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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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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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04. 복희(伏羲)가 괘를 그린 것에 대한 연구(하)
복희(伏羲)가 괘를 그린 것에 대한 연구




호북 회양 복희궁 참배



복희의 중화문화에 대한 공헌
    

복희씨는 팔괘를 그린 중대한 창조 외에도, 전설에 따르면 그가 중화문명의 발전에 대해 공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요약해서 말하면 아래의 9가지 방면이 있다.

첫째, 그물을 만들어 사냥과 고기잡이와 목축을 발전시켰다.

복희는 원시사회의 자연 채집생활에서 사냥, 고기잡이, 목축생활로 가는 과도기에 생활했던 걸출한 씨족 지도자이다. 그물의 발명은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역전(易傳)》에 이르기를

“포희씨가 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렸는데,……새끼줄을 엮어 그물을 만들어 이로써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 결핍을 보충하여 취하였다.(包犧氏之王天下也,……作結繩而爲網罟, 以佃以漁, 盖取諸離.)” 《역위 건착도(易緯 乾鑿度)》에서 또 이르길,

“복희씨가 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릴 때, 처음으로 팔괘를 만들고 새끼줄을 엮어 그물을 만들어 이로써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 결핍을 보충하여 취하였다.(伏犧氏之王天下也, 始作八卦, 結繩而爲網罟, 以畋以漁, 盖取諸離.)”

고 했다. 《시자(尸子)》에 또 이르길

“복희씨가 다스리던 때에는 천하에 짐승이 많아 백성에게 사냥을 가르쳤다.(伏犧氏之世, 天下多獸, 故敎民以獵.)”

고 했다. 《세본(世本)》에 말하길,

“복희의 신하 망씨가 새 잡는 그물을 만들고 사냥용 그물을 만들었다.(복희신망씨작라, 망작망.)”

고 했다. 새잡는 그물과 사냥용 그물로 짐승을 포획하여 이들을 사육할 수 있게 되어 목축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노사후기(路史後記)》에서 말하길, 복희씨는

“희생 가축을 길러 소를 길들이고 말을 탔다.(豢育犧牲, 伏牛乘馬.)”고 했다.

《예기 월령(禮記 月令)》에서 말하길, 복희씨는

“희생가축을 잡아 길들였다(집복희생)”

고 했는데, 즉 짐승을 포획하여 길들여 사육하였으므로 복희(伏犧)라는 칭호가 생겼다고 했다. 그물의 창조는 목축업의 출현을 야기 시켜 인류가 자연물을 채집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어렵시대로 들어가게 했는데 이는 인류문명의 일대 진보이다.

둘째, 서계(書契)를 만들었다.

《삼황본기(三皇本紀)》에서 말하길, 복희씨가

“서계를 만들어 결승의 사무를 대신하였다.(造書契以代結繩之政)”고 했다.

원시사회 초기에 인류는 결승에 의지하여 일을 기록했다. 후에 사유가 발달하자 점차 기호로 기억을 대신하고 소식을 전달했다. 팔괘는 최조에 사용하던 일종의 기호인데 후에 문자의 탄생을 촉진시켰다. 바로 청대(淸代) 문자학가 단옥재(段玉哉)가 지적한 것과 같이

“포희 이전으로부터 포희와 신농에 이르기까지 모두 결승으로 그 일을 정리하고 관할하였다. 포희가 팔괘를 만들어 문자의 발단이 되긴 했지만 팔괘는 아직 문자는 아니었다.(自庖犧以前及庖犧及神農, 皆結繩爲治而統其事也. 庖犧作八卦, 雖卽文字之肇端, 但八卦尙非文字.)” (《설문서(說文序)》주(注))

복희가 서계를 만든 것은 분명 문자의 맹아이며 의의가 매우 크다.




시집가고(嫁) 장가가는(娶) 법을 제정하여 가죽으로 예를 삼아 부부가 된다.<고사고(古史考)> <삼황본기(三皇本紀)>에 모두 설명하기를, 복희씨는 "시집가고(嫁) 장가가는(娶) 법을 제정하여 가죽으로 예를 삼아 부부가 된다." 하였다. 복희 씨족은 남자가 장가가고 여자가 시집가는(男娶女嫁)의 혼배제도(婚配制度)를 창립하여, 인류의 군혼제(群婚制)를 대신했으니, 이는 인류 혼인제도상의 일대 변혁과 진보였다.







셋째, 시집 장가 제도를 제정하여 여피(儷皮)를 예물로 하였다.

씨족 사회 초기에 인류는 원시 집단혼 생활을 하여 남녀의 구분은 있으나 부부의 제도가 없어 아직 가정생활이 없었다. 문명의 발전에 따라 점차 집단혼의 해를 알게 되어 쌍혼이 출현하여 일처일부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초주(譙周)의 《고사고(古史考)》에서는 복희가

“시집 장가 제도를 제정하여 여피를 예물로 하였다(諸嫁娶, 以儷皮爲禮).”

고 말한다.

《삼황본기(三皇本紀)》에서도 이 말을 따랐다. 《의례 사혼례(儀禮 士昏禮)》에도 여피례(儷皮禮) 제도가 남아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여피라고 하는가? 일설에는 두 장의 사슴 가죽으로 남녀 쌍방이 정혼예물로 삼는 것이라 하였다.  

또 일설에는 한 장의 사슴 가죽을 칼로 반씩 잘라서 남녀 각각 반씩 들고 혼인의 증표로 삼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는 인류 혼인제도의 일대 변혁이다.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가정제도는 생산을 발전시키고 인류를 번영시키는데 모두 지극히 중요하다.

넷째, 9부(部)를 세우고 6좌(佐)를 설립했다.

씨족사회는 백성들이 존비의 구별이 없고 계급의 한계가 없었고 씨족의 우두머리가 사회를 민주적으로 다스렸다. 부족이 번영하고 지역이 확대됨에 따라 복희는 “부를 나누어 다스리는(分部治理)” 원칙을 세웠다. 《역위 곤령도(易緯 坤靈圖)》에 이르길,

“복희가 9부를 세워 백성을 쉽게 관리하였다.(伏犧立九部而民易理.)”

고 하였다. (《역사(繹史)》권3)

《효경위 원신계(孝經緯 援神契)》에서 또 이르길,

“복희씨는 땅을 구분하여 다스렸는데, 무릇 천하의 산이 5천 3백 70개에 이르렀고, 거주지역은 56만 4천 56리에 달했다.(伏犧氏畵地之治, 凡天下山五千三百七十, 居地五十六萬四千五十六里.)” (《고미서(古微書)》인용)

전설에 따르면 복희는 6좌(佐)가 있어

“금제(金提)는 풍속의 변화를 주관하고, 조명(鳥明)은 건복(建福)을 주관하고, 시묵(視默)은 재난과 악행을 주관하며, 중기(仲起)는 바다와 육지를 보위하고, 양후(陽候)는 강과 바다를 보위했다(金提主化俗, 鳥明主建福, 視默主災惡, 紀通主中職, 仲起爲海陸, 陽候爲江海.)”

고 한다. (《논어첨적보상(論語瀸摘輔象)》)

《춘추위 문요구(春秋緯 文耀鉤)》에 이르길,

“복희가 《역》을 지어 관직을 이름 하였다.(伏犧作《易》, 名官.)”

고 하였다. 《삼황본기(三皇本紀)》에는 또 복희가

“용으로써 관직을 기재하여 용사라 하였다(以龍紀官, 號曰龍師).”

고 하였다. 이는 당시에 이미 사회의 업무가 분담되어 있었음을 설명한다. 9부를 나누고 관직을 설치하여 다스린 것은 사회를 다스리는 방법이 진보되었음의 표현이다.


다섯째, 역도(歷度)를 만들고 절기를 정했다.


《주비산경(周髀算經)》에 이르길,

“복희가 역도를 만들었다(伏犧作歷度)”

고 했다.

《관자(管子)》에 이르길,

“복희가 6계를 만들어 음양을 추산하여 구구단의 산술을 세워 천지자연의 도리에 합했다(虙戱造六峜, 以迎陰陽, 立九九之數, 以合天道).”

고 했다.

《춘추내사(春秋內事)》에 이르길,

“복희씨가 목덕으로써 왕이 되었을 때 천하의 사람들은 아직 주택이 없고 아직 물과 불의 조화가 없었다. 따라서 이에 위로는 우러러 하늘의 문양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굽어 땅의 이치를 관찰하여 처음으로 팔괘를 그려 천지의 위치를 정하고 음양의 수를 나누고 삼광을 추측하여 배열하고 8절(節)을 제안하여 나누었으며, 효(爻)로써 기에 응답하여 속세의 24개의 소식과 화복으로써 길흉을 제정하였다.(伏犧氏以木德王, 天下之人未有室宅, 未有水火之和, 于是乃仰觀天文, 俯察地理, 始畵八卦, 定天地之位, 分陰陽之數, 推列三光, 建分八節, 以爻應氣, 凡二十四, 消息禍福, 以制吉凶.)”

고 하였다. (《태평어람(太平御覽)》권78)

옛 사람들은 장기적인 생활의 실천 속에서 점차 자연의 변화규율을 인식하게 되어 여러 가지 천문 역법 지식을 총결해내었다. 복희시대에 이미 24절기를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믿을만하지 못해도 사계절과 8절기에 대한 지식이 이미 싹텄다는 것은 가능하다. 팔괘를 그려 “천지의 위치를 정하였다(定天地之位)”는 말은 현대인이 팔괘가 고대의 방위 부호가 되었다는 말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여섯째, 나무를 문질러 불씨를 얻었다.

《하도정보좌(河圖挺輔佐)》에 이르길,

“복희가 백우(伯牛)에게 제사지낼 때, 나무를 문질러 불씨를 얻었다(伏犧禪于伯牛, 鉆木作火.)”

고 하였다. 나무를 문질러 불씨를 얻은 전설은 일설에는 수인씨(燧人氏)라고 하고 일설에는 복희씨라고 한다. 불이 생겨 인류가 음식을 익혀먹게 된 것은 위생과 건강, 문명의 진보 면에서 의의가 매우 크다.


일곱째, 여러 약초를 맛보고 9침을 제작했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이르길,

“복희가 괘를 그려 육기, 육부, 오장, 오행, 음양, 사시, 물불의 승강이 형상을 얻게 하고, 여러 가지 병을 정리하여 그 종류가 있게 하여 이에 백약을 맛보고 9침을 제작하여 하늘의 왜곡됨을 구제하였다.(伏犧畵卦, 所以六氣、六俯、五藏、五行、陰陽、四時、水火昇降, 得以有象; 百病之理, 得以有類, 乃嘗百藥而制九針, 以拯天枉焉.)”

고 하였다. 이는 팔괘의 창립이 후세 의약학 발전에 중대한 작용을 함을 찬양한 것이다. 이는 신농이 여러 가지 약초를 맛본 전설과 결코 모순 되지 않는다.




여덟째, 거문고와 비파를 제작하고 음악 작품을 만들었다.


초주(譙周)의 《고사고(古史考)》에 이르길,

“복희가 큰 거문고를 만들었다(伏犧作瑟)”

고 했다.

《예기 곡례(禮記 曲禮)》정의에 이르길, 복희가

“거문고와 비파를 만들어 음악을 이루었다(作琴瑟以爲樂).”

고 했다. 《삼황본기(三皇本紀)》에는 복희가

“35현의 큰 거문고를 만들었다(作三十五弦之瑟)”

고 한다.  《세본(世本)》에 말하길,

“복희가 큰 거문고를 만들었는데 8척 2촌이고 45현이었다(宓犧作瑟, 八尺二寸, 四十五弦)”

고 했다. 《설문(說文)》에는

“큰 거문고는 포희가 만든 현악기다(瑟, 庖犧所作弦樂也).”

라고 했다. 《세본(世本)》에 또 이르길,

“여와가 복희의 제작을 이어 처음으로 생황을 만들었다(女媧承伏犧制. 始作笙簧.)”

고 했다. 문일다(聞一多)는 《복희고(伏犧考)》에서 말하길,

“고대의 생황은 조롱박으로 만든 것이다(古代的笙是葫蘆做的)”

“여와는 본래 조롱박의 화신이므로 여와가 생황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예기 명당위》에는 여와의 생황이라고 말한다(女媧本是葫蘆的化身, 故相傳女媧作笙. 《禮記 明堂位》云:女媧之笙簧.)”고 했다.

복희와 여와는 단지 악기만 만든 것이 아니라 음악 작품도 만들었다. 《효경위 구명결(孝經緯 鉤命決)》에 이르길,

“복희가 지은 음악은《입기》라 이름하였다(伏犧樂名《立基)》)”

고 하였다. (《예기 악기(禮記 樂記)》정의 인용) 《효경위 원신계(孝經緯 援神契)》에 이르길, “복희가 지은 음악은 《부래》라 이름하였는데 《입기》라고도 한다(伏犧樂名《扶來》, 亦曰《立基》)”

라고 했다. (《왕함산방집일서(王涵山房輯佚書)》)

《효경위 구명결(孝經緯 鉤命決)》에 이르길,

“복희가 지은 음악은 《입기》라 이름하였는데, 《부래》라고도 하고 《입본》이라고도 했다(伏犧樂名《立基》, 一云《扶來》, 亦曰《立本》)”

고 했다. (《역사(繹史)》권3 인용)이는 《입기(立基)》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작품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아홉째, 시초로 점치는 법을 세웠다.



《예문유취 방술부(藝文類聚 方術部)》에 이르길,

“포희씨가 만들어 처음으로 시초로 점치는 것이 생겨났다. 그 후에 무함이 시초점을 잘 쳤다(庖犧氏作, 始有筮. 其後段時, 巫咸善筮).”

고 했다. 시초점은 중국 선민들이 의혹을 해결하던 수단이었다. 전하는 바로는 팔괘는 처음으로 길흉을 결정하여 계획하던 것으로 《연산(連山)》, 《귀장(歸藏)》, 《주역(周易)》은 모두 고대 시초점을 치던 책들이다.

전설 속의 복희는 중화민족의 창시자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는 원시사회의 어렵과 목축 시대에 생활하면서 그물을 제작하여 어렵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목축업의 발전을 촉진하였으며, 우러러 살피고 굽어 관찰하여 처음으로 팔괘를 그렸으며, 서계를 만들고, 여피의 예물을 제정하고, 9부를 세우고 6좌를 설치하였으며, 악기를 제작하고 음악작품을 만들고 의약을 발명하여 중국고대문화 발전에 다방면으로 탁월한 공헌을 하여 위대한 중화문화의 영웅답게 영원히 존경받을 만 하다.

희황(羲皇)문화가 당대의 문명 건설을 촉진시켰음을 널리 알리고 연구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고 민족의 응집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지금 학자들의 영광스러운 사명이다. (작자: 당명방(唐明邦) 무한(武漢)대학 철학과 교수, 중국주역연구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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