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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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周武王 姬發 성은 희씨로 이름은 발이다.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주왕조를 세웠으며 상 주왕이 포악무도하여 제후들을 규합하여 상나라를 토벌키로 하였다.후에 목야 전투에서 주왕을 격퇴하고 천하를 얻어 호경(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부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 19년간 재위하다 죽었다. 사후 시호가 무(武)이다 姓姬名發, 文王之子,生卒年不詳.周王朝的建立者,因商紂暴虐無道,乃率領諸侯會師盟津,商討伐商, 後大戰於牧野, 敗紂而代有天下,都鎬京.建立諸侯國,在位十九年崩,諡曰武




우리는 은상(殷商)의 시조 설(契)과 그 모친 간적의 현조(玄鳥:제비)가 알을 떨어뜨리고 가 이를 삼킨 후 설(契)을 낳았다는 설화를 통해 은상의 시조 설이 조 도등(鳥圖騰)의 후예임을 알아 본 바 있다. 동이족의 시조 설화는  금와왕이라든가, 박혁거세 신화라든가, 석탈해 신화 등에서 보듯이 모두 알과 관련 있다.

그런데 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을 통해 주 왕실이 공자가 화하(華夏)사관의 벼리로 삼은 것과는 별도로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주(周) 왕조가 건립될 무렵에는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5단계 작위(爵位)가 있어 분봉(分封)의 표준과 등급을 차별했다.

무왕(武王)은 은(殷)을 멸하고 동생 주공(周公)을 논공행상 하되, 그 아들 백금(伯禽)으로 하여금 대신하여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수 백리 땅에 봉(封)하여 일등 작위(爵位)인 상공(上公)으로 삼으니 곧 노(魯)나라의 기원이 되었다. 여상 강태공(姜太公)에게는 2등 작위인 후작(侯爵)으로 삼고, 상공(上公)과 동일하게 대우하고 마찬가지로 수 백리의 영지를 베푸니 이것이 바로 제(齊)나라의 기원이다.



강태공 여상의 목야 출전도

백금(伯禽)을 상공(上公)으로 삼은 것은 그가 조카라는 친족이었기 때문에 후사를 잇기 위한 조치였으며, 태공(太公)을 주공단 보다 못한 2등 작위에 봉한 것은 같은 성씨 같은 혈족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상공(上公)과 동일한 대우 동일한 물질적 대우를 받았는데 이는 그가 없으면 주(周) 왕조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태공(太公)은 주조(周朝)의 기초를 세운 사람으로 “존근로(尊勤勞)”로 간주되어 불리는데 누구도 비할 수 없는 공헌을 했다.  

태공(太公)이 제(齊)에 봉해진 시대는 성(城)이 마을이 되고 도읍이 되는 시대였다. 사람이 모여 사는 성보(城堡)는 마을 국가의 주체가 되어, 성(城)을 옮기면 곧 나라를 천도한 것이 되어 “성방(城邦)” 혹 “성시국가(城市國家)”라 불리었다.  따라서 주무왕(周武王)이 처음 봉(封)한 태공(太公)의 제국(齊國)은 영구(營丘)가 주체였으며 영지(領地)도 크지 않았다. 태공과 토착  동이족(東夷族) 세력인 래이인(萊夷人)은 영구(營丘)를 놓고 서로 싸웠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점을 설명해 주고 있으며, 또 당시의 동이(東夷) 제지(齊地) 모두가 주조(周朝)의 세력판도 안에 들어있지 않음을 증명해 주는 것일 뿐 아니라 제(齊)는 동이족 혈통인 태공이 토착 동이족 래이인과 싸우며 개척해 확대한 나라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 강(姜)씨 성은 염제 신농의 후예로 강태공(姜太公)의 선조가 되며, 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동이(東夷) 민족 및 중화민족 강항정신(强項情神)의 수립자이다. (참고:赵氏의 历史来源: 「赵」姓出自「嬴」姓,据「唐书」记载,上古东夷族首领伯益的第十三世孙造父,在周穆王时传说他曾取良马八骏,献与周穆王,周穆王乘这八匹骏马西巡狩猎。来到昆仑山上,西王母在池设宴招待他,饮酒唱和乐而忘返,为周穆王御车,日趋千里,息徐偃王反叛,其后周穆王封造父于赵城,既今山西省洪洞具北,其后为赵氏)



-백이(伯夷)는 예의(禮儀), 형법(刑法)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으로 민족문명의 수립자이다. 치우(蚩尤)는 신농의 뒤를 이어 계승해 흥기했으며 도(刀), 극(戟:창), 대노(大弩:큰 쇠뇌) 등 5종의 병기를 가장 먼저 제조해 사용했으며, 무력으로 향토를 보위하고 천하에 위엄을 떨쳤다.(蚩尤繼神農之后興起,最先制造和使用刀,戟,大弩等5種兵器,用武力保衛鄕土 威震天下『齊文化100題知識』<齊魯書社>-

이 대목은 필자가 현지 답사해 구입한 동이(東夷) 제지(齊地)인 산동성의 향토사료 기사인데 황제와 치우간의 누가 먼저 침입했고 누가 흉악했는지의 구별을 명확히 해주어 실로 고맙기 짝이 없는 사료이다. 이로 보면 향토 사료의 정확성이 무엇보다 뛰어남을 알 수 있다.이는 다음 구절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치우를 흉악무도하게 기술한 것에 비하면 한 단계 진보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결론은 여기서도 황제가 치우를 죽인 것으로 기존의 지나필법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황제족(黃帝族)이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고 동이(東夷)로 쳐들어갔다는 기록과 “침략한 황제가 천하의 주인으로 바뀌었다. 치우는 도리어 대역부도(大逆不道)한 4흉(四凶)으로 칭해졌다.”라는 기록은 누가 선이고 악인지의 구분을 확연히 해주는 기록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뒷받침하는 이러한 사료는 대륙에 적지 않게 더 있을 것으로 여겨져 사료탐사를 더 해 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희성(姬姓)의 황제족(黃帝族)이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고 동이(東夷)로 쳐들어가니, 치우가 떨치고 일어나 향토를 보위하기 위해 싸웠다.(姬姓黃帝族爲掠奪人口和財物而入侵東夷, 蚩尤奮起爲保衛鄕土而戰)

황제는 능히 승리를 얻을 수 없어 서로 수년간 교착상태에 빠졌다. 뒤에 황제는 천녀 발(魃:한발의 신)의 도움을 청해 와서 술법을 사용해 치우를 죽였다. 침략한 황제가 천하의 주인으로 바뀌었다. 치우는 도리어 대역부도(大逆不道)한 4흉(四凶)으로 칭해졌다. 단 치우가 죽은 뒤에 천하가 대란에 빠졌다.(黃帝不能取勝, 相持多年. 後來黃帝請來了天女魃助戰, 用法術殺死了蚩尤. 作爲侵略者的黃帝變成了天下的主人, 而蚩尤却被稱作大逆不道的 “四凶” 但蚩尤死後,天下大亂)

황제는 단지 사람들에게 치우불사를 설명하는 치우상(蚩尤像) 그리는 것만은 너그럽게 보아 천하는 이에 안녕을 회복했다. 이로 인해 치우는 “병주(兵主)”, 혹 “무조(武祖)“로 떠받들어졌으며, 이어 황제(黃帝)도 사당을 세워 그를 제사지냈다. 제지(齊地)에 “팔신(八神)”을 제사하는 옛 풍속이 있으니 팔신(八神)의 3번째 대상은 “병신(兵神)”인 치우(蚩尤)를 제지내는 것이다.(黃帝只好命人畵蚩尤像說蚩尤不死, 天下于是恢復安寧. 因此蚩尤被尊奉爲 “兵主” 或 “武祖”, 連黃帝也得立祠祭祀他. 齊地有祭“八神”的古俗,八神之三是 “兵神”, 祭蚩尤)-


다음의 인민일보 기사가 전하고 있는 것처럼 치우는 비교적 일찍이 청동기 문명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황제는 석기시대 문명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동두철액(銅頭鐵額)으로 무장한 철 기마병을 보면 도망만 다녀야 했다. 이래서 치우는 고대 대륙 사에서 무신(武神)으로 유명하게 된 것이다.


열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다음 기사는 유일 공산국가 중국정부의 기관지 인민일보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기사인데 황제헌원이 동이족 천자 치우에게 패하여 산동성을 떠나 양자강을 헤매이다 섬서성으로 가게 된 발자취를 잘 보여주고 있다.

黃帝文化遠及南方(황제문화 멀리 남방에까지 미치다)<인민일보>

   -新華社杭州2 月19日電(記者愼海雄)我國的歷史敎科書中,一提起5000年前的黃帝文化,指的都是北方黃河流域文化 其實,黃帝的活動與黃帝文化的范圍決不 于北方 我國歷史文化硏究工作者經過多年的考證認爲,黃帝文化的范圍應該包括中國南方一些地區 (기존의 교과서에 보이듯이 5천년전의 황제문화의 범위가 북방황하 유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남방 일부까지 포함하고 있다)

  黃帝被公認爲中華民族的祖先 据史料記載,黃帝號軒轅氏,是我國原始社會部落聯盟的領袖,曾打敗炎帝和蚩尤,統一了中原, 浙江師范大學敎授洪波等傳家認爲,從史料硏究和實地考證看,南方長江流域也有黃帝活動的足迹,幷積淀着深層次 多層面的黃帝文化(중국민족의 선조로 공인받은 황제(호는 헌원)는 원시사회 부락연맹의 영수로 염제와 치우를 쳐부수고 중원을 통일했는데, 절강 사범대학 교수 홍파 등 전문가는 사료연구와 실지고증을 통해 남방 양자강 유역이 황제가 활동한 발자취라 보고 있다)

    傳家認爲,根据史料 傳說和實地考察的情況分析,5000年前黃帝曾經在浙江永康的石城山生活過,幷且以石城山爲中心,足迹遍及浙江的金華山, 仙華山, 仙都山,安徽黃山, 江西廬山 廣東鼎湖山等地,在南中國撒播了華夏文明的種子(전문가는 근거사료를 통해 전설과 실지고증의 정황분석을 통해 5천년전의 황제가 일찍이 절강 영강의 석성산에서 생활했으며 석성산을 중심으로 절강의 금화산, 선화산, 선도산, 안휘 황산, 강서 여산, 광동 정호산 등지 등 남중국에 화하문명의 종자를 두루 뿌리고 족적을 고루 미쳤다고 인정한다)  

    据民間傳說, 黃帝在與蚩尤的戰爭中, 曾一度失利,原因是蚩尤部落較早掌握了靑銅器,而黃帝使用的仍然是石器 爲了改變這一不利局面,黃帝派部落成員四處尋覓可以冶煉兵器的 源,終于在永康發現了寶藏,從此黃帝的一支在這里 根(민간전설에 근거하면, 황제는 치우와의 전쟁중에 일찍이 전술적 잇점를 결정적으로 빼앗겼으니 그 원인은 바로 치우부락은 비교적 일찍이 청동기 문명을 장악했으나 황제는 석기만을 사용한 데 있었다. 이 불리한 국면을 바꾸기 위해 황제부락 구성원은 사방으로 흩어져 병장기를 야련할 광산 자원을 찾았으며, 마침내 영강에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여 황제의 한 지파는 이 곳에서 혈연의 뿌리를 구축하게 되었다.)-

이 구절을 보면 역설적으로 황제헌원이 치우를 잡아죽였다는 기록은 엉터리며 오히려 청동기 무기를 쓴 철기마병의 치우에게 돌도끼 등으로 무장한 황제의 무리가 대륙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음을 여과없이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안원전  (원문인용:「북경청년보」2002년 2.20 (책임편집:李東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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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민족 논설(東夷民族 論說)Click here!



강태공 여상은 14대 자오지 환웅이신 치우천왕의 후예인 까닭에 또한 성이 강인데(염제 신농은 최초의 강씨 시조인데 염제의 후예가  치우고 치우의 후예가 강태공) 치우천왕은 일찍이 염제가 살던 강수에 살면서 둔 자식들을 모두 강씨라 했다. 강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림에 먼저 도술을 닦고(선수도술) 천제지(天齊池)에서 천제를 지내고  제(齊)나라에 봉함을 받았으니 8신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이 지방에서 더욱 성했다. 후세에 그 지방에서는 도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나와서 신선 황제, 노자와 마구 뒤섞고 부연하여 더욱 심하게 윤색하였으니 즉 이는 강태공이 당시의 이러한 혼탁한 풍속을 조장하는데  더욱 일조를 했다. 그는 일찍이 음부경 주석을 달아 자부삼황의 뜻을 조술(설명)하였으니 연,제의 방사들이 어찌 괴이하고 들뜨고 허황한 설에 빠지지 않았겠는가. (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 실제 치박시 인근 임치현(고대 제나라 수도)에 있는  강태공 사당에 가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술사 방사들을 사당에 안치해 놓고 있음을 본다.  사진은 임치의 강태공묘(사당) 입구







327    담론197.동이(東夷), 서하(西夏)적 용봉 2원 연맹-이하(夷夏)일가의 중국민족 구성과 전통문화 탄생의 원시적 기초&화샤(華夏)족의 형성  안원전   2002/11/28  7244
32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358. 8仙人 중 유일 女선인 하선고(何仙姑)  안원전   2009/01/31  5176
32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3.《서경잡기(西京雜記)》의 작자는 누구인가?  안원전   2006/11/22  8931
324    담론198.「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소전(少典)의 비(妃)는 안등(安登)이니, 화양(華陽)에 유(遊)할쎄, 「예기」 <제법정의>에 이르기를 여산(厲山)씨는 염제라&중동지역이나 이집트의 도자기가 기원전 4-5천년 이전의 중국대륙의 도자기보다 뒤진다  안원전   2002/11/28  7963
323    담론199.신농의 부족이 남부로 스며들어갔을 때는 홍도시대의 일로, 세석기 문화인은 홍도문화인과 더불어 이미 목축, 교역, 건축, 의약을 알고 있었다(서량지)  안원전   2002/11/28  6556
322    담론200.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홍도문화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안원전   2002/11/28  6899
321    담론201.홍도와 회도문화는 한가지로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나와 구석기 말기에 대륙으로 나누어 들어가 발전한 동이족 부족,“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고사  안원전   2002/12/26  6178
320    담론 202. 채도문화와 황제 도읍지 및 제요(帝堯) 도당(陶唐)의 활동공간/’왕래하여 옮겨다니되 일정한 곳이 없으니, 군사들로 에워싸 지키면 곧 도읍지였다(遷徙往來無常處 以師兵爲營衛)‘ 좁아터진 분치 제후국 제요  안원전   2002/12/30  7841
319    담론203.<제왕세기>에 요(堯)의 도읍지는 산서 임분현(臨汾縣) 남쪽평양(平陽),「죽서기년」 요(堯)가 지금의 섬서성 오른쪽 산서성 기(冀)에 거함  안원전   2003/01/07  6765
318    담론 204. 요의 웅거지 산서성 임분:「묵자」 절용중편, 「한비자」 십과편 및 「순자」 왕패편, 양(楊) 주(注) 시자(尸子),5적(狄)은 하나 왈, 월지(月支), 둘 왈, 예맥(濊貊), 셋 왈, 흉노, 넷 왈, 선우(單于), 다섯 왈, 백옥(白屋)이라 하였다.  안원전   2003/01/08  7816
317    담론205요(堯)의 어머니는 바로 동이족 염제 신농씨 가문 진봉(陳鋒)씨의 따님인 경도(慶都)라는 아가씨로 동이족 염제의 7세손  안원전   2003/01/13  6314
316    담론 206. 서량지의 동이족 전욱의 출자& 사마천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강성과 왕숙, 장자의 직필, 요의 혈통적 배경과 모친 경도로부터의 신비화 작업  안원전   2003/01/13  6290
315    담론207. 제요 방훈시기는 원시사회의 부계씨족 사회 말기단계로, 도처에 부락 규모의 국가가 숲처럼 가득 들어찬“부락방국임립지시(部落方國林立之時)”의 시기  안원전   2003/01/21  6101
314    담론 208. 한무제 유철과 황후가 된, 요(堯)의 고향이자 도읍지 산서성 임분 출생의 일개 기녀, "위자부(衛子夫)"의 러브로망  안원전   2003/01/27  6464
313    담론 209.우 임금 시절에 대한 실루엣-서쪽으로 하남(河南) 서부와 산서(山西) 서남부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지금의 하남(河南), 하북(河北) 산동(山東) 3성(省)의 경계지방에 이르렀으며, 남쪽으로 호북(湖北)에 접하고 북으로는 하북(河北)으로 들어가-  안원전   2003/01/27  5936
312    담론210.왕성강(王城崗) 유적지의 발굴을 하(夏) 문화 탐색의 중요 수확으로 여기고 있다.  안원전   2003/01/27  6269
311    담론212.악사(樂師)였던 고수(瞽瞍)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의 요순 선양실체-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니 순이 (요를) 가둔 바 되었다.(昔堯德衰爲舜所囚也  안원전   2003/02/12  6795
310    담론213.대륙의 지나사학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요순(堯舜) 선양(禪讓)의 실체-  안원전   2003/02/18  7869
309    담론211.「죽서기년」에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 [1]  안원전   2003/02/21  6582
308    담론163.파촉(巴蜀) 땅은 일찍이 이들 복희씨의 사(蛇) 도등(圖騰) 족이 웅거하여 상고시절에 이름을 얻은 지역이니 파촉의 파(巴:大蛇)는 큰 뱀을 의미하여 「설문(說文)」에 '파(巴)는 충(蟲:동물의 총칭), 혹은 코끼리를 먹는 뱀' [1]  안원전   2003/02/25  6151
307    담론214.(속)요순선양. “요순선양(堯舜禪讓)”설이 실은 전국시대 초기의 묵가(墨家)가 창조한 것  안원전   2003/02/28  7052
306    담론215(속)요순선양,「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안원전   2003/02/28  6552
공지    한겨레 비난한 글을 읽고-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안원전   2003/03/06  21834
304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904
303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142
30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484
공지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5485
300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231
299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252
298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312
297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793
공지     특집기획.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 국내 최초 완전 공개! [4]  안원전   2003/05/12  23158
295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167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888
293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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