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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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링크 #1    http://news.naver.com/news_read.php?oldid=2002070300000149002&s=1508&e=1735
제 목    담론31.해방후 현대사 왜곡의 원죄 이승만과 고 백강 조경한 광복회 회장의 역사왜곡 한탄과 천대받는 국조단군




본론으로 돌아가 아무튼 착하고 어질며 도덕적인 인간이 아무리 근검절약하고 살아도 그들 약싹 빠른 인간들보다 불이익을 받으며 사는 것을 알면 누가 굳이 질서를 지키려 하겠나.

검찰,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 내지 권력의 해바라기로 전락한 상황에서 국민의 공복인 행정공무원은 부패의 사슬로 권력의 크기 순으로 얼룩져 있으며, 권력과 깊은 밀월관계를 가지며 비대해진 재벌경제는 국민을 볼모로 금융권을 제 호주머니 다루듯 해 부실화해왔고,

독립운동가의 자식들은 교육도 못 받은 채  노동 품이나 파는 중, 하류층으로 전락하거나 국가보훈처로부터 받는 푼돈 연금으로 근근히 연명이나 하고있는 상황에서,

한일합방 당시 조선 총독부에 말단 끝자리라도 매달려 동족을 괴롭힌 민족반역자들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자식, 손자 며느리들은 이승만의 반공이데올로기 우산 밑에 모여 호의호식하며 제 자식 출세교육은 잽싸게 챙겨 고명한 무슨 무슨 원장님, 박사님 입네, 또 무슨 무슨 장관님, 회장님입네 하고 감쪽같이 변신해 신분을 위장하고 산다면 어느 시민이 정의를 외치고 법과 질서를 지키겠는가.

요즘 세상에 동이족 은나라 충신 비간이나 조선족의 한 계통인 고죽국의 백이, 숙제 같은 충신은 말할 것 없고 진(秦) 말의 상산사호(商山四皓)나 여(麗) 말의 두문동 72인이 어디 있는가.

정치 판이 되었든 종교 판이 되었든 사회의 온갖 조직마다 그저 시세에 영합해 개인 이익과 영달만을 도모하려는 간교한 인간들만이 마치 오뉴월 뒷간의 똥파리 떼 바글거리듯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이다.

IMF 사태가 왔을 때 IMF가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재무구조 개선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재벌들이 내부자 거래와 매출액 뻥뛰기 용 분식회계로 수의 계약 등의 정경유착을 일삼기 때문에 결합 재무제표를 의무화하고 부채/자본 비율을 축소하고 계열사간 채무보증관행을 감시한다고 했다.

이는 해방 후 그간 한국의 금융구조와 재벌구조가 얼마나 왜곡되어 왔고 재벌의 경영마인드가 교정기회 한번 갖지 못한 채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생까지 나서서 자기 몫 내라고 데모했다는 4.19 혁명 못지 않게 기업 M&A, 구조조정 과정 중 각종 노조들의 극한대립은 제 2의 IMF 초래 우려사태까지 몰고 왔다.

이는 물론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없으나 외자유치 직전 물 거품된 대우자동차 사태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툭하면 경영권까지 간섭하고 나서는 등 다루기 까다로운 한국의 악명높은 노조를 실로 어느 외국인인들 쉽사리 맡으려 하겠는가.  

옷 로비 사건으로 국내가 떠들썩하고 김 태정 법무장관이 구속되자 재이손 산업의 대표이사 "이 영수"란 사람은 동아일보 99년12월 20일자에 권력의 해바라기와 시녀로 전락한 검찰을 비웃는 글을 5단 통 광고로 게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귀한 돈 들여가면서 구태여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듣고 본 부정부패 부조리가, 이제 내 나이 환갑을 지난 지금도, 우리를 지배하고, 썩어 문드러진 정치권이 조국과 민족을 수탈하고 짓밟고 있는 현실이 한없이 슬프기 때문이다.

민족의 한을 풀어주고 조국에 희망의 햇불을 지펴줄 검찰의 기개는 어디로 가고 정치권의 노예만 살아 숨쉬는가? "검찰이 바로 서는 날"을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이 찢어지는 가슴을 너희들은 알겠는가?'

이 말은 썩은 정치권을 포함, 해바라기 권부를 향한 민초들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용기 있는 자기고백이다.

벤쳐 열기를 타고 줄줄이 터지는 진승현 대형 금융사기 사건, 이경자 동방금고 사기 사건 , 청와대 처조카로부터 검찰총수 동생까지 연루되어 정, 관계에 대대적인 사정한파를 몰아친 보물선 사기 이 용호 벤쳐 게이트와 일개 살인범으로 부인을 살해한 홍콩 수지김 사건의 주인공으로 당시 부패한 정치적 환경의 절묘한 조합으로 국가의 중추적 기관인 안기부의 지원으로 급기야는 잘 나가는 벤쳐기업의 CEO로 변신해 청와대까지 들락거리며 대통령까지 농락한 패스21의 윤태식사건에 이르기까지 이들과 줄줄이 연루된 공생관계의 정, 관, 검찰계의 공생관계를 보면 실망의 도를 넘어서 진정 재이손 산업의 대표이사 "이 영수"의 찢어지는 가슴내지 참담 그 자체라 아니할 수 없다.

가령 동생 신승환이 연루된 신승남 검찰총장이 소위 엄한 깃털인 아래 것을 잘라내고 사법처리 보고를 받는 코믹한 일련의 사태와 나몰라라 버티기로 일관하다 동생이 구속되자 그제서야 사퇴를 한 신 총장을 보고 국민이 어떻게 과연 무엇이 정의인지 실망하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검난(檢亂)에 휘둘린 심재륜 고검장이 신임 이명재 검찰총장이 들어서며 개혁의 눈길을 부릅뜨자 퇴임의 변을 일갈하면서 "검찰이 신뢰를 잃은 것은 인사 특혜와 권력의 공유 내지 신분적 상승을 위해 권력의 주변에서 무리를 지어 줄을 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입맛에 맞게 앞장서 충실한 ‘시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자기고백을 했을라고.

나라 돌아가는 근본바탕이 오죽이나 잘못되었으면 광복절만 되면  세종문화회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곤 했던 고 백강 조 경한 전 광복회 회장이(93년 1월 타계) 십 수 년 전 필자의 <통곡하는 민족혼> 강연회 및 필자가 주도했던 전국 대학생 낭가 대회 및 전국대학생 대배달 민족회 행사 당시 국립묘지에 애국자입네 하고 누워있는 무덤 중 90%는 다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괴롭히던 흡혈귀 같은 인간인데 시국에 편승해 끝없이 변신해가며 정치적인 힘으로 신분을 바꿔치기 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일갈 했을라고.

그 양반이 타계하기 전에 독백처럼 내뱉은 말이 살아 생전에도 나라를 팔아 먹은 친일 매국노와 평생 싸웠는데 죽어서까지도 애국자로 변신해 누워있는 그들과 국립묘지에서까지 싸워야 하는가 하면서 국립묘지에 묻히는걸 원치 않았었다.

조 경한 옹의 말에 의하면 이승만 치하에서 문교부장관을 했던 이 선근도 본래는 만주에서 항일 세력들을 토벌했던 관동군을 측면지원한 대표적 조선인 친일조직 '동남지구특별공작 후원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했지만 해방이후 요리조리 변화무쌍하게 변신해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대표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람으로 조선총독부에서 녹을 받아먹고 아부하다가 해방 후 이 승만 에게 초대 대법원장으로 영달한 친일 매국노 민 복기와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유 진오 박사가 있다. 유 진오 또한 마찬가지로 일제하 친일 매국운동을 공개적으로 전개하다가 해방이 되어 시국이 변하자 역시 이승만의 반공주의 우산 안으로 끼어들어 애국자로 변신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역사청산을 못하다 보니 매국노가 애국자로 변해 진짜 애국자보다 우대를 받고 세도까지 부리는 참으로 울지도 웃지도 못할 뒤죽박죽 세상이 곳곳에서 노정된 것이다.

이 승만 한 사람으로 인해 너나 할 것 없이 참으로 서글픈 뒤죽박죽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멍에를 지게 된 것이다. 이러니 어찌 사회 곳곳의 기초질서가 개판이 되지 않겠는가.

해방이후 현대사 왜곡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이승만 한 사람으로 비롯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케이스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로 프랑스 같으면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얘기다. 프랑스 국민이 우리 역사를 잘 몰라 그렇지 아마 전말을 자세히 전해 들으면 애구 천하에 지지리도 못난 꼬레아 놈들하고 혀를 끌끌 찰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국민당을 이끌고 있던 장개석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우리의 고명하신 상해임정 모 최고위 인사에게 '도대체 중국대륙 전체가 조선의 땅인 줄이나 알고 있으면서 항일 독립운동 하는게요?,역사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게 당연하지.무엇보다 먼저 당신네 조선 역사부터 제대로 공부한 뒤 독립운동 하시게'라고 핀잔을 주었을까.

간혹 제도권 교육만 받은 사람을 만나 대륙이 우리 땅이고 우리역사가 일 만년이며 우리민족은 곰의 자손이 아니라 고대사에 대한 인식부족과 역사수탈에 의해 웅  토템 족과 호  토템 족의 죠인팅 과정이 잘못 받아들여진 것이며 단군은 대통령과 같은 관직명으로 47대가 전하고 있다고 말하면 듣고있는 사람들은 대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어디에 나와요? 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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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도서관에는 일제강점기 때 약탈해 간 '단군'관련 사서가 Click here!



그럼 다시 「환단고기」라든가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나 북애자의 「규원사화」 등에 나와 있으며 그 외에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적지 않은 문서들이 시중 서점에 나와있다고 하면 역사가 송두리째 사기당하고 왜곡된 줄은 모르고 에이, 그거 사학계에서 인정하는 것도 아니쟎아요 하고 듣기조차 귀찮아한다.

아! 단재 신채호 선생이 왜 무정신의 역사가 무정신의 민족을 산(産)하고(만들고) 무정신의 민족이 무정신의 국가를 조(造)하니(만드니) 어찌 가히 두렵지 않겠는가라 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들 일반인은 문제의식이 없는 개인이라 친다해도 오피니언 리더-소위 여론주도 형성층인 사회의 저명인사나 각계의 명망 있는 권위자가 한마디 슬쩍 던지는 말 한마디는  실로 가공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일제식민사관에 편승하여 실존했던 국조 단군을 신화화하거나 우상숭배라 하여 반대하고 한민족을 곰의 자손으로 만든다면 그 폐혜는 실로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천추 만대에 죄를 짓는 것이다.

단군 상의 목을 베는 사적(史敵)이 누군가 했더니 결국은 수사당국에 의해 역사혼이 빠진 골빈 목사 몇 명의 짓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 신화도 제대로 분별할 수 없는 얼치기 목자들임은 물론  민족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종교다원화 시대에 걸맞지 않게 오직 자신의 종교적 신념만을 위해 민족문화에 대해 불법적 폭력행사를 자행한데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국내 강단사학파들의 대부 이 병도 마저 죽기 바로 직전 단군은 허구가 아닌 실제 역사인물이라고 실토한 대목은 물증 없이 심증 없다는 그의 실증사학파 후학들에게 의혹하나 없이 더 연구해 터파(攄破)하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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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東夷족 熊씨 가문 여인과 桓족 추장 사이에서 탄생… 조선 고종 때까지 國祖였다 일제부터 神話로 돌변-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기자

단군은 곰의 아들 아니다

東夷족 熊씨 가문 여인과 桓족 추장 사이에서 탄생… 조선 고종 때까지 國祖였다 일제부터 神話로 돌변

글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기자





청 (淸)나라때 오임신(吳任臣)의 ‘산해경광주’(山海經廣註)에는 ‘해내경(海內經)에 동해 안쪽 북해(발해) 모퉁이에 조선(朝鮮)이 있다고 말한 그 조선이 바로 단군조선’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단군(檀君) 가신 지 오래인데 그동안 왕조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고’(檀君逝久幾更張).

이것은 명(明)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이 1397년(조선 태조 6) 3월 권 근(權近)이 명나라를 방문했을 때 하사한 시의 한 구절이다. 이 때 권 근은 ‘맨 처음 동이(東夷) 국가의 임금이 된 분은 단군이었다’고 시로 화답했다.

‘조선태조실록’에 실려 있는 이 기록은 당시 중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 고조선은 동이가 세운 최초의 국가이고 단군은 고조선의 최고 지도자였다고 인정하는 데 상호 이견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명나라때 오명제(吳明濟)의 ‘조선세기’에는 ‘단군은 동방 구이(九夷)의 나라 고조선의 지도자였다’(國號朝鮮… 九夷君之)는 기록이 나와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의 ‘단군고기’에는 조선·시라(尸羅)·고례(高禮)·남북옥저·동북부여·예·맥 등 단군이 다스리던 구이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명돼 있다.

‘논어’ 자한(子罕)편에도 ‘공자가 구이에 가서 살고 싶어했다’(子欲居九夷)는 기록이 보이는데, 하안(何晏)의 집해(集解)에 ‘구이는 동방의 이(夷)가 9종(種)이 있는 것을 말한다’(九夷 東方之夷 有九種)고 하였고 형병(邢昺)의 소(疏)에는 이 구이(九夷)를 현토(玄?)·낙랑(樂浪)·고려(高麗)·만식(滿 )· 부유(鳧臾)·색가(索家)·동도(東屠)·왜인(倭人) ·천비(天鄙)로 설명하였다.

이처럼 한국과 중국의 여러 사료를 종합해볼 때 고조선은 동방의 구이가 세운 최초의 동이 국가이고 단군은 최초의 동이 국가 고조선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그러면 단군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취급해 부정한 기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근대에 일본인 사학자 나가통세(那珂通世)가 단군을 부정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1894년 ‘사학잡지’(史學雜誌) 5·6집에 발표한 ‘조선고사’(朝鮮古史)라는 논문에서 ‘단군신화는 불교 승도(僧徒)들의 망설(妄說)이요, 날조’라고 주장했다. 일인 학자들의 이와 같은 단군 부정론은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 설치와 함께 본격화됐다.

단군신화는 식민사학의 산물


단군신화는 한 마디로 일제 식민사학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일제가 단군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끌어내려 말살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보이는 다음의 웅녀(熊女)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檀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檀君王儉.’

식민사가들은 단군의 출생과 관련된 이 기사를 다음과 같이 신화적 관점으로 해석하였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우리 학계의 정설로 통용되고 있다.

‘때마침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서 살면서 신으로 있는 웅에게 사람으로 변하도록 해 달라고 늘 빌었다. 이 때 신이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바로 사람의 모양으로 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곰과 범은 그것을 얻어먹고 스무하루 동안 기(忌)하여 곰은 여인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하지 못해 사람의 몸이 되지 못했다. 곰여인은 혼인할 자리가 없으므로 매번 신단수 아래서 애기를 배도록 해 달라고 빌었다. 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해 그와 혼인해 애기를 배게 하여 아들을 낳으니 부르기를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잘못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웅일호’(一熊一虎)는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범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한 웅(熊) 부족과 한 호(虎) 부족이 있었던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동혈이거’(同穴而居)는 곰과 범이 같은 동굴에서 살았다는 것이 아니고 웅 부족과 호 부족 등 두 부족이 같은 지역에서 함께 살았던 사실을 말한다.

상고시대에는 인간들이 오늘날과 같은 가옥 구조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고 ‘혈거이소처’(穴居而巢處), 즉 높은 지대에서는 땅에 굴을 파고 그 속에서 살았고 낮은 지대에서는 서 있는 나무를 얽어매어 그 위에 올라가 살았으므로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이 당시 함께 혈거생활을 했던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환웅(桓雄)에 대해 신(神)자를 덧붙여 신웅(神雄)으로 표현한 것은 그가 인간이 아닌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신성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맹자(孟子)는 인간을 선인(善人)·신인(信人)·미인(美人)·대인(大人)·성인(聖人)·신인(神人)의 여섯 단계로 분류해 말했다.

환웅의 환은 예로부터 환수(桓水)·환씨(桓氏) 등 지명 혹은 성씨(姓氏) 또는 오환국(烏桓國)과 같이 나라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는데 송환공(宋桓公)·환퇴(桓?)의 경우에서 보듯 춘추시대까지도 환족(桓族)이 존재했다. 따라서 우리말로는 ‘한’ ‘하늘’과 통하고 ‘태양’을 지칭하기도 하는 환은 태양 또는 하늘을 숭배하던 부족 명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쑥과 마늘을 먹고 삼칠일 동안 기하라’는 것은 어린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부정을 타지 않게 할 목적으로 행한 원시사회의 민속상의 행위와 관련 있다고 본다.

예컨대 우리 전통사회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집에 금줄을 쳐 잡인의 출입을 막아 부정타는 일을 방지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熊女는 ‘웅씨 가문의 딸’



‘웅득여신(熊得女身) 호불능기(虎不能忌) 이불득인신(而不得人身)’이라는 말은 ‘곰은 사람이 되었으나 범은 신의 계시대로 잘 따르지 않아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웅족의 가문에서는 어린 생명을 잉태·탄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덕목을 잘 지켜 훌륭한 여자아이를 얻은 반면 호족의 가문에서는 그렇지 못하여 실패한 사실을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웅녀(熊女)와 환웅이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것은 환웅이 곰이 여자로 변한 ‘곰녀’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 아니고 웅족 가문에서 훌륭하게 자란 웅녀와 환족의 추장인 웅의 결합에 의해 단군이 탄생한 것을 말한 것이다.

‘웅내가화이혼지’(熊乃假化而婚之)라는 말은 ‘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했다’는 말이 아니고 ‘환웅이 잠시 음양의 조화를 빌려 혼인했다’는, 다시 말하면 ‘잠시 성적 결합의 방식을 빌려 혼인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웅녀가 ‘곰녀’가 아닌 웅 부족의 여인, 쉽게 말해 웅씨 가문의 따님을 말한다면 고전 기록상에 과연 여인의 이름 앞에 성(姓)만 붙여 부인을 호칭한 사례가 있는가.

예컨대 주(周)나라 태왕(太王), 즉 고공단보(古公亶父)의 부인이 강태공과 같은 강씨(姜氏)였는데 이를 후세처럼 강씨부인이라고 하지 않고 여(女) 자 앞에 강자를 붙여 강녀(姜女)라고 한 내용이 ‘시경’과 ‘맹자’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고공 단보가 강녀와 함께 와서 살 집을 보셨다’(古公亶父… 爰及姜女 聿來胥宇).
그러면 단군 당시에 과연 실제 웅씨 성을 가진 부족이나 가문이나 사람이 있었는가.

‘좌전’(左傳) 문공(文公) 18년조에 ‘고신씨(高辛氏)의 여덟 아들 가운데 큰아들 이름이 호(虎)이고 둘째아들이 웅(熊)이었다’는 기록이 나오고 요순시대의 기록인 ‘서경’ 순전(舜典)에는 ‘순임금의 어진 신하로 주(朱)·호(虎)·웅(熊)·비(?) 네 신하가 있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五帝本紀) 제1에는 황제(黃帝)의 용맹한 전사(戰士)를 거명한 것 중에 웅(熊)·호(虎) 등의 이름이 들어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황제·고신씨·요순시대는 바로 고조선의 단군시대와 거의 동시대다.

이런 자료들은 이 시기에 호나 웅이 범이나 곰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부족 또는 사람의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었던 것을 방증하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단군 당시 단군의 아버지 환웅과 혼인했다는 웅녀의 가문은 과연 어디에 있던 어느 집안이었을까. 그것은 초(楚)나라 육웅( 熊)의 집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중국 동남쪽에 있던, 춘추시대까지도 공자에 의해 동이족으로 폄하된 초나라의 시조가 바로 전욱(?頊)의 후예인 육웅이고, 그 후예들은 모두 웅씨 성을 사용해 왕위는 웅려(熊麗)·웅광(熊狂)·웅역(熊繹) 등으로 이어졌다.

이제 신화 굴레 벗겨야



‘서경’ 우공(禹貢)편에 ‘청주(靑州)에 우이(퍉夷)가 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우이’가 바로 고조선이라는 기록이 여러 군데 나온다.

청주는 하우(夏禹)시대 구주(九州)의 하나로 중국의 동북 지역에 있었다. 따라서 고조선시대에 환족은 오늘의 산동성·요녕성·하북성 등지에 걸쳐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초나라의 웅족은 이 시기에 중국의 동남쪽, 즉 청주와 인접한 지대인 양주(揚州)에 살았으며 당시 양주는 오늘의 강소(江蘇)·안휘(安徽)·강서(江西)·절강(浙江) 등지에 해당한다.

환족과 웅족은 다 같은 동이족으로 하나는 동북의 청주, 하나는 동남의 양주에 서로 이웃해 살았으며 이들 두 종족이 서로 혼인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단군이었다. 단군은 곰의 아들이 아니라 웅려·웅광의 가문에서 환인·환웅의 가문으로 시집온 여인 웅녀에게서 태어난 아들이었던 것이다.

수천 년간 국조로 인식되던 단군을 일제가 신화의 굴레를 씌워 역사에서 말살시켰다.

개국 이래 조선조 말엽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 단군은 우리의 국조였고,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35년을 거치면서 단군의 역사는 신화로 변조되었다.

그 보다 더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이제 이 나라가 광복된 지 50여 년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국사 교과서에서는 여전히 단군을 신화로 취급해 부정하고 기자조선은 우리 역사와 무관하다고 삭제해 고조선 2,000여 년의 역사가 말살된 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역사에서 단군과 기자조선을 빼고 나면 역사의 시작이 위만조선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한국사는 유구한 역사가 아닐 뿐더러 위만은 당시 연인(燕人)으로서 침입자의 신분이기 때문에 출발부터 기형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역사를 고조선을 뺀 고구려·백제·신라 이후의 역사로 한정하다 보면 피지배·피침탈과 동족상잔으로 일관된 어두운 역사만 부각된다. 이런 기형적 역사, 어두운 면만 부각된 역사가 오늘의 우리를 이처럼 민족적 긍지도, 문화적 자신감도 없는 분열과 투쟁이나 일삼는 한심한 국민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제는 부질없는 단군신화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하루속히 일제가 우리 국조 단군에게 씌운 신화의 굴레를 벗기고 그 역사적 실체를 복원하는 데 우리 모두 앞장서야 한다. 거기에 재야와 강단이라는 인위적 구분이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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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실물로 선보인 십이대영자 청동 유물>  
[연예] 2002년 07월 03일 (수) 08:40

(수원=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58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자오양현(朝陽縣)남서쪽 약 12.5km 지점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라는 곳에서 무덤 2기가 공사중에 발견됨으로써 랴오닝성박물관을 중심으로 정식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조사과정에서 무덤 1기가 추가로 발견됐다. 먼저 발견된 무덤은 2,3호분으로 명명됐으며 나중에 확인된 무덤이 1호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무덤들 중 1호분은 직사각형 모양으로땅을 2m 가량 파고 내려가 구덩이를 만든 다음 바닥에는 자갈을 깔고 부부로 판단되는 남녀 시신 한 쌍과 부장품을 안치했으며 넓은 판돌로 천장을 덮었다.

부장품 중에는 잔무늬 구리거울(다뉴세문경)이 있었고 시신의 가슴팍에서는 비파형 동검 두 자루가 발견됐다.

같은 합장분으로 판단되는 2호분에서도 비파형 동검과 잔무늬 구리거울이 나왔으며 3호분 또한 잔무늬거울을 출토했다.

중국 요서(遼西) 지역 청동기문화 조명에서 일대 획을 이룬 이 십이대영자 발굴성과는 1960년대에 발굴보고서가 간행됨으로써 국내외에 널리 소개됐다.

남한에서 이 유적발굴 성과는 고 김원룡 당시 서울대 교수가 1961년 「역사학보」 16호에 '십이대영자의 청동단검묘-한국 청동기문화의 기원문제-'라는 논문을 통해 공개했다.

김 교수가 십이대영자를 주목했던 까닭은 이곳 출토 유물이 한국 청동기문화와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파형 동검과 잔무늬거울은 한반도 전역에 걸쳐 고루 출토되고 있었다.

십이대영자는 발견 초기에는 기원전 6-5세기에 해당하며 이를 남긴 주체는 중국문헌에 등장하는 북방 오랑캐 중 하나인 동호(東胡)라는 견해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1980년대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축조시기는 춘추시대 초반기(대체로 기원전 8세기)로 상향조정되는 한편 이것을 남긴 주인공 또한 동호족이 아니라 고조선이라는 주장이 중국학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고조선 중심지가 요서를 중심으로 한 만주인가, 평양 중심의 한반도인가 하는 해묵은 논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 요서지역 청동기문화를 전공하는 복기대 단국대박물관 연구원은 "십이대영자 유적이 동호족 유산으로 보고된 1960년대만 해도 고조선 중심지는 평양설이 우세했으나 고조선 유적이라는 견해가 등장하면서 '고조선 요서지역 중심설'이 다시 힘을 얻게 됐다"고 지적했다.

십이대영자 유물은 이처럼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나 정작 그 실물을 구경하기는대단히 어려웠다. 고 김원룡 교수도 일본을 통해 입수한 중국의 발굴보고서로만 이곳 유물을 보았을 뿐이다.

중국이 특히 고조선과 고구려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십이대영자 유적과 그곳 출토 유물은 접근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한데 이러한 십이대영자 유물이 천만 뜻밖에도 국내에 들어왔다.

경기도가 중국 랴오닝성,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과 공동으로 경기도박물관(관장 양미을)에서 개최하고 있는 특별전 '동(同)과 이(異)'에 십이대영자를 대표하는 잔무늬거울과 비파형 동검이 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24일 개막돼 이달 21일이면 폐막하는 이번 특별전은 뿐만 아니라 좀처럼 만나기 힘든 중국 요서지역 청동기문화의 실체를 복제품이 아닌 실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월드컵으로 들뜬 분위기를 문화적으로 순화시킬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될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박물관은 이번 특별전의 중요성을 감안, 전시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중국측과 협의중이다. <사진 있음>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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