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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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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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8.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3
*간체깨져보일 경우 위에 첨부한 파일 참고할 것



호남성 주주시내의 대형 염제신농 동상


옛 성인 염제(炎帝)의 강역-영남(嶺南-광동,광서)

일대로부터 하북河北 북부,산동성 서부 양곡(陽穀),

삼위 감숙 돈황까지 아우르는 대 제국


  

  염제(炎帝)신농씨(神農氏)는 중화민족에게 한 제일 큰 공헌은 경작농업(耕作農業)을 발명한 데에 있다. 당시에는 각박한 자연 조건 아래서, 반 정착 이주 농업 생활을 하였다. 그들이 이주하는 노선은, 위수(渭水)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갔고, 황하(黃河) 이남의 평원지대(平原地帶)에 이르렀다. 이 곳의 기후는 따뜻했으며, 강수량이 많아서, 원시농업(原始農業) 발전에 최고로 적합하였다.

이런 이유로, 염제(炎帝)신농씨(神農氏)가 농경(農耕)을 생존의 주요수단으로 삼았고, 이 때문에 부족은 점차 번성하여, 제일 먼저 정착의 부락집단을 형성하였고, 초도진(初都陳:지금의 하남 유양현), 후천로(後遷魯), 도곡부(都曲阜)의 도성(都城)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는 일찍이 남쪽으로는 교지(交趾 : 지금의 영남(嶺南-광동,광서)일대를, 북쪽으로는 유도(幽都:지금의 하북河北 북부)를, 동쪽으로는 양곡(陽穀:지금의 山童산동 서부), 서쪽으로는 삼위(三危:지금의 감숙甘肅 돈황敦煌일대)의 중국 일대의 반을 관할하였다.

근래 실제적인 고증에 의하면 염제(炎帝)의 후예들은 확실히 이 지방에 도달하였고, 대량의 쟁기와 곡물들이 잔존해 있으니, 유력하게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 및 그 후예들의 사실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 재위 기간과 전해지는 연대에 관해서는, 역사서 기록이 일치하지가 않는다. 비교적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기록은, 염제(炎帝)가 일백 이십 년을 재위하였고, 7대를 전하여 신농(神農)의 호를 세습하였으니, 삼백 팔십 년으로 계산된다. 장사(長沙) 차향(茶鄉)의 끝(지금의 호남湖南 주주시株洲市 염릉현炎陵縣 서쪽)에 장사를 지내었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 근거하면 신농씨(神農氏) “일백 이십 여 년 재위하고 돌아가시어, 장사(長沙)에 장례를 치르고, 분씨(奔氏), 수씨(水氏) 여자를 수장하였다. 새로운 황제가 우두머리가 되면 그 다음 황제는 계승하고, 다음 황제는 밝게 빛나며, 다음 황제는 똑바르며, 다음 황제는 악하며, 다음 황제는 더욱 기만하니, 다하여 오백 삼십 년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심분람(審分覽), 진세편(鎮勢篇))》에서는, 오히려 “신농(神農) 17대가 천하에 있었다.”말한다. 바로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가 17대를 전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가 처한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아주 멀고 정확하고 적절한 문자 없이 고증하려니 단지 오래된 잡다한 이야기로 고증에 대비할 수 있을 뿐이다.


염제(炎帝) 천하 최초의 업적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는 중화(中和) 민족(民族) 문명 지혜의 선구이며, 고대(古代) 선진(先進) 생산능력의 대표이며, 또한 화하(華夏) 민족의 발달 제 1의 위대한 발명가,실천가와 창업 영수(領袖)이고, 중화(中華) 민족(民族)의 번영 발전에 중대한 공헌을 했다. 역사자료(史料)에 와 고고(考古) 발표에 따르면, 그는 백성을 이끌고, 백성을 가르쳐 농경(農耕)을 개척하였고, 인류 생존의 필요성에 의거하여, 여러 방면, 여러 단계의 탐색을 진행하여, 상고(上古) 사회 생활의 형태와 방식을 변혁함으로써, 상고(上古) 원시인(原始人)들로 하여금 매우 그 안 좋은(惡劣) 자연조건 아래에서, 자연생활필수품을 이용하여, 생존 공간을 개척하였고,, 많은 “천하에서 가장 이른(敢爲天下先)” 업적을 창조하였다. 오늘날 각 직업의 원류(源流)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두 염제(炎帝)의 발명하고 창조한 중에 얻은 답안이라고 할 수 있다.

농경을 처음으로 시작하고, 농사의 기초를 다지다.

《주역(周易) 계사하(系辭下》에 따르면 : “포희씨(包羲氏) 후에, 신농씨(神農氏)가 만들었다. 나무를 패서 사(耜: 고대 농기구로 삽鍬과 비슷함)를 만들고, 나무로 가래쟁기를 만들고, 쟁기굉이를 이용하였고, 천하를 가르침으로써, 많은 이익을 얻었다.”라고 기재되었다. 이 설명은 신농(神農)이 쟁기를 만들어 널리 보급하여 사용하게 하고, 농업생산의 발전을 극대하게 촉진시켰다.



《풍속통의(風俗通義)》에는 : “신농(神農)은 지력을 강화시켜 곡식(穀)과 야채(疏)를 심었다. ”고 기재했다. 《국어(國語) 노어상(魯語上)》에서는 : “석렬산씨(昔烈山氏) 그가 갖고 있는 천하도 …… 온갖 곡식(穀)과 온갖 야채(疏)를 심을 수 있다”고 이르렀다. 야채(疏)는 보통의 채소(蔬)를 말하는데, 즉, 채소(蔬)란, 배추, 비름과 같은 것이다.《炎陵志》는 《考古原始》를 인용하여 : 신농(神農) 시대에, 염제(炎帝)는 “호미를 만들어, 야채를 가꾸고, 백성들에게 박과(瓜),라(蓏:박과 식물의 열매)를 뿌리는 것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박과(瓜)란 즉, 과채(瓜菜)를 말하는데, 동과(東瓜 : 박과에 속하는 일년생 만초, 열매는 수박 비슷한데 맛이 좋음. 호박(南瓜),오이(黃瓜) 등을 말하고 ; 라(蓏:박과 식물의 열매)는 식물의 열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복숭아(桃), 오얏(李), 배(梨), 귤(橘), 유자(柚), 비파(枇) 등 같은 것이다.  염제(炎帝)가 살아 있는 시대에, 선민(先民)들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을 몰랐다. 미곡(米穀)이 중요한 식량인 줄을 모르고, 다만 각종 초목(草木)의 열매들을 따서 먹는 것을 알 뿐이었다. 염제(炎帝)는 홀로 혜안(慧眼)을 갖고 있어서, 곡식을 심는 것을 처음으로 제창하였다.

고대서적(古籍) 《주역(易)》에서는 : 염제(炎帝)는 “천하에서 처음으로 곡식을 심는 것을 가르쳤다(始教天下種穀)” 라고 이르렀다. 《관자(管子) 경중융(輕重戎)》에서는 “염제(炎帝) 신농(神農)은 기산(淇山)의 양지바른 곳에 오곡(五穀)을 심어, 구주(九州 : 옛날 중국의 9개 州의 행정구역)의 백성들이 그제서야 비로소 곡식(穀食)을 알았다.”고 말했다.

《신어(新語) 도기편(道基篇)》에서는: 옛날에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피를 마셨다(民人食肉飲血).”, 염제신농(炎帝神農)은 “기어다니는 벌레와 돌아다니는 짐승으로 백성들을 먹이기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구하고, 온갖 풀의 열매를 맛보고, 시고 쓴맛을 관찰하여, 백성들에게 오곡(五穀)을 먹게 가르쳤다.” 무엇을 오곡(五穀)이라고 일컫는가?



  복희가 그렇듯이  염제는 태양신이었다. 광명제국 환국의 후예 광명 배달국의 복희와 신농은 광명이세의 개천이념을 편 단군조선의 조상다운 빛의 신, 광명의 신인 태양신이었다. 이 태양신은 중동으로 흘러 들어가 마르둑크 태양신과 미트라 태양신으로 모습을 바꾸고 애굽으로 들어가  아톤신으로 변형된다.동이족이 태양신인 증거는 양자강 하류 전통적 동이족 국가 월나라 수도였던 항주 아래 샤오싱의 하모도 유적지만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다. 하모도 유적지는 아예 동이족의 상고유적지라는 제하에 태양신의 유적지라 이름부쳐놓고 있다.

《주례(周禮)․천궁(天宮)․질의(疾醫)》에서는 : “다섯 가지 맛(五味),다섯 가지 곡식(五穀),다섯 가지 약(五藥)으로 그 병을 다스린다.” 정현(鄭玄)에는 “오곡(五穀)은 마(麻),수수(黍),좁쌀(稷),보리(麥),콩(豆)을 말한다.”라고 기재했다. 《맹자(孟子) 등문공상(滕文公上》에서는 :“ 오곡(五穀)을 심다”고 했다. 조기(趙歧)에는 “오곡(五穀)은, 벼(稻),수수(黍),좁쌀(稷),보리(麥),콩(菽)이다.”라고 적혀있다.

콩(菽)은 또한 콩류(豆類)의 총칭(總稱)이다. 그 외에도 《소문(素問) 장감법시론(藏敢法時論)》에서는 : “五穀은 기르는 것이다.”라고 했고, 이것은 멥쌀(粳米),팥(小豆),보리(麥),대두(大豆),노란 수수(黃黍)를 가리킨 것으로 생각된다. 무릇 이러한 각 종류는, 한 두 가지가 아니고 매우 많았다.
  재배업의 발달에 따라서, 사람들의 음식물이 남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신농(神農)은 야생의 돼지(豬),개(狗),새(鳥),소(牛),닭(雞)을 사람이 사육하게 하고, 또한 사람의 육식(肉食)으로 삼고, 또한 길들여진 그 가축의 노동력으로 사람에게 봉사하고, 그것은 곧 가축의 노동력으로 농사를 짓는 것을 출현하게 했다.

고대서적(古籍) 《논형(論衡》에 염제(炎帝)시대에는, 신농(神農)은 “말의 똥을 끓여 그 즙으로 곡식을 심은 사람으로, 벼로 하여금 벌레가 먹지 않도록 하였다”, 이것은 바로 당시의 축목(畜牧) 사양업(飼養業)의 모습이었다. 식물을 심고, 가축을 기르는 것을 현재 농부업(農副業)이라고 통칭(統稱)한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로 염제(炎帝)가 농경(農耕)의 시대를 시작한 것을 말한다. 문헌(文獻)에서도, 신농(神農)시대의 많은 유적․유물 또한 증거가 된다.

서안(西安) 반파(半坡) 유적은 바로 당시의 곡식껍질과 채소․열매씨앗이 출토되었고 ; 장강(長江) 중,하류의 하모도(河姆渡),만년선인동(萬年仙人洞),우돈(圩墩),숭택(崧澤),마교(馬橋),매언(梅堰) 유적지, 및 황하(黃河) 유역의 배리강(裴李崗),자산(磁山),북수령(北首嶺) 유적지에서는 모두 당시의 물소(水牛),황소(黃牛)의 머리뼈가 발견되었다. 황하(黃河) 하류의 수광현(壽光縣) 성의 남쪽의 손(孫)씨들이 모여 살던 동네의 옛 성곽의 유적지에서도, 또한 당시에 제사에 쓰이던 대량의 돼지․개 뼈를 놓던 받침대 등이 출토되었다.

   염제(炎帝)는 농경농작(農耕農作)을 처음으로 제창하였고, 아울러 후대에 이르기까지 중화민족(中華民族)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발전하게 하여, 그야말로 염제(炎帝)는 중화민족(中華民族)의 최대공헌자라고 말할 수 있다.



쟁이 뢰사(耒耜)를 만들고, 수공업(手工業)의 맹아(萌芽)를 낳다.

  쟁이 뢰사(耒耜)는 최초의 농기구의 한 종류이다. 모양은 마치 목차(木叉:나무로 된 끝이 포크처럼 갈라진)의 쟁이 뢰(耒)같으며, (삽과 비슷한) 보습 사(耜)과 결합하여, 역사상 최초의 농기구 - 쟁기 ‘려(犁)’가 형성되었다. 의심할 바 없이, 쟁기 려(犁)의 사용은, 농업 생산력의 한 돌파구였다. 후에, 쟁이 뢰사(耒耜)는 또한 각 종류의 농기구에 대해 사람들이 부르는 통칭(統稱)이 되었다. 우리나라 수공업(手工業)의 맹아(萌芽)는 염제(炎帝)가 손으로 만든 뢰(耒)로 농사를 일으킨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또한 이러한 명맥(脈)은 손으로 만든 도자기업(手工除業)이 생겼다. 《주서(周書)》에는 “신농(神農)이 농사를 짓고 도자기를 만들었다.”고 기재되었다. 즉, 제작된 것은 나무 삽(보습 사耜)보다 강하고 또한 끝이 날카로운 도자기 칼이었고, 수레를 메운 나무 쟁이(木耒)는 김을 메고, 땅을 갈아엎었다.

마침 《토주서(兔周書)》에서 기술하기를 : 신농(神農)은 “도자기를 정련하여 도끼(斤斧)를 만들었고, 쟁이 뢰사(耒耜),괭이 누(耨)를 사용해서 초원을 개간하였다.” 분명히, 이 당시에는 비교적 선진(先進)의 것으로써, 이어서 설명하기를 : “그리고 나서 오곡(五穀)이 풍부해지고, 모든 과일들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신농(神農)시대의 많은 유적지에서는 도자기칼(陶刀) 같은 종류의 문물이 발굴되었다. 광주(廣州) 천하구(天河區) 장x(長x) 지역에서 발견된 도자기 도끼(陶斧),도자기 솥(陶鼎) 잔해와 대량의 도기(陶器)의 파편 등, 바로 범문란(範文瀾) 선생의 《중국통사(中國通史)》 중에 제기된 - 신석기(新石器) 시대의 도석기(陶石器)와 비슷한 것이다.

: 주주(株洲) 마산(磨山)과 능독령요(陵獨嶺坳)유적지에서도 또한 도?(陶<規+鬲>), 술병 주전자(壺),사발(缽),쟁반(盤),항아리(罐),도끼(斧) 등이 출토되었다. ; 이외에도, 주주(株洲)의 일부지역에서는 또한 도자기 쟁반(陶盤),공기(碗),술그릇(尊) 등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당시의 선민(先民)들이 도자기로 만든 종류가 이미 많았고, 또한 도자기로 제작된 생산 공구들이 있었고, 도자기로 제작한 대량의 생활용구가 있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도자기업의 제작규모와 기술은 모두 비교적 큰 발전과 진보에 있었는데, 근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 :

① 수공봉직업(手工縫織業). 《장자(莊子)》는 : “신농(神農)의 시대에 …… 밭을 갈아서 먹고, 직물을 짜서 옷을 입었다.”고 이르렀다. 봉직업(縫織業)은 도제업(陶制業)의 생산을 수반하였고, 이 시기의 많은 유적에서 상당한 수량의 도자기로 만든 실을 뽑는 바퀴(紡輪)와 정교한 뼈로 만든 베틀의 북(骨梭),뼈침(骨針)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주주시(株洲市) 교연돈충(郊煙墩沖) 유적지에서는 돌로 된 씨를 뽑는 바퀴(石紡輪)가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것은 바로 최고 원시(原始)의 수공(手工) 봉직(縫織) 공구들이다.





뿌리를 찾는 원시반본의 4배례 심고. 훔치훔치로 시작하는 태을주 주문은 소가 여물씹는 소리로 입크게 벌릴 훔 입크게 벌릴 치 자로 동이족으로 어망과 결혼제도를 확립한 수렵채취문명시대의 태호복희 성인과 함께 농경문명 개창의 비조로 우두인신으로 상징되는 신농씨 치적의 근본에 보답하려는 원시반본의 정신이다.

②수공정련업(手工冶鍊業). 《습유기(拾遺記), 염제신농(炎帝神農)》에 기재되기를: 신농(神農)의 시대는, “미환(米鍰)의 동(銅)을 그릇으로 삼다.”고 되었다. 당시의 수공(手工) 정련은 주로 동(銅)을 정련하여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일찍 발굴된 금속물(金屬物)은, 임동강채(臨潼薑寨)에서 발견된 하나의 동 조각(銅片)으로, 표면이 변하는 과정을 거쳐 동(銅)이 65%를 점유하고, 아연(신鋅)이 25%를 점하며, 그 외의 소량의 주석(석錫), 납(연鉛), 유색(有色) 금속 제련 과정에서 생긴 중간산물(류硫), 철(鐵) 등이며, 동(銅), 아연(신鋅)이 비교적 많이 함유된 황동(黃銅)에 속한다. 산동(山東) 교현(膠縣) 삼리강(三裏河)에서는 또한 원시(元始) 수공(手工)으로 주조된 소형 동 그릇(銅器)이 출토되었는데, 칼(刀), 끌(鑿) 등과 같은 것이 출토되었다.

③ 건축업(建築業). 《열절서(越絕書),외전기보검제13(外傳記寶劍第十三)》에서 말하기를 : 신농(神農)은 “나무를 잘라서 궁실(宮室)을 만들었다”. 하모도(河姆渡)에서 출토된 기원 전 5000년경의 대형 “간란식(幹欄式) 방” 유적 및 10여 개의 집 기둥, 순인(榫印:건축양식) 방의 구조는, 바로 최초의 수공(手工) 건축업(建築業)의 흔적이다. 춘추전국(春秋戰國) 교체 무렵에 이르러, 당시의 사람들은 수공업(手工業)을 부업하여 세밀하게 하는 것 외에도 공예 수준을 종합하여 최초의 공예(工藝) 저작(著作) ---《고공기(考工記)》를 냈다.

이 책에는 “나무를 다루는 일(功木之工)” “금을 다루는 일(功金之工)” “가죽을 다루는 일(功皮之工)” “색을 칠하는 일(設色之工)” “점토를 다루는 일(搏埴之工)” 이렇게 여섯 개의 부류로 나누었고, 바퀴를 만드는 사람(輪人), 장인(匠人), 도자기 만든느 사람(陶人), 정련하는 사람(冶人), 단씨(段氏), 부씨(鳧氏) 등 30개의 전문직업을 포함하였다. 이러한 것은.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가 농업(農業)을 일으키고, 수공업(手工業)의 집중을 도모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바로 이러한 기원의 수공업(手工業)이 생겼기 때문에, 몇 천년의 연속된 시간을 거쳐서 발전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현대화된 수준의 공업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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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31순(舜)은 동이 인을 데리고 흑도 문화를 창조했으며, 이들은 동이 인으로 흑도 문화를 계승해 이어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초궁초득(楚弓楚得)'  안원전   2003/11/10  7954
267    담론230. 대하(大夏)인이 전파한 채도문화&채도문화는 동이민족의 기반 위에서 혼혈과정에 뿌리내린 것. (은(殷)말 주(周)초 서하(西夏)와 한고조 유방의 한족 실마리(왕국유) 상족(商族)의 기원,서북방(전통적) 동방(근대) 기원설  안원전   2003/10/28  7893
266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3-천신(天神)의 아수(啞水: 마시면 벙어리가 되는 물)-동물이 말을 못하게 된 기원 [이족(彝族)]  안원전   2003/10/02  8394
265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2-호랑이의 전설 [나시족(納西族)]  안원전   2003/09/29  7030
26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1-도기 제작과 면화 재배의 기원 [한족(漢族)]  안원전   2003/09/25  6514
26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0-노황(蘆笙: 갈대로 만든 생황, 묘족과 동족(侗族)이 주로 쓰는 취관 악기의 일종)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5  6859
26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9-신의(神醫) 시사의(侍司懿)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5  5994
261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8-닭, 오리, 거위의 유래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2  6664
260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7-사지고미(沙地古咪)가 찾은 식량의 종자(糧種)  안원전   2003/09/22  6273
259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6-우(禹)의 탄생 신화[동이족)]  안원전   2003/09/19  6547
258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5-하우의 부친 곤왕(鯀王)의 치수  안원전   2003/09/19  6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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