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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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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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 204. 요의 웅거지 산서성 임분:「묵자」 절용중편, 「한비자」 십과편 및 「순자」 왕패편, 양(楊) 주(注) 시자(尸子),5적(狄)은 하나 왈, 월지(月支), 둘 왈, 예맥(濊貊), 셋 왈, 흉노, 넷 왈, 선우(單于), 다섯 왈, 백옥(白屋)이라 하였다.
「장자」 <재유편>에 요(堯)가 공공(共工)을 유도(幽都)에 유배했다 하니 석문(釋文)에 이이(李頤)가 인용해 이르기를 곧 유주(幽州)라 했다. 또 「회남자」 <수무훈>에 고(高)가 주(注)하기를 음기가 서려있으므로 유도(幽都)이니, 지금의 안문(雁門) 이북이 이곳이라고 했다.

<요전>에 말한 바 요의 강역은 대저 곧 선진(先秦) 제 학자들이 하나같이 인정하는 것으로 족히 구하면 반드시 본 위치가 있으니 텅빈 허구를 캐는 것이 아니므로 「묵자」 절용중편, 「한비자」 십과편 및 「순자」 왕패편, 양(楊) 주(注) 시자(尸子) 인용 등을 참고 열람하면 자명하다.

「묵자」<절장하편>에 옛날 요(堯)가 북으로 8적(狄)을 교화시켰는데 도가 죽었다고 했다. 8적은 「시경」<소아(小雅) 료소(蓼蕭)> 공(孔) 소(疏:주석)에 이순(李巡)이 본 이아를 인용해 이르기를, 5적은 북방에 있다고 하고, 「예기」 <왕제(王制)> 공(孔) 소(疏:주석)에 이순(李巡)이 이르기를, 5적(狄)은 하나 왈, 월지(月支), 둘 왈, 예맥(濊貊), 셋 왈, 흉노, 넷 왈, 선우(單于), 다섯 왈, 백옥(白屋)이라 하였다.




산서성 임분 소재의 요묘(사당)의 본전에 안치된 방훈 요


이 소위 5적은 비록 전국시대, 진(秦),한(漢)이 북방민족의 개념으로 일컬은 근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석기 시대의 요순 시기와 더불어 반드시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는 일찍이 동북, 서북에 당도했으니, 즉, 선진(先秦) 학인들이 일치하여 승인하는 바다.

다시 동 「묵자」<절장하편>에 요(堯)가 공산(蛩山)의 음지에 장사지내졌다고 말한다. 「여씨춘추」<맹동기 안사편>에 요(堯)가 곡림(穀林)에 장사지내졌다 했고, <제왕세기>에 요(堯)가 방회(方回)와 더불어 양성(陽城)에서 노닐다가(遊) 죽었다(崩)고 전하며, 「산해경」<해외남경>에 적산(狄山)은 제요가 양지에 매장된 곳이라 했다.

장읍(張揖)이 주(注)한 사마상여 대인부(大人賦)(漢書 본 傳載) 및 「수경(水經)」에 호자하(瓠子河)가 이 경을 인용해 주석(注)하기를, 한결같이  적산(狄山)은 곧 숭산(崇山)이라 했다. 적산은 지금 하북성 청풍(淸豊)현에 있고, 곡림(穀林)은 <해외남경> 학(郝)의 소(疏:주석)에 황보밀의 설명을 인용해 곧 성양(城陽)은 또한 곧 한(漢)의 성양(郕陽)현이라고 말한다.

「괄지지」에 요의 능은 복주(濮州) 뇌택(雷澤)현 서쪽 3리에 있으며, 뇌택현은 본래 한(漢) 성양(郕陽)현이라 설명한다. 뇌택은 곧 우공(禹貢)의 뇌하택(雷夏澤)이니 지금 산동 복현(濮縣) 동남에 있다. 복현, 청풍(淸豊)은 서로 이웃하고 있으니, 가히 곡림(穀林), 적산(狄山), 공산(蛩山), 숭산(崇山)을 볼 수 있어 바로 이는 한 곳이다. 그리고 <제왕세기>에 양성은 곧 성양의 착오니 요의 무덤은 마땅히 지금의 산동, 하북의 경계에 있으며, 복현과 청풍의 사이에 있다.

산서성 임분(臨汾)시 성(城) 남쪽에 요의 사당이 있는데,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수경주(水經注)」에 “분수(汾水) 가장자리에 요묘(堯廟)가 있고 묘(廟) 앞에 비(碑)가 있다“고 했다. 요묘(堯廟) 옛터는 분하(汾河) 이서에 있고, 서진(西晋) 원강(元康) 년간에 분하(汾河) 동안(東岸)으로 옮겼으니 이로부터 현재의 요묘(堯廟)역사를 추산하면, 1600년 이상이 되었다. 그 뒤 당 고종 이치(李治)가 현경(顯慶) 3년(658) 사당 터를 부성(府城) 서남에서 부성(府城) 남쪽 5리쯤으로 다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지금까지 13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청의 강희제 34년(1695) 때, 임분(臨汾)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요, 순, 우 3성전(三聖殿)이 모두 무너져 없어져, 정부에서 은량 중의 자금을 대 다시 중수하여, 강희제가 3성전(三聖殿)의 편액을 썼다. 요전(堯殿)은 “광피사표(光披四表)”, 순전(舜殿)은 “준철문명(浚哲文明)”, 우전(禹殿)은 “만세영뢰(萬世永賴)” 청 이후 매년 음력 4월 28일,  봉묘회(逢廟會)를 열어 제사를 지낸다.





산서성 임분에 있는 요묘(사당) 본전



청의 함풍제 3년에 태평천국의 난 때, 이곳 평양(平陽) 태수가 저항하다 묘전(廟殿)이 훼손되고, 남문밖 역사가 불타고, 1900년 8국 연합군이 입경하자 자희태후(서태후)와 광서제는 수도를 떠나 피난에 올라 서안을 거쳐 임분에 와 만수궁(萬壽宮)에서 일박을 했다 하나, 만수궁은 1938년 국민당 시절 일본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으나 87년에 다시 지었다.  현재 청 대에 지어진 것은 요정정(堯井亭), 광천각(光天閣:五鳳樓) 등이다.

고수덕(高樹德)이 지은 향토사료 「요묘(堯廟)」의  “요묘역사연혁”에 의하면, “제요는 3황5제의 하나로, 5제 가운데 요거(堯居)를 머리로 친다. 공자가 상서를 정해 당우(唐虞)가 시작되었다. 사마천은 제요 이후의 역사를 믿을만한 역사라 하였다. 사마천이 공자가 거론하기 시작한 요를 한(漢)족 조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칼날을 들이댄 수학적 공리같은 명제를 펼쳐든 것이다.

사마천이 「사기」 가운데서 말하기를,

“학자들이 5제를 다양하게 칭하고 있지만, 오히려 「상서」만이 요(堯) 이래를 독점 게재했다” 이로 보면 화하(華夏)  문명은 제요 시대 때 시작되었으니, 가히 조사해 볼만한 역사다. 평양에는 황토고원 남단의 분수(汾水)가 흐르는 옛 기주(冀州)의 배에 속하는 곳이다. 도당씨 부락은 가장 먼저 이 곳에 일어나 발달했으며, 이로부터 중화문명 발상지의 뿌리조상이 되었다.

제요는 화하(華夏) 문명의 개척자와 문명시조로 염황(炎黃) 자손의 사랑과 숭배를 받아왔다. 선진(先秦)에서 진한(秦漢)에 이르기까지,사서 상에 사당을 지어 제요를 제사지냈다는 기록은 없다. 동한 광무제 유수(劉秀)는 일찍이 3공(公)이 “한(漢)은 마땅히 요(堯)를 제사지내야 한다(漢當郊堯)”라 건의했으나, 대신 두림(杜林)이 “한(漢)은 요(堯)와 아무런 인연관계가 없다”고 하여 작파(作罷)된 바 있다.(두림은 지나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한(漢)의 조정이 그 실상 동이족 혈통인 요(堯)와 아무 상관없다 하였다)

한(漢)나라 장제(章帝) 원화(元和) 2년(85년) 일찍이 관리를 파견해 제음성(濟陰城) 양영대(陽靈臺)에서 제요(帝堯)를 제사 지내니, 이로 보면 가히 당시에 아직 묘(廟)를 짓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위진(魏晋) 때 비록 묘(廟)를 지어 제사를 지냈으나,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미 확정적이었다. 북위(北魏) 태상(泰常) 7년(422년) 명원제(明元帝)가 교산(橋山:섬서성 황릉현)에 올라, 관리를 파견해 황제(黃帝), 당요 (唐堯) 묘(廟) 제사를 지냈다.

신가(神麚) 원년(428년), 태무제(太武帝)가 행광녕(幸廣寧)에 오르니, 큰 희생동물을 잡아 황제, 요, 순, 우를 제사지냈다. 이러한 것이 쭉 북위(北魏)까지 내려와, 효문제(孝文帝)가 조령(詔令)을 내려 설하기를, “요수(堯樹)는 곧 하늘의 공이라, 높고 크게 흥하게 다스렸으니 가히 평양(平陽)에서 제사를 지낸다. 동시에 순(舜)은 광녕(廣寧)에서 제사 지내고, 우(禹)는 안읍(安邑)에서 제사를 지내고, 문왕(文王)은 낙양(洛陽)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확정한다”

  원대(元代)의 한림직학사(翰林直學士) 왕반(王磐)은 일찍이 이를 지적하여, “삼가 제사 의전을 헤아리니, 역대 제왕은 3년에 한번 봄철 중월(仲月)에 당시의 국가 도읍지를 잡아 제사를 지낸다. 복희(伏羲)는 진(陳:하남성)에서 제사를 지내고....당요(唐堯)는 평양부(平陽府)에서 지낸다”


산서성 평양(平陽:현 臨汾)의 요묘(堯廟)는 진(晋)대에 이미 있어, 원래는 분하(汾河) 서안(西岸)에 있던 것을, 서진(西晋)  혜제(惠帝) 원강(元康) 연간에 분하(汾河) 동안(東岸) 곧 당시 평양 부성(府城) 서남으로 옮겼다. 당(唐) 나라는 요의 사당을 지어 제사지내는 것을 특별히 중시하여 당 고종(高宗) 이치(李治)는 400칸이 넘는 고대광실한 사당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 고종 이치는  현경(顯慶) 3년(658), 요묘(堯廟)를 평양 부성 5리로 옮겨 새로 지었으니 곧 지금의 요묘(堯廟)가 있는 터이다.  그 대전(大殿)을 이름하여 “문사전(文思殿)”이라 부르고, 궁(宮)은 “광택지궁(光宅之宮)”이라 부르고, 문은 “빈목지문(賓穆之門)”이라 불렀다.

전(殿)의 좌측에는 노군동(老君洞), 우측에는 덕성동(德盛洞), 뒤에는 옥황각(玉皇閣)을 두어 문사전이 중심이 되게 하여 혼잡하지 않게 했다. 요묘(堯廟)는 문사전(文思殿)을 중심으로 지은 것으로 전(殿) 안에는 당요(唐堯) 한사람만 받들어 제사하게 하고 한 건물에 각기 다른 방을 마련해 요순우(堯舜禹) 삼성(三聖)을 모셨다는 말이 있다.


다시 원론적인 얘기같지만 황제(黃帝)가 그렇듯이 요(堯) 역시 동이족이다. 잔소리 같지만 지나족의 상고 대륙사에 지나족은 없고 그 안에 또아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는 것은 대륙을 석권한 동이 제 족의 역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 요는 또 어째서 그런가. 길 안내하는 대로 잘 따라오기 바란다.

요의 이름은 방훈(放勛)이다. 내칠 방(放) 자에 수효를 세는 인원 할 때 쓰는 원(員)에 힘 력(力)을 한 훈(勛)은 공 훈(勳)자의 고자이므로 방훈(放勳)이라 해도 틀리지는 않는다. 중국인은 황제를 화하(華夏)민족의 혈통시조로 보고, 요를 화하(華夏)민족의 문명시조로 본다.

물론 상고시절의 지나족 한(漢)족은 빛깔도 없었으니 당연히 유방에 이르러 그 정체성을 가진 한쪽의 뿌리는 엄밀히 말해 황제의 서이(西夷)족, 우(禹)의 서하(西夏)족으로부터 시작해 문왕으로부터 시작된 주나라의 소위 화하(華夏)로부터 진한시절의 한(漢)족으로 역사에 얼굴을 내민다. 여기서 서이, 서하, 화하 등의 고정적인 정의는 사실상 없다.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 공자와 맹자 그리고 사마천이 동이족의 인종모판에서 한족의 뿌리를 어느 특정인으로 잡아 이종작업을 하면서 역사 굳히기를 할 적에, 상고대륙사의 인종모판은 모두 동이 제 족이므로 그 뿌리가 분명한 황제라든가,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 주공등의 역사를 모질게 싹둑 자르지는 못하고 어정쩡하게 잡아 인용했기 때문이다.


임분은 맨 아래 왼쪽에 있다. 태행산 서쪽으로 춘추시절에는 진(晋)나라였고 전국시절에는 조나라 위나라의 땅이었다. 진시황때 산서성의 성도인 지금의 태원(太原)을 설치했다. 산서성은 1000M고지의 화북평원 위에 있다. 오대산과 북악인 유명한 항산(恒山)이 있다. 지금은 중국 제일의 공업단지다. 송의 사학자 사마광의 고향이며 황하의 호구폭포(아래 참조),임분의 요묘(요사당)가 유명하며 대륙의 70%이상의 요, 금시기 이전의 고건축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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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358. 8仙人 중 유일 女선인 하선고(何仙姑)  안원전   2009/01/31  5176
32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3.《서경잡기(西京雜記)》의 작자는 누구인가?  안원전   2006/11/22  8931
324    담론198.「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소전(少典)의 비(妃)는 안등(安登)이니, 화양(華陽)에 유(遊)할쎄, 「예기」 <제법정의>에 이르기를 여산(厲山)씨는 염제라&중동지역이나 이집트의 도자기가 기원전 4-5천년 이전의 중국대륙의 도자기보다 뒤진다  안원전   2002/11/28  7963
323    담론199.신농의 부족이 남부로 스며들어갔을 때는 홍도시대의 일로, 세석기 문화인은 홍도문화인과 더불어 이미 목축, 교역, 건축, 의약을 알고 있었다(서량지)  안원전   2002/11/28  6556
322    담론200.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홍도문화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안원전   2002/11/28  6899
321    담론201.홍도와 회도문화는 한가지로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나와 구석기 말기에 대륙으로 나누어 들어가 발전한 동이족 부족,“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고사  안원전   2002/12/26  6178
320    담론 202. 채도문화와 황제 도읍지 및 제요(帝堯) 도당(陶唐)의 활동공간/’왕래하여 옮겨다니되 일정한 곳이 없으니, 군사들로 에워싸 지키면 곧 도읍지였다(遷徙往來無常處 以師兵爲營衛)‘ 좁아터진 분치 제후국 제요  안원전   2002/12/30  7841
319    담론203.<제왕세기>에 요(堯)의 도읍지는 산서 임분현(臨汾縣) 남쪽평양(平陽),「죽서기년」 요(堯)가 지금의 섬서성 오른쪽 산서성 기(冀)에 거함  안원전   2003/01/07  6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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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담론205요(堯)의 어머니는 바로 동이족 염제 신농씨 가문 진봉(陳鋒)씨의 따님인 경도(慶都)라는 아가씨로 동이족 염제의 7세손  안원전   2003/01/13  6314
316    담론 206. 서량지의 동이족 전욱의 출자& 사마천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강성과 왕숙, 장자의 직필, 요의 혈통적 배경과 모친 경도로부터의 신비화 작업  안원전   2003/01/13  6290
315    담론207. 제요 방훈시기는 원시사회의 부계씨족 사회 말기단계로, 도처에 부락 규모의 국가가 숲처럼 가득 들어찬“부락방국임립지시(部落方國林立之時)”의 시기  안원전   2003/01/21  6101
314    담론 208. 한무제 유철과 황후가 된, 요(堯)의 고향이자 도읍지 산서성 임분 출생의 일개 기녀, "위자부(衛子夫)"의 러브로망  안원전   2003/01/27  6464
313    담론 209.우 임금 시절에 대한 실루엣-서쪽으로 하남(河南) 서부와 산서(山西) 서남부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지금의 하남(河南), 하북(河北) 산동(山東) 3성(省)의 경계지방에 이르렀으며, 남쪽으로 호북(湖北)에 접하고 북으로는 하북(河北)으로 들어가-  안원전   2003/01/27  5936
312    담론210.왕성강(王城崗) 유적지의 발굴을 하(夏) 문화 탐색의 중요 수확으로 여기고 있다.  안원전   2003/01/27  6269
311    담론212.악사(樂師)였던 고수(瞽瞍)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의 요순 선양실체-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니 순이 (요를) 가둔 바 되었다.(昔堯德衰爲舜所囚也  안원전   2003/02/12  6795
310    담론213.대륙의 지나사학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요순(堯舜) 선양(禪讓)의 실체-  안원전   2003/02/18  7869
309    담론211.「죽서기년」에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 [1]  안원전   2003/02/21  6582
308    담론163.파촉(巴蜀) 땅은 일찍이 이들 복희씨의 사(蛇) 도등(圖騰) 족이 웅거하여 상고시절에 이름을 얻은 지역이니 파촉의 파(巴:大蛇)는 큰 뱀을 의미하여 「설문(說文)」에 '파(巴)는 충(蟲:동물의 총칭), 혹은 코끼리를 먹는 뱀' [1]  안원전   2003/02/25  6151
307    담론214.(속)요순선양. “요순선양(堯舜禪讓)”설이 실은 전국시대 초기의 묵가(墨家)가 창조한 것  안원전   2003/02/28  7052
306    담론215(속)요순선양,「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안원전   2003/02/28  6552
공지    한겨레 비난한 글을 읽고-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안원전   2003/03/06  21834
304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904
303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142
30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484
공지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5486
300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231
299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252
298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312
297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793
공지     특집기획.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 국내 최초 완전 공개! [4]  안원전   2003/05/12  23158
295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167
294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889
293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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