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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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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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227.공자(孔子)는 태공(太公)에 대해 말하기를, “나이 70에 문왕(文王)을 만나 광리천하(廣利天下)의 공업(功業)을 끝내 완성했다”, 순자(荀子)는 방국(邦國:제후국)을 다스려 성군(聖君)이 된 것

강태공 의관총


목야(牧野) 전쟁은 어떤 전쟁이며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목야(牧野) 전투는 “도를 얻고 도움을 받은(得道多助)” 정의(正義)전쟁이다. 상조(商朝) 말년, 주왕(紂王)이 포악무도해 천인(天人)이 원한을 품었다.  주(周) 서백(西伯:문왕)이 강태공을 스승으로 청해 주국(周國)을 흥성케 하고 상주(商紂)를 멸하고자 했다.

태공이 문왕(文王)을 도와 인정(仁政)을 펴도록 하고, 제후를 연합하고, 부민강국(富民强國)하도록 했다. 문왕(文王)이 죽자 무왕(武王)이 즉위했다. 태공(太公)이 무왕(武王)을 보좌해 지금의 하남성 맹현(孟縣)인 맹진(孟津)에 당도해 800 제후가 참가한 회맹식(會盟式)에 참가해 병사를 둘러보고 주(周)나라로 하여금 정치상의 맹주국의 지위를 확립했다.


강태공은 황제(黃帝) 병법을 정리 수정하고, 주조(周朝)의 군사제도를 창건하고, 전술전략상 상(商)을 멸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태공은 또 주무왕을 위해 저명한 서사령(誓師令)인 <태서(泰誓)>를 쓰고,  주왕(紂王)이 하늘로부터 역수(曆數)가 스스로 다했다(自絶于天)는 종류의 죄상을 밝히고, 하늘에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을 밝히며 상주(商紂)를 토벌함을 선포했다.

기원전 1046년 주력(周曆) 2월, 주국(周國)과 동맹국 장수들은 적에 대해 한가지로 적개심을 가진 채 곧바로  용진해 지금의 하남성 기현(淇縣)으로 질주해 나아갔다.갑자일 맑은 아침, 연합군과 토벌군은 접전했다. 태공이 먼저 백 명의 용사를 뽑아 선봉에 세우고 적진을 공격하니, 전장터는 사기가 힘써 발양되고 떨쳐져 용맹분발했다.

<시경(詩經)․대아(大雅)․대명(大明> 에는 그의 영무(英武) 기개를 잘 그려내고 있다. “목야 일대가 실로 넓고 넓은데, 단목(檀木)으로 만든 병거(兵車)는 금빛 섬광으로 번쩍이고. 네 필 홍마엔 굳센 장사가 많다. 태사(太師) 상부(尙夫)가 군사를 준비한 모습이 마치 숫 매가가 날아오르는 것 같다. 누가 주무왕을 보좌하는가, 병사를 풀어 대은상(大殷商)을 토벌하니, 하루아침에 천하가 휘황하게 변했도다.”


대우정(大盂鼎)과 명문(銘文) : 이것은 서주(西周) 초기에 유명한 무거운 중기(重器)이다. 정(鼎)이라는 솥 안에는 281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주(周)의 강왕(康王)이 대신(大臣) 우(盂)의 칙서에 대해 기록하였다. 대의(大意)는: 강왕(康王) 23년에 종주(宗周)에서 우(盂)에게 공포한 것이다. 선왕국(先王国)의 경험과 은상(殷商)나라 조정이 술에 취해 주정하여 나라를 잃은 교훈을 서술한 것이다. 우(盂)에게 마땅히 선조를 본받고, 주(周)왕실을 보좌하고, 병융대사(兵戎大事)를 타당하게 장악하고, 죄를 재판할 때에 신중히 처리하도록 일깨우고, 또한 우(盂)에게 수레와 말․옷․술 및 일천 백여  의 노비 등을 하사하였다. 우(盂)는 솥 정(鼎)을 만들어 이 일을 기록하였다. 이 명문(铭文)은 서주(西周) 초년에 나라를 세우는 곡절과 어려움을 기재하였고, 이것은 가장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강태공은 무왕을 보좌해 전면적으로 병사를 조직하고 전쟁을 지휘하여 4만5천으로 상주(商紂)의 70만(일설에는 17만) 대군을 물리치고 승리로 이끌었으니, 이로 인해 천하가 휘황찬란한 국면으로 접어드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향토사료를 볼 것 같으면, 목야 전쟁은 적은 병력으로 큰 병력을 승리로 이끌고, 약한 군대로 강한 군대를 이긴 가장 이른 고대 전쟁이다. <역경(易經)․혁괘(革卦)>에

“탕무혁명(湯武革命) 순호천이응호인(順乎天而應乎人)”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탕(湯)”은 상탕(商湯)이고, “무(武)”는 주무왕(周武王)이다. 이윤(伊尹)이 상탕(商湯)을 보좌해 폭군 하걸왕(夏桀王)을 뒤엎고 상조(商朝)를 건립하고, 태공(太公)이 주무왕(周武王)을 보좌해 폭군 상주(商紂)를 뒤엎고 주조(周朝)를 건립하니, 이는 모두 천명(天命)에 순종하고 인심이 응합(應合)한 정의(正義)의 거사인지라, 이로 인해 이를 “조민벌죄(弔民罰罪)”라 부른다.

뜻은 피압박 민중을 위문하고, 죄지은 통치자를 토벌한 것이다. 목야(牧野) 전쟁의 승리는 정의전쟁이 필승한다는 전범(典範)을 수립한 것이며, 강태공이 덕을 먼저하고 뒤에 병사를 처방한 선덕후병의 “병주(兵主)” 형상을 확립한 것이다.



산동성 임치에 있는 강태공 의관총의 강태공 사당 벽화.



강태공은 상말주초(商末周初)의 정치가,군사가로 사서(史書)에서 주왕조(周王朝)를 만든 유일한 인물로 칭한다. 이윤(伊尹)이 상탕(商湯)을 보좌해 폭군 하걸왕(夏桀王)을 뒤엎고 상조(商朝)를 건립한 것을 계승한 이후, 강태공은 주무왕(周武王)을 보좌해 폭군 상주(商紂)를 뒤엎고 주조(周朝)를 건립하여 경서(經書)에서 칭하는 소위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완성했다는 이유로 사가들은 습관상 “이여(伊呂)”로 병칭(竝稱)한다.

“여(呂)”는 곧 강태공(姜太公)이다. 강태공(姜太公)은 염제(炎帝) 신농(神農)씨 부족으로부터 나온(出自) 것이다.신농(神農)씨는 성(姓)이 강(姜)이었고,  태어나면서부터 성(姓)을 얻었으므로 태공은 강(姜) 성(姓)이 되었다. 태공(太公)은 또 요순(堯舜) 시기의 총리격 사악(四岳)이었던 동이족 백이(伯夷)의 후예로, 백이(伯夷)는 요(堯)를 위해 “삼례(三禮)”를 관장(管掌)하여 “오형(五刑)”을 제정하고 우(禹)의 치수(治水)를 도와 큰 공을 세웠으며, 이러한 이유로 요(堯)는 지금의 하남(河南) 남양(南陽) 서 쪽인 여(呂)라는 땅을 봉지(封地)로 내려  봉국(封國)으로 삼았다.




산동성 구 제나라 수도 임치의 강태공 사당.강태공 여상은 14대 자오지 환웅이신 치우천왕의 후예인 까닭에 또한 성이 강인데(염제 신농은 최초의 강씨 시조인데 염제의 후예가  치우고 치우의 후예가 강태공) 치우천왕은 일찍이 염제가 살던 강수에 살면서 둔 자식들을 모두 강씨라 했다. 강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림에 먼저 도술을 닦고(선수도술) 천제지(天齊池)에서 천제를 지내고  제(齊)나라에 봉함을 받았으니 8신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이 지방에서 더욱 성했다. 후세에 그 지방에서는 도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나와서 신선 황제, 노자와 마구 뒤섞고 부연하여 더욱 심하게 윤색하였으니 즉 이는 강태공이 당시의 이러한 혼탁한 풍속을 조장하는데  더욱 일조를 했다. 그는 일찍이 음부경 주석을 달아 자부삼황의 뜻을 조술(설명)하였으니 연,제의 방사들이 어찌 괴이하고 들뜨고 허황한 설에 빠지지 않았겠는가. (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 실제 치박시 인근 임치현(고대 제나라 수도)에 있는  강태공 사당에 가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술사 방사들을 사당에 안치해 놓고 있음을 본다.



봉지(封地)로 씨(氏)를 삼으니, 강태공(姜太公)은 백이(伯夷)의 뒤를 계승해 강(姜) 성(姓) 여(呂) 씨(氏)가 되었다.  따라서 강태공(姜太公), 강자아(姜子牙), 여망(呂望), 여아(呂牙) 등은 모두 태공(太公)을 부르는 명호(名號)다.

강태공(姜太公) 세대(世代)는 동이(東夷) 제지(齊地)의 토착인으로, 그 조상은 동해의 물가에 살았으므로, 사서(史書) 상에 그를 “동해상인(東海上人)”이라 칭하니, 곧 바다 가까이 거주한 고인(高人)이다. 지금의 산동(山東) 해가 비추는 일대 근해처(近海處)가 바로 그 곳이다.

태공은 상조(商朝) 말년에 출생했으니, 이 때는 강(姜) 성 여(呂)씨족인이 거의 쇠락했을 때였다. 태공은 조종(祖宗)의 덕업(德業)을 계승해 상왕(商王)이 동이인(東夷人)에 대해 잔포(殘暴)하게 약탈하므로, 폭정으로부터 백성을 평안히 하고자 하였으나 능히 그러지 못했다. 그는 집을 떠나 각지를 떠돌았으나 끝내 헌신할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

뒤에 생활이 곤궁해 도움 받을 길이 없자 밥을 팔고, 남의 종(하인) 노릇도 했으며, 소도 몰고, 남의 점도 보아주는 등 온갖 고난의 길을 걸으며 만고풍상을 두루 겪고 끝내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은거했다. 그는 먼저 조가(朝歌) 근처의 석협수(石夾水)(하남(河南) 급현(汲縣) 성서북(城西北) 30리) 옆에 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 지금의 섬서 바오지(宝鷄) 현(縣)인 위수(渭水) 반계(磻溪)가 있으며, 그곳은 주문왕(周文王)이 스승을 초빙하기 위해 “겸제천하(兼濟天下)”의 대업을 그에게 처음 구한 곳이다.

공자(孔子)는 태공(太公)에 대해 설명하기를 “근신고지(謹身苦志)”하고 “겸제천하(兼濟天下)”했다고 말한다. 태공(太公)은 먼저 문왕(文王)을 도와 인정(仁政)을 펴고, 안으로는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밖으로는 제후들을 묶어 상(商) 주(紂)를 와해 고립시켰다.  문왕이 죽자, 태공은 무왕(武王)을 도와 문왕(文王)이 이루지 못한 대업(大業)을 완성했다.


강태공의 제나라 터전 좌측 산동성 곡부중심의 노나라와 우측 임치(치박 오른쪽) 중심의 제나라로 나뉜다.


국력을 충실히 하고, 제후국끼리 동맹을 맺어 연합했으며, 상(商) 주(紂)를 정벌해 멸망시켰으며, 멸상흥주(滅商興周)의 제 1인자가 되었다. 개국의 으뜸 되는 공로로 인하여 주무왕(周武王)은 태공(太公)을 제(齊)에 봉하고 주대(周代) 제국(齊國)의 건립자가 되었다.

마치 “개새지술(開塞之術:변방을 개척함)”을 사용해 주(周)를 평안히 하고 흥(興)하게 한 것 같이, 강태공(姜太公)은 개새지술(開塞之術)로써 제(齊)를 건립하고 제(齊)를 흥(興)하게 하여, 양성(兩姓) 제국(齊國) 장성불쇠(長盛不衰)의 8백년 기업(基業)을 개벽했다. 흔히 사람들은 제문화(齊文化)가  환공(桓公), 관중(管仲) 시절에 형성된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태공(太公)의 개새지술(開塞之術)을 자주 본받고도 그 비조를 망각한 말이다.(數典而忘其祖) 공자(孔子)는 태공(太公)에 대해 말하기를, “나이 70에 문왕(文王)을 만나 광리천하(廣利天下)의 공업(功業)을 끝내 완성했다”고 말하고, 순자(荀子)는 태공(太公)이 문왕(文王), 무왕(武王)을 을 보필한 것은 “천자(天子)를 보좌해 성신(聖臣)이 된 것”이며, 제국(齊國)을 다스려 민부국강(民富國强)하게 한 것은 “방국(邦國:제후국)을 다스려 성군(聖君)이 된 것”이라 말하니, 이는 모두 태공(太公)의 정확한 평가다.

근신고지(謹身苦志)로부터 광리천하(廣利天下)에 이르기까지, 성신(聖臣)으로부터 성군(聖君)에 이르기까지의 말은 모두 태공이 모든 것을 다 바쳐 진인사(盡人事)한 최고의 전범(典範)을 극언한 말이니, 그가 초범인적 성스런 신선(神仙)이 되는데 헛되거나 과장됨이 없다. 이로 말미암아 가히 하나의 도리를 깨달을 수 있으니, 역사상의 강태공은 사람이 아니라 신(神)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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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마천 사기


문왕 서백창이 갇힌 유리(?里) 유적지. 문왕은 이곳에서 문왕팔괘를 긋고 주역 384효를 해석한다. 하남성 안양 바로 아래 개봉 위 옛 목야 전투지 바로 위에 있다.


[상나라 紂王]

기원 전 11세기 후반, 상나라는 紂王이 통치하던 때였다.여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주왕은 총애하는 달기의 감언에 넘어가 악행을 거듭해 정사는 그야말로 부패의 정점을 치닫고 있었다. 당시, 은나라에서는 서백창(西伯昌), 구후(九侯), 악후(鄂侯)등 삼공이 있었는데, 주왕은 음락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 구후와 그 딸을 죽였고,그것을 간한 악후를 살해하였으며, 서백창을 유리(?里) 에 가두었다. 제후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져 혁명의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었다.서백창은 후에 주나라 문왕이 된 이 혁명의 주역인물이다.

[태공망과 서백]

紂王에게서 간신히 석방된 西伯 昌은 도읍의 서쪽 땅을 주왕에 헌상하여 주왕이 그를 서백후로 봉했다. 어느 날 서백창은 중국 황화강 하류의 논두렁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노인과 만났다. 서백은 그에게 태공망(太公望)이라는 호를 주었는데, 이 말은 서백의 아버지인 태공이 바라던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때 그의 나이 70세를 넘고 있었다고 말해진다.강태공을 얻은 서백은 태공망의 도움으로 紂왕을 토벌키로 하고 선정을 베풀어 인망을 얻는데 주력했다.

[무왕 일어서다]

서백창(문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여상은 사상보(師尙父)의 지위에 올랐다.무왕은 여상과 주공 단의 도움으로 주왕을 정벌하려고 하였다. 출진을 앞두고 점을 쳤으나 점괘가 불길하게 나왔다. 많은 대신들이 두려워하여 말렸으나 태공망은 나아갈 것을 주장하여 이에 무왕이 공격했다. 고죽국으로부터 주왕을 피해 백이와 숙제가 무왕의 군대에 합류 했다. 백이와 숙제는「부왕이 상중에 있는 중에 전쟁을 하는 것은 효가 아니며, 신하가 주군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仁이라고는 할 수 없다」라 말하고 무왕의 출진을 말렸다.
그러나 무왕은 이를 듣지 않고 紂왕에게 공격을 시작했다.

[牧野의 전쟁]

무왕이 인솔하는 주력군은 8백명의 제후들과 함께 서쪽으로 진군했다. 맹진(盟津)까지 진군 했을 때, 태공망의 진언에 따라「아직, 천명의 시기가 이르다」 며 군사를 후퇴시켰다.  그 후 다시 서진을 재개해 목야에서 은나라 군사와 격돌했다. 결과는 무왕이 이끄는 주나라 군대가 크게 이겨 주왕의 군사를 격멸시켰으며, 도망하는 紂왕을 붙잡아 참살하였다.이로서 은나라는 멸망하고 주나라의 시대가 열렸다.달기는 주나라 군사에게 붙잡혀 살해당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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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담론226.동이(東夷) 제지인(齊地人)의 성정,<후한서(後漢書)>에 동이인(東夷人)을 설명하기를, “천성이 유순하여(天性柔順), 도(道)로써 쉽게 다스린다(易爾御)”  안원전   2003/06/19  5504
229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836
228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752
227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019
226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673
225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138
224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106
223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104
22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360
221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031
220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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