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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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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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215(속)요순선양,「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동이족 태호복희 태양신 유적지인 하모도 유적지가 있는 양자강 하류 강소성 샤오싱(소흥:옛 월나라 수도이자 노신의 고향) 회계산에 있는 대우릉


임분(臨汾)에 있는 요묘(堯廟)의 유일한 향토사료 「요묘(堯廟)」의 일부를 보기로 한다.(이하 「요묘(堯廟)」 山西旅游風景名勝叢書 <山西經濟 出版社> 高樹德 著 安原田 譯)

-1.제요가 우순에게 선양하다

요가 순에게 선양을 결정한 뒤에 대해 사마천의 「사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帝)가  70년 동안 제위에 있으면서, 그간 일찍이 순(舜)으로 하여금 산림천택(山林川澤)에 들어가게 했다” 요가 순에게 28년 간 섭정하게 명하고, 비로소 죽으매, 순이 3년 상을 치른 후에 단주(丹朱)에게 양위했다.

「사기」와 「포주지(蒲州志)」, 「익성현지(翼城縣志)」모두는, 요가 죽은 후에 순이 제위를 단주에게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순은 남하(南河)에 가 있었으나 “조근(朝覲)하여 배알하는 제후가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으며, 옥송자(獄訟者) 모두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으며, 노래부르는(謳歌)자 모두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다고 기록한다. 「사기」<오제본기>에 기록하기를,”순이 말하기를, 하늘이여! 다스린 뒤에(또는 이 뒤에), 나라의 천자위에 오르나이다”

민간전설에는 순(舜)이 남하(南河) 곧 영제현(永濟縣)의 중조산(中條山)의 남하(南河:산동성에 南河가 있고 호남성에도 南河가 있다)로 피하니, 순(舜)이 이에 깊이 성찰하고 겨우 제위를 이었다.

우순(虞舜)의 성은 요(姚:예쁠 요, 성 요), 씨는 우(虞)로 이름은 중화(重華)로 역사에서 칭하기로는 우순(虞舜)이라 한다. 그 부족은 지금의 복양(濮陽)지구 동이(東夷)에 거주했으며(복양은 하남성 오른 쪽 끝으로 산동성과의 경계인데 거의 산동성 권역에 속하며 치우천왕 머리가 묻힌 태전현 부근이다Click here!), 후에 중조산(中條山) 서쪽 끝의 포주(蒲州) 일대로 이주해 갔다. 지금도 운성시(運城市)에  순제묘(舜帝廟) 촌이 있어, 전설에 순(舜)이 이곳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대우릉. 이곳 샤오싱의 치수사업을 성공적으로 인끈 마진 마태수의 사당과 묘등에 대한 사진과 기록을 치수책임자로 제위에 오른 대우릉에 전시하고 있다.

동쪽 언덕 높은 바닷가를 “우파(牛坡)”라 칭하는 곳은 순이 소를 기른 곳이며, “방마탄(放馬灘)”이라 부르는 서탄(西灘:물가 탄)은 순이 말을 기르던 터이다. 포주(蒲州) 경내를 횡으로 관통하는 “순원(舜塬:높은 평지)”은 순(舜)이 개간한 아주 큰 평원으로 양곡을 생산하는 지구다. 촌 가운데에는 하나의 샘못(泉池)이 있는데 이는 순(舜)이 판 우물 샘으로 묘정(廟亭)이 서있어 이를 기념하고 있다.

중조산(中條山) 서쪽 끝에는 순이 밭을 갈았다는 역산(歷山)이 있고, 이 산중에 남하(南河)가 있으니 이는 모두 전설중에 순이 활동했던 지방이다.
순(舜)은 중화(重華)의 시호(諡號)다. 「사기」<오제본기> 집해(集解) 중에 기록하기를, “인성성명왈순(仁聖盛明曰舜)”이라 하여, 순(舜)이 요업(堯業)을 이어,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잘 다스린 성명(聖明) 제왕이라 말하고 있다. 후인이 요순시대를 통칭하여 “요천순일(堯天舜日)”- 즉 요는 하늘이요, 순은 태양이라 하였다.


2. 제순이 대우에게 선양하다

우(禹)는 하우(夏禹)씨로 이름은 문명(文命)이니, 또한 대우(大禹)라 부르며 사(姒) 성(姓)이다. 전욱(顓頊)이 곤(鯀)을 낳고(고고학에서 이미 전욱은 동이족이라 판가름이 났다 見 徐亮之 「中國史前史話」)  곤(鯀)이 우(禹)를 낳고, 우(禹)의 어미는 유신(有莘)씨의 여자 수이(修已)다. 우(禹)는 사천성 석뉴(石紐)촌에서 탄생해 서강(西羌)에서 성장했으니, 통칭해 하우(夏禹)라 한다.

문명(文命) 사후의 시호가 이름하여 우(禹)이다. 「사기」<오제본기>집해(集解) 가운데 기록하기를, “시법왈수선성공왈우(諡法曰受禪成功曰禹)”라하여 시호를 내리는 법이 선양이 성공해 우(禹)라고 시호를 내렸다고 말한다. 곧 우는 요순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계승했다. 사람을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공적인 생활만을 걸으면서 사적인 생활을 결코 추구하지 않았던 고난과 어려움에 맞서 분투한 치수정신이다.

그의 치수 고사(故事)는 역대에 걸쳐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져 불려지는 존경의 장식물이다. 우(禹)는 수환(水患)을 다스린 후에, 거대한 늪지를 좋은 밭으로 바꾸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수재(水災)를 면케 하고 해로움을 바꾸어 오히려 이롭게 했다. 우는 치수 과정 중에 있어, 동시에 흥수수리(興修水利)에 주의하고, 백성을 위해 살 방도를 생각했다.

「상서」에 기재하기를, “결구천거사해(決九川距四海:9천에 물길을 내 멀리 4해에 댐) 준견회거천(浚畎澮距川:깊은 밭도랑에 멀리에서 물을 댐)” 곧 대하 대강에 물을 소통시키고, 도랑과 하수도를 만들어 밭에 물을 대고 곡식을 심고 농사를 지었다.

「사기」<오제본기> 가운데 우(禹)가 “익(益)에게 영을 내려 뭇 서민에게 볍씨(稻)를 주어, 가히 종자에 습기가 적게 하도록 하고, 후직(后稷)에게 명해 대중서민이  얻기 어려운 먹거리를 주라 했다. 적게 먹임으로써, 주는데 차질없도록 조절하게 하되, 모든 제후들이 한결같이 시행하도록 했다” 하니, 이는 이재민을 구제하고, 농경을 널리 장려해 벼씨를 심고, 토지를 개발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로써 선진(先秦)시대의 사람들은 우(禹)와 후직(后稷)을 농경의 시조로 칭한 이유가 된다.


대우(大禹)는 치수의 최고 통수(統帥)가 되어 몸을 바쳐 힘들게 근면하여 일하고, 오랜 세월 민중과 더불어 달고 쓴 맛을 함께하며 영도한 끝에, 마침내 엄청난 홍수와의 싸움에서 이겨 인민으로 하여금 편히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였고, “이에 천하가 모두 우(禹)의 밝은 도수성락(度數聲樂)을 으뜸으로 쳐, 산천의 신주(神主)로 삼았다” 우(禹)는 널리 천하인민의 사랑을 듬뿍 짊어지고 옹호(擁護)를 받았다.

우순(虞舜)은 우(禹)를 자신의 후계자로 확정했다.(이 서술은 중화중심 사관)   「사기」<오제본기> 가운데 설명하기를, “순이 이에 우를 하늘에 미리 천거하고 17년만에 죽었다(舜乃豫薦禹于天 十七年而崩) 3년상을 마친 뒤 우는 순이 요의 아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순의 아들에게 양위했다.(三年喪畢 禹亦乃讓舜子如舜讓堯子)”

우(禹)도 순(舜)의 모습을 본받아 천하를 상균(商均)에게 선양했으나, 천하제후는 모두 상균을 떠나 우(禹)에게 조근 배알하니, 우가 이에 마침내 천자위에 올랐으며, 조정에서 천하에 남면(南面)하는 천자가 되어 국호를 하(夏)라 하였다.




샤오싱의 수리사업에 힘을 기울인 동한 무릉인 마진태수와 함께 하우이래 제 2의 치수 공덕자 탕소은이 대우릉에 함께 모셔져 숭앙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하우와 마찬가지로 쓰촨인이다. 대우릉


우(禹)가 천자가 된 후, 미덕이 담긴 전설은 아주 많은데, 절약과 검소함이 그 특색을 이룬다. 논어에 공자가 설명하기를, “우(禹)에 대해서는 내가 끼어 들 바가 없다. 보잘것없이 먹고 귀신에게 부모의 상을 치렀다. 좋지 못한 옷을 입고도 수놓은 옷과 면류관(불면:黻冕)의 아름다움은 극치를 다했고, 궁실을 낮게 하고 구휼은 진력을 다했다.우(禹)는 내가 끼어들 바가 없다.”

이는 그의 음식이 보잘 것 없고, 의복이 조악하고, 궁전이 비루하며, 정도에 지나치게 검약했음을 설명한다. 단 조정대사(朝政大事)와 국가 계획과 민생은 실오라기 하나 털끝 하나 인색하거나 아까와 하지 않았으며, 제례는 융중(隆重)하게 치르고, 예복은 아주 아름답게 했으나, 다시금 수리(水利)에 주의하여 밭 사이의 도랑은 특별히 진력을 다해 정리했으니 농업생산에 이로웠다.  우(禹)가 보여준 절약과 근검은 가히 치국안민(治國安民)을 위한 것이었다.  

하우(夏禹)때, 제왕은 정복전쟁을 결정할 권력이 있었는데, 우 당시의 무위(武威)는 밝게 드러났다. 전설에 우는 일찍이 삼묘(三苗)를 정복했는데, 친히 전쟁터에 임해 무용신위(武勇神威)로 탁월한 전공을 드러냈다.

「묵자」<겸애>편에는  <우서(禹誓)>가 실려 있는데, 곧 우(禹)가 삼묘(三苗)를 정복할 때의 각오를 밝힌 서사지사(誓師之詞)이다. 동서 <비공(非攻)>편에 설명하기를, 우(禹)가 삼묘(三苗)를 정복할 때, 삼묘(三苗)의 장령(將領)을 쏘아 맞추고, “묘의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으니(苗師大亂) 이제 뜻을 성취할 기회다(后乃遂幾)” 이러한 전설은 우(禹)가 백성을 위해 근로한 좋은 제왕일 뿐 아니라 정복전쟁에도 능했음을 보여준다.

「상서(尙書)」 가운데의 <우공(禹貢)>은 대우(大禹)가 9주를 획분했다는 전설을 기술하고 있다. 그 설명은 하우 때, 대륙을 지방의 명칭과 소속범위 등 9주(州)의 경계선으로 나누었음을 설명하는 것으로, 9주는 곧 익주(翼州), 연주(兗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양주(梁州), 옹주(雍州)이며, 아울러 여기에는 각 주 안의 산천 방위와 주향(走向), 토양성질, 물산분포, 공부(貢賦)의 등급과 물품의 각 정황 및 공물을 바치러 도성으로 향하는 길을 선으로 그려 병기하고 있다.

이는 대우(大禹)가 치수하는 동안에 각지로 돌아다니며 만들어 놓은 위대한 업적이다. 이는 황하유역 중부에 큰 부락씨족인 하우(夏禹)의 나라가 출현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향토사료이므로 과장된 중화사관을 기억) 그의 정치, 경제, 문화, 군사는 비교할 바 없이 강대하여 온전한 국가관리 기구와 제도를 형성했다. 하왕조는 동을 주조한 솥 9개가 전해 내려와 9주(州)의 이름이 새겨져 후세에 전하게 되었다.

하(夏) 왕조 때, 제왕은 천자의 권위를 하나로 모아 일체가 되어 있어서, 원시씨족의 평의제(評議制)는 이미 와해되는 추세였다. 전설에, “우(禹)가 도산(塗山)에서 제후를 소집해, 만국의 옥백자(玉帛者)를 집정했다”하니, 이는 우(禹)가 각 부족의 수령을 도산(塗山)에서소집해 회의를 연 것이니, 그들은 모두 우(禹)를 향해 옥백(玉帛)을 손에 잡고 조공(朝貢)한 것이니, 그 기세가 실로 크고도 컸다. 이같이 우(禹)는 비단 제후를 모이게 한 것 뿐 아니라, 제후에 대해 생살대권이 있었다.

「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설명하기를, “우(禹)가 제후의 군(君)을 회계산 위에서 모이게 해 조회를 받고,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이 이야기는 하(夏)나라 우(禹) 왕의 권력이 단순한 연맹주(聯盟主)를 초월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또한 제왕의 사나운 위엄의 또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참고:《주례(周禮)》 《산해경(山海經)》 《월절서(越絶書)》 등에 이미 기록되어, 예로부터 알려져 있었다.

BC 5세기 초 이곳에서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 포위되어 패하였다가 20년의 신고(辛苦) 끝에 부차를 격파하여 ‘회계(會稽)의 치욕’을 설욕하였다는 고사로 유명하다.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천하순행(天下巡行) 때 이 산에 이르러 석비(石碑)를 세웠으며, 또 이 산에 연유하여 후이지군[會稽郡](군청 소재지는 吳縣)을 설치하였다.

후한(後漢) 때는 군청소재지를 산음현(山陰縣:지금의 紹興)으로 옮기고, 수(隋)나라 때 산음현은 후이지현으로 개칭되었다. 본래는 모산(茅山) 또는 동산(棟山)으로 불렸으나 하(夏)나라의 우왕(禹王)이 이곳에 여러 왕을 모아놓고 그 공적을 헤아린 데서 후이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 밖에 산둥성[山東省] 르자오현[日照縣] 북쪽 20km 지점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전설에 우(禹)가 늙었을 때, 고요(못 고,陶:순의 신하인 고요는 벼슬이 사구(司寇)로,법리로 사회기강잡음)를 계승인으로 선택했으나 고요가 먼저 죽었다. 「죽서기년」 가운데 설명하기를, “익(益)이 계(啓)의 자리를 범하자, 계가 그를 죽였다” 이로부터 제후들은 모두 익을 떠나 계를 조견(朝見)하니, 계(啓)는 마침내 천자위에 올랐다. 단 별도로 하나의 다른 전설이 있으니, 이는 우(禹)가 계(啓)에게 제위를 전했다는 것으로, 익(益)은 계(啓)와 더불어 최고권력을 쟁탈하다 실패한 결과 피살되었다는 이야기다.(이 이야기는 갑골문학자로 「금문신고」의 낙빈기 해석과 동일)

전설로 보면, 우(禹)는 동쪽으로 순행하여 양자강 하류의 샤오싱(소흥)에 있는 회계산에서 죽었는데, 우(禹)는 자기의 제위를 자신의 아들인 계(啓)에게 전해주었다. 이는 씨족부락 사회 말기에 출현한 세습제와 관련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원시사회제도는 노예제 사회로 진입하게 되었으며, 역사 전적에 설명하기를, 하왕조는 우(禹)가 계(啓)에게 제위를 전한 “집안 천하(家天下)”로, 이로부터 계급학대의 사회가 되었으며, 우(禹)는 부락연맹단계 최후의 연맹 영수이며, 또한 세습왕권시대의 첫 번째 군주다.「요묘(堯廟)」山西旅游風景名勝叢書 <山西經濟 出版社> 高樹德 著 安原田 譯-






327    담론197.동이(東夷), 서하(西夏)적 용봉 2원 연맹-이하(夷夏)일가의 중국민족 구성과 전통문화 탄생의 원시적 기초&화샤(華夏)족의 형성  안원전   2002/11/28  7243
32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358. 8仙人 중 유일 女선인 하선고(何仙姑)  안원전   2009/01/31  5176
32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3.《서경잡기(西京雜記)》의 작자는 누구인가?  안원전   2006/11/22  8930
324    담론198.「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소전(少典)의 비(妃)는 안등(安登)이니, 화양(華陽)에 유(遊)할쎄, 「예기」 <제법정의>에 이르기를 여산(厲山)씨는 염제라&중동지역이나 이집트의 도자기가 기원전 4-5천년 이전의 중국대륙의 도자기보다 뒤진다  안원전   2002/11/28  7963
323    담론199.신농의 부족이 남부로 스며들어갔을 때는 홍도시대의 일로, 세석기 문화인은 홍도문화인과 더불어 이미 목축, 교역, 건축, 의약을 알고 있었다(서량지)  안원전   2002/11/28  6556
322    담론200.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홍도문화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안원전   2002/11/28  6899
321    담론201.홍도와 회도문화는 한가지로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나와 구석기 말기에 대륙으로 나누어 들어가 발전한 동이족 부족,“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고사  안원전   2002/12/26  6178
320    담론 202. 채도문화와 황제 도읍지 및 제요(帝堯) 도당(陶唐)의 활동공간/’왕래하여 옮겨다니되 일정한 곳이 없으니, 군사들로 에워싸 지키면 곧 도읍지였다(遷徙往來無常處 以師兵爲營衛)‘ 좁아터진 분치 제후국 제요  안원전   2002/12/30  7841
319    담론203.<제왕세기>에 요(堯)의 도읍지는 산서 임분현(臨汾縣) 남쪽평양(平陽),「죽서기년」 요(堯)가 지금의 섬서성 오른쪽 산서성 기(冀)에 거함  안원전   2003/01/07  6765
318    담론 204. 요의 웅거지 산서성 임분:「묵자」 절용중편, 「한비자」 십과편 및 「순자」 왕패편, 양(楊) 주(注) 시자(尸子),5적(狄)은 하나 왈, 월지(月支), 둘 왈, 예맥(濊貊), 셋 왈, 흉노, 넷 왈, 선우(單于), 다섯 왈, 백옥(白屋)이라 하였다.  안원전   2003/01/08  7816
317    담론205요(堯)의 어머니는 바로 동이족 염제 신농씨 가문 진봉(陳鋒)씨의 따님인 경도(慶都)라는 아가씨로 동이족 염제의 7세손  안원전   2003/01/13  6314
316    담론 206. 서량지의 동이족 전욱의 출자& 사마천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강성과 왕숙, 장자의 직필, 요의 혈통적 배경과 모친 경도로부터의 신비화 작업  안원전   2003/01/13  6290
315    담론207. 제요 방훈시기는 원시사회의 부계씨족 사회 말기단계로, 도처에 부락 규모의 국가가 숲처럼 가득 들어찬“부락방국임립지시(部落方國林立之時)”의 시기  안원전   2003/01/21  6101
314    담론 208. 한무제 유철과 황후가 된, 요(堯)의 고향이자 도읍지 산서성 임분 출생의 일개 기녀, "위자부(衛子夫)"의 러브로망  안원전   2003/01/27  6464
313    담론 209.우 임금 시절에 대한 실루엣-서쪽으로 하남(河南) 서부와 산서(山西) 서남부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지금의 하남(河南), 하북(河北) 산동(山東) 3성(省)의 경계지방에 이르렀으며, 남쪽으로 호북(湖北)에 접하고 북으로는 하북(河北)으로 들어가-  안원전   2003/01/27  5936
312    담론210.왕성강(王城崗) 유적지의 발굴을 하(夏) 문화 탐색의 중요 수확으로 여기고 있다.  안원전   2003/01/27  6268
311    담론212.악사(樂師)였던 고수(瞽瞍)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의 요순 선양실체-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니 순이 (요를) 가둔 바 되었다.(昔堯德衰爲舜所囚也  안원전   2003/02/12  6794
310    담론213.대륙의 지나사학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요순(堯舜) 선양(禪讓)의 실체-  안원전   2003/02/18  7868
309    담론211.「죽서기년」에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 [1]  안원전   2003/02/21  6581
308    담론163.파촉(巴蜀) 땅은 일찍이 이들 복희씨의 사(蛇) 도등(圖騰) 족이 웅거하여 상고시절에 이름을 얻은 지역이니 파촉의 파(巴:大蛇)는 큰 뱀을 의미하여 「설문(說文)」에 '파(巴)는 충(蟲:동물의 총칭), 혹은 코끼리를 먹는 뱀' [1]  안원전   2003/02/25  6150
307    담론214.(속)요순선양. “요순선양(堯舜禪讓)”설이 실은 전국시대 초기의 묵가(墨家)가 창조한 것  안원전   2003/02/28  7051
   담론215(속)요순선양,「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안원전   2003/02/28  6551
공지    한겨레 비난한 글을 읽고-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안원전   2003/03/06  21833
304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904
303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142
30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484
공지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5485
300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231
299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252
298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312
297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793
공지     특집기획.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 국내 최초 완전 공개! [4]  안원전   2003/05/12  23157
295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167
294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888
293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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