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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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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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02. 태호복희(太昊伏犧)에 대한 대륙 향토사료를 정리한 지나사가의 총정리편 소개시리즈 4

태호복희(太昊伏犧)에 대한 대륙 향토사료를


정리한 지나사가의 총정리편 소개시리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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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백성에게 어업과 수렵을 가르치다.








67. 《역 계사하(易 系辭下)》: 새끼줄을 엮어 그물을 만들어 이로써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았다.

(作結繩而爲網罟, 以佃以漁.)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제86쪽.)

68. 《한서 율력지(漢書 律歷志)》: 그물을 만들어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 희생물을 취하였다.

(作網罟以田漁, 取犧牲.) (《한서(漢書)》중화서국 1962년판, 제1011쪽.)

69. 《시자 군치(尸子 君治)》: 복희가 다스리던 세상에는 천하에 들짐승이 많아 사람들에게 사냥을 가르쳤다.

(宓犧之世, 天下多獸, 敎人以獵.) (《백자전서(百子全書)》절강출판사 영인판 《시자(尸子)》.)

70. 《포박자(抱朴子)》: 대호가 거미를 본받아 그물을 엮었다.

(大昊師蜘蛛而結網.) (중화서국 1993년판 “신편제자집성(新編諸子集成)” 《抱朴子外篇校釋)》)

71. 《잠부론 오덕지(潛夫論 五德志)》: 새끼줄을 엮어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다.

(結繩爲網以漁.) (《잠부론전교정(潛夫論箋校正》중화서국 1985년판 제384쪽)

72. 《삼황본기(三皇本紀)》: 그물을 엮어 사냥과 어렵을 가르쳤으므로 복희씨라 하였다.

(結網罟以敎佃漁, 故曰宓犧氏.) (《사기(史記)》중화도서관 간행, 영인 정교 단구본)

73. 《세본(世本)》: 복희의 신하 망씨(芒氏)가 새 그물(羅)을 만들고, 참억새로 그물을 만들었다.

(伏犧臣芒氏作羅, 芒作網.) (《복희문화(伏羲文化)》중국사회출판사 1994년판 제10쪽)

74. 《도장 동신부 옥결류 현경원지발휘 삼오장(道藏 洞神部 玉玦類 玄經元旨發揮 三五章)》: 백성에게 제물용 가축을 잡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敎民伏羲, 因以爲號.) (《복희문화(伏羲文化)》중국사회과학출판사 1994년판 제72쪽)

75. 《사강평요 권 일 복희씨(史綱評要 卷一伏羲氏)》(명(明) 이지(李贄)): 태호가 처음으로 그물을 만들어 이로써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 백성들이 풍부하게 쓰도록 했기 때문에 복희씨라 하였다.

(太昊始作網罟, 以佃以漁, 以贍民用, 故曰伏羲氏.) (《사강평요(史綱評要)》중화서국 1974년판 제5쪽.)

76. 《노사후기(路史後記)》: 제물용 가축을 사육하고 소를 길들이고 말을 탔다.

(豢養犧牲, 伏牛承馬.)



7. 시집 장가 제도를 처음으로 성행시키다



복희 위업 남취여가(男娶女嫁)의 혼배제도(婚配制度)-시집가고(嫁) 장가가는(娶) 법을 제정하여 가죽으로 예를 삼아 부부가 된다. <고사고(古史考)> <삼황본기(三皇本紀)>에 모두 설명하기를, 복희씨는 "시집가고(嫁) 장가가는(娶) 법을 제정하여 가죽으로 예를 삼아 부부가 된다." 하였다. 복희 씨족은 남자가 장가가고 여자가 시집가는(男娶女嫁)의 혼배제도(婚配制度)를 창립하여, 인류의 군혼제(群婚制)를 대신했으니, 이는 인류 혼인제도상의 일대 변혁과 진보였다.



77. 《삼황본기(三皇本紀)》: 이리하여 처음으로 시집, 장가 제도를 제정하여 여피(儷皮: 한 쌍의 사슴가죽)를 예물로 했다. 사마정이 스스로 주석하길, 살펴보건데, 초주 《고사고》에 복희가 시집, 장가 제도를 제정하여 여피를 예물로 했다고 하였다.

(于是始制嫁娶, 以儷皮爲禮. 司馬貞自注: 按, 譙周《古史考》, 伏犧制嫁娶, 以儷皮爲禮也.) (《이십오사(二十五史)》상해고적 1986년판 제361쪽)

78. 《의례 칠혼례(儀禮 七昏禮)》: 납징, 현훈, 속백, 여피
정현이 주석하길, 징은 성사시키는 것이다. 사자로 하여금 예물을 받아 혼례를 성사시키도록 하고 현훈을 사용하여 음양의 형상을 모두 구비하게 하고 속백 10단을 준비한다. 《주례》에 이르길, 보통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얻을 때는 예물이 순 비단이 5량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여(儷)는 둘이다. 속백을 집어 운명을 표시하였으며 가죽 두 개를 가정의 열매로 삼았다. 가죽은 사슴가죽이다.

(納徵, 玄纁, 束帛, 儷皮. 鄭玄注: 徵, 成也. 使使者納幣以成昏禮, 用玄纁者, 象陰陽備也, 束帛十端也. 《周禮》曰: 凡嫁子取妻, 入幣純帛無過五倆. 儷, 兩也. 執束帛以致命, 兩皮爲庭實. 皮, 鹿皮.)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2년판 제962쪽)

79. 《풍속통(風俗通)》: 여와가 신에게 기원하고 제사를 지내어 여자 매파가 되어 풍속에 따라 혼인을 가늠했다.(女媧禱祠神祈而爲女媒, 因量婚姻.) (《총서집성(叢書集成)》중화서국 1985년판《풍속통의(風俗通義)》제3쪽)

80. 《고사고(古史考)》: 복희가 시집 장가를 제정하여 여피를 예물로 했다.(伏羲制嫁娶, 以儷皮爲禮.) (《복희문화(伏羲文化)》중국사회출판사 1994년판 제11쪽)

81. 《사강평요 권 일 복희씨(史綱評要 卷一 伏犧氏)》(명(明) 이지(李贄)): 상고시대에는 남녀의 유별이 없어 황제는 시집 장가를 제정하여 여피를 제물로 하여 성씨를 바로잡고 중매쟁이를 통하여 인륜지본을 중시함으로써 백성들이 버릇없이 굴지 않게 되었다.

(上古男女無別, 帝始制嫁娶. 以儷皮爲禮, 正姓氏, 通媒妁, 以重人倫之本, 而民始不瀆.) (《사강평요(史綱評要)》중화서국1974년판 제5쪽)





8. 서계(書契)를 만들다




서계(書契)를 만들다. 새끼줄을 꼰 결승문자로 다스린 시대.  <삼황본기(三皇本記)>에 기술하기를 사람들은 복희시대가 서계(書契)를 만들어 결승문자로 통치한 시대라 한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각화부호(刻畵符號)로 기사를 쓰는 방법을 창조하여 복희 씨족 시대는 앙소(仰韶)문화 중, 말기와 동시대로 마가빈(馬家賓) 문화의 도기, 골편에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각화부호가 있다.





82. 《삼황본기(三皇本紀)》: 서계를 만들어 결승의 사무를 대신하였다.

(造書契以代結繩之政.) (《이십오사(二十五史)》상해고적 1986년판 제361쪽)

83. 《설문서(說文序)》: 옛날에 포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위로는 우러러 하늘의 모양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굽어 땅의 모범을 관찰하고, 날짐승과 들짐승의 현상과 땅의 마땅함을 살펴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모든 사물에서 비유를 취하여 팔괘를 처음으로 만듦으로써 바른 상을 보여 주었다. 신농씨에 이르러 결승으로 다스려 일을 처리하였다. 많은 일들이 매우 번잡하다 보니 꾸미고 속이는 일이 많아졌다. 단옥재가 주석하길, 포희가 팔괘를 만든 것이 비록 문자의 발단이라고 말하지만, 팔괘는 아직 문자는 아니었다.

(古者庖羲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于天, 俯則觀法于地, 視鳥獸之文, 與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于是始作易八卦, 以垂憲象. 及神農氏結繩爲治, 而統其事. 庶業其緐, 飾僞萌生. 段玉裁注: 言庖犧作八卦雖卽文字之肇端, 但八卦尙非文字.)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상해고적출판사 1981년판 제753쪽.)

84. 《역 계사하(易 系辭下)》: 상고시대에는 결승으로 다스렸으며 후세의 성인들은 이를 서계로 바꾸었다. 백관은 이로써 다스리고 만민은 이로써 살피어 모든 중심을 압도하여 취하였다.

(上古結繩而治, 後世聖人易之以書契. 百官以治, 萬民以察, 盖取諸央)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제87쪽)


85. 《상서서(尙書序)》: 옛날에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처음으로 팔괘를 그리고 서계를 만들어 결승의 사무를 대신하였는데 이것으로부터 서적이 생겨났다. 공영달이 주석에 주를 가하길, 결승을 대신하여 전 세대의 사무에는 결승을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서계가 있어 이를 대신하여 복희의 시대에 처음으로 문자가 생겨 일을 기록하였으므로 말하길, “이것으로부터 서적이 생겨났다”고 했다한다.
또 공영달이 주를 가하길, 《역위 통괘험》에 따르면 수인이 복희의 전 시대에 “계책을 드러내는데 그것을 새겨 말하길, 창아가 신비스런 힘을 가지고 있어 번영이 이루어지고 운명을 아주 상세히 밝히고 도경을 밝히었다.” 정현이 주석하여 이르길, “각(刻)이라는 것은 (그림이나 글자를) 돌에 새겨 그것을 기록하여 기억하는 것이라 말한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복희 이전에 이미 문자가 있었다. 공영달이 또 소(疏)하길, 《한시외전》에 이르길 옛날에 태산을 받들어 양나라 남쪽에서 제사지내던 자가 만여 명으로 중니가 보기만 하고는 모두 기억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문자가 복희 이전에 이미 오래전에 있었다는 것인데 어찌 복희가 서계를 만든 것을 의심하는가?

(古者伏犧氏之王天下也, 始畵八卦, 造書契, 以代結繩之政, 由是文籍生焉. 孔穎達疏: 代結繩者, 前世之政用結繩, 今有書契以代之, 則伏犧時始有文字以書事, 故曰“由是文籍生焉”. 又孔疏: 依《易緯․通卦驗》燧人在伏犧前, “表計置其刻曰: 蒼牙通靈, 昌之成, 孔演命, 明道經.” 鄭玄注云: “刻謂刻石而記識之.” 据此, 伏犧前已有文字矣. 又孔疏: 《韓詩外傳》稱古封太山禪梁南者萬余人, 仲尼觀焉不能盡識. 是文字在伏犧之前已自久遠, 何怪伏犧而有書契乎?)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제87쪽. 또 《상서정의(尙書正義)》북경대학출판사 1999년판 제2쪽)

86. 《사강평요 권 일 복희씨(史綱評要 卷一伏犧氏)》(명(明) 이지(李贄)): 서계를 만들어 결승의 사무를 대신하였다. 기록은 여섯 개의 규정이 있었는데: 하나는 상형이라 했고, 두 번 째는 가차라 했고, 세 번째는 지사라 했으며, 네 번째는 회의라 했고, 다섯 번째는 전주라 했고, 여섯 번째는 해성이라 했다. 이리하여 천하의 도리가 반드시 문자로 돌아오게 하고 천하의 문자는 반드시 육서로 돌아오게 했다.

(造書契以代結繩之政. 書制有六: 一曰象形, 二曰假借, 三曰指事, 四曰會意, 五曰轉注, 六曰諧聲, 使天下義理必歸文字, 天下文字必歸六書.) (《사강평요(史綱評要)》중화서국1974년판 제5쪽.)


9. 거문고를 만들어 연주하다



87. 《삼황본기(三皇本紀)》: “35현의 거문고를 만들었다.”

(“作三十五弦之瑟”.)

88. 《세본(世本)》: 복희가 거문고를 만들었는데, 8척 2촌에 45현이었다.

(宓犧作瑟, 八尺二寸, 四十五弦.)

89. 《설문(說文)》: 포희가 현악을 만들었다.

(庖犧所作弦樂也) (《설문해자(說文解字)》중화서국 1963년판 제267쪽)

90. 《예기 곡례(禮記 曲禮)》: 공영달이 주석에 주를 가하길, 복희가 거문고와 비파로 음악을 만들었다.

(孔疏: 伏犧作琴瑟以樂.)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91. 《고사고(古史考)》: 복희가 거문고를 만들었다.

(伏犧作瑟.)

92. 《예기 악기(禮記 樂記)》: 공영달이 주석에 주를 가하길, 복희의 악명은 《입기》이다.

(孔疏: 伏犧樂名《立基》)

93. 《초사 대초(楚辭 大招)》: 복희의 《가변》은 초나라의 《노상》에만 있다.    
          주희 《집주》: 혹자는 복희가 거문고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伏戱《駕辨》, 楚《勞商》只. 朱熹《集注》: 或謂伏羲始作瑟.) (《초사집주(楚辭集注)》상해고적출판사 1979년판 제148쪽)


94. 《이아 석악(爾雅 釋樂)》: 큰 거문고(瑟)는 쇄(灑)라고 한다. 형병이 주석에 주를 가하길, 《세본》에 이르길 포희가 50현을 만들었다. 황제가 소녀(素女)로 하여금 큰 거문고를 타게 하였는데 그 소리가 너무 애달파 견디지 못하고 끊어져 25현이 되었다.    큰 거문고(琴)는 리(離)라 한다. 형병이 주석에 주를 가하길, 금조 왈 복희가 큰 거문고를 지었다한다고 했다.

(大瑟謂之灑. 邢昺疏: 《世本》曰, 庖犧作五十弦. 黃帝使素女鼓瑟, 哀不自勝, 乃破爲二十五弦. 大琴謂之離. 邢昺疏: 琴操曰, 伏羲作瑟.) (《이아주소(爾雅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제2601쪽.)


95. 《습유기(拾遺記)》: 포희씨가 흙을 구워 훈(塤)을 만들었다.

(庖犧氏灼土爲塤.)

96. 《효경주소(孝經注疏)》: 풍속을 변화시키는 데는 예악보다 나은 것이 없다. 형병이 주석에 주를 가하길, 《세본》에 이르기를 복희가 거문고와 비파를 만들었는데 그 악기가 점차 복희에게로 젖어들었다.

(移風易俗, 莫善于樂. 邢昺疏: 《世本》曰: 伏羲造琴瑟, 則其樂器漸于伏羲也.)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중화서국 1980년판 제2556쪽.)

97. 《수서음악지(隨書音樂志)》: 복희는 그물을 엮을 때 읊는 노래가 있었다.

(伏犧有網罟之詠.) (《이십오사(二十五史)》상해고적 1986년판 제3285쪽.)

98. 《한서 사마상여전하(漢書 司馬相如傳下)》: 영와로 하여금 거문고를 뜯어 풍이를 고무시키게 했다. 복건이 주석하길, “영와는 여와이다. 복희가 거문고를 만들어 여와에게 그것을 뜯게 하였다.”고 했다.(使靈媧鼓琴而舞馮夷. 服虔注: 靈媧, 女媧也. 伏犧作琴, 使女媧鼓之.) (《한서(漢書)》중화서국 1962년판 제2596쪽.)

10. 갑력(甲歷)을 만들고 절기를 정하다.

99. 《관자 경중무(管子 輕重戊)》: 복희가 육계를 만들어 음양을 추산하여 구구단의 산술을 지음으로써 천지자연의 도리에 합하여 천하가 이에 따랐다.

(虑戱作, 造六峜, 以迎陰陽, 作九九之數, 以合天道, 而天下化之.) (《관자교석(管子校釋)》악록서사 1996년판 제630쪽.)

100. 《춘추내사(春秋內事)》: 복희씨가 목덕으로써 왕이 되었을 때 천하의 사람들은 아직 보택이 없고 아직 물과 불의 조화가 없었다. 따라서 이에 위로는 우러러 하늘의 문양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굽어 땅의 이치를 관찰하여 처음으로 팔괘를 그려 천지의 위치를 정하고 음양의 수를 나누고 삼광을 추측하여 배열하고 8절(節)을 제안하여 나누었으며, 효(爻)로써 기에 응답하여 속세의 24개의 소식과 화복으로써 길흉을 제정하였다.

(伏犧氏以木德王, 天下之人未有寶宅, 未有水火之和: 于是乃仰觀天文, 俯察地理, 始畵八卦, 定天地之位, 分陰陽之數, 推列三光, 建分八節; 以爻應氣, 凡二十四消息禍福, 以制吉凶.) (《태평어람(太平御覽)》권 78 중화서국 1960년판 제364쪽)

101. 《강감역지록(綱鑒易知綠)》: 호영에게 갑력을 만들고 사시를 정하도록 명했다. 갑과 인으로 시작하여 지간이 12신과 서로 어울리고 육갑이 천도의 둘레를 돈다. 세월은 이로써 질서를 잡아 해가 무질서해지지 않고, 달은 이로써 질서를 잡아 시기가 바뀌지 않으며, 밤낮은 이로써 질서를 잡아 인간이 그 주기를 알게 하고, 동서남북은 이로써 질서를 잡아 방위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다.

(命昊英作甲歷, 定四時. 起于甲寅, 支干相配爲十二辰, 六甲而天道周矣. 歲以是紀而年不亂, 月以是紀而時不易, 晝夜以是紀而人知度, 東西南北以是紀而方不惑.)

102. 《통감외기(通鑒外紀)》: 복희가 110년동안 재위할 때 처음으로 갑력을 만들어 하늘의 기운을 다스렸는데, 복희는 양기(陽氣)의 첫 번째 질서를 율법으로 하여 오기(五氣)를 세우고 오상(五常)을 세웠으며 오행(五行)을 정하여 갑력의 오운(五運)이 생겨났다.

(伏羲在位百一十年始有甲歷王運, 伏羲紀陽氣之初爲律法, 建五氣, 立五常, 定五行, 有甲歷五運.) (《직예진주신지(直隸秦州新志)》권12.)

103. 《주비산경(周髀算經)》: 복희가 역도(歷度)를 만들었다.

(伏犧作歷度.)    

                                     (이상 王廷賢 정리) 안원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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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1. 하(夏), 상(商) 두 왕조의 이름은 어떻게 하여 얻어진 것인가?  안원전   2005/05/21  5896
163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2. ‘만세(萬歲)’는 어느 시기에 기원했는가?  안원전   2005/06/07  5692
162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3. 동이족 월족 이광(夷光:서시 본명) 서시(西施)의 귀결점은 어떻게 되었는가?  안원전   2005/06/13  6939
161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4. 맹강녀(孟姜女)는 기량(杞梁)의 아내인가?(동이족 맹강녀 이야기)  안원전   2005/06/17  6323
160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5. 양귀비(楊貴妃)는 정녕 일본으로 망명했는가?  안원전   2005/06/28  6245
159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6.건륭(乾隆)의 딸은 신분이 낮은 공부(孔府)로 시집갔는가?  안원전   2005/07/14  6812
158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7.)《서유기 西遊記》와《봉신연의 封神演義》에 등장하는 이랑신(二郞神) 이빙(李冰)  안원전   2005/08/01  6102
157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8.한(漢)나라 초기 명신 장량(張良)의 8대손―장도릉(張道陵), 장천사(張天師)  안원전   2005/08/01  6124
15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19.호필(湖筆) 창시자 몽염(蒙恬)과 복향련  안원전   2005/08/08  6468
15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20.《주례(周禮)》는 누구의 저작인가?  안원전   2005/08/18  5670
15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21.《장자(莊子)》는 장주(莊周)가 저작한 것인가?  안원전   2005/09/08  5563
153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22.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작자는 손무(孫武)인가?  안원전   2005/09/26  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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