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Total : 506 (505 searched) , 1 / 15 pages  

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다운로드 #1    초(楚)문화의_수수께끼.hwp (32.0 KB), Download : 518
제 목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4. 어디에서 왔는가?(來自何方)- 초(楚)문화의 수수께끼





어디에서 왔는가?(來自何方)- 초(楚)문화의 수수께끼



  



[국민일보 2004-12-10 18:14]  
“신라 뿌리는 초나라”…중국 소수민족 전문가 양완쥐안 교수 주장
http://www.cheramia.net/board/view.php?id=bbs1&no=164


2000여년전 진(秦)나라 말엽에 한종(韓終)이라는 방사(方師)의 인솔하에 초(楚)나라 나(羅)씨와 노(盧)씨 씨족 3000여명이 한반도 동남부로 이주했으며,이들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그리고 후의 신라국을 건립했다는 가설이 중국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중국 우한(武漢)의 중남민족대학 남방소수민족연구소의 양완쥐안(楊萬娟) 교수는 역사문헌고증 결과 이같은 가설을 제기하고 방사 한종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桓雄)의 원형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후베이일보 9일자에 보도된 양 교수 주장을 요약하면 신라의 뿌리는 현재 중국 후베이(湖北)성 샹판(襄樊)이라는 것. 양 교수는 강릉(江陵),양양(襄陽),단양(丹陽),한강(漢江),태백산(太白山) 등 주로 한국 동부지역에 후베이성의 지명과 일치하는 곳이 많다는 데서 착안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건국지는 한강 상류의 단양이다. 초나라는 그후 세력을 넓혀 강릉으로 도읍을 옮겼다. 한강은 현재 산시(陝西)성 친링(秦嶺) 남쪽 태백산에서 발원해서 우한에서 창장(長江)으로 합류하는데 그 하류지역이 한양이다.
양 교수는 또 단군설화가 숭배하는 토템이 곰과 호랑이인데 초나라 토템 역시 곰이며 초나라 왕족 성은 슝(熊)이라고 밝혔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다 본 두 지역(三危와 太白)이 오늘날 쓰촨(四川)성과 간쑤(甘肅)성 교차지에 있는 민산(岷山)과 한국 강원도 태백산을 가리킨다고 양 교수는 주장했다. 단군신화도 초나라에서 비롯됐다는 것.
양 교수는 진나라 말엽 한종이 초나라의 나(羅)씨족과 노(盧)씨족을 데리고 한반도로 건너가 강원도와 경상북도 접경에 도착했으며 각각 진한과 변한을 세웠고 진한이 신라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신라의 초기 국명이 ‘사로국’인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한국(韓國)이라는 명칭도 이런데서 연유됐다는 것이다. 상하이=연합

中 학자 `신라 뿌리는 楚나라' 주장  
[연합뉴스 2004-12-10 16:06]  
=단군신화 원형도 중국에서 비롯 해석 =고구려에 이어 고대사 해석 논란
(상하이=연합뉴스) 이우탁 특파원 = 2천여년전 진나라 말엽에 방사 한종(韓終)의 인솔하에 초(楚)나라 라(羅)씨와 로(盧)씨 씨족 3천여명이 한반도 동남부로 이주했으며, 이들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 그리고 후의 신라국을 건립했다는 가설이 중국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중국 우한(武漢) 소재 중난민쭈(中南民族)대학 남방소수민족연구소의 양완쥐안(楊萬娟) 교수는 2천년 전을 거슬러 올라 역사적 문헌고증을 한 결과라며 이같은 가설을 제기했다. 그는 또 당시 한반도에 건너갔던 방사 한종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桓雄)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구려 역사를 놓고 한국과 중국이 역사왜곡 논쟁을 하는 와중에 나온 이같은 가설은 지방에 있는 한 중국인의 주장이라 하지만 향후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양 교수의 주장은 현지 신문인 호북일보(湖北日報)가 9일자에 보도했다. 양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고대 삼국의 하나인 신라의 뿌리는 현재 중국 후베이(湖北)성 샹판(襄樊.고대에는 襄陽과 樊城)에서 비롯된다는 것.
양 교수는 우선 한국의 지명(주로 동부지역) 가운데 많은 곳이 현재 후베이성에 존재하는 것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어떤 역사적 연관'이 있지 않을까 호기심을 갖게됐다고 한다. 해당 지명은 강릉(江陵), 양양(襄陽), 단양(丹陽), 한강(漢江), 태백산(太白山)이다. 양 교수는 올 6월 단오제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 강원도 강릉지방을 방문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북방은 주(周)나라, 남방은 초(楚)나라가 있었고 초나라 건국지는 단양(丹陽)으로 한강(漢江) 상류지역이다. 초나라는 그후 세력을 넓혀 강릉(江陵)으로 도읍을 옮겨 단양 일대를 지배했다. 한강은 현재 산시(陝西)성 친링(秦嶺) 남쪽에 있는 태백산(太白山)에서 발원해서 동남쪽으로 흘러 우한에서 창장(長江.양자강)으로 합류하는데 그 하류지역이 한양(漢陽)이라고 양 교수는 지적했다./
양 교수는 또 단군설화의 중국 연관성도 주장했다.
한국 단군설화가 숭배하는 토템이 곰과 호랑이인데 초나라 토템 역시 곰이라는 것이다. 초나라 왕족 성은 슝(熊.곰)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다 본 두 지역(三危와 太白)이 오늘날 쓰촨(四川)성과 간쑤(甘肅)성 교차지에 있는 민산(岷山)과 한국 강원도 태백산을 가리킨다고 양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일각에서 주장하는대로 `태백이 묘향산이라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환웅이 천부인(天符印.거울, 칼, 방울) 3개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것은 무속신앙의 무구를 가리키는 것인데 초나라는 무속신앙이 성행했고 초나라 후예 묘족(苗族)은 아직 각종 무속신앙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또 묘족은 지금도 단오절에 마늘과 쑥으로 잡귀를 쫓는다고 한다.
양교수는 이러한 것이 단군신화가 고대 초나라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단군신화와 한국의 일부 지명(주로 강원도)이 중국 고대 초나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가설이다. 양 교수는 초나라 사람들이 한반도에 조직적으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은 한종(韓終) 이라는 방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진시황때 서복(徐福)이라는 방사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간 것처럼 당시 한종은 한국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접경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때 데리고 간 사람들이 라(羅)씨족과 로(盧)씨 씨족이다. 라국(羅國)과 로국(盧國)은 현재 후베이성 샹판 근처에 있었는데 기원전 690년 초나라에 정복되어 각각 라(羅)씨와 로(盧)씨성을 하사받고 남쪽으로 강제 이주당해 오늘날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와 후난성 펑황(鳳凰)현 일대에서 속국으로 지냈다고 한다. 양 교수는 이런 내용을 좌전(左傳) 등 고문헌에서 찾아냈다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진시황 말기 한종이라는 방사가 이들 라국과 노국 사람 3천여명을 데리고 한국으로 건너갔으며 이들이 한국에 정착해서 각각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을 세웠고 진한이 신라(新羅.새로운 라국)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의 초기 국가명칭이 `사로국'인 것은 `사라(斯羅) 또는 사로(斯盧)'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양 교수는 이 부분 논증과정에서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 한국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을 인용하고 있다. 한국(韓國)이라는 명칭도 이런데서 연유됐다고 양 교수는 주장한다. 특히 신라가 일찍부터 한자를 사용한 것도 진나라 말기 중국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한국의 라(羅)씨와 로(盧)씨 본가는 후베이성 샹판 지역이라고 양 교수는 주장한다. 일부에서 한국의 로씨의 본이 산둥(山東)성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산둥에 세운 나라(盧子國)를 세운 사람들은 한반도로 건너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이런 가설로 인해 신라문화의 원류는 초나라 문화 특히 라(羅)와 로(盧)씨 문화이고, 그 결과 현재 한국의 경상북도 북부나 강원도 일대에 초나라 지명이 그대로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양 교수의 결론이다.(원문은 맨 아래 참고)






                    

중화민족의 주요 구성원인 초나라의 선민은 회하(淮河), 장강(長江), 주강(珠江)의 중하류 지역을 개발하였고 아울러 8백여 년에 걸쳐 광대한 영토의 초(楚)나라를 세웠으며 찬란한 초(楚) 문화를 창조하였다. 그러나 형초(荊楚)의 근원에 대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여, 일치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고대부족은 이동이 잦아 타 부족끼리 자주 섞였기 때문에 형초(荊楚)의 유래에 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어떤 이는 하후(夏後)에서 나왔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은상(殷商)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어떤 이는 동이(東夷)에서, 또 어떤 이는 서융(西戎)에서, 또 어떤 이는 남만족(南蠻族)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여 초 민족은 혹은 동방에서, 혹은 서방에서, 혹은 북방에서, 혹은 남방에서 비롯되었다는 등의 여러 결론을 얻어낼 수 있다.

초 민족 동래설의 대표주자는 곽말약(郭沫若)과 호후선(胡厚宣)이다. 곽말약은 최초로 《중국고대사회연구(中國古代社會硏究)》라는 책에서 이 설을 거론하였는데, 이후에 또 《청동기명문연구(靑銅器銘文硏究)》, 《중국사고(中國私稿)》 제1권 논저 중에 한층 더 진일보된 논술을 폈다.

그는, 회이(淮夷) 즉, 초인(楚人)과 초인의 선조가 회수(淮水)하류에 거주하였고 그 후 부족이 주(周)나라 사람에게 쫓겨 처음에는 장강(長江)지역으로 남하하였다가 다시 홍수로 인해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호북(湖北) 지역에 이르렀다고 지적하였다.

호후선(胡厚宣)은 《초민족원우동방고(楚民族源于東方考)》 본문에서 지적하길 초나라는 동방의 노(魯)지역 (동이)민족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후에 주(周)민족의 동쪽 확장 및 황하(黃河)유역 기후의 점차적인 변화에 따라 동방 민족의 대다수는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그 중 초 민족의 세력이 제일 강했는데 이후에 남방의 강한(江漢)유역까지 발전해갔다.

전백찬(翦伯贊), 여진우(呂振羽), 잠중면(岑仲勉) 등은 초 민족의 서래설을 주장하였다. 여진우와 전백찬 등은 초 민족이 하(夏), 주(周) 민족과 동족이며 융하(戎夏)집단에 속한다고 여겼다. 잠중면은 초나라 사람의 선조인 전욱(顓頊), 중려(重黎), 축융(祝融) 등은 모두 서쪽 사람이라고 지적하였다.

초나라 왕명인 ‘웅(熊)’(동이족의 상고시조인 태호복희의 후예가 황웅족임은 밝혀진대로이고 황제헌원도 황웅족의 갈래인 유웅족임은 이미 밝혀진대로다:안원전)은 고대 중아시아에 전파된 조로아스터교 경문에 나와 있는 군주, 수령의 독음과 동일하고, 초나라 관리인 ‘막오(莫敖)’는 고대 이란문자로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선교사이다. 이렇게 초나라의 선민은 또 서아시아에서 온 조로아스터교의 메디아인이 되었다.




*잠시 참고로 초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 임혜상의 중국민족사 상권을 발췌 번역해 올린다.  임혜상(林惠祥)은 형인(荊人)이 세운 나라가 초(楚)로, 춘추시기에 이르러 만이(蠻夷)에 거주하여, 스스로 제하(諸夏)와 구별했으며 혹 지금 중국(中國)의 고대 제하(諸夏) 역시 초(楚)를 칭하기를 만형(蠻荊) 또는 형만(荊蠻)이라 했다고 말한다. 지금의 귀주성에 있던 야랑국(夜郞國) 역시 회이족(淮夷族)의 후예 초나라와 같은 형만(荊蠻)이다. 동이족에 대해서는 클릭!

*웅거(熊渠) 말하기를, “나는 만이(蠻夷)라, 中國의 시호(諡號)를 좋아하지 않는다(史記 권 40)(사마천의 중국이란 표현은 ”대륙가운데 나라“란 표현으로 이미 남만, 북적, 서융, 동이로 사방을 오랑캐화 한 나머지 자칭 중앙의 한(漢)나라를 지칭한 중화사관적 표현이다)
*초(楚)가 수(隨)를 정벌(伐)하니 수(隨)가 말하기를, “나는 죄가 없다” 초(楚)가 말하기를, “나는 만이(蠻夷)다”(史記 권 40)  
*왕손어(王孫圉)가 진(晉)에 초빙되어 조간자(趙間子)에게 초(楚)의 백형(白珩)이란 보물에 대해 문답하면서,  초(楚)를 만이(蠻夷)라 하였다(楚雖蠻夷不能寶也) (國語 楚語)
*형만은 임혜상이 한족(漢族)의 제 1 근원을 동이족 하우의 화화(華夏)계, 제 2 근원을 동이(東夷)계에 이어 제 3의 근원으로 삼은 형오(荊吳)계를 말한다.



범문란(範文瀾) 등은 초나라 선민의 북래설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주로 선진문헌인 《사기 초세가(史記 楚世家)》, 《초사(楚辭)》와 같은 기록에 근거하여 초의 선조 축융씨(祝融氏)가 고대의 고양(高陽) 전욱(顓頊)부락의 후예라 여겼다.

축융팔성(祝融八姓)의 봉건국은 모두 중원 일대에 있는데, 이들은 원래 하(夏)왕조의 동맹 부락으로 하(夏)가 멸망한 후 축융부락 중의 한 파가 남쪽 강한(江漢)유역으로 이동하면서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초 민족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비교적 많은 학자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

축융부락은 하 왕조의 동맹부락으로 몇 년 간의 부단한 번영을 거쳐 새로운 씨족을 형성했는데 ‘축융팔성’의 전설이 바로 이러한 분화의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축융팔성은 사실 축융부락이 분화하고 분열되어 나온 여덟 개의 새로운 씨족으로 주로 중원일대에 분포한다.

부락간의 융합과 발전에 따라 하(夏) 왕조 말년에는 동쪽의 후손이 흥기하였다. 축융부락의 분파인 위(韋), 고(顧), 곤오(昆吾)가 서로 연이어 상(商)에게 멸망 되고, 축융부락의 한 갈래인 계연(季連)부락이 상(商)에게 쫓겨 하남(河南) 신정(新鄭) 일대부터 순우현(順禹縣), 엽현(葉顯)등의 고대 통로를 따라 점차 남천하여 회수(淮水) 이남, 한수(漢水) 유역과, 형산(荊山) 지역까지 이르러 현지 토착민과 상호 결합하여 상주(商周)문헌에서 ‘형초(荊楚)’, ‘형만(荊蠻)’, ‘만초(巒荊)’등으로 불리는 하나의 새로운 민족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명칭은 모두 총칭으로 쓰였으나 나중에는 점차 고유 명칭이 되었다.

고고학의 발굴로, 강한(江漢)유역 북부에 장강유역 원시문화와 관련된 상이한 계통의 문화가 존재하며 앙소문화(仰韶文化)의 요소가 내재하고 채도(彩陶)의 풍격도 반파(半坡)단계까지 거의 와 있음이 드러났다. 이것은 남북문화의 교류가 자고이래로 계속 진행되어 왔음을 설명한다. 하상(夏商) 시기쯤 장강유역의 이러한 원시 문화 계통의 서열이 중단되고 심한 동요가 일어났다.

그러나 장강유역의 문화서열이 중단된 연대와 하상 시기 계연(季連)부락의 남천시기가 서로 맞물려 있어, 이로써 이러한 황하유역에서 온 분파의 역량이 문헌에 기록된 초나라 선조의 이동 발자취와 서로 부합하므로 남천한 계련부락이 이 지역에 온 이후 그들이 가져온 북방의 선진적인 문화지식과 기술로 현지 거주민과 결합하여 이 지역의 계속적인 개발 과정에서 점차 융합되어 형초 부락과 지방특색을 지닌 초 문화를 형성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안원전의 21세기담론)


----

(본문 전문)
[文化特性面面观]韩国文化与中国楚文化联系蠡探 한국 문화와 중국 초나라 문화의 연관성 탐구 -> 해설 : 주창웅-> 출처 http://www.cnhubei.com/ 首页>>湖北日报>>文化生活>>本页 (2004-12-09 07:57:34) 杨万娟 양만연

今年6月中旬笔者应邀赴韩国江陵参观考察了世人关注的端午祭。回国后翻阅大量有关文献,一条令人震惊的线索越来越清晰地浮现出来,即:韩国文化主流与中国楚文化有许多相似和相关的地方。


금년 6월에 필자는 한국 강릉에 가서 세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오제를 참관하였습니다. 귀국한 뒤에 많은 양의 관련 문헌들을 읽었는데,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점들이 점차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즉, 한국 문화의 주류와 중국 초나라 문화가 매우 많은 서로 닮은 점과 서로 관련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在韩国,除江陵外,还有与楚国地名相同的丹阳、襄阳、汉阳(今汉城)、汉江等地名,查韩国地名设置史料,这些地名设置距今已六百多年。从表面上看,韩国的地名和两千多年前就存在的楚国地名好像没有什么关联性,但我看了石泉先生近期出版的《古代荆楚地理新探·续集》一书,很受启发,认为它们之间有联系。据石泉考证,楚国古都江陵并不是在长江中游,而是在汉江中游的湖北宜城。按照新论,楚人建国初期在汉江上游丹江支流的丹阳,发展成熟时期政治文化中心在汉江中游的江陵(宜城)、襄阳一带。另外上溯中国汉江的源头,是在陕西秦岭的太白山下,尽头则在下游的汉阳。比较一下韩国的几个地名分布:丹阳属于忠清北道在汉江的上游,汉阳在汉江的下游,属于江原道的江陵和襄阳均在汉江上游不远处,洞庭湖也在江原道。最有趣的是韩国汉江发源于江原道和庆尚北道连接处的太白山下。韩国地名分布几乎和中国古代楚国地名的分布同出一辙。

한국에서 강릉을 제외하고도 초나라 지명과 같은 단양, 양양, 한양(지금의 서울), 한강 등 지명이 있으며, 한국 지명 설치에 관한 사료를 살펴보면 이들 지명의 설치는 지금으로부터 600년 정도 됩니다. 표면상으로는 한국의 지명과 2천여년 전에 존재한 초나라의 지명은 아무 관련성이 없어 보입니다만, 제가 석천 선생의 최근에 출판된 <<고대형초지리신탐.속집>> 한 권을 보고 그들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석천의 고증에 의거하면, 초국의 옛 도읍인 강릉은 장강의 중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강 중류인 호북성 의성에 있었습니다. 새 이론에 비추어 보면, 초나라 사람들은 초기에 한강 상류인 단강의 지류에 있는 단양에서 건국하였고 발전 성숙기에 정치문화 중심은 한강의 중류인 강릉(의성), 양양 일대에 있었습니다.그 밖에 위로 중국 한강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섬서성 진령의 태백산 아래에 있는데, 그 하류에 한양이 있습니다. 한국의 몇개 지명 분포와 비교해 보면; 단양은 충청북도 속하고 한강의 상류에 있으며, 한양은 한강의 하류에 있으며, 강원도에 속하는 강릉과 양양은 모두 한강 상류의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동정호도 강원도에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한강이 강원도와 경상북도가 맞닿은 태백산 아래에서 발원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지명의 분포가 중국 고대 초나라 지명의 분포와 같은 데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不仅地名相似,我认为韩国的开国神话中也存有浓厚的楚文化遗迹。지명의 유사성 말고도 저는 한국의 개국신화 중에도 농후한 초나라 문화의 자취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檀君神话是韩国开国神话,在中国和韩国的许多古籍中都有记载。内容是这样的:古时,有天神桓因知道庶子桓雄想下凡,于是“下视三危、太白”,并给了桓雄三个“天府印”作为天上神仙的标识。桓雄率领三千之徒,降到太白山顶的神檀树下,建立“神市”,他命“风伯”、“雨师”、“云师”等,主管三百六十件人间大事。其时,有一熊一虎同住于一个洞穴中,它们请求桓雄天王把它们变成人,天王给它们一炷艾和二十枚蒜,并嘱咐,吃了艾和蒜之后躲藏起来,一百天之内不能见阳光。熊照办,只蹲了二十一天,就提前变成了一个女人;虎没有照办,故未能变成人。桓雄天王与熊女结婚,生下檀君,这个檀君,就是古朝鲜的开国君主。

단군신화는 한국의 개국신화인데, 중국과 한국의 많은 옛 서적에 기록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천신인 환웅이 서자인 환웅이 세속에 내려가고자 함을 알고 아래로 삼위와 태백을 내로다 보고 또 환웅에게 3개의 천부인을 주어서 하늘 위 신선의 증표로 삼게 하였습니다. 환웅은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에 내려가 신시를 세우고 풍백, 우사, 운사 등에게 명하여 360가지 인간 세상의 큰 일들을 주관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마리가 한 굴에 살고 있어, 그들은 환웅 천왕이 자신들을 사람으로 바꾸어 주기를 청하였는데 천왕은 그들에게 쑥 한 묶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분부하기를 이 쑥과 마늘을 먹은 뒤에 몸을 감추어 100일 내에 햇빛을 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곰이 힘써서 21일이 되자 곧 한 여인으로 변하였습니다. 범은 견디지 못하고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환웅천왕은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고, 이 단군이 고조선의 개국 군주입니다.

学者们认为神话故事中所谓熊、虎相处于一个洞穴,反映了以熊和虎为图腾的氏族之间的关系。楚人早期是以熊为图腾崇拜的部落。楚人姓芈,少系业务氏熊,在鬻熊之后,历代有三十多位国君以熊为姓,其最早居地又多以熊命名,如“有熊”、“熊山”、“穴熊”等。

학자들은 신화의 고사 중에 나오는 곰과 범이 한 굴에 살았다는 것은 곰과 범이 토템상의 씨족관계임을 반영한다고 인식합니다. 초나라 사람들은 일찌기 곰을 토템으로 삼아 숭배하는 부락이었습니다. 초나라 사람은 ...육웅의 후예로서 역대 30여명의 왕이 웅(곰)이란 성을 사용하였고 그 최초 거주지는 유웅, 웅산, 혈웅 등과 같이 곰이라는 이름을 많이 붙였습니다.

关于“三危”、“太白”,韩国学者多认为“太白”指朝鲜平安道境内的妙香山,“三危”指中国敦煌附近的三危山。中国学者对古三危地方的说法不一致,我同意古三危在川甘交界处,岷江、岷山一带的说法,认为檀君神话中的“三危”是指中国古三危,“太白”应该指韩国江原道和庆尚北道交界处的太白山。中国史籍中,有关三危记载最多的是公元前2000多年尧舜将三苗的一支放逐到三危,荆楚腹地在上古时曾属三苗地,楚苗同源这已为楚国史研究的学者们所公认。三苗的部落酋长蚩尤曾北上中原,与黄帝逐鹿。在中国各地的苗族都将蚩尤视为始祖,而苗祖蚩尤和“风伯”、“雨师”关系密切。楚国大诗人屈原在《楚辞·远游》中也提到“风伯”、“雨师”、“雷公”(也称“云中君”、即“云师”)。楚辞中的“风伯”、“雨师”、“雷公”(云师)和檀君神话中的“风伯”、“雨师”、“云师”一样,都是天神可以左右的对象。

삼위와 태백에 관하여는 한국의 학자들이 많이 태백은 북한 평안도 경내에 있는 묘향산이고 삼위는 중국 돈황 부근의 삼위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학자들의 옛 삼위 지방에 대한 설명은 불일치 하는데 저는 옛 삼위는 사천성과 감숙성의 경계에 있는 민강, 민산 일대에 있다는 설명에 동의하며, 단군신화 중의 삼위는 중국의 옛 삼위를 가리키며 태백은 마땅히 한국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접경인 태백산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역사 서적 중에 삼위에 관해 기록이 가장 많은 것은 서력 기원전 2000여년 경의 요순이 삼묘의 한 갈래를 쫓아내어 삼위에 이르렀다는 것이며 형초의 중심지는 상고시대에는 일찌기 삼묘의 땅에 속하였고 초와 묘가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은 초나라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공인하는 바입니다. 삼묘의 부락 추장인 치우는 일찌기 북으로 중원에 올라가 황제와 더불어 탁록에서 다투었습니다. 중국 각지의 묘족들이 모두 치우를 시조로 알고 있고 묘족의 조상인 치우와 풍백, 우사는 관계가 긴밀합니다. 초나라의 위대한 시인인 굴원은 <<초사. 원유>>중에서 풍백, 우사, 뇌공(운중군, 즉 운사라고도 부릅니다)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초사 중의 풍백, 우사, 뇌공(운사)과 단군신화 중의 풍백, 우사, 운사는 다같이 천신의 좌우 측근이 되는 대상입니다.

檀君神话中天神授予桓雄三个“天符印”,中韩都有学者认为这“天符印”是巫师做法的法器。韩国江原道的巫俗是韩国保留最多、最完整的地方,由巫师主持的巫祭在“端午祭”中,是重要内容之一。江原道的地理位置比较特殊,它三面环山,一面临海,太白山脉由北向南纵贯全道,形成了一个封闭的包围圈,使它与外界相对隔离,许多古风古俗得以完整地保存下来。在中国古代巫风一度盛行,而以春秋战国时期的楚苗为甚。现在苗族地区仍有许多巫师。

단군신화 중에서 천신이 환웅에게 3개의 천부인을 주었는데, 중국과 한국의 학자들은 이 천부인이 무당이 사용하는 종교 도구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국 강원도의 무속은 한국에서 가장 많고 가장 잘 정리된 것인데, 무당이 주관하는 제례는 단오제 중에서 중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강원도의 지리 위치는 비교적 특수하여 삼면이 산으롤 둘러 싸여 있고 한 면은 바다에 면하여 있으며, 태백산맥은 북에서 남으로 강원도 전부를 꿰뚫고 있으며 하나의 페쇄적인 포위권을 형성하여 바깥 세상과 서로 격리되게 하며 많은 옛 풍속들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내려왔습니다. 중국 고대에 무속이 성행했었는데, 춘추전국 시대의 초묘가 심했습니다. 현재도 묘족 지구에는 많은 무당들이 있습니다.

神话里天神之子桓雄给熊和虎“灵艾一炷,蒜二十枚”让它们变人形,这在楚俗里也有反映。端午时挂艾草、蒜头以僻邪驱瘁,是楚国风俗,至今也还存在。

신화 속에서 천신의 아들 환웅은 곰과 범에게 신렬스런 쑥 1묶음과 마늘 20개를 주어서 그들이 사람 모습으로 변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초나라 풍속 중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단오 때에 쑥, 마늘을 걸어두어 사악한 기운을 쫓는 것이 초나라의 풍속인데 지금까지도 존재합니다.


探讨一下楚罗国、卢国与韩新罗、辰韩之间的关系。公元前8世纪,在汉江中游荆楚腹地有两个苗蛮小国,罗国和卢国。罗国在襄阳西南,据《左传》杜预注:“罗,熊姓国。”楚武王并吞罗国,子孙便由熊姓改为罗姓。罗被楚灭后,楚王把罗国迁到枝江,成为楚国的附庸国,尔后楚师扩境江南,再迁其罗国遗民至洞庭以南的长沙。卢国(也称卢戎)的地理位置在今湖北襄阳县西。卢戎,系炎帝姜姓戎族,源于卢水上游,故名卢戎。姜姓属古羌人亦称民羌、羌戎。学者们考证卢水即今四川岷江。从春秋战国至秦汉,民羌人活动在岷山以北的地区,岷江、汉水、嘉陵江诸水源头,而这一带也正是古三危之地。三苗的一支被迁到三危去之后,一部分融入了西戎,还有一些继续以苗、有苗存在。有苗氏在公元前11—前8世纪出现在岷江及嘉陵江之间,他们顺着离嘉陵江不远的汉水朝南迁徙,到达汉江中游,建立了卢国。这些逾越千年后从三危迁回到故地的苗裔,已经浓浓地融入了西戎民羌的诸多习俗,他们和彝族、白族、土家族一样尊虎崇虎。



초나라의 라국, 로국과 한국의 신라, 진한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봅니다. 서기전 8세기에 한강 중류의 형초의 중심지에 라국과 로국이라는 두 개의 묘족의 작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라국은 양양의 서남쪽에 있었는데 <<좌전>>의 두예의 주석에 의하면 라국은 웅씨 성을 가진 나라입니다. 초나라 무왕이 라국을 병탄하고 그 자손들이 웅씨 성을 고쳐 라씨로 삼았습니다. 라국이 초나라에 멸망한 뒤 초왕은 라국을 지강으로 옮겨 초나라의 부용국이 되게 하였다. 그 뒤 초나라 군대가 강남으로 국경을 넓혀 가자, 그 라국의 유민들을 다시 동정호 이남의 장사로 옮겼다. 로국(로융으로도 불림)의 지리 위치는 지금의 양양현의 서쪽에 있었습니다. 로융은 염제 계열의 강씨 성을 가진 융족인데, 근원은 로수의 상류에 있었고 그래서 로융이라 불렸습니다. 강씨 성은 옛 강인에 속하였는데 민강 혹은 강융이라 불렸습니다. 학자들은 로수가 지금의 사천성 민강이라는 것을 고증하였습니다. 춘추전국에서 진한에 이르기까지 민강인들은 민산 이북 지구에서 활동하였는데 민강, 한수, 가릉강, 저수의 원류는 이 일대이며 바로 옛 삼위의 땅입니다. 삼묘의 한 분파가 삼위로 옮겨간 뒤에 일부는 서융에 녹아 들어갔고 다시 일부는 묘족으로 이어져 묘족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유묘씨는 서기전 11~ 8 세기에 민강과 가릉강의 사이에서 출현하여, 그들은 순차로 가릉강을 떠나 멀지 않은 한수 조남으로 옮겨가 한강 중류에 이르러 로국을 세웠습니다. 약 1천년을 뛰어 넘어서 삼위로부터 옛 땅에 돌아 온 묘족의 후예는 이미 서융 민강의 여러 습속에 깊이 녹아 들어가, 그들은 이족, 백족, 토가족과 같이 범을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卢国和罗国距离非常近,犹如唇齿相依。历史上罗卢联军曾打败过楚国军队的侵犯。公元前690年,卢国和罗国同时被楚所灭,之后,一起被迁到枝江,然后又迁到长沙。到长沙后,卢戎的一部分往西到了的辰州,现今湘西辰水中游凤凰县苗族仍然存在客教白虎的信仰。我们再来看看韩国古代的辰韩。辰韩,中国史书《三国志》和《后汉书》都有这样的记载:“辰韩耆老自言秦之亡人,避苦役,适韩国。”这些有关辰韩的史籍在韩国《三国遗事》等古籍中有转载,大量的历史资料说辰韩是秦朝时逃亡过来的中国人,对这一点中韩学者是一致认同的。



로국과 라국의 거리는 매우 가깝고 비유하자면 마치 입술과 이빨과 같이 서로 의지하였습니다. 역사상 라국과 로국 연합군은 일찌기 초국 군대의 침범을 패퇴시켰습니다. 서기전 690년 로국과 라국은 동시에 초나라에 멸망당하였고 그 뒤 함께 지강으로 옮겨졌다가 뒤에 다시 장사로 옮겨졌습니다. 장사에 도착한 뒤 로융의 일부가 서쪽으로 도착한 진주는 지금 상서의 진수 중류 봉황현이며, 묘족에는 흰 호랑이 신앙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 다시 한국 고대의 진한을 봅시다. 진한은 중국 사서인 <<삼국지>>와 <<후한지>>에 모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진한의 노인이 스스로 말하기를 진나라의 망명자들이 고된 노역을 피하여 한국으로 왔습니다." 이것과 관계있는 진한의 역사 서적이 한국 <<삼국유사>> 등 옛 서적에 전재되어 있고 대량의 역사 자료가 진한은 진나라 때 도망한 중국인이라고 말하며 이 한 가지 점에 대하여는 중국과 한국의 학자들이 모두 같이 인정합니다.


陈寿在《三国志·魏书》里详细地记录了辰韩大大小小的部落国家,有许多是以卢为国名,如莫卢国、驷卢国、万卢国、捷卢国等,甚至有的直接以楚为国名,如楚山涂卑离国、楚离国等。在韩国史籍中,笔者找到了辰韩、弁韩是苗裔的记载,如《三国遗事》:“《新旧唐书》云,弁韩苗裔在乐浪之地。”目前韩国保存有很多祭祀蚩尤的祠堂遗址,这就说明辰韩和弁韩和楚国的罗氏、卢氏一样均为苗裔,同样以蚩尤为始祖。

진수는 <<삼국지. 위지>> 속에서 진한의 크고 작은 부락국가들을 상세히 기록하였는데 막로국, 사로국, 만로국, 첩로국 등과 같이 로를 써서 많이 나라 이름으로 삼았으며, 심지어 초산서비리국, 초리국과 같이 직접 초라는 글자로 나라이름을 삼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사서 중에서 필자는 <<삼국유사>>에서 "<<신당서>>에 이르기를 변한은 묘족의 후예이며 낙랑의 땅에 있다"고 한 것처럼 진한, 변한이 묘족의 후예라는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지금 한국은 치우를 제사하는 사당의 유적을 매우 많이 보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진한과 변한이 초나라 라씨, 로씨와 같이 모두 묘족의 후예이며 치우를 시조로 삼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公元前57年古新罗建国,新罗是由辰韩部落联盟中斯卢部落所建,所以也称斯罗、斯卢。初期新罗地盘狭小,四世纪后,开始征服周围部落,成为半岛东南部的强国,公元676年新罗率先统一了大同江以南的朝鲜半岛,并以熟练使用汉字的优势,创造并记录下来了开国神话。新罗在统一后的两个多世纪内,出现繁荣景象,独具特色的新罗文化在统治者的倡导下广为传播最终成为韩国主流文化之一。

서기전 57년에 옛 신라가 건국되었는데, 신라는 진한의 부락연맹 중에서 사로부락이 세운 것이며, 그런 까닭에 사라, 사로라고도 불렸습니다. 초기 신라의 땅은 협소하였으며 4세기 후에 주위의 부락들을 정복하기 시작하여 반도 동남부의 강국이 되었으며 서기 676년 신라는 대동강 이남의 조선반도를 앞장서서 통일하였고 아울러 한자를 익숙하게 사용하였으며 나중에 개국신화를 창조하여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신라는 통일 후의 2세기에 걸쳐 번영한 모습을 나타냈는데 독자적인 특색을 지닌 신라 문화는 통치자의 창도하에 벌리 전파되어 마침내 한국의 주류 문화의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以此可知:辰韩和弁韩居民均来自被秦灭国的楚国,是罗和卢戎之后。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진한과 변한의 거주민은 모두 진나라가 멸망시킨 초나라에서 왔으며 이는 라국과 로융의 후예입니다.

那么罗、卢两氏族是怎样从中国来到韩国的呢?秦汉及以前的战国时代,方士得到帝王的青睐,他们不仅通晓方术,而且熟知天文地理、医术、农业及航海等知识。徐福作为方士中最著名的一个,为秦始皇入海求药。与徐福同时代的方士,还有韩终、卢生、侯公等,他们也先后为秦始皇访求仙药,这在史籍中都有许多记载。徐福一行人最终到了日本,这是现在中日学者一致的认识。韩终之属出海后到了哪里呢?我认为韩终是到了朝鲜半岛东南部的辰韩。


그러면 라씨와 로씨, 이 두 씨족이가 어떻게 중국에서 한국으로 왔을까요? 진한 및 그 이전의 전국시대에 방사들이 제왕의 총애를 얻었는데 그들은 방술에 통달하고 천문지리, 의술, 농업 및 항해 등 지식을 숙지하였습니다. 서복은 이런 방사 중에서도 가장 저명한 사람인데 진시황을 위하여 바다에 들어가 약을 구하였으며, 서복과 동시대의 방사에 한종, 노생, 후공 등이 있었는데, 이들도 차례로 진시황을 위하여 선약을 구하러 떠났으며, 사서 중에 이러한 기록이 매우 많습니다. 서복 일행은 최종적으로 일본에 도착하였는데, 이는 현재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함께 인정합니다. 한종의 무리는 바다로 나가서 어디에 도착했을까요? 저는 한종이 마침내 조선반도 동남부의 진한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查找韩终的有关史籍可见,韩终乃齐国方士,炼丹采药,修炼成仙。《后汉书·张衡列传》“韩谓齐仙人韩终也。为王采药,王不肯服,终自服之,遂得仙。”关键的问题在于,韩终修炼的地方是楚国境内的长沙。可推想韩终在长沙时与罗氏、卢氏交往密切,在秦灭楚后,韩终带着罗氏、卢氏等楚国亡民有准备地逃离了秦国,渡海到了朝鲜半岛,在那里重建家园。

한종에 관한 사서들을 찾아 보면, 한종은 제나라의 방사로서 단을 단련하고 약초를 캐며 수련하여 신선이 되었습니다. <<후한서. 장형 열전>> "한은 제나라 신선인 한종이다. 왕을 위하여 약초를 캐었는데 왕이 복용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스스로 먹고 신선이 되었다." 관건이 되는 문제는 한종이 수련한 지방이 초나라 경내의 장사라는데 있습니다. 한종이 장사에 있을 때 라씨, 로씨와 긴밀히 교류하다가 진나라가 초나라를 멸한 뒤 한종이 라씨, 로씨 등 초나라 망명자들을 데리고 준비를 갖추어 진나라를 떠나 바다를 건너 조선반도에 이르러 어느 곳에서 다시 나라를 세웠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韩国罗氏、卢氏的宗谱也有类似的记载。韩国罗氏被分为罗州罗氏和锦城罗氏。韩国1982年版《罗州罗氏大同谱》卷一《姓原考》说,“周代成王因大罗氏有功封罗国,为楚附庸,后被楚屈氏所灭,是为豫章罗氏”。韩国罗氏宗谱非常明确地记载着罗氏是“楚附庸罗国”、“祝融(楚人先祖)氏后裔”,由此可见,罗州罗氏和锦城罗氏同出一宗,都是楚国之地的罗国人。韩国卢姓一直认为出自山东,但究其卢姓历史却不尽其然。卢戎在商代是强大的部族,曾从周武王灭商,周天子封功臣姜族首领姜尚(即姜子牙)到营丘为齐侯,于是有一部分卢人也随着同族到山东建立了卢子国(今山东长清县西南)。但是还有另外一部分卢人辗转南迁到了湖北襄阳,也建立了卢子国,这就是和罗氏一起迁到韩国的卢氏祖先。

한국의 라씨, 로씨 족보에 유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 라씨는 나주 라씨와 금성 라씨로 나뉘어졌습니다. 한국의 1982년판 <<나주 라시 대동보>>권1의 <<성원고>>에는 "주나라 성왕 시대에 대라씨가 공이 있어 라국에 봉하였는데 초나라의 부용국이 되었다가 뒤에 초나라 굴씨에게 멸망당하니 이것이 예장 라씨이다."라고 합니다. 한국의 라씨 족보는 매우 명확하게 "초나라에 부용한 라국", "축융(초나라 사람들의 선조)씨의 후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볼 때, 나주 라씨와 금성 라씨는 한 조상에서 나왔고 모두 초나라 땅의 라국인입니다. 한국 로씨는 산동에서 나왔다고 알고 있는데, 그 로씨 성의 역사를 탐구해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로융은 상나라 시대에 강대한 부족이었는데, 일찌기 주나라 무왕이 상을 멸할 때, 주나라 천자가 공신인 강족의 수령 강상(즉, 강자아)를 영구의 제나라 후로 봉하였으며, 이 때 일부 로국 사람들이 동족을 따라 산동에 이르러 로자국(지금의 산동성 장청현 서남쪽)을 세웠습니다. 이 밖에 다른 일부 로국 사람들은 여러 차례 이동하여 호북성 양양에 이르러 로자국을 세웠으며 이것이 라씨와 함께 한국으로 옮겨간 로씨의 조상입니다.


笔者认为,韩国卢氏应是从楚国来的卢戎之后裔。综上所述,笔者认为,中韩两国的文化联系不仅仅表现在一些地名上的相似或相同,更重要的是早在2000多年秦朝末年,在方士韩终的率领下,楚国的罗、卢两氏的3000多居民就迁徙到了朝鲜半岛的东南部,并建立了辰韩、弁韩以及后来的新罗国。韩终应是檀君神话中桓雄的原型。

필자는 한국의 로씨는 당연히 초나라에서 온 로융의 후예라고 봅니다. 위에 서술한 바를 종합하면, 필자가 알기로는 중한 양국의 문화의 상관성은 단지 몇몇 지명의 유사성 혹은 동일성에만 근거하지 않으며, 더 중요한 것은 일찌기 2000여년 전 진나라 말기에 방사 한종의 인솔하에 초나라의 라, 로 양씨의 3000여 거주민이 조선반도의 동남부에 이주하여 진한, 변한 및 이후의 신라국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한종은 당연히 단군신화 속의 환웅의 원형입니다.

(作者单位:中南民族大学南方少数民族研究中心)

(작자 소속: 중남민족대학 남방소수민족 연구센터)


= 번역 후기 =

연합뉴스 이우탁 특파원의 [中 학자 ‘신라 뿌리는 楚나라 주장](2004/12/10 15:24 송고)에 의거하여 추적한 중국어 기사 원문을 위와 같이 초벌 번역하였습니다. 일부 번역상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4년 12월 12일(日) 오후에 아시아연방론 카페지기 주창웅 드림. http://cafe.daum.net/asiavision







공지    한겨레 비난한 글을 읽고-이승만 동상 국회건립과 세종로 충무공자리 및 (당시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남산 81척(56년 이승만 81회 생일을 기념) 동상  안원전   2003/03/06  20030
공지    필리핀의 가장 위대한 영웅 호세 리잘을 대하고(2005.12.중순)  안원전   2006/02/22  22029
503    코로나 19사태로 배울공부 By 慧光 大仙師  안원전   2020/03/12  478
502    치우능 탐사&답사기-산동성(현 하남성) 태전현 문화국 마광김(馬廣金)의 치우능묘에 대한 비망록 보고서&유방(油坊)에 치우(蚩尤)의 머리를 매장했다<文史花絮)> 현술귀(玄述貴). [1]  안원전   2002/05/04  5235
501    천하사의 성공! 이윤도수를 아시나요?- By 慧光 大仙師  안원전   2020/08/25  47
500    참사람이 없구나-초복중복판을 제끼고 추수판의 라스트핸드 말수!!! 를 기다려라-By 慧光 大仙師  안원전   2020/09/07  42
공지    참고;5월들어 글을 못올리고 있는 이유(삭제예정) [17]  안원전   2004/05/19  16936
498    증산도의 종통전수및 말복추수의 필요성에 대해 By-金剛 大仙師  안원전   2019/11/17  857
497    증산도 도전편찬의 위업에도 불구하고 2014년이전까지 <도안 세 살림의 정체>를 알 수 없어 천지공사를 마무리하는 막둥이 도수를 종정님 자신 앞으로 편집-By 慧光 大仙師  안원전   2020/08/31  50
496    중복도정의 최대 실패 원인은 지도자의 성격에 그 원인이 크다.  안원전   2019/08/16  1008
495    종통宗統.문왕 3부자 세살림과 사마중달 3부자 세살림의 진의  안원전   2019/08/16  932
494    종통~ 가구판 15진주노름 갑오갑자꼬리와 용봉도수**By 金剛 大仙師 '  안원전   2020/03/06  410
493    이번 사건은 가토릭 세력의 방송장악이 빚어낸 황교수 죽이기다. [67]  안원전   2006/01/10  16239
492    왕겁—>오비—>삼국진이 도수대로 열린 현시국에서 삼국시절의 술수가 해원하는 마당의 모습 중 하나 By 慧光 大仙師  안원전   2020/03/15  394
491    역사의 대국적인 틀  안원전   2002/01/10  6145
490    역사바로보기  안원전   2002/02/26  4743
489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6. 거영신(巨靈神: 강의 신)  안원전   2011/01/10  4170
488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5. 황하(黃河)의 수신(水神) 하백(河伯)  안원전   2011/01/05  6258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4. 어디에서 왔는가?(來自何方)- 초(楚)문화의 수수께끼  안원전   2006/12/31  8142
48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3.《서경잡기(西京雜記)》의 작자는 누구인가?  안원전   2006/11/22  7953
48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2.‘공자(孔子)’의 진위-‘유학(儒學)’변천의 수수께끼  안원전   2006/09/23  7111
48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1.《좌전(左傳)》의 수수께끼  안원전   2006/09/01  7416
483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40.하도낙서(河圖洛書)의 수수께끼 [3]  안원전   2006/08/18  15130
482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9. ‘화하(華夏)’명칭의 수수께끼  안원전   2006/07/09  8698
481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8.《우공(禹貢)》은 어느 시기에 출판되었는가?  안원전   2006/06/24  7121
480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7.《유자(劉子)》의 작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안원전   2006/05/25  6151
479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6. 《관자(管子)》는 관중(管仲)의 작품인가? [3]  안원전   2006/04/28  6044
478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5. 《국어(國語)》의 작자는 좌구명(左丘明)인가? [1]  안원전   2006/03/28  6348
477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4.상고 배달족 종합지리서 《산해경(山海經)》은 어떤 책인가?  안원전   2006/03/11  6810
47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3. 《역경(易經)》은 어떤 책인가?  안원전   2006/02/16  5901
47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2. 《상서(尙書)》의 진위 논쟁은 언제 끝났는가?  안원전   2006/02/13  5506
474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30. 당 현종(玄宗)때의 신선 장과로(張果老)  안원전   2006/01/20  5220
473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27. 불을 관리하는 화정관(火正管) 려(黎) 축융(祝融)  안원전   2005/11/14  6932
472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25.조도등의 동이족 소호의 부모 황아(皇娥)와 태백금성(太白金星)  안원전   2005/11/04  5519
471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24 당(唐)나라 때 도인 헌원집(軒轅集)  안원전   2005/10/27  4644

1 [2][3][4][5][6][7][8][9][10]..[15] [NEXT]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