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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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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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06. 광서제(光緖帝)는 어떻게 죽었는가?
광서제(光緖帝)는 어떻게 죽었는가?







이화원. 서태후가 궁녀로 있으면서 월나라 노래로 함풍제를 유혹해 서태후로 등극한 원명원이 불타고 원세개의 동북군벌자금을 끌어들여만든 이화원.





광서제는 누구의 손에 죽었는가? 역사상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한데 일치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광서는 또 왜 갑자기 ‘가붕(駕崩)’ 했는가? 이 또한 추측은 무성한데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1908년(광서 34년) 11월 24일, 광서제는 갑자기 죽었다. 다음날 자희태후(慈禧太后) 또한 병으로 죽었다.

광서의 죽음에 관하여 패관야사(稗官野史)와 민간 전설이 매우 많다. 일설에는 서태후(西太后)가 자신의 병이 위독함을 알고 인편에 약을 보내어 광서제를 독살했다고 하고, 일설에는 원세개(袁世凱)가 자희(慈禧)가 병이 들어 일어나기 힘든 것을 보고 황태후가 죽은 후 자신의 처지가 매우 위태롭게 될까 두려워 환관들에게 뇌물을 먹여 광서제를 살해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태감(太監) 이연영(李蓮英)이 광서의 일기 중에 서태후가 죽은 후에 원세개와 자신을 주살할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희와 공모하여 독약을 광서의 음식물 중에 넣어 광서를 죽게 했다는 말이 있으며, 또한 광서가 병이 위중할 때 제때에 응급처치하지 못하여 죽었다는 말도 있다. 이와 같이 매우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근 몇 년 동안 청나라 궁정의 의약 공문서를 정리한 후에 《자희광서의방선의(慈禧光緖醫方選議)》를 편집하여 출판하였다. 어떤 이는 중국 제일의 역사 공문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광서제 진료기록인 맥안(脈按)에 근거해 당시의 역사배경과 현대 중의학 이론을 결합하여

“광서가 어릴때부터 고질병으로 결핵을 앓아 폐까지 미치고 콩팥과 다른 기관까지 미쳤으며 심한 유정병(遺精病)도 있었다.”

고 하였다.

또 광서가 친필로 쓴 《기거주(起居注)》의 말에 따르면 “허리와 사타구니 왼쪽의 통증이 매우 심하여 조금만 움직이면 온 허리에 미쳐 통증이 심해 참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가 죽기 전 3,4일 내와 임종 전의 병세를 보면 돌발성 중독이나 다른 손상에 의한 징후는 발견할 수 없다.

이로써 광서제가 독살되었다는 견해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광서제의 죽음은 폐결핵이 오래되어 마지막에 오장육부로 안 미친 곳이 없어 양기가 흩어지고 음기가 말라 음양이 갈라져 무너진 것이다. 그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아마도 심폐기능의 만성 쇠약으로 급성 감염의 합병증으로 인한 것 같다.

또 어떤 사람은 광서가 일생 동안 외국의 침략과 압박, 나라 안의 걱정거리를 많이 겪어 마음이 항상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특히 무술변법의 실패로 정치적으로 중대한 변고를 당하여 그 병세가 가중되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병증이 나타나 기혈이 두배로 모자라 상황이 갈수록 나빠졌다. 28세(광서 24년)부터 시작하여 병세가 점점 심해져 광서 33년에 이르면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거동도 어려워 그 병세가 이미 고치기 어렵게 되고 내장 기관이 모두 손상되고 음양이 모두 쇠하였다.

결국에는 38세까지밖에 살지 못했다.

광서가 죽기 전의 맥안(脈按) 기록에 따르면,

“황상의 맥이 마치 실이 끊어지려는 것 같고 사지는 차갑고 숨은 거칠며 두 눈은 위로 뒤집어지고 정신이 이미 혼미해졌으며 아관(牙關)은 굳게 다물어 상황이 이미 끝나려고 하여 조심스럽게 맥을 살리려고 노력하였다”

광서 임종전 수일 동안의 맥안은 모두 급히 응급조치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고 어의들도 가능한 한 혼신을 다해 해결하려고 하였으므로 광서의 병이 위급할 때 응급처치를 못했다는 것도 적절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상술한 견해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일찍이 당시 청나라 조정 내무부의 삼석(三席) 대신(大臣)을 맡았던 증숭(增崇)의 아들 찰존기(察存耆)의 회상에 따르면,

광서제가 갑자기 죽기 이틀전 의사가 광서제를 진맥할 때, 광서제가 “아직 바깥 채에 서 있었고 얼굴이 평소보다 약간 창백할 뿐이었으며”, 게다가 스스로 “가래가 심하다고 느껴 의사에게 가래를 없애는 방법을 생각하도록 했는데” 어찌 이렇게 빨리 위독해질 수 있는가? 또 찰존기가 보존하고 있던 부친 증숭의 편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맥안을 받아 읽어 보니 의사의 말에 따르면 이 증상은 그리 중하지 않다고 하는데,……맥안 상의 문구는 봄철의 모든 병증을 묶어 명을 받들어 덜지 아니하고 전부 기록하였는데, 사실 병증은 그러하지 않았고 만약에 그러했다면 사람이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며……”

이로써 맥안과 병세가 같지 않았으며 완전히 자희의 ‘안색’으로 맥안을 정한 연고이다. 대략 광서의 맥을 짚었던 어의 혹은 다른 성에서 추천되어 온 의사는 자희의 안색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미 일종의 풍조가 되었다.

찰존기는 일찍이 어의가 오로지 ‘안색’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예를 회상했다. 처음 취임한 어떤 어의가 자희의 면전에서 광서의 맥안에 응답할 때 “서간순기(舒肝順氣)”라는 전문용어를 썼다가 자희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누가 황제의 간이 불편하다고 하던가? 숨은 또 어찌 고르지 않았다고 하던가?” 하니 그 어의는 놀라서 연신 고개를 찧으며 죄를 인정했다.

이후로는 누구도 감히 맥을 짚는 임무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 “이후에 누가 광서의 맥을 짚고 처방을 하든간에 항상 ‘화간순기(和肝調氣)’, ‘이폐익원(理肺益元)’이라 하여 결국은 간의 병을 굳혀 폐로까지 전이되게 하였다.”

더군다나 광서가 급사한 후의 입관 또한 상식에 어긋났다. 찰존기의 회상에 따르면, 어느날 오후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청 내궁(內宮)에서 그의 부친 증숭에게 내전에서 구두로 ‘통지’하길 “황제께서 위중하시다”며 바로 입궁하여 (광서제의) 사후의 일을 처리할 것을 준비하라고 하였고, 증숭과 두 명의 내무부에 재직하는 동생은 이 소식을 듣고 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해 있었다.

이틀 전만해도 광서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으며 게다가 황제가 위독하다는 ‘발초(發抄: 황제가 위독하면 태의원(太醫院)에서 주동적으로 처방과 맥안을 전사하여 각처에 통보하는 현재의 위독함을 알리는 전보와 같음)’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누군가가 근거없는 소문을 날조한 듯한 의심이 들었다.” 광서제가 확실히 사망했다는 것을 실증하고 난 뒤에는 더욱이 그 사인(死因)이 의심스러웠다.

왜냐하면, 청 조정의 규칙에 따르면 황제가 죽으면 전문적으로 그 유해를 ‘모시는’ ‘만년길상교(萬年吉祥轎)’라는 가마를 사용하는데, 이번에는 남몰래 광서의 시체를 궁내로 옮겨놓고 이 가마를 사용하지도 않았으며 내무부 대신들이 온 후에 시체는 이미 태감(太監)이 대표로 입관을 완비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내무부의 직무를 맡고 의사들과 접촉도 비교적 많은 증숭 형제가 광서제의 갑작스런 죽음에 의심을 갖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로써 맥안의 ‘고증’은 비록 일설에 속한다 하나 광서의 죽음에 대한 현안은 오히려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하나의 수수께끼임을 알 수 있다.(鍾鶴)




주(注): 광서제의 갑작스런 죽음은 자희가 가해한 것인가? 《세기(世紀)》 잡지 1999년 제4기 계약체(桂若棣)의 《청궁의안탐비(淸宮醫案探秘)》에 따르면, 문장에서 말하길, 요 근래 국무원(國務院)이 공문서 전문가와 중의약 전문가가 참가한 청궁의안 연구소조(硏究小組)를 한 팀 결성하여 중국 제일 역사 공문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청궁의약비방의 정리, 발굴작업을 전문적으로 맡게 되었다고 한다. 전국 중의학 노인병 의료중심 주임, 청궁의안 연구실 주임, 박사생 지도교수 주문천(周文泉) 교수는 자희와 광서의 치료 의안(醫案)을 연구한 후 광서가 병으로 죽었고 자희 역시 병으로 죽었음을 고증하였다. 주교수는 자희의 병은 만성 설사가 원인이 되어 병세가 점차 가중되었고 병세는 11월 13일을 전후로 하여 갑자기 악화되는 증상은 없었으므로 자희가 곧 죽을 것을 예지하여 광서에게 가해하였다는 소문을 뒷받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13일부터 여러 의관의 맥안에 인용된 문장 중에는 이미 광서의 병이 회생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자희의 이날의 병세는 광서보다 훨씬 가벼워 그녀가 광서가 일찍 죽기를 바랬더라도 조용히 기다리면 될텐데 그를 독살할 필요가 어디 있었겠는가? 따라서 ‘가해설’은 성립하기 어렵다.(시선원(施宣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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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광쉬 황제는 독살됐다>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11.03 11:24



유해감식결과 밝혀져..100년 논쟁 종지부

(베이징 AFP=연합뉴스) 중국 청나라(1644-1912) 말기 광쉬(光緖) 황제(1874-1908)는 치사량을 크게 능가하는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중국 공안, 학계, 정부 기관 등이 참여한 5년간의 연구 결과 밝혀졌다고 중국 관영 언론들이 2일 보도했다.

광쉬가 38세로 사망한 데 이어 그의 섭정이던 츠시태후(慈禧太后.西太后.74세)마저 22시간 내 사망해 광쉬의 죽음은 지난 100년간 중국 학계에서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이제 종지부를 찍었다.

광쉬 황제 유해에서 나온 머리카락, 유골, 의복의 잔류물 등에 대해 엑스레이 형광분석, 원자력 형광 광도분석 등을 실시한 결과 다량의 비소가 검출됐다.

이번 연구는 베이징(北京)시공안국법의검험감정중심, 중국원자능과학연구원, 중국 관영 CCTV, 청나라 서릉(西陵)문물관리처 전문가들이 광쉬 황제 사망 원인 연구 과제조를 결성해 2003년 이래 진행해온 것으로 14일 광쉬 사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다.

2일 베이징에서는 광쉬 사망 원인 보고회가 개최돼 황제의 돌연한 서거가 위장성(胃腸性) 비소 중독 때문이라고 확정했다고 중국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中國新聞社)가 전했다.

그러나 누가 독살했는지, 급성인지 만성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베이징의 징화시보(京華時報)는 전했다.

광쉬는 중국을 현대화하고 입헌 군주제를 확립하려는 개혁을 시도한 후 1989년 이래 연금 상태에 처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2천년 이상 지속되어온 중국의 전제적인 황제 제도의 붕괴를 예고하는 것으로, 광쉬에 이어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 후 청나라는 멸망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sm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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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본문내용으로 본 광서제의 죽음     (道典 5편 325장)
 

   
  세계일가 통일정권 대공사  

1 무신년 10월에 고부 와룡리 문공신의 집에 머무르시며 대공사를 행하실 때

2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萬世)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천자신)을 옮겨 와야 하리니

3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느니라.” 하시니라.

4 또 말씀하시기를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된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비롯되었느니라.” 하시고

5 친히 곡조를 붙여 시천주주를 읽어 주시며 성도들로 하여금 밤마다 읽게 하시니라.

  선천세계의 제왕기운을 거두심  

6 며칠이 지난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소리가 운상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며

7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임금의 길이라.

8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고

9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 하고 외치시니 이 때 청국 광서제가 죽으니라.

10 이로써 세계일가(世界一家) 통일정권(統一政權) 공사를 행하시니

11 성도들을 앞에 엎드리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 하시고 성도들에게 “하늘을 보라.” 하시매

12 하늘을 보니 문득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거동처럼 허공에 벌여져 있다가 곧 사라지니라.

  중국을 여러 나라로 나누심

13 한 성도가 여쭈기를 “황극신이 이 동토(東土)에 넘어오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는 조선이 된다 하였사온데 그렇게 되면 청나라는 어떻게 됩니까?” 하니

14 “내가 거처하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가 되나니 청나라는 장차 여러 나라로 나뉠 것이니라.” 하시니라.
  --


  325:1 문공신의 집. 초기 기록에는 이 공사의 주인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이상호는 『대순전경』을 쓸 때 문공신 성도에게 여러 차례 찾아왔는데 후일 『대순전경』을 본 문공신 성도는 웃으며 “허허 어떻게 생겼는가, 그거 잘못되었어. 뭔 자가 또 보탰어.” 하였다고 한다.

  325:2 황극신. 황극신은 선후천 변화의 실질적인 핵심 자리로, 인사로는 세계 통일의 후천문명을 여는 지도자 출세 도수와 직결된다.

  325:8 이 공사를 보신 道紀 38년(1908)부터 세계 질서는 동북아의 조선이 지구촌의 천자국이 되어 가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 최종 관건이 가을대개벽의 인종씨 추리는 천지 심판의 의통성업이다.

  325:9 광서제가 죽으니라. 이는 세계일가 통일 정권 공사이자 동시에 청국의 국운을 매듭지으신 공사이다. 광서제는 道紀 38년(1908) 10월 21일에 갑자기 죽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사인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며 그 다음 날 서태후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후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 왕조가 몰락하고 공화제가 수립되었으며 이로부터 한족의 해원 공사가 실현되어 동북아 근대 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325:11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여러 나라의 왕정이 붕괴하였다. 우선 대전 중인 1917년에 혁명으로 러시아 왕정이 붕괴되었으며 전후에는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모두 왕정이 붕괴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후 왕정은 역사에서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에 존재하는 왕은 영국이나 일본에서처럼 대부분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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