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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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링크 #1    http://www.peopledaily.com.cn/GB/wenyu/68/20020506/722865.html
제 목    담론201.홍도와 회도문화는 한가지로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나와 구석기 말기에 대륙으로 나누어 들어가 발전한 동이족 부족,“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고사
2001년 중국 고고학 10대 유적지 발굴 중의 6번째 발굴처인-六、?州赫章可??址墓葬(고대 남이족 야랑국 유적지)-2001年9?10月,?州省文物考古?究所?同赫章?文管所在赫章可??掘古代夜??期“南夷”民族??至西??期墓葬108座,有?多重要??,其中一些奇特的埋葬?俗及具有?郁民族特色的?葬器物更?珍奇。2001年度中?十大考古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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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랑족은 고대 양자강 중하류의 동이족인 백월족(百越族)의 하나임. 고대 백월족(百越族)은 굉장히 광범위하게 나눠지는데 월(越), 낙월(駱越), 오월( 越), 민월( 越), 동월(東越), 양월(揚越), 산월(山越), 남월(南越), 서월(西越), 월상(越裳), 단국( 國), 등월(騰越), 디엔월( 越), 부어국( 國), 야랑(夜郎)등으로 백월(百越)은 양자강이남의 대부분의 소수민족을 이룬다. 진나라이후 강력한 중앙집권적 봉건왕조가 일어나 남쪽지역을 정벌해 일부는 한족과 융화하지만 일부는 3세기 초인 위, 진 시대에 와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생활하게 된다. 현재 광동 광서 및 장족 자치구, 해남도, 베트남에 가장 많이 몰려 산다, 베트남도 바로 동이족 신농의 후예인 백월과 동이 묘족의 후예로 건설된 민족이다. 베트남 뿌리Click here!)


홍도와 회도문화는 한가지로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나와 구석기 말기에 대륙으로 나누어 들어가 발전한 부족이며 회도문화는 홍도문화구역으로 미리 침투해 들어가 채도문화의 씨를 뿌리고 채도문화와 혹은 혼합한다.(이들이 "환국"-"광명제국"의 후예인 것은 이제 굳이 환단고기를 들먹이지 않아도 잘 알것이다. 구차스런 설명같아 이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회도의 다른 이름은 <박문도(拍紋陶:무늬를 손으로 두드려 만듬)>인데, 그 제조방법이 홍도의 인문(印紋:도장처럼 찍어 제조)으로 계승해 전해졌으며 이 시기에 이르러 장성 천참(장성의 원형) 일대의 세석기 문화는 이미 채도문화와 혼합한 시기였거나 그 소멸기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중국민족에 있어 황제시대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농국과 환웅 배달국의 남북전쟁으로 동서연맹(동이서하 연맹)을 만들어 연맹의 주체는 동방족 봉(鳳) 도등의 동이와 서방족 용(龍) 도등(圖騰:깃발로고)의 서하(西夏)가 되었다. 동이는 봉조(鳳鳥)씨의 소호(少?)가 대표가 되어 최고 도등을 장악했고, 서하족은 황룡씨의 황제가 대표가 되어 최고도등을 장악했다. 그리하여 서 량지는 이 <동이서하연맹>을 ‘이하일가 중국민족구성 정통문화탄생의 원시기초’라 한 것이다.


황제의 본 족 중의 하나는(외가) 곤륜의 터인 신강 탑리목(塔里木:타림) 분지의 유웅(有熊)국으로 웅도등 족이었다. 그리하여 황제씨는 본래 웅 도등을 본위로 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친가쪽인 신농 부족의 도등 체계가 복잡하자 이를 종합했다.

홍적통 초기에 탑리목에 기상이변이(타림사막화가 진행)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유웅족과 서왕모족은 사막화와 기상이변에 굴복하지 않다가 후일 신석기 시대에 양대 도등(圖騰:깃발로고) 씨족을 하나로 합쳐 황제를 맹주로 하는 연합세력으로 확대해 탁록에서 각문도(刻紋陶) 계의 치우 세력과 한 판 붙었으며, 세석기 계열의 신농씨를 판천에서 저지하고 중원지구에서 채도문화를 휘황찬란하게 건설했다는 게 서 량지의 주장이다.

물론 이는 고고학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요 가설이라 지금까지 설명한 부분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서 량지 역시 지나족으로서 사마천의 왜곡을 답습해 치우천왕을 탁록에서 격살, 궤멸시킨 것으로 기술했음은 물론이다.

서량지는 이들 유웅족과 서왕모족이 「상서요전」에 등장하는 ‘주호웅비(朱虎熊?:큰 곰 비)’의 이면적 실체이며, 「사기」<오제본기>에 황제를 기본 부대로 조직해 만든  ‘비휴(??:표범일종으로 비는 수컷, 휴는 암컷)’ 도등(圖騰:깃발로고 토템) 씨족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며, 염제와 더불어 판천의 들에서 전쟁을 했다는 ‘웅비(熊?)’, ‘추호(?虎:맹수이름 추, 추호는 호랑이 비슷한 맹수) 부대가 바로 이것이라 말한다.

그리하여 소위 주호(朱虎), 추호(?虎)는 바로 서왕모 족의 도등이니, 「산해경」<대황서경>에 서왕모를 설명하기를 ‘호랑이 치아에 표범의 꼬리가 있다’ 했으니, 바로 이것이 이 일개 씨족의 도등신을 묘사한 실체라고 했다.

유웅씨(곧 웅비(熊?)이니 「사기정의」에 ‘비(?)는 웅(熊)과 같아 황백색이다’)는 서왕모씨(곧 주호 혹 추호) 와 합쳤으니, 이는 모두 홍적통 전후, 중국서부 곤륜의 터 곧 탑리목(타림) 분지에 머물러 거주했던 원 씨족으로 또한 곧 형제씨족이다. 이로 인해「신서(新書)」<수정(修政)편>에 ‘황제가 유사(流沙:사막)를 건너 곤륜에 올랐다’는 전설이 있으며, 「서응도(瑞應圖)」에 ‘황제 때에 서왕모가 백가락지를 헌사했다’ 전설이 있고, 한무제 시대로 직접 내려와 <서웅(西熊)>이라는 이름이 다시 돌아온 이유이며, 혜왕(惠王)의 아들 유명(劉明)을 광천(廣川)에 봉해 서웅(西熊)족이 되었다.(見「사기」 건원이래 왕자후자연표 및 「전한서」 왕자후표)

한무제 본인도 서왕모와 왕래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어 중국고전문학의 먼 지평이 되어 허다한 자료를 첨가되었다.

대륙에서는 우리 동이 제족의 하나인 남이(南夷)족에 대한 역사 연구가 무척 활발한데 반도사학에 젖은 한국에서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하여 야랑고국(夜郞古國)으로도 불리고 있는 남이(南夷)족에 대한 연구 현황을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날 대륙에서는 “야랑자대(夜郞自大)”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야랑자대는 무엇인가. 중국인들이 저 사람 야랑자대한 사람이라 하면 그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소리다. 야랑(夜郞)은 소위 지나사관으로 동이족을 비하하여 오랑캐로 표현한 그들 지나의 말을 그대로 차용해 사용하자면, 서남 오랑캐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우세했던 전설적인 남이(南夷)족 나라 야랑 국의 왕이 한(漢)나라 사신에게 야랑 국과 한(漢)나라의 우열을 물었다는"한나라와 우리나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漢與夜郞孰大)?"
유명한 고사를 오히려 자존자대한 한(漢)족들이 세상물정 모르는 정저지와(井底之蛙)라는 뜻으로 퍼뜨린 말이다.

그러나 그 실은 중국의 4대 미인으로 일컬어지는 왕소군이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가고 오히려 조공을 바쳤던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야랑자대라는 말 속에 전형적인 지나족 사가들의 뒤틀린 관견(管見)내지 관설(管說)이 숨어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논외의 주제이므로 생략하고 남이(南夷)족 야랑고국(夜郞古國)의 실체에 대한 윤곽만 밝히고 가려 한다.

중국인에게도 야랑자대라는 말은 퍼져 있어도 막상 야랑고국(夜郞古國)의 실체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인은 이에 대해서 더더욱 알고 있지 못하다.

-남이(南夷)족 야랑고국(夜郞古國)은 지금의 운남성을 배경으로 하여 전성기에는 북으로 호남성, 호북성으로부터 하남성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사천성까지 그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사료들을 종합해 보면 동이족 국가였던 오나라, 초나라의 영역이 야랑고국(夜郞古國)의 영역과 겹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년 들어 대륙 사학계에서는 야랑(夜郞)에 대한 연구가 날로 깊어가고 있어, 야랑(夜郞)의 미스테리는 가히 활짝 밝혀질 기대에 차있다. 야랑고국(夜郞古國)은 일개 계급사회의 국가로 혹자는 원시부락연맹에 불과하여, 전국시대 서한(西漢) 하평(河平) 연간 시기에 250여 년을 지속한 국가로 일찍이 역사에서는 아주 저명하게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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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인은 소위 야랑 왕이 “너희들 한(漢)나라는 우리와 비교해 누가 더 크냐”고 말한 일화로 근 2천년간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했다고 말한다. 당시에“서남이(西南夷) 군장이 십 수명에 달했으며, 그 중에서 야랑(夜郞)이 가장 컸다.”,“정예병이 가히 10여 만에 달한다.”는 등의 정황으로 보면, 그들이 한(漢)에 견줄 만큼 자존, 자대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기(史記)」,「한서(漢書)」,「후한서(後漢書)」,「화양국지(華陽國志)」,「수경주(水經注)」상의 유관 기록과 명청(明淸) 이래 학자들의 고증(마치 명(明)대 정민(鄭旻)의 「장가강해(?柯江解)」 청(淸)대 전문(田雯)의 「장가강고(?柯江考)」, 홍량길(洪亮吉) , 장주(張澍), 정진(鄭珍) 및 근래의 동업조(童業藻), 하관주(何觀州), 임가징(任可澄), 호규(胡?), 여사면(呂思勉), 임혜상(林惠祥) 등 유관 저술에서와 같이), 아니면 오늘날 고고학 발굴 가운데 끊임없이 발굴되는 “야랑문화”의 문물자료는, 모두 한결같지 않은 각도로, 야랑고국(夜郞古國)은 고인(古人)의 두찬(杜撰:전거, 출처가 없어 틀린 곳이 많은 글), 오전(誤傳)이 아니며, 지나대륙 역사의 사회실체로 일정한 부분 존재한다.

그러나 야랑고국은 지금으로부터 필경 2천년이 지났으므로, 지나 대륙사가의 필하(筆下)에 “남이(南夷)” 소국의 발자취로 밀려나가 비록 기록되어있다 해도 냉대를 받아 상세하지 않다. 게다가 야랑(夜郞)이 지명이 된 이후에, 세월의 흐름과 함께 멀리 옮겨가니 이미 그 옛날의 옛 땅이 아니다. 후의 학자들 사이에 중설이 분분하게 하니, 야랑고국(夜郞古國)의 확실한 위치도 상세히 아는 사람이 없다. 근년래, 야랑사(夜郞史)의 전문적 연구가 전개되어 깊이 들어가니, 이와 유관한 야랑(夜郞)터, 족속, 사회성질 등 류의 문제해결이 비교적 크게 진전되고 있다.

이쪽 방면의 유관 사적(史籍) 상의 기록을 고증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먼저 채용되었다. 사람들은 범엽(范曄)의 「후한서?남만서남이열전(後漢書?南蠻西南夷列傳)」의 기록을 근거해:

“서남이자(西南夷者)는  촉군(蜀郡) 경계밖에 있는 야랑국(夜郞國)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교지(交?:베트남), 서쪽으로는 전국(?國:운남), 북쪽으로는 공도국(?都國)이 접해있다”와 「운남통지(云南通志)?야랑고(夜郞考)」의 고증은, 먼저 일개 “대야랑국(大夜郞國)”의 범위를 갈라, 그 범위는 크게 지금의 귀주(貴州:동북부제외), 광서(廣西) 서북부, 운남(云南) 동부 및 사천(四川) 남부 가장자리 일대에 이른다.


또 “야랑자(夜郞者)는 장가강(??(柯)江)에 임해있다”는 「사기(史記)」기록을 근거해, 탐색범위가 진일보 축소되어, “야랑국(夜郞國)”과 그 “국도(國都)”의 소재를 찾는데 진전이 있다.

“야랑국(夜郞國)”과 그 “국도(國都)”에 관한, 한가지 시각은 「준의부지(遵義府志)」에 기재된 <장가(??) 16현(縣) 문답>에 청나라 사람 정진(鄭珍)이 한 줄 집어넣은 “지금의 안순부(安順府) 땅이 곧 한(漢)대의 야랑현(夜郞縣)이다” 라는 말을 따라 계승하는 관점으로, 이 관점은 미미하게 발휘되어, 혹 안순(安順) 북부에 있다 하거나, 혹 안순(安順), 진녕(鎭寧), 육지(六枝) 일대에 있다 하고, 혹 안순현(安順縣) 동남 광순(廣順)에 있다 한다.

별도로 또 하나의 관점은, “야랑국(夜郞國)” 및 그 중심국은 마땅히 지금의 검서(黔西) 남주(南州) 및 육반수(六盤水) 지구로, 그 동남 변경은 정풍(貞豊), 망모(望謨), 책형(冊亨) 일대로 보는 관점이다. 또 「안순부지(安順府志)」와 「위령현지(威寧縣志)?야랑현고(夜郞縣考)」상에 기재된 다음의 논술로 추측단정해 보는 사람도 있다.

즉, 서한(西漢) 성제(成帝) 하평(河平) 중(中), 장가(??) 태수 진립(陳立)이 야랑왕(夜郞王)을 참하고 한참 흥했을때의 차동정(且同亭)에 당도했는데, 이곳이 바로 “야랑국(夜郞國)”의 정치, 군사기구 소재지로, 대략 지금의 정풍(貞豊), 망모(望謨)일대로, 심지어 “북반강(北盤江)이 정풍(貞豊)에서 만나는 것이 향(香)이니 곧 야랑국도(夜郞國都)이다”라 지칭한다.(참고:임가징(任可澄)

이 민국(民國) 시기에 「귀주통지(貴州通志)」를 주관해 편수하던 기간에, 그의 「차동정집(且同亭集)?귀방고(鬼方考)」(이하 「귀방고(鬼方考)」로 간칭)의 한 글 중에, 거듭 동이족 국가 귀방(鬼方)이 지금의 서남에 펼쳐졌다고 주장하고, 아울러 이러한 관점은 「귀주통지(貴州通志)」의 관련부분에 편입되었다.)

이외에도 또 “동재설(桐梓說)”, “삼합설(三合說)”, “수성랑대설(水城郞岱說)” 등등이 있다. 그렇지만, 고대전적을 둘러싸고 있는 한계적인 기록으로 고증을 진행하는 전통적 방법으로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 곧 위에서 여러 가지 관점을 상술(詳述)한 바와 같이, 이들 모두는 단지 명청(明淸) 학자의 학설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또 그 가운데는 빙빙 도는 말로 어려움이 많다. 해방이래, 귀주(貴州), 운남(云南) 등지의 야랑고지(夜郞故地) 탐색의 고고학적 발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지난 30년 간 귀주(貴州) 청진(淸鎭), 평파(平?), 안순(安順), 혁장(赫章), 흥의(興義) 등 11개 현(縣)내에서, 이미 적지 않은 한(漢)대의 유적지와 한묘(漢墓) 등이 발굴되었다. 안순현(安順縣)  동남 영곡회사(寧谷公社) 한묘(漢墓)는 백 기 이상 된다. 많은 고고학적 발굴은 “야랑고국(夜郞故國)”의 존재를 적지 않게 증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야랑국(夜郞國)” 중심이 귀주 서부 편남(偏南) 지구의 문헌고증을 증명해 주고 있다.

더욱이 사람을 잔뜩 흥분시키는 것은,  「사기(史記」,「한서(漢書)」모두가 제시한 바 있는 “서남이군장은 백 수 개로, 오직 야랑인 전(?:운남)만이 왕의 도장을 받았다(西南夷君長以百數, 獨夜郞, ?受王印)” 가운데의 전왕(?王)의 도장(印)이, 일찍이 1958년에, 운남 진녕(晋寧) 석채산(石寨山) 6호묘에서 발굴되었다.

우리는 비록 2000년 전의 야랑왕(夜郞王)의 도장(印)과 「화양국지(華陽國志)」상에 이름을 남긴 “야랑장왕묘(夜郞庄王墓)”의 발굴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귀주(貴州)지방의 고고학 사업이 전면적으로 뒤쫓아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점점  더 많은 고 야랑유물, 유적지가 거듭 햇빛을 보게 될 것이며, 우리는 더욱 더 설득력이 있는 관련 재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민족학의 영역 안으로 접근하는 것은, 야랑고국(夜郞古國)의 수수께끼에 대한 돌파구를 열어주는 것이다.  야랑국이 있었던 땅위에서는 월인(越人), 복인(?人)  및 소수 저강인(?羌人) 등 고대 동이 제 족이 생활했는데, 그들은 혹 오늘날의 귀주(貴州), 운남(云南), 사천(四川), 광서(廣西) 일대의 이(彛)족, 묘(苗)족, 동(?)족, 포의(布衣)족, 수(水)족, 흘*(??)족 등의 선주민이었거나, 혹 이들 민족의 선주민들과 더불어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이들 소수민족은 모두 상고 동이족 계열이었음을 주지할  것:안원전)

근년 래, 고(古) 이(彛) 문(文) 전적(典籍)과 묘(苗)족, 동(?)족 등 소수민족의 고가(古歌), 전설의 번역과 연구사업이 전면적으로 전개되어, 우리를 위해 야랑국 정황과 유관한 적지 않은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마치 해방 후 귀주(貴州) 화절(華節) 지구 번역의 수서(水西) 이문거(彛文巨)가 쓴 <운포산액(恩布散額)> 및 <수서제도(水西制度)>, <홍수범람사(洪水氾濫史)> 등등의 가운데서와 같이, 이(彛)족의 6조(祖) 후예가 대략 전국시기에 있어 야랑국으로 옮아 들어갔다는 관련기록이 있다.

야랑 문화와 관련 있는 “전문화(?文化)”, “파촉 문화(巴蜀文化)”, “초 문화(楚文化)”와 더불어 광서 장족(壯族) 서부문화(특별히 계림(桂林) 서쪽지구 고대문화)를 비교 종합 연구하면, “야랑자대(夜郞自大)”의 중범(重犯)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며, 안계(眼界)가 협착한 모병(毛病)은, 고야랑(古夜郞) 연구자에게 새로운 촉발과 계시를 줄 것이다.


이로 보면 야랑 문화는 고립되어 발전된 곳이 아니라 인근 지구의 문화와 더불어 상호 영향을 주고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1957년 귀주(貴州) 혁장현(赫章縣) 가락구(可樂區) 보초(輔初)에서 출토된 서한(西漢) 중기의 청동북(銅鼓)상에서와 같이, 그 조형과 북의 배(船) 장식문양, 소(牛) 문양과 우인(羽人)은, 운남(云南) “전문화(?文化)”의 “석채산식(石寨山式)” 청동북(銅鼓), 사천(四川) 서창(西昌) “공도이(?都夷)” 지구의 청동북(銅鼓), 광서(廣西) 서림(西林) 동고장(銅鼓葬)에 사용된 동고(銅鼓)와 더불어 유사한 점이 많다. 다양한 학문의 종합적인 연구로 깊이 들어가 여러 방면의 관점으로 볼 것 같으면, 야랑고국의 천고의 수수께끼는 바야흐로 능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林建曾)

*참고로 대만의 석학 임혜상은 양자강 유역의 백월족을 동이족의 하나로 보고 있는데 귀주의 향토사료에 야랑족을 백월족의 하나로 보고 있으니 야랑족은 엄연히 동이 9려의 하나이다.    당현종이 안녹산의 난을 피해 사천성으로 피한 뒤 두 아들에게 군사를 주어 정벌하게 했으나 둘째 편에 선 이태백은 정벌과정에 황제로 등극한 태자파에게 잡혀 사형을 당할 뻔 했으나, 재상을 지냈던 처가의 도움으로 야랑(夜郞, 현재의 貴州 遵義부근)으로 유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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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담론197.동이(東夷), 서하(西夏)적 용봉 2원 연맹-이하(夷夏)일가의 중국민족 구성과 전통문화 탄생의 원시적 기초&화샤(華夏)족의 형성  안원전   2002/11/28  7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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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담론200.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홍도문화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안원전   2002/11/28  6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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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담론 206. 서량지의 동이족 전욱의 출자& 사마천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강성과 왕숙, 장자의 직필, 요의 혈통적 배경과 모친 경도로부터의 신비화 작업  안원전   2003/01/13  6290
315    담론207. 제요 방훈시기는 원시사회의 부계씨족 사회 말기단계로, 도처에 부락 규모의 국가가 숲처럼 가득 들어찬“부락방국임립지시(部落方國林立之時)”의 시기  안원전   2003/01/21  6101
314    담론 208. 한무제 유철과 황후가 된, 요(堯)의 고향이자 도읍지 산서성 임분 출생의 일개 기녀, "위자부(衛子夫)"의 러브로망  안원전   2003/01/27  6464
313    담론 209.우 임금 시절에 대한 실루엣-서쪽으로 하남(河南) 서부와 산서(山西) 서남부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지금의 하남(河南), 하북(河北) 산동(山東) 3성(省)의 경계지방에 이르렀으며, 남쪽으로 호북(湖北)에 접하고 북으로는 하북(河北)으로 들어가-  안원전   2003/01/27  5936
312    담론210.왕성강(王城崗) 유적지의 발굴을 하(夏) 문화 탐색의 중요 수확으로 여기고 있다.  안원전   2003/01/27  6268
311    담론212.악사(樂師)였던 고수(瞽瞍)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의 요순 선양실체-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니 순이 (요를) 가둔 바 되었다.(昔堯德衰爲舜所囚也  안원전   2003/02/12  6794
310    담론213.대륙의 지나사학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요순(堯舜) 선양(禪讓)의 실체-  안원전   2003/02/18  7868
309    담론211.「죽서기년」에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 [1]  안원전   2003/02/21  6581
308    담론163.파촉(巴蜀) 땅은 일찍이 이들 복희씨의 사(蛇) 도등(圖騰) 족이 웅거하여 상고시절에 이름을 얻은 지역이니 파촉의 파(巴:大蛇)는 큰 뱀을 의미하여 「설문(說文)」에 '파(巴)는 충(蟲:동물의 총칭), 혹은 코끼리를 먹는 뱀' [1]  안원전   2003/02/25  6150
307    담론214.(속)요순선양. “요순선양(堯舜禪讓)”설이 실은 전국시대 초기의 묵가(墨家)가 창조한 것  안원전   2003/02/28  7051
306    담론215(속)요순선양,「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안원전   2003/02/28  6551
공지    한겨레 비난한 글을 읽고-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안원전   2003/03/06  21833
304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6903
303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142
302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484
공지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5485
300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231
299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252
298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312
297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793
공지     특집기획.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 국내 최초 완전 공개! [4]  안원전   2003/05/12  23157
295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167
294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5888
293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6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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