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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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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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212.악사(樂師)였던 고수(瞽瞍)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의 요순 선양실체-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니 순이 (요를) 가둔 바 되었다.(昔堯德衰爲舜所囚也


순의 전성기 시절 벽화. 동정호 군산의 상비묘에 있는 벽화그림(2002년 여름 촬영)




우순(虞舜)은 우(虞) 국의 막(幕)이라는 곳에 순(舜)이 봉해져 붙여진 이름이니, 곧 우막(虞幕)의 맏아들 고수(瞽叟)의 아들로 이름이 순(舜)이다. 「단기고사」에 고수는 단군조의 중신 고시의 친형이며 순의 아버지 고수는 전욱고양의 스승 우막(능)의 후예이다.

막으로부터 고수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라를 들어 왕조(帝朝)에 벼슬살이를 했는데, 순(舜)에 이르러 곧 요(堯)의 선양(禪讓:생존시 제위를 넘기는 것)을 받아 제위에 올랐다. 「좌전」에 이르기를, 막으로부터 고수에 이르기까지 명을 어긴 적이 없으니, 순이 써 밝은 덕으로 이를 거듭해 두주(杜注)에 이르기를, 막은 순의 선조니 막을 좇아 고수로부터 천명을 어기고 폐절(廢絶)한 자가 없다.

「정어(鄭語)」에 이르기를, 천하의 대공을 이룬 자 그 자손이니 하우(夏虞), 상(商), 주(周)의 본보기가 바로 이것이다. 우막(虞幕)은 능히 협풍(協風)을 듣고 음악을 만들어 만물을 낳게 한 자이다. 우막이 처음 고관(瞽官:소경 고, 악관 瞽 자, 음악을 맡은 벼슬)이 되었는데, 고수(瞽叟) 고(瞽) 또한 이 책에서 이르기를 고관(瞽官:악관)의 아들을 일컫는다.

「여씨춘추」 <고악편>에 이르기를 요(堯)가 고수를 명해 5현으로 된 거문고를 버리게 하고, 15현의 거문고를 만들라고 명해 상제에게 제를 지내 크게 드러냈다 했으니, 이는 수(叟)가 악사(樂師)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대개 막으로부터 수에 이르는 시대는 악정(樂正)이 우(虞)로 봉해진 것을 지켜 계승했으며, 구망은 다시 춘관(春官)직과 목정(木正)직을 겸했으니 「국어」「여람」을 보면 당시의 악관을 가히 알 수 있다.

유탐, 여량 비(碑)에 이르기를, 막이 궁선을 낳고, 궁선이 경강을 낳고, 경강이 교우를 낳고, 교우가 고수를 낳고 고수가 순을 낳았다고 했으니 「세본제계(世本帝繫)」와 비교하면 구망(句芒)이 빠져 있는데, 세본 등의 책에는 우막(虞幕)이 빠져있으며 한결같이 오자 탈자가 있다.

우(禹)는 전욱의 6세손이 되며(그러니 우리 백민이다. 뿐만 아니라 동이족 역학(易學)의 도통(道統)이 복희역의 하도(河圖) 복희팔괘와  우(禹)의 낙서(洛書) 문왕팔괘와  김일부의 정역(正易)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면 백민이 확실하다)  이를 추정하면 막으로부터 순까지는 이미 7세이니 막은 마땅히  전욱의 자(子)이다.

궁선으로부터 순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는 모두 미천한 서민으로 순의 부친 고수는 맹인이었다. 후에 나온 책에 전해 이르기를, 순 부친의 눈이 능히 좋고 싫음을 분별하지 못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이를 일러 고(瞽) 자에 어울리는 글자로 수(瞍:소경 수)를 붙여 불렀으니 이는 모두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 했다.

요는 재위 72년에 아황, 여영 두 딸을 순에게 시집가라고 명한다. <대대례 오제덕>을 보면 순이 아황으로부터 대명을 받았다 하고, <세본제계>를 보면 여영을 부인으로 취했다고 나온다. 「한서고금인표」를 보면 아황, 여영이 순의 두 비(妃)가 되었다고 나온다.






춘추전국시절 동이족인 초나라때 건설되었다. 왜 순과 관련된 요의 두 딸 아황과 여영의 사당을 이곳에 지었는가. 동정호가 있는 악양시는 동이족 국가인 초나라 영토였고  순은  동이족이었으며 요 또한 염황 후손으로 동이족인 전욱의 아들이라 하고 어머니 경도가 동이족 염제신농의 7세손녀였다. 지나의 고고학자들은 요 시절이 이미 부권제 사회로 진입해 있던 시절이었으나 산서성의 요 도읍지 임분은 소위 마을 국가로 아주 작은 국가였음을 말하고 있다. 심지어 양심적인 학자는 요순의 이상세계는 공자, 맹자에 의해 뻥튀겨진 것이라 실토하고 있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요, 순의 혈통 자체가 바로 동이족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주저하지 않는다. 윗 사진은 아황과 여영이 산서성 임분의 궁정을 도망나와 호남성 동정호 가운데에 있는 군산으로 피신해 호남성 남쪽을 바라보며 우 임금을 옹립하는 동이 삼묘족(치우의 정통후예)의 후예에게 암살당한 것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리며 한염없이 기다리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고 아래는 순임금을 그리다 죽은 두 비를 기려 군산에 가묘를 만들어 주고 양자강가의 전통적인 동이족 국가인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때 상비사를 만들어 제를 지내게 된 상비사 안내 표제다




「예문유취」<제왕부>에는 아황을 처로 삼고 여영을 잉(媵:몸종)으로 삼았다고 나온다. 유향의 「열녀전」에는 장녀가 아황(娥皇), 차녀가 여영(女英)인데 순이 이미 천자가 되었으므로 아황이 후(后)가 되고 여영이 비(妃)가 되었다고 한다.

「세본제계(世本帝繫)」등에 요는 황제의 4 세 손이고, 순은 황제의 8세손이므로 순이 조고(祖姑:할미 고)를 데리고 산 격이다. 「서전」<순전>을 보면, 고하노니 그대 순이여, 일을 꾀하고 말이 공을 이룬지 3년이니 그대가 위에 오르라 하였으나 순이 덕으로 사양하고 받지 않다가 선양해 받은 듯이 나온다. 그러나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를 보면 이러한 내용과는 다르게 나온다.

사서삼경이나 「죽서기년」이나 둘 다 위서(僞書)지만 이 대목에 있어 「죽서기년」이 비교우위를 점하므로 우선 「서전」<순전>과 다른 문제의 기사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제요의 아들 단주(丹朱)가 순(舜)을 피해 방릉(房陵)으로 갔으며(帝子丹朱避舜于房陵), 순이 양보해 단주를 이기지 아니하니-굳이 죽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침내 방(房)에 봉하여 우(虞)의 빈객이 되었다.(舜讓不克朱遂封于房爲虞賓) 3년에 순이 곧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에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오제본기>에 순이 양보해 단주를 피해 남하(南河)의 남쪽 아래로 피했으니(舜讓避丹朱於南河之南下) 죽서를 인용해 이르기를, -또 죽서를 인용하여 이르기를, 순이 요를 다시 방죽의 성채에 가두니 단주로 하여 그 아비와 함께 서로 보지 못하게 했다.(舜囚堯復偃塞丹朱使不與父相見也)

이 기록은 「기년(紀年)」본문 그리고 유지기(劉知幾)의 「사통(史通)」<의고편(疑古篇)>과 유사하지 않다.

생각하건대, 급총(汲冢:무덤) 쇄어(ꝯ語)에 이르기를, 순(舜)이 요(堯)를 평양(平陽)으로 내쫓아 추방했다고(舜放堯於平陽) 하는데, 쇄어(ꝯ語)와 「기년(紀年)」은 함께 급총(무덤)에서 발굴된 죽서(竹書)이니 가히 쇄어(ꝯ語)가 「기년(紀年)」이 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진서(晉書)」<속석전(束晳傳)>에 「기년(紀年)」과 경전(經傳)이 크게 다른 말을 하는 것을 들어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다.

<공자가 왜곡한 사서삼경, 곧 「서전(書典)」의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의 기록은 「죽서기년」 속에 전해지고 있는 이러한 본래의 역사를 송두리째 왜곡하다 보니 그 뿌리부터 비틀려나간 한민족의 역사는 오리무중의 지엽사가 되고 말았다.

순에 대한 요의 선양에 대한 기존의 역사왜곡과 동이족 혈통인 순마저 지나의 혈통으로 끌어대 요순시절을 이상시대로 신비화 시킨 것에 대해 한비자는 15권 34장 난(難) 1편에서  즉, 순이 역산(歷山)에서 밭갈고 하빈(河濱:황하강변)에서 고기잡고 뇌택에서 도자기를 빚을 때에 대한 고사에 대해 지나역사의 모순을 지적하여 성군인 요가 있었다면 왜 순때의 다툼이 있어 순이 이를 교화했는가 역설하고 있다.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부터 역산이라는 곳의 농부가 서로 다른 사람과의 논의 경계를 침범하여 자기 논을 넓혀 다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순이 이곳에 가서 농부들과 섞여 일했더니 1년이 되지 않아 논밭의 경계가 없어지고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속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또 황하 물가에서 고기잡이하는 동료들이 그물을 치는 장소로 인해 다투는 일이 그칠 새 없자 순은 또 이곳을 찾아 어부가 되어 함께 어울렸는데 1년이 못 가서 그 폐풍은 사라지고 그 장소를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미풍을 낳았습니다.

또 동방 미개한 땅에 사는 사람으로 언제나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익만 탐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든 그릇은 언제나 일그러진다든지 깨어지기 쉬웠으므로 순은 또 그곳에 갔습니다.

순은 열심히 자기의 일만 하고 있었지만, 1년이 못가서 순을 본받게 된 그들은, 그 제품이 조금도 일그러진다든지 하는 것이 없고 아주 튼튼한 것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혹자가 유자(儒者)에게 묻기를 “대체 순은 많은 사람에게 감화를 주었다고 하지만 그때 (성인으로 회자되는) 요제(堯帝)는 어디에 있었는가” 유자 “그때 요제는 천자가 되어 있었다” 혹자 “ 그렇다면 공자가 제요를 성인이라고 한 것은 무엇인가”

성인이 제위에 있었다면 천하에 간사한 자를 없앴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삼스러이 논밭의 경계를 가지고 다투었을 리 없으며, 성인인 천자 요제가 있는데 황차 순이 나서 단단한 도자기를 만드는 교화를 했을 리 없으니 순이 그들의 약점을 구했다는 것은 곧 요제에게도 과실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하니 순(舜)을 현자로 한다면 요제의 명찰(明察)을 부인해야 하고, 요를 성인으로 삼을 것 같으면 즉, 순의 덕화를 버려야 하는 논법이 성립된다. 그러니 쌍방을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했다.-

요순선양은 이것으로 이미 결론을 냈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대륙의 지나사학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객관적인 시각을 훑어볼 필요가 있다.



호남성 동정호 군산 상비사 입구 전경과 그곳에 모셔진 아황,여영 2비를 한국에 처음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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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담론215(속)요순선양,「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안원전   2003/02/28  6552
공지    한겨레 비난한 글을 읽고-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안원전   2003/03/06  21833
304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904
303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142
30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484
공지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5485
300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231
299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252
298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312
297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793
공지     특집기획.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 국내 최초 완전 공개! [4]  안원전   2003/05/12  23157
295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167
294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888
293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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