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Total : 538 (537 searched) , 8 / 16 pages  

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링크 #2    http://202.106.182.194/cgi-bin/search/search.cgi?_searchkey=%CD%C1%BC%D2%D7%E5&_andor=and&_ss=sina&x=14&y=4
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39 국내 최초 소개 특별기획 시리즈-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1-토가족(土家族) 문화의 생성메커니즘



안원전의 21세기 담론중 호남성 장자지에(장가계) 동이 투지아쮸(토가족) 연재 시리즈는 국내 최초로 네티즌들에게 소개하는 글이다. 국내에서도 장가계 패키지 투어가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로 이미 알려져 있으나 그곳 토가족이 동이족으로 백족, 이족, 묘족 등의  동이족 갈래와 친연관계를 맺고있는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곳의 문화인류학적 혈통관계와 족원은 초민족의 족원과 파민족의 족원이 서로 연관되어 있어 근원이 동이족인 초민족도 장차 자세히 향토사료를 밝혀 소개하고자 한다. 족원의 결론은 독자들이 모든 글을 읽고 결론내릴 것으로 믿는다.(안원전)


투지아쮸(土家族) 문화의 생성메커니즘




http://blog.naver.com/p3478.do?Redirect=Log&logNo=20019062371
토가족은 주로 湖南성 서부지역과 湖北성 서부지역, 四川성 동남지역과 貴州의 동부지역 등에 거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284만 명(1982년 통계)에 이른다. 토가족은 자칭 "비쯔카", 漢語로는 "토가" 라고 불리워진다. 토가족은 역사상 많은 칭호가 있었는데 "土家"를 이 종족의 속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토가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진나라가 바후를 멸한 후에 호남, 호북, 사천 귀주 등에 거하고 있는 파인과 한족들이 혼합해서 된 것으로 말하고 있고(한족이란 칭호가 당시 없었으니 이것은 지나사학자들의 궤변이다), 또 하나는 토가어가 彛語가 가깝고 또 토가가 운남지역에 거하고 있는 이족 풍습과 같다는 것을 근거로 그 기원을 당나라 중반기 때의 오만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토가족은 자기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토가족어는 漢藏語系이 藏納語族에 속한다. 해방되기 전 토가족지역은 봉건지주 경제개발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본주의 경제적 기반이 경제적 기반이 갖추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2천여년 전부터 오늘날의 샹시(湘西:Xiangxi)와 어시( 西:Exi)일대에 거주했다. 후한서(後漢書)에는 투지아쭈(토가족)를 다른 소수 민족과 함께 '무릉만'(武陵蠻) 또는 '오계만'(五溪蠻) 등으로 기술하고 있고, 송사(宋史)에는 '토정'(土丁), '토인'(土人), '토민'(土民), 또는 '토만'(土蠻) 등으로 적고 있다. 일반적으로 투지아쭈는 고대 귀주(貴州)로부터 호남의 서부지역으로 이동해 간 파인(바人)의 후예로서, 오만(烏蠻)이라 불렸던 민족이다. 호남성(湖南省)일대에 사는 투지아쭈는 혼담이 오고가기 시작하면 청년은 결혼할 규수집을 찾아가서 장래의 장인, 장모에게 인 사를 한다. 대문에 들어서면 먼저 한쪽 무릎을 꿇고,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규수는 장래의 사윗 감을 일으켜 세우고 그가 짊어지고 온 대나무를 내려서 안방으로 들여보낸다. 규수는 가슴을 졸이고 있다가,살짝 안방으로 들어 가서 바구니를 열어본다. 그리고는, 바구니안에 들어있는 돼지발을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본다. 만일 돼지발에 아무런 표시가 없 을 경우, 청년쪽에서 아직 결혼날짜를 정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반면에 발굽 근처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택일을 재촉하는 의미이 므로, 이때 규수는 서둘러서 결혼 준비를 하게 된다. 또한 돼지발에 꼬리가 달려 있으면 추수후에나 가능하다는 표시이다. 반대로 규수쪽에 사정이 있어서 그해에 결혼할 수 없거나 한동안 부모곁을 떠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때에도 그 자리에서 이야 기 할 필요는 없다. 청년이 돌아갈 때, 돼지발과 꼬리를 답례품과 함께 바구니에 넣어보내면 된다. 청년이 집에 돌아가서 풀어보 면 곧 알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경우,청년은 다음해까지 기다려야 한다.투지아족의 혼인은 매우 개방적이고 청년 남녀간의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하다. 결혼풍습중 독특한 것 하나는 신부가 집을 떠나기 약 보름 전부터 우는 곡가(哭歌)라는 것이다. 때로는 6개월 동안 계속 우는 적도 있다. 울면서 부르는 "哭歌"의 내용 은 부모님과 형제, 자매, 선조들을 떠나는 슬픔과 중매한 사람을 욕하는 등 이별의 정을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시집갈 아가씨 혼자서 우는 것도 있고 어머니와 자매들과 같이 우는 것도 있다.투지아쭈(토가족)가 보편적으로 신앙하는 대상은 투왕(土王)으로 촌락마다 투왕의 묘가 있어 매년 봄에는 집단으로 토왕제 의식을 거행 한다. 자연숭배 사상도 있어 매년 사냥시마다 꼭 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종교신앙은 민간 종교(귀신과 조상숭배) 위주이다. 과거에는 토왕을 보편적으로 믿었다. 각 촌 마다 토왕묘가 만들어져 있는데, 매년 봄이면 '제토왕'의식을 거행한다. 이 외에도 사냥을 나갈 때마다 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 등 자연신에 대한 숭배도있고, 도교도 토가족의 종교신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초인은 고신씨(高辛氏)의 후예다.(초는 전통적 동이족 회이족 후예 국가임을 알아야 한민족 대륙사의 뿌리를 빨리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 열린다. 중국의 역사부도에도 초 앞에 "동이東夷"의 "이夷" 자를 덧붙여 이초로 쓰이고 있음을 본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는 “ 동이족 전욱 고양(高陽) 황제의 묘족 후예다.”라고 말하고 있다. 춘추전국시기에 토가족 지역은 초파(楚巴) 두 나라의 교차 지대였다. 비록 파인이 토가족 지역에서 세력이 비교적 컸지만, 토가족 지역에 초인도 진입했다. 게다가 토가족의 여러 부족 중에 초인이 부분적으로 있었다. 다시 말해서, 초인도 토가족의 한 몫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문화의 토가족에 대한 영향은 주로 두 가지 방면에서 실현되었다. 첫째는 토가족이 되었던 초인의 문화 인자가 직접적으로 토가족에게 전달된 것이고, 둘째는 초문화와 토가족을 형성한 파인 문화가 밀접하게 왕래하여 파문화 중에도 초문화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오만(烏蠻)의 선민은 ‘호방(虎方)’의 민족이지만, 오만의 후예 중 하나인 이족(彝族)은 오늘날에 이르러서 오히려 흑호(黑虎)를 토템으로 하고 백호를 경시하여 백호를 쫓는 습관이 있다.<유요한(劉堯漢), 양화삼(楊和森) : 《이족과 토가족이 모두 호 복희에서 기원하다.(彝族與土家族同源于虎伏羲)》에서 《토가족 역사토론회 문집(土家族土會文集)》(내부자료)에 기재됨.>
*토가족의 족원에 관해서는 이전의 학술계에 주로 세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토가족이 고대 파인(巴人)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파인설(巴人說)’이고, 또 하나는 토가족이 고대의 토착(土著)주민을 주로 해 융합한 후에 이 지역에 진입한 파인, 한인(漢人)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 ‘토착설(土著說)’이며, 다른 하나는 토가족이 귀주(貴州)에서 이주해온 오만(烏蠻)을 주로 해 융합한 토착인 파인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오만설(烏蠻說)’이다. 근래에 와서 연구가 깊어지자 갈수록 많은 학자들이 토가족의 기원이 다원적이며, 이는 고대 파인의 한 갈래가 현지 토착인(九黎 東夷系列) 및 이 지대에 진입한 한인, 복인(濮人), 초인, 오만 등의  부족과 융합하여 당(唐)말 5대에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토가족 지역의 파인의 활동 및 파문화의 상황-연구에 의하면 파인은 저강인(氐羌人)의 후예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서남쪽에는 파국이 있는데, 동이족 태호(太暞)가 함조(咸鳥)를 낳고 함조는 후조(后照)를 낳았는데 후조가 파인의 시조가 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파인은 서북지역에서 가장 먼저 생활했고 후에 섬서, 하남에서 호북, 사천으로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파인은 남쪽으로 이주한 뒤 지금의 토가족 지역으로 진입했다.. 이에 대해서는 고고학의 발굴과 사적에서 모두 증명할 수 있다. -



맨 우측이 필자. 가운데가 최문(무한 원임학교 교수) 왼쪽은 사업가 등화청, 우리는 기차에서 만나 무한까지 장장 4시간 동안 역사를 말하며 갔는데 필자가 태호복희와 황제, 염제신농의 역사를 말하며 한족이 염황자손을 일컫고 있으나 뿌리로 치는 황제가 그 실은 동이족이고 요, 순 또한 동이족이라 하여 자세히 그족보를 써 주니 지성인이라 쉽게 이해를 했다. 동이족은  한족의 꺼거(형) 민족이라 하여 한번 꺼거라고 불라 보라 하니 기꺼이 재배하며 꺼거라 부른다. 월드컵 4강의 신화와 엄청난 응원에 대해서와 남북문제, 그리고 등소평, 강택민의 개혁 개방에 대한 정책과 흑묘백묘론 등 안 다룬 주제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나니 쉽게 친해졌다.  


필자가 보기에 지나 대륙에 있는 거의 모든 소수민족은 1만년전 광명제국 환국의 후예로 본류로부터 끊임없이 가지치고 나아가 역사와 더불어 자기동일성이 부단히 침식되고 깎이면서 이질화되어갔다. 그러다 보니 그 족원은 분명히 동방 동이족이면서도 현재에 와서 현지를 가보면 전혀 동질성을 느끼기 어려운 경향이 많다. 그러나 그 족원을 다양하게 추적하면 어느 소수민족이 되었든지 환국의 후예로 귀결된다. 따라서 다양한 색깔을 갖고있는 이들 이질화된 다양한 소수민족은 그 자체의 각론적 추적만으로는 결론 내리기가 어려운듯이 보이지만, 퍼즐게임을 하듯 다양한 이들 소수민족을 펼쳐놓으면 전체의 밑그림이 보인다.

여기 호남성 장자지에(장가계)의 동이 토가족도 환인천제 시대의 동이 환족의 후예가 어떻게 가지치고 나아가 자기동일성이 침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라 보고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어차피 강단사학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의 사학은 민족기원과 영토의 바운더리를 한반도로 한정하는 일제 반도 식민사관이다. 따라서 이들이 이러한 대륙의 소수민족의 올바른 족원이나 우리 민족사관으로 바라보는 지나역사의 친화력있는 정보를 국내에 소개할리 만무하다. 한번은  한민족 대륙사관의 차원에서 필자가 우스개 소리로 호남성 장사의 한 지나인 교수에게 한국의 역사와 중국의 상고역사는 서로 공유하고 있으며 한국사는 꺼거-형님의 역사고 중국사는 띠디-동생의 나라라고 설명해 주니 하오 하며 재배를 하며 웃음을 건네 받은 적도 있지만 사실상 중국의 역사는 춘추전국시절까지만 해도 중국대륙을 석권한 동이족의 다양한 후예들이 아니면 성립할 수 없는 나라다.

미국이 전세계의 백성을 빌려다가 유나이티드로 합중국을 이루어 나라를 이루고 있듯이 중국 역시 상고시절로부터 가지치고 나아간 수많은 한겨레 후손을 지나 합중국의 구성성분으로 삼은 나라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심지어 문화사적 혈통사로 지나대륙의 뿌리를 가장 잘 밝히고 있는 임혜상마저 종족분류를 견강부회하는 측면이 다분히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동이족 혈통을 세탁한 황제헌원만 지나의 조상으로 삼았다가 동이족 염제신농을 넣지않을 수 없어 염제마저 세탁해 염황민족이라 했다가 다시 은나라의 주체세력 동이 묘족의 시조 치우를 안넣으면 중원의 역사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므로 지나 한족의 조상이 염,황,치라 슬며시 변개해 바꾸게 되었으니 결국 순수 쏠리드 동이조상 염제와 치우를 차례로 보태가면서 지나 상고 역사의 족원을 세탁, 보완했는가 하면, 고구려 역사가 지나역사의 일부라는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에까지 손을 대게 된 것이다. 물론 이는 현재 중국이 다양한 소수민족의 독립요구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터에 소수민족중 가장 막강한 후원자를 가지고 있는 동북삼성의 조선족마저 독립을 요구하면 가히 티벳 독립요구, 위그루족 독립요구, 대만 독립요구와 더불어 중국이 자체분해될 소지가 있기때문이다. 그들은 고구려문제가 향후 통일한국의 등장과 더불어 동북아 국제외교 역학문제에 뇌관역할을 할 것임을 내다보고 소위 상고사 차원에서 사전 정지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지나대륙 곳곳에 산재한 고고학 유적지가 동이족 유적지임이 드러나자 동이족이 곧 중화족이라 보는 관점이 대두되게 되었으니 심지어 석학 임혜상같은 이까지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장선으로 보면 동북3성의 조선족은 당연히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구성성분일 뿐이요, 반도의 대한민국도 중국의 일부로 보는 대만처럼 바라보는 지나사관 특유의 견강부회적 사관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측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호남성에 포진하고 있는 주요 동이계열 소수민족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호남성 장자지에(長家界)는 동이 토가족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일찍이 장자방(장량)이 토사구팽의 분위기 속에서 한고조 유방에게 용퇴를 전하고 숨어들어간 곳이라는 것을 밝힌바 있다. 토가족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필자가 호남성에서 구한 향토사료 토가족문제연구 총서 <토가족문화사(土家族文化史)> 단초(段超) 著의 일부분을 발췌해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지나사가의 관점-즉, 중화사관임을 알고 읽어주기 바란다.(안원전)



투지아쮸(土家族)가 사는 호남성 장자지에(장가계) 천자산. 도연명의 무릉도원으로 알려진 곳이다.


어떠한 민족문화의 형성이든 모두 특정한 조건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조건의 유기적인 조합은 이 민족문화의 생성메커니즘을 구성한다. 이러한 생성메커니즘은 매우 폭넓게 이 민족문화의 특징과 발전 과정을 결정한다. 필자는 한 민족문화의 생성메커니즘은 마땅히 이 민족이 생활하는 지리환경. 민족의 기원(族源).인문생태의 세 방면으로부터 고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중 지리환경은 민족문화 생장의 기본 조건이고, 민족의 기원은 이 민족문화의 몇 가지 기본 특징을 결정하며, 인문생태는 민족문화의 발전방향에 영향을 준다.

세 가지가 서로 작용하여 민족문화의 생산․발전에 대해 중요한 영향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토가족 문화의 생성과 발전에 대한 고찰도 반드시 이상의 여러 요인들을 관조해야한다.

지리환경

지리환경은 인류거주지역의 여러 가지 자연 요소들의 총화이다. 우주적인 것, 지질적인 것, 기상적인 것, 수문(水文: 물의 각종변화와 운동현상)적인 것, 지문(地文: 산천, 구릉 등 대지의 온갖 모양)적인 것, 생물적인 것 등등의 조건을 총괄한다. 이것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인류 생활의 유기적 환경으로 생태 계통의 생물 성분 및 기타 유기 물질을 포괄한다. 다른 하나는 인류 생활의 무기적 환경으로 생태 계통의 기후, 토양, 무기물, 지형, 위도, 해발고도 등등을 포괄한다. 무기적 환경은 지질환경과 성간(星際: 별과 별 사이)환경이다. 어떠한 민족문화의 창조든 모두 이 두 부분의 환경요소 속에서 진행된다.

지리환경은 문화의 생성과 발전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준다. 한 방면에서는, 인류 자체가 자연지리환경의 산물로 그 생존과 발전은 지리환경의 제약을 받는다. 다른 방면에서는, 인류 생활에서의 자료를 자연에서 얻고 노동대상도 자연이다. 이 외에, 인류의 모든 활동은 생산활동과 생활활동 및 정치 군사활동을 포괄하며 모두 특정한 지리환경 속에서 진행되고, 또한 이것과 교대로 관계가 발생된다.

지리환경의 문화에 대한 영향에 관하여는 문화지리학파가 상세한 소개를 했고(물론 문화지리학파의 과장된 지리환경의 작용은 잘못된 것이다.) 경전(經典) 작가도 자세한 논술을 전개했다. 마르크스가 고대 아시아의 게르만과 다른 원시관계를 언급할 때 지적하기를, 이러한 구별은 “기후 토양의 물리적 성질에 달려있다. 물리적 조건의 결정을 받는 토양의 개발 방식은 적대부락 혹은 사방의 이웃부락과의 관계 및 이전을 야기하고 역사적 사건 등의 변동을 *야기한다.” 고 했다.  
--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馬克斯恩格斯全集)》제46권, 인민출판사(人民出版社) 1956년판, 제 488쪽.
--

투지아쮸(토가족) 꾸냥

지리환경의 문화에 대한 영향은 여러 방면에서 드러나는데, 한 민족의 생산방식, 생활방식, 민족성격, 사유의 특징, 심미정취 등등은 모두 지리환경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 이로 인해 한 민족문화의 생성메커니즘을 고찰하려면 반드시 그 지리환경에 대해 주의하여 고찰해야한다.

토가족 지역은 중국 남부의 산간지역에 속하는데, 이곳은 숭산(崇山)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하류가 종횡으로 흐르며 삼림이 빽빽이 분포하고 물자가 풍부하다. 이런 지리환경은 토가족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쳤다. 아래에서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분석을 진행했다.


호남성 장가계(장자지에)의 아름다운 풍경

지리환경

토가족은 상악(湘鄂) 투검(渝黔)의 교차지역에서 생활했다. 이 지역은 지리적 위치상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

(1) 전국의 중심지대다. 토가족 지역은 전국의 중심적 위치에 있는데, 그 북부는 하남(河南), 섬서(陝西),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이고, 남부는 호남(湖南), 광서(廣西), 광동(廣東)이며, 동부는 악동(鄂東), 상동(湘東), 안휘(安徽), 강서(江西), 복건(福建), 절강(浙江)이고, 서부는 사천(四川), 감숙(甘肅),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이다. 중국의 동서남북 거리에서 기본적으로 비슷하게 떨어져 있다. 장(壯)족, 위구르(維吾爾)족, 몽고(蒙古)족, 티벳(藏)족, 묘(苗)족 등의 소수민족과 서로 비교하면, 이는 중국의 변경도 아니고 외국과 접경도 아닌 중국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백만이 넘고 국경을 걸치지 않는 소수민족이다.

(2) 고대 중원(中原)과 서남(西南) 사이의 통로다. 중국 고대에 중원이 서남으로 진입하고 서남이 중원으로 진입하던 도로는 모두 반드시 토가족 지역을 거쳐야 했다. 중원이 서남으로 진입하던 도로는 구체적으로 세 곳이 있었다. 하나는 토가족 지역을 거쳐 귀주(貴州)를 지나 서남으로 진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토가족 지역으로부터 호남(湖南)을 거쳐 서남으로 진입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토가족 지역을 통과하여 사천(四川)을 거쳐 서남에 진입하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토가족 지역은 또한 서북 각 민족이 중원, 동남, 남방으로 진입하던 지름길이었다. 역사의 기록에, 토가족 지역은 “바깥은 기협(蘷峽)으로 덮여 있고, 안은 시내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길은 험하여 다니기가 어려웠고, 만(蠻)과 료(僚)가 섞여 거주했고 파촉(巴蜀)으로부터 형초(荊楚)를 굽어보는 것으로 항상 이로써 특별함을 자아내는 *곳이다.”
--
  *도광(道光)의 《시남부지(施南府志)》 권2.
--

몽고의 귀족이 전국을 통일할 때, 일찍이 사천지방을 우회하고 양양(襄陽)을 공격하여 취하고 토가족 지역의 북부를 거쳐 호광(湖廣), 화남(華南), 화동지역으로 진입했다. 토가족 지역이 바로 서북에서 동남으로 진입했던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몽고 병사의 남하를 막기 위해 송(宋)나라 정부가 토가족 지역에 병사를 배치하여 방어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사적(史蹟)에 명확한 기록이 있다.: “송말(宋末)에 몽고의 타하이(搭海)가 촉(蜀)에 들어 가, 형호사(荊湖師) 맹공(孟珙)이 병사를 보내어 시주(施州)에 주둔할 준비를 했다. 또 몽고병이 만주(萬州: 지금의 사천 만현(萬縣)임) 호탄(湖灘)을 건너, 시(施), 기(夔)가 진동하고 시(施),기(夔)의 안과 밖의 큰 강을 압도했고, 팽수(彭水)를 근원으로 하여 나오는 청강(淸江)과 중간에는 위경(衛境)을 관통해서 이릉(夷陵) 의도(宜都)에서 큰 강으로 합쳐지기까지를 빠른 길과 *지름길로 했다.”
--
*도광(道光)의 《시남부지(施南府志)》 권2.
--


장가계

(3) 장강(長江)의 경과 지역이다. 장강은 고대 중국 교통의 대동맥이며 동시에 고대 중국의 문화교류의 대통로로, 화서(華西), 화중(華中), 화동(璜) 세 구역의 문화가 장강을 통해 서로 유통되었으며, 장강의 줄기를 따라 있는 각 민족과 각 지역이 장강을 통하여 끊임없이 문화교류를 진행하고 있었다. 장강은 토가족의 북부지역을 통과하며 토가족 지역의 수많은 하류도 장강과 서로 통한다. 토가족 지역의 수많은 작은 계곡이 청강(淸江), 유수(酉水), 오강(烏江), 무수(武水), 누수(漊水)로 흘러 들어가고 오강, 청강은 장강으로 직접 흘러 들어간다. 또 유수, 누수, 무수는 원강(沅江)을 통해 장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토가족 지역은 장강을 통해 자신을 기타 지역과 소통할 수 있게 했고 경제문화 교류를 진행했으며 이런 형세는 토가족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4) 한족지역과 직접 교차하고 중원과 서로 이웃하고 있다. 토가족 지역의 삼면이 한족지역과 접경하고 있는데, 동부는 호남의 원(沅), 진(辰), 상(常) 등 한족지역과 서로 접하고 있고, 남부는 호남의 장사(長沙) 형양(衡陽) 등과 서로 이웃하고 있으며, 북부는 하남, 섬서 한족 지역과 접하고 있고 오직 서부만이 서남의 각 소수민족과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토가족 지역은 중원과 거리가 매우 가까운데 이런 지리적 위치는 토가족 문화와 한(漢)문화의 교류에 매우 유리했다.

토가족이 처한 상술한 지리적 위치는 그 문화의 발전에 아래와 같은 영향을 주었다.:

첫째, 토가족 문화와 한족문화의 교류가 편리하고 빈번하게 했다.

한 방면으로는, 토가족이 한족과 직접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토가족 문화구와 한족 문화구는 직접적으로 서로 연결된 두 문화구라 할 수 있다. 문화학 이론에 의하면, 서로 이웃한 문화구의 문화는 가장 유동하기가 쉽다. 이것은 토가족 문화와 한족문화의 교류가 쉽게 발생되고 두 문화교류의 강도가 커지도록 했다.

일종의 높은 위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문화인 한족 문화는 줄곧 토가족 지역으로 흘렀다.(물론 토가족 문화도 한족지역으로 흘렀다.) 두 지역의 거리가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한족지역에서 발생된 문화 정보는 비교적 빠르게 토가족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게다가 문화 전파 과정 중에 정보 유실이 적고 변이 요소도 적었다.

이 역시 토가족이 비교적 빨리 그리고 비교적 많이 한(漢)문화를 받아들였으면서도 그 민족의 부분 특징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다. 토가족과 서로 비교하면 한족문화권과 직접적으로 접해있지 않은 그런 소수민족은 한족문화와의 교류 강도가 다소 약하며 한족문화의 토가족문화에 대한 영향은 한문화권과 직접 접해 있지 않은 소수민족의 영향보다 더 크다.

또 다른 방면에서는, 토가족 지역이 중원과 서남을 연결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중원지역과 서남지역을 서로 왕래하려면 토가족 지역을 지나야 했고, 문화교류의 통로인 장강은 토가족 지역을 통과하는데, 이 역시 토가족 문화가 한족 문화와 교류할 수 있는 더욱 많은 기회를 주었다.

둘째, 토가족은 기타 소수민족 문화와의 교류가 빈번했다.

토가족 지역은 서남에서 중원으로 진입하는 통로였기 때문에 서남의 소수민족이 중원과 연계할 일이 생길 때 모두 토가족 지역을 거쳤는데 이 역시 토가족이 서남의 각 민족과 관련을 맺을 수 있는 비교적 많은 기회를 얻게 해주었고 토가족 문화가 서남의 여러 소수민족 문화와 교류하는데 유리하게 했다.
--


참고:토가족 이해를 위한 개관으로 필자가 과거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30대 초의 교원대 송호정에 대한 댓글 기사를 올려본다
  
“단군조선은 신화 영역, 역사 연구 대상은 아니다”는 반민족 송호정기사를 보고....

본인은 한민족 대륙상고사학과 관련해 주로 대륙의 사료만 보는 사람이라 국내의 주장을 일일이 살피지 못하고 있는데 근자에 강단사학파의 신예 송호정의 주장이 인터넷에 난무해 이곳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송호정의 논문을 자세히 살피지 못해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그의 정통 식민사학의 학맥, 이병도-김철준-노태돈-송호정 등의 맥으로 보면 그의 전형적인 반민족적 단군사관을 헤아림직하다. 디지털 시대에 발전적 사관을 펴도 민족에 누가 될터에 네가티브한 반골 학문을 편다는 것은 학계의 연구반경을 넓힌다는 무한한 학문자유의 만끽과 민족정사확립차원에서 반면스승으로서의 귀감 외에는 무슨 도움이 될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상고사학으로 들어가면 우리 피붙이의 종족 이름이 매우 다양해 이들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고고학적 계통을 확실히 파악하지 않으면 거란을 다른 종족으로 파악하기 쉽고 하다못해 만주족은 물론이고 양자강 중류의 초나라와 양자강 하류의 월나라가 동이족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종족으로 치부하기 쉽상이다. 혈통적으로 보면 연나라가 동이족인데 정치적 국가형성의 칸셉으로 대하여 우리와 연이 전쟁을 벌였다 하여 이민족으로 치부한다면 병자, 정묘호란을 빌미삼아 만주족을 이민족시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산서성의 삼진이 동이족임은 춘추전국의 6국과 전국 7웅이 동이족임을 파악하면 고구마 줄거리를 캐면 상고 대륙사가 줄줄이 고구마 뿌리캐지듯 캐지는 것인데 이는 국내 사료를 가지면 절대 캘 수 없고 대륙의 향토사료를 연구해야 가능한 것이다. 혈통적인 뿌리캐기는 석학 임혜상 이상으로 연구한 사람이 대만 중국을 통틀어 없다. 임혜상은 양자강 뿐 아니라 황하의 주인공이 바로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으며 동이 제 족은 수많은 종족명으로 대륙 전체를 석권했음을 밝히고 있는 바다. ( 무시해서 미안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노태돈이나 송호정이 평생을 공부해도 그 연구성과가 서량지나 임혜상의 발바닥도 못가리라 확신한다. Anyway)

동시에 서량지는 고고학적 차원에서 임혜상의 문화인류학적 종족 계통의 분류에 대해 뒷받침하고 있는바 이들의 사관은 지금 서울대 등 일제 식민사관의 전수자들인 이들 다 낡아빠진 강단사학파들이 부정하는 환단고기 등의 사료를 불변의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못믿으면 읽어보라. 맹장불여 지장이요 지장불여 덕장이요 덕장불여 운장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의 사학은 죽어있다. 한국의 사학은 일제 식민지 연장선 속의 반도사학으로 매몰되어 고고학을 해도 우물안의 반도 고고학일 뿐 대륙고고학이 없다. 그러니 다양한 이름으로 대륙 전체에 산재한 동이 제족의 분류를 이민족으로 치부한다. 반도사학의 병폐는 이미 첫 출발점부터 정도에서 벗어나 산지 사방으로 흩어지는 오합지졸의 반민족적 학문적 성취-아무데나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오물같은 똥을 내리깔기는 것과 같다.

비록 반민족적 패역사관이라 할지라도 머리좋은 학자는 학문의 자유로운 영역확장에는 기여하겠지만 역사왜곡의 논조를 고도의 학문적 논리로 비벼놓아 철옹성을 만들어 놓으면 특히 역사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조용히 살아가는 서민중생의 값어치보다 그 삶이 못한 것이다. 지장불여 덕장이니 지장이 이러한 머리좋은 패역사관의 학자라면 덕장은 머리는 모자라나 죄는 짓지 않고 사는 범인이다. 사관이 잘못서면 천재 이완용이 처럼 나라도 말아먹고 민족도 팔아 먹는다.

이완용도 민족을 위한다고 생각하며 친일을 했고 고종을 협박해 나라를 넘겼다. 학문은 자유다. 그러나 학문에는 책임이 따른다. 특히 사학을 다루는 학자는 민족의 굴레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송호정은 대한민국 최고학부의 박사를 받았다 하니 그 사학적 내공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화, 세계화 시대에 서울대는 세계 100위권 안팎으로 서있는 보잘것없는 대학으로 국내에서만 그 권위를 지키고 있는 정저지와에 불과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며 일제교육잔재의 무한정 경쟁, 주입식 획일교육의 병폐로 교육이 무너진 시점에서 과대포장된 감이 없지 않다. 일제 식민사학의 청산은 이제 친일 수구파가 철퇴를 맞은 새 시대를 맞아 이들 반민족적 사관을 옹호하는 매국학자들을 학계에서 몰아내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민족의 역사왜곡과정과 수탈의 역사를 상기해 본다면 그들은 이미 학술토론을 해야할 t상대로서의 학자가 아니다. 이제는 역사정립을 위해서나 민족정기 수립을 위해서나 학계에서 영구히 쫓아내야 할 대상이다. 그것이 민족적 정의이며 공의이다.

참고)
*「환단고기」<태백일사>는 정 강성(鄭康成)이 5경을 논박해 이의를 제기해 말하기를 황제의 희(姬) 씨 성은 염제가 하사한 것이라 했다. 황보밀(皇甫謐)이 「제왕세기」에서 말하기를 황제는 유웅(有熊)씨인 소전(少典)의 아들 희(姬)씨 성이라(헌원의 후예로 황제헌원이다), 그 선조는 곧 염제의 어머니 집안인 유교(有喬)씨의 장녀로 소전의 가문과 혼인한 고로 「국어(國語)」에서 병칭했다. 이에 신농씨 말기에 유웅씨로부터 나라를 받아 헌원의 땅에 살았다.
「죽서기년」의 황제헌원 파트를 서술한 뇌학기는 이를 근거로 하여 황제는 신농의 모제(母弟)의 후예 소전의 임금 자손이며, 후일 염제(炎帝)대에 유웅(有熊)에 봉해져 희(姬) 씨를 사성 받았다고 말한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염제신농씨는 강씨 성이라. 어머니는 임사(任 )라 하였는 바, 유교(有 )씨의 여식(女息) 등(登)으로 소전(少典)의 비(妃)가 되었다. 화양(華陽)에 유(遊)할쎄, 신룡의 머리가 있어 이에 감응해 염제를 낳았더니, 몸은 사람인데 머리는 소로 오랫동안 강수(姜水)에 머물러 살았다."고 하였고,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소전(少典)의 비(妃)는 안등(安登)이니, 화양(華陽)에 유(遊)할쎄, 신룡의 머리가 있어 상양(常羊)에 감응하여 신자(神子)를 낳았으며, 인면용안(人面龍顔)으로 밭가는 것을 좋아했으니 곧 신농(神農)이다"고 했다. 「일주서(逸周書)」<고덕편(考德篇)>에 "작도야근부(作陶冶斤釜), 위뢰사누(爲   : 쟁기 뢰, 보습 사, 김맬 누.)라 하였고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신농이 밭갈고 도자기를 만들었다(神農耕而作陶)"라 했고, 「광운(廣韻)」에 "신농이 와기를 만들었다(神農作瓦器)"라 했고, 「물원(物原)」에 "신농이 옹기를 만들었다(神農作甕)"이라 했다. 복희로부터 신농에 이르는 세석기 회도문화의 주인공임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필자의 기억에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비롯 어떠한 사료에도 배달 환웅국의 성씨에 대해 언급한 것은 없다. 그러나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神農亦世及之君末帝楡罔時同姓黎君蚩尤作亂'이라 해서 14세 환웅인 치우천왕이 신농씨의 나라와 성씨(姜)가 같음을 말하고 있다.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신농의 도를 추종하는 무리가 있음은 「맹자」에도 보이고 있거니와, 「환단고기」에 5세 태우의 환웅의 12째 계자로부터 풍씨 성이 시작되었고, 또한 9세 안부연 환웅때 소전으로부터 그 아들 신농에 이르러 비로소 강수의 강(姜) 성이 시작되었으니, 유망은 비록 강씨 성의 적장자이자 신농의 후예였지만 배달 환웅국에서 가지치고 나아간 일개 제후국으로 모국이자 형제국인 배달국을 쳤다가 다시 황제와 싸워 패망하니 동족인 치우천왕이 복수전을 치른 것이 바로 유명한 탁록과 판천전투이다.

*주나라의 뿌리는 「시경」의 대아(大雅)편 면( )에 잘 소개 되어있다. 이 기록은 지나족이 자신들의 뿌리로 삼고 있는 주 왕실의 뿌리 문왕의 시조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바로 동이족인 신농씨의 강(姜)씨 처녀와 결혼해 자손을 번창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공단보께서 어느아침 말을 달려 기산 밑에 이르러 강녀와 함께 살림을 차렸다(古公亶父 來朝走馬...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저강( 羌)계는 장(藏)족을 이루고 있는 제 1의 기원민족이자 근간민족인데(신농씨 직계후예임은 앞서 말한 바 있을 것이다) 은나라 때부터 기록에 보이고 있으며, 춘추시대의 서융(西戎) 대도(大都)가 곧 이 부족이다.

*태행(太行) 산맥을 중심으로 서는 산서(山西) 동은 산동(山東)이다. 산서성(山西省)은 춘추시대의 진(晋) 왕조의 발흥지로 뒤에 전국시절, 한(韓), 위(魏), 조(趙) 3국으로 나뉘어 소위 3진(晋)의 시대를 연다. 산동이 전통적 동이족의 근거지로 동이족 은(殷)의 영향권에 속하고 주의 제후국 백금의 노나라가 있던 곳이라면 산서 역시 동이족에 뿌리를 대고 있는 요(堯), 순(舜),우(禹)가 근거한 동이족의 근거지였다. 장량과 한신이 바로 이 3진(晋) 가운데 한(韓)의 후예니 한(韓)은 환단의 동이겨레 고유의 명칭이었으니 한신이 처음 초패왕 항우에게 간 것은 초(楚)나라가 전통적인 동이족 국가였기 때문이었다.(안원전) 또 <삼성기전>이 서술하고 있듯이 진시황 정(政)을 친 것은 장자방(장 량)이 개입된 동이족 한(韓)족으로, 정(政)이 그 황실(瀛씨 성)과 혈통(신농씨 姜씨 성의 후예 呂씨 성) 모두 동이족이었으나 장성을 쌓아 중원대륙을 석권하고 있던 동이 제 족을 압박하고 동족인 모든 동이 제 족을 흩어 민호(民戶)로 삼아 한족(漢族)화 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동이 제 족의 반발을 샀다. 뿐만 아니라 「북사(北史)」에 포함되어 있는 북주(北周)왕조 역시 우문(宇文)씨에 의해 개국되었는데,「북사(北史)」는 우문(宇文)씨를 염제의 후예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능히 우리 핏줄 국가임을 알 수 있으며 , 모용(慕容)씨 또한 동이족의 하나인 선비족 출신으로 중국에 들어가 5호16국의 하나인 연(燕) 왕조를 열었으니 연(燕) 또한 우리 핏줄 국가가 아니라고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이상 안원전)

):「시경(詩經)」<상송(商頌)․현조(玄鳥)>에 설명하기를:“하늘이 현조(玄鳥)를 명해 내려가 상(商)을 낳게 하다(天命玄鳥,降而生商)”, 연(燕)이 곧 현조(玄鳥)니, 고대 선주민(先民)인 동이족은 새(鳥)를 사랑해 부락 도등(圖騰:부대 상징깃발)으로 삼았다. 지금의 북경(北京) 옛 칭호는 바로 “연(燕)”이라 칭했으며, 북경 뒷 산맥을 칭해 “연산(燕山)”이라 불렀으니 이는 바로 아주 먼 옛날에 연(燕)의 자족(子族)이 남쪽으로 이동한 것과 관련이 있으니 이 모두 동이족의 중심무대라 할 수 있다. 주나라의 뿌리는 「시경」의 대아(大雅)편 면( )에 잘 소개 되어있다. 이 기록은 지나족이 자신들의 뿌리로 삼고 있는 주 왕실의 뿌리 문왕의 시조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바로 동이족인 신농씨의 강(姜)씨 처녀와 결혼해 자손을 번창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공단보께서 어느아침 말을 달려 기산 밑에 이르러 강녀와 함께 살림을 차렸다(古公亶父 來朝走馬...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저강( 羌)계는 장(藏)족을 이루고 있는 제 1의 기원민족이자 근간민족인데(신농씨 직계후예임은 앞서 말한 바 있을 것이다) 은나라 때부터 기록에 보이고 있으며, 춘추시대의 서융(西戎) 대도(大都)가 곧 이 부족이다. 태행(太行) 산맥을 중심으로 서는 산서(山西) 동은 산동(山東)이다. 산서성(山西省)은 춘추시대의 진(晋) 왕조의 발흥지로 뒤에 전국시절, 한(韓), 위(魏), 조(趙) 3국으로 나뉘어 소위 3진(晋)의 시대를 연다. 산동이 전통적 동이족의 근거지로 동이족 은(殷)의 영향권에 속하고 주의 제후국 백금의 노나라가 있던 곳이라면 산서 역시 동이족에 뿌리를 대고 있는 요(堯), 순(舜),우(禹)가 근거한 동이족의 근거지였다. 장량과 한신이 바로 이 3진(晋) 가운데 한(韓)의 후예니 한(韓)은 환단의 동이겨레 고유의 명칭이었으니 한신이 처음 초패왕 항우에게 간 것은 초(楚)나라가 전통적인 동이족 국가였기 때문이었다.(안원전) 또 <삼성기전>이 서술하고 있듯이 진시황 정(政)을 친 것은 장자방(장 량)이 개입된 동이족 한(韓)족으로, 정(政)이 그 황실(瀛씨 성)과 혈통(신농씨 姜씨 성의 후예 呂씨 성) 모두 동이족이었으나 장성을 쌓아 중원대륙을 석권하고 있던 동이 제 족을 압박하고 동족인 모든 동이 제 족을 흩어 민호(民戶)로 삼아 한족(漢族)화 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동이 제 족의 반발을 샀다. 뿐만 아니라 「북사(北史)」에 포함되어 있는 북주(北周)왕조 역시 우문(宇文)씨에 의해 개국되었는데,「북사(北史)」는 우문(宇文)씨를 염제의 후예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능히 우리 핏줄 국가임을 알 수 있으며 , 모용(慕容)씨 또한 동이족의 하나인 선비족 출신으로 중국에 들어가 5호16국의 하나인 연(燕) 왕조를 열었으니 연(燕) 또한 우리 핏줄 국가가 아니라고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이상 안원전)





29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5-상원부인(上元夫人)과 종요  안원전   2004/03/22  6002
29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4-수신(水神) 공공(共工)의 아들 토지신(土地神)과 주원장  안원전   2004/03/22  6852
29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3-조왕신(竈君)의 기원,삼국시대 위(魏)나라 세양(細陽) 사람 장단(張單)  안원전   2004/03/16  5502
28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2-남송(南宋) 항금(抗金)의 영웅인 악비 수하의 맹장 우고(牛皐)와 성황신(城隍神)  안원전   2004/03/16  6725
28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1-도신(濤神)이 된 절강성 항쪼우(항주) 전단강의 오자서  안원전   2004/03/15  6196
28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50-탑을 받쳐 들고 있는 이천왕(李天王)  안원전   2004/03/12  4926
28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9-서왕모(西王母) [1]  안원전   2004/03/12  6194
28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48 남천문 현판과 왕희지 시절에 만들어진 옥황대제 신화  안원전   2004/03/11  5579
28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7 동이족 복희(伏羲)와 여와(女媧)가 낳은 딸 낙신(洛神) 신화  안원전   2004/03/11  6188
283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6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8-한족 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3/11  6030
282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5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7-토가족 문화생태, 동이 묘족(苗族) 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2/16  7760
281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4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6-동이 초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2/06  6731
280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3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5-중원 동이족 문화의 영향  안원전   2004/02/05  9581
279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2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4-파문화의 토가족 문화에 대한 영향  안원전   2004/01/27  7726
278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1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3-토가족 족원(族源) 및 선민(先民)문화  안원전   2004/01/27  7245
277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40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2-기후,지형과 지모(地貌) 및 식생과 동물 [1]  안원전   2004/01/27  7169
   안원전의21세기 담론 239 국내 최초 소개 특별기획 시리즈- 대륙 향토사료로 뿌리가 동이계인 동이 토가족을 들여다 본다.1-토가족(土家族) 문화의 생성메커니즘  안원전   2004/01/27  7799
27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8.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3  안원전   2004/01/18  7152
27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7.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2  안원전   2004/01/18  6307
273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6.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1  안원전   2004/01/18  6285
272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5.상고 대륙사에 있어 동이 한겨레의 봉황(鳳凰) 토템(圖騰)에 대해 말한다  안원전   2003/12/19  7830
271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4. 황제헌원과 용의 미스터리-동이(東夷), 서하(西夏)적 용봉 2원 연맹  안원전   2003/12/03  7825
27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3. 용숭배는 실제로 뱀숭배, 동북아, 모스코우(墨西哥), 에티오피아(埃塞俄比亞), 희랍(希腊), 남아프리카(南非), 미주(美洲)에 있는 씨족의 뱀숭배&“영사(迎蛇)”일의 “뱀맞이 굿모임(迎蛇賽會)”  안원전   2003/12/01  7116
269    담론 232.초(楚)의 선족(先族)은 동이족 축융씨(祝融氏)와 「상서요전」에 등장하는 ‘주호웅비(朱虎熊羆:큰 곰 비)’의 이면적 실체, 흑호(黑虎)씨족의 쓰촨(四川) 냉산(冷山) 이(彛)족은 동이족 신화 반왕(盤王)< 高辛王 세째딸과 부마 반왕(盤王)의 전설>가짐  안원전   2003/11/19  8179
26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1순(舜)은 동이 인을 데리고 흑도 문화를 창조했으며, 이들은 동이 인으로 흑도 문화를 계승해 이어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초궁초득(楚弓楚得)'  안원전   2003/11/10  7909
267    담론230. 대하(大夏)인이 전파한 채도문화&채도문화는 동이민족의 기반 위에서 혼혈과정에 뿌리내린 것. (은(殷)말 주(周)초 서하(西夏)와 한고조 유방의 한족 실마리(왕국유) 상족(商族)의 기원,서북방(전통적) 동방(근대) 기원설  안원전   2003/10/28  7853
266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3-천신(天神)의 아수(啞水: 마시면 벙어리가 되는 물)-동물이 말을 못하게 된 기원 [이족(彝族)]  안원전   2003/10/02  8344
265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2-호랑이의 전설 [나시족(納西族)]  안원전   2003/09/29  6982
26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1-도기 제작과 면화 재배의 기원 [한족(漢族)]  안원전   2003/09/25  6473
26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0-노황(蘆笙: 갈대로 만든 생황, 묘족과 동족(侗族)이 주로 쓰는 취관 악기의 일종)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5  6801
26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9-신의(神醫) 시사의(侍司懿)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5  5953
261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8-닭, 오리, 거위의 유래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2  6617
260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7-사지고미(沙地古咪)가 찾은 식량의 종자(糧種)  안원전   2003/09/22  6229
259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6-우(禹)의 탄생 신화[동이족)]  안원전   2003/09/19  6502
258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5-하우의 부친 곤왕(鯀王)의 치수  안원전   2003/09/19  6023

[1][2][3][4][5][6][7] 8 [9][10]..[16] [NEXT]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