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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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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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3. 동이족 월족 이광(夷光:서시 본명) 서시(西施)의 귀결점은 어떻게 되었는가?


서시(西施)의 귀결점은 어떻게 되었는가?








서시와 절강성 샤오싱(소흥)의 서시고향 서시전






명대(明代)의 희곡 작가 양신어(梁辰魚)는 적지 않은 극본을 썼는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은 《완사기(浣紗記)》로 춘추(春秋) 말기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교전 이야기를 쓴 것으로 서시(西施)와 범려(范蠡)의 사랑이 전극의 줄거리가 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월나라의 대부(大夫) 범려는 봄경치가 아름다운 화창한 봄날의 어느날 민간을 방문한다. 제기(諸曁) 저몽산(苧夢山) 아래의 약야계(若耶溪)에 이르러 빨래를 하고 있는 서시를 만나 그녀의 절세 미모에 매혹된다. 곧바로 시냇물에 젖은 천으로 서로 백년해로의 약속을 한다.

오래지 않아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부친을 살해한 원수를 갚으려 군대를 이끌고 월(越)나라로 쳐들어온다. 월나라 군대는 패배하고 월왕 구천(勾踐)은 포로가 되어 범려는 인질로 월왕 부부를 따라 오나라에 가 노예가 되고, 그와 서시의 혼사는 지연되었다. 3년 후에 오왕 부차는 구천 부부와 범려를 풀어주고 돌려보낸다.

구천은 자기 나라로 돌아온 후에 와신상담하여 10년동안을 준비하여 복수하여 치욕을 씻으려고 도모한다. 그는 범려가 올린 미인계를 채택한다. 서시는 범려의 애국 열정에 감동하였다. 비록 ‘미인계’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박명한 것을 스스로 한탄하며 하는 수 없이 오나라에 가겠다고 동의한다.

부차는 과연 보자마자 매우 기뻐하며 비할데 없이 총애한다. 그는 월나라를 물리쳤으니 천하무적이라 생각하였고 더욱이 월나라를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마지막에 오나라는 결국 월나라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구천이 마침 논공행상하려 하자 범려는 오히려 관리가 되기를 원치 않으며 서시를 마중하였다가 호수에 배를 띄워 이름을 바꾸고 은거하였다.

극본이 말하는 이야기는 몇몇 장면은 하구이지만 서시와 범려는 실지의 인물이다. 범려는 춘추시대 말기의 정치가로 자는 소백(少伯)이고 초나라 완(宛: 지금의 하남 남양현(南陽縣)) 사람이며 월나라의 대부로 일찍이 월왕 구천을 도와 국가를 부강하게 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범려는 구천의 사람됨됨이를 매우 잘 알았으므로 그는 월나라의 또 다른 대부인 문종(文種)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하길, “나는 새를 모두 잡고 나면 아무리 좋은 활과 화살도 필시 수장해야만 하며, 토끼를 다 잡고 난 다음에는 사냥개를 잡아먹을 차례입니다. 월왕 이사람은 그와 함께 환란을 당할 수는 있어도 함께 안락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하고 문종에게 빨리 월왕을 떠날 것을 권했다.

그 자신도 이름과 성을 숨기고 떠나 우선은 제(齊)나라를 유람하면서 치이자피(鴟夷子皮)라고 불리었다. 후에 도(陶: 지금의 산동(山東) 정도(定陶) 서북쪽)에 이르러 도주공(陶朱公)이라 이름을 바꾸고 장사로 부자가 되었다. 서시는 춘추 말 월나라의 저몽(苧夢: 지금의 절강(浙江) 제기(諸曁)의 남쪽) 사람으로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바쳐 부차가 가장 총애하는 비가 되었다.

그러나 서시의 결말에 대해서는 역대로 견해가 다르다. 일설에는 서시가 후에 물에 던져져 죽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견해가 가장 먼저 보이는 기록은 《묵자 친사(墨子 親士)》편으로 여기서 “서시가 물에 빠지니 그의 아름다움으로 인함이다(西施之沈, 其美也)”라고 하였다.(‘물에 빠지다(沉)’를 옛날에는 ‘침(沈)’이라 했음) 이 말의 의미는 서시는 물 속에 던져졌는데 그의 죽음은 그의 아름다움때문이었다는 말이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 동한(東漢)의 조엽(趙曄)이 저술한 《오월춘추(吳越春秋)》의 서시 관련 기록을 인용하여 말하길, “오나라가 망한 후 월나라는 서시를 강에 빠뜨려 가죽부대와 함께 죽게 했다.(吳亡後, 越浮西施于江, 令隨鴟夷以終.)”고 하였다. 여기의 ‘부(浮)’자도 ‘침(沉)’의 뜻이다. ‘치이(鴟夷)’는 바로 가죽 부대이다. 이 말은 오나라가 멸망한 후 월왕이 서시를 가죽부대에 넣어 강 속으로 던졌다는 말이다.

《오월춘추》는 오나라는 태백(太伯)에서 부차(夫差)까지, 월나라는 무여(無余)에서 구천(勾踐)까지의 역사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묵자(墨子)》보다 몇 백년 늦게 나왔는데도 여기에 기록된 서시의 죽음은 오히려 《묵자》보다 상세한 것은 아마도 민간에서 전하여 들은 것 같다.

당대(唐代)의 유명한 시인인 이상은(李商隱)은 일찍이 《경양정(景陽井)》이라는 절구 한 수를 지었는데, “경양궁의 우물은 견딜 수 없는 슬픔만 남기고 용과 난새의 맹세 죽을날까지 끝이 없네. 애통히도 오왕의 궁밖 강에 던지워지니 혼탁한 흙탕물은 마치 서시를 장사한 듯하네(景陽宮井剩堪悲, 不盡龍鸞誓死期; 腸斷吳王宮外水, 濁泥猶得葬西施.)”

또 다른 시인 피일휴(皮日休)도 시제 《관성궁회고(館姓宮懷古)》라는 오언절구를 지었는데, 제5수는 “복도에서 나막신소리 울리며 금옥같은 걸음걸이, 산위의 부평초 따는 여인의 자태, 오늘 어디에서 수장될지도 모르고, 계곡의 달은 까닭도 모르고 덩달아 굽어지네(響屧廊中金玉步, 采苹山上綺羅身; 不知水葬今何處, 溪月彎彎欲效顰)”라 하였다.

이 두 수의 시로부터 당대(唐代)에도 서시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유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서시와 범려가 어떤 관계였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한가지 견해가 있는데, 《월절서(越絶書)》에는 “오나라가 망한 후에 서시는 다시 범려에게로 돌아가 함께 오호(五湖)를 건너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월절서》는 동한(東漢) 원강(袁康)이 저술한 것으로 오월 양국의 사적 및 범려 등의 활동을 기록한 것으로 떠도는 소문과 이설을 많이 채택하였다.

당대 시인 두목(杜牧)이 지은 《두추낭시(杜秋娘詩)》에 “서시가 고소를 떠나 큰배로 치이를 쫓아갔다(西子下姑蘇, 一舸逐鴟夷)”와 같은 구절이 있다. 여기서의 ‘치이(鴟夷)’는 가죽부대로 해석하지 않고 범려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기 월왕구천세가(史記 越王勾踐世家)》에서는 범려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바다를 건너 제나라로 떠나 성명을 바꾸고 스스로 치이자피라 했다(浮海出齊, 變姓名, 自謂鴟夷子皮)”고 하였다. 《성씨서변증(姓氏書辨證)》권3에서 말하길, 범려는 제나라로 간 후에 스스로 치이자(鴟夷子)라 했다고 한다.

범려가 강호를 떠돌았다는 전설은 아마도 후세 사람들이 이 절대가인이 이렇게 비통한 결말을 만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서시와 범려가 함께 오호(五湖)에 은거하여 아름답고 원만한 혼인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유전시켜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담은 것일지도 모른다. 양신어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에 근거하여 인구에 회자되는 《완사기》를 지은것이다.





오왕부차와 환락을 함께 하면서도 연인 범려의 대의를 받들어 늘 우울했던 서시가 부차와 함께한 오나라 궁전(현 강소성 쑤조우(소주) 소재)&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 구천을 피해 숨어들은 궁궐 바로앞의 석호. 범려는 이곳에서 서시와 재회해 동이족의 주거처 산동성 정도로 숨어들어가 도주공으로 거부가 된다. 이름도 동이족임을 말하는 치이자피(鴟夷子皮)로 숨긴다.( 동이족 월족 이광(夷光:서시 본명)의 이(夷)와 같다 강절(康節) 소옹(邵雍)의 스승 진희이(陳希夷, 871~989)도 동일) 이후 서시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어 둘째 아들 살인사건  구명운동 사건이 대부 장생을 통해 벌어진다 .맨 아래 마지막 사진은 현 강소성 쑤조우(소주)에 소재한 오나라 궁전인데 우측 상단의 강이 바로 석호임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새로 나온 《사해(辭海)》(수정본)에도 “서시는 또 선시(先施)라고도 한다. 춘추 말년 월나라의 저몽(苧夢)사람으로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헌납하여 부차가 가장 총애하는 비가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오나라가 망한 후에 범려와 함께 오호(五湖)로 갔다고 한다.”고 하여 그가 강물에 빠져진 전설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가 훌륭한 귀결점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사기》중 《월왕구천세가》와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는 모두 범려만 언급하고 있고 서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와 범려가 어떤 관계인지는 더욱이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사마천이 이 방면의 기록을 보지 않고 이 방면의 전설을 듣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사마천이 일부러 써넣지 않은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길이 없다.

따라서 한 시대의 절세 미인인 서시의 결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강물에 던져진 것인지 아니면 범려를 따라 함께 오호에 은거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결말이 있는 것인지? 이 수수께끼는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왕복강(王福康)) 안원전의21세기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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