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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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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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20.《주례(周禮)》는 누구의 저작인가?

《주례(周禮)》는 누구의 저작인가?









《주례(周禮)》라는 이 고서는 총 4.5만여 자로 되어 있다. 이것은 각종 관직을 기술하는 형식으로 제도를 천명하였으므로 역대로 《주관(周官)》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책 속의 관직은 천(天), 지(地)와 사시(四時)를 이용하여 6개 부문으로 나누어진다.

천관(天官), 지관(地官), 춘관(春官), 하관(夏官), 추관(秋官), 동관(冬官)의 6개 부문 중에 각각 수장과 부하 관리 수십 명이 있어 치밀한 관료체제를 구성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고서는 한대(漢代)에 발견되었을 때 ‘동관(冬官)’부분이 결여되어 유사한 책인 《고공기(考工記)》에서 보완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도대체 어느 시대에 이루어진 것일까?

누구의 손에서 나온 것일까? 역대로 이에 대한 견해가 배우 분분하다. 여기서 우리는 아래와 같이 간략히 소개하고 분석하겠다.


1. 서주(西周)의 주공(周公)이 만든 것이다.


한대 유흠(劉歆)이 《주례(周禮)》를 선전하기를 “주공이 태평을 이룬 사적(周公致太平之迹)”이라 했고 후에 정현(鄭玄) 같은 학자들은 대부분 이것을 믿었다.

《수서 경적지(隋書 經籍志)》에 이르길, 《주례(周禮)》는 “주공이 관직을 제정하고 다스리던 법칙이다(周公所制官政之法)”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매우 많다.

우선 문체로 보았을 때 춘추(春秋)시기 이전에는 이렇게 방대한 문장을 거침없이 써내려가고 상세하고 세밀하며 짜임새가 있는 거작이 출현할 수 없었고,

다시 관직 명칭에서 보면 곽말약(郭沫若)이 일찍이 《주관질의(周官質疑)》를 지어 서주(西周)의 동기(銅器) 명문(銘文) 중의 관직과 《주례》를 비교하여 많은 모순점을 발견하였고,

셋째로 전제(田制)로 보면 《시경(詩經)》, 《맹자(孟子)》, 《예기 왕제(禮記 王制)》에서 모두 서주(西周)에 ‘공전(公田)’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주례》에는 전혀 언급이 없고,

넷째로 봉국(封國) 면적에서 보면 《주례》에서는 “제공의 땅을 사방 5백리로 봉하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너무 넓은 것이어서 주초의 상황과는 맞지 않으며, 이 외에도 《주례》에서 자주 보이는 “오제에게 제사지내다(祀五帝)”, “다섯 가지 형벌의 법칙을 주관하다(掌五刑之法)”는 말은 모두 전국(戰國)시기 중기 오행학설이 흥기한 후의 표현이다.


2. 서한(西漢) 말 유흠(劉歆)이 위조한 것이다.


한대(漢代)에 이 책이 출현한 때부터 시작하여 청대(淸代)의 강유위(康有爲)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들은 《주례》가 유흠이 왕망(王莽)이 임금의 자리를 찬탈하여 국사(國師)가 되었을 때 왕망의 정변에 협력하기 위해 별의별 궁리를 다한 끝에 위조해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한서 왕망전(漢書 王莽傳)》에 이르길, “섭황제(왕망을 가리킴)는 밀부(궁중의 기밀문서 보관처)를 열어, ……《주례》를 얻었다(攝皇帝(指王莽)遂開密府, ……發得《周禮》).”고 하였다.

여기서 이것이 왕망이 다스리던 시기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송대(宋代)의 진진손(陳振孫)은 “이 책에는 기이한 글자가 매우 많다.”(《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고 하였다. 기타 명물도수(名物度數)도 주제(周制)와 서로 검증할 수 있어 선진 고적임이 분명하다.


3. 전국시대 책사의 건국방략 혹은 전국시대 법가의 통일과 부국강병을 꾀하던 책이었다.


《주례》의 각 부분의 처음부분은 모두 이렇게 쓰여 있다. “왕은 도성을 건립하고 방향을 변별하며 궁실이 있을 곳을 제정하고 성중과 교야의 강역을 분획하며 관직을 분설한다(惟王建國, 邊方正位, 體國經野, 設官分職).”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이것은 건국의 방략이다. 전국시대에 유세하던 선비는 반드시 위대한 치국의 계획이 있어야만 비로소 제후와 국왕의 마음을 움직여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주례》는 강대한 봉건제국을 건립하여 국내에 수많은 등급이 다른 크고 작은 제후가 분포하고 있는 중앙집권을 실행하였다.

《주례 천관 대재(周禮 天官 大宰)》에 이르길, “여덟 개의 권력으로 왕이 명령하여 군신을 통제하였다(以八柄詔王馭君臣)”고 했다.

이것은 국왕이 작위를 주고(爵), 봉록을 주고(祿), 죽이고(誅), 강제로 빼앗는(奪) 등의 여덟 가지 수단으로 군신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주례》 중에는 또 군대의 편제와 부역 세금의 징수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였으며, 특히 형법으로 백성들을 통제하던 것을 언급하였다.

《주례 지관 족사(周禮 地官 族師)》에서 말하길, “다섯 집을 결탁하고 열 집을 연결하여,……이로써 서로 보호하고 받아들인다(五家爲比, 十家爲聯, ……使之相保相受)”고 했고, 《추관(秋官)》에서 또 말하길, 매년 정월에 “방국의 영지에서 형벌을 진행하고(布刑于邦國都鄙)”, “서민의 난을 금하여 폭력으로 바로잡았다(禁庶民之亂暴力正者)”고 했다.

이는 상앙(商鞅)의 변법조치와 매우 근접하다.


4. 전국시대에 제(齊)나라 사람이 지은 현실을 기술한 책이다.


《주례》와 제나라의 문헌인 《관자(管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례》에 이르길, “다섯 집을 결탁하고 열 집을 연결하여(五家爲比, 十家爲聯)”라고 하였고,

《관자 입정(管子 立政)》에도 이르길, “열 집을 십으로 하고 다섯 집을 오라 하였다(十家爲什, 五家爲伍)”고 하였으며,

《관자 금장(管子 禁藏)》에 또 말하길, “십으로써 그것을 다루고, 오로써 그것을 주관하였다(輔之以什, 司之以伍)”고 하였다.

《관자(管子)》에는 "토지를 보고 원적을 정하는(相壤定籍)" 방법이 있고, 《주례》에도 "향을 상, 중, 하로 나누어 전답을 주는(鄕遂分上、中、下授田)" 제도가 있었다.

《주례 대사구(周禮 大司寇)》에 말하길, “백성들의 소송을 금하고 속시(1백발의 화살)를 조정에 헌납한 연후에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禁民訟, 入束矢于朝, 然後聽之).”고 했다. 이는 또 제나라에 규정된 “군비를 충족시킨다(足甲兵)”는 법령으로 《국어 제어(國語 齊語)》에 보인다.

제나라는 동이 소수민족의 기초 위에 건립된 봉건국가로 줄곧 씨족 공동사회 조직과 노예제의 잔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주례》에 모두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5. 전국시대 유가에서 편찬한 경전이다.


이는 서주(西周) 춘추(春秋)의 제도를 기초로 하여 정제와 통일을 거쳐 체계화와 이상화를 더하여 편성된 것이다.

《주례》에 기술된 농민들은 자신의 분여지가 있고 비교적 완비된 수리 시스템이 있지만 그들은 첫째, 밭을 가는 소가 없고 둘째, 철제 농기구가 없어 생산도구가 매우 원시적이었다.

《주례》에 기술된 군대편제는 “왕은 6군이고, 대국은 3군(王六軍, 大國三軍)”으로 하여《좌전 양공14년(左傳 襄公十四年)》에 기록된 서주, 춘추시대의 군제인 “주나라는 6군으로 하고 제후 중 높은 자는 3군으로 하였다(周爲六軍, 諸侯之大者三軍)”던 것과 같다. 사상 경향으로 보면 《주례》에는 매우 짙은 유가사상이 깔려있다.

《천관(天官)》에는 “유가는 도로써 백성을 얻는다(儒爾得民)”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며, 《지관(地官)》에서는 또 ‘육덕(六德)’과 ‘육예(六藝)’로써 만민을 가르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법가사상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때문에 혹자는 이 책의 작자가 법가에 가까운 유가 혹은 순경(荀卿)의 제자가 편찬한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6. 한 시대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서한(西漢) 말에 공표될 때 또 다시 수정과 왜곡을 거친 것이다.


따라서 이중에는 서로 모순되는 점이 적지 않고, 서로 배려하는 것이 부족하며, 정밀한 계산이 없다.

예를 들어 《수인(遂人)》에는 “십 부마다 도랑이 있고(十夫有溝)”, “백 부마다 수로가 있는(百夫有洫)” 십진위제였다고 하였는데, 《소사도(小司徒)》에서는 오히려 “9부마다 우물이 있고, 네 우물이 있으면 읍이 되었다(九夫爲井, 四井爲邑)”고 말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배합할 수 있는가?

책 중에는 또 상제(上帝)가 오제(五帝)보다 높다는 견해가 있는데, 남북의 교외에서 제사지내는 제도,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역사적 계통, 이런 것들 모두가 서한 시대에 열렬히 토론되던 문제였다.

《주례》가 어느 시대에 쓰여 졌는지, 작자는 누구인지, 이것은 어떤 성질의 책인지 하는 것은 대략 상술한 여섯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견해가 정답에 가까운지는 독자들이 마땅히 세심하게 감별하고 반복하여 사고하여 신중하게 가려야 할 것이다.   (정가융(鄭嘉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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