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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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앞서 필자는 공자가 화하사관의 날을 세우기 위해 정작 대륙을 통째로 석권하고 있었던 동이 제 족을 모조리 오랑캐로 만들고 공자가  몇 푼 어치도 안되는 주(周)의 화하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동이 제 족을 모조리 비 춘추적으로 내세웠다고 한 바 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춘추필법(春秋筆法)이란 이러한 공자사관을 정통으로 받든 나머지 자신들의 역사는 정확한 역사 기술방법이라 견강부회하고 동이, 서융(西戎), 남만, 북적 등 그들을 둘러싼 각종 4위(四圍)의 동이 겨레 가령, 귀방, 강방, 훈죽, 선비, 묘족, 형오, 백월, 우이, 래이, 회이(淮夷),서융(徐戎), 도이, 개이,(介夷), 근모이 등의 역사를 비 춘추적으로 몰아세웠다.

이러한 춘추필법에 의해 사마천 이하 역대 중국의 역사가들은 철저하게 지나(支那) 중심 사관으로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 상고사의 정체를 뿌리째 도려내 이해하기 위해서는 갑골문에서 말하는 이 4위(圍)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앞서 알아본 귀방, 강방의 정체와 함께 훈죽, 험윤의 이름을 거쳐 흉노로 이름을 바꾼 이들의 역사적 정체도 우리는 대륙사 이해의 첫 단추로 대국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흉노는 뒤에 읍루, 말갈로 이름을 바꾸며 변신해 나아간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다. 흑수말갈이니 속말갈이니 해서 후일 고구려와 발해에 흡수되기도 하여 발해, 고려때까지도 동족의식이 있었던 동이족의 갈래였다. 여기서는 대륙 향토사학자의 연구성과를 직접 번역해 소개한다. 지나사관의 시각으로 쓴 것이지만 모종의 실마리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해(査海)문화 패옥인 옥결(玉 );사해(査海)는 대릉하 바로 위 흥륭애 바로 옆이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8천년 전의 것으로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결이다. 옛사람은 고리형과 이지러진 형의 옥기로 장식한 것을 패옥인 결(패옥 결)이라 칭했다. 공자도 인정했듯이 동이족만이 오직 옥을 귀하게 여겼으며 동이족의 고고학 유적지에는 틀림없이 옥패가 출토된다. 호시 석족, 청석(옥)은 동이족의 특색이다.
*가운데 사진은 내몽고 초원으로 신석기 시대 선주민인 북방 동이족이 주로 생활했던 지구 중의 하나이다.
*장강 하류 良渚 유적에서 발굴된 옥으로 만든 祭器. 직사각형의 ‘琮’이라 불리는 玉器로 땅을 상징한다. 옥종(玉琮:홀, 符信):양저(良渚) 유적지 군(群)의 동북부에 위치한 요산(瑤山)에서 출토된 것으로 제천(祭天)에 전문적으로 쓰이는 예기(禮器). 제천문화는 동이족 고유의 것으로 산동성 태산의 봉선제도 실은 동이족의 제천문화로 부루태자의 기록이 환단고기에 보인다. 옥은 동이족의 특산물이라는 것을 지나사학자도 인정한다. 숙신 흉노 등 동이족은 청석과 호시 석족을 특징으로 한다 했고 공자도 인정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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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匈奴)는 아국 고대북방의 소수민족의 하나이다. 이들은 A.D. 3세기에 북방에서 일어나 수 백년간 큰 사막(大漠)에서 활약했다. 이들은 기 백년 동안 중원의 왕조와 계속 전쟁을 치루었으며, 그때마다 위무(威武)가 웅장한 역사극의 일막을 연출했다. A.D. 1세기 후, 훙노는 남, 북 양갈래로 나누어졌다.

남흉노는 내지로 들어가 살다가, 후일 남북조 시대에 중원을 서로 다투는 5호(胡)의 하나가 되었다. 북흉노는 서쪽으로 쫓겨 도망가 유럽민족의 대 이동을 일으켜, 로마제국을 붕궤시켰다. 아무튼 이는 대륙사에 대해, 또 세계역사에 대해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들 천둥과도 같이 엄청난 일개 민족은 어느 곳에서 온 사람들인가?

그들의 전신은 무어라 불렸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학술계는 만족할만한 답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흉노(匈奴)에 대해 가장 이른 기사는 「사기(史記)」에 보인다. 「사기(史記)․흉노열전」에 이르기를 “흉노의 선조는 하후(夏后)씨의 후예(苗裔)라, 일컫기를 순유(淳維)라 한다. 당(唐)․우(虞) 이전에 산융(山戎), 험윤(獫狁), 훈죽(葷粥)이 있어, 북만(北蠻)에 살면서 목축업을 하면서 이동하며 살았다.” 이 기록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흉노의 조상 선조가 하후(夏后)씨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산융, 험윤, 훈죽이 곧 흉노라는 것이다. 이 2 가지 의미는 후일 흉노의 기원에 대한 2가지 견해로 변하게 된다.

가장 일찍 강력했던 흉노는 하(夏)의 후대의 장안(張晏)이다. 「사기(史記)․색은(索隱)」에 그를 인용한 기록이 있다.

“순유이은시분북변(淳維以殷時奔北邊)” 이 뜻은 하(夏)의 후예 순유(淳維)가 상(商)나라 때 북쪽 변방으로 도망가 흉노(匈奴)가 되었다는 뜻이다. 악산(樂産) 「괄지보(括地譜)」는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풀이한다. “하걸(夏桀)이 무도하여, 탕(湯) 임금이 혁명해 명조(鳴條)로 내쫓으니, 3년 만에 죽었다.”

그 아들 훈죽(獯粥)과 처(妻), 걸(桀)의 많은 첩(妾)들이 북쪽의 들로 피거(避居)하여, 가축을 따라 이사다니니, 이들을 일러 흉노라 불렀다.“ 그는 하(夏)의 후예를 직접 설명해 하걸(夏桀)의 자식들이라고 설명한다.(이 뜻은 동이족 우(禹)의 후예라는 말이 된다:안원전) 근대학자들도 이와 유사한 관점을 유지하여, 여사면(呂思勉)의 「흉노문화색은(匈奴文化索隱)」, 김원헌(金元憲)의 「북흉노서천고(北匈奴西遷考)」, 하진아(何震亞)의 「흉노와 흉아리(匈奴與匈牙利)」 등이 바로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는 책이다.


그 가운데서도 하진아(何震亞)의 주장이 더욱 신기(新奇)하여, 그는 ”흉노가 곧 하(夏) 민족으로 여기며, 기원전 6세기 때, 지금의 하북(河北) 정정(正定) 부근에 선우국(鮮虞國)을 세웠다가, 후에 중산국(中山國)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기원전 295년에 이르러 중산국(中山國)은 조(趙)나라에게 멸망해 그 족들이 열하(烈河), 찰합이(察哈爾), 영원(纓遠), 영하(寧夏) 일대로 쫓겨갔다.

기원전 209년에 이르러 그 추장 모돈(冒頓)이 입극했다.”고 여겼다. 그는 선우(鮮虞)와 중산국(中山國)에 중점을 두어 하(夏)와 흉노(匈奴)가 연이어 일어났다고 말한다.(은상의 마지막 왕 걸(桀)의 후예를 흉노로 본 하진아의 관점으로 말할 것 같으면, 흉노는 은상은 동이족이라 한 임혜상의 고증(殷商屬夷系)대로 당연히 동이족이 된다:안원전)


중산국(中山國) 이해를 위한 참고자료:

*가장 중요한 기록은 <마한세가> 마지막 문장이다. 마지막 단군 고열가가 해모수에게 멸국당하는데, 진조선(眞朝鮮)이 진시황에게 복종하고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단군 시대 종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이 진시황에게 빼앗긴 진조선(眞朝鮮)은 악이다사(鄂爾多斯:  오르도스 (Ordos) = 황토고원) 고원의 영고탑을 가리키는 것이다. 조무령왕(趙武靈王)에게 먼저 빼앗긴 임호(林胡) 땅, 양성현(凉城縣)이나 화림격이(和林格爾)보다도 서남쪽인 악이다사 고원이 최후로 진시황에게 빼앗긴 진조선 도읍 땅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곳이 본래 귀방(鬼方)이었다.
「단기고사」는 어느 책보다 후단군조선이 자세하다. 이는 [단기고사]가 대야발에 의해 돌궐국에서 얻은 고기를 토대로 해서 편찬되어서 단군 서쪽 시대에 대해 어느 책보다 자세한 것으로 고려된다. 색불루가 녹산에서 즉위하기 전에 먼저 반란하고 즉위한 곳이 부여신궁 (夫餘新宮)이었다. 이곳이 그의 부여 군대가 은나라 서북방에 살던 귀방을 멸망시키고 부여인으로 나라를 세웠던 곳이며, 은기(殷紀) 중의 녹방(鹿方)이다. 춘추시대에는 악방(鄂方)이라고 했다. 섬서성(陝西城)의 녹주(鹿州)는 지금 부현(富縣)이 되었는데 B.C. 7세기에 백적(白翟)인들이 살던 곳이다. 백적은 흰옷을 입어서 생긴 별명이며 섬서성(陜西城) 연안(延安)에 있다가 하북성 중산국으로 동천하였다.

*「韓非子」에 등장하는 중산국(中山國):오기가 위나라 장군이 되어 중산국을 공격하였는데, 사병 가운데 악성종기로 괴로워하는 자가 있었다. 오기가 무릎을 꿇고 그 종기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 주었다. 그 사병의 모친은 그 말을 듣고 울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장군께서 당신의 아드님 종기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 주었습니다. 아드님 종기의 치료를 위해 그토록 수고를 하셨는데 왜 우는 거요?"모친이 대답했다."오기 장군이 그 애 아버지의 종기도 그렇게 빨아준 적이 있었죠. 그 애 아버지는  감격하여 장군을 위해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그 애도 그렇게 싸우다 죽게 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슬픈 것입니다."

*제갈량이 말한 `양고기 국 한 그릇으로 나라를 잃다.'라는 말은 전국시대 중산국왕 때 생긴 일이다.<전국책>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날 중산국왕이 나라안의 유명한 선비를 초대하여 잔치를 벌였다. 그 자리에 사마자기라는 자가 참석했었는데, 때마침 양을 넣어 끓인 국이 모자라서 그 사람 차례까지 오지 않았다. 이것을 야속하게 여진 사마자기는 노여움이 뻗쳐서 초나라로 도망가서 초 왕을 중산을 공격하게 하였다. 조그만 나라 중산은 여지없이 패하여 왕은 나라밖으로 망명했다.  아무도 왕을 종군하지 않았다. 왕의 옥대는 흩어지고, 왕의 발은 거칠어졌다. 마침내 홀로 된 왕은 숨이 턱 끝에 닿았고, 사직은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그때 두 용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적병의 말의 힘줄을 끊고, 그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 나감에 거침이 없었고, 용기를 내어 칼을 휘두름이 황하가 대하를 덮치듯 했다. 마침내 왕은 흩어진 의관을 정제하고 체모를 세웠다. 수치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왕이 울면서 물었다. 두 은인은 누구시길래. 귀족들도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난 이 왕을 도와주시나이까. 두 용자가 말했다. 저희는 왕에게 아무런 은원도 없는 자들입니다.
다만, 저희 엄친은 걸인으로 왕의 사냥터 길에서 굶주려 죽어가던 초라한 백성이었나이다. 어느 날 왕께서 귀로에 저희 부친을 보고 그 몰골을 처량히 여기시어 다 식은 밥 두 덩어리를 내리셨나이다. 그 밥으로 선친이 사셨나이다. 그분이 평소 저희 형제를 훈육하시기를, 너희는 밥 두 덩어리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말라 하셨나이다. 저희는 그저 그것을 잊지 않았을 뿐입니다. 왕은 통곡했다. "내가 양고기 한 국자에 나라를 잃고, 식은 밥 두 덩어리에 목숨을 건졌구나."



  북방의 동이족의 하나인 흉노의 용사들. 환단시대 동이 제 족의 후예다.

흉노(匈奴)는 원래 훈죽(葷粥), 험윤(獫狁)이었다고 설명하는 역대 학자는, 「맹자(孟子)․양혜왕(梁惠王)」 조기주(趙岐注), 「시(詩)․채미(采薇)」「모전(毛傳)」 정현(鄭玄) 전(箋:주해), 「여씨춘추(呂氏春秋․憲爲)」 고유(高誘) 주(注) 등등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왕국유(王國維)가 지은 「귀방곤이험윤고(鬼方昆夷獫狁考)」는 더욱 정밀하게 설명한다.

왕국유는 “상주(商周) 시대 사이에 보이는 자가 귀방(鬼方), 혼이(混夷), 훈죽(獯鬻)이라고 말한다. 종주(宗周)의 말년에 있던 것이 험윤(獫狁)이었다. 춘추시대 후기에 들어서서는 융(戎)이라 불렀고 이어서 적(狄)이라 불렀다. 전국시대에는 자기를 낮추어 칭하기를 호(胡)라 하고 흉노(匈奴)라 했다.“고 말한다.

그는 상대(商代)로부터 진대(秦代)에 이르기까지의 흉노 명칭의 변화를 하나의 계통으로 개괄했다.  그 후, 양계초(梁啓超)의 「사기흉노전(史記匈奴傳) 융적명의고(戎狄名義考)」, 맹세걸(孟世杰)의 「융적만이고(戎狄蠻夷考)」, 방장유(方壯猷)의 「흉노어언고(匈奴語言考)」, 호군박(胡君泊)의 「흉노원류고(匈奴源流考)」, 정서인(鄭瑞仁)의 「흉노명호고략(匈奴名號考略)」, 빙가승(憑家升)의 「흉노민족 및 그 문화(匈奴民族及其文化)」, 정사허(鄭師許)의 「흉노선세 귀방험윤과 은주의 교섭(匈奴先世鬼方獫狁與殷周之交涉)」등의 모든 의견과 왕국유의 주장은 일치한다.

그 중에서도 정사허(鄭師許)의 지론은 더욱 격렬하다. 그는 귀방(鬼方), 혼이(混夷), 훈죽(薰粥), 험윤(獫狁), 융적(戎狄), 호(胡) 등이 흉노(匈奴)의 별명일 뿐 아니라 귀융(鬼戎), 의거(義渠), 연경(燕京), 여무(余无), 임호(林胡), 누번(樓煩), 면제(綿諸), 대려(大荔:섬서성의 대려국), 조씨(鳥氏) 등 전적 가운데 보이는 이민족도 모두 흉노라고 말한다.

몽문통(蒙文通)은 왕국유(王國維)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데, 그는 「주진소수민족연구(周秦少數民族硏究)」등의 글에서 귀방(鬼方), 견이(畎夷), 훈죽(葷粥), 험윤(獫狁)은 흉노가 아니며, 진정(眞正)과 흉노(匈奴)는 동족으로, 마땅히 의거(義渠)로 보았다.

황문필(黃文弼)도 유사한 견해를 유지하여, 그는 「흉노족의 기원을 논함(論匈奴族之起源)」에서 설명하기를,

“내가 생각건대, 귀방(鬼方), 훈죽(葷粥), 혼이(混夷), 험윤(獫狁)은 모두 옛날의 강족(羌族)으로 흉노(匈奴)와는 다르다. 태사공(太史公) 사마천이 일족을 혼돈한 것으로부터 후세까지 강(羌), 호(胡)를 분별치 못하게 했다.”

그는 머리를 매지 않아 풀어 헤치고 옷깃을 왼편으로 합쳐 여미는“피발좌임(被(披)發左衽)”한 강(羌) 족과 호복에 상투를 틀어올린 “호복추결(胡服椎結)”의 흉노(匈奴) 족을 단절되어 같지 않은(絶然不同) 별 개의 민족이라 말한다.

흉노의 전신(前身)은 강인(羌人)의 귀방(鬼方), 험윤(獫狁) 등을 형성한 것이 아니고, 임호(林胡), 누번(樓煩), 의거(義渠)로 모두 왕왕 호(胡)로 불렸다. 춘추(春秋)시절에 그들은 또 적(狄)으로 불렸다. 이를 요약하면, 황문필(黃文弼)은 춘추시절의 백적(白翟,北狄), 전국시절의 임호(林胡), 누번(樓煩), 의거(義渠)가 바로 훗날의 흉노(匈奴)라고 여긴다.

학자들도 전적(典籍)중의 각종 민족에 대해 이들이 한데 섞여 하나가 되어 통칭, 흉노(匈奴)가 되었다는 이의(異議)를 제기한다. 조영년(曹永年)은 「전국역사상의 흉노(戰國歷史上的 匈奴)」라는 글 가운데서, 선진(先秦) 시대에 흉노는 단지 당시 북방의 허다한 종족의 뿌리가 되는 부락이거나 혹 그러한 종족 중의 하나라고 여긴다.

뒤에 가서 흉노는 강대하게 일어나서 허다한 부락과 종족을 병탄해 그들로 하여금 흉노의 일부가 되게 했으니, 이러한 변화는 한인(漢人)의 눈 속에 반영되어, 이러한 모습의 인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으며, 이로써 고대 북방 각 족(族) 모두와 흉노의 한 맥(脈)은 하나로 계승한 것이 되었다.

손차주(孫次舟)는 「흉노출현중국변새의 시대(匈奴出現中國邊塞的時代)」 가운데서, 다시금 흉노와 선진(先秦)의 제 소수민족을 끊어서 나누었다. 그는 흉노는 본래 서방 초원에 있던 유목민족으로, 진시황 이전, 중국북부에 와서 흐느러지게 노닐지는 않았다(沒有游蕩)고 말한다.

그는 글 말미에 부기(附記)해, 진인각(陳寅恪) 선생도 그의 관점을 지지한다고 설명한다. 이 외에, 잠중면(岑仲勉)의 「이란지호와 흉노지호(伊蘭之胡與匈奴之胡)」도 흉노가 서방에서 왔다고 설명한다.

이같이 흉노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관점이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말미암아 흉노 족속에 대한 의견이 여러 갈래로 다르다. 방장유(方壯猷), 황문필(黃文弼) 및 일본의 백조고길(白鳥庫吉) 같은 사람들은 흉노족이 몽고족에 속한다 하고, 잠중면(岑仲勉), 풍가승(馮家升) 및 소련의 백은시탄(伯恩施坦) 같은 사람은 흉노가 돌궐족에 속한다고 말하고, 정사허(鄭師許) 같은 사람은 흉노가 사납부(斯拉夫) 족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를 묶어서 말하면, 흉노가 어느 인종에 속하고, 그의 전신이 무어라 불렸는지, 이 같은 종류의 여러 문제는, 오랜 세월의 연구와 논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원스럽게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변함 없다.(令弟:안원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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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뿌리가 동이족인 쭈앙쭈(壯族zhuang zu)  안원전   2003/06/30  6660
23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대륙향토사료 국내 최초 번역공개)-뿌리가 동이족인 토족(土族), 여족(黎族), 쭈앙쭈(壯族zhuang zu)  안원전   2003/06/29  9601
231    담론227.공자(孔子)는 태공(太公)에 대해 말하기를, “나이 70에 문왕(文王)을 만나 광리천하(廣利天下)의 공업(功業)을 끝내 완성했다”, 순자(荀子)는 방국(邦國:제후국)을 다스려 성군(聖君)이 된 것  안원전   2003/06/19  6749
230    담론226.동이(東夷) 제지인(齊地人)의 성정,<후한서(後漢書)>에 동이인(東夷人)을 설명하기를, “천성이 유순하여(天性柔順), 도(道)로써 쉽게 다스린다(易爾御)”  안원전   2003/06/19  5505
229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836
228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752
227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020
226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673
225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138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106
223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104
22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360
221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031
220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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