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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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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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 202. 채도문화와 황제 도읍지 및 제요(帝堯) 도당(陶唐)의 활동공간/’왕래하여 옮겨다니되 일정한 곳이 없으니, 군사들로 에워싸 지키면 곧 도읍지였다(遷徙往來無常處 以師兵爲營衛)‘ 좁아터진 분치 제후국 제요

자료로 보는 채도;
*물고기 문양의 채도병(魚紋彩陶甁):앙소문화의 계승자인 마가요 문화권이 있는 이곳 감숙 청해 일대는 태호복희의 대지만 유적지와 태호복희 시대의 앙소문화가 있던 곳이니 그 영향을 받은 문화권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러한 작은 물고기는 인류의 시조 복희씨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여기거나 혹은 복희씨의 병아리 형태로 여기고 있다.
*오리형 채도 항아리(彩陶鴨形壺): 물오리 형태로 만든 물 항아리로, 몸체 위에는 물결 무늬인 수파문(水波紋)을 넣어 질펀한 물 사이를 유영하는 물오리 형상을 표현했으니 이는 크게 연 물오리 입이 인상적이며, 짧은 꼬리와 오리 날개가 보인다. 중국의 고고학에서는 채도가 중국의 뿌리로 견강부회한 황제 시대의 작품이라 하지만 객관적인 대륙고고학을 살피면 황릉이 있던 섬서성 황릉현 교산 지대는 바로 감숙성 천수의 태호복희와 섬서성 바오지의 신농씨 고향이 있는 곳이니 바로 동이족의 소산이라 할 수 있고 황제 역시 엄연한 동이족이었으니 동이족의 작품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 채도문화에 대해 잠시 알아보기로 한다. 겉면을 문질러 광을 내고 홍색, 흑색의 꽃 무늬를 새겨 넣은 채도문화는 곧 중국 신석기 시대의 농업문화이니 황제씨가 대표적이다. 씨는 곧 씨족 혹 부족을 총칭해 부르는 이름이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채도는 본시 세계 전역에 분포된 도기의 한 종류이므로 약간의 서양학자들은 모두 중국 채도가 서양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실인즉 중국 채도의 본신은 확실히 종종 흔적이 있어 그 초기에 세계 채도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이 같은 서래 문화설은 거꾸로 서부 문화설 만도 못하여, 혹 세계 채도문화에서 별도의 문화이므로, 이름을 중국 채도문화라 한 것이다.(채도문화의 부흥1 Click here!. 채도문화의 부흥2 Click here!채도문화의 부흥3Click here!)

「이 문화가 남긴 유적지는 하남 승지현 앙소촌으로 앙소문화로 불린다. 채도는 거의 정교한 제품으로 홍도문화로 불리는 홍도도 다수 있다.(실인즉, 홍도는 곧 강적(羌狄:동이족 신농씨 후예)의 문화로 하나의 계통으로 헤어져 별다른 한 부족의 문화이다) 이 유물들은 해발 50공척에서 3천 공척의 고지에서 많이 발굴되어 고지문화로 불리며 필경 채도가 위주되어 발굴되어 채도문화의 대명사인 앙소문화로 간주해 호칭한다.

채도문화 및 황제씨, 도당(陶唐)씨, 하후(夏后)씨의 문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채도문화는 시공간적으로 중국역사의 역사이전에서 역사이후로 직접 영향을 주었고 중원에 영향을 직접 주어 변방으로 퍼져 나아가 해외로 나아갔다. 현재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명은 이미 전설사료와 지하발굴사료가 완전히 일치해 실증된 상황이다. 먼저 황제를 설명하면, 「제왕세기」에 ‘황제는 수구(壽丘)에서 태어났다’, ‘나라를 유웅에게서 받았다’(「사기」 정의에 ‘수구는 노(魯)의 동문 북에 있다 했으니 지금의 연주(兗州) 곡부현 동북 6리다’ 「사기」 집해를 인용해 황보밀이 유웅(有熊)은 곧 지금의 하남 신정(新鄭)이라 했다)

수경(水經) 주(注)에 위수(渭水)를 주(注)해 ‘남안(南安) 요첨(姚瞻)은 황제가 천수(天水)에서 태어났다는 곳이 되는데, 상규성(上邽城:규(邽)산은 복희가 팔괘를 그은 산으로 감숙성 천수(天水)현 서남쪽에 있는 산임) 동쪽 70리 헌원 계곡에 있다.’ 「제왕세기」에 ‘(황제가) 헌원의 언덕에 거주한 고로 이름이 되고 또 호가 되었다’(헌원의 언덕 사해(辭海)는 옛날 터로 지금의 하남 신정(新鄭)현 서북이 된다 했으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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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족 성지 황제릉"이라 기록된 섬서성 황릉현 교산 산등성이에 있는 황릉의 안내판 2002년 7월 말 답사촬영

수경 위수 주에 인용한 요첨(姚瞻)의 언급을 참고하면,

-상규성 동쪽 70리에  헌원 골짜기가 있고 헌원 골짜기 물이 헌원 계곡물에서 나오는데 이 물이 위수(渭水)의 근원이다. 또 「산해경」<해외서경>에 이르기를 ‘헌원의 언덕은 헌원국의 북쪽에 있다’ 소위 헌원의 언덕은 감숙, 섬서의 사이에 실재하며, 황제씨는 마땅히 중국 서북에서 흥기했음을 족히 본다. <제황세기> 및 <사기정의>에 황제가 수구에서 태어나고 수구는 연주 곡부 운운하고 있으나 한결같이 신빙성이 부족하다.)

「사기」<오제본기>에 (사마천이 황제의 치적을 과장해 이르기를) ‘헌원이 이에 덕을 닦고 병사를 떨쳐 일어났다,....염제와 더불어 판천의 들에서 싸웠다,...치우와 더불어 탁록의 들에서 싸웠다. 천하에 순종치 않는 자가 있어, 황제가 나아가 이를 정벌하니, 다스리는 자 이를 떠나갔다, 산을 개척해 길을 내니, 편안히 산 적이 없다. 동으로 바다(황해, 발해)에 이르고, 환산(丸山:청주 임포현)과 대종(垈宗:산동반도의 태산)에 올랐다.

서로는 공동(空棟:隴右에 있다)에 이르고, 계두(雞頭:감숙 大隴山의 이명)에 올랐다. 남으로는 강(江:장강 곧 양자강)에 이르러 웅상(熊湘: 「괄지지(括地志)」에 웅이산(熊耳山)이 상주(商州) 낙현(洛縣) 서쪽 10리에 있으며, 제환공이 이에 올라 강한(江,漢)을 바라보았다. 상산(湘山)은 일명 편산(艑山)으로 악주(岳州) 파릉현(巴陵縣) 18리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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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지지(括地志)」에 웅이산(熊耳山)이 상주(商州) 낙현(洛縣) 서쪽 10리에 있으며, 제환공이 이에 올라 강한(江,漢)을 바라보았다. 상산(湘山)은 일명 편산(艑山)으로 악주(岳州) 파릉현(巴陵縣) 18리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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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서성 황릉현 교산 산자락에 위치한 황릉묘(사당)


熊耳山이니 湘山에 합치된다)에 올랐다. 북으로는 훈죽(葷粥)을 쫓아내고,  부산(釜山)은 지금의 찰합이(察哈爾) 회래현(懷來縣)에 있으며 탁록은 곧 찰합이 탁록현이다. 황제에 대한 많은 기사는 과장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서전」에 황기천리라 해서 황제는 그만두고 요순시절도 단군성조의 분치국으로 그 넓이가 천리를 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예기」를 보아도 궁실이 띠풀로 엮은 초막으로 흙으로 만든 계단이 불과 3단에 불과했다. 모두 공자와 사마천의 왜곡 이후 확대 재생산된 기록들이다.  

부산(釜山)을 합치고 탁록의 언덕(阿)에 국도(邑)를 세웠다. 「죽서기년」에 황제가 낙수에 제사를 지냈다 하고, 「여지기(與地記)」에 ’탁록은 본래 팽성(彭城:후일 초나라의 항우 거점도시)이 되었으며, 황제가 처음 도읍했으며, 유웅(有熊)으로 천도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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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釜山)은 지금의 찰합이(察哈爾) 회래현(懷來縣)에 있으며 탁록은 곧 찰합이 탁록현이다. 황제에 대한 많은 기사는 과장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서전」에 황기천리라 해서 황제는 그만두고 요순시절도 단군성조의 분치국으로 그 넓이가 천리를 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예기」를 보아도 궁실이 띠풀로 엮은 초막으로 흙으로 만든 계단이 불과 3단에 불과했다. 모두 공자와 사마천의 왜곡 이후 확대 재생산된 기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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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색은>에 ’헌원의 언덕에 도읍했다‘ <오제본기> 수경(水經)에 위수(渭水)를 주(注)하기를, 요첨(姚瞻)을 인용해 설명하니 즉, 진창(陣倉:신농씨 고향인 지금의 섬서성 바오지(寶鷄市))이 된다. 이 부분에 대해 서량지는 고고학적인 안목으로 황제시대는 농목경제시대로 고정적인 도읍지라 일컬을 것이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이는 한마디로 황제의 치적을 과대포장해 부풀린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서량지는 태사공이 소위 ’왕래하여 옮겨다니되 일정한 곳이 없으니, 군사들로 에워싸 지키면 곧 도읍지였다(遷徙往來無常處 以師兵爲營衛)‘ 운운 한 것과 황제 도읍지 3가지 설이 바로 도읍지가 따로 없었던 농목경제의 특성을 밝힌 증거라 말한다.


황제가 천수(天水)에서 태어났다는 곳은 진창(陣倉)이 근거지이다. 진창은 곧 지금의 섬서 보계현(寶鷄縣)이니 천수와 더불어 한가지로 위수(渭水) 유역에 속해 서로간의 거리가 백 여 리에 불과하다. 「가자(賈子)」 <신서수정편>에 ‘황제가 모래사막을 건너 곤륜에 올랐다’ 하고 「서응도(瑞應圖)」에 ‘황제때 서왕모가 백가락지를 바쳤다’ 하니 모래사막은 곧 신강 탑극납마간(타클라마칸) 사막이며, 곤륜주산 및 서왕모국은 한결같이 지금의 신강에 있으니 한인(漢人)은 황제가 일찍이 신강에 당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기」 <오제본기>에 ‘황제가 붕하니 교산(橋山)에 장사지냈다’ 하고 황람 주에 황제의 무덤이 상군(上郡) 교산(橋山)에 있다 하였다.  「죽서기년」 또한 「한서지리지」를 인용해 황제의 무덤(塚)이 상군(上郡) 양주(陽周) 교산(橋山) 남쪽에 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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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기년」 또한 「한서지리지」를 인용해 황제의 무덤(塚)이 상군(上郡) 양주(陽周) 교산(橋山) 남쪽에 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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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지」에 교산은 상군 동양현에 있으며 산에 황제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황제의 무덤은 지금의 섬서 중부현에 있어, 그 최초의 근거지 진창과 더불어 바로 동일구역에 속한다) 장태염(章太炎)은 「검론서종성상(檢論序種姓上)」에서 황제의 기원은 마땅히 인도, 대하(大夏), 서역 36국 사이에 있으며, 북으로는 옹량(雍涼) 즉 강(羌)과 마주했으며, 남으로는 전(滇:오랑캐 전), 흑수 즉, 모(髳:운남성 남부 종족)와 접했다 하고, 황제가 교산에 장사지내져 땅이 진농(秦隴)에 있다 하였다.

「그럼 황제 이상으로 왜곡된 단군 조선의 분치국 제후인 제요(帝堯) 도당(陶唐)씨의 활동공간을 보자. 같은 위서지만 비교적 도당씨에 대한 솔직한 기록을 전하고 있는 「죽서기년」의 기록도 아울러 음미해 보자. 「죽서기년」에 제요는 동방족 제곡(帝嚳)의 후예(裔子)로 성은 기(祁), 이름은 요(堯)로, 세본사기(世本史記) 등 사서에 이르기를, 요는 곡(嚳)의 자손이 되며, 춘추가 묶어 이르기를 곡(嚳)은 10세(世)를 전하고, 요(堯)가 이를 잇기 시작했으나 모두 믿기 어렵다 했다.

제요의 후예인 방(房), 두(杜), 범(范)씨 모두는  태호복희씨가 풍(風)을 가진 이래 상고시대에는 왕실에서 백성들에게 성씨를 부여해 주는 관리를 따로 두었으니 그 관직명을 사상(司商)이라 했다. 그리하여 호구를 관리하는 직책을 사민(司民), 군사의 수를 점고하는 직책을 사도(司徒), 치안형벌 책임직을 사구(司寇)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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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복희씨가 풍(風)을 가진 이래 상고시대에는 왕실에서 백성들에게 성씨를 부여해 주는 관리를 따로 두었으니 그 관직명을 사상(司商)이라 했다. 그리하여 호구를 관리하는 직책을 사민(司民), 군사의 수를 점고하는 직책을 사도(司徒), 치안형벌 책임직을 사구(司寇)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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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성 임분 요묘 후원의 전경

성이 기(祁)이니 「좌전」, 「국어」 및 「주기(周紀)」에서 그의 성이 기(祁)임을 가히 알 수 있다. 도당은 모두 땅의 이름이니 책에 이르기를 저 도당이 하늘의 5 상(常)을 거느린다 하고, 도구(陶邱)에 제음(濟陰)이 있어 요(堯)라는 성(城)이 있으니(아들 단주도 땅 및 城이름), 요가 일찍이 뒤에 당(唐)에 거주한 일이 있어 도당(陶唐)씨라 했다.

공자가 지나족의 이상시대로 둔갑시켜 놓은 요순시대는 단군조선에 비하면 실로 좁아터진 분치 제후국이다. 지금의 산동성, 산서성 한 구석에 웅크렸던 요의 황기천리(皇畿千里) 기록을 보라. 얼마나 좁은 곳인지.

비록 「죽서기년」 뿐 아니라 각종 상고사서는 간헐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위소(韋昭)가 이르기를 도당(陶唐)은 모두 나라이름인데, 은의 개국조 탕임금(湯) 조차 은상(殷商)이라는 나라이름으로 칭한다. 지금 도(陶)는 산동 조주부(曹州府) 정도현(定陶縣) 서남 당지(唐地)에 있는데 소재는 하나가 아니다.

「한서」<집해>에 응소(應劭)가 이르기를 중산국(中山國) 당현(唐縣)이 옛 요국(堯國)이다 했다. 당수(唐水)가 그 서쪽을 흐르고 있으니 정강성(鄭康成:스스로 동이족이라 밝힌 정현)이 「시보(詩譜)」에 이르기를 당(唐)이란 곳은 제요의 옛 도읍지의 땅이니(帝堯舊都之地), 지금의 태원(太原:수양제에 미움받은 당고조 이연과 그 아들 당태종 이세민이 태수로 좌천되어 있던 곳) 진양(晋陽)이 바로 이 곳이다.

요(堯)가 처음 이 곳에 도읍하여 후에 하동(河東) 평양(平陽)으로 옮겼다. 「제왕세기」에 이 설을 같이 취해 이르기를, 요시봉어당금중산(堯始封於唐今中山)이라 해서 요가 지금의 중산(中山) 당현(唐縣)인 당(唐)에서 봉함을 받기 시작했는데, 후에 진양(晋陽) 및 천자의 도읍지로 시(詩)에 당국(唐國)이 되는(<詩譜正義>) 평양(平陽)으로 옮겼다.






지금 중산의 당(唐)은 직예(直隸) 보정(保定)에 있고, 진양의 당(唐)은 산서 태원(太原)에 있으니, 대개 요가 첫 둥지를 틀고 봉함을 받은  곳은(堯之初封在中山之唐) 중산의 당(唐)이며, 이와 더불어 그리워 바라만 보던 땅인 요의 모(母)가 매장된 진양의 당(唐)은 곧 요의 후예들이 봉해진 나라일 뿐, 요가 여기로 옮겨 봉해진 것이 아니다.






327    담론197.동이(東夷), 서하(西夏)적 용봉 2원 연맹-이하(夷夏)일가의 중국민족 구성과 전통문화 탄생의 원시적 기초&화샤(華夏)족의 형성  안원전   2002/11/28  7244
32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358. 8仙人 중 유일 女선인 하선고(何仙姑)  안원전   2009/01/31  5176
32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3.《서경잡기(西京雜記)》의 작자는 누구인가?  안원전   2006/11/22  8931
324    담론198.「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소전(少典)의 비(妃)는 안등(安登)이니, 화양(華陽)에 유(遊)할쎄, 「예기」 <제법정의>에 이르기를 여산(厲山)씨는 염제라&중동지역이나 이집트의 도자기가 기원전 4-5천년 이전의 중국대륙의 도자기보다 뒤진다  안원전   2002/11/28  7963
323    담론199.신농의 부족이 남부로 스며들어갔을 때는 홍도시대의 일로, 세석기 문화인은 홍도문화인과 더불어 이미 목축, 교역, 건축, 의약을 알고 있었다(서량지)  안원전   2002/11/28  6556
322    담론200.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홍도문화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안원전   2002/11/28  6899
321    담론201.홍도와 회도문화는 한가지로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나와 구석기 말기에 대륙으로 나누어 들어가 발전한 동이족 부족,“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고사  안원전   2002/12/26  6178
   담론 202. 채도문화와 황제 도읍지 및 제요(帝堯) 도당(陶唐)의 활동공간/’왕래하여 옮겨다니되 일정한 곳이 없으니, 군사들로 에워싸 지키면 곧 도읍지였다(遷徙往來無常處 以師兵爲營衛)‘ 좁아터진 분치 제후국 제요  안원전   2002/12/30  7841
319    담론203.<제왕세기>에 요(堯)의 도읍지는 산서 임분현(臨汾縣) 남쪽평양(平陽),「죽서기년」 요(堯)가 지금의 섬서성 오른쪽 산서성 기(冀)에 거함  안원전   2003/01/07  6765
318    담론 204. 요의 웅거지 산서성 임분:「묵자」 절용중편, 「한비자」 십과편 및 「순자」 왕패편, 양(楊) 주(注) 시자(尸子),5적(狄)은 하나 왈, 월지(月支), 둘 왈, 예맥(濊貊), 셋 왈, 흉노, 넷 왈, 선우(單于), 다섯 왈, 백옥(白屋)이라 하였다.  안원전   2003/01/08  7817
317    담론205요(堯)의 어머니는 바로 동이족 염제 신농씨 가문 진봉(陳鋒)씨의 따님인 경도(慶都)라는 아가씨로 동이족 염제의 7세손  안원전   2003/01/13  6314
316    담론 206. 서량지의 동이족 전욱의 출자& 사마천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강성과 왕숙, 장자의 직필, 요의 혈통적 배경과 모친 경도로부터의 신비화 작업  안원전   2003/01/13  6290
315    담론207. 제요 방훈시기는 원시사회의 부계씨족 사회 말기단계로, 도처에 부락 규모의 국가가 숲처럼 가득 들어찬“부락방국임립지시(部落方國林立之時)”의 시기  안원전   2003/01/21  6101
314    담론 208. 한무제 유철과 황후가 된, 요(堯)의 고향이자 도읍지 산서성 임분 출생의 일개 기녀, "위자부(衛子夫)"의 러브로망  안원전   2003/01/27  6464
313    담론 209.우 임금 시절에 대한 실루엣-서쪽으로 하남(河南) 서부와 산서(山西) 서남부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지금의 하남(河南), 하북(河北) 산동(山東) 3성(省)의 경계지방에 이르렀으며, 남쪽으로 호북(湖北)에 접하고 북으로는 하북(河北)으로 들어가-  안원전   2003/01/27  5936
312    담론210.왕성강(王城崗) 유적지의 발굴을 하(夏) 문화 탐색의 중요 수확으로 여기고 있다.  안원전   2003/01/27  6269
311    담론212.악사(樂師)였던 고수(瞽瞍)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의 요순 선양실체-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니 순이 (요를) 가둔 바 되었다.(昔堯德衰爲舜所囚也  안원전   2003/02/12  6795
310    담론213.대륙의 지나사학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요순(堯舜) 선양(禪讓)의 실체-  안원전   2003/02/18  7869
309    담론211.「죽서기년」에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 [1]  안원전   2003/02/21  6582
308    담론163.파촉(巴蜀) 땅은 일찍이 이들 복희씨의 사(蛇) 도등(圖騰) 족이 웅거하여 상고시절에 이름을 얻은 지역이니 파촉의 파(巴:大蛇)는 큰 뱀을 의미하여 「설문(說文)」에 '파(巴)는 충(蟲:동물의 총칭), 혹은 코끼리를 먹는 뱀' [1]  안원전   2003/02/25  6151
307    담론214.(속)요순선양. “요순선양(堯舜禪讓)”설이 실은 전국시대 초기의 묵가(墨家)가 창조한 것  안원전   2003/02/28  7052
306    담론215(속)요순선양,「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안원전   2003/02/28  6552
공지    한겨레 비난한 글을 읽고-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안원전   2003/03/06  21834
304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904
303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143
30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485
공지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5486
300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231
299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252
298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312
297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793
공지     특집기획.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 국내 최초 완전 공개! [4]  안원전   2003/05/12  23158
295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167
294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889
293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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