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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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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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0. 반소(班昭)가 《한서(漢書)》를 계속하였는가 아닌가?



반소(班昭)가 《한서(漢書)》를


계속하였는가 아닌가?  


한자가 깨져보이면 첨부파일 참조할 것.









1700여년 전에 중국에 여류 역사학가―반소(班昭)가 출현했다. 그는 중국 동한(東漢)의 저명한 사학가이다. 반소는 이름은 희(姬)였고 자는 혜반(惠班)이었으며 부풍(扶風) 안릉(安陵: 지금의 섬서(陝西) 함양(咸陽))사람으로, 대략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년간에서 안제(安帝) 영녕(永寧)년간(서기 25-120년간)에 살았다.

그는 성이 조(曹)인 사람에게 시집갔으므로 조대가(曹大家)라 이름하기도 한다. 저명한 여류 사학가로써 그는 아버지와 오빠에 이어 《한서(漢書)》를 저술하여 세상에 이름이 났다. 반소의 부친 반표(班彪)는 당시 매우 유명한 학자였다. 큰 오빠 반고(班固)는 걸출한 역사학자였다. 또 다른 오빠는 바로 “붓을 내던지고 종군하여” 서역에서 공을 세운 유명한 외교가이자 명 장군 반초(班超)였다.

반소는 이러한 가정 환경 아래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했으며 부지런하고 검소했다. 아버지와 오빠들의 엄격한 지도 아래 그는 유가 경전과 각종 사서를 숙독하여 풍부한 역사와 천문지리 등 방면의 지식에 정통하여 그가 문학과 사학 방면의 사작을 하는데 튼튼한 기초가 되었다.

반소는 사학방면에 어떠한 공헌을 세웠는가? 비교적 널리퍼져 있는 견해는 그가 《한서》를 정리하고 최후에 저술을 완성했다는 설이다. 《한서》는 중국 고대의 《사기(史記)》의 뒤를 이은 두 번째 위대한 사적이다.

서한(西漢)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는 한(漢) 무제(武帝) 태초(太初)년간까지만 기록하고 있는데 그 후 《한서》가 쓰여지기까지의 중간 100여년의 서한제국이 흥성에서 쇠락하기까지의 역사는 이어서 쓰여질 필요가 있었다. 당시에 비록 몇몇 역사 저작이 있었지만 완전하고 체계적이고 전면적인 단대사는 아직 없었다.

반표는 사마천의 《사기》를 이어 서한(西漢) 일대(一代)의 역사를 완성할 원대한 뜻을 세웠다. 이리하여 그는 역사에 전해내려오는 사적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대량의 보관된 공문서 자료를 참고하여 조사하여 《사기후전(史記後傳)》을 저술했는데 이것이 바로 《한서》의 전신이다.

그러나 그의 바램이 실현되기도 전에 그는 죽었다. 반고는 부친의 미완의 사업을 계승하여 《사기후전》의 기초 위에서 20여년의 시간을 들여 《한서》의 대부분을 저술하여 《한서》가 대강의 규모를 갖추도록 했다. 그러나 아직 정리가 안되어 난잡한 장도 있었고 그 중 《팔표(八表)》와 《천문지(天文志)》는 아직 마감되지도 않았는데 불행히 반고 역시 죽게 되었다.

이리하여 황제의 명에 따라 반소는 “동관장서각(東觀藏書閣)”에 가 《한서》의 편찬 작업을 계속하여 완성하게 된다.

반소는 풍부한 역사 문헌자료가 있는 황가(皇家)의 도서관에 와서 대량의 고대 전적과 당대의 역사 기록을 참고하여 조사하여 《한서》의 초고를 자세히 정리하고 교정하고 심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한서》의 《팔표》와 《천문지》를 이어서 저술했으며, 후에 마속(馬續)이 반소를 도와 《천문지》를 저술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반소의 사학 성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그들은 반소와 마속이 《한서 팔표》를 이어서 보충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한서 천문지》도 이어서 보충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한서 천문지》가 기본적으로 《사기 천궁서(史記 天宮書)》의 내용을 연용하였으며 이 외에도 무제 이후의 기상변화를 보충했을 뿐이므로 그 공정이 그리 크지 않고, 반고는 “비밀히 20여년간의 정밀한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어 써야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마속이 《천문지》를 저술했다는 말은 《후한서(後漢書)》본전(本傳)에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반소와 마속이 《천문지》를 보충하여 저술했다는 설은 성립하기 어렵다.

소위 《한서 팔표》, 그 중에서도 《고금인표(古今人表)》와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는 선인이 이미 반고의 원작이라고 명확히 지적한바 있다. 심약(沈約)은 《송서 백관지(宋書 百官志)》중에서 《표(表)》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반고의 저작이라고 확정하였다. 《후한서 반고전(後漢書 班固傳)》의 말에 따르면, “반고는 영평 시기에 처음으로 천자의 명령을 받아 비밀히 20여년간의 정교한 심사숙고 과정을 거쳐 건초(建初)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하였다.(固自永平中始受詔, 潛精積思二十余年, 至建初中乃成.)”고 한다.

여기서 범엽(范曄)이 말한 “비로소 완성하였다(乃成)”는 것은 《한서》를 전부 다 완성하였다는 말을 가리킨다. 이외에 반고는 《서전(敍傳)》에서 《한서》의 저술 완성 후에 전서(全書)의 내용을 개괄하여 총결할 때 일찍이 스스로 춘추고기(春秋考記), 표(表), 지(志), 전(傳) 모두 백편이 된다고 말했다. 이로써 백편의 《한서》는 완전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한서》의 전편과 연관하여 《팔표》 및 《천문지》서문과 《한서》의 서찬(序贊)을 서로 비교해보면, 문체와 어법이 모두 한 사람의 필법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마속의 저작에 대해서는 현재 상세하게 연구할 길이 없으나 반소의 《여계(女戒)》로 말하면, 그의 오빠인 반고의 문장력이 풍부하고 일이 분명하며 “아름다움과 고상한 품격을 겸비한” 필법과 서로 비교되며 차이가 많이 나 이것에 근거하여 이야기 하자면 《팔표》와 《천문지》를 보충 저작했다는 설은 성립하기 어렵다. 역대 주석가들은 《한서 팔표》와 《천문지》가 반고의 원작이라는 것에 대해 모두 이견이 없다.

다시 시간상으로부터 추산해보면, 반고는 《한서》를 완성한 후 10년 뒤에 옥중에서 죽었으므로 설사 일부 표(表)와 지(志)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해도 이후 10년동안 반고 스스로 넉넉히 보충할 수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이어서 완성하기를 기다렸겠는가?

비록 사람들이 반소가 《한서》를 계속하였는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은 하고 있지만, 반소가 《한서》의 편찬을 위해 일찍이 힘을 다했던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한서》를 정리하는 중에 반소는 수정하고 윤색하는 방면에 각고의 노력을 쏟음으로써 거작이 더욱 완전해지도록 하였다.

《한서》를 탈고한 후에 사람들은 대부분 전부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반소는 유일하게 《한서》를 통달할 수 있는 권위를 얻은 것이다. 당시의 봉건 귀인들은 모두 반소를 스승으로 모시고 누각 아래 엎드려 그의 해설을 들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높여 ‘대가(大家)’라 불렀는데, 그 의미는 바로 학식 있고 품성이 좋은 부녀자라는 뜻이었다. 그가 《한서》를 이어서 썼든 아니든 간에 그가 《한서》의 정리 과정 중에 쏟은 거대한 노력은 그가 중국 역사상 저명한 여류 사학가로써 손색이 없게 하였다.(조리방(曹莉芳))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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