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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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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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6.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1
*간체로 인해 깨져보일 경우 위에 첨부해 놓은 파일을 직접 참고할 것




염릉현에서 20여 킬로 떨어진 염제릉 관문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는 염릉(炎陵)

*원문이 깨져보이면 위에 첨부한 파일 원문(담론 236,237,238 포함 파일)을 볼 것.



  천하의 중국인이 스스로 뽐내며 말하기를 염황(炎皇)의 자손이라 하였다. 뿌리를 찾아 조상을 알현하는 능(陵)이 있는데 북쪽에는 황제릉(皇陵)이 남쪽에는 염릉(炎陵)이 있다. “황제의 옛 기풍이 비록 멀리 있지만 원래 능(陵)의 흔적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네". 이것은 칠백 여 년 전의 시인(詩人) 곽도현(郭都賢)이 염릉(炎陵)을 바라보며, 마음 속에 품고 지은 두 구절이다. 화화(華夏:중국의 옛 명칭) 수천 년이래, 역대왕조의 수많은 유명한 학자들이 모두 염릉(炎陵)에 관한 문장을 지었다. 명대(明代) 대학사(大學士) 장치(張治)가남긴 《염릉(炎陵)》시(詩)에서는:

형산(衡山) 남쪽산맥은 푸른 봉오리를 굽이굽이 돌고
상강은 천리를 흘러 냇가에 이르렀네.

어두운 궁궐 산목(山木)을 가리고
솔솔 부는 가을 바람 들밭에 부는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온 천하가 황제의 법칙에 따르고
오랜 세월 쌀밥을 먹게 해 백성의 날들을 열었도다.

덩굴 잘라내고 말에서 내려 남아있는 비석을 읽어보니
멀고 어렴풋한 (長江)과 한수(漢水)가 차가운 연기에 잠기네.


  뛰어나고 빼어난 형산(衡山)은 하늘아래, 둘이 없고 펼쳐진 구름 사이로, 우뚝 솟아 면면히 이어져 끊이지 않는다. 상수(湘水) 천리를 돌아 강을 거쳐 바다에 닿으니, 예전부터 지금까지 고장이 영수하고 인물이 걸출하다. 크게 드리운 안개 아래, 미수(洣水)강 주변 녹음이 서로 어울려 가린 무덤 중, 바로 중화민족(中華民族)의 시조(始祖)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가 긴 잠을 자고 있는 안식처의 땅이다.

  염제릉(炎陵)은 현재 호남성(湖南省) 주주시(株洲市) 염릉현성(炎陵縣城) 서쪽 17km 염릉산(炎陵山)위에 위치하고 있고, 이 산은 속칭“황산(皇山)”이라고 하며, 옛날에는 또한 “백록원(白鹿原)”이라 불렀다. 염제릉(炎陵) 염제(炎帝) 고분에 관한 문헌 기록은 자못 많은데, 《제왕세기(帝王世纪)》에는 “황제께서 재위하여  모든 후세가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이때부터 일천 여 년 동안(在位) 일백 이십 년에 봉하사 장사(長沙:지명)에 장례를 치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기 보삼황본기(史記 補三皇本紀》에서는, “일백 이십 년 세우시고 돌아가시어 장사에 장사지냈다.”라고 말하고 있다. 《로사(路史) 후기》는 말하기를, “돌아가시어 장사(長沙) 차향(茶鄕)의 끝에 장례를 치루었으니, 차릉(茶陵)이라 부르고, 소위 이것은 천자(天子)의 무덤이라” 하였다.

《군국지(郡國志)》는 “염제(炎帝)신농(神農)은 장사(長沙)에 장례를 치루었다.” 《세기(世紀)》는 “신농장차릉(神農葬茶陵:신농씨가 차릉에 묻히다)”이라 일컫는다. 《여지기승(輿地記勝)》은 “염제(炎帝) 무덤은 차릉현(茶陵縣) 남쪽 일백리 백록원(白鹿原)에 있다” 라고 이르고 있다. 《가정형주부지(嘉靖衡州府志)》는 “신농씨(神農氏) 염제릉(炎陵)은 현재의 강락향 (康樂鄕)에 있고, 송(宋) 건덕(乾德) 오년에 사당을 건축했다.”
라고 이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송(宋)나라 건덕(乾德) 오년 전에는, 염제(炎帝) 무덤만 있고 염제(炎帝) 사당(陵殿:능전)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송(宋)《로사(路史)》 라평(羅蘋) 이 송(宋)나라 전에는,,여기에 단지 “용이 사는 연못 돌 위로 예부터 동으로 된 비석이 빠져 있었다.”라고 주를 달았다.

《염릉초지(炎陵初志)》에서도 역시, 단지 동으로 된 비석이 있었는데, “능(陵) 아래 강을 따라 있는 돌 위로 송초(宋初)에는 연못 안에 빠져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관련된 사료(史料)의 기재된 것에 의하면, 당(唐)나라 때 이 곳에 “당흥사(唐興寺)”가 건립되었는데, 당시 불교가 전래되어 능 앞에 불사가 있었으나, 능사나 능묘는 아니었다.

후에 송(宋)왕조가 건립되고, 송(宋) 태조(太祖)는 여기에서 염제릉묘(炎陵)를 찾아내었으니, 즉시 “능(陵) 앞에 사당을 세우다”. 그 두루 송(宋), 원(元), 명(明), 청(清)조의 시대를 거치었다. 능전(陵殿)을 세운 후 수 차례 보수와 훼손을 한 것이 십 여 차례에 이른다.

청(清) 도광(道光) 17년에 이르러(서기1837년) 일찍이 최대 보수공사가 한차례 이루어졌고 웅장한 능전(陵殿)이 되었다. 그러나 1954년 섣달 그믐날 밤, 참배자가 제를 지낼 때 부주의하여, 전(殿) 안에 채색깃발에 불이 붙어 화재를 초래했고, 능전(陵殿)은 불에 탔다.

1986년부터 1988년 간에 이르러 국내외의 염황(炎皇) 자손들이 공동으로 사회 각계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염제릉전(炎陵殿)은 한차례 전에 없던 큰 규모의 완전한 수리를 진행하였다. 수리 후의 염제릉전(炎陵殿)은 부지 3,836㎡, 건축면적은 903㎡를 차지하였으며, 청나라 도광(道光) 17년에 보수 후 만들어지고 이루어진 풍격을 지니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문명의 활력을 주입하였다.

  능전(陵殿)의 기세가 웅대하며 구조와 장식이 주도면밀하고, 녹원 비탈이 낮고 높은 형세에 따라 모두 5채의 건물로 나뉘어 “봉래산(蓬莱山) 궁궐이 남산을 마주하는 풍운”을 드러내었다.
    


  첫첫 번째 채는 오문(午門)으로 높이가 4m, 폭이 2.6m이다. 정 중앙 위쪽에  한백옥(漢白玉:아름다운 흰돌) 편액을 걸어 정체의 해서체(楷書體) “(午門)” 두 자를 꾸밈없이 새겨 넣었다. 오문(午門) 좌우(左右)로 극문(戟門)과 액문(掖門)을 나뉘어 놓았다. 극문(戟門)은 높이가 3.5m , 폭이 2m, 문 벽 길이가 45m, 정 가운데 높이가 8.67m이다.  


  오문(午門)을 들어서면 강택민(江澤民) 주석이 쓴 “염제릉(炎帝陵)” 한백옥(汉白玉) 비석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비석 앞 좌우에 신록(神鹿:신령스런 사슴)과 신응(神鹰:신령스런 매)이 서있다.


    두 번째 채는 행례정(行禮亭:예를 행하는 정자)으로 전의 곁채식이다. 상단에는 주배원(周培源)이 직접  쓴 “중화(中華) 시조(始祖), 백성들에게 광영스럽게 빛나리라”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정자높이(H)는 8.33m, 폭(L) 14m, 깊이(W)가 6.67m이다. 정자 중앙에 향로, 촛대가 있어 사람들이 향을 올리고 절을 하는 장소이다.  행례정(行禮亭) 양측에는 비방(碑房)으로 역대 제사를 지낸  비문을 보관해 놓았다. 향로 촛대 사진은 바로 아래 사진에 아주 잘 보이고 있으나 편액의 글씨는 필자가 찍은 사진이 안보여 유감이다.


혁혁한 시조, 동이족으로 인류 최초의 성은 복희씨의 바람 풍가 성이지만 대가 끊기고 풍골, 풍신, 풍체, 풍미, 풍격 등 아주 좋다는 뜻의 "하오:좋을 호"라는 접두어로 변했다. 태호복희 문명은 아주 좋은 것이라는 말이 전설적으로 또는 구전으로 역사속에 살아남은 것이다. 대륙의 사서에 의하면 염제신농은 강씨 성으로 그의 후예국의 군주는 모두 염제로 칭한다. 마지막 왕이 염제 유망으로 염제신농의 모계인 배달국 강씨성 치우에게 도전했다가 패하고 황제에게 도전했다가 공상(하남성 진류)에서 패망한 것으로 나온다.


  행례정(行礼亭) 양측에는 비방(碑房)으로 역대 제사를 지낸  비문을 보관해 놓았다.
  세 번째 채는 주전(主殿:주요 대전)으로 폭 20.4m이고 깊이가 16m이다. 4열 앞 복도식 기둥 그물 배열에 따라 30개의 화강석 기둥을 세웠다. 대전 대들보는 발판까지의 높이는 19.33m이다. 중첨헐산(重檐歇山)식 구조로 황색 유리와(琉璃瓦:유리 유약을 발라서 구운 오지 기와)로 덮었다.  상하 처마는 홑 장식에 고개를 쳐드는 두공(斗拱:기둥위에 받쳐 들보, 마룻대를 괴는 목재)로 하였다. 천장에는 금룡화새(金龍和璽), 용초화새(龍草和璽), 용봉화새(龍鳳和璽), 및 회전형 소주식(蘇式) 도안을 칠하였고 모두 그린 용은 9,999마리이다.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금불상(金佛像) 제사상(像)은 전(殿) 안에 안치되어 있다. 그의 이마는 노련함과 침착함이 축적되어 있고, 얼굴은 자애를 내포하고 있으며, 눈은 총명함과 지혜를 감추고 있다. 오른 손은 벼이삭을 받들고 있고, 영지를 들고 있으며, 맨발사이의 대나무 바구니에는 약초가 가득 차 있는데 맑은 향기를 내뿜는 듯 하다. 마치 막 논과 야산에서 돌아와 여기에서 잠깐 쉬는 것 같다.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금불상(金佛像) 제사상(像)은 전(殿) 안에 안치되어 있다. 그의 이마는 노련함과 침착함이 축적되어 있고, 얼굴은 자애를 내포하고 있으며, 눈은 총명함과 지혜를 감추고 있다. 오른 손은 벼이삭을 받들고 있고, 영지를 들고 있으며, 맨발사이의 대나무 바구니에는 약초가 가득 차 있는데 맑은 향기를 내뿜는 듯 하다. 마치 막 논과 야산에서 돌아와 여기에서 잠깐 쉬는 것 같다.


농경에 힘써 온갖 곡식이 사당에 비치되어 있어 한 컷 찍었다.

대전 문 윗 부분에는 진운(陳雲)이 지은 글의 편액이 높이 걸려 있다. “염황(炎皇) 자손이여 시조(始祖)를 잊지 마라”, 양쪽 목각 대련은 “쟁기를 만들어 농사와 수공업(農工)의 기초를 다지시고, 온갖 약초를 맛보시어 의약의 효시를 여셨네” 라고 쓰여있다. 전(殿) 밖에는 화강석 울짱과 발판이 있는데 발판은  높이가 1.5m이다. 발판 앞에  3층의 월대(月臺: 정전앞에 나와있는 대, 달을 감상하기 위한 대)가 내어 있고 각 층의 대는 3개의 디딤돌이 설비되어 있는데 옛날에는 “삼층폐(陛:궁전의 계단)”라고 불렀으며 누대(樓臺) 좌우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오문(午門)부터 주요 대전 월대(月臺) 좌우의 계단 사이에 있는 비탈형 어로(御路:황제가 걷는 길)에는 한백옥(漢白玉)을 끼워 넣고 용을 새겨 넣었다.  아랫부분은 용을 받치고 중간에는 두 마리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놀며 윗 부분은 용이 누워 있는데, 각기 강산에 안정되고 견고하게, 천하태평(天下泰平), 가장 존귀함(至尊至貴)을 지니고 있다.
  


 네 번째 채는 묘비정(墓碑亭)이다. 사각찬첨(四角攒尖)식이며 가로길이가 5m, 면적이 25㎡이다. 정(亭)가운데에는 한백옥(漢白玉) 묘비가 서있으며 비문에는 “염제(炎帝)신농씨(神農氏) 묘(墓)”라고 쓰여 있는데 호요방(胡耀邦)이 직접 쓴 것이다.

염제 신농씨는 강(姜)씨 성이다. 공공(共工),치우(蚩尤),백이(伯夷), 봉백릉(逢伯陵)과 강태공은 모두 염제(炎帝)의 후예다. 그 중에서 공공은 가장 일찍 홍수와 더불어 항쟁한 사람이니, 그는 배(舟船)의 발명자이다. 치우(蚩尤)는 고대 역사상 병주(兵主) 혹 무조(武祖)로 전해져 칭해졌으니 무용(武勇)으로 천하에 위엄을 떨쳤다. 백이(伯夷)는 요, 순 시기의 사악(四岳)으로, 곧 사방 제후를 통괄하는 우두머리였으니, 그는 아국의 고대 형법과 "삼례(三禮)"의 창립자였다. 봉백릉(逢伯陵)은 상(商)나라 시대 제(齊) 나라 땅의 제후였다. 그들은 모두 강태공의 선조로 동이 제지(齊地)의 토착민으로 동이(東夷)문화 혹 제(齊)문화의 창조자였다.

곧바로 춘추시기로 넘어가 강(姜)씨 성 제국을 제외한 이외에도 래국(萊國), 순우국(淳于國), 향국(向國), 기국(己+其國), 기국(紀國) 등 강(姜) 씨 성 나라는 모두는 염제의 후예이니, 이는 거듭 동이 제지(齊地)의 주요 거주민이다. 태호복희씨와 염제 신농씨는 동이 제지(齊地)를 서로 계승해 일어났는데, 그들은 세세 대대 문화를 창조 발전했다. 고사(古史)에 "희농문화(羲農文化)" 혹 "희염문화(羲炎文化)"라 글을 써 칭하니 이는 제문화(齊文化) 혹 동이문화를 칭해 적은 것으로 이를 다시 "사령문화(四靈文化)"라고 적어 칭했다. <안원전의 21세기 담론중>


 다섯 번째 채는 능침(陵寢)으로 정(亭)뒤의 묘총(墓冢:무덤)이다. 묘총(墓冢)의 봉토(封土)는 높이가 4.58m이며, 폭이 6.64m이다.  묘총(墓冢) 앞에는 고석비(古石碑)가 있는데, 비문(碑文)에는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 묘(墓)” 라고 써 있으며, 청(清)나라 도광(道光) 17년에 지현(知縣:현의 지사) 심도관(沈道寛)의 글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묘총(墓冢)의 뒤에는 “어비원(御碑园)이 지어져 있다. 동산의 길이는 100m이며, 면적은 6000㎡이다. 동쪽과 서쪽에는 비석 복도가  있는데 각 길이가 40m이다. 복도 벽에 역대 왕의 제문비51점(그중 명대12점, 청대38점)이 간행되어 있으며, 또한 송(宋)․명(明)․청(清) 및 근․현대 기사문비 5점이 간행되어 있다.

  동쪽과 서쪽 비석 복도 사이에 구정대(九鼎臺)가 있는데, 누대 위에는 석정(石鼎:돌로 만든 솥)이 9개 진열되어 있고 매 솥은 1.11톤이며, 구정(九鼎)은 국가통일, 금구무결(金瓯无缺:국토가 한번도 외적에게 침범당한 적이 없음)을 상징한다.

  동산의 북쪽에는 아치형 조벽(照壁:밖에서 대문 안이 보이지 않도록 대문을 가린 벽)이고, 돌을 끼워 넣은 벽에는 《신농공적도(神農功績圖)》가 그려져 있다. 벽화의 길이는 40m이고 높이는 1.5m인데 228개의 청석(青石:푸른 빛깔을 띤 응회암)이 단단하게 상감되어 있다.

벽화는 염황제(炎皇帝)의 공적을 주제로 하고, 원시(原始) 선민(先民)의 수렵부터 농경까지, 동굴생활에서 정착생활까지 이 역사적 변화시기의 생산과 생활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채집과 조각수법을 제작하여 이루어 놓았다. 염제(炎帝)가 용감하게 개척하고 대범하게 창조하는 것과, 봉헌(奉献)의 위대한 실천 및 고상한 정서에 기꺼워하는 것을 표현했다.

  능전(陵殿), 비원(碑園)은 3m정도로 높은 붉은색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벽 밖 사방에는 또한 수많은 기념적 건축물이 있다.





  천사관(天使館)
  원래 능(陵) 북동북쪽으로 열 발자국을 세면 3개의 장소가 나란히 있는데, 중간은 천자(天子)가 파견한 주 제사 관리(主祭官)가 재(斋:제사 같은 것을 지낼 때 부정한 일을 가까이 하지 않음)계 하는 곳이며, 좌우에 부 제사 관리(部祭官)가 재계하는 곳인데, 명대(明代)에 건립되었다가 후에 전쟁 불에 훼손되었다. 청(清)나라 초기에 중건되었으며 또다시 수재로 훼손되었다. 도광(道光) 17년(1837)에 또한 옛 터를 가려 택해 북쪽으로 수십 보 높은 언덕에 중건하였다. 7988년에 염제릉(炎陵) 주요 부분을 수리 복원 후, 또한 1990년에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산비탈에 천사관(天使館)을 수리하였는데, 중첨헐산식(中檐歇山式) 지붕을 하였으며, 내부에는 20여 개의 방이 있고, 모두 50명이 머물 수 있다.

    영풍대(咏豊臺)
  능(陵) 남산 왼쪽에 위치했으며, 처음 청대(清代)에 세워졌으며, 운추산(雲秋山)과 마주하고 있으며, 양전주(楊錢洲)를 굽어보고 있다. 청(清) 도광(道光)에 17년(1827)에 이르러. 심도관(沈道寛)이 영현(酃縣) 현령(縣令)이 된 5년째에 “매년 가뭄이나 장마가 없고 백성들의 노래에 수 차례 풍년이 들었다” 에 감사함에. 곧 고을 사람들과 모의하여,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께서 보우하사 풍년을 이룬 것에 대한 노래를 취하여, 기념일로 기록하였는데, 심도관(沈道寛)이 친히 “영풍대(咏豊臺)” 세 글자를 써서 비석 누대 위에 새겨 넣었다. 청(清) 도광(道光) 17년, 지현(知县) 유창회(俞昌會)가 재 수리하였으나, 후에 무너졌다. 1988년에 염제릉(炎陵)을 수리하여 복원할 때 영풍대(咏豊臺)도 원상 복구하였다. 일본 친구인 미창대겸(米倉大謙)선생이 염제릉(炎陵)의 복원의 소식을 듣고 서예로 “경부진(耕不盡:농사에 마침이 없다)” 세 글자를 써서 보내 축하를 하였다. 염제릉(炎陵) 수리․복원 과정중에 지휘부는 세 글자를 돌에 새겨 누대 앞에 배치하였다. 현재 영풍대(咏豊臺)는 정자(亭)식 건축물이며 앞으로는 미수(洣水)를 대하고, 뒤로는 능산에 기대고 있다. 팔각중첨(八角重檐)식으로 지붕까지 7m이며 사방은 돌난간으로 되었다. 정자 앞에 약 100㎡의 흙 무대 가 있어 노래하고 춤 출 수 있다.



염제릉 옆에 있는 소문. 세약지, 녹원정으로 오르는 길

세약지(洗葤池)
  천사관(天使馆) 뒤 쭉 이어진 산꼭대기에 있으며, 또는 천지(天池)라고 불리운다. 큰 둥근 연못으로 물이 가득하며 겨울 여름에도 마르지 않는다. 염제(炎帝)가 여기에서 약초를 씻었다고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름이다.

  녹원정(鹿原亭)
  염릉산(炎陵山) 정상에 있다. 1989년에 염릉(炎陵)이 재 수리될 때, 이 정자를 만들었다. 정자는 사각찬첨식(四角攢尖式) 비첨교각(飛檐翹角)이며, 건축 면적은 25㎡으로, 차지하는 면적은 120㎡이다. 정자 밖에는 돌로 조각한 사슴 무리를 배치하였는데, 누워있거나 서있거나 뛰거나 젖을 먹이는 모습으로 형태가 각기 다르다. 사방에 울창한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으며, 경치가 사람의 마음에 좋은 느낌을 준다.

  성화대(聖火臺)
  릉(陵) 동남쪽 300m 정도의 용주산(龍珠山)위에 있으며 1993년 염릉황배(炎黄杯) 세계 중국인 및 화교들 용주(龍舟)시합에서 염릉성화(炎陵聖火)의 점화를 위해 건립되었다.  성화대는 동서남북 네 갈래의 길이 통하고 5층으로 되어 있다. 제일 아래층은 정방형(正方形) 평대(平臺)이며 매 변의 길이는 30m이다. 2,3,4층은 반경 9m, 6m, 3m의 계단식 원대(圓臺) 모양으로 되어있으며, 제일 위층은 직경 3m의 원대(圓臺) 모양으로 되어있으니,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굴고 땅은 네모짐)”을 상징한다. 원대(圓臺) 중심에는 큰 점화석(点火石)이 있는데 돌의 높이가 3.8m이며 체적이 81㎥이다. 점화석(點火石)의 남쪽에는 1㎡의 상형문자(象形文字) “염(炎)”글자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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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2-동이족 한 혈통 황제와 염제(黃帝和 炎帝)의 대륙신화 [한족(漢族)]  안원전   2003/09/15  7139
52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4-황제 후계 선출의 신화 ,태수(溙水), 유수(洧水)가 합해지는 쌍려하(雙洎河) [한족(漢族)]  안원전   2003/09/18  7286
52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9-신의(神醫) 시사의(侍司懿)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5  5990
521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0-노황(蘆笙: 갈대로 만든 생황, 묘족과 동족(侗族)이 주로 쓰는 취관 악기의 일종) [묘족(苗族)]  안원전   2003/09/25  6854
520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8-과보(誇父)가 태양을 쫓다.(誇父追日)  안원전   2003/08/22  5950
519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21-용건과 니입의 천둥번개-하늘 눈을 다시 뜨다(天眼重開) She(셔로 발음)[써족(畬서族)]  안원전   2003/08/25  8684
518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0-인간과 천신의 아름다운 사랑 두안주(斗安珠)와 목저주(木姐珠)[강족(羌族)] 1  안원전   2003/08/11  7233
517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4-호니인(豪尼人: 하니족의 한 갈래)의 조상 [하니족(哈尼族)]  안원전   2003/08/14  6275
516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17-구륜신(歐倫神)의 전설 [오로춘(鄂倫春族:악륜춘족)]  안원전   2003/08/22  6169
515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3-9려족(九黎族)) 묘요족의 요족(瑤族)신화  안원전   2003/07/08  6147
514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7-고산족(高山族)과 한족(漢族)의 기원 [고산족(高山族)]  안원전   2003/07/31  5625
513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8-제곡 고신왕(高辛王)의 세째딸과 부마 반왕(盤王)의 전설 [요족(瑤族)]  안원전   2003/07/31  7392
512     안원전 21세기 담론 특별기획-환단시대 지나 대륙을 석권한 상고 동이 제족의 유사 신화9-신모구부(神母狗父) [묘족(苗族)]  안원전   2003/08/04  6419
511     안원전 담론 383. 소통(疏通)에 대하여  안원전   2011/05/24  4952
510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2 밤에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의 선악을 조사한다는 전설 중의 야유신(夜游神)  안원전   2004/06/14  5327
509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7 신필 마량(神筆馬良)의 일심 경지  안원전   2004/07/09  5943
50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69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황제의 민간전설  안원전   2004/07/15  5804
507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0 대륙향토사료에 보이는 염제와 적송자(赤松子)의 민간전설 [1]  안원전   2004/07/19  6218
506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275. 신농의 위덕-간사함을 없애고 비열함을 다스려 백성들이 따르다.3-머리를 써서 청와(靑蛙)를 단죄하다.  안원전   2004/08/26  4895
50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372. 20여년 전에 민족주의란 타이틀아래 제목없이 쓴 원고1  안원전   2010/06/24  5799
504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374. 항주(杭州) 영은사(靈隱寺)의 승려 제공(濟公)  안원전   2011/01/03  4628
    안원전의 21세기 담론236. 호남성 염릉현 염제릉 참배 및 향토사료 1  안원전   2004/01/18  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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