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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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뿌리가 동이족인 쭈앙쭈(壯族zhuang zu)

뿌리가 동이족인 쭈앙쭈(壯族zhuang zu)






5. 쌀을 만들다.

   장족(壯族)의 선조는 저수지를 파서 생선을 기르고 밭을 갈아 농사짓고 씨를 뿌려 오곡을 거두는 것을 천천히 익혀갔고 점차 하늘의 기질과 농작물의 성격을 짐작해갔다. 매년 3, 4월에 참새가 지저귀면 그들은 바로 밭을 갈아 농사를 지었다. 그 때는 따뜻하고 꽃이 피며, 밭 안에 물이 가득하고 땅속의 흙은 촉촉이 윤기가 나 경작하기 가장 적당했다. 그 때 농사는 위쪽은 모를 심는 밭이었고 아래쪽은 중심 밭으로 했다. 모 심는 밭에는 찰벼와 메벼 씨를 뿌렸다. 25일 후에 바로 가 모를 찌고 26일째에 중심 밭으로 가져와 심었다.

이렇게 7월 초에는 벼가 곧 이삭이 패고 8월에는 노랗게 익고 9월에는 수확해서 멜대를 이용해 메고 돌아온다. 그러나 그때의 쌀알은 유자만큼 크고 벼이삭이 말꼬리처럼 길어서 수확할 때 잘라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큰 쌀알은 세 사람이 한 알만 먹어도 배가 불러 일곱 사람이 이삭 한 개만 먹으면 족했다.
  

이런 벼는 모두 좋아했지만 단지 열매가 많지 않아 그리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지 못했다. 후에 또 큰 홍수를 만나 도처가 모두 물에 잠겼는데 안주(安州) 지방만 아직 잠기지 않아 랑노파(郞老坡)와 오산(遨山)은 아직 수면에 올라와 있었고, 낭한(郎漢)의 집이 아직 물에 젖지 않았다. 벼와 푸른 채소는 모두 그곳으로 가져가 수재를 피했다. 뱀과 지네도 모두 그곳으로 가서 살았다. 사람들도 하나둘 피난을 가 벼를 수확할 방법이 없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360 종류가 있었는데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이 있었고 총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둔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는 모두 같았는데, 누구도 쌀이 없어서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두 산 위의 과일을 가져와 밥으로 삼았고 땅속의 풀뿌리를 가져다 반찬으로 삼았다. 이 물건은 아이가 먹으면 키가 크지 않았고 고아가 먹으면 밝게 자라지 않았으며 아가씨가 먹으면 얼굴이 붉지 않고 수령의 아들이 먹으면 말라죽었다.

사람들은 안주(安州) 지방에 쌀이 아직 있는데 쌀은 랑노파(郞老坡) 위에서 자라고 오산(遨山)에서 익고 있으며 식량이 랑한(郞漢)의 집에 쌓여 있다는 것을 들었다. 사람들은 다시 벼농사를 짓기 위해 대나무 뗏목에 의지하여 표류하며 바다를 건너 볍씨를 구하러 갔지만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파도에 삼켜지지 않으면 바다고기에게 잡혀 먹혔다. 어떻게 하지? 모두들 다시 포락타(布洛陀)를 찾아갔다.

포락타(布洛陀)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데, 산비둘기와 산(山)닭을 보내 바다를 날아서 건너게 하고 쥐를 보내 바다를 헤엄쳐 건너게 해 두가지 길로 함께 들어가면 반드시 볍씨를 가져올 수 있을거란 것이다. 모두들 듣고 아주 좋은 생각이라 여겨 바로 산비둘기와 산닭 그리고 쥐를 보내 볍씨를 가져오게 했다. 그들이 떠나기 바로 전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방법을 생각해서 반드시 볍씨를 가지고 돌아오도록 재삼 당부했다.

   그들은 곧 볍씨를 구하러 떠났다. 산비둘기와 산닭은 광대한 하늘에서 구름과 안개를 뚫었고 쥐는 망망한 바다에서 물살을 헤치고 파도를 갈랐다. 산비둘기와 산닭은 21일 낮밤을 날았고 쥐는 27일 낮밤을 헤엄쳤다. 그들이 안주(安州)에 도착해서 보니 과연 랑노파(郞老坡)에 벼가 자라고 오산(遨山) 위에 벼가 노랗게 익었으며 랑한(郞漢)의 집 안에 쌀이 가득히 쌓여 있어 매우 기뻤다.

산비둘기와 산닭은 날아서 벼이삭 위에 내려앉아 정신없이 쪼아 먹었다. 쥐는 벼의 줄기를 이빨로 물어 끊어 벼를 먹어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산비둘기와 산닭은 배가 불러 바로 나무 위에 올라가 둥지를 틀었다. 쥐는 충분히 갉아먹고 나서 곧 숲으로 가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들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낮에는 먹고 저녁에는 둥지로 돌아와 잠을 잤다. 랑노파(郞老坡)의 것을 다 먹으면 다시 가서 오산(遨山)의 것을 먹고, 산 위의 것을 다 먹으면 또 가서 랑한(郞漢)의 집 안에 있는 것을 훔쳐먹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먹으면서 하루하루 빈둥거렸다. 사람들은 집에서 고대하며 기다려도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다. 포락타(布洛陀)가 말했다. “내가 당신들을 도와, 가서 가지고 오겠소.” 말하면서 큰칼을 허리에 꽂고 길을 나섰다.

   포락타(布洛陀)는 99개의 산을 넘고 99개의 강을 건너 교룡(蛟龍) 한 마리를 잡아 교룡을 타고 안주(安州)로 갔다. 바다는 넓고 또 컸고 바람이 없어도 파도가 3척이나 쳤다. 포락타(布洛陀)는 풍랑과 37일 낮밤을 악전고투하여 겨우 안주(安州)에 도착했으나 산 위를 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벼는 산비둘기와 쥐가 다 먹어버렸다. 벼의 풀은 뒤죽박죽이 되고 땅에 온통 흩어져 있었다. 그가 랑한(郞漢)의 집 안에 가서 보니 방안은 온통 산비둘기와 산닭 그리고 쥐의 배설물만 있고 벼는 쭉정이만 있을 뿐 알맹이가 보이지 않았다.

포락타(布洛陀)는 굉장히 화가 나 산비둘기, 산닭 그리고 쥐를 찾아가 죄를 물으려 했다. 그는 랑노파(郞老坡)위에서 쥐를 보았고 오산(遨山)위에서 산비둘기와 산닭을 찾았다. 그러나 포락타(布洛陀)는 그들을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은 벼를 배부르게 먹어 날개와 다리가 굳어졌다. 잡으면 산비둘기와 산닭은 재빨리 날아갔고 쥐를 잡으면 땅에 깊게 구멍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몇 번 못잡자 포락타(布洛陀)는 잡지 않았다. 그는 마(麻)줄기와 장작가지를 베어 마피(麻皮)로 30여개의 올가미를 엮었다. 장작가지로는 70여 개의 나무집게를 만들었다. 올가미는 오산(遨山)의 입구에 놓고 나무 집게는 가져다가 랑노파(郞老坡)의 풀숲에 놓았다. 올가미를 다 놓고 그물을 배치하고 나서 포락타(布洛陀)는 그 자리를 떠났다.

   포락타(布洛陀)의 방법은 아주 좋았고 매우 절묘해서 쥐는 돌아오다가 집게에 끼었고 산비둘기와 산닭은 날아다니다가 올가미에 걸렸다. 포락타(布洛陀)는 그들을 잡아서 벼를 어느 곳에 숨겼는지 물었지만 그들은 먹어서 배 안에 집어넣었다고 했다. 포락타(布洛陀)는 그들에게 토하게 했으나 산비둘기와 산닭은 서로 쳐다만 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쥐는 담이 작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먼저 토해냈다. 하지만 토해낸 것은 모두 벼의 줄기일 뿐, 벼는 이미 하나도 없었다.

포락타(布洛陀)는 산비둘기와 산닭에게 토해내도록 했지만, 그들은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포락타(布洛陀)는 굉장히 화가나 그들의 아래턱을 발로 차고 손으로 그들의 윗 턱을 벌리자 안에는 아직 재작년의 오래된 벼와 작년의 새 벼가 있었다. 포락타(布洛陀)는 그들의 모이주머니를 뒤집어 모두 꺼냈지만 3개의 마른 벼와 4개의 벼만이 심을 수 있는 것이었다. 포락타(布洛陀)는 볍씨를 가지고 교룡을 타고 바다를 건너 장족(壯族)마을로 돌아왔다.

   볍씨가 생기자 사람들은 몹시 기뻐했다. 그들은 길한 날짜를 잡아 볍씨를 논에 뿌리자 3일 후에 바로 싹이 텄다. 30일 후에는 모를 뽑아 반듯하고 좋은 논에 심었다. 7월엔 벼가 꽃가루가 흩날리고 이삭이 패며, 8월에 익었다. 열매 맺은 벼는 여전히 유자만큼 컸고 열매는 여전히 적었다. 후에 사람들은 나무망치로 몇 번 두드려 빻았다. 벼는 두드려 쪼개졌고, 쌀알은 부서졌다.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산비탈로 가서 어느 곳이든지 모두 흩어지게 뿌렸다.

산 위에 뿌린 것은 억새풀이 되었고, 농장에 뿌린 것은 소에게 먹이는 풀이 되었으며, 섬돌아래에 뿌린 것은 옥수수가 되었고 땅 속에 뿌린 것 중에 어떤 것은 돌피가 되고 어떤 것은 찹쌀, 황심미(黃心米), 멥쌀과 찹쌀이 되었다. 이 벼들은 또 일찍 익고, 중간으로 익고, 늦게 익는 세 가지가 있다. 쌀알은 다시는 이전처럼 그렇게 크지 않았고 매 이삭의 알은 매우 많았다. 사람들이 거두어 와서 어떤 한 사람이 먹도록 주지 않고 모두 남겨 씨로 삼았다.

이듬해 봄이 오자 2, 3월에 모든 사람이 일찍 일어나 어떤 사람은 밭을 쟁기질하고 어떤 사람은 똥비료를 날랐다. 벼 종자를 물에 담그고 3일 후 4일 째에 서늘하게 말려 좋은 날씨일 때를 틈타 밭으로 가 심는다. 한번 심을 때 매우 많은 밭에 심었다. 이때의 벼 종자는 정말 좋아 진흙에 뿌려도 바로 살아나고 물 속에 심어도 곧 자라났다. 심은 지 25일이 지나면 여인은 모를 쪘다. 그런 후 단을 만들어 묶고 묶은 것이 한 라(摞: 장족(壯族)의 언어로 4다발의 모를 하나로 묶은 것을 말한다.)로 만들어 남자가 논으로 가지고 가서 심는다. 심고 난 논은 멀리서 보면 얼룩얼룩해서 모든 논밭이 마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가지런하고 보기 좋았다. 논에 심고 나서 3일 후에 볏모는 청색으로 변하고 5일째에는 김을 멜 수 있게 된다.

농사일은 한 가지를 하고 나면 이어서 또 한가지가 있고 제조공정은 한번 돌면 하나가 깎인다. 그때는 마침 우기여서 천상의 뇌신(雷神)이 계속 고함을 질러 비가 하늘에서 분분히 내렸다. 비는 어떤 때는 3, 4일을 내렸고 어떤 때는 연이어 8, 9일을 내렸다. 산 위의 물이 모두 논으로 내려와 논에 가득 찼고 물은 또 바깥으로 흘러갔다. 몇몇 논들은 물에 잠겨 어른들은 가서 도랑을 파고 어린애는 뒤를 따라 도랑을 검사했다. 7월이 되자 벼는 꽃가루가 날리고 이삭이 패었고 8월에는 대 풍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추분(秋分)이 되고 한로(寒露)가 지나자 논의 볏모는 줄기가 자라고 이삭이 패지 않으면, 이삭이 패고 열매를 맺지 않았다. 어떤 것은 벼가 한번 꽃가루를 날리더니 곧 말라죽었고 어떤 것은 볍씨가 꽃가루도 날리지 않고 바로 시들어버렸으며 어떤 것은 안 좋은 모종으로 자랐다. 결국 종류는 많은데 수확이 적게 되어 하마터면 벼 종자조차도 얻지 못할 뻔했다. 모두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포락타(布洛陀)에게 가서 물었다.

포락타(布洛陀)가 그들에게 알려줬다. “줄기만 자라고 이삭이 패지 않는 건 땅이 척박하고 비료가 적기 때문이므로 뼈 가루를 뿌리면 이삭이 많이 패고 알맹이가 가득할 것이며, 마른 소태나무 잎을 논에 담그면 병충이 접근하지 못할 것이오.” 모두들 기억했다가 이듬해 포락타(布洛陀)가 말한 대로했더니 과연 대 풍년이 되어 모두 매우 기뻐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다시는 들풀과 풀뿌리를 먹지 않게 되었고 양식은 매년 증가하여 묵은 쌀을 아직 다 먹기도 전에 새 벼가 익었다. 사람들은 갈수록 풍족하게 되었고 쌀을 먹을 때 곡창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생선을 먹을 때 대가리를 먹지 않아도 되었다. 백성이 평안하고 즐겁고 자유로웠다. 매년 설날과 명절이 오면 사람들은 찹쌀을 가져다가 종자(粽子: 찹쌀을 댓잎이나 갈잎에 싸서 먹는 음식으로 원래 단오절에 먹는다.)를 만들어 포락타(布洛陀)에게 주어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했다.
대륙의 소수민족


  6. 소(牛)를 만들다.

   신령한 소가 죽은 후부터 소가 밭을 갈지 않고 사람이 쟁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한사람은 쟁기를 받치고 몇 사람이 쟁기를 끌어 땅이 잘 갈리지 않았고 밭도 써레질이 평평하게 되지 않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들은 해마다 극도로 슬퍼하거나 아파야 했다. 포락타(布洛陀)가 보기가 매우 안쓰럽고 힘들었다.
  
하루는 그가 연못가에 와서 누런 진흙으로 황소를 빚었고 또 강가로 가서 검은 진흙으로 물소를 만들었다. 황소의 몸과 물소의 몸을 다 만들고 나서 단풍나무로 발을 만들고 우유열매로 젖을 만들고 구부러진 나무로 뼈를 만들었으며, 들 파초잎의 줄기로 장을 만들고 풍화석(風化石)으로 간을 만들고 붉은 진흙으로 살을 만들었으며, 파초 부채로 귀를 만들고 천층피(千層皮)나무로 뿔을 만들고 다목을 물에 담가 피를 만들었다.

각각을 모두 다 배치하고 나서 부드러운 풀을 가져다 땅에 놓았다. 이 부드러운 풀로 만든 초원은 마을에서 얼마 멀지 않았고 포락타(布洛陀)는 3일에 한번 가서 보고 9일에 한번 가서 주시했다. 후에 진흙 소는 정말 산소(活牛)가 되었다. 소의 눈은 돌아갈 수 있었고 소의 입은 움직일 수 있었으며, 소의 뿔은 끝이 갈라졌고 소의 꼬리는 휘어졌다. 포락타(布洛陀)는 정말 기뻤다. 그는 바삐 돌아와 모두에게 알리고, 가서 소를 끌고 돌아오게 했다.

사람들은 삼(麻)노끈을 들고 여린 풀밭의 소에게 갔지만 황소는 어떻게 해도 끌지 못했고, 물소는 어떻게 해도 끌려오지 않았다. 그들이 포락타(布洛陀)에게 가서 물었더니 포락타(布洛陀)가 말했다. “여러분은 삼노끈으로 그것의 코를 뚫고 목 뒤에 매어 한사람이 끌어 소가 일어나면 가볍게 끌면 따라 올거요.” 사람들은 포락타(布洛陀)의 말에 따라 했더니 과연 끌자마자 황소가 ‘다그닥다그닥’ 따라 왔다.

사람들이 소를 부드러운 풀밭과 논밭까지 끌고 오자 소는 바로 ‘솨솨솨’ 소리를 내며 매우 기쁘게 풀을 먹기 시작했다. 태양이 산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사람들은 소를 끌고 돌아와 집 앞의 나무 말뚝에 붙잡아 맸다. 부근의 남녀노소 모두 뛰어 나와 진기하게 쳐다봤다

   이 두 마리의 소는 모두 소의 종자로 만 1년 후에 새끼를 낳았고 후에 새끼가 또 새끼를 낳아 점차 번식하기 시작했다.  소가 생기고 나자 사람들은 다시는 어깨로 쟁기질 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소가 생기자 매우 많은 논밭을 일궜고 매우 많은 벼를 심었으며 더욱 많은 아이들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황소와 물소는 낳을수록 많아져 작은 새우만큼 많게 되어 외양간이 가득 찼다.

   그러나 고대의 논밭은 어떤 것으로 막아 놓지 않았고 사방에 어떤 물건으로도 둘러놓지 않아서 소가 들어와 맘대로 먹을 수 있었다. 백성들의 땅에도 들어가고 황제의 땅에도 들어갔다. 농작물을 소가 다 먹어 버린 것을 황제가 알고 나서 진노하여 도처에 사람을 보내 곳곳의 소를 죽였다. 죽이고 난 후에 소머리를 잘라 논두렁에 늘어놓았다. 소의 내장은 잡아 빼내어 황야에 내버렸다. 살아남은 소가 보고는 놀라 혼비백산하여 이때부터 소가 병을 얻기 시작했다.

3-5년 후에 소 돌림병이 유행하여 어떤 것은 흰 거품을 토하고 누렇게 말라  죽었고, 어떤 것은 목이 부어 고름이 흘러 죽었다. 병든 소는 죽어서 여기저기 흩어져 도쳐에 깔렸는데 어떤 것은 들판에서 죽고 어떤 것은 논밭에서 죽고 어떤 것은 풀더미 속에서, 또 어떤 것은 외양간 안에서 죽었다. 후에 소가 모두 죽어 소 종자가 멸종되었다.

이때부터 다시 농사지을 때 사람들이 쟁기질과 써레질을 해야 했다. 모두 소를 그리워해서 밥 먹을 때도 생각하고 길을 갈 때와 꿈을 꿀 때도 생각했다. 후에 그들은 포락타(布洛陀)에게 배워 진흙으로 황소와 물소 한 마리를 만들고 3일에 한번 가서 보고 9일에 가서 한번 주시했지만, 아무리 보아도 진흙 소는 살아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낙심했다.

이때 어떤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황제가 소를 죽여 다른 소도 따라 죽었으니 분명 오해신(五海神)이 소의 혼을 말살해버린 것이니 모두들 찹쌀밥과 생선을 끓여 외양간 안에 가지고 가서 오해신(五海神)에게 제사를 드리자고 했다. 사람들은 무릎 꿇고 절하며 7일 낮밤을 제사 지냈지만 소의 혼은 돌아오지 않았고 죽은 소 역시 한 마리도 살아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제사지내지 않기로 했다. 제사를 수습하는 그날 밤, 어떤 장사를 하는 사람이 마을에 와 주인에게 말했다. “낭중(郎中)이라는 곳에서는 소를 살수가 있고, 낭채(郎寨)라는 곳에서는 소를 내다 팝니다.” 주인 부자(父子) 둘이 듣고 다음날 아직 날이 밝지도 않았을 때 소를 사러 집을 나섰다. 낭중(郎中)과 낭채(郎寨)에 이르러 보니 과연 소를 팔고 있었다. 부자는 숫소 한 마리와 암소 한 마리를 골라 물건과 교환하여 값을 치르고 소를 끌고 돌아왔다.

   사람들은 사 가지고 돌아온 소를 보배처럼 여겨 풀을 뜯어 그들에게 먹이고 쌀밥까지 끓여 먹였지만, 길러도 길러도 계속 새끼를 낳지 않았다. 새끼를 낳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말라갔다. 후에 숫소와 암소 모두 묽은 변을 보고 흰 거품을 토하고는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모두 방법이 없어 포락타(布洛陀)에게 와서 보게 했다. 포락타(布洛陀)는 소의 입을 벌려 혓바닥을 뒤집어보고 또 눈과 엉덩이를 보더니 말했다.

“소가 전염병이 걸렸네.” 말하며 영지와 기타 약초를 캐 찧어 먹였다. 처음 먹이니 소의 눈이 떠졌고 두 번째 먹이니 소가 배설한 변이 쌓였다. 후에 정성스럽게 사육을 하여 소는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고 교배하여 새끼도 낳을 수 있게 되었다. 그 후에 매년 한 마리를 낳았다. 새끼가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낳아 수가 갈수록 많아졌다. 과거와 같이 검은 것, 흰 것, 누런 것과 얼룩진 것 모두 있었고 산과 들에 모두 소로 덮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생활은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7. 물고기를 잡다.

   그 시기에 강속의 물고기는 매우 많았다. 흰 것도 있고 검은 것도 있고, 빨간색, 황색, 청색, 녹색이 있었고 큰 것이 있는가 하면 작은 것도 있고 긴 것이 있는가 하면 짧은 것도 있었다. 이 물고기들은 모두 멍청해서 사람이 와도 헤엄쳐 도망치지 못해서 사람들은 마음대로 잡아서 가지고 놀기도 하고 날로 먹기도 했고 나중에는 불 위에서 구워먹기도 했다.

후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속의 물고기가 갑자기 자취도 없어졌다. 사람들은 생선이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어서 포락타(布洛陀)에게 가서 물었더니 포락타(布洛陀)가 말했다. “물고기가 영리해서 숨었지. 물고기들은 큰물이 오길 기다렸다가 반드시 나와서 먹이를 찾을 거요. 여러분이 먼저 가서 강속에 제방을 만들어 어발(魚簾)을 놓으면 때가되면 자연히 물고기를 얻을 수 있을 거요.” 사람들은 어발을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 돌아온 후 곳곳에 물어봤다.

절 안의 부처에게 물어봤더니 부처도 모르고, 관가에 물어봐도 모르고, 훈장에게 물어봐도 모르고, 여인에게 물어도 여인들 역시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모두 다시 포락타(布洛陀)에게 돌아가 물었다. 포락타(布洛陀)가 말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들이 좋아서 뛰어가 버리면 어떻게 만든단 말이오? 어발이란 물건은 사람이 한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한번 가르쳐 주면 바로 알거요. 하지만 어발을 놓으려면 굉장히 많은 나무가 필요하니 여러분은 먼저 가서 나무를 베어 강가에 놓으면 내가 틈을 내서 당신들과 같이 만들겠소.”

   포락타(布洛陀)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산에 올라 나무를 베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 매우 많은 날들이 흘렀는데 아직 하나의 나무도 강가로 운반된 것이 보이지 않았다. 포락타(布洛陀)가 숲에 가서 보니 원래 사람들의 돌도끼로는 나무가 베어지지 않아서 도끼날이 모두 이가 빠져버렸다. 포락타(布洛陀)는 사람들에게 베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너무 힘이 낭비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어발을 놓는 일은 보류되었다.  

   포락타(布洛陀)는 돌아와서 마른 양식을 꾸려 단단한 돌을 찾아 사람들에게 도끼를 만들어 주려고 집을 나섰다. 그는 동쪽에서 서쪽까지 또 남쪽에서 북쪽까지 갔다. 천하를 모두 돌았는데 단단한 돌은 한 덩어리도 찾지 못했다. 돌아가는 도중에 포락타(布洛陀)는 한 노인의 집에 투숙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공교롭게도 이 노인은 동(銅)칼과 동도끼를 주조하고 있었다. 포락타(布洛陀)는 뜻밖에 기쁨을 만나 매우 기뻐하며 바로 그와 상의했다. 노인은 포락타(布洛陀)를 공방(工房)으로 데리고 갔다. 공방 안에는 광석과 목탄이 쌓여 있었고, 화로 위에 풀무가 놓여 있었다.

노인은 화로 속에 광석을 넣고 목탄을 첨가했더니 풀무가 “윙윙”소리를 내며 화로 속에서 청록색의 불꽃이 뿜어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광석이 녹기 시작해 찌꺼기는 화로 밑에 가라앉고 동(銅)물은 위로 떠올라 끊임없이 뿜어 나왔다. 광석이 다 녹고 나서 노인은 동물을 주조틀에 부으니 도끼와 칼이 완성되었다. 이 도끼는 돌도끼보다 단단하고 강했다.

포락타(布洛陀)는 계속 손뼉을 치며 좋다고 외쳤다. 노인은 동(銅)도끼를 그에게 선물하고 기술을 상세하게 그에게 일러 주었다. 포락타(布洛陀)는 다 배우고 나서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그는 곧바로 불을 피우고 화로를 열어 수많은 도끼와 칼을 주조했다. 이때부터 장족(壯族) 사람들은 비로소 동칼과 동도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동도끼는 정말 좋았고 동칼은 정말 날카로웠다. 녹나무도 베어지고, 자작나무도 베어졌다. 어떤 나무도 모두 베어졌고 작은 것도 베어지고 큰 것도 베어졌다. 포락타(布洛陀)는 모두에게 먼저 강속에 돌로 제방을 쌓아 막은 다음 물이 나가는 입구 아래쪽에 나무말뚝을 박고 가느다란 나무꼬챙이를 끼우게 했다. 어발은 이렇게 쉽게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에 와서 보았지만, 3일이 지나도 아직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9일째가 되자 물고기가 나타나 큰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 그 물고기는 아가미가 쟁반 같고 수염은 삼노끈 같았으며 갈빗대는 갈퀴 이빨 같았다. 이렇게 많은 커다란 물고기를 보고 모두들 매우 기뻐했다.

   후에 물고기는 모두 상류와 하류로 도망갔고 어발에는 다시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막아놓은 제방과 어발 옆에 큰 이무기와 뱀이 자주 왔다갔다 헤엄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이무기와 뱀들은 행동이 변화무쌍하여 3일이면 3번이 변하고 5일이면 5가지로 변했다. 어느날은 그것들이 물 속에서 천천히 헤엄치는가 하면 어느날은 화살처럼 빠르게 수면 위에서 날아 다녔고, 어느날은 높이 수면 위를 도약하는가 하면 또 어느날은 깊이 물밑으로 잠수하고, 어느날은 물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가 하며 어느날은 어발 위에서 빙빙 돌고 기어다니며 무시무시한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후에 이 뱀들은 모두 어발 속에 들어가 죽어버렸다. 3일 후 뱀이 부패하여 악취를 내어 사방에 퍼져 사람들이 감히 접근을 못하게 되었다. 포락타(布洛陀)에게 가서 물으니 포락타(布洛陀)가 말했다. “바로 이 뱀들이 물고기를 먹으려고 하는데 물고기가 무서워서 숨어버려 어발에는 물고기가 없으니 그것들이 물고기를 못 먹어서 굶어 죽은 거요. 여러분은 가서 어발을 깨끗이 씻어내면 물고기가 다시 돌아 올거요.”

   사람들은 죽은 뱀을 옮기고 물로 어발을 깨끗이 씻어냈다. 악취가 없어졌으나 어발에는 아직도 물고기가 내려오지 않았다. 모두 포락타(布洛陀)에게 가서 물어보았지만 포락타(布洛陀)도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그가 직접 가서 살펴보았다. 그가 강 상류로 가고 하류에서 보며, 상류에서 99번을 돌아보고 하류에서 33번을 돌아보아 결국은 원인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큰 이무기와 뱀이 훼방을 놓은 것이었다.

이 이무기란 놈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힘이 셀 뿐 아니라 독을 퍼뜨릴 수 있다. 사람과 가축, 새, 짐승, 물고기, 곤충은 잘못하여 그것의 독이 퍼지기만 하면 바로 중독되어 정신을 잃어 순순히 그것에게 잡아먹힌다. 이무기와 뱀의 능력이 셌지만 포락타(布洛陀)의 능력이 더욱 세서 포락타(布洛陀)는 뱀굴을 찾아 숨어 관찰한 결과 칡을 제일 무서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무기와 뱀이 굴을 나와 먹을 것을 찾는 때를 틈타 포락타(布洛陀)가 몰래 동굴 앞으로 와 주위에 온통 칡을 놓았다.

이무기가 배가 불러 득의양양하게 돌아왔을 때 포락타(布洛陀)에게 잡혔다. 이무기는 잡혔고 사람들은 머리를 벨 사람은 베고, 가죽을 벗길 사람은 벗기고 또 그것의 고기를 먹어 분을 풀었다.  이무기를 제거해버린 후 강속에는 물고기가 나와 헤엄치고 어발 속의 고기도 가득찼다. 모두들 다 먹지 못하고 가져와 훈제했다. 후에 잉어, 산천어, 황어 등을 골라 저수지에 가져다 길러 1년 후 고기가 자라서 온 저수지에 가득했다. 매년 9, 10월에 벼를 수확하여 타작할 때 사람들은 저수지로 내려가 고기를 잡았는데 그물 하나에 여덟, 열 보따리가 되어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8. 닭과 오리를 기르다.

   복희(伏羲)는 닭과 오리를 만든 후 삼신할머니를 보내 장족인(壯族人)에게 주어 종자를 퍼뜨리게 하려 했으나 사람을 찾지 못하여 삼신할머니는 오리를 강에 버리고 닭을 산에 떨구고 돌아갔다. 후에 사람들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산에 가서 사냥을 할 때 오리와 닭을 보고 잡아가 사육하려 했으나 오리를 잡으려하면 물 속으로 잠수하고 닭을 잡으려 하면 나무 위에 날아 올라갔다.

후에 사람들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내어 찹쌀을 강가에 뿌리고 멥쌀을 산 위에 뿌렸다. 오리는 찹쌀을 보자 바로 먹었고 닭도 멥쌀을 보고는 바로 쪼아먹었다. 그때 사람들이 새장을 덮어 씌워 오리와 닭을 잡았다.

   사람들은 닭과 오리를 새장 속에 넣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길렀다. 처음에 그것들은 새장에서 지내는데 습관이 안되었다가 후에 점차 습관이 되었고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어서 주는 먹이도 배부르게 먹게 되었다. 그것들을 풀어주면 매일 저녁에 새장으로 돌아올 줄도 알았다. 오래지 않아 닭은 알을 낳았다. 하지만 곳곳에 아무렇게나 낳아서 벽 모서리에도 낳고, 풀더미에도 낳고, 나무뿌리에도 낳았다.

하루에 하나씩 계속해서 20일을 낳았다. 닭은 20개의 알을 낳았고 오리도 20개의 알을 낳았다. 후에 암탉은 알을 부화하여 31일은 새끼 닭을 부화하고 32일은 새끼 오리를 부화했다. 새끼 오리와 새끼 닭은 각각 10마리의 수컷과 9마리의 암컷이 있었다. 닭은 부화되지 않은 한 마리가 있었고 오리도 부화되지 않은 한 마리가 있었다.

오리새끼는 껍질에서 나오자마자 어미 오리와 강가에 가서 놀고 저수지에 가서 헤엄치고, 생선을 보면 생선을 먹고 새우를 보면 새우를 먹었으며 배가 부르면 뭍에서 햇볕을 쬐었는데 깃털이 덥수룩하게 자라서 매우 귀여웠다.  

   닭은 물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미 닭과 진흙을 파내 작은 벌레와 지렁이를 찾아 먹었다. 그러나 그때의 지렁이는 멍청하지 않아서 어미 닭이 파헤치자마자 땅 속으로 뚫고 들어가 새끼 닭이 배불리 먹지 못했고 어미 닭은 할 수 없이 그들을 데리고 동으로 서로 돌아다니며 진흙을 팠다.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곳 저곳을 파헤쳤지만 여전히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때의 벼는 많지 않아 주인도 닭들을 배불리 먹일 방법이 없어 닭 새끼가 자라나면 할 수 없이 스스로 가서 먹이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찾지 않고 굳이 남의 채소밭에 들어가서 파헤쳐 푸른 채소가 말라 시들고 마늘도 말라죽었다. 주인이 보고는 나무 몽둥이로 때려잡는 바람에 닭이 자빠져 놀란 닭들은 수탉이건 암탉이건 모두 나무 숲 속으로 날아가 버리고는 사람들이 어떻게 달래도 다시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닭이 나무숲으로 들어가자마자 새매와 새가 위에서 빙빙 돌더니 5마리의 항계(項鷄: 아직 새끼를 부화해보지 않은 암탉)를 잡아가고 6마리의 수탉을 강탈해갔다. 매는 닭을 절벽 위에 물어다 놓고 그들의 살을 쪼아먹었고, 새매는 닭을 큰 나무 위에 잡아다 놓고 그들의 간을 물어 먹었다. 닭털을 쪼아 도처에 널렸고 닭의 피가 곳곳에 흩날렸다.

사람들이 보고 포락타(布洛陀)에게 알렸다. 포락타(布洛陀)는 활과 화살을 들고 나무숲으로 가 9마리의 매를 쏘아 떨어뜨리고 10마리의 새매를 때려 죽여 새매와 매가 감히 다시 와서 닭을 잡아가지 못했다. 포락타(布洛陀)가 나무숲 속에 그물 망을 설치하여 두 마리의 수탉과 두 마리의 암탉이 그물에 걸렸다. 아직 두 쌍이 잡히지 않았는데 후에 이것들은 산 닭으로 변했다. 포락타(布洛陀)는 닭을 잡아 돌아왔고 사람들은 그것을 닭의 종자로 삼았다.

   잡아온 닭은 새장에 가두고 사육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항계(項鷄)가 알을 낳고 새끼 닭을 부화했다. 사람들은 채소밭을 둘러쳐 막은 후에 닭을 내놨기 때문에 닭이 채소밭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새끼 닭이 항상 배부르게 먹지 못해 아우성이 점점 심해져 암탉이 화가 나 수탉에게 말했다. “당신은 혼자만 놀러 다니며 먹이를 찾지 말고, 나와 함께 아이들을 길러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러나 수탉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전히 혼자만 즐거이 다녔다.

암탉은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주인도 수탉에게 권했으나 듣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은 포락타(布洛陀)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다. 포락타(布洛陀)는 먼저 부드럽고 온화한 말투로 왜 새끼를 부양하지 않느냐고 수탉에게 물었더니 수탉은 하던 일을 계속하며 암탉을 쫓으며 들은 척도 않했다. 포락타(布洛陀)는 화가 나서 큰소리로 물었다. “너는 왜 새끼를 돌보지 않느냐?” “난 몰라요.” 수탉은 매우 오만하게 대답했다.


   포락타(布洛陀)는 수탉의 얼굴이 빨개지도록 따귀를 때렸다. 그때 이후로 수탉의 얼굴은 지금까지 계속 빨갛다. 수탉은 한 대 맞고 화가 나 숲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포락타(布洛陀)에게 도움을 구했다. 포락타(布洛陀)가 말했다. “여러분이 암탉을 불러 그에게 사정해 보라고 하세요.” 사람들이 암탉을 숲 속에 풀어놓는 것을 보자마자 수탉이 뛰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수탉이 잡혔다. 수탉을 잡아 사람들은 그에게 또 물었다. “도대체 새끼를 돌볼거야, 말거야?” 수탉이 말했다. “난 몰라요, 못 돌봐요.”

   사람들이 듣고 나서 더욱 화가 나 위협하며 말했다. “너 새끼를 안 돌보면 거세해버린다.” “거세하려면 하라지!”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게 하려 했다. 암탉은 바삐 뛰어와 제지하며 말했다. “안돼요, 거세하면 안돼요. 새끼는 나 혼자 키워도 되요.”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비로소 수탉을 풀어주고 혼자 놀러 다니게 했다. 이렇게 해서 오만한 수탉은 아직까지도 새끼를 데리고 다니길 원치 않는 것이다.

  9. 집을 짓다.

   새는 둥지가 있고 벌은 벌집이 있지만 고대의 장족(壯族) 사람은 집이 없었다. 그들은 지금의 사람들처럼 방을 만들 줄 몰랐다. 그들은 마치 돌멩이처럼 산길 옆에 누웠고, 장작가지처럼 풀밭에 누었으며, 원숭이처럼 산의 동굴 속에서 살았다. 그때 그들은 평지로 내려 와서 농사를 짓고, 다시 되돌아가 산을 올랐으며 벼를 수확해서 산으로 옮겨야 했으므로 매우 힘들었다. 그들은 절벽을 기어오르고 산의 동굴에 사는 것을 갈수록 싫어했다. 그러나 계속 방법을 생각 못했다.

훗날 어떤 머리 좋은 늙은이가 있었는데 나무로 나무 그루 사이에 삼각으로 틀을 만들고 가로로 선반을 얹고 위에 나뭇잎과 띠를 덮으니 집이 되었다. 태양이 내리쬐지 않고 비에 젖지 않으며 더운 날은 시원하고 추운 날은 따뜻했다. 후에 사람들은 이 노인에게 배워 평지에 집을 지어, 다시는 비탈진 동굴에 가서 살지 않게 되었다. 이런 집은 비록 좋긴 했지만, 튼튼하지 않고 오래가지 않아 심한 바람이나 폭우를 만나면 지붕 위의 띠풀들이 휘말려 쓸려가고 어떨 때는 집 전체가 무너지기도 했다.

포락타(布洛陀)가 이런 광경을 보고 더욱 좋은 집을 짓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는 아주 빨리 매우 아름다운 나무집을 지어 주위의 사람들에게 새집에 살게 했다. 그는 줄곧 다른 사람의 집을 짓느라 바빠서 정작 자신의 집은 지을 시간이 없어 여전히 원래의 그 산 속 동굴에 살았다. 사람들은 그가 신식 주택을 지을 줄 안다는 말을 듣고 도처에서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 포락타(布洛陀)는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줘 모두를 위해 새집을 만드느라 바빴다.

   포락타(布洛陀)가 집을 지을 때 중시하는 것이 있었다. 그가 말했다. “봄에는 나무를 베지 말고, 가을 겨울에 나무를 벤다.” 집을 지을 때는 좋은 날과 길한 새벽을 택한다. 집을 짓기 전에 우선 벼를 햇볕에 말려 서너 광주리를 빻고, 한 광주리를 가져다 밥을 짓고, 두세 광주리로 술을 빚고 날을 잡아 준 사람에게 작은 자루를 선물해야 한다.

공사를 시작하는 그날, 어른은 큰산에 들어가고 어린아이는 작은 숲에 들어가 어른은 도끼로 큰 나무를 베어 기둥을 만들고 어린아이는 칼로 작은 나무를 베어 도리를 만든다. 구부러진 것, 곧은 것 모두 베어 옮기는데 곧은 것은 기둥과 도리를 만들고, 구부러진 것은 집 옆에 두른다. 재료가 다 준비되면 포락타(布洛陀)는 길일을 택해 발묵(發墨: 장족 언어, )한다. 발묵(發墨)하는 첫째 날 모든 주기둥을 다 만들고, 발묵(發墨)하는 둘째 날 모든 주변 기둥을 다 만든다.

기둥의 위아래 다 구멍을 뚫고 위쪽엔 도리를 배치하는 것으로 쓰고, 아래쪽은 대들보로 쓰고, 중간은 가로 틀로 쓴다. 발묵(發墨) 셋째 날엔 집 틀을 합치고, 발묵(發墨) 넷째 날엔 모든 병풍(바람막이)을 합치고, 발묵(發墨) 다섯째 날이면 나무 주택이 완성된다. 이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와서 희희락락하며 기뻐한다. 포락타(布洛陀)의 손재주는 매우 높아서 사람마다 앞 다투어 그에게 집 만드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포락타(布洛陀)는 하루는 밤까지 바쁘고, 일년이면 정월까지 바빴다. 집 하나를 짓고 나면 또 하나를 짓고, 한 마을을 건설하면 또 한 마을을 건설했다. 불행히도 어느날 밤, 그가 자신의 동굴에 돌아와 한밤중까지 잤는데 큰 암석 한 덩어리가 쪼개지면서 떨어져 그의 몸을 덮쳤다. 포락타(布洛陀)는 이렇게 죽었다. 장족(壯族) 사람들은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하여 그의 일을 이야기로 엮어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10. 홍수강(紅水河)과 목면화

   포락타(布洛陀)는 죽었고, 그가 남긴 것은 생기 넘쳐흐르는 대지다. 장족(壯族) 마을은 해마다 풍성히 수확했고, 장족(壯族) 사람들은 대대로 의식(衣食)이 풍부했다. 모두들 태평한 나날을 보냈다. 훗날 외부에 황제가 있었는데 그는 장족(壯族) 사람들의 평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는 생활을 샘냈고 이런 아름답고 부요(富饒)한 토지 또한 부러워했다.

그는 명령을 내려 말하기를 “하늘 아래 모든 것은 황제(皇帝)의 땅이 아닌 것이 없다. 너희들의 이 곳도 역시 나의 토지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따로 한 무리의 병마를 보내 이 지역을 점령했다. 장족(壯族) 사람들 스스로 개척한 강의 양 기슭에서 황제의 병마와 악전고투하여 긴 시간을 싸운 끝에 쌍방 모두 적지 않은 사람이 죽어 선혈이 강속에 흘러 강물이 빨갛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해 포락타(布洛陀)가 모두를 이끌고 개척한 이 강이 후에 홍수강(紅水河)라 불리게 되었다.

   그 해 전투할 때 장족(壯族) 사람들은 모두 횃불을 들고 힘을 내 목숨걸고 죽였다. 죽은 영웅들은 손에 여전히 꺼지지 않은 횃불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포락타(布洛陀)가 그 해 장족 사람들을 이끌고 개간해 낸 토지 위에 서서 한 그루 한 그루의 빼어난 목면 나무로 변하여 가지에 붉은 꽃송이로 가득 찼다. 그 붉은 목면화는 활활 타는 불꽃처럼 머리를 쳐들고 꽃이 만발하여 하늘을 붉게 태웠다.

주조진(周朝珍)이 구술하고, 하승문(何承文)이 정리함. 광서우(廣西右)강, 홍하(紅河) 일대에 전래됨. 람홍은(藍鴻恩)이 엮은 <장족민간고사선(壯族民間故事選)>에서 뽑아옴.<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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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민족은 저마다 민족 특유의 세계관과 상상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창세신화를 전해왔습니다. 그 신화 속 세계에서 우리는 놀랄만큼 서로 닮은 내용을 찾아내기도 하고, 또 흥미롭게 서로 다른 점을 느껴볼 수도 있는데요,
우리와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과 일본. 수천년의 시간동안 때론 싸우고, 때론 서로 도우며 지내온 이웃나라. 그들의 창세신화는 우리와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를까요?
한·중·일 삼국의 원초적인 상상과 모험의 세계로 시청자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한국 창세신화 - <천지왕 창세기>
천지왕과 두 아들 대별왕·소별왕이 치르는, 평화를 위한 전쟁!!

태초의 혼돈 속에 옥황상제인 천지왕은 하늘과 땅이 열리게 한다. 그러자 이 세상과 천지만물이 만들어진다. 이윽고 천황,지황,인황의 세 닭이 울자, 해 두 개가 떠오른다. 그렇게 시작된 해와 달이 두 개인 이 세상은 귀신들이 활개를 치는 혼란스런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수명장자 라는 악의 화신이 있었다. 천지왕은 수명장자를 벌주러 지상으로 하강한다. 그 때 지상의 여인, 총명부인을 만나게 되는데...

중국 창세신화 - <하늘을 메꾼 여와>
거인신 반고가 몸을 던쳐 만든 이 세상을 지켜내라!!

태초에 혼돈으로 가득찬 커다란 알에서, 만 팔천 년 동안 잠을 자고 있던 거인신 반고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알을 부순다. 그러자 가벼운 기운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거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 그 하늘과 땅이 서로 맞닥뜨리지 않게 받치고 있던 반고는 어느날, 힘이 다해 죽게된다. 죽어가는 반고의 숨결과 육신은 세상 만물로 변해서 드디어 이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아직은 텅빈 세상. 얼마 후 세상을 지키려한 반고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이 세상을 돌보려고 여신 여와가 하강한다. 그녀는 진흙으로 사람들을 빚는데...

일본 창세신화 -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아무리 추한 모습으로 변해도, 널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어 !!

혼돈의 바다로 이루어진 태초의 세상에 신령들은 인간 세상을 만들고자,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미를 내려보낸다. 남매와 마찬가지인 두 신은 서로 사랑을 하게 되고, 그 결실로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런 어느 날, 여신 이자나미는 불의 정령을 출산하다가 그만 죽게 되고, 그녀와 사랑을 맹세했던 이자나기는 죽은 이자나미의 혼령을 찾아 죽음의 세계로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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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뿌리가 동이족인 쭈앙쭈(壯族zhuang zu)  안원전   2003/06/30  6659
23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대륙향토사료 국내 최초 번역공개)-뿌리가 동이족인 토족(土族), 여족(黎族), 쭈앙쭈(壯族zhuang zu)  안원전   2003/06/29  9600
231    담론227.공자(孔子)는 태공(太公)에 대해 말하기를, “나이 70에 문왕(文王)을 만나 광리천하(廣利天下)의 공업(功業)을 끝내 완성했다”, 순자(荀子)는 방국(邦國:제후국)을 다스려 성군(聖君)이 된 것  안원전   2003/06/19  6748
230    담론226.동이(東夷) 제지인(齊地人)의 성정,<후한서(後漢書)>에 동이인(東夷人)을 설명하기를, “천성이 유순하여(天性柔順), 도(道)로써 쉽게 다스린다(易爾御)”  안원전   2003/06/19  5504
229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836
228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752
227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019
226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673
225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138
224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106
223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104
22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360
221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031
220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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