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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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담론27. 국민회를 와해공작,박용만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이중인격 이승만과 송건호의 비판
 





경기도 철원 태생인 박 용만(1881-1928)은 박 영효, 김 옥균과 함께 개화당에 관여한 숙부 박 희병의 도움으로 도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세 경에 상경하여 독립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바 있으며 1898년 장 지연이 황성신문을 인수하자 주필 박 은식 휘하에서 일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박 용만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사에 머리를 쳐든 것은 1904 년 도미한 이후다.

  그는 1906년 네브라스카주 헤스팅스대 정치학과에 입학해 학사 학위를 받고 1909년에 소년 병 학교를 설립한 바 있으며, 1914년에는 국민군단을 창설하면서 미주지역 무장항쟁주의 지도자로 자리 매김 되었다.

사촌 박 용철, 박 용각은 상해 임정에서 독립운동을 했는데, 특히 임정 의정원 의원이던 박 용철은 김구와 함께 이봉창 사건을 주도했으며, 숙부인 박 건병은 그와 함께(신채호, 신숙과 손을 잡고) 북경에서 군사통일 주비위원 5인 중 한 명으로 활동한 바 있는 뿌리깊은 독립운동가 집안이었다.

미주지역의 독립운동은 1909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국민회>의 창립과 1910년 2월 <대한인 국민회>로의 조직 확대로부터 시작했다. 이 승만이 박 용만의 초청으로 하와이에 오자 국민 회는 이 승만을 꺼려해 했지만 박 용만의 간절한 부탁으로 국민회의 그늘 아래 있게 배려되었다.

그러나 이 승만은 박 용만 휘하에 들어가 일하는 것을 꺼려했으며 대신 한인 기숙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태평양 잡지』를 발행하면서 1년도 안되어 국민 회와 박 용만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박 용만은 북미지방 총회 대표로 중앙총회 결성 및 선포문 기초를 맡았는데 이 역시 이 승만의 참여로 분규와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 승만은 국민 회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탐하여 사사건건 『태평양 잡지』를 통해 국민 회를 헐뜯으며 국민회 자체를 와해시키는 공작을 벌려 마침내 국민 회가 분열되고 말았다.

이 승만은 국민 회 재무책임자를 매수 공작해 국민회로부터 자신의 교육사업에 국민회의 토지를 넘겨받는 것을 마침내 허락 받았다.

그러나 본래의 뜻이 교육사업이 아니었던 이 승만은 자신의 개인명의로 해 달라고 끈질기게 고집 피웠으며 국민 회 측에서는 공유물인 까닭에 학교명의로만 넘기려 했다.

이 승만은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국민 회 각 지구와 교포사회를 들쑤시고 다니면서 글도 써서 돌리고 선동도 하는 등 격렬하게 풍파를 일으켰다.

심지어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국민 회 총 회장 김 종학을 공금횡령 혐의로 고소하여 구속시켰다. 재판에서 무죄로 석방된 김 종학은 분함을 이기지 못해 유서를 쓰고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와 같은 장난으로 각기 1915년, 1918년, 1921년, 1930년에 큰 풍파와 재판을 일으켜서 수십만 달러의 재정이 소모되었으며 독립운동과 교포단체 발전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이는 민족운동이나 단체발전에 대한 정책이나 노선차이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 승만 개인이 단체를 협박해 재산과 권력을 송두리째 빼앗으려했던 이 승만의 재물욕과 권력욕 때문이었던 바 이는 저열하고 추잡한 이 승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좋은 쌤플 임과 동시에 독립운동 과정과 해방 후 이 승만이 우리 민족에게 가져다 줄 풍파와 민족적 비극을 예견해 주는 좋은 실마리가 된다.

박 용만은 이에 대해 <시국소감>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이 승만이 하와이에 오던 때까지도 국민회의 기상이 장대하였고 동포의 염치와 양심이 아름다워서 안으로 단체의 화기가 있고 밖으로 각국 사람들의 칭송이 있더니 오늘의 정황은 동포가 있는 곳마다 싸움인데 호소할 곳이 없고 외국인들의 치소를 받아서 대외신용이 몰락되었으니 어찌하여 이렇게......

이승만이 글로는 민주를 주장하고 실제에는 경우와 공론을 멸시하며 말로는 도덕을 부르고 행실로는 작당과 몽둥이질을 교사하며 동포를 대하여 죽도록 싸우자고 하고 파쟁을 기탄없이 조장하니 이것은 자기의 조그마한 지위를 보존하려고 동포로 하여금 서로 충돌하여 망운을 초래하게 하는 행동이다.

후일에 학자가 있어서 하와이 한인사회의 실정을 기록하면 보는 자 누구나 책상을 치며 질책할 것인데 행여나 이것이 우리민족 장래에 거울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조규갑 저 -재미한인 독립운동의 지주 박용만->


이에 대해 송 건호는 이 승만과 김구의 민족노선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핵심만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즉, 이승만은 하와이에 온 후 자신을 교포사회의 장으로 추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은인인 박 용만을 배척하고 국민 회를 헐뜯었다는 것이다.

또 김 원용이 <재미한인 50년 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승만은 파쟁과 비난과 모함과 재판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자신을 지도자로 추대하는 동지회를 따로 결성했으며 박 용만에 대해서는 무력항쟁주의를 편다고 해서 야만적이라 비난했고 안 창호에 대해서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 무식꾼이라고 매도해 비웃었다.

1919년 상해에서 임정이 수립되자 국무총리로 추대되었지만 정작 이 승만은 미국에서 대통령으로 행세하며 총리호칭을 거부하므로 마침내 임정에서는 대외적으로 임정이 둘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임정조직을 대통령 중심제로 개편하여 이 승만의 대통령 행세를 합법화 해 주었다.

이 승만은 왕족출신이자 미국 철학박사 학위를 가진데다 윌슨 미 대통령의 제자라고 해서 상해 임정에서도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는 데 별로 이견이 없었다.

이 승만이 이렇게 독선적으로 된 데에는 3.1 운동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긴 갖가지 허울좋은 임시정부들이 몇몇 간판 급 인사들을 겹치기로 추대한데서 생겨난 비정상적 인사정책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도 있다.

가령 3. 21일 창립한 블라디보스톡의 <대한 국민의회>에서 대통령 손 병희, 부통령 박  영효, 국무총리 이 승만, 내무 안 창호 군무 이 동휘가 임용된 바 있고,

두 번째 상해 임정 외에도 4. 23일 서울에서 건국한 <한성정부>의 집정관 총재 이 승만, 국무총리총재 이 동휘, 외무 박 용만이 임용된 바 있으며, 4. 17일 <신한 민국 정부>의 집정관(대통령) 이 동휘, 국무총리 이 승만이 임용되었다.

이 외에도 4. 10일 <조선 민국 임시정부>의 정도령(대통령) 손 병희, 부도령(부통령) 이 승만이 임용되었고, 4. 1일 <대한민간정부>의 대통령 손 병희, 부통령 오 세창, 국무총리 이 승만이 임용되었으며, 3. 29일 간도 <임시대한공화정부> 대통령 손 병희, 부통령 박 영효, 국무 급 외무총장 이 승만이 임용되었고,  4월 간도 <고려 임시정부>의 총통 이 동휘, 국무총리 이 승만이 중복 임용되었다.  
    
1919년 2월 그는 한인회의 양해도 없이 미 대통령 윌슨에게 한국을 새로 창설되는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하에 두어 달라는 청원을 하여 교포사회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이에 놀란 대표자 회의는 그에게 대표사임을 요구하고 그가 청원한  위임통치 안이 이 승만 개인의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윌슨에게 밝히라고 요구했으나 그는 이 모든 것을 거절했다.

게다가 이 승만은 자신의 비서인 임 병직을 주미 일본대사관에 보내 일본천황 다이쇼(大正)에게 한국독립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보내 독립운동가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특히 단재 신 채호는 조국의 위임통치를 바라는 자를 어떻게 상해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추대하느냐며 반대했고 이 동휘도 이 승만의 국무총리 취임을 반대했다. 이 승만은 상해에 와서도 중국과 같이 생활하기 불편한 나라는 생리에 맞지 않았던지 북경, 남경 등지로 여행을 주로 하면서 소일하다가 자신의 탄핵문제로 골치 아파지자 미국에서 열리는 태평양회의에 참석한다는 핑계를 대고 중국을 떠나고 말았다.

    임정 측은 이 승만에게 상해로 귀임할 것을 수차 독촉했으나 그는 귀 한번 기울이지 않았으며 끝내 임정이 자신을 탄핵하고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자 재미 동포의 독립운동 자금마저 끊어버리고 말았다.

송 건호는 『서재필의 자주적 근대화 사상』이란 제하에서 서재필이 회고한 말을 통해 이 승만에 대한 평을 다음과 같이 대신하고 있다.

- 애국운동을 한다면서도 왕족과 같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축재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그(서재필)는 자서전 속에서 말하고 있다. 이름은 들지 않았으나 이것은 아마 이 승만을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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