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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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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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여기에서 우리는 「죽서기년(竹書紀年)」에서 보듯이, 우(禹)가 순(舜)을 도와 요(堯)를 감금하고 제위를 얻는데 기여했음을 이해 할 수 있음과 동시에, 순(舜)이 양자강 중, 하류의 동이족의 힘으로 요(堯)를 꺾고 제위에 올랐으나, 이미 혈연적으로 요(堯)의 고단계적 미인계에 빠져 두 딸을 상납받은 순(舜)이 오히려 동이 제 족을 치자, 단군 조선의 중신인 순의 부친 고수가 요(堯)로부터 순(舜)에 이르기까지 도읍했던 소위 도당(陶唐)씨 수도를 함락시킨다.

이것이 바로 바로 서경에 보이는 순이 하늘을 향해 통곡했다는 대목인데, 신라인 박제상의 「부도지」는 다시 이 대목에 대해, “순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을 정벌하자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순을 꾸짖고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했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동이족의 힘을 빌어 순이 제위에 오르는데 일정한 지분을 가진 우(禹)는 오히려 순 치하에서 그 부친 곤(鯤)마저 순(舜)의 독자적인 뜻에 의해서인지 요(堯)의 촉탁에서인지 모르지만 쫓겨나 죽은데다가 동이족을 친 배신행위로 그 부친 고수(유호씨)가 수도를 함락시킴에 순이 쫓겨난 여세를 모아 우의 세력이 창오에서 죽이고 우를 새로운 제위로 앉혔다는 말이 된다.

이는 단군성조의 2대 부루태자가 외교적으로 우(禹)와 도산(途山)회의를 열고, 우(禹)가 당면하고 있는 양자강과 황하의 치수문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는 금간옥첩(金簡玉帖:죽간대신 쇠로 된 책)의 5행치수법을 전수한 것을 보면(샤오싱 대우릉 현지에 가면 우득천서(禹得天書)라 하여 하늘에서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천자의 나라 단군조에서 받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단군조선에서는 우(禹)의 집권을 방조 내지 묵인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는 뒤에 하나라를 멸할 기회를 포착하던 탕임금과 이윤이 동이족의 눈치를 보고 처신했다는 기록을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설원(說苑)」<권모편>에 ‘성탕이 걸 왕을 치려 하자 이윤이 가로대 “청컨대 걸왕에게 바치는 공물을 막고 그의 행동을 살피십시오” 그러자 걸왕이 진노하여 구이(九夷)의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 왔다. 이윤이 말하기를,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아직도 능히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환단고기」 <태백일사>는 주신(州愼:단군조선)의 단군은 우를 낭야성(琅耶城)에 두어 이로써 구려분정(九黎分政)을 정했다고 하는데 서량지가 고증하고 있듯이 동이족의 근거지인 산동성의 뇌택에서 흑도기를 빚어만들던 순은 단군조선의 낙점을 받아 요를 압박하고 요를 유폐한 뒤에 마침내 단군조선의 제후에 오른다 그리하여 단군조선의 흑도문화 문명을 펴게 되는데 서경에 보이는 태산에 올라(옥황봉) 삼신상제님께 봉선의식을 하고 동쪽의 임금을 찾아보는 소위 동순망질, 사근동후한 뒤 율력,도량형, 오례오기를 처음 배워가 베풀게 되는데(歲二月東巡守東后 協時月正日同律度量衡 脩五禮五玉三帛二生一死贄如玉器卒乃復) 이러한 연속적인 시책이 바로 순 이후 바로 위 「오월춘추」에서 본 것처럼 우(禹)가 죽기 전까지 이어져 펼친 시책이다.

이에 대해 단재는 다음과 풀이한다.

-이는 하우가 부루에게 도를 받은 재미나는 이야기라. 완위산, 복부산, 모산, 회계산은 다 도산(塗山)의 별명이니(이 부분은 단재가 중원천지를 필자만큼 다니지 못한 옥의 티 같은 실수라 할 수 있다. 모산은 회계산이지만 도산은 우의 고향인 사천성 중경 양자강가에 있다 ), 신서를 얻음으로 완위(宛委)라 이름하고, 부루를 만나므로 복부(覆釜)라 이름하고, 원명은 모산(茅山)이니 도산(塗山)의 전음이요, 회계(會稽)는 이름을 고친 것이니 신도(神道)를 계고(稽考:머물러 詳考함)한 기념이오, 현(玄)은 조선 5부의 현灌?후세에 현토(현도)라 일겉는 자요, 창수(蒼水)는 창해니 고대에 황해, 발해를 창해라 하였나니 부루가 해로로 간 고로 창수사자라 함이며, 주신은 곧 조선이니 음을 그릇 번역(訛譯)함이며, 붉은 수를 놓은 옷(赤繡衣)은 외국에 가려면 반드시 붉은 무늬의 옷을 입는 부여의 옛 풍속(후한서 부여전)이며, 꿈 속에 만났다 함은 이 글의 신성함을 표시함이니, 기자(箕子)가 하늘이 우(禹)에게 홍범(洪範)을 주셨다 함과 같도다.-    

「중국고대신화」에는 요가 단주를 단수(丹水)로 추방하여 제후 노릇을 하며 살게 했다고 나온다. 이 기록에 의하면 남방에는 삼묘(三苗)족이 살고 있었는데, 요가 순에게 제위를 넘겨주려 하자 단주는 이들 삼묘족과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켜 부자간의 전쟁이 벌어졌으며 두 차례의 전쟁에서 요가 승리했다고 나온다. 이 삼묘족은 「서전」과 「사기」에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해 중원의 왕조를 괴롭혔다고 말한다. 앞서 밝힌 바대로 순은 말년에 박제상의 「부도지」가 전하는 것처럼 삼묘족의 근거지인 이곳 남방 창오(蒼梧)에서 우에 의해 복수 살해된 바 있다.

「부도지」를 잠시 들여다보면, 요가 감히 단군 조선의 부도(符都)에 대항해 당도(唐都)를 세워 대립하였으며, 단군 임금이 잠시 부도를 비운 사이 황궁(黃穹)씨의 후예인 묘족의 후예를 습격해 쫓아내니 동, 서, 북으로 흩어졌다 하며, 요가 천부(天符)의 이치를 폐하므로 단군임금이 유호씨 부자인 고수와 순으로 하여금 환부(鰥夫)와 권사(權士) 100여인을 인솔케 하여 깨우치게 함에 요가 그들을 맞아 명령에 복종하고 공순(恭順)하게 대접하여 하빈(河濱)에서 살게 했다 하고(이로써 순이 하빈에서 질그릇을 구으며 살게 된 역사적 이유가 밝혀졌다),  「부도지(符都誌):신라 박제상 著」의 역자 김은수(金殷洙)는 주(注)에 중국측 사료에 의하면 유호씨는 고수(瞽瞍)로 되어 있다 하고,「부도지(符都誌)」에 의거, 유호씨는 이론가요 외교가로 그의 논리는 정연하면서도 날카로우며, 5행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기화설(氣化說)을 제창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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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符都誌):신라 박제상 著」의 역자 김은수(金殷洙)는 주(注)에 중국측 사료에 의하면 유호씨는 고수(瞽瞍)로 되어 있다 하고,「부도지(符都誌)」에 의거, 유호씨는 이론가요 외교가로 그의 논리는 정연하면서도 날카로우며, 5행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기화설(氣化說)을 제창했다 했다. 뿐만 아니라 유호씨는 후에 월식성생주(月息星生洲)로 들어가 전교하였으며 <19사략>은 유호(有扈)씨가 무도해서 정도를 어지럽히므로 계(啓)가 섬서성의 감(甘)에서 싸워 그를 멸망시켰다 왜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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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과 부도지의 부도 뚠황 막고굴


뿐만 아니라 유호씨는 후에 월식성생주(月息星生洲)로 들어가 전교하였으며 <19사략>은 유호(有扈)씨가 무도해서 정도를 어지럽히므로 계(啓)가 섬서성의 감(甘)에서 싸워 그를 멸망시켰다 왜곡했다.유호(有戶:고수)씨의 아들 유순(有舜)이 일찍이 부도의 법을 행하는 홀아비가 되어 마침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절도가 없더니 이에 이르러 요에게 미혹을 당하여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했다 말한다.

「부도지(符都誌)」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궁에 빠진 요와 순의 문제, 그리고 부친 고수와 순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황, 여영이라는 두 딸을 미끼로 요에 붙어 협조한 순에 대해 유호씨는 수시로 경계했으며 순은 예예하고 고치지 않았으며 순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죽이며 묘족을 정벌하자 유호씨가 마침내 참지 못하여 순을 꾸짖고 토벌하니 순은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고, 요는 몸을 둘 땅이 없으므로 순에게 양위하고 자폐(自閉)했다.(이로써 공자가 「서경」에 부친 고수와 순과의 갈등에 대해 삭제한 핵심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수년동안 싸워 마침내 당도(唐都)를 혁파하니 요는 유폐중에 죽고 순은 창오의 들로 도망하여 도당이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요의 무리 우(禹)가 순에게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그를 추격하여 죽여버렸다.( 이 내용 역시 요의 미인계에 미혹된 순이  단군 조선의 중신인 부친 고수의 뜻을 어기고 동방족 중심의 정체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동이묘족을 정벌하므로 고수가 마침내 요를 유폐시키고 자리를 계승한 순의 수도 당도(唐都)를 혁파하자 순은 창오로 도망가게 되었는데,

이때 양자강 치수사업의 공로로 양자강 하류의 샤오싱(紹興)의 동이족 월(越)족, 같은 동이족 묘(苗)족의 후원을 얻은 우(禹)가 순을 죽였음을 알 수 있다)    순의 두 처 역시 강물에 투신해 자결하자 우(禹)가 곧 정명(正命)으로 입공(立功)한다고 말하고 군사대중을 위로하고 돌아가거늘 유호씨가 물러나와 우의 소행을 조용히 관찰하니 이때에 우가 도읍을 옮기고 무리를 모아 창과 방패를 더욱 보수하고 유호씨에게 항거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했다 하였다.(見 「부도지(符都誌)」박제상 著 金殷洙 譯)


정일영(鄭逸永)은 일개 제후국 순(舜)과 단군 조선과의 경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대사 동방대제국」)

--단군(帝)은 5가(家) 64제후를 통괄하는 통치 기구를 삼분하여 삼한(三汗)을 설치했으며(後書에 이르기를 번한(番汗) 진한(辰汗) 마한(馬汗) 혹은 신한 말한 불한이라 하고 후에 다시 번조선(番朝鮮),  막조선(莫朝鮮), 진조선(眞朝鮮)  등으로 고쳤다.) 번한의 왕검성은 험독(險瀆) 산동성에 정하고 우순과 국경을 감정하고 유주와 영주에 방위군을 주둔케 하고 기주를 12분하여 순으로 하여금 관장케 하고 그 동쪽은 조선국 번한에 속하였다.

후세 한인(漢人)이 말하는 흉노와 서로 접하지 아니하였다 라고 한 것은 역사 기록의 오착이다. 무이웅씨(武夷熊氏) 말하기를 서주 기사 諸州는 기주 동편 영주 예주(山東 河北) 지방과 모두 한 울타리 안이고 동방의 좋은 땅을 형성하여 서주는 곧 노나라와 경계하여 희해와 연하였고 동이(조선)에 속한 두 고을인 즉 곡부기사의 예의와 문학을 숭상하는 나라라고 하였다. (漢人所謂斷匈奴右臂者以其不與西成相接也史書有錯武夷雄氏曰徐池沂朝諸水在其前冀東與?豫之地皆不雄引在懷抱排楫之內亦東方一形勝也徐卽魯境地連淮海東夷其俗有二曲阜沂朝則禮儀文雅之邦西 {書傳})

이어서 제는 동무(東武)와 도라(道羅)를 번한(番汗)에 봉하여 기주와 동북 여러 나라와 연 유 거란 제국을 양분하여 관리하게 하였다. 이것은 동북쪽을 영유한 것이다. 따라서 우순(虞舜)은 중원 요지의 ¼을 영유하였다.(冀洲帝都之地三面距河充河?之西河초之東豫河之北周禮職方河內曰冀洲是也天下四分之一舜分爲 {書傳})

이와 같이 구주를 12주로 나누어(기주 동북을 조선에 넘김) 어느 세월에 다시 회복할 것인가(이것을 사관들은 우순(虞舜)의 사죄라고 비난함)라고 하였는데, 오씨 왈 이 한 구절은 우(禹)가 치수 사업을 한 후에 그 차례(次序)가 마땅히 사죄(四罪)의 앞에 있는 순이 행한 대사(大事)라고 사관이 잘못 기록한 처음부터 선후를 헤아리지 못하고 쓴 것이다라고 하였다.

(是爲十二河盖河甚久不知其自何時復合爲九也吳氏曰比一節在禹治水之後其次序不當在四罪之先盖史官泛記舜所行之大事初不計先後之敍也)

이와 같이 단군과 우순과의 국경 감정에 관해 후세 사관들의 여론이 분분하였으나 어떠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 시대에 동이 대제국의 단군 천왕 명을 항거할 자 누구이랴. 약소한 우순으로는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

참고)
-세석기(細石器) 때 한 무리의 문화부족(文化部族)이 맨 처음으로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 근방에서 살았었는데, 그들이 바로 중국의 전설적인 염제신농(炎帝神農)의 본족(本族)이다.그들 민족은 서전(書傳) 우공편(愚貢編)의 기록에 보이는 조이(鳥夷), 우이( 夷), 래이(萊夷), 회이(淮夷), 석지직피(析支織皮)이며 은(殷)나라 당시의 복사(卜辭)로 적은 이방(夷方), 토방(土方), 길방(吉方), 강방(羌方), 귀방(鬼方:간쑤[甘肅] 산시[陝西]·산시[山西] 지방에 걸쳐 활약) 또 주(周)나라 때의 이(夷), 적(狄), 험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때의 호(胡), 맥(貊), 흉노(匈奴) 그리고 위(魏)나라, 진(晋)나라 때의 오환(烏丸), 선비(鮮卑) 등이 모두 그들의 후손이다.-서량지(徐亮之)
-한족(漢族)의 대부분은 동이(東夷)로부터 나왔다. 중국의 진(秦)나라 이전의 동이(東夷)는 중국의 동부지역인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및 회수일대를 넓게 점령하고 살았고, 그 갈래로는 우이(툉夷), 회이(淮夷), 서융(徐戎), 도이(島夷), 래이(萊夷), 개이(介夷), 근모이(根牟夷) 등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순(舜)임검은 동이(東夷)사람이다. 제(齊)나라의 명제상 관중(管仲)도 동이(東夷)인이고, 은(殷)나라도 동이(東夷)이다. 그러나 B.C 246년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중국내의 동이족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거나 한족(漢族)에 동화되었다.-임혜상(林惠祥)Click here!







다음은 순과 유호씨 그리고 요 방훈과 관련한 한 네티즌의 글이다. 비교적 내용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어 이를 소개한다.

-얼마전에 "부도지"라는 책을 읽고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이 저술한 책으로 2002년도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이승헌이 저술한 '힐링소사이어티'를 통해서 처음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월간 '개벽'에서 이 책이 소개된 이후에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해 오다가 며칠 전 읽어보게 되었는데 참 좋은 내용이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부도지' 뿐 아니라 이 책 안에 같이 실린 김시습이 저술한 '정심록 추기', 그리고 역자인 김은수의 글도 매우 유익한 것 같습니다.

기독교 성서에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도전'이 증산도의 신약이라면, '환단고기'와 '부도지'는 증산도의 구약성서와도 같은 책들이며, 증산도인들에게 있어서는 필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증산도가 얼마나 뿌리깊은 한민족의 사상의 맥을 이어서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단순히 도전만 읽어서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라 시대도 역시 우리의 신교정신을 지켜고자 노력한 왕조였고, 부도에 대한 복본사상, 천부사상, 신교사상이 없이는 삼국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1000년을 흐르는 신라의 정신의 맥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인물로 저는 서슴없이 '정심록(부도지는 정심록의 일부임)'을 저술한 박제상을 꼽을 것입니다. 그는 부도지를 저술했을 뿐 아니라, 그의 자손들이 그의 사상을 계승하였고, 또한 그 자손들이 많은 제자들을 키워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부도지의 내용은 환단고기와 달리 기독교 창세기와 같이 신비적인 요소가 있어서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인 듯 싶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사실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마고(할머니)에 대한 전설이 전해내려올 뿐 아니라, 신라왕조의 시조 박혁거세가 마고성에서 떠난 황궁씨의 예식을 재현한 기록이 부도지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창세기는 꼭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창세기는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창세기나 원죄에 대한 내용 등과 비교하면 부도지의 내용은 백배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래 글을 yes24라는 인터넷 서점에 '부도지'에 대한 독자서평으로 제가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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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란 책은 정말 놀라운 책이다. 환단고기를 통해서 환국, 배달국, 고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던 나에게 그보다 더 이전의 역사를 언급한 책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고, 한편으로는 충격이었다. 이 책은 바로 동양의 창세기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서양의 창조론과는 달리 율려, 즉 우주의 본음, 소리에서 최초의 여성인간 마고가 탄생했다는 매우 신비로운 동양적인 창조론을 제시한다. 마고성 시대에는 수학과 역, 음악이 하나의 철학으로 통합되어 있었다는 것도 놀랍다. 수학과 음악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스 학자 피타고라스의 사상이 당시 동양의 천부경의 영향을 받았다는 역자의 글도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뱀의 유혹으로 이브가 사과를 먹어서 원죄가 생겼다고 구약의 창세기에서는 말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사람이 늘어나서 땅에서 나오는 우유를 계속 못마시게 된 백소족의 지소씨가 굶주림을 참지못해 포도를 따먹게되어 그 독으로 타락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 이야기도 서양 창세기의 대목과는 달리 인간의 타락에 대해서 오히려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여성을 인간 타락의 근본원인으로 보는 기독교 사상과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최초의 인간이 여성이었고, 그녀의 두 딸(궁희, 소희)가 낳은 황궁, 청궁, 백소, 흑소가 인류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떠나 다른 그 어떠한 책보다도 더 강력한 남녀평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은 태고적 마고성 시대의 인간 본성을 다시 회복하자는 맹세, 즉 복본사상이 우리민족의 마음 깊은 곳에서 1만년 이상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마고, 황궁, 유인, 환인씨로 이어지는 태고적 역사를 알려줄 뿐 아니라, 부도지의 저자인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이란 인물을 통해서 1000년을 지속해온 신라왕조의 정신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이 책은 1만년을 이어온 우리민족의 삼신복본사상, 다물사상, 천부사상, 신교사상의 맥을 한 눈에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으로서, 우리민족 정신사의 missing link와도 같은 내용들을 담고있다.

박제상의 아들은 거문고로 잘 알려진 백결선생(박문량)이고, 그의 증손은 박 마령간이다. 백결선생은 단순히 거문고를 연주하는 음악가가 아니라 아버지의 천부사상을 전수받은 위대한 학자였다. 마령간의 문하에서 우리민족의 천부사상을 배운 사람들이 바로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최치원 등의 인물이다. 박제상 역시 박혁거세의 자손이며, 박제상의 후손 중에는 조선 초 무학대사, 박연등 우리의 천부사상, 신교 사상을 전수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신라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해 봐아겠다는 점이다. 신라왕조에 대해서 당의 힘을 빌어 삼국을 통일한 나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56대 왕을 거치며 1,000년을 이어온 신라의 정신을 새롭게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환단고기는 읽기에 좀 딱딱한 면이 있는데, 부도지는 오히려 더 재미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환단고기와 함께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신라시대 박제상이 저술한 "부도지"라는 책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 등장하는 단군 왕검 시대의 한 인물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부도지는 총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18장부터 26장까지 빠짐없이 등장하는 중요한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유호씨(有戶氏)라는 사람입니다.

부도지에는 요임금이 천부의 이치를 폐하여, 부도의 역(曆)을 버린 것(즉 신교의 가르침을 거역한 것)을 인간 세상의 두번째 재앙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첫번째 재앙은 백소족 지소씨가 포도를 먹고 인간 본성을 잃게 된 것이라고 전 글에서 적은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단군 임검씨가 어떻게 요를 교화하려고 애썼는지의 과정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도지의 기록은 상제님께서 요임금이 전해지는 역사와 달리 폭군이었고, 원한의 시초가 되는 인물이었다고 밝혀주신 사실과 매우 일치되는 내용입니다.) 그 때 단군 임검씨가 요를 교화시키기 위해서 바로 유호씨(有戶氏) 부자에게 환부(鰥夫)와 권사(權士) 등 백여 인을 인솔하고 가서 요를 깨우치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유호씨가 누구인가 하면 바로 중국 사서에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로 기록된 사람입니다. '부도지'에서는 유호씨는 이론가요 외교가로, 그의 논리는 정연하면서도 날카로웠다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중국 역사서 '19사력'에서는 유호씨가 무도(無道)해서 정도(正道)를 어지럽히므로 계(啓)가 섬서성의 감(甘)에서 싸워 그를 멸망시켰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중국 역사가들은 순임금의 혈통을 억지로 짜맞추어서 이것을 모두 왜곡시켰는데 그것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요가 유호씨의 아들 유순(순)을 두 딸로 유혹하는데, 순이 이에 미혹당하여 두 딸을 몰래 아내로 삼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호씨가 이를 경계함에도 불구하고, 순이 요의 촉탁을 받아들여 현자를 찾아 죽이며 묘족(苗族)을 정벌하였습니다. 유호씨가 마침내 이것을 참지 못하고 그들 토벌하게 되는데, 그 결과 결국 요는 갇혀 있던 중에 죽고, 순도 창오까지 도망가서 죽게 되고, 우가 하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우임금도 유호씨가 타일러서 요임금의 법을 폐하고 부도로 돌아올 것을 권유하지만 완강히 거절을 하고, 오히려 유호씨를 공격하였습니다. 우의 아들 계(啓)가 대군을 이끌고 유호씨의 읍으로 진격하여 왔지만 하나라 군사는 싸우면 반드시 패하여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그 무리가 격앙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유호씨가 하나라 백성이 눈이 먼 것을 보고 고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차 서남의 종족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 무리를 이끌고 가니, 그 읍이 자연히 없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호씨의 전교는 이후로 계속되어 집니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의 가르침을 서방으로 전한 것과 유사하게 유호씨는 이후 서남쪽으로 가서 월식주와 성생주를 순회하면서 전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월식주는 달이 지는 곳, 파미르 고원의 서쪽, 즉 중근동 지역을 의미하고, 성생주는 별이 뜨는 곳, 파미르 고원의 남쪽, 즉 인도와 동남아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전 글에서도 간단히 소개했지만, 백소씨가 마고성에서 월식주로 이주한 네 파 중 한 파의 책임자이고, 서양문명은 백소씨족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적자면 '오미의 재앙(지소씨가 포도를 먹은 사건)'이후 마고성이 파괴되어 이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장자인 황궁씨가 마고 앞에 사죄하고, 복본할 것을 서약하고, 네 부족으로 나뉘어져 성을 나와 흩어지게 됩니다. 청궁씨는 동쪽 문으로 나가 운해주로, 백소시는 서쪽으로 나가 월식주로, 흑소씨는 남쪽으로 나가 성생주로, 황궁씨는 북쪽으로 나가 천산주로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도지에 기록된 이 지역에서의 유호씨의 전교에 대한 구절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 성생의 땅에 들어가니, 즉 백소씨와 흑소씨가 살던 곳이었다. 백소씨와 흑소씨의 후예가 오히려 보금자리(巢;소)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높은 탑과 계단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의 본음을 잊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유래를 깨닫지 못함으로써, 도를 와전하여 이도가 되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싸우고 정벌하기를 일삼았다. 마고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 되어 허망하게도 남은 흔적이 아주 없어지니, 유호씨가 두루 여러 종족들의 지역을 돌며 마고와 천부의 이치를 말하였으나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옛일을 맡아보는 자(典古者)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래 이치를 말하여 그것을 전하였다."

단군 임검씨는 이러한 유호씨의 업적을 듣고 장하게 여겨 유호씨의 족에게 교부에 취업(敎部)하여 살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의 글에서 "높은 탑과 계단을 만들었다(多作高塔層臺)"라는 구절에 대한 부도지의 주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라트나 피라미드 혹은 불가의 탑의 유래를 밝혀주는 귀중한 대목이다. 높은 탑과 계단이 마고성의 소(巢)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목적이 천부의 본음을 가까운 데서 듣기 위한 것이었다면, '천부경'은 천지창조의 소리를 적은 경전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이 말은 사라져버린 고대문화의 정체를 밝혀주는, 이 세상에 남은 단 한마디의 증언이다."

이 부분에서 저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유호씨가 서방에서 전교할 때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는데, 오직 한 사람, 옛일을 맡아보는 자가 있어서 그 사람에게 도를 전하였다고 기록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과연 그 사람이 누구였을까 하는 것이 저에게는 큰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며칠 전 이리유카바 최가 저술한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대원출판)를 읽으면서, 부도지에서 언급한 그 서양 사람이 바로 서양에서 '믿음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아브라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재 서양 종교의 근본 뿌리가 되는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 첩 하갈의 자손인 이시마엘, 그의 후손이 케다, 그의 후손인 모하메드가 이슬람교의 창시자가 되고, 아브라함의 본처 사라의 자손인 야곱의 12아들이 이스라엘 12부족이 되어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뿌리가 됩니다. 12 아들 중 레위의 아들 모세가 유대교의 창시자가 되고, 유다의 후손 다윗의 후손인 예수가 그리스도교의 창시자가 됩니다.

아브라함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봐 그에 대한 설명을 잠시 아래에 적습니다. 서양종교를 이해하는데 모르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네이버 백과사전 내용)

<아브라함>
‘열국(列國)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본래 그의 이름은 아브람이었는데, 그 뜻은 ‘아버지는 높임을 받는다’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 아버지 데라, 아내 사라, 형제 나홀과 하란, 그리고 조카 롯과 함께 하란으로 갔으며, 데라가 죽은 후 그의 나이 75세에 다시 조카 롯과 함께 가나안으로 이주하였다(창세 12:1-6).

그는 86세에 애굽인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고(창세 16:1 이하), 100세에 비로소 아내 사라에게서 이삭을 얻었다(창세 21:1 이하). 그는 조상들과 달리 유일신 하느님을 신앙하였다(여호 24:2). 그는 하느님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으로(창세 17:1, 21:33), 하늘과 땅의 주관자로(창세 24:3), 그리고 모든 인류의 심판주로 모시고 섬겼다(창세 18:25). 그는 하느님의 친구로 대접받았으며(창세 18:33), 환상이나 천사들의 방문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수시로 계시 전달받았다(창세 15:1, 18:1).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술되어 있는 그의 이야기는(창세 12-23장)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형성에 기반과 근거를 제공하였다. 유일신 신앙이나 선민사상, 그리고 계약개념 등은 모두 그의 이야기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신약성서 기자들에 의해서도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되었다(마태 1:1, 로마 4:3). 한마디로, 그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 종교들의 공통조상이 되었다.
<이상>

유호씨의 도를 받아들인 사람이 아브라함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호씨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사람은 분명히 서양 종교(사상)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충분히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울만한 사람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적으로는 지역적으로 일치합니다. 부도지에서 말한 월식주 즉, 중근동 지역에,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 특히 이집트 지역에는 수많은 피라이드가 건축되었던 곳입니다. 그 당시 이미 수백개의 피라미드가 건축되어 있었고, 피라미드의 초기 형태는 계단형태(層臺)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째는 시기적으로 일치합니다. 유호씨가 전교했던 시기는 단군임검 재위시기(B.C. 2333~2241)였는데, 아브라함 생존시기는 정확히 계산은 안되지만 대략 기원전 2000년 전 쯤이라고 하니까 약간 오차를 계산하면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넷째는 유호씨의 도를 받은 사람은 전고자, 즉 옛적일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옛적, 환국시대(혹은 더 거슬러 마고성 시대)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의 출신은 12환국 중 서방지역에 속하는 우르국이나 쉬밀이국 출신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우르국 사람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천사들의 방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수시로 계시받았다고 하는데, 그 천사들이란 바로 동방에서 온 유호씨 일행을 왜곡시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분열된 진리는 반드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그것은 동서양의 분열된 역사도 반드시 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그 연맥과 뿌리를 바로 잡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천의 기록들을 통해서 작은 단서라도 찾아서 분열된 주류이론의 모순된 점을 바로 잡고, 큰 그림을 그려주고 전세계 문화를 통일하는 것이 증산도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위에 적은 바대로 꼭 아브라함이 단군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유호씨의 가르침을 받은 인물은 직간접적으로 서양의 종교와 사상의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는 꼭 읽어보셨으면 하고 추천드립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부활을 연극한 것이라는 것 등등 기독교의 숨겨진 모든 이야기가 정확한 근거와 함께 많이 제시됩니다.) 원유진(eugen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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