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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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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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200.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홍도문화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또 신농씨의 홍도문화는 남의 세석기 문화로 운이 좋았다. 세석기 문화는 조기 채도문화의 근본제도와 조우한 것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시종 장성 천참(天塹:만리장성 이전의 원형 장성)을 능히 넘어가 중원 천하를 뺏지는 못했다. 홍도문화는 즉, 혹 부족연맹의 형성에서 비롯한 것이며, 혹 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것이며, 혹 회도문화의 매개에서 비롯한 것이니, 마침내 안연히 채도문화 거점에 능히 모아 놓은 것이 약간 있어 회도, 흑도와 조화하고 화평하게 공존해, 춘색(春色)의 호시절을 공평히 구가했다.



호남성 염릉의 염제신농 능묘 참배

이상의 전설, 사회조직, 도등(圖騰:상징 깃발로고, 토템)과 혼인제도 등을 근거하면 이들 사회조직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로 족내혼(族內婚)을 실행한 전기(前期)로, 후기로 넘어가면 족외혼으로 전환된다. 이로 인해 「춘추원명포」, 「제왕세기」모두, 신농은 곧 모친이 신룡에 감응해 머리를 낳았다고 설명하니, 이러한 감생설(感生說)은 곧, 모계사회 특징중의 하나로, 또한 곧 부루즉(夫累則:Frazer) 씨가 말한 소위 ‘감잉도등제도(感孕圖騰制度)’이다.

실로 이런 제도적 사회에서는 일반인 모두 다음과 같이 서로 믿었다. ‘모씨(母氏)가 수목암석 혹은 다른 곳을 지나갈 때 조종(祖宗)의 영혼이 그 사이에 잠복하여 그 사이를 타고 탁태해 세상에 내려온다’  이런 제도는 금일에 바로 당도했는데, 옛날에는 호주 토인들과 아람달(亞藍達:Arunta)의 사회 가운데 있었다.

우(牛) 도등(圖騰:깃발 상징로고) 숭배는 단지 인신우수(人身牛首)의 신화 본신인 신농씨만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음에 열거하는 사실을 설명해 가히 다시 증명한다.

「사기」 <주본기>에 ‘후직(后稷:농림부 장관 직책 명으로 주의 시조 姬棄가 후직에 임명되어 대대로 임명됨)의 이름은 기(棄)이니, 그 모친은 유 태(有邰:나라이름 태)씨의 자녀라 강원(姜原)이라 일컫는다.’

색은(주석)에 설명하기를 ‘태(邰)는 곧 태(斄:땅이름 태,털 긴 소 리)이니, 고금의 글자가 다를 뿐이다’ 「집해(集解)」를 인용해 서광(徐廣)이 설명하기를,

-‘지금 태향(斄鄕)은 부풍(扶風)에 있다’ 가히 보건대 유태(有邰)의 본명은 유태(有斄)이다.(서강(西羌) 가운데 태우강(斄牛羌)이 있는데, 「후한서」 <서강전>을 보면 곧 마땅히 유태(有邰)씨의 후예족이다.)  태(斄)는 리로 읽으면 털 긴 소 리(氂)로 소의 이름이며, 강(姜)은 곧 신농의 성(姓)이며, 섬서 서부에 속하는 부풍(扶風)은 곧 신농의 후예가 사는 귀방(鬼方), 강방(羌方)의 땅이다. 강원(姜原)은 곧 강방(羌方) 유태(有斄) 씨족의 여성으로 태(斄) 라는 이름의 씨족 성분인데, 이는 바로 우(牛) 도등을 숭배하는 심리 혹은 사실의 표현이다.-

「사기」 <제세가(齊世家)>에 ‘태공망 여상은 그 선조가 일찍이 사악(四岳:수상격)이 되어 보좌하니 본 성이 강(姜)씨였다.’ 소위 <사악좌(四嶽佐)>는 곧 요(堯)를 보좌한(「국어」 <정어>)‘능예어신(能禮於神:예가 신보다 능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질종(秩宗)으로 순(舜)을 보좌한(「상서」 <요전>) 백이(伯夷)는 바로 강(姜) 씨 성(姓)인 신농씨의 후인(後人)이니, 여상(呂尙)은 곧 백이의 후인(後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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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죽서기년」에 전하기를, 태공망 여상은 동해상의 사람이라 그 선조는 일찍이 사악(四岳:수상격)이 되어 우(禹)를  보좌하여 치수하는데 공이 있어 하우(夏虞)의 때에 여(呂) 혹은 신(申)에 봉해졌으니 성은 강씨였다. 하상(夏商) 시절에 여(呂), 신(申)은 늘 많은 자손들이 살 수 있도록 봉지로 뒷받침해 주니 많은 사람이 오히려 그 후예가 되었다.(爲庶人尙其後苗裔也)

본 성 강(姜)은 그 봉지의 성(姓)를 따른 것이므로 여상(呂尙)이라 했다고 했다. 또 국어 정어(鄭語)에는 사악(四岳)으로 보좌한 것을 두고 신보다 예에 능한 것으로 요를 보좌했다 했으며, 상서 요전에는 질종(秩宗)으로 순(舜)을 보좌했다고 나오는 백이(伯夷)가 곧 강(姜) 씨 성인 신농의 후예이며 여상은 곧 백이의 후예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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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세가>에 무왕이 주(紂:은의 말왕)를 공벌함에 이를 도와 군사로 맹진(孟津)을 건널 때, 마침내 ‘왼편에 병장기 금도끼(左仗黃鉞:황월은 지휘용)를 세우고, 옛 선왕의 백기를 부여잡고 맹세하여 말하기를, 창시(蒼兕:외뿔 들소 시)! 창시(蒼兕)!’라 했으니, 이 소위 “창시(蒼兕)”는 <이아(爾雅) 석수(釋獸)>의 “시사우(兕似牛:소를 닮은 외뿔들소)”로, 「설문(說文)」시부(兕部)의 “여야우(如野牛)”의 해석은 가히 이 한 종의 우(牛) 도등(圖騰)임을 볼 수 있으니, 혹 종합적 최고 우 도등(牛圖騰)이다.

여상은 곧 우 도등 신농족의 후인으로, 군사들에게 맹서하여 창시(蒼兕)를 부르니, 이는 바로 걸령(乞靈:영적으로 기원하여 빔) 도등신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강(羌)인은 소를 제사함이 많으니, 강(羌)인은 이미 신농의 후예에 속하여, 또한 가히 신농족이 우 도등이  됨을 반증한다. 「사기」<진시황 본기>에 ‘33년 불특사(不特祀)를 금했다’ 했는데, 불특은 곧 서현(徐鉉)이 문장을 설명한 바 있듯이 ‘복특(扑特:칠 복, 수컷 특), 우부야(牛父也)’의  ‘복특(扑特)’이다.

또한 ‘노특(怒特)’이 잘못 지어져, 서광(徐廣)이 말한 소위 ‘지금의 무도(武都)인 고로 길에 노특사(怒特祀)가 있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기」집해 인용)  다시금 노특(奴特)을 잘못 지어 「수신기(搜神記)」에 소위 ‘노특사(奴特祀)가 있어 진(秦)이  모두기(旄頭騎:긴 털 소 모)를 설치하니 이가 시작이다’ 소(牛)는 곧 강(羌)인의 도등신(圖騰神)이니, 진(秦)은 곧 강(羌)인의 자유지(孶乳地:새끼를 낳아 젖먹인 땅)로, 진(秦)에 불특사(不特祀)가 있는 까닭은 당연한 것이다.


「산해경」<서산경>에 ‘무릇 서차이경(西次二經)의 머리에 영(鈴)산으로부터 채(采)산에 이르기까지, 무릇 17 개 산이 있는데 4천 1백 4십리라, 그 10신은 모두 사람얼굴에 말의 몸이고, 그 7신은 모두 사람얼굴에 소의 몸이다’ 했고 또 ‘괴강(槐江)의 산에 천신이 있어, 그 형상이 소와 같은데, 발 여덟에 머리가 둘, 말꼬리를 하고 있다.’ 했는데, 이 소위 “우신(牛身)” 및 “소 같은(如牛)” 신 및, 천신은 마땅히 곧 우 도등(牛圖騰)의 신이다.


신농씨 수도였던 호남성 주주시 시내 대형 염제신농 동상

17 개 산 가운데 우 도등족은 그 7 개에 살았으니, 족히 그(10개) 서방세력의 웅후(雄厚)함을 본다. 대개 서방 및 귀방(鬼方), 강방(羌方)의 활동구역은 세석기 문화의 신농족이 번식하던 주변 사이 지대였으니, 그 신이 이와 같고, 그 많기가 이와 같으니 그 이치 또한 당연한 바이다.

순은 흑도의 창시자이고 홍도계의 백이(伯夷), 회도계의 고요(臯陶)는 요의 부족연맹에 부분적으로 참가해 허다한 유적지에 황제헌원의 채도공업 이래 요의 채도문화와 섞여 나타난다. 하우(夏禹)는 이러한 채도문화를 크게 이루었으니 「한비자」 <십과편>이 이를 증거한다. 중국 역사이전 서부 황제족 계열의 대표적 문화인 채도문화는, 또한 곧 그 서부 자족(子族)으로부터 말미암아 도당(陶唐)씨, 하후(夏后)씨를 계승해 이어받아 발전시킨 문화이다.(채도문화의 뿌리가 곧 세석기 문화인 흑도, 강적(羌狄)의 홍도,  동방 동이족의 회도 문화)

세석기 문화의 시작은 시베리아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시작한 것으로 우공(禹貢)의 도이, 우이, 래이, 회이, 석지(析支), 직피(織皮), 복사(卜辭)의 이방(夷方), 토방, 설방(舌方), 귀방, 강방, 주(周)대의 이적, 험윤, 진한(秦漢)대의 호맥, 흉노, 위서의 오환, 선비 등의 동이 한겨레 조상이 원씨족이다.

많이도 거론한 이들 이름이 우리 선조들의 이름이니 민족상고사에 관심있는 독자는 꼭 기억해 두면 상고사 이해에 아주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소위 서백리아(西伯利亞:시베리아)는 마땅히 곧 직피리아(織皮利亞), 혹 선비리아(鮮卑利亞)의 잘못된 번역(錯譯)이다. 중국사 전사(前史)에 있어 이 일편 광대한 땅은 탑리목(타림) 분지에 거의 버금간다.

탑리목 분지는 인류의 고향이며 인종수목의 근본으로, 신들이 사는 성지로, 직피리아(織皮利亞), 혹 선비리아(鮮卑利亞)는 세석기 문화의 요람이다. 그리하여 서량지는 염황 양대종족을 골간으로 중국민족이 구성되었으며, 염제족은 직피리아에서 부흥했고 황제족은 탑리목(塔里木) 분지인 곤륜의 터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으니 곧 「환단고기」의 내용과 부합되는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두 부족을 찬양하여 ‘만장광망(萬丈光芒)의 양과거성(兩顆巨星)-만장이나 높이 치솟아 오를 빛나는 볍씨의 까끄라기(단서)의 두 낟알 거성’이라 일컫는다. 볍씨의 낟알은 사소하고도 작지만 인류를 먹여 살리는 단서가 그곳에 있듯이 상고사의 근원을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바로 이들 사소해 보이는 두 부족에 있다 함이니 이들 두 부족의 뿌리 역시 광명제국 환국(桓國)의 조상이시다.

-‘한민족 도가사학(道家史學)의 대륙사 본질이 바로 이렇게 무섭게 굽이치면서 시작된다. 그러니 한민족의 역사가 얼마나 무서울 정도로 화끈 웅대하냐. 그래서 고래로 우리민족을 천제지자(天帝之子)라 한 것이고 천손 민족이라 한 것이다. 알고 보면 중국역사는 동이 한겨레 역사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일본과 동일하게 선후의 문제만 있을 뿐 중국상고사가 한민족 상고사에서 가지치고 나아가 독립한 것이다. 배보다 더 크게 자라버린 배꼽을 섬기며 살아온 존중화 사대주의 배꼽사관의 실체를 알고보면 바로 이것이다.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지나족에 의해 오랑캐로 치부된 상고시절의 잡다한 종족명이 실은  대륙 곳곳에 둥지를 틀고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었다. 장개석은 바로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 시영 부통령에게 당신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는 있는게냐고 물은 것이고, 지나대륙의 본래 주인이 조선인줄 모르는 것 같은 어림짐작에 당신네 나라의 민족사나 먼저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 하시게 하고 넌지시 말한 것이다.

무한한 상징 어린왕자는 후천개벽의 주인공 대한민국이다





330    담론197.동이(東夷), 서하(西夏)적 용봉 2원 연맹-이하(夷夏)일가의 중국민족 구성과 전통문화 탄생의 원시적 기초&화샤(華夏)족의 형성  안원전   2002/11/28  7407
32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358. 8仙人 중 유일 女선인 하선고(何仙姑)  안원전   2009/01/31  5346
328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3.《서경잡기(西京雜記)》의 작자는 누구인가?  안원전   2006/11/22  9117
327    담론198.「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에 “소전(少典)의 비(妃)는 안등(安登)이니, 화양(華陽)에 유(遊)할쎄, 「예기」 <제법정의>에 이르기를 여산(厲山)씨는 염제라&중동지역이나 이집트의 도자기가 기원전 4-5천년 이전의 중국대륙의 도자기보다 뒤진다  안원전   2002/11/28  8181
326    담론199.신농의 부족이 남부로 스며들어갔을 때는 홍도시대의 일로, 세석기 문화인은 홍도문화인과 더불어 이미 목축, 교역, 건축, 의약을 알고 있었다(서량지)  안원전   2002/11/28  6750
   담론200.강(姜), 희(姬) 족의 혼구(婚媾:혼인으로 화친) 체결에서 비롯한 홍도문화와 우 도등(牛圖騰)을 숭배한 모계사회 &대륙상고사의 핵심고갱이를 송두리째 캐고 벗겨보니 그 뿌리는 바로 동이 한겨레로  안원전   2002/11/28  7099
324    담론201.홍도와 회도문화는 한가지로 패가리호(貝加爾湖:바이칼호)에서 나와 구석기 말기에 대륙으로 나누어 들어가 발전한 동이족 부족,“야랑자대(夜郞自大)”의 고사  안원전   2002/12/26  6346
323    담론 202. 채도문화와 황제 도읍지 및 제요(帝堯) 도당(陶唐)의 활동공간/’왕래하여 옮겨다니되 일정한 곳이 없으니, 군사들로 에워싸 지키면 곧 도읍지였다(遷徙往來無常處 以師兵爲營衛)‘ 좁아터진 분치 제후국 제요  안원전   2002/12/30  8017
322    담론203.<제왕세기>에 요(堯)의 도읍지는 산서 임분현(臨汾縣) 남쪽평양(平陽),「죽서기년」 요(堯)가 지금의 섬서성 오른쪽 산서성 기(冀)에 거함  안원전   2003/01/07  6954
321    담론 204. 요의 웅거지 산서성 임분:「묵자」 절용중편, 「한비자」 십과편 및 「순자」 왕패편, 양(楊) 주(注) 시자(尸子),5적(狄)은 하나 왈, 월지(月支), 둘 왈, 예맥(濊貊), 셋 왈, 흉노, 넷 왈, 선우(單于), 다섯 왈, 백옥(白屋)이라 하였다.  안원전   2003/01/08  8113
320    담론205요(堯)의 어머니는 바로 동이족 염제 신농씨 가문 진봉(陳鋒)씨의 따님인 경도(慶都)라는 아가씨로 동이족 염제의 7세손  안원전   2003/01/13  6488
319    담론 206. 서량지의 동이족 전욱의 출자& 사마천의 역사왜곡에 대한 정강성과 왕숙, 장자의 직필, 요의 혈통적 배경과 모친 경도로부터의 신비화 작업  안원전   2003/01/13  6494
318    담론207. 제요 방훈시기는 원시사회의 부계씨족 사회 말기단계로, 도처에 부락 규모의 국가가 숲처럼 가득 들어찬“부락방국임립지시(部落方國林立之時)”의 시기  안원전   2003/01/21  6367
317    담론 208. 한무제 유철과 황후가 된, 요(堯)의 고향이자 도읍지 산서성 임분 출생의 일개 기녀, "위자부(衛子夫)"의 러브로망  안원전   2003/01/27  6635
316    담론 209.우 임금 시절에 대한 실루엣-서쪽으로 하남(河南) 서부와 산서(山西) 서남부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지금의 하남(河南), 하북(河北) 산동(山東) 3성(省)의 경계지방에 이르렀으며, 남쪽으로 호북(湖北)에 접하고 북으로는 하북(河北)으로 들어가-  안원전   2003/01/27  6116
315    담론210.왕성강(王城崗) 유적지의 발굴을 하(夏) 문화 탐색의 중요 수확으로 여기고 있다.  안원전   2003/01/27  6440
314    담론212.악사(樂師)였던 고수(瞽瞍) 「죽서기년」 원본과 「환단고기」<태백일사>의 요순 선양실체-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니 순이 (요를) 가둔 바 되었다.(昔堯德衰爲舜所囚也  안원전   2003/02/12  7026
313    담론213.대륙의 지나사학도들이 바라보고 있는 요순(堯舜) 선양(禪讓)의 실체-  안원전   2003/02/18  8080
312    담론211.「죽서기년」에 「초어(楚語:초나라가 동이 9족의 국가라는 것은 앞서 밝혔다)」에 이르기를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우리 동이족)의 덕을 거듭 실천하고, 요(堯)가 다시 중려(重黎)의 후예를 길렀는데 옛사람을 잊지 못했다 [1]  안원전   2003/02/21  6772
311    담론163.파촉(巴蜀) 땅은 일찍이 이들 복희씨의 사(蛇) 도등(圖騰) 족이 웅거하여 상고시절에 이름을 얻은 지역이니 파촉의 파(巴:大蛇)는 큰 뱀을 의미하여 「설문(說文)」에 '파(巴)는 충(蟲:동물의 총칭), 혹은 코끼리를 먹는 뱀' [1]  안원전   2003/02/25  6365
310    담론214.(속)요순선양. “요순선양(堯舜禪讓)”설이 실은 전국시대 초기의 묵가(墨家)가 창조한 것  안원전   2003/02/28  7264
309    담론215(속)요순선양,「한비자(韓非子)」 <식사(飾邪)>에 방풍(防風)씨의 군(君)이 늦게 도착하자, 우(禹)가 그를 참(斬)했다”  안원전   2003/02/28  6748
공지    한겨레 비난한 글을 읽고-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안원전   2003/03/06  22190
307    담론216. 단군왕검은 우순에게 명해(天王乃命虞舜) 토지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고(分土而治) 군사를 보내어 주둔하여(遣兵而屯) 함께 당요를 정벌하기로 약속하자(約以共伐唐堯) 요의 세력이 곧 꺾여 순에게 의지해서(堯乃力屈 依舜而保命以國讓>  안원전   2003/03/25  7124
306    담론217 단군조선을 비롯한 동이 제족이 하나라를 장악하다-설원(說苑)」<권모편>에 걸왕이 구이(九夷)의 군사를 빌어 쳐들어오자 이윤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안원전   2003/04/11  9320
305    담론218중국 측의 고대사서는 공자의 사서삼경에 의해 그 중추가 부러지고 사마천의 사기에 의해 허리가 잘려나가 그 이후의 중국 측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마치 레미콘처럼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해서 돌려댔다  안원전   2003/04/11  5660
공지    동이 대륙상고사 유적지 탐사를 마치고(안원전) 2002.8.16  안원전   2003/04/15  15722
303    담론 219 하 왕조 임금이 덕망을 잃자 이(夷)족이 배반, 걸 왕이 모질게 굴자 여러 이(夷) 족들이 쳐들어 오고, 상 왕조가 쇠약해지자 동이는 중원을 차지  안원전   2003/04/24  6400
302    담론220 춘추와 비춘추, 갑골문에서 말하는 4위(圍)의 정체와 흉노의 정체  안원전   2003/04/24  7467
301    담론221.풍(風)씨 성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씨에 대해-풍(風)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  안원전   2003/04/29  7568
300    담론222. 음악과 예는 모두 동이족의 종교적 의식에서 나온 것, 예악(禮樂)을 만든 이(夷)족이 융(戎), 하(夏)족과 융합하여 화하 집단을 만들고 오늘날의 한(漢)족을 만든 것  안원전   2003/05/10  6982
공지     특집기획.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 국내 최초 완전 공개! [4]  안원전   2003/05/12  23520
298    담론223.요(堯)의 신하로 있다가 순에 의해 유주(幽州)로 귀양을 간 공공(共工)은 한민족 혈통,엄(奄)국과 서(徐) 모두는 영(嬴)씨 성을 가진 소호(少昊)의 후손 백익(伯益)의 후예  안원전   2003/05/21  7361
297    담론224,치우(蚩尤), 공공(共工), 백이(伯夷)는 어떤 민족정신과 민족문명을 수립했는가,주나라 문왕의 시조도 동이족이지만 태공망과 주(周) 왕조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주공단에 대한 기록 주 왕실-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했음  안원전   2003/06/02  6089
296     담론225.<사기>,<한서> 등의 사적에 전하는 산동성의 제지(齊地), 제국(齊國)의 “팔주(八主)”라고도 불리는 “팔신(八神)” 제사 옛 풍속 [1]  안원전   2003/06/10  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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