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Total : 538 (537 searched) , 8 / 16 pages  

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1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3-토가족 족원(族源) 및 선민(先民)문화


토가족 족원(族源) 및 선민(先民)문화


지리 환경은 한 민족문화의 형성에 대해 단지 기초 작용만 할 뿐이고 일부분의 문화요소만 파생해 낼뿐이며 민족문화의 발전방향에 몇몇 선택을 제공할 뿐이다. 민족문화의 본질적 요소로 말하자면 그 족원 및 선민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한 민족의 족원 및 그 선민문화를 고찰하여 이 민족의 문화적 특질을 이해하는데 특수한 의의가 있다.

토가족의 족원에 관해서는 이전의 학술계에 주로 세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토가족이 고대 파인(巴人)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파인설(巴人說)’이고,
또 하나는 토가족이 고대의 토착(土著)주민을 주로 해 융합한 후에 이 지역에 진입한 파인, 한인(漢人)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 ‘토착설(土著說)’이며,
다른 하나는 토가족이 귀주(貴州)에서 이주해온 오만(烏蠻)을 주로 해 융합한 토착인, 파인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오만설(烏蠻說)’이다.

근래에 와서 연구가 깊어지자 갈수록 많은 학자들이 토가족의 기원이 다원적이며, 이는 고대 파인의 한 갈래가 현지 토착인 및 이 지대에 진입한 한인, 복인(濮人), 초인, 오만 등의 부족과 융합하여 당(唐)말 5대에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토가족 문화의 생성메커니즘을 연구하려면 상술한 부족의 문화 및 그와 토가족 문화의 관계에 대해 반드시 고찰해야한다.

  
5대 태우의환웅 막내 아드님 동이족 태호(太暞)복희 후예 파(巴)문화의 영향

토가족 지역의 파인의 활동 및 파문화의 상황

연구에 의하면 파인은 저강인(氐羌人)의 후예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서남쪽에는 파국이 있는데, 태호(太暞)가 함조(咸鳥)를 낳고 함조는 후조(后照)를 낳았는데 후조가 파인의 시조가 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파인은 서북지역에서 가장 먼저 생활했고 후에 섬서 하남에서 호북 사천으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파인은 남쪽으로 이주한 뒤 지금의 토가족 지역으로 진입했다. 이에 대해서는 고고학의 발굴과 사적에서 모두 증명할 수 있다. 고고학자는 지금의 토가족이 거주하는 상(湘), 악(鄂), 투(渝), 검(黔) 4성의 변경지역에서 신석기시대 풍격에 속하는 독특한 지역성 문화를 발견했다.*
--
* 왕굉(王宏): 《형남사 상대 도기 분석(荊南寺商代陶器試析)》의 《호북성 고고학론 문선집(湖北省考古學論文選集)》(1) 제 80쪽 참고.
--

(답가를 부르는 토가족 아가씨)(노래를 불러주는 토가족 총각)
보봉호 : 삭계욕 자연보호구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밀집된 협곡들을 막아 수심 100m의 아름다운 인공호수를만들어냈다. 관광선으로 2.5Km 되는 보봉호 주변을 한바퀴 도는데, 이곳은 토가족(土家族)처녀와 총각이 물위에 각자 조그만 배를 띄워놓고 관광객들이 지나면서 박수를 쳐주면 처녀와 총각이 번갈아 나오며 구슬픈 노래를 들려준다. 맑고 청량한 음성으로 가사내용은 모르지만 무척 서정적인 노래라고 생각된다. 중국현지에서 들어보는 최초의 생음악으로 기억하고 싶다.보봉호를 한바퀴 빙도는데 토가족 처녀의 배가 다시 보이자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관광객중 한사람 이 노래를 불러주면 답가로 다시 토가족 처녀가 나와 앵콜 노래를 들려준다


또 그 시대는 하상(夏商)시기와 같아 학자들은 이 문화를 ‘조기(早期) 파문화’라고 부른다. 그 후속 문화도 토가족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시대는 동주(東周)시기와 같고 학술계는 이를 ‘춘추전국 파문화’라고 불렀다. 이 파문화는 지금의 토가족 거주지역 내에서 출현시간이 가장 이르고 계승성․안정성이 강하고 지속된 시간이 길며 복개면(覆盖面)이 큰데, 이 문화의 특징은 훗날의 토가족 문화에 비교적 많은 지역에 남아 있다.

‘조기 파문화’ 유적은 강가의 지세가 비교적 낮은 곳에 많이 분포한다. 가옥유적은 비교적 적고 간단한데, 이것은 아마도 파인이 강가에서 많이 생활한 것과 유관한 것 같다. 묘는 장방형의 토갱(土坑)묘로 몸을 반듯이 하여 누운 자세의 직지장(直肢葬)을 주로 한다. 석기의 마제(磨制)는 별로 정교하지 않고 타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쪼개고 깎는 대형도구가 비교적 많고 특히 방각형(蚌殼形: 말씹조개껍질형) 격지(石片)인 간단하고 실용적인 괄삭기(刮削器)가 유행했다.

이 외에도 도끼(斧), 자귀(錛), 끌(鑿), 화살촉(石鏃)등이 있다. 도기는 가장 중요한 유물인데 일반적으로 모래를 섞은 회갈도(灰葛陶)를 주로 하며 수제도(手除)가 비교적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기본적인 도기의 형태는 단지(罐), 시루(甑), 굽보시기(豆), 바리(盂), 잔(杯), 세발주전자(盉), 도기뚜껑(器盖), 항아리(缸), 도기받침(器座) 등이 있다.

원저관(圓底罐: 원형의 낮은 단지)을 기본으로 하는 취사도구(炊器)는 조기 파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자주 보이는 격지는 아마도 (가축을) 도살하고(宰), 쪼개고(割), 껍질 혹은 털을 벗기거나(剝皮毛) 생선 비늘을 벗기는데 쓰였던 것 같고 주요 음식물은 야생동물 혹은 어류로 한 것으로 보아 조기 파인의 경제는 어렵을 주로 했음을 증명한다.


토가족 공연

사적 중에는 파인이 지금의 토가족 지역에서 활동하던 상황에 대해서도 기재되어 있다. 《산해경(山海經)》에는 몇몇 파인이 지금의 삼협(三峽)지역에서 활동하던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무산(巫山)이 서쪽에 황도(黃島)가 있고 무산에는 황조(黃鳥)가 있어 현사(玄蛇)를 관리했다. ‘황조’, ‘현사’는 명백하게 고대의 다른 토템부락을 대표한다. ‘파사식상(巴蛇食象: 파사가 코끼리를 먹다)’의 전설은 일찍이 동정호반(洞庭湖畔)의 악양(岳陽) 일대에서 출현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자귀(秭歸) 서쪽의 대강(大江) 남쪽에는 ‘파(巴)’라고 불리는 오래된 부락이 있는데 하계(夏啓)의 신하인 맹도(孟涂)는 ‘파’에서 귀신(神道)을 주관하여 파인(巴人)은 맹도에게 구신(求神)했다. 맹도는 파인의 옷에 피가 묻은 자를 찾아 붙잡아 이로써 신에게 제사지냈다.(태호복희 후예)

《세본(世本)》에는 파인의 한 갈래인 늠군파인(廩君巴人)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다. “늠군의 선조는 무탄에서 나왔다.(廩君之先, 故出巫誕)” 즉 ‘늠군’의 선조는 ‘무탄’이라는 오래된 부족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등소금(鄧少琴)은 이 ‘무탄’이 바로 《산해경․대황남경(山海經 大荒南經)》에 기재된 ‘무단민(巫蜑民)’이라고 생각했다.*
--
* 등소금(鄧少琴) : 《파촉사적탐색(巴蜀史迹探索)》, 제57쪽.
--


그 지역은 대략 구당협(瞿塘峽)의 동쪽 입구(大溪口)에서 무협(巫峽)의 서쪽 입구(巫溪口)에 이르는 중간에 위치한다. 따라서 고고문화와 고고전설로부터 보면 지금의 토가족 거주지역 내에 조기 파문화와 옛 파족(巴族)이 존재했었음을 설명한다.

파인이 협강(峽江)지역에 진입한 후 그 세력이 매우 발전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후한서․남만전(後漢書․南蠻傳)》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파군(巴郡) 남군(南郡)의 만(蠻)은 원래 5성이 있는데, 파씨(巴氏), 번씨(樊氏), 담씨(曋氏), 상씨(相氏), 정씨(鄭氏)이다. 모두 무락(武落) 종리산(鍾離山)에서 나왔다. 이 산에는 적(赤), 흑(黑) 두 개의 동굴(穴)이 있었는데 파씨의 아들은 적혈(赤穴)에서 낳았고, 나머지 네 성씨의 아들은 흑혈(黑穴)에서 낳았다. 아직 군장(君長)이 없어 모두가 귀신(鬼神)을 모셨다. 이리하여 석혈(石穴)에 검을 던져 명중하는 자를 군장으로 봉하기로 했다. 파씨의 아들 무상(務相)만이 명중시켜 군중이 모두 감탄했다. 또 토선(土船)을 타고 뜰 수 있는 자를 군장으로 봉하기로 했는데, 나머지 성은 모두 가라앉았고 유일하게 무상만 혼자 떴다. 이로써 모두 그를 늠군(廩君)으로 세웠다. 이에 토선을 타고 이수(夷水)에서 염양(鹽陽)까지 이르렀다.……늠군이 죽어 혼백이 백호(白虎)가 되었다. 파씨는 호랑이로써 사람의 피를 마셔 이에 따라 사람으로 제사를 지냈다.”

춘추전국 이래의 파인의 활동상황에 대해서 고고학계에서도 발견이 있었다. 중경(重慶)의 파현(巴縣), 소화(昭化), 부릉(涪陵)에서 파인의 고분군을 발견했고, 투동(渝東)의 기타 지역에서 발견된 파인의 유물도 적지 않다. 또 호북의 파동(巴東), 자귀(秭歸), 장양(長陽), 건시(建始), 은시(恩施), 이천(利川), 강릉(江陵), 지강(枝江), 당양(當陽), 양양(襄陽) 등의 현에서 파인의 유물 혹은 고분이 발견되었고, 호남의 석문(石門), 용산(龍山), 길수(吉首), 대용(大庸), 고장(古丈), 화원(花垣), 봉황(鳳凰), 보정(保靖), 지강(芷江), 호계(滬溪) 등의 현에서 주로 교장(窖藏)에 속한 파인의 청동기를 발견했고 숙포(淑浦) 등지에서 파인의 고분이 여러 곳 발견되었다.

또 귀주(貴州)의 송도현(松桃縣)에서 아마도 교장에 속하는 파인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상술한 몇몇 지역에서 출토된 독특한 풍격을 지닌 기물(예를 들어 원저도관(圓底陶罐: 둥글고 낮은 단지), 원저동부(圓底銅釜: 둥글고 낮은 쇠가마)) 및 기물 조합은 동주(東周) 이래의 파문화와 ‘조기 파문화’의 전승 관계를 반영한다.


토가족 공연

     파문화의 특징

파인의 문화 중 비교적 특색 있는 요소는 주로 아래의 몇 가지 방면에서 나타난다.

(1) 힘이 넘치고 용감하며 무예를 숭상한다. 사적에는 늠군(廩郡)이 검을 잘 다뤄 목표를 명중시킬 수 있어 파사(巴師)는 천성적으로 힘이 넘치고 용감하다고 말한다. 파인의 힘이 넘치고 용감하며 무예를 숭상하는 이러한 민족특성은 파인의 고분 및 출토된 문물 중에서 표현되는데, 무기가 비교적 많고 또한 독특한 풍격을 지니며 검(劍), 도끼모양 무기(鉞), 창(戈), 창(矛), 화살촉(箭鏃)을 주요 무기로 한다. 예를 들어 자귀(秭歸)에서 서쪽을 향한 지역의 파인고분 중에는 생활 무기가 매우 적고 병기가 많은데, 병기는 파식유엽검(巴式柳葉劍), 소형의 원인속요식월(圓刃束腰式鉞: 둥근 날 허리띠식 도끼무기), 다리부분에 두 귀가 달린 파식모(巴式矛:창) 그리고 도끼와 갈고리를 이어 붙인 창이 있다.

어떤 고분의 죽은 자의 신변에서는 부채형으로 배열된 화살촉 14점이 나왔는데 이것은 파인의 장수가 전사한 후 몸에 지니던 병기와 화살촉 주머니를 함께 지하에 묻은 것으로 여겨진다. 파동(巴東)의 강가에 연한 계곡 동굴 속에서, 특히 큰 강 입구로 흘러 들어가는 돌 틈 속에서 여러 가지의 청동 화살촉을 찾을 수 있으며 어떤 때는 한 틈새에서 수백 점을 얻을 수도 있으며, 강가의 암초의 돌 틈 속에서는 종종 십 몇 근, 몇 십 근의 동화살경(銅箭敬)과 잘리고 손상된 병기를 찾을 수 있다.

이것으로 그 해에 파인과 초인의 화살이 서로 교차하며 격렬한 전투를 하던 광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파인은 용맹스럽고 위세가 있으며 전쟁에 능하였기 때문에 장수가 많이 배출되었다. 《화양국지 파지(華陽國志 巴志)》에서 당시의 성어(成語)를 인용해 말하기를 “파에는 장수가 있고, 촉에는 재상이 있다.(巴有將, 蜀有相也)”라고 하여 실제로 깊은 문화적 배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 호랑이를 민족의 표지로 삼았다. 늠군이 죽어서 그 혼백은 백호(白虎)가 되었고, 일찍이 ‘백호’를 쏘아죽인 ‘판순만이(板楯蠻夷)’를 ‘백호복이(白虎復夷)’라고도 불렀다. 그 후예는 스스로 ‘백호만(白虎蠻)’이라고 칭했다. 이는 파인이 호랑이를 숭배했을 뿐 아니라 호랑이를 민족의 표지로 삼았다는 것을 설명한다. 투동(渝東), 악서(鄂西), 상서(湘西), 검동(黔東)에서 발견된 동주(東周)에서 진한(秦漢)시대까지의 파인의 청동기물(靑桐器物) 위에 병기든 아니면 악기든 거의 대부분에 호랑이의 무늬 혹은 형상이 있다.

파식 유엽형검(柳葉形劍)의 나뭇잎모양 위에 호랑이얼룩(虎斑形)무늬가 있고 검체의 손잡이 가까운 부분에는 호랑이 무늬와 손바닥모양이 주조되어 있다. 숙포(淑浦)의 전국시대 파인의 고분 속에서 검에 사람의 머리를 한 쌍호(雙虎) 모양이 주조된 파식검(巴式劍) 한 개가 출토되었다. 파식동창(巴式銅戈)에는 손잡이 뒷부분에 호랑이 머리모양이 부조되어 돌출되어 있는데 호랑이의 형상은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며 입을 옆으로 찢어질 듯 벌리고 있으며 두 귀는 뒤를 향해 뻗어 선을 넘어 창의 손잡이를 감싸고, 호랑이 몸은 안쪽 윗부분까지 뻗어나가며 음각(陰刻)으로 윤곽선을 표시했다.

사천의 아미부계(峨眉符溪)에서 출토된 동창(銅戈)에는 또 사람이 호랑이에게 제사지내는 형상이 선명하게 주조되어 있다. 호뉴순우(虎鈕錞于: 호랑이가 조각된 옛날의 동으로 된 악기)와 같은 이런 파식 악기는 호남 석문신관(石門新關)의 교장(窖藏) 속에서 15점이 출토되었고, 귀주의 송도목수향(松桃木樹鄕)에서 크기가 순서대로 배열된 5점이 한번 출토되었다.

또 사천의 부릉소전계(涪陵小田溪)의 파인 귀족고분에서 출토된 호뉴순우는 호북의 장양(長陽), 호남의 호계(滬溪)에서 출토된 호뉴순우와 대체적으로 비슷하고 은시자치주에서도 쌍호뉴순우(雙虎鈕錞于)가 한 점 출토되었다. 이 때문에 웅전(熊傳)은 상(湘), 악(鄂), 천(川), 검(劍)에서 출토된 이 호랑이무늬 청동기가 이미 도안과 장식의 범위를 뛰어넘어 토템 혹은 민족표지(族徽)라는 특수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새로이 지적했다.
__
*虎頭鞋(호두혜 : 호랑이 머리모양 신발) :민간에서는 어른들이 영아에게 호랑이 모양 신발을 신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신발은 대부분 살구빛 면으로 만드는데, 신발의 양쪽 볼에는 호랑이 가죽 무늬가 되어 있고, 신발 코부분에는 위풍당당한 호랑이 머리 모양이 그려져 있다. 호랑이의 눈, 코, 입, 귀, 수염이 모두 있고, 이마에는  "王"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진짜처럼 귀엽게 생겼다. 사람들이 아이에게 이 신발을 신기는 이유는 실용적이고 예쁘게 보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 신발이 아이를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는 호랑이가 백수의 왕으로서 여겨 귀신이나 악마를 쫓고 재앙을 피하게 한다고 믿었고, 아이에게 이 신발을 신기면 아이를 위해 용기가 내서 아이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신발은 아이의 호신용일뿐만 아니라 어른의 호신용이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생소한 지역이나 야외에서 잠을 잘 때, 신발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머리맡에 기백이 있는 신발을 두면, 귀신이 감히 오지 못한다(頭枕爛潑鞋, 神鬼不敢來 : 침두란발혜, 신귀불감래)"는 속담도 있다. 이 외에도 신발의 의미는 아주 광범위한데, 예를 들면 목 매달아 죽은 귀신이 빨간 신발을 신고 이승에 오면 새신랑이 될 수 있다거나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은 꼭 신발을 물가에 두고 죽는데 이것은 신발까지 물에 잠기면 죽어서도 물속을 헤매고 다닌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발의 의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가 발생되었다.



(3) 예기희무(銳氣喜舞). 기록에 의하면, 파인은 일찍이 주(周) 무왕(武王)이 주(紂)를 정벌할 때 ‘가무로써 위압했다(歌舞以凌)’하였고, 한(漢) 고조(高祖)가 삼진(三秦)을 평정할 때 “선봉에서 적진을 함락시키고 예기희무(銳氣喜舞)했다.” 왕녕생(汪寧生)은 운남(云南) 덕굉(德宏)지역 및 사천 양산(凉山)지역의 몇몇 소수민족에 일찍이 옛 전투 습속이 존재했던 것을 결합하여 파인이 ‘가무로써 위압했다(歌舞以凌)’의 소위 ‘가(歌)’가 바로 크게 전가(戰歌)를 부르거나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뜻하며, 소위 ‘무(舞)’라는 것은 싸움터에 임할 때 어떤 이가 앞에서 무기를 휘두르며 하는 일종의 위협성 동작에 불과하다고 해석했다.*
--
*왕녕생(汪寧生) : 《‘무왕벌주, 전가후무’ 해석(釋‘武王伐紂, 前歌后舞’)》의 《역사연구(歷史硏究)》1981년 제4기에 기재됨.
--

한 고조는 파인의 용감하고 힘찬 정신에 대해 매우 찬양했고 파인의 이러한 가무를 여러 차례 관람했으며 악인(樂人)에게 파인의 ‘예기희무(銳氣喜舞)’ 동작을 모방하게 하여 파투무(巴渝舞)를 만들었다.

(4) 선관장(船棺葬)을 행했다. 전설에 따르면, 늠군은 토선(土船)으로 물에 뜰 수 있었고 ‘판순만(板楯蠻)’은 유수(渝水) 양 기슭에 살았으며, 동한(東漢)시대에 와서 강주현(江州縣: 지금의 중경(重慶))의 주민들은 작은 배를 띄어 물 위에서 거주하는 가구가 500여 집이 있었다. 이것은 파인이 오랫동안 배와 물가 가까이 살던 민족임을 설명한다. 선관장(船棺葬)은 바로 파인이 일찍이 거주하던 파현(巴縣) 동순패(冬筍壩), 소화(昭化: 지금의 광원(廣元)에 속함)의 보륜원(寶輪院)에서 잇따라 발견되었다.

이곳의 다수의 고분이 모두 독목주(獨木舟)를 매장도구(葬具)로 한다. 선관(船棺)의 매장방식 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체와 순장물을 직접 배 안에 넣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배 안에 목제로 된 작은 관에 시체 및 휴대품을 넣어 다른 곳에 놓고 도기 및 동기(銅器)는 관 밖의 배 안에 놓는 방식이다. 수장품 중에서 청동도끼(靑銅鉞)와 파식검(巴式劍)을 주요 무기로 하며 도기의 모양은 둥글고 낮은 것이 많다. 선관장 중의 독목주(獨木舟)는 그 크기 제작에서 보면 완전히 실제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매장도구는 아마도 묘의 주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수상 교통도구를 사후에 매장도구로 만들어 사람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배가 필요하다는 신앙을 나타내는 것 같다. 혹은 파인의 선조 숭배, 천리귀종(千里歸宗) 신앙―즉, 사람이 죽은 후에 배, 물길을 이용하여 사람의 영혼을 상상 속의 고향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것을 나타낸다.

(5) 귀신을 믿고 도교를 섬겼다.(信鬼事道) 사적에 기재되기를, ‘파군(巴郡) 남군만(南郡蠻)’(늠군의 부(部))은 모두 귀신을 섬겼고, 종인(賨人)은 (판순만(板楯蠻)) 귀신과 무당을 좋아하는 풍속이 있었다. 무술(巫術)은 도술의 일부분으로, 주문을 주요 도술로 하는 ‘오두미도(五斗米道)’는 농후한 무술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도교의 발전은 파촉(巴蜀)지역에서 무술이 성행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토가족 공연

동한(東漢) 말에 태평도(太平道)의 우두머리인 장각(張角)이 살해된 후 장수(張修) 역시 죽었다. 옛 역사에서 오두미도의 장수(張修)는 ‘사람을 홀리는 무당(妖巫)’이라고 칭했던 귀신의 주인(鬼主)으로 실제로 파군(巴郡) 토착(土著) 이인(夷人)의 교주이다. 장릉(張凌)은 장수(張修)의 귀도(鬼道)를 계속 사용하면서 그것을 좀 더 개조하여 천사도(天師道)를 창립한 사람이다.

이로써 왕가우(王家佑)는 사적에서 말한 “이는 도를 섬기고, 만은 귀신을 섬겼다.(夷事道, 蠻事鬼)”, “백호는 도를 섬기고, 만단과 파인은 귀신을 섬겼다.(白虎事道, 蠻蜑與巴人事鬼)”라고 말하는 진정한 의의는 파이(巴夷) 늠군 백호족은 도교(천사정일도(天師正一道))이고, 파만(巴蠻)과 파단(巴蜑)은 무귀교(巫鬼敎: 오두미도)”라고 생각했다. 천사도는 선진(先進) 파인이 원시 파인의 무귀교를 개조하여 나온 것이다.*
--
*왕가우(王家佑) : 《도교논고(道敎論稿)》제 163쪽.
--

서진(西晉) 말년에 이웅(李雄)은 성도(成都)를 함락시키고 범장생(範長生)을을 주모자로 삼았다. 진연각(陳演恪)은 말했다. “파(巴)는 천사도를 독실하게 믿는 민족 출신이고 범장생은 본래 천사도의 교주이기 때문에 거의 죽을 뻔 했을 때 이씨(李氏)를 구원하여……실제로 종교적 *배경이 있었다.” --
*진연각(陳演恪) : 《천사도와 해변지역의 관계(天師道與濱海地域之關係)》에서 《금명관총고초편(金明館叢稿初編)》참고.
--

사실상 종교 신앙을 통해 파종인(巴賨人)의 이씨 정권에 대한 지지를 얻었다. 파인의 이런 귀신을 믿고 도교를 섬기는 풍속의 지속시간은 매우 길다. 따라서 “파(巴)의 풍속은 도교를 일삼는 것으로 특히 노자의 주술을 *중시했다.” “파의 풍속은 귀신을 숭상하여 의학을 버리고 오직 무당의 말만이 효력이 있었다.” 라고 하였다.
--
*《송사 후가전(宋史 侯可傳)》
--

(6) 적색을 숭상하고 단사(丹砂)를 정제했다. 파씨의 아들(늠군)은 적혈(赤穴)에서 태어났다. 《열선전(列仙傳)》중에, 어떤 적부(赤斧)라고 하는 파인이 있는데 이를 신선의 하나로 분류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적부는 파인으로 단사(丹砂)를 정제할 수 있었고 초석(硝石: 진산칼륨)과 함께 복용하여 신체 모발이 모두 *적색이었다.”
--
*《문선(文選)》권 4. 이선(李善) 주석인용. 《도장(道藏)》제 5책 참고.

단사는 또 주사(朱砂)라고도 불리는데 역시 적색이다. 파인은 적색을 좋아하였으며 단사를 정제하는데 능했고, 오랫동안 단사를 정제하는 것으로 미신의 색체를 벗어났고 파인이 정통했던 채광(采鑛)과 광석 정제업(煉鑛業)을 이루었다. 《한서 화식전(漢書 貨殖傳)》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파의 과부 청(淸)은 먼저 단혈(丹穴)을 얻어 그 유익함이 수 대(代)에 걸쳤는데 집에서도 청을 헐뜯지 못하고 과부도 그 공적을 지킬 수 있어 제물로 자신을 지켜 사람들이 감히 범하지 못했다.” 파의 과부 청은 진시황 시기의 사람으로 그 전대(前代)는 분명 전국시대이다. 따라서 파인이 단사를 캐고 정제하는 것이 전국시대에 이미 매우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란.신석기 시대 주요 도기제작방법 중 하나인 니조반축법(흙덩어리로 쌓아가며 만드는 법) 신석기 중기 앙소문화 시절 이미 출현. 그릇형 솥과 속이 깊은 항아리 심복관.모두 니조반축법으로 흙덩어리를 가공해 붙여 만든 것이다. 양자강 하류 상해 항주 소흥 부근의 동이족 유적지인 하모도 유적지의 간란식 방옥 구조도.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이른 목구조 건축물이라 자랑한다. 양자강 하류는 하천이 그물처럼 얽힌 습한 지대로 아래는 돼지 등 가축을 기르고 사람은 위에서 생활했다. 건축은 기후와 풍토를 반영하므로 지금의 한반도 건축 습성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길이가 23미터이므로 70평 이상의 대단히 큰 가옥이다. 잔소리-대륙의 구석기 신석기 시대는 모두 동이족이 열었으니 이들 문화는 모두 동이족 문화다. 본인의 홈피에 실린 고고학 발자취는 모두 동이 제 족의 것이라 생각하고 일별하면 편하다.

(7) 나무를 받쳐 거주했다.(간란(干欄)). 파군(巴郡) 강주현(江州縣)은 지세가 가파르고 험하여 모두 중옥누거(重屋壘居: 이층으로 쌓아 만든 집)였고, 이 중옥누거는 바로 간란(干欄: 큰 나무에 의지하여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은 것)에서 전해온 규칙이다. 중경시(重慶市) 박물관 에 소장되어 있는 호뉴순우(虎鈕錞于)에서 ‘간란’식(동이족 가옥) 가옥의 도안을 볼 수 있다.

사천 남충(南充)지역의 동한암(東漢岩) 묘석(墓石)에 새겨 있는 도안에도 간란식 건축이 있는데, 가옥은 2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나무 한 그루로 사다리를 만들어 올라간다. 당원진(唐元稹)은 통주(通州: 지금의 사천 달현(達縣))의 풍속에 대해 기록하여 말하기를 “평지는 겨우 1경(頃: 논밭의 면적 단위. 1경은 백 묘(2만 여 평)) 정도밖에 안되었으므로, 각란(閣欄)은 모두 소거(巢居: 나무 위의 집)와 비슷했다.”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 주석하여 말하기를 “파인은 산비탈에 나무를 세워 많이 거주했으며, 스스로 각란두(閣欄頭)라 했다.”고 했는데 다시 말하면 이 역시 각란식 건축이다.

(8) 소금을 만들었다. 사적에 기재되어 있는 바에 의하면, 이르게는 늠군시대에 염수(鹽水) 염양(鹽陽) 등 염(鹽)을 이름으로 하는 지역이 파인이 입신출세하는 이야기 속에 일관되게 나온다. 《수경주 이수(水經注 夷水)》에서 말했다. “이수(夷水)에 온천이 있는데, 노인들이 서로 전하기를 이 샘에서 먼저 소금이 나온다고 하였고, 지금의 물에 소금기가 있어 이수(夷水)에 염수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이 역시 그 중 하나다.” 또한 염양(鹽陽)의 지역에서는 ‘어염(魚鹽)이 나오는 곳’이 있었다.

한 대(漢代)의 남군(南郡) 무현(巫縣: 지금의 사천 무산현(巫山縣)) 파군 구인현(朐忍縣: 지금의 운양현(云陽縣) 서쪽)에 모두 염관(鹽官)이 설치되었다. 임강현(臨江縣: 지금의 충현(忠縣))의 남쪽에 염정(鹽井)을 운영하는 집이 있었고, 무계수(巫溪水: 지금의 대령하(大寧河)에 염정이 있었다. 이수(夷水: 지금의 청강(淸江))에서 사천 운양(云陽) 충현(忠縣) 파인의 주거지역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금을 생산하는 지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 술을 빚었다. 파인은 두우(杜宇) 교민이 농업에 종사하기 이전에 이미 농업에 종사했고, 비교적 빨리 술 빚는 기술을 장악했다. 성홍(盛弘)의 《형주기(荊州記)》에서 “남향(南鄕) 협서(峽西) 80리에 파향촌(巴鄕村)이 있는데, 술 빚는 것을 좋아하여 속칭 파향주(巴鄕酒)라고 한다.”고 했다.

《수경주 강수(水經注 江水)》에도 말하길 “강수의 경어복(經魚復: 지금의 봉절현(奉節縣))의 고릉(故陵) 북쪽 파의 왼쪽 기슭에 파향촌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술 빚는 것을 좋아하여 속칭 파향청군(巴鄕淸郡)에서 나온 명주(名酒)라고 했다.”고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파향촌은 영안궁(永安宮: 지금의 백제성(白帝城))의 서쪽에 있다.

고고(考古)와 민속 문화가 반영하는 상술한 파문화의 특징은 고대 파인의 정신생활과 물질생활 방면의 주요 면모를 표현했고, 이는 후에 같은 지역의 토가족 문화가 출현하는데 비교적 많은 영향을 주었다.
--



*鷄與生兒育女(닭과 아들, 딸을 낳아 기르는 것과의 관계)


土家族(토가족, 중국 소수 민족의 하나로 주로 호북성 호남성 등지에 거주하며 대부분 농사에 종사)의 부녀자들은 출산을 했을 때, 남자아이를 낳으면 사위는 가장 좋은 수탉 한 마리를 대바구니 안에 넣고 예쁜 토가족 꽃무늬 천으로 덮은 다음 장인집으로 가서 기쁜 소식을 알렸고, 여자 아이를 출산하면 사위는 곧 가장 좋은 암탉 한 마리를 대바구니안에 넣어 똑같이 예쁜 꽃무늬 천으로 덮개를 만들어 장인집으로 가져가서 기쁜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암탉을 보내든 수탉을 보내든 처가집으로 가는 도중에 대바구니안의 닭을 공손하게 늙은 무당의 神像(신상) 앞에 두었는데, 이것은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이 무당의 신상앞에 두면 아이를 정성들여 키우는 것을 도와주고, 재앙을 피하고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했다. 여기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얘기가 있다.

武陵山(무릉산) 아래에는 장작을 패서 생활하는 나무꾼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은 결혼한지 십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었다. 어느 날 부부가 산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데, 산 중을 날아 나오는 닭 한쌍을 보았다. 남편이 얘기하길 "우리는 저 한쌍의 닭보다 못하구려, 그들은 여전히 알을 낳아 자손을 번식시킬 수 있으니 말이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너무나 화가 나서 오래지 않아 병이 생겼고, 날이 갈수록 병은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이렇게 되자 나무꾼은 너무 바빠서 죽을 지경이었고, 어느 날은 너무 피곤해서 신기한 잠들어 버렸다. 그는 꿈속에서 南天門(남천문)에서 날아오르는 한 쌍의 비범한 닭을 보았는데 그에게 말하길 "우리는 王母(왕모, 祖母에 대한 존칭)께서 보내셨습니다. 당신 부인의 병은 우리의 고기로 몸을 보양하면 나을 겁니다." 나무꾼은 잠을 깬 뒤 참 이상한 꿈이라고 여겼다.

이튿날, 그는 산에서 또 장작을 패고 있었다. 그때 마침 산중턱에서 南方天(남방천) 하늘을 날아오르는 여러가지 빛깔의 닭을 보았는데 그것들이 나무꾼 앞에 떨어지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무꾼이 생각하길 "어제 꿈이 영험한 것이었나? 우선 집으로 가져가야겠다." 집에 돌아와서 나무꾼이 닭을 죽이자, 두 마리의 닭이 각각 3번씩 소리치니 입에서 안개같은 작은 물방울이 나왔다. 그것은 곧 하늘로 사라지고 단지 고기밖에 남지 않았다. 나무꾼은 닭을 익혀 부인에게 주었는데 부인은 의외로 고기를 모두 다 먹었다. 그 이튿날, 병은 다 나았고, 오래지 않아 더욱 기쁜 일이 생겼는데, 아들 하나, 딸 하나 쌍둥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중년에 자식을 얻은 나무꾼은 너무 기뻐서 좋은 닭 한쌍을 골라서 대바구니 안에 넣고 土花(토화, 중국목화)로 만든 천을 덮어 장인집에 보냈다. 나중에 나무꾼의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닭이 그들에게 아이를 점지해 준 신령스러운 동물이라 여겼다. 이리하여 닭은 토가족 사람들에게 자식을 얻을 수 있는 부적처럼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9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5-상원부인(上元夫人)과 종요  안원전   2004/03/22  6002
29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4-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 토지신(土地神)과 주원장  안원전   2004/03/22  6852
29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3-조왕신(竈君)의 기원,삼국시대 위(魏)나라 세양(細陽) 사람 장단(張單)  안원전   2004/03/16  5502
28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2-남송(南宋) 항금(抗金)의 영웅인 악비 수하의 맹장 우고(牛皐)와 성황신(城隍神)  안원전   2004/03/16  6725
28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1-도신(濤神)이 된 절강성 항쪼우(항주) 전단강의 오자서  안원전   2004/03/15  6196
28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0-탑을 받쳐 들고 있는 이천왕(李天王)  안원전   2004/03/12  4926
28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9-서왕모(西王母) [1]  안원전   2004/03/12  6194
28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8 남천문 현판과 왕희지 시절에 만들어진 옥황대제 신화  안원전   2004/03/11  5579
28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7 동이족 복희(伏羲)와 여와(女媧)가 낳은 딸 낙신(洛神) 신화  안원전   2004/03/11  6188
283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6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8-한족 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3/11  6030
282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5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7-토가족 문화생태, 동이 묘족(苗族) 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2/16  7760
281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4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6-동이 초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2/06  6731
280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3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5-중원 동이족 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2/05  9581
279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2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4-파문화의 토가족 문화에 대한 영향  안원전   2004/01/27  772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1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3-토가족 족원(族源) 및 선민(先民)문화  안원전   2004/01/27  7244
277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0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2-기후,지형과 지모(地貌) 및 식생과 동물 [1]  안원전   2004/01/27  7169
27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39 국내 최초 소개 특별기획 시리즈-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1-토가족(土家族) 문화의 생성메커니즘  안원전   2004/01/27  7799
27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8.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3  안원전   2004/01/18  7152
27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7.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2  안원전   2004/01/18  6307
27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6.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1  안원전   2004/01/18  6285
27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5.상고 대륙사에 있어 동이 한겨레의 봉황(鳳凰) 토템(圖騰)에 대해 말한다  안원전   2003/12/19  7830
27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4. 황제헌원과 용의 미스터리-동이(東夷), 서하(西夏)적 용봉 2원 연맹  안원전   2003/12/03  7825
27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3. 용숭배는 실제로 뱀숭배, 동북아, 모스코우(墨西哥), 에티오피아(埃塞俄比亞), 희랍(希腊), 남아프리카(南非), 미주(美洲)에 있는 씨족의 뱀숭배&“영사(迎蛇)”일의 “뱀맞이 굿모임(迎蛇賽會)”  안원전   2003/12/01  7116
269    담론 232.초(楚)의 선족(先族)은 동이족 축융씨(祝融氏)와 「상서요전」에 등장하는 ‘주호웅비(朱虎熊羆:큰 곰 비)’의 이면적 실체, 흑호(黑虎)씨족의 쓰촨(四川) 냉산(冷山) 이(彛)족은 동이족 신화 반왕(盤王)< 高辛王 세째딸과 부마 반왕(盤王)의 전설>가짐  안원전   2003/11/19  8179
26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1순(舜)은 동이 인을 데리고 흑도 문화를 창조했으며, 이들은 동이 인으로 흑도 문화를 계승해 이어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초궁초득(楚弓楚得)'  안원전   2003/11/10  7909
267    담론230. 대하(大夏)인이 전파한 채도문화&채도문화는 동이민족의 기반 위에서 혼혈과정에 뿌리내린 것. (은(殷)말 주(周)초 서하(西夏)와 한고조 유방의 한족 실마리(왕국유) 상족(商族)의 기원,서북방(전통적) 동방(근대) 기원설  안원전   2003/10/28  7853
266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3-천신(天神)의 아수(啞水: 마시면 벙어리가 되는 물)-동물이 말을 못하게 된 기원 [이족(彝族)]  안원전   2003/10/02  8344
265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2-호랑이의 전설 [나시족(納西族)]  안원전   2003/09/29  6982
26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1-도기 제작과 면화 재배의 기원 [한족(漢族)]  안원전   2003/09/25  6473
26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0-노황(蘆笙: 갈대로 만든 생황, 묘족과 동족(侗族)이 주로 쓰는 취관 악기의 일종)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5  6801
26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9-신의(神醫) 시사의(侍司懿)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5  5953
261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8-닭, 오리, 거위의 유래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2  6617
260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7-사지고미(沙地古咪)가 찾은 식량의 종자(糧種)  안원전   2003/09/22  6229
259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6-우(禹)의 탄생 신화[동이족)]  안원전   2003/09/19  6502
258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5-하우의 부친 곤왕(鯀王)의 치수  안원전   2003/09/19  6023

[1][2][3][4][5][6][7] 8 [9][10]..[16] [NEXT]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