸고 싸웠으나 패망해 역사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장소다. -Chinatour.co.kr-




<제왕세기>에 백우(伯禹) 하후씨(夏后氏)는 성이 사(似)이니, 부는 곤(鯀), 모는 수(修)이니, 가슴을 절개하고 우(禹)가 석뉴(石紐)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석뉴가 어느 곳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곧 지금의 사천 문천(汶川)현 서북의 석뉴(石紐)촌이고, 다른 하나는 곧 지금의 사천 북천(北川)현의 석뉴(石紐)산이다.

이 두 지역은 한결같이 채도가 발굴된 성도(成都), 이번(理蕃)이 있는 지역으로 모두 민강(岷江) 유역에 속하니 서로간의 거리가 멀지 않다. 이로써 앞서 우(禹)가 부루태자를 만났다고 한 도산(塗山)이 중경의 민강(가릉강과 합류해 양자강이 시발하는 곳)가에 있다는 말이 증명된다. 대우릉에서 제시한 우의 고향은 바로 현재 지명으로 사천성(四川省)북천현(北川縣) 석뉴촌(石紐村)이었다.

「좌전」희공 32년 전(傳)에 효(殽)에 2릉이 있으니, 그 남쪽의 릉은 하후고(夏后皐)의 묘라 했다. 「후한서」<군국지>에 설명하기를, 승지(澠池)에 2 효(殽)산이 있다 하고, 「청일통지(淸一統志)」에 말하기를, 승지의 옛 성이 지금의 현성(縣城) 서쪽에 있다. 하후고의 능묘는 원래 승지에 있으니, 채도문화 구역의 표준인 앙소촌과 그 거리가 필연 멀지 않다.

하후씨 추장의 능묘는 원래부터 앙소촌과 근접해 있으니, 즉, 앙소 일대는 그 부족의 중요 근거지로 가히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일주서 도읍편>에 낙(洛)의 어귀로부터 이(伊)의 물가로 이끌어 주거를 바꾸니, 일정한 곳이 없는 것이 유하(有夏)의 도읍지라 했다.(「사기」 <주본기> 내용 동일)

「국어 주어(周語)」에 옛날 이(伊)수, 낙수(洛)가 말라붙어 하(夏)나라가 망하고, 황하가 말라 상(商)나라가 망했다고 했다. 위소(韋昭) 주(注)에 우(禹)가 양성(陽城)에 도읍했으니, 이, 락에 가깝다고 했다.<전국책>, <위(魏)책>에 무릇 하걸(夏桀)의 나라에 좌로 천문(天門)의 음(陰)과 우로 천계(天谿)의 양(陽)이 있으니 택려(睪廬:못(澤)가의 거처)가 그 북쪽에 있으며, 이락(伊洛)이 그 남쪽에 나타난다고 했다.

「사기」<오기열전>에 하걸(夏桀)이 거주한 곳은 좌에 하제(河, 濟), 우에 대화(大華), 이궐(伊闕)이 그 남쪽에, 양장(羊腸)이 그 북쪽에 있었다. 이상에서 서술한 것으로 말미암아 가히 우걸(禹桀)이 도읍한 곳을 알 수 있으며, 모두 이락(伊洛)이 중심무대였다.

금악(金鍔)의 「구고록예설(求古錄禮說)」 권 4, 「우도고(禹都考)」, 「걸도안읍변(桀都安邑辨) 권 8로 단언하면 우걸(禹桀)의 도읍지는 곧 낙양(洛陽)이다. 또 낙양 서쪽에 앙소(仰韶) 승지(澠池), 서사교(西謝橋), 삼리교(三里橋), 묘저구(廟底溝)(陝縣), 홍농간(弘農澗), 호양하(好陽河)(靈寶)가 있으며, 동쪽에 음주대(飮酒臺)(偃師), 조구(趙溝), 마욕구(馬峪溝)(鞏縣)가 있으니 이들 모두는 저명한 채도문화 구역이다.

「좌(춘추)」 장(莊) 32년 전(傳)에 신(神)이 신(莘)에 내렸다 하고, 「사기」<주본기 정의>에 <세본>을 인용해 신(莘)국은 성이 사(似)이니 하후(夏后)의 후예라 하고, 고동고(顧棟高)의 「춘추대사표」에 섬주(陝州) 협석진(硤石鎭) 서쪽 15리는 본래 옛 괵(虢:문왕의 아우 괵중(虢仲=虢叔)이 처음 봉해진 땅)의 신(莘) 땅이 된다고 했다.

장(莊) 32년에 신(神)이 신(莘)에 내렸다 하니 곧 이를 말한다. 협석진과 앙소촌과의 거리는 50리에 불과하다. 협석은 이미 옛 신(莘) 계로, 신인(莘人)은 하계의 후예이니 다시금 앙소일대 및 하후씨의 근거지임을 족히 증명한다.

「국어」<주어(周語)>에 유하(有夏)가 비록 쇠했으나 기(杞),회(鄶) 국이 오히려 존재한다 하고, 「좌(춘추)」희공 31년 전에 위성공(衛成公) 몽강숙이 이르기를 ‘상탈여향(相奪予享)’(상(相)은 하후상(夏后相)을 가리킨다.

전에는 은(殷)의 상토(相土)를 가리키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니다) 공(公)이 상(相)을 제사하라 명했다. 영무자( 寧武子)가 불가해 말하기를 ’귀신이 그 족 류가 아니므로 그 제사 상을 흠향하지 아니하니 기회(杞鄶)라는게 어쩐 일인가?’  

「국어」 <진어>에 ‘신(申)인, 회(鄶)인이 서융을 불러 주(周)를 정벌했다.’ 「사기」 <주본기>에 ‘신후(申侯)가 노해 증(繒:비단을 생산한 나라니 묘요계 혹은 양자강 유역의 동이 9족 국가인 듯), 서융, 견이(犬夷)와 더불어 유(幽) 왕을 공격했다.’

「좌」<애(哀) 4년전>에 ‘초(楚) 인이 이미 이호(夷虎)를 이기고, 방성(方城)의 밖 증관(繒關)에 이르렀다.’고 하니, 기(杞),회(鄶:「국어」에 성이 姬로 지금의 하남 수현(脽縣)에 있었다)는 모두 하후씨가 중원에 유거(留居)하여 남긴 후예이다. 기(杞)의 땅을 멀리 바라보건대 「괄지지」에 의하면, 「사기」 <하본기 정의>를 인용하여 설명하기를, 곧 잡주 옹구(雍丘)현은 또한 곧 지금의 하남(河南) 기현(杞縣)이다. 회(鄶)는 즉 (정의(正義)를 인용해) 「괄지지」에, 생각건대 곧 기주(沂州)가 현을 승계했으니, 또한 곧 지금의 산동 역산(嶧山)이라 했으나 아니다.



전국시절 한,위,조 등 동이족 3진의 중심지인 산서성과 함께 상고 동이족의 주 웅거지인 하은주의 중심 하남성. 중국 화북지구(華北地區) 남부에 있는 성. 면적 16만 7000 km2. 인구 약 8949만(1994). 성도는 정저우[鄭州:鄭나라 수도]. 북쪽은 허베이[河北], 북동쪽은 산둥[山東], 동쪽은 안후이[安徽], 남서쪽은 후베이[湖北], 서쪽은 산시[陝西], 북서쪽은 산시[山西]의 각 성(省)과 접한다. 지형적으로는 서부의 산지, 동부의 평원으로 나누어진다. 즉, 서부산지는 북서부의 타이항[太行]산맥, 서부의 친링계[秦嶺系]의 푸뉴[伏牛]산맥, 남부의 퉁바이[桐柏]·다볘[大別] 산맥 등으로 이루어지고, 화북평원은 북부의 황허강[黃河]·화이허강[淮河]에 의한 평원과, 남부의 한수이강[漢水]에 의한 난양평원[南陽平原]으로 나누어진다. 수계(水系)로는 그들 하천 외에 하이허강계[海河系]가 있는데, 모두 황천(荒川)으로 예로부터 자주 수해를 일으켰기 때문에, 공산정권 성립 후 치수공사를 하여 북서부의 싼먼샤[三門峽]댐·평원부의 런민성리거[人民勝利渠]·왕라오보축홍구[王老波蓄洪區] 등이 완성되었다. 이 평원은 일찍부터 발전한 지역이며, 문자 그대로 ‘중화(中華)’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또한 예로부터 농업도 활발하여 전국 제일을 자랑하는 밀을 비롯하여 목화·땅콩·참깨 등의 경제작물도 재배한다. 서쪽의 산지에서는 임업·과수재배가 이루어진다. 이 지역에서 산출되는 원료를 이용한 공업도 발달하였다. 자오쭤[焦作]·하오비[鶴壁] 등의 석탄, 서쪽의 철광을 이용한 철강·기계, 싼먼샤 등의 전력, 화학 부문을 비롯한 중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의 석탄은 후베이성[湖北省]의 우한[武漢]까지 수송되어,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콤비나트를 형성한다. 또한 이들 생산물은 철도를 중심으로 한 교통망에 의해 성내(省內) 및 전국 각지로 분산된다. 즉, 베이징[北京]∼광저우[廣州]·롄윈[連雲]~란저우[蘭州] 간 철도가 정저우에서 십자로 교차하며, 지선도 개발되어 있고, 평지를 가로지르는 하천도 수운에 이용된다. 허난성은 역사적인 도시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사적·명승지도 매우 많다. 카이펑[開封]의 샹궈사[相國寺], 뤄양[洛陽]의 룽먼석굴불상군[龍門石窟佛像群], 중국 최초의 절이라고 하는 바이마사[白馬寺] 등이 있다.-Chinatour.co.kr-




인하여 볼진대 다시 요즘의 하남 남양현(南陽縣) 북쪽이 되니, 서융, 견이가 다시 산서, 섬서 경내에 주거해, 과연 회(鄶)인이 산동에 주재(住在)함과 같으니, 군사상 여하히 능히 신후(申侯) 연합행동이 일어나 미치어 오겠는가?

그 다음으로, 방성(方城)이 남양(南陽) 동북에 있어, 소위 방성(方城)의 밖 증관(繒關)에 이르렀으니, 족히 증관이 방성(方城) 남양 부근에 있음을 보며, 또한 곧 족히 회(鄶)인의 거주한 곳을 보니, 거듭 남양(南陽), 노산(魯山) 등 예서(豫西) 채도(彩陶)구역에 존재한다. 그 위에 회(鄶) 혹 증(繒)은 모두 증(甑)의 차자(借字:빌려쓴 글자)이다.

채도 유적지에서 비록 완전히 정돈된 도증(陶甑:질그릇 솥 또는 시루)이 다시 발굴되었다 하나, 후강(後岡) 흑도 문화층은 발굴이 멈추었다. 회(鄶)인은 곧 하후씨 부족 가운데 중요한 일 지파이며, 또한 곧 채도계 가운데 도증(陶甑)을 발명한 한 지파이다. 그 채도문화의 공헌에 짝하는 것은 바로 저 계열 가운데 도호(陶壺:질그릇 단지)를 발명한 곤오(昆吾)씨이니 그와 더불어 이곡동공(異曲同工:연주하는 곡은 다르나 그 교묘함은 같으니 방법은 달라도 결과는 같음)한다.

「사기」<구책(龜策)열전>에 <걸이 기와집을 만들었다(桀爲瓦屋)>하고, <집해(集解)>에,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 또한 걸이 기와를 만들었으니, 이는 대개 걸이 지은(作) 것을 곤오(昆吾)가 만든(爲) 것이라 했다. 이 소위 기와집(瓦屋)은 곧 기와가 있는 집(瓦之屋)을 가리키니, 이로써 요(堯)의 기와 없는 띠집(茅屋)으로부터 새 기원점이 된다.(「한비자」 <오준(五蠢)편>에 요(堯)에 대해 설명하기를, ‘띠로 지붕을 이어 자르지 않고, 서까래를 선택해 깍지 않았다(茅茨不翦  采椽不斲)’)

도자기 제조 공업이 일시적으로 하걸(夏桀) 시대에 극히 성했으니, 질그릇으로 기와를 만드는 것으로 이를 완전히 가능하게 했다. 성자애(城子崖) 회도계 가운데 이미 매우 진보적인 기와가 있으니, 이는 가히 다시금 하걸(夏桀)시대의 영향을 능히 받은 것이다.

「묵자」<경주편>에 설명하기를, 하후개(夏后開: 곧 계(啓)이니 이는 한경제(漢景帝)의 이름을 피한(諱) 연고다)는 비렴(蜚廉)으로 하여금 쇠로 주조한 솥(金鑄鼎)을 캐게 했다. 「한서(漢書)」<교사지(郊祀志)>에 설명하기를, 우(禹)가 9목(牧:목민관)으로부터 쇠로 주조한 정(鼎:발 셋, 귀 둘의 솥), 력(鬲: 발 셋 솥)을 거두어 들였다.

또 설명하기를, 그 빈 다리를 일러 력(鬲)이라 하는데, 3덕을 본 뜬 것이다. 쇠붙이 솥인 정(鼎), 력(鬲)은 하(夏) 시대에 볼 수 있으며, 금일에는 비록 오히려 증명할 방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또한 불가능하지 않다.

팽배래 씨(彭裴萊:R, Pampelly)에 의해 계산을 어림잡으면, 안락(安諾:Anau)의 황동시대는 약 공원(公元) 전 6천년에 개시되어, 공원(公元) 전 2천 2백년에 끝났다.(Exporations in turkestan, vol I, p, 50,57) 즉, 하우(夏禹) 시대(전 2205년-2198년)를 설명하면, 이미 금석병용시대로 들어갔는데, 이를 헤아리면 실로 과장이 아니다. 단 질그릇 솥 및 채도 구역은 항상 볼 수 있는 것으로, 도력(陶鬲)이 비록 회도, 흑도문화의 산물이지만, 채도계의 형촌(荊村:산서 만천현) 또한 발굴되었으니 도리어 이는 사실이다.

우(禹)의 도읍지 문제에 관해 「사기」<하본기> 집해(集解)에 황보밀의 설명을 인용해 평양(平陽)에 도읍했으니, 혹 안읍(安邑), 혹 진양(晉陽)에 있다고 하였다. 안읍은 곧 지금의 산서 하현(夏縣)이니 하현의 서음촌(西陰村)은 이 또한 저명한 채도 구역이다.

또「죽서기년」<의증(義證) 권6>에 보면 제순(帝舜) 유우(有虞)씨는 성(姓)이 요(姚)인데, 춘추번로(春秋繁露)라는 책에 하늘이 장차 순에게 주인자리를 내리려하여 요(姚) 씨가 사성되었다 하고,  요(姚) 씨 성이라는 것이 우막(虞幕)의 사성인 고로 순이 유우(有虞) 씨라 칭했다 한다. 또 이 성 씨는 요가 물러난 뒤 천하의 큰 명호(號)가 되었으며, 원년인 기미년에 기(冀)에서 즉위했다고 했다. 이 대목을 스치다 보면 이런 글귀가 보인다.

즉, 맹자의 말을 인용해, 요가 죽은 지 3년 상을 마치자, 순은 단주를 피해 “남하(南河)의 남(南)”으로 피난했는데,  천하 제후가 조근(朝覲:배알)을 올린 사람은 요의 아들 단주가 아니라 막상 순이었으며 송사문제로 쇄도한 사람 역시 요의 아들 단주가 아니라 순이었다는 것이며, 소리 높여 노래한 자 역시 단주가 아니라 바로 순이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순은 왕위에 올랐다는 것이며, 전국시절에 요, 순, 우는 기(冀)를 수도로 삼아 웅거했다고 전하지만 설명이 모두 달라 명확한 것이 없다 한다. 또  고주(故州)의 서견(徐堅) 초학기(初學記)에 말하되, 당우(唐虞) 이전의 수도 이름은 분명치 않으니 또한 곧 이 뜻은 한지(漢志)에 말하기를,

요(堯)의 수도는 평양(平陽)이라 하고, 「사기」 <화식(貨殖)>에 전해 이르기를 당인(唐人)이 하동(河東)에 거주했다 하고, 「모시보(毛詩譜)」에 이르기를 요가 진양에 거했다 하고(堯居晋陽13州記),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요의 수도는 포(蒲)에 있었다 하고, 세본(世本)에 이르기를 순(舜)이 위예에 거했다(舜居嬀汭:물굽이 예)고 한다.

또 「제왕세기」에 이르기를 우(禹)의 수도는 평양(平陽) 혹 안읍(安邑) 혹 진양(晋陽)에 있다 한다.  그 설이 분분하여 하나가 아님은 중국의 사료가 상고사를 은폐하기 위해 뒤섞음질을 쳤기때문이니 죽서기년은 이 모두 기주(冀州)지방인 것이 중요하다 했다. 그러나 요 치하의 우가 거했던 곳은 사천성였던 것만은 틀림없으니 아마도 우가 순의 왕실을 접수하고 기주 지방으로 갔기 때문으로 본다.

참고:

夏朝  (公元前 2033 至 公元前 1562)

公元前二十一世纪至公元前十六世纪,是中国第一个王朝--夏王朝时期。标志着中国若干万年的原始社会基本结束,数千年的阶级社会从此开始,他的诞生成为中华文明史上的一个重要里程碑。夏朝总共传了十四代,十七个王,延续近五百年。(夏朝的世系年代无定说,此为一家之说)

夏禹治水有功,被禅位为天子,成为夏王朝的建立者。禹即帝位后,都于阳翟(音「敌」,今河南禹县),又曾都安邑(今山西安逸)或平阳。他一再会合诸侯,并将中国分为九州岛(历来说法不一,有禹贡九州岛、尔雅九州岛、周礼九州岛等分别。一般乃指周礼九州岛,为扬、荆、豫、青、兖、雍、幽、冀、并),定贡赋的制度。

九黎,三苗的侵扰,是远古时代的严重编患。「少昊」、「颛顼」的时候,黎、苗继作乱,尧、舜曾征讨,至大禹时代才将之平服。从此,长江中游平定,黎、苗不再北侵。这是远古对抗南方部族的一长期的艰苦战争。

禹既治平水患,又征服黎苗,功业甚大,因此得到「大禹」的尊称。大禹死后,他的儿子破坏禅让的传统,自立为王,恢复了黄帝王朝初期父子相传的古老制度。从此,王位的传子不传贤,实行世袭制度,开始了古人所说的「家天下」。这是一种政治上的进步。

夏启即位后,很能继承大禹的事业,可惜死后,他的儿子「太康」无能,被一位诸侯首领、传说中「嫦娥」的丈夫「后羿」所逐。太康死后后羿立太康的之弟「仲康」为夏王,但实权操纵在后羿之手。仲康死后,其子「相」立,后羿被他的臣子「寒浞(音「浊」zhuoˊ)」所杀,又杀「相」自立。当「相」被杀时「相」的王后「缗(音「民」minˊ)」正在怀孕,逃奔到「有仍」(今山东济零县),生「少康」。「少康」长大后,就收聚夏的残存势力,灭掉「寒浞」,光复夏王朝。史称「少康中兴」。少康之子「杼(音「注」zhuˋ)在位时拥有一支比较强大的武装,彻底肃清了「寒浞」的势力,并征伐东夷,使夏王朝发展到了鼎盛。其后的五代六王,社会比较安定,经济持续发展。夏王朝的统治,东至东海、西连西河、北及燕山,南逾江淮。当时已经能冶炼较好的青铜,生产了不少的青铜生产工具和生活用具,商品交换也有所发展。有了比较进步的阴阳合历和干支记日的方法。第十五代夏王「孔甲」,好方术鬼神、淫乱,引起诸侯的反叛,夏王朝逐渐衰败。「孔甲」再三传到「履癸」(夏桀),是历史上有名的暴君,他不务修德,奢侈无度,杀人无数,四处用兵,劳民伤财,以致民众反抗,诸侯叛离,终于被「商汤」所灭。

由于流传至今有关夏代的史料十分匮乏,所以历史上是否有夏代存在,曾被许多人怀疑。但是《史记.夏本纪》中记载的夏代世系与该书《殷本纪》中记的商代世系一样明确,商代世系在安阳殷墟出土的甲骨卜辞中得到证实,因此《史记.夏本纪》中所记的夏代世系被多数学者认为是可信的。






25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1-용건과 니입의 천둥번개-하늘 눈을 다시 뜨다(天眼重開) She(셔로 발음)[써족(畬서族)]  안원전   2003/08/25  8539
25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0-상제님의 효유(가르침)와 장백산(백두산) 요괴를 없앤 소녀 일길납의 천지(天池) 신화 [만주족(滿族)]  안원전   2003/08/22  5818
25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9-동이족 예(羿)와 봉몽(逢蒙)  안원전   2003/08/22  6011
251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8-과보(誇父)가 태양을 쫓다.(誇父追日)  안원전   2003/08/22  5845
250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7-구륜신(歐倫神)의 전설 [오로춘(鄂倫春族:악륜춘족)]  안원전   2003/08/22  6045
249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6-달을 쏘다.(射日) [요족(瑤族)]  안원전   2003/08/19  5956
248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5-양작(陽雀)이 해와 달을 만들다.(陽雀造月日) [묘족(苗族)]  안원전   2003/08/19  5681
247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4-호니인(豪尼人: 하니족의 한 갈래)의 조상 [하니족(哈尼族)]  안원전   2003/08/14  6160
246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3-백조 선녀(天鵝仙女)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한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의 결정판[만주족(滿族)]  안원전   2003/08/14  7052
245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2-호씨족(虎氏族) [이족(彝族)]  안원전   2003/08/12  6761
24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1-인간과 천신의 아름다운 사랑 두안주(斗安珠)와 목저주(木姐珠)[강족(羌族)]2  안원전   2003/08/11  6456
24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0-인간과 천신의 아름다운 사랑 두안주(斗安珠)와 목저주(木姐珠)[강족(羌族)] 1  안원전   2003/08/11  7118
24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9-신모구부(神母狗父) [묘족(苗族)]  안원전   2003/08/04  6292
241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8-제곡 고신왕(高辛王)의 세째딸과 부마 반왕(盤王)의 전설 [요족(瑤族)]  안원전   2003/07/31  7262
240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7-고산족(高山族)과 한족(漢族)의 기원 [고산족(高山族)]  안원전   2003/07/31  5507
239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6-백의민족 백족(白族) 늑묵인(勒墨人)이 전하는 웅족과 호족의 신화전설 동이족의 단군신화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다.  안원전   2003/07/28  7616
238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5 The Ark of Great Pumpkin 호박 방주의 고사(故事) [여족(黎族)]  안원전   2003/07/24  5886
   담론229. 요 치하의 우가 거했던 곳은 사천성, 우(禹)의 도읍지는 평양(平陽), 혹 안읍(安邑), 혹 진양(晉陽)-안읍은 곧 지금의 산서 하현(夏縣)이니 하현의 서음촌(西陰村)은 저명한 채도 구역  안원전   2003/07/18  7665
236    담론228 「시경」의 대아(大雅)편 면(緜)에 소개된 주 왕실의 뿌리 문왕의 시조 고공단보(古公亶父)는 동이족 신농의 후예& 강태공이 봉해진 영구(營丘)는 어느 지방인가?  안원전   2003/07/14  6638
235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4-동이족인 쭈앙쭈(壯族zhuang zu)  안원전   2003/07/09  5739
23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9려족(九黎族)) 묘요족의 요족(瑤族)신화  안원전   2003/07/08  6037
23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뿌리가 동이족인 쭈앙쭈(壯族zhuang zu)  안원전   2003/06/30  6659
23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대륙향토사료 국내 최초 번역공개)-뿌리가 동이족인 토족(土族), 여족(黎族), 쭈앙쭈(壯族zhuang zu)  안원전   2003/06/29  9600
231    담론227.공자(孔子)는 태공(太公)에 대해 말하기를, “나이 70에 문왕(文王)을 만나 광리천하(廣利天下)의 공업(功業)을 끝내 완성했다”, 순자(荀子)는 방국(邦國:제후국)을 다스려 성군(聖君)이 된 것  안원전   2003/06/19  6748
230    담론226.동이(東夷) 제지인(齊地人)의 성정,<후한서(後漢書)>에 동이인(東夷人)을 설명하기를, “천성이 유순하여(天性柔順), 도(道)로써 쉽게 다스린다(易爾御)”  안원전   2003/06/19  5504
229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836
228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752
227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019
226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673
225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138
224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106
223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104
22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359
221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030
220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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